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강심만 별장. 이곳은 오랫동안 개발되어 온 별장 단지로 그 안에는 단 한 채의 별장만이 반도 위에 우뚝 서 있었고 사방이 험준한 지형으로 마치 보루와 같았다.별장 외곽에는 좁고 긴 담장이 있었고 담장 위 곳곳에는 전기가 통하는 철조망이 쳐져 있어 방비가 비할 데 없이 삼엄했다. 입구에는 지금 열 몇 명의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키가 컸고 위장복을 입고 있었다. 분명 중국의 퇴역한 대병들일 것이다. 별장 입구에 차를 세우고 하현과 당인준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각자 외투를 벗어 차에 두었다. 오늘 밤 이곳은 피를 볼 운명이니 깨끗한 옷을 남겨둬야 했다. 그리고 당인준은 칼집까지 그대로 차에 던져두고 칼만 손에 쥔 채 냉담한 얼굴로 하현의 뒤를 따랐다. 이날 당도전신은 당시 유라시아 전장에서 대장을 따라 사방으로 출정하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그 당시 그는 당도대의 우두머리가 아니라 평범한 군사에 불과했었다. “개인 사유지라 무단으로 침입하면 죽어!”이때 전방의 네 남자가 기세등등하게 나타났다. “여기는 우리 중국 땅이야. 꺼져!”“허______”당인준은 가볍게 웃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갔고 손에 든 당도를 휘둘렀는데, 칼등만 사용했을 뿐이었다. “풉!”네 사람은 몸이 날아올라 강철 대문에 심하게 부딪혔다. “젠장, 죽고 싶어!”또 몇 사람이 노호하며 덤벼들었다. 당인준은 오른손으로 칼자루를 잡고 가볍게 튕겼다. 몇 명의 중국 고수들은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을 띠더니 일제히 뒤로 넘어졌다. 한 번의 공격도 견디지 못했다!그래서 중국의 정예들은 당인준 앞에서 일격을 당하지 못했다. “누구야!?”바깥의 인기척을 듣고 마당에 있던 또 다른 중국 정예들이 돌진해 왔다. 바닥에 널린 시체와 무너진 대문을 보며 이 사람들은 놀라 숨을 헐떡였다. 자기도 모르게 허리춤에 있는 화기를 만지작거렸다. “쓱!” 이 사람들이 화기를 꺼내기도 전에 당인준은 멈추지 않고
이때 본관에 있던 정예들은 모두 놀랐고 사방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나 화기와 병기를 꺼내 들고 소리를 지르며 경고하기 시작했다. “샤샤샥______”당인준이 냉담한 얼굴로 앞장서 가면서 달빛과 같은 칼날을 휘두르자, 하현에게 화기를 겨누려던 사람들은 모두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1분 후 하현과 당인준 곁에는 다시 50명 정도의 사람들이 쓰러졌다. 시체가 온 들판에 널려 피로 강을 이루었다. 3분 후 하현과 당인준은 본관 입구에 도착했다. 바로 이때 별장 안에 있던 모든 고수들이 달려 나와 하현과 당인준이 있는 곳으로 화기와 칼을 겨누었다. 하현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안재석을 내보내!”“기고만장하네. 너 어르신이 누군지 알아?”도복을 입은 남자가 군중 속에서 나와 하현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감히 우리 상성재벌 땅에 와서 행패를 부리다니, 너희들 간이 크구나!”“퍽!”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현은 한 걸음을 내디디며 뺨을 내리쳤다. 남자는 안색이 급변하더니 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하현의 손이 그의 얼굴에 떨어지는 바로 그 순간 남자의 머리가 ‘쿵’하고 바닥에 내리쳐지더니 저절로 무릎을 꿇게 되었다. 눈동자에는 충격과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남아 있었다.그는 8대 천왕 중의 하나인 철두천왕으로 전설의 철두공을 수련해 머리를 벽에 부딪힐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생각지도 못하게 하현에게 뺨을 맞아 죽을 줄은 몰랐다. 하현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안재석 굴러 나오라고 해!”이때 또 도복을 입은 남자가 밖으로 나왔는데 장발에 약간 속세를 초월한 분위기를 풍겼다. 많은 사람들의 머리 위로 뛰어 올라 득의양양하게 하현 앞으로 떨어졌다. 당인준은 눈을 가늘게 떴고 상대방의 강함을 느꼈다. “나는 호천왕이라고 해. 8대 천왕 중에 2위야!”호천왕은 이때 차가운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너희들 솜씨
뺨을 몇 차례 얻어맞고 자칭 중국의 8대 천왕의 수장, 용천왕은 경직된 모습으로 쓰러졌다.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다! 그녀는 일대 천왕으로 중국에서 횡포를 부리다가 뜻밖에도 뺨을 맞고는 산채로 죽임을 당했다! 이 모습을 본 중국 정예들은 얼굴이 완전히 창백해졌다. 하현 앞에서 그들은 더 이상 무기를 들고 있을 용기가 없었다. 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휴지를 꺼내 손가락을 닦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말하는데, 안재석 굴러 나오라고 해.”“다른 사람들은 죽이고 싶지 않아!”온 장내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남원에서 누군가가 별장 대문을 부수고 들어와 사람을 죽일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건 누가 감히 안재석의 이름을 불러 그를 나오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별장 안의 분위기는 지금 거의 굳어져있었다. 어떤 사람은 충격을 받았고, 어떤 사람은 굳어져 있었고, 어떤 사람은 이를 갈았지만 아무도 감히 입도 뻥긋하지 못했고, 꼼짝도 하지 못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누군가가 감히 이렇게 안재석에게 도발을 했다면, 그들은 분명 상대방이 정신이 이상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어쨌든 안재석은 중국 태권도 1인자 박영진의 수제자이고, 또 중국 상성재벌 대하 지부의 부대표였다. 이런 사람은 지위가 높고 권위가 높아서 관청의 1인자라도 그를 만나면 예의를 갖춰야 했다. 눈앞의 이 평범해 보이는 놈이 어디 건드릴 수 있겠는가?하지만 지금 별장을 지키던 3대 천왕은 횡사했다. 거기다 모두 뺨을 맞고 산채로 죽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현이 거만하게 굴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쨌든 그 사람들은 길가의 고양이나 개가 아니라 중국의 천왕이자, 몇 안 되는 고수들이었다. 하지만 하현 앞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어떻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아직도 안 나오는 거야? 그럼 내가 알아서 들어 간다……”“너희 중국 사람들은 항상 이런
말을 마치고 안재석은 가볍게 손뼉을 쳤다. 이때 별장에서 또 백 명에 가까운 중국 정예들이 돌진하며 나왔다. 이들은 안재석의 밀착 경호원들이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태권도복을 입고 있는 태권도 고수들이었다. 그들은 군중 한 가운데서 능수능란하게 안재석을 호위하고 있었다. 그리고 난 뒤 화기를 든 중국 정예들이 살벌하게 뛰어나왔다. 그들은 마치 큰 적수를 만난 듯 벌써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곧이어 검은색 태권도복을 입은 남자도 별장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손에 붕대 한 통을 들고 걸으면서 양손바닥에 붕대를 감았다. 동시에 그의 눈빛은 하현을 더 없이 날카롭게 응시했다. 일종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게가 있었다. 중국 태권도 세 성인 중의 한 명, 박세환!하현과 당인준 뒤에서 이때 똑같이 태권도복을 입은 남자가 걸어 나왔다. 이 남자는 양손의 손가락이 굵직했다. 이때 양주병을 들고 있었는데 건들건들해 보였다. 하지만 그에게도 살기가 번져 나왔다. 중국 태권도 세 성인 중 한 사람, 전지상! 태권도 성인이라 불리는 두 사람은 준전신급 실력을 갖췄다. 지금 이 순간 앞뒤로 협공을 하니 얼마나 무서운가! 이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안재석은 마음이 안정되어 차갑게 하현을 쳐다보며 말했다. “하 세자, 너 여전히 네가 강남의 하늘이라고 생각해? 네가 말한 대로 다 될 거 같아?”“전에 경매장에서 있었던 일도 내가 아직 계산을 미처 못했는데 네가 감히 나를 직접 찾아오다니!”“너 상성재벌이 종이 조각 같은 거라고 생각하니?”이때 안재석은 사나운 기색이었다. 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안재석, 아무 의미도 없는 쓸데없는 소리가 왜 이렇게 많아?”“오늘 밤 죽고 싶지 않으면 유아를 풀어 줘.”“만약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다치면 너희들 다 죽을 줄 알아!”하현은 눈빛이 차갑기 그지없었다. “설유아?”안재석은 살짝 어리둥절해하다가 잠시 후 하하 큰 소리로 웃었다. “그렇구나.
안재석의 얼굴에는 흉악하고 일그러진 미소가 가득했다. 그는 중국에서 권위가 높고 재력도 뛰어났다. 상성재벌에서도 신분이 범상치 않았다. 하지만 오늘 밤 하현은 오히려 그의 체면을 계속해서 짓밟았다. 그가 데리고 온 천왕급 고수 네 명을 해치워 안재석의 체면을 완전히 구겨버렸다. 이제 기회를 잡았으니 안재석은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유아는 얼굴을 감쌌다. 그녀는 놀라고 두려운 얼굴이었는데 이 못된 놈들이 왜 자신을 잡아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자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듯 하현을 쳐다보며 속삭였다.“형부!”유아의 이런 모습을 보니 하현의 눈동자는 살기로 불타올랐다. 자기 처제는 자기가 괴롭히기도 아까운데 안재석이 죽으려고!이때 하현은 심호흡을 하며 속삭였다. “유아야, 괜찮아?”유아는 웃음을 쥐어 짜냈다. “형부, 나는 괜찮아요.”하현은 위아래로 훑어보며 유아가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긴장했던 마음을 내려 놓았다. “괜찮으면 됐어. 형부가 집으로 데려다 줄게.”설유아는 빙긋 웃더니 억울해 하면서도 또 기뻐하며 이내 눈물을 흘렸다. 이어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형부, 여긴 위험해서 오면 안 되는데……”“짝짝짝______”“멋지다. 너무 멋져!”“너희들 드라마 찍어?”“모르는 사람이 보면 너희들 가을동화라도 찍는 줄 알겠다!”“울먹이는 걸 보니 내가 드라마 내용을 더 삽입해 줘야 할 거 같네!”안재석은 손뼉을 치며 웃었다. 곧 이어 하현에게 입을 열 기회를 주지 않고 손등으로 설유아의 두 뺨을 후려쳤다. 설유아는 입가에 핏자국이 떠올랐고 예쁜 얼굴에는 멍이 들었다. 하현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안재석, 너 더이상 나대지마!”“나대지마? 너 이제야 알았어?”“어르신의 스타일은 이런 식이야. 네가 기분 나쁘면 나를 해치워보든지!”안재석은 깔깔 큰 소리로 웃었다.“네가 그럴 능력이 있어? 자격이 있냐고?”“쳇!”
안재석의 얼굴에는 변태적이고 뒤틀린 웃음이 가득했다. 한 무리의 부하들도 덩달아 폭소를 터뜨렸다. 모두의 눈동자 속에는 장난기가 묻어났다. 하현은 비록 전투력은 강했지만 혼자서 안재석의 무리들을 상대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것이다. 하현이 차갑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말한다. 풀어줘!”“퉤!”안재석은 바닥에 침을 뱉은 뒤 냉소하며 말했다. “무릎 꿇고 깨끗하게 핥아!”“1분 생각할 시간 줄게. 이거 깨끗하게 핥아. 아니면 설유아를 죽일 거야.”말을 하는 동안 안재석은 품에서 화기 한 자루를 더듬어 꺼내더니 설유아의 아마에 갖다 댔다. “형부, 무릎 꿇지 마. 그러지 마! 이 짐승이 어떻게 이렇게 형부를 모욕하게 할 수 있겠어!”안재석이 자신의 사랑하는 형부를 협박하는 것을 보고 설유아는 비할 데 없이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형부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모욕을 받을 수 있는 거지?“무릎 꿇어!”안재석이 호통을 쳤다. “깨끗이 핥아!”하현은 비할 데 없이 안색이 안 좋아 졌고 천천히 앞으로 갔다. 설유아는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형부, 안돼요. 안돼!”그녀는 비 오듯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기에 하현과 당인준 두 사람이 확실히 우세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안재석의 스타일로 볼 때 자신을 협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자신을 위해 형부가 이런 모욕을 당하면서 꼼짝 없이 붙들리다니?지금 설유아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다. 그 순간 그녀는 이제서야 형부가 자신에게 정말 잘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도 형부를 떠날 수 없을 것 같았다……하현은 비할 데 없이 안 좋은 기색으로 그가 침을 뱉은 곳으로 한 걸음씩 앞으로 걸어갔다. 안재석은 냉소하며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화기를 돌려 ‘펑’하는 소리와 함께 하현의 발 옆을 향해 쏘았다. “됐어. 여기 무
백여 명의 중국 정예들을 단번에 뛰어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가 너무 빨라 거의 모든 중국 정예들이 반응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박세환과 전지상 두 사람은 동시에 안색이 변했다. “조심해!”안재석은 지금 안색이 극도로 안 좋아졌다. 하현이 지금 감히 반항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 중국 정예들은 깜짝 놀라 한 목소리로 외쳤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막을 수는 없었다. 황급히 누군가가 방아쇠를 당겼지만 화기는 전부 비어있었다. 박세환의 속도는 아주 빨랐다. 재빨리 안재석의 앞을 가로 막았다. “퍽______”하현은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며 압박을 가했다. 박세환의 얼굴에는 깔보는 빛이 스쳐 지나갔고 손등으로 하현을 폭격해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나았다. 한 번 손을 댄 순간 절망했다. 하현의 속도가 너무 빨라 박세환이 손을 대려고 하는 순간 하현은 이미 그의 얼굴을 때렸다. “풉______”박세환은 뺨을 맞고 피를 토하며 제자리를 맴돌았다. 이어 하현이 왼손으로 그의 두정골을 살짝 비틀자 ‘털컥’하는 소리가 났고, 이 중국 태권도 세 성인 중 한 사람은 눈을 감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졌다. 하현은 여세를 몰아 다시 뛰어오르기 시작했고, 안재석 앞에 떨어졌다. 안재석은 자기도 모르게 설유아의 이마에 화기를 갖다 대려고 했지만 동작이 다소 느렸다. 하현의 왼손이 이미 그의 목구멍을 조르고 있었다. “퍽!”하현은 내친김에 따귀를 한 대 후려갈겼다. “내 처제를 잡아가다니!”“퍽!”“나한테 무릎을 꿇으라고?”“퍽!”“네가 그럴 자격이 있어?”“퍽!”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너무 빠른 속도로 모든 것이 달라졌고, 많은 사람들은 재빨리 반응을 할 수 없었다. 많은 부하들은 이때 믿을 수가 없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들은 겨우 숨을 쉬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하현이 이렇게 정세를 전환시키리라고는 전혀
하현은 가타부타 뭐라 하지 않고 웃었다. “내가 보기에는 내가 죽일 수 없는 사람은 없고, 죽이고 싶지 않은 사람만 있어.”“내가 죽이고 싶은 사람은 부처가 와도 그를 구할 수 없어.” 바로 이때 별장 3층에서부터 소리가 들렸다. “젊은이, 너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어!”안재석은 온몸을 떨며 감격하며 말했다. “단수혁 선배, 드디어 오셨군요!”스물 일곱 여덟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나타났는데, 그는 체격이 매우 크고 양복에 구두를 신고 있었다. 거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안중에 두지 않는 것 같았다. 중국 태권도 세 성인의 우두머리, 단수혁!그는 또한 중국 태권도 1인자 박영진의 수제자이자, 안재석의 선배이기도 하다. 단수혁은 차갑게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 후배를 풀어주고 여자는 남겨둬. 너희 둘은 한 손 한 발만 자르고 죽이지는 않을 게.”하현은 실소를 터뜨렸다. “누구 맘대로? 네 사부가 여기 있는데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단수혁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너 네가 누구한테 말하고 있는 지 알아?”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구든 다 마찬가지야.”단수혁은 씩 웃었다. “마지막 기회를 줄게. 내 후배를 풀어줘. 그렇지 않으면 너는 보기 흉악하게 죽게 될 거야.”하현은 여전히 차분하게 안재석의 목을 조르며 담담하게 말했다. “나를 협박한 사람들은 적지 않은데 아쉽게도 그들은 결국 다 죽었어.”단수혁의 얼굴은 어두워졌고 이때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호통을 쳤다. “놔줘!”그의 움직임과 함께 더 없이 강력한 위압감이 하현이 있는 곳을 뒤덮었다. 바로 이때 하현은 왼손에 갑자기 힘을 주었다. “털컥______”안재석의 목이 뻣뻣하게 꺾였다. 그의 입가에는 검은 피가 떠올랐고 동시에 그의 몸이 흔들렸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마침내 모든 표정은 말할 수 없는 후회로 변했다. 안재석은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