하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또한 하구천이 섬나라와 노국과 결탁하여 항도 하 씨 가문 안주인의 생일날에 윗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어.”“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될 거야. 그러니까 소문이 퍼지지 않도록 해야 해.”“우린 하구천에게 골칫거리를 만들어 줘야 해. 그래서 그로 하여금 속 시끄러운 마음을 핑계 삼아 항성을 떠나도록 만들어야 한다구.”“매일 집에서 교활한 계책을 연구하는 것도 그의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거고.”하구천은 너무 철두철미하고 자기 보호에도 빈틈이 없었다.이렇게 그를 몰아붙이고 아주 구역질이 나도록 괴롭히지 않으면 하현 자신도 계속 하구천을 상대할 계책을 연구하느라 힘들어진다.그러니 하구천을 위아래로 움직이게 해야 하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그래, 알겠어요. 바로 준비할게요.”“하현,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동 씨 집안이 아직은 항성에서 좀 먹히는 가문이잖아요. 이런 일은 쉽게 처리할 수 있어요.”하현은 고개를 약간 끄덕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하구천 같은 사람을 상대할 때는 모든 일을 아주 자연스럽게 꾸며야 한다.너무 뻔하게 보이면 상대에게 들킬 수 있다.자연스럽게 물 흐르는 듯한 계획이 종종 더 큰 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하현은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생각에 잠겼다.동리아가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하현에게 다가와 손수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하현, 우리 동 씨 집안에서 이렇게 잘해주는 데 뭐 감사의 뜻으로 내놓을 거 없어요? 당신이 직접 못하겠으면 내가 제안을 해도 될까요?”분명 동리아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실은 간신히 용기를 내어 한 말이었다.이국적인 얼굴에 미소가 가득 들어찼다.하현이 원하기만 한다면 곧장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타오를 것 같았다.“하하하.”하현은 실소를 터뜨리며 오른손을 들어 동리아의 손을 툭툭 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동리아, 농담하지 마. 잊었어? 난
허민설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정신을 가다듬으며 하구천이 말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그러자 그녀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하구천, 처음에 그 두 노인을 등판시킨 건 두 가지 목적 때문이었잖아.”“하나는 이번 기회에 용문의 역량이 어디까지인지 탐색하여 용문에서 하현에 대해 어디까지 용인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었고.”“또 하나는 노국을 끌어들이는 것이었잖아. 지금 섬나라가 하현에게 혼이 난 상태에서 당신은 노국의 힘을 빌려 하현을 처리하려고 했을 뿐이야.”“지금 두 늙은이가 당신이 예상한 대로 역할을 해내지 못했지만 아직은 당신 손아귀에 있는 셈이잖아?”하구천은 이 말을 듣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계획은 그랬는데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아서 아쉬운 거지.”“어떤 사람은 자신의 지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지금이 그가 권력을 잡을 때라고 착각하지.”하구천의 얼굴에 비꼬는 기색이 역력했다.“어떤 사람인데?”허민설이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하구천에게 물었다.그때 입구 쪽에서 누군가의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잠시 후 얼굴이 푸르스름하게 멍이 든 장남백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 하구천 앞으로 다가와 앉았다.그의 얼굴빛은 말할 수 없이 흉측했고 얼굴에 원망이 가득 서려 있었다.“하구천, 하현 그놈 뭐야?”“그저 용문 대구 지회장에 불과하잖아!”“그런데 어떻게 감히 사람들 앞에서 날 이 지경으로 만들 수가 있어?”“그리고 날 서양놈들의 개라고 했어! 이런 모욕은 난생처음이야!”“당장 죽여 버려! 당신이 내 원한을 갚아 줘야 해. 당장 그를 죽여 줘!”“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이 감히 전임 항독의 얼굴을 때려?”“그놈을 죽이지 않고서야 어떻게 항성과 도성에 법이 있다고 할 수 있겠어?”“내가 어찌 노국 황실에 가서 얼굴을 들 수 있겠냔 말이야!”지금 장남백은 하현에 대한 증오와 원한으로 가득 찬 나머지 자신과 하구천의 지위 차이를 잊은 모양이었다.곧이어 그는 자신의 수행원
장남백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입을 열었다.“용오정이 하현을 제압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나?”“용오정은 용문 집법당 부당주야. 용문 서른여섯 지회를 지휘 통솔하는 인물이라구.”“그런데 어찌 하현은 그의 체면을 조금도 봐 주지 않은 거지?”하구천은 장남백에게 직접 차를 따라주며 담담하게 웃었다.“아주 간단해요. 하현에게 있어 용문 대구 지회장이라는 신분이 그리 대단한 건 아니거든요. 단지 보너스 같은 것일 뿐이죠!”“그의 신분에 대해 어르신도 들어봤을 거예요!”“강남 하 세자!”“항성 이 씨 가문 이일해도 수중에 막대한 손해를 봤다더군요.”“그런 사람을 아무나 함부로 대할 수 없어요.”“적어도 용오정이나 어르신 정도의 실력이나 되어야 그를 상대할 수 있죠.”하구천은 가벼운 어조로 툭툭 내뱉으며 동시에 쓴웃음을 지었다.장남백은 얼굴을 찡그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하구천을 바라보며 언짢은 기색으로 말했다.“그렇다면 우리가 공격하기 전에 왜 이런 얘기를 해 주지 않았어?”“내가 그의 정체를 말씀드린다고 해도 어르신 성정과 용오정의 급한 성미가 내 말에 귀 기울이게 했을까요? 믿을 수 있었을까요?”하구천은 자신의 책임을 슬며시 전가하며 말을 이었다.“어르신과 용오정이 이번에 따끔하게 정신을 차렸으니 천지 모르고 날뛰는 이놈을 상대하기 위해 앞으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지요.”“이번 일은 두 어르신이 따끔하고 아픈 교훈을 얻었다 생각하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앞으로 이런 놈을 상대하려면 아예 손을 쓰지 않거나 손을 쓴다면 단번에 처리해야 한다는 걸 아셨을 겁니다!”잔뜩 찡그렸던 장남백의 얼굴이 서서히 누그러지기 시작했다.잠시 후 그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하구천, 당신이 좀 나서 주겠나?”한참을 얘기했건만 결국 장남백은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하구천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이 늙은이가 정말 성질도 고약하고 체면을 어떻게든 놓지 못한다는 걸 알았
”내 기억이 맞다면 그 손자가 동 씨 집안과 혼사가 오갔죠.”“명목상이긴 하지만 동리아의 약혼자, 맞죠?”하구천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장남백은 잠시 머뭇거리며 지난 일을 떠올렸다.당시 동 씨 집안이 아직 세력을 얻지 못했을 때 혼사가 오가긴 했었다.다만 장남백의 손자도 장남백과 마찬가지로 도도하고 오만한 성격이어서 대하인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로지 노국의 황실에 사위로 들어가길 원할 뿐이었다.그래서 노국으로 유학을 떠나 황실 방계의 여자친구를 만났고 그 후로 항성에는 발걸음을 거의 하지 않았다.만약 하구천이 옛일을 언급하지 않았다면 장남백은 정말 까맣게 잊었을 일이었다.하구천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어르신의 표정을 보니 내가 잘못 기억한 건 아닌 모양이군요.”“오늘 동리아가 현장에 있었는데 하현을 건드리면 자신이 먼저 나서서 다 죽여 버리겠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어요!”“그 말이 온 동네에 퍼지기라도 한다면 어르신 체면이 도대체 뭐가 되는 겁니까?”“결국 동리아는 손자 며느리가 될 거잖아요? 왜냐하면 아직 약혼을 취소하지 않았으니까요!”“내 말은 그러니까 어르신 손자가 반드시 항성에 돌아와서 동리아를 따끔하게 혼내줘야 한다는 겁니다. 항성에서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는 건지 동 씨 집안에 확실히 보여줄 필요가 있어요!”“게다가 동 씨 집안을 밟아 버린다면 하현이 무슨 능력이 있겠습니까?”“그는 내륙에서는 힘깨나 쓰는지 몰라도 항성에서는 뿌리가 없는 초목과도 같은 처지예요.”“그와 동 씨 집안의 동맹만 끊어 놓는다면 어르신이 하고 싶은 대로 그를 짓밟아 버릴 수 있을 거 아닙니까?”“게다가 하현이 노국의 황실조차 모욕하고 있는 마당에 어르신 손자가 황실 여자친구마저 데리고 온다면 하현의 얼굴을 더욱더 비참하게 짓밟아 버릴 수 있을 거예요. 이 얼마나 통쾌한 일이에요, 안 그렇습니까?”장남백은 그제야 하구천의 말이 이해가 가는 듯 껄껄 웃으며 말했다.“하구천, 역시 전설적인 인물은 다르긴 다르군
다음 날 삼계호텔 스위트룸에서 잠을 자고 있던 하현은 누군가의 다급한 노크 소리에 잠을 깼다.하현은 졸린 눈을 비비며 시계를 확인하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서서 옷을 대충 걸쳐 입고 문을 열었다.문 앞에 서 있는 동리아를 본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동리아, 지금 아침 9시야! 나 좀 더 자게 내버려두면 안 돼?”“좀 편히 잠 좀 자려고 했는데!”세련되고 우아하게 꾸민 동리아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동리아는 하현이 더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다짜고짜 그의 손을 잡았다.“나랑 같이 공항에 가서 데려올 사람이 있어요!”하현이 자세히 물어보려고 했지만 동리아의 다급한 모습에 그는 더 물어보지 못하고 잠자코 그녀를 따랐다.동리아의 포르쉐 차량이 도시 순환 고속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리며 항성 국제공항에 도착했다.그들은 곧장 항성 국제공항 대합실로 들어갔다.대합실에는 이미 동 씨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동리아와 하현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레스토랑 위치를 알려주었다.동리아는 난감한 얼굴빛을 하고는 자신의 에르메스 가방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하현의 마음속에서는 의문의 부표가 떠다녔지만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도대체 무슨 상황이길래 동리아가 이렇게 당황해하는지 그의 마음속에 궁금증이 커져 갔다.곧이어 두 사람은 레스토랑 입구에 도착했다.이렇게 큰 레스토랑에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아마도 오늘 통째로 임대를 한 모양이었다.모든 웨이터들이 한 테이블에만 집중적으로 서빙을 하고 있었다.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다.남자는 대하 출신의 남자로 키가 크고 언뜻 보아도 수려한 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점잖은 얼굴에 금빛 안경을 쓴 모습이 귀족 그 자체의 풍모가 느껴졌다.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노국의 황실 방계 출신의 여자가 자리하고 있었다.서양 여자처럼 생긴 외모와 몸매는 둘째치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녀 특유의 기질
”장묵빈은 어릴 때부터 노국의 황실에서 자랐어요. 그리고 결국 노국의 황실에서 여자친구를 찾았죠.”“저런 알콩달콩한 모습이 해외에서 일어나는 건 얼마든지 괜찮아요. 나랑 아무 상관없어요.”“심지어 그가 우리 동 씨 집안과의 약혼을 미리 앞당겨 파혼한다고 해도 괜찮아요.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우리 동 씨 집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까.”“하지만 우리 집안과 파혼도 하지 않고 저렇게 버젓이 여자친구를 데리고 와서 내 체면을 구겨? 그것도 항성에서?”“절대 가만있을 수 없죠!”동리아의 표정은 차갑게 식었다.약혼자인 장묵빈에 대해서는 전혀 개인적인 감정이 없는 것 같았다.하지만 그녀는 누군가가 자신의 체면을 구기고 나아가 동 씨 집안의 체면을 깎는 짓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항성과 도성, 이 큰 도시에 이 일이 알려진다면 동 씨 집안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하현은 동리아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지금 저 남자한테 가서 당신을 좋아하는지 아닌지 물어볼 거야? 아니면 두 사람 사이의 약혼을 계속 유지할 거야?”“죽어도 싫어요!”동리아가 매몰차게 부정했다.하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간단해. 이왕 이렇게 왔으니 가서 분명히 말해.”“당신들 쌍방이 아무런 감정이 없으니 장 씨 가문이 자발적으로 이 약혼을 취소하게 만들면 깔끔하게 처리되는 거 아니야?”하현은 장묵빈이 장남백의 손자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자신이 나서서 말해 볼까도 생각했었지만 어쨌든 당사자인 동리아가 나서서 조용히 해결하는 편이 깔끔할 것 같았다.어쨌든 동 씨 집안과 장 씨 집안이 이 지경에 이른 데는 자신의 책임도 어느 정도 있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도리상 동 씨 집안에 가장 피해가 적게 가는 방향으로 흘러가길 하현은 바라고 또 바랐다.자신은 앞으로 항성과 도성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이지만 동리아는 여전히 이곳에
노국 황실 여자의 말을 듣고 장묵빈은 천천히 동리아의 표정을 살폈다.동리아의 표정이 험악하게 굳어져 갔다.장묵빈은 동리아를 위아래로 훑어본 후 마뜩잖은 표정으로 하현에게 시선을 던지며 입을 삐죽거렸다.“어쩐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어디선가 악취가 진동하더라니. 알고 보니 당신한테서 나는 냄새였군!”“그런데 동리아, 마리아가 당신한테서 어떤 악취가 난다고 했는지 알아?”“궁상맞은 냄새가 난다구! 알기나 알아?”“동 씨 가문도 어찌 보면 그냥 별것 없는 집안일 뿐인데 자기네가 무슨 상류층 집안이라도 되는 것처럼 감히 항성 상류층에 끼려고 그런다니까, 참 꼴사나워서!”“당신 동 씨 집안의 이런 염치없는 모습은 정말 보기 역거워! 구역질 난다구!”“특히 동리아, 당신은 노국 황실의 황녀에 비하면 그야말로 길가에서 굴러먹는 개 같아!”장묵빈은 불쾌한 기색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말했다.“꺼져! 희멀건 그 얼굴 들고 개집으로나 돌아가!”“앞으로 절대 내 눈앞에 나타나는 일 없길 바라!”“참, 약혼은 말이야. 할아버지께 취소하라고 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어.”“당신의 그 희멀건한 얼굴로 우리 장 씨 가문 앞에서 삼일 밤낮으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거야!”“삼일 밤낮으로 우리한테 무릎을 꿇으면 당신은 자유의 몸이 되는 거야!”장묵빈의 빈정거림은 이미 선을 넘어가고 있었고 매서운 기운이 저릿저릿 동리아의 온몸을 휘감아 돌았다.그녀는 한겨울 칼바람 같은 눈초리로 장묵빈을 노려보며 말했다.“장 씨, 가짜 외국놈 행세 좀 그만해. 당신이 무슨 노국의 개야?”“잘 들어!”“파혼을 한다고 해도 내가 결정해! 내가 당신과 파혼하는 거라구!”“그러니 삼일 밤낮으로 용서를 빌어도 당신이 우리 가문에 해야 되는 거야! 알겠어?”“그렇지 않으면 눈앞에 있는 이 내연녀랑 합법적으로 부부가 될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을 거야!”“내연녀?”싸늘히 식은 장묵빈의 눈빛이 동리아를 향했다
”자, 우린 어서 삼계호텔 경매장에나 가 보자구.”“여기서 얼씬거리지 말고 어서 썩 꺼져!”장묵빈은 내심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동리아의 관능적인 몸을 힐끔 쳐다보다가 결국 몸을 돌려 마리아와 함께 그 자리를 떠날 준비를 했다.결국 노국의 황실 가족이 되고 심지어 황위 계승권까지 얻을 수 있는 자리가 그의 평생 소원이었던 것이다.설령 그 황위 계승이 실현되기 어려운 요원한 꿈일지라도 장묵빈은 기꺼이 황실 가족의 일원이 되는 길을 선택할 것이다.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장묵빈을 쳐다보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어이, 장 씨. 당신 입에서 정말 역겨운 냄새가 난다는 거 알아?”하현의 말에 장묵빈의 얼굴이 굳어졌다.동리아는 하현의 말소리를 듣고 얼른 하현의 옷자락을 끌어당겼다.그가 이 문제에 휘말려드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하현, 됐어요. 그만해요. 이런 사람이랑 말 섞지 말아요!”“이런 뻔뻔한 놈도 나한테 부탁할 때가 있을 거예요.”단호하게 말하는 동리아의 행동을 보고 하현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쨌든 이것은 동리아 개인의 일이니 그도 너무 깊이 개입하기 어려웠다.그러나 ‘하현'이라는 말이 들리자 장묵빈의 표정이 갑자기 싸늘해졌다.“버르장머리도 없고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모르는 데다 동 씨 집안을 등에 업고 항성에서 위세를 떨친다는 그 물러터진 놈, 당신이 그 하현?”“물러터진 놈?”하현은 이 말을 듣고 장묵빈을 가만히 쳐다보았다.도대체 어디서 이런 말이 나왔는지 그로서도 알 길이 없었다.“물러터진 놈이 아니야?”장묵빈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동 씨 가문을 등에 업고 섬나라 귀한 손님을 손댄 것도 모자라 항성의 전임까지 마구 손찌검을 하다니!”“능력도 없는 주제에 어디서 굴러먹던 솜씨 조금 부리고서 허세 부리기는!”“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구만!”“자기가 정말 뭐라도 된 줄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하현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