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웨어 룸의 소파에 반승제가 앉아 있다. 그 앞 테이블 위에는 얼마나 마셨는지 모를 술병들이 어지럽게 놓여있다.서주혁은 그의 곁에서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는데 아마 반승우에 관한 말을 하는듯했다.반승우는 상류층에게 자신이 실험당하던 일부분 기억과 칩을 숨긴 위치를 잊었다며 전에 친했던 사람들과 많이 접촉해야 기억이 떠올 수 있다고 했다.그리고 그가 말하는 친했던 사람은 서주혁, 반승제, 성혜인이었다.그리고 모든 반씨가문의 사람들도 포함.서주혁은 초조하게 핸드폰을 내려놓았고 반승제는 곁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상사의 답답한 모습에 서주혁이 울분을 터뜨렸다.“정말 이대로 이렇게 쉽게 반승우가 집안에 들어오게 할 거야? 오늘 밤 반씨가문 사람들이 환영회를 연단다. 네가 여기에서 이렇게 허송세월만 하고 파티에 얼굴도 비치지 않으면 불화설이 돌 거야. 듣기론 사모님께서도 오고 계신다는데!”반승제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가 와인잔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서주혁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예전에 승우 형이 살아있다는 걸 몰랐을 때도 여기저기 소식을 알아보긴 했지만, 정말 돌아왔을 때는 분명히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녔어. 승우 형은 BH 그룹의 대표 자리를 되찾으려 하고 있고 특히 널 가문에서 배척하려고 해. 승우 형은 확실히 변했어. 겉모습은 변함없지만 확실히 너에 대한 공격성이 늘었어.”말을 마친 그는 옆에 놓여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인상을 찡그리며 말을 보탰다.“승제야, 전엔 둘 관계가 이렇게 나쁘지 않았던 걸로 기억했는데. 전에 승우 형이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을 때, 네 엄마는 네게 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강아지를 입양해 왔고, 그 사실을 모르던 승우 형이 오히려 나중에 알고는 다시 보냈잖아. 어렸을 때 네가 친구와 싸우고 와서 울면 널 위로해 주던 사람도 항상 네 형이었어. 어릴 때 네가 맞고 다니면 형이 와서 도와주기까지 했었는데.”그러나 어제 본 반승우의 분위기는 전과 많이 달랐다.반승제가 들고 있던 와
“다 오해예요. 일단 돌아가서 얘기해요.”반승제는 여전히 뒤돌아서 화난 듯 가라앉은 어투로 말했다.“싫어. 난 여기 있을 거야. 돌아가면 네 눈에 거슬릴 거 아니야.”성혜인이 아예 일어서더니 화난 척 언성을 높였다.“자꾸 이러면 저 진짜 갈 거예요.”반승제가 눈동자만 슬쩍 굴려 성혜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성혜인이 떠나려고 주섬주섬 물건을 챙기자 서둘러 일어났다.그러나 쫓아가지는 않고 마치 심문받는 범죄자처럼 엉거주춤 서 있었다.성혜인이 푹 한숨을 쉬었다.“손 잡아요. 데려다줄 테니까.”그제야 반승제가 제대로 성혜인의 눈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신발을 벗었다.“이거 신어.”술에 취했어도 성혜인이 신을 안 신고 있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었다.성혜인은 마음이 저렸다. 도대체 반승제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배현우가 그에게 그날 밤 일을 모두 알려준다면 자신은 반승제를 볼 낯이 없을 것 같았다.“안 신을 거예요. 승제 씨 신발은 내 발에 비해 너무 커요.”그가 다시 제 신발을 신고 살짝 상체를 숙였다.“그럼 업어줄까? 그날 소풍 갔을 때처럼.”두 사람이 보냈던 몇 번 되지 않는 오붓한 시간이었다.“승제 씨 취했잖아요.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안 돼. 네가 신을 안 신었잖아.”반승제가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내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는 여성 신발 한 켤레를 준비해 오라고 명령했다.그리곤 말 한마디를 덧붙였다.“혜인이 발 사이즈로.”성혜인이 의심 가득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왠지 취한 것 같지 않아 보였다.그런데 전화가 끊기자마자 손에 힘이 풀린 건지 전화를 떨구었다.성혜인이 휴대폰을 주우려고 허리를 굽혔다. 그런데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반승제가 끌어안더니 자기 다리 위에 앉히는 것이었다.그는 테이블 위의 티슈를 뽑아 발바닥을 정성스럽게 닦아주었다.성혜인은 왠지 겸연쩍은 마음이 들었지만 거부하지는 않았다.깨끗이 닦고 난 후 반승제는 쓰레기통에 티슈를 버렸다. 그리곤 성혜인의 허리를 껴안고 어깨에
심인우는 성혜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대표님을 많이 아끼시는듯하니 더 말 얹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결국 포레스트에는 성혜인이 홀로 들어갔고 심인우는 관리자를 시켜 흰둥이와 겨울이를 데려오게 했다.누군가 겨울이를 데려가려 하자 도우미 아주머니가 막으며 불안해했다.이에 성혜인이 급히 설명해 주었다.“아주머니, 제가 네이처 빌리지에서 앞으로 승제 씨랑 함께 살게 됐어요.”그 한마디에 유경아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설득하고 싶었지만 이건 두 사람 사이의 일이었다.유경아는 그저 겨울이를 보내기에 아쉬워 자꾸만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또 두 사람이 결혼한 지 3년 동안 소외당하던 성혜인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졌다.“사모님, 전 사모님을 거의 제 친손녀로 여기고 있어요. 전 사모님이 괜히 그 사람 곁에서 힘들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사모님이 행복하다면야 기꺼이 보내드릴 수밖에요.”성혜인이 아주머니를 품에 꼭 안았다.“아주머니, 전 절대 당하고 살지 않아요. 나중에 정말 그 사람한테 실망하고 함께 살기 싫어진다면 제 발로 나올 거예요.”유경아가 소매로 눈물을 쓱쓱 닦고 성혜인의 손등을 토닥였다.“네. 그럼 됐어요.”필요한 서류를 다 챙기고 성혜인이 거실 문을 나서려고 할 때 유경아가 문득 당부했다.“그쪽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으면 돌아와요. 반승제 씨가 잘해주지 않아도 그대로 뒤돌아 포레스트로 와요. 우린 계속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네. 그럴게요. 저도 자주 찾아뵐게요.”물건을 바리바리 들고 자동차로 향하던 그녀의 눈에 반승제가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물건을 들어주려 했다.“혜인아, 내가 할게.”S자 모양으로 엉거주춤하게 걷는 그의 모습에 성혜인이 풉 웃음을 터뜨렸다.“아뇨, 제가 할 수 있어요.”“내가 한다니까.”그가 딱 버티고 서서 가방을 가로채 가려고 했다.성혜인이 결국 성화를 못 이겨 가방을 건넸다. 넘어질 듯 몸을 못 가누던 그가 물건을 받더니
방에 돌아온 성혜인은 반승제가 아직도 신발을 신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분명히 슬리퍼가 발 옆에 떡하니 있었음에도 그는 신지 못했고 결국 거꾸로 신은 채 욕실로 가려 했다.성혜인은 그의 손목 하나에 수갑을 채우고, 다른 한쪽은 침대에 걸어놓았다.“푹 쉬고 있어요. 얼른 샤워하고 올게요.”다시 침대에 앉은 반승제는 제 손목에 채워진 것을 보더니 눈을 반짝였다.“혜인아, 나 이거 좋아.”성혜인:“...”응큼한것.성혜인은 속으로 욕하고는 바로 옷가지들을 챙겨 샤워하러 갔다.이제 반승제가 마구 돌아다니다 다칠 걱정은 안 해도 된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성혜인은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렸다.반승제는 침대 머리맡에 앉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성혜인을 주시하고 있다.머리를 다 말린 성혜인이 가까이 다가와 수갑을 풀어주었다.“찰칵.”수갑이 풀리는 순간, 그가 몸을 돌려 성혜인을 덮쳤다. 그리곤 이성을 잃은 듯 다급히 잠옷의 단추를 풀려고 했다.하지만 너무 취했던 탓인지 단추가 자꾸 손에 잡히지 않았다.성혜인이 그의 손을 잡고 타일렀다.“저 졸린데... 자면 안 돼요?”성혜인의 말 한마디에 반승제가 순순히 물러나더니 성혜인을 품에 안고 1분이 안 되어 잠에 들었다.요즘 통 잠에 못 든 그는 다크써클이 진했다.성혜인은 잠에 들지 못하고 휴대폰을 꺼내 인터넷 여론을 살폈다. 회사에 대한 영향이 확실히 적어졌음을 확인해서야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귓가에 반승제의 맑은 숨결이 느껴졌고 머릿속엔 서주혁의 말이 떠올랐다.반승제가 원하는 건 혜인 씨의 태도 뿐이에요.혜인 씨가 달래주기만 한다면 그게 거짓이라도 믿어줄 거예요.성혜인이 몸을 기울여 반승제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았다.속눈썹은 길고 짙었으며 잠든 그의 모습은 말 잘 듣는 어린아이같이 예뻤다.그 얼굴을 감상하다 보니 성혜인은 마음이 나른해졌다....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성혜인은 우선 노트북을 켜서 메일들을 처리한 뒤 주방의 셰프에게 위장을 녹일만한 수프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이
성혜인의 곁으로 다가선 반승제는 화판 위의 흰둥이 그림을 발견했다. 그림 속의 흰둥이는 위풍당당한 자세로 의자에 엎드려 있었다.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지만 그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한쪽에 앉았다.“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길 왔대?”성혜인의 붓을 든 손이 멈칫했다. 하룻밤 사이에 태도가 변한 그를 보니 성혜인은 그저 웃기기만 했다.성혜인은 아무 대답 없이 그림을 이어서 그렸다.그러자 반승제는 담배 한 대를 꺼내 라이터 불을 붙이려 했다.이전에 성혜인 앞에서 담배를 꺼내지도 피우지도 않던 그는 최근 들어 점점 담배를 피우는 횟수가 많아지고 있었다.오직 니코틴만이 그의 슬픈 마음을 마비시킬 수 있는 것 같았다.“집 안에서 담배 피우지 마세요.”반승제가 성혜인을 힐끗 바라보더니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왜? 심기가 불편해? 아, 인정. 네가 좋아하는 사람은 비흡연자니까.”성혜인이 붓을 들고 있다가 또 멈칫했다. 그제야 성혜인은 그가 아마 어제 필름이 끊겼을 거로 추측했다. 아마 어젯밤 동거하자던 말도 다 잊은 것 같았다.말은 밉살스럽게 했어도 반승제는 끝내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았다.그는 담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옆에 있는 책을 들었다.그러나 자신이 책을 거꾸로 들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성 대표님은 오늘 안 바쁜가 보지? 아침 일찍부터 여기 온 걸 보니, 설마 BH 회사 대표 자리 내놓으라고 하러 온 건 아니겠지?”반씨가문의 다른 사람들처럼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반승우에게 넘기도록.짐짓 냉랭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성혜인이 한참 응시하더니 붓을 내려놓았다.“어제 누가 스카이웨이에서 취해서는 자꾸 같이 살자고 조르길래, 그러자고 했어요.”반승제 손에 들려있던 책이 땅바닥을 향해 쿵 내리찧었다.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성혜인을 쳐다보았다.성혜인은 이미 그를 일으켜 세워 자기 그림을 보게 하고 있었다.“똑같죠. 진짜 강아지 같지 않게 위풍당당하게 앉아있어요.”“누가 흰둥이가 강아지래?”“그럼요?”“늑대야.”두 사람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는 심인우는 두 사람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성혜인은 다른 사람 앞에서는 말수도 없고 냉랭해 보이지만 대표님과 함께 있을 때라야만 여타 사람들처럼 기쁨과 슬픔이 얼굴에 드러나는 평범한 모습이 된다.대표님 역시도 성혜인과 함께 있을 때만 설렘을 느낄 줄 아는 사람처럼 이렇게 뽀뽀 하나에 넋을 잃게 된다.반승제는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서 다리가 뻣뻣해질 때까지 서 있다가 한참 후에야 성혜인을 향해 걸어갔다.성혜인은 흰둥이를 데리고 앞마당을 몇 바퀴나 돌았다. 흰둥이도 자신도 기진맥진 해서야 수영장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숨을 돌리기 시작했다.수영장은 큰 것 하나, 작은 것 하나로 총 두 개였는데 작은 수영장은 지름 3미터의 크기로 동물 전용 목욕탕이었고 안의 물은 하루에 한 번씩 갈았다.성혜인은 흰둥이를 이 작은 수영장에 밀어 넣고 고용인이 준비해 둔 샴푸로 목욕시키기 시작했다.정장을 입은 반승제가 곁으로 슬쩍 오더니 언질 줬다.“눈에 거품 안 들어가게 조심해.”아니나 다를까 성혜인이 급히 눈을 감았다. 눈에 거품이 튀는 바람에 아려서 눈물까지 찔끔 났다.“승제 씨, 생수 한 병만 빨리요!”깜짝 놀란 반승제는 재빨리 거실로 들어가 생수를 들고나왔다. 그리고 자기 바지가 반쯤 물에 젖은 줄도 모르고 손으로 성혜인의 얼굴을 받쳐주며 거품을 씻었다.눈 주위의 거품을 다 씻어낸 뒤에도 눈은 충혈된 채로였고 눈물은 계속 흘러내렸다.반승제는 고용인에게서 손수건을 받아 성혜인의 얼굴을 닦아주었다.“목욕 직접 해주지 마. 다른 사람 시키면 되는데.”성혜인은 여전히 눈물을 흘렸다. 눈가는 이미 하도 닦아 불그스름해졌다.“괜찮아요. 재밌어서 그래요.”반승제는 생수와 손수건을 곁에 있는 고용인에게 맡기고 그대로 수영장으로 내려갔다.“옆에 쉬고 있어. 내가 씻길게.”성혜인이 잔디에 올라와 반승제를 바라보았다. 그는 정장을 입은 채로였는데 바지가 다 젖은 줄도 모르고 열심히 흰둥이의 몸에 거품을 내고 있었다.흰둥이가 물을 털
한편 북아메리카에서.시간은 저녁 8시다.설의종은 검은 정장을 입은 채 지하 격투장 룸에 앉아 있다.그 아래로는 광란의 군중들, 하늘땅을 뒤흔드는 함성, 그리고 공중에 흩뿌려진 지폐들이 휘날렸다.아무도 관할하지 않는 땅의 지하 격투장. 이곳에서 하루에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북아메리카의 수많은 명문가가 이곳을 이용해 보려 했지만 이 사업에 성공한 사람은 반승제 뿐이었다.지하 격투장은 총 일곱 층으로, 매 층은 3천 평이 되었고 매 층의 놀이 방법은 다 달랐다.수많은 엘리트가 이곳으로 몰려들어 인간성은 버린 채 활개를 치고 다녔다.설의종은 두 손을 깍지 끼고 조용히 아래층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보고 있었다.룸 문이 열리더니 장미가 검정 나시 원피스를 입고 요염한 모습으로 걸어들어왔다.“회장님, 존함은 오래전부터 들어왔는데 이곳까지 걸음 하실 줄 몰랐습니다.”장미는 직원을 시켜 가장 좋은 차를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그녀는 예쁘게 웃어 보이며 설의종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설의종은 가져온 차를 마시지 않았고 계속하여 아래층에서의 격투 과정을 보고 있었다.이런 큰 인물이 갑작스럽게 방문하는 일은 흔치 않았기에 장미는 정신을 꽉 잡고 응대했다.하지만 10분이 지나도 설의종은 줄곧 아무 말 없이 격투를 구경했다.장미도 흥분된 마음을 점차 가라앉히고 고상한 듯 천천히 차를 마셨다.아래층에서 승부가 갈린 후에야 설의종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감명받은 듯 엄지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만졌다.“제가 오늘 온 목적은, 거래하기 위해섭니다.”장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설씨 가문에 북아메리카에서 최고 명문가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전 세대의 가주로서 설의종은 다른 사람과 거래라는 것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회장님, 혹시 제가 잘못 들은 건 아닌지요.”설씨 가문과 지하 격투장의 관계는 그리 좋지 못했다. 전에 설의종은 연회에서 God는 미친개라는 발언까지 했었다.반승제가 지하 격투장에서
카드를 챙긴 장미가 그의 씀씀이에 놀라했다.설씨 가문이 돈이 많은 거야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4조라는 금액의 돈을 금방 내놓을 수 있다니.보통 부자집들이 온정이 없는 것에 비하면 설인종은 이 딸을 정말 아낀다는 걸 알수 있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것이겠지.그가 몸을 일으켜 세우며 옷을 정리했다.“반승제가 오면 알려줘. 지금 북미쪽 상황이 약간 복잡해서 일단 거기부터 정리해야 해서 진짜 시간이 없다고. 4조는 그냥 선금이야, 내 딸이 살아있기만 한다면 우리 가문을 줄 수도 있다고 전해.”장미가 웃으며 카드를 가방에 넣었다.“대표님한테 두 아들이 있지 않으셨어요? 설씨 가문을 주면 아드님들은 어떡해요.”설인종이 미간을 찌푸렸다.아들이 어디 딸만큼 귀할까.게다가 지금 딸이 어디서 어떤 일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설씨 가문 하나 주는 게 뭐 어때서.그는 그저 딸이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그저 살아있기를.설인종이 떠난 후, 장미가 카드를 보더니 반승제에게 연락을 했다.*제원.설인아는 침대에 누워서 시트를 꽉 잡고 있었다.그녀는 엔디를 시켜 성혜인을 처리하려 했지만 큰 오빠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이번에 깨어 난 뒤 그녀는 반승제와 성혜인이 동거를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젠장.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 참을 수 없었다.반승제는 그녀의 것이었다. 설인아는 성혜인 그 년을 어떻게든 없애버리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큰 오빠가 말렸음에도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그녀는 엔디를 불러 성혜인을 처리하라고 말했다.하지만 엔디가 반응이 없자 그녀는 다급해졌다.“아가씨, 제가 말을 들으면... 손등에 키스하도록 허락해 주실 수 있나요?”그 말에 설인아가 굳었다. 그녀는 몇년 전 엔디가 설씨 가문에 와서 그녀는 보호하라는 명을 받았을 때 자신의 손등에 키스를 한 적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그녀가 짜증스럽게 손을 내밀었다.“큰 오빠한테 들키지마. 네 실력을 믿을게.”엔디가 눈을 내리깔며 순종적으로 고개를 끄덕였
공지민은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저 연승혁한테 기대어 있기만 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누군가가 그녀를 들어 올려 따뜻한 침대에 눕혔다.이곳은 작은 섬으로 보였고 원주민들도 꽤 많아서 야시장은 매우 북적거렸다.공지민은 안겨서 이동하는 동안 많은 노점상들의 외침 소리를 들었다.또 30분이 지났을 때 음식의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스쳤다.연승혁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왜 이렇게 많이 자는 거야? 너 하루 종일 잠만 잤어. 얼른 일어나서 뭐라도 좀 먹어. 이따가 야시장 구경하러 가보자.”“사람 잡으러 왔다면서 야시장을 구경할 기분은 나요?”“그 사람이 지금 이 원주민들 사이에 있어. 멀리 도망가지 못할 거야. 이곳의 출입구는 이미 부하들이 지키고 있어서 그 사람이 함정에 빠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돼.”공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기울여 그의 뺨에 뽀뽀했다.“역시 오빠는 대단해요.” 연승혁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듯했다.“네 약혼자가 될 수 있는 걸 봐서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그러고 보니 네가 보는 눈이 있네.”“그럼요. 내가 안목이 높긴 하죠.” 그녀의 말을 들은 연승혁은 기분이 더 좋아졌고 그녀를 품에 껴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야시장에서 파는 것들인데 먹고 싶은 게 있나 봐봐.”연승혁은 많은 음식을 사 왔고 그녀는 확실히 배가 고파서 그의 품에 안겨 마음껏 먹기 시작했다.연승혁은 여자가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전부다 네 거니까 천천히 먹어.” “오빠가 뺏어 먹을까 봐 그러죠.”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눈이 깊어졌다.공지민은 눈치채지 못한 듯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곧장 침대에서 일어났다.“야시장 구경하러 간다면서요? 얼른 가요. 나도 너무 구경하고 싶고 이곳의 풍습이 궁금해요. 여기 국내는 아니겠죠?”연승혁은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이전에는 연승혁의 주변에 여자가 별로 없었고 오직 원아정 한 명뿐이었다. 원아정과는 단순히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만났던 거라서 그녀와의 경험은 그저 상쾌함만 느껴졌고 내면의 만족감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공지민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달랐다.연승혁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피부를 만지기 시작했고 무기력하게 기대어 있는 공지민이 마치 자신을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연승혁은 힘겹게 시선을 돌렸다.그는 공지민이 다 씻은 후 옆에 있던 타월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침대에 누운 공지민은 곧 잠이 들 것 같았지만 연승혁은 욕구를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무해한 모습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고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이 손끝으로 그녀의 허리에서 가슴까지 쓰다듬을 때 공지민은 가끔 눈을 떠 그를 쳐다보았고 그녀와 눈이 마주친 연승혁은 더욱 불타올랐지만 그녀가 현재 아픈 상태라는 걸 잊지 않았다.연승혁은 몸을 숙여 그녀의 목에 흔적을 남겼고 공지민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낸 후 그한테 물었다.“오빠, 우리 정말 약혼한 사이에요?”그녀의 질문에 연승혁은 순간 몸이 굳었다.공지민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냥 우리 둘 사이가 너무 순수해 보여서요.”연승혁이 그녀의 목을 힘껏 깨물자 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소리 질렀다.연승혁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직도 순수해 보여? 오늘 밤, 네 몸 전체에 흔적을 남겨줄게.”공지민의 볼이 빨개졌고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연승혁은 그냥 말해본 거였는데 그녀의 반응을 보니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다.그가 그녀의 몸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자 공지민은 허리를 굽힌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연승혁이 그녀의 몸에 키스하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비도덕적인 생각들이 떠올랐고 자신이 지금의 행위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면 벌을 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흔적을 하나하나 남길 적마다 그의 이성은 사라졌고 오늘 밤만은 그녀
공지민의 시선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곳은 온시환이 차를 세워둔 위치였다.오후부터 그녀는 강한 시선이 느껴졌고 신기하게도 그녀는 그 시선의 주인이 온시환이라는 걸 알았다. 온시환은 열 몇 시간 동안 은밀한 곳에 숨은 채 그녀의 곁을 지켰다.공지민은 연승혁를 향해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연승혁은 그녀를 안아 들고 곧장 차로 돌아간 후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그녀의 몸에 덮어줬다.별장으로 돌아온 후 그는 공지민을 안고 안방으로 데려갔다.공지민은 악몽을 꾸는 듯 이마에 땀이 맺힌 채 계속 뭔가를 중얼거렸다.“가지 마요.”“날 괴롭히지 마요.”그런 공지민의 얼굴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마음이 너무 아팠다.그는 옆에 있던 휴지를 뽑아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었다.중간에 공지민이 눈을 떴지만 그가 돌아온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다시 눈을 감았다.도우미가 몸보신하는 죽을 들고 오면서 물었다.“도련님, 제가 지민 씨 먹여드릴까요?”연승혁은 손을 들어 죽을 건네받으며 말했다.“제가 할게요.”도우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연승혁은 공지민을 일으켜 세우고 흔들어 깨웠다.“지민아, 얼른 일어나서 이거 좀 먹어. 너 지금 열도 나고 저녁에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공지민은 어렴풋이 눈을 뜨고 웃으면서 말했다.“오빠 돌아왔네요.”연승혁은 고개를 기울여 그녀한테 입을 맞추며 말했다.“네가 그렇게 슬프게 우는데 내가 어떻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겠어?”공지민은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말했다.“역시 오빠밖에 없어요. 근데 또다시 나갈 건가요?”연승혁은 늦어도 날이 밝은 후 일 보러 다시 나가봐야 했다. 하지만 공지민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고 혹시나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었다.그렇다고 이상우를 불러 공지민의 기억을 되돌리고 온시환 곁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걸 생각만 해도 연승혁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 없이 그녀한테 죽을 먹여준 다음 옆에 있던 휴지로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염정아는
염정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공지민은 그녀의 표정을 통해 그녀가 그다지 나오고 싶어 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면회가 끝나갈 무렵 염정아는 갑자기 공지민한테 다가가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지민 언니, 나는 내가 그 사람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았어.”공지민은 온몸이 굳어버렸고 눈이 따가워졌다.염정아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고 경찰을 따라 다시 들어갔다.홀로 남은 공지민은 몸과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마치 수만 마리의 개미가 그녀의 심장을 갉아 먹는듯한 느낌이었다. 경찰서 문 앞까지 나온 그녀는 속이 울렁거려서 토하고 싶었지만 나오는 건 위액뿐이었다.그녀는 심호흡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복수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 망설이기 시작했다.마침 연승혁의 전화가 걸려 와 그녀의 위치를 물었다.공지민의 목소리는 여전히 쉬어있었고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연승혁은 드디어 도망간 사람에 관한 단서를 얻게 되어 그 사람을 잡으러 가는 중이었는데 공지민이 걱정되고 마음에 걸려 전화를 한 거였다.“나 지금 경찰서에요. 내 친구가 사람을 죽였어요. 오빠, 나 걔랑 있었던 일이 기억났어요. 고등학교 때 우린 둘 다 괴롭힘을 당했었어요. 근데 우리를 괴롭힌 사람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나요.”연승혁은 그녀들을 괴롭힌 사람이 이미 죽은 원아정이란 걸 알고 있었다.그가 목을 가다듬고 그녀를 위로하려고 입을 열기도 전에 공지민이 울기 시작했다.“오빠, 보고 싶어요.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거예요? 너무 보고 싶어요. 나 지금 심장이 너무 아파서 숨이 멎을 것 같아요.”그녀의 울음소리를 듣자 연승혁의 심장도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는 이미 헬리콥터에 올라탔고 원래는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러 가야 했지만 그녀가 걱정되어 조종사한테 목적지를 바꾸라고 말했다.“우린 먼저 제국으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 추적하라고 해.”조종사는 조금 놀랐다. 보스가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고 이제 겨우 단서를 얻었는데 제국으로 돌아간다
경찰서에서 나온 온시환은 마침내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사실 그는 공지민을 다시 찾아가 그녀한테 복수를 그만두라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복수에 집착했다가 염정아와 염정아 동생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하지만 공지민이 건드린 건 연씨 가문이기에 그녀의 미래 운명은 염정아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었다.온시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너무 오랫동안 경찰서 앞에 서 있다 보니 허벅지가 마비될 정도였다.과거의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 인간성의 복잡성과 인정의 차고 따뜻함을 깊이 느낀 적이 없었다. 염정아의 일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꼭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고 당사자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다만 온시환은 이제 정말 지쳤고 그는 그저 공지민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지민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고 오랫동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공지민도 TV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염정아의 동생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웠고 염정아의 동생이 왜 제국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서둘러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전했다.연승혁은 그녀가 나가면 온시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됐고 그로 인해 지금 진행 중인 게임도 끝나버려서 그한테 불리할까 봐 단박에 거절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 공지민은 울먹이면서 또다시 연승혁한테 전화를 걸었다.“고등학교 때 친구가 방금 뉴스에 나왔어요.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흑흑, 걔가 사람을 죽였대요. 오빠, 걔 만나러 가야 돼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염정아의 동생이 죽은 다음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걸 봐서 염정아 동생의 죽음이 원아정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고 염정아가 원아정한테 복수하려고 그녀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공지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연승혁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바로 동의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오늘의 뉴스를 조사해
염정아는 주삿바늘을 뽑아버리고 병실 문을 나섰다. 밖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온시환의 사람들이었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왔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보호 받을 필요가 없었다.경호원이 그녀에게 물었다.“염정아 씨, 어디 나가시려고요?”“여기가 너무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내려가려고요.”경호원들은 그녀를 보호하러 온 것이지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하지만 염정아는 진짜 바람 쐬러 나간 게 아니라 병원에서 나온 후 바로 원아정을 찾아 나섰다. 동생이 죽은 것에 대한 증오와 원아정을 찾아내서 무조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복수의 불꽃이 가슴속에 계속해서 타올랐다.염정아는 30분 동안 거리를 헤매다가 하늘나라에 있는 동생이 도운 건지 정말 원아정을 찾아냈다.오늘의 원아정은 더 이상 부잣집 딸의 옷차림이 아닌 수수한 옷차림에 머리는 부스스하고 지저분한 모습이었지만 염정아는 그녀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는 백화점 밖에서 오고 가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원아정을 못 찾을 만했다. 자신의 체면을 그렇게 중히 여기던 원아정이 거지의 모습으로 가장 번화한 상권에 나타날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염정아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다가 칼을 사 들고 원아정을 향해 걸어갔다.원아정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감지 못했고 마음속으로는 연승혁의 부하들이 평생 자신을 찾지 못할 거라고 기뻐하고 있었다.하지만 곧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외쳤다.“원아정.”아직 반응하지 못한 원아정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자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향해 칼을 꽂았다.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주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염정아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칼을 뽑았다가 분노에 휩싸여 다시 원아정의 몸을 향해 찔렀다.원아정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언제 발각되었고 또 왜 이토록 처참하게 죽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고 당시 CCTV를 확인한 결과, 남성 피해자가 소형차에 치인 뒤 뒤따라오던 트럭이 남성을 깔아뭉갰고 남성이 트럭 차대에 끼어서 몇 킬로미터를 끌려가다가 트럭 뒤를 따르던 차량이 핏자국을 발견하고 계속해서 경적을 울려 트럭 운전기사를 멈추게 했다.트럭 운전기사는 너무 놀라서 머리가 멍해졌고 계속 자신이 사람을 쳤다고 여겼는데 CCTV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요 책임은 아니었지만 그도 연대 책임을 져야 했다.곧바로 누군가가 사망자의 가족한테 연락하려고 했지만 사망자의 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의 가족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경찰도 난감한 상황에 빠져 사망자의 교통사고 보도를 TV로 방송하고 사망자가 입고 있던 옷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같은 시각 염정아는 계속해서 동생을 찾고 있었고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는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다.두 시간 후 온시환의 부하가 마침내 소식을 전해왔는데 바로 차에 치여 사망한 남자의 가족을 찾는 뉴스 보도였다.익숙한 옷을 본 염정아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옷은 동생의 옷이었고 그녀가 사준 거였다.“어디에 있어요? 동생 만나러 가야 해요! 꼭 가야 해요!”그녀는 심한 충격에 기절할뻔했지만, 동생의 곁으로 갈 때까지 이 악물고 버텼다.시신은 병원 영안실로 옮겼는데 머리 빼고는 온전한 데 하나도 없었고 염정아는 시신을 보자마자 기절해 버렸다.온시환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급히 응급실로 데려갔다.염정아는 아주 긴 꿈을 꿨다. 그녀가 고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은 그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뿐이었다.그녀가 슬픔에 잠겨 울고 있을 때 바보 동생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서 막대 사탕을 건네줬다.막대 사탕은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었고 그때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불렀다.“누나.”염정아는 동생을 미워했고 항상 동생의 존재가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생각
사실 원아정은 염정아를 잊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꺼내자 그녀에 대한 기억이 조금 떠오르긴 했다.공지민이 나타나기 전에 확실히 다른 사람을 괴롭힌 적 있긴 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염정아는 심호흡하고 말했다.“나랑 지민 언니는 동병상련의 관계일뿐이고 내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 지민 언니가 도와주고 돈도 줬어. 내가 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지민 언니가 날 데려온 거고 날 숨기려고 한 게 아니야. 난 단지 집에서 수공업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대학도 못 가고 하니 학력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돈을 벌려면 할 수 있는 게 수공업뿐이었으니까.”원아정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염정아가 또 무슨 쓸모가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염정아의 집안은 너무 평범했고 심지어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셔서 그녀의 곁에는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다섯 명의 자녀뿐이었다.원아정의 눈에는 혐오감이 감돌았고 특히 길가에 불쌍하게 웅크리고 있는 염정아의동생을 봤을 때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하필이면 이때 염정아의 동생이 일어서면서 원아정한테 물었다.“저 언제 집에 갈 수 있죠?”그는 더 이상 제국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누나를 화나게 했으니 혹시나 누나가 평생 그를 안볼까 봐서 걱정이었다.동생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억울함이 가득했고 빨리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다.원아정은 자신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고생했는데 결국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자 염정아의 동생을 순순히 보내드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는 차량이 왔다 갔다 하는 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안으로 들어가서 걸어 다니다 보면 누군가 널 집으로 데려다줄지도 몰라. 저거 봐, 차가 저렇게 많은데 너희 집 방향으로 가는 차가 당연히 있지 않겠어? 널 집까지 데려다줄 사람도 무조건 저기 있을 거야.”염정아 동생의 눈에는 순간 희망의 빛이 반짝였고 그녀의 말을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