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바르고 나니 한껏 좋아 보였다.장하리는 사진을 찍고 포토샵 수정도 살짝 더 한 뒤 송아현의 계정에 올라 업데이트했다.[심려 끼쳐서 죄송합니다. 저 이제 금방 깨어났습니다. 회사 가족들이 옆에서 지켜주고 그 덕분에 더 빨리 깨어난 것 같습니다. 저 지금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팬분들도 걱정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일은 회사 측의 잘못이 아니고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부디 저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동료분들을 저격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SNS에 올리자마자 이 글은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올라갔고 S.M을 저격하던 열기도 서서히 낮아졌다.회사 문 앞에서 지키고 있던 팬들도 이 글을 확인하자 천천히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이성을 잃어 창문을 깨뜨린 팬에 대해서는 경찰이 나서서 처리할 것이다.성혜인은 몸을 일으켜 창문 앞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아직도 많은 팬들이 몰려 있지만 나갈 수 없는 정도는 아니다.장하리도 상황을 봐서 일깨워 주기 시작했다.“사장님, 저녁 7시입니다. 이제 슬슬 파티에 참석하러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성혜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송아현에게 푹 쉬고 있으라며 당부하고 바로 서둘러 떠났다.한편, 같은 시각 네이처 빌리지에는 조용히 칼바람이 불고 있다.분위기는 한껏 다운되어 그 누구도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지경이다.저녁 6시부터 하인들은 벽에 걸린 시계를 거듭 보았지만 성혜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지금 이곳에는 최고로 잘 나가는 스타일리스트 팀까지 거실에서 성혜인을 기다리고 있다.반승제는 이미 모든 준비를 끝마쳤고 성혜인을 위해 드레스까지 준비해 놓았다.비록 며칠 동안 건성으로 자기를 대하는 성혜인의 모습에 화가 났지만 함께 참석해야 하는 파티인 만큼 더 이상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그러나 6시 30분이 되었을 때 스타일리스트 팀이 한 스태프가 다소 걱정하는 마음에 입을 열었었다.“반 대표님, 저녁 7시에 파티
설인아는 실시간 검색어를 확인한 뒤 속으로 피식 웃었다.‘성혜인 아직 송아현 쪽에 있겠지? 여기에 도착하면 틀림없이 8시가 넘을 거야. 내가 어떤 재밌는 연극을 준비했는지 잘 보라고.’그녀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너무 서두르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설인아는 이 말을 끝으로 다른 명문가 여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모두들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잘생겼다는 둥, 친오빠가 잘생겼다는 둥 아부를 둘러댔다.설인아는 술잔을 든 채 그야말로 여유 넘치는 자태로 이번 저녁 연회를 즐겼다.그 시각 반승제는 구석에 서 있었다. 앞으로 다가와 인사를 하려던 사람들은 그의 몸에서 풍기는 냉기를 감지하고 순간적으로 몸을 사렸다. 그 기운은 실내의 에어컨보다도 훨씬 차가웠다.서주혁은 오늘 밤의 주인공으로서 가장 바삐 돌았다. 비록 평소에는 말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연회에서는 적어도 손님들과 인사를 주고받아야 했다.이런 상황이 퍽 짜증스러웠지만, 서주혁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다.그렇게 반승제를 보고 나서야 서주혁은 잠시 숨을 돌리고 서둘러 그를 향해 걸어갔다.서주혁은 어깨로 반승제를 툭 치며 말했다.“왜, 혜인 씨가 안 보여?”두 사람의 관계가 이미 친구들 사이에서 공공연해졌으니 이치대로라면 오늘 밤 같은 자리에 반승제는 여자친구를 데려와야 했다. 이것은 모두에게 성혜인을 알리는 기회이기도 하니 말이다.반승제는 오늘 저녁 성혜인이 왜 없느냐는 질문을 받을까 다른 사람들과 그다지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그의 기분이 저기압인 것을 알아차린 서주혁은 조용히 위층을 가리켰다.“위에 테라스 있으니까 거기 가서 마셔. 아무도 너를 방해하지 않을 거야.”그러자 반승제가 서주혁의 어깨를 두드렸다.“고마워.”이윽고 그는 발걸음을 옮겨 테라스를 향해 걸어 올라갔다....30분 전, 성혜인은 네이처 빌리지에 도착했고 그녀가 이곳에 왔을 때는 반승제가 떠난 지 5분쯤 지난 뒤였다.스타일리스트 팀은 그녀를 바로 알아보았다.“성혜인 씨 맞으시죠? 저희는
장영희와 전태경은 자신들이 이렇게 고급스러운 장소에 올 수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남자는 두 사람에게 여기서 아무렇게나 한 사람을 잡아도 몸값이 적어도 모두 2조부터 시작한다고 말했다.조 단위라니... 그들은 평생 이런 단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큰 별장, 넓은 수영장, 100m 떨어진 곳에는 끝없이 펼쳐진 골프장이 있다.그들은 시골 사람들이라 골프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다만 그 산이 마을의 산보다 훨씬 아름답고 보기 좋게 느껴질 뿐.남자는 그들에게 주방일을 도우라 했다. 연회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젊고 예쁜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외모와 나이로는 연회장에 들어갈 수 없으니 말이다.장영희와 전태경은 남자의 요구를 잊지 않았다.성혜인은 오늘 이곳 연회에 참석할 것이고 그들의 임무는 바로 성혜인을 완전히 창피하게 만드는 것이다.‘그러게 누가 우리 모른 척하래? 소란을 피워야만 혜인이가 두려워할 거야. 그때 가서 몇백억 정도 받아내고 평생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거지! 얼마나 좋아?’장영희의 눈빛은 음흉함으로 들끓었다. 평생 이렇게 많은 돈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녀의 눈에 성혜인은 걸어 다니는 ATM기와 같았다.‘절대 이 ATM기를 놓칠 수는 없지!’“성혜인 거기 멈춰! 너는 엄마 아빠 봤으면서 왜 인사도 안 해?”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렸다.‘누군가 여기로 보내준 모양이군.’휙 몸을 돌렸으나 성혜인은 친자확인서가 마음에 걸려 그 어떤 심한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혈연관계를 중히 여기는 유교 사회에서 이것은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장영희는 몇 걸음 성큼성큼 앞으로 나갔다. 그녀는 이곳 하인들의 단체복을 입고 있었고 전태경 역시 경비원 복장을 하고 있었다. 이런 고급스러운 장소에 두 사람의 옷차림은 매우 튀어 보였다.곧이어 장영희는 성혜인을 가리키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지난번에 네가 회사에서 내쫓은 일, 우리 아직 따지지도 않았다? 오늘 참 예쁘게 입고 참석한 너와 달리 어젯밤
서수연은 조금 의기양양해졌다. 만약 성혜인이 이미 반승제에게 버림받았다면, 서수연의 눈에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다.이제 막 일어서려는 회사이니, 서씨 가문에게 성혜인을 죽이는 것은 개미 한 마리를 죽이는 것만큼 간단한 일이다.‘복수할 기회가 찾아온 거야.’그러나 장영희는 성혜인에 대한 서수연의 적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녀가 자신을 도우러 온 것이라 여겼다.“다들 말씀 좀 해보세요. 이 사람 이제 한 회사의 사장이에요. 저는 단지 돈 조금 달라고 부탁한 것뿐인데... 이게 그리 지나친 건가요? 사장까지 올랐으면 돈은 가장 값어치 없는 물건이고 쉽게 몇억은 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어제 그냥 600만 원만 주는 거 있죠? 내가 그렇게 고생을 참고 견디며 자기를 낳아줬는데... 600만 원이 뭡니까 대체?!”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성혜인에게 쏠렸다. 이유를 막론하고 이런 자리에서 구설수에 오르니 창피한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오늘 밤에는 많은 협력사가 찾아왔으니 말이다.하지만 성혜인은 외부인을 대하는 것처럼 시종일관 담담하게 서 있었다.서수연이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렇게 고상한 척하는 성혜인의 태도였다.분명히 진흙탕 같은 신분이라 신경 쓸 가치도 없었지만, 서수연은 그런 성혜인에게 큰 손해를 본 전적이 있었다.지금 생각하면 창피하기 짝이 없다.“성혜인, 이 사람이 네 친부모이니 그럼 네가 끌고 나가. 이게 무슨 자리인지 알고 그러는 거야? 결코 너희 집안 회의나 하는 장소가 아니라고.”서수연은 두 손으로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이전에는 성혜인과 마주치기만 해도 두려움에 벌벌 떨었지만, 그동안 회복도 많이 한 덕에 이제 무섭지 않아졌다.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리고 주위를 훑어보았다.‘모두들 재밌는 연극을 보는 듯한 자태네.’이유가 있음에도 이런 상황에서 성혜인은 똑바로 말하기 어려웠다. 하물며 장영희가 여전히 떼를 쓰며 바닥에 누워있으니 말이다.“내가 무슨 죄를 지어 이런 딸을 낳았는지! 여러분, 우리 부부를 위해 사과를 얻어
반승제의 합류로 무거워진 현장 분위기는 성혜인으로 하여금 숨조차 쉬이 쉴 수 없게 만들었다.그녀는 신 같은 존재가 아니다. 자신이 임지연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성혜인은 이미 견디기 힘들었다.절망감에 허덕이던 수많은 밤, 그녀는 임지연이 자신에게 잘해줬던 것을 곱씹어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그래서 성혜인은 자신의 가족을 찾아가려 하지 않았고 자신이 실제로 버려진 아이일까 봐 두렵기도 했다.집이라는 글자는 가끔 원수가 찌른 칼보다 더 고통스럽게 사람을 해한다.원래도 마음속 깊은 곳에 자기 혐오감이 있던 성혜인은 친부모가 뜻밖에도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더욱이 자신의 몸에 흐르는 피를 원망하게 되었다.반승제의 등장으로 그녀의 마음속에는 한 줄기 용기가 솟아올랐다.성혜인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제가 꼭 그래야 하나요? 당신들은 20억 원을 요구하는 거 아닌가요? 좋습니다. 20억 원 드릴 테니 대신 혈연관계를 철저히 끊는 거로 하죠. 그리고 다시는 저 찾아오지 마세요.”오늘 저녁 연회에 오기 전까지 장영희와 전태경은 20억이 세상에서 가장 큰 숫자라고 생각했다.그러나 남자에게서부터 이곳 별장의 가격과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정체를 알게 된 후로 그들은 점점 욕심을 부리게 되었다.“2000억은 줘야지! 20억이 가당키나 하겠어?!”전태경의 말을 듣고 “연극”을 보고 있던 몇몇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하루도 키워준 적 없으면서 만나자마자 2000억을 요구한다고? 성혜인이 정말 친부모를 나 몰라라 하는 줄 알았더니만 사실 한 쌍의 흡혈귀가 따로 없는 부모를 마주해서 그런 거였군.’비웃는 소리에 전태경은 무기력해졌지만 결국 다시 탐욕에 사로잡혔다.“2000억 원이면 앞으로 다시는 너를 찾아오지 않을게. 그리고 네 오빠도 감옥에서 빼줘야 해.”그 말이 참 우습게 느껴져 성혜인의 안색은 완전히 차가워졌다.“아니요. 가서 소송 거세요. 법원에서 판결한 만큼 제가 배상해드릴 겁니다.”법원은 비록 그녀가 패소했다고 판결
그 말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얼어붙었다.‘설인아랑 사귀고 곧 결혼까지 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서주혁은 성혜인을 아래위로 훑어보다가 담담한 말투로 물었다.“진작에 소개해주지 않았어?”“헉!”사람들은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서주혁은 진작에 성혜인이 반승제의 여자친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거야? 그럼 반승제가 SNS에 말했던 여자가... 혹시 성혜인인 거야?’사람들의 얼굴빛이 갑자기 약간 미묘해졌다.‘만약 반승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성혜인이라면, 설인아는 또 뭐야?’반승제는 서주혁을 향해 웃으며 위층을 가리켰다.“혜인이가 보다시피 지금 기분이 별로라 위에 가서 달래고 올게. 좀 늦게 내려올 거야.”서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곧이어 반승제는 성혜인을 품에 안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성혜인은 단지 반승제가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인정했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마치 꼭두각시 인형처럼 지금은 사고회로가 돌아가지 않았다.이번 기회로 반승제는 사람들 앞에서 확실히 성혜인에게 자신의 “여자친구”라는 신분을 부여했다.사랑은 당신이 빛날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닌 가장 절망스러울 때 찾아오는 것이다.성혜인은 이 말을 곱씹었고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반승제에게 이끌려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그녀는 시종일관 시선을 아래로 푹 늘어뜨린 채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줄곧 누군가에게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것이 있다면, 사실 성혜인은 자신의 친부모에 대해 한없이 기대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설씨 가문에서 설인아를 그렇게 총애하는 것을 보고 말이다. 그녀 역시 자신을 총애해주는 오빠가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계속 자신을 그리워하고 있는 여동생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했었다.하지만 현실은 엉망이었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반승제는 그녀를 풀어주었고 두 사람 사이에는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곧 엘리베이터는 4층에서 멈췄다. 이곳은 휴식공간이기 때문에 연회에
반승제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도 모른 채 그녀는 소파에 눌려 있었다.그러다 누군가 올까 봐 두려웠는지 그녀는 얼른 반승제를 달래며 말했다.“집에 가서 해요. 여기는 남의 집이잖아요.”하지만 반승제는 숨을 헐떡이며 그녀의 꽉 잡았다.“간단하게만 하자.”성혜인은 매우 긴장했지만 그를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그리고 반승제가 말한 “간단하게”는 바로 연회가 끝날 때까지 하는 것이었다.아래층으로 내려갈 때 성혜인은 다리가 후들거려 반승제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걸어갔다.홀 안에는 아직 떠나지 않은 손님들이 10여 명 남아있었는데 모두들 서씨 가문 사람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중이었고 반승제는 성혜인을 데리고 서주혁에게 가 인사를 건넨 뒤 떠날 생각이었다.피곤하기 그지없었지만, 성혜인은 문득 무언가 떠올라 물었다.“장 비서는요? 장 비서한테 전화 좀 걸어볼게요.”장하리와 헤어진 후 성혜인은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반승제는 그녀를 끌어안고 서주혁을 바라보았다.서주혁은 남은 손님들 앞에 조용히 서 있었고 눈에는 불쾌함이 가득했다. 마치 곧 폭풍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말이다.“혜인 씨 비서는 아마 일찍 돌아갔을 겁니다.”그 말에 성혜인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반승제와 시선이 마주친 서주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다시 시선을 거두며 아직 채 가지 않은 한 무리의 손님들을 계속 배웅했다.그에게 안겨 차에 오른 성혜인은 참지 못하고 밖을 한번 쳐다보았다.손님들은 거의 다 갔고 무리 내 사람들은 오늘 밤 성혜인이 일으킨 소동으로 떠들썩할 것이다.그 때문인지 성혜인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녀가 뒤로 몸을 기대자 반승제가 물었다.“기분이 안 좋아?”“조금요.”“그 사람들, 진짜 네 부모야?”“진세운 씨가 친자확인 하는걸 직접 봤어요. 그러니 잘못됐을 확률은 매우 적을 겁니다.”반승제는 눈을 꼭 감은 성혜인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괜찮아.”담담한 세 글자로 인해 그녀가 느끼고 있던 괴로움은 많이 누그러졌다.누구도
반승제의 눈썹이 찌푸려지며, 손에 있던 담배를 던져버렸다.“혜인이 장영희가 바람피워서 낳은 자식이라고 전태경이 말하지 않았나?”앞에 있는 자료를 뒤지던 서주혁의 안색이 더욱 굳어졌다.“아무래도 장영희라는 여자... 예전에 서천 홍등가 출신인 것 같아. 너도 알다시피 20년 전의 치안은 지금처럼 좋지 않았어. 전태경도 양아치이긴 마찬가지야. 젊었을 때 이웃집 딸을 겁탈해 몇 년 동안 감옥에 산 전적도 있어. 그리고 나오자마자 장영희랑 결혼한 거지. 그 집에 절름발이 남동생이 한 명 있는데 마침 장영희가 자기 동생을 꼬시는 장면을 목격한 모양이야. 그래서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전태경은 동생 딸이라 생각해서 다른 사람한테 팔아넘긴 거고. 병원에 남아 있는 서류도 그 동생 거였어.”이 진실은 더욱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어머니라는 사람이 남편의 남동생과 바람을 피워 성혜인을 낳았다니, 게다가 친아버지라는 사람은 가난하고 인품도 나쁜 절름발이라...“내가 서천에 둔 사람들 덕에 이미 그 두 사람에 대한 조사는 끝마쳤어. 그리고 이게 바로 거기서 나온 정보야. 이 일은 확실히 처리하기 어려울 것 같다. 지난번 서천 빌딩에서 사고가 생긴 이후로 많은 가문에서 사람을 파견했다는 거 알고 있지? 자신들도 모르는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워서 말이야.”때문에 서천에는 사람들의 감시망이 촘촘히 박혀있었다.반승제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다시 불을 붙이려 했다.서주혁이 알아낸 결과가 이렇다면 반승제가 다시 한번 찾아보더라도 똑같은 결과일 것이다.설령 그에게 아주 신통한 능력이 있다고 한들, 20여 년 전의 일은 애초에 관련 사람들이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전혀 고증할 길이 없다.그는 두번째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고 그저 입에 물고 있기만 했다.그렇게 통화를 마친 후, 반승제는 담배를 내려놓고 위층으로 올라갔다.한편, 어느새 깨어난 성혜인이 바깥 베란다에 멍하니 서 있었다.천천히 그녀의 뒤로 걸어간 반승제는 성혜인의 손에 물 한잔이 들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
공지민은 섬에서 한 달을 푹 쉬었고 그 사이 연승혁의 상처도 조금씩 나아졌다.그녀는 텔레비전에서 염정아의 판결 결과를 알게 되었다. 그 당시 염정아는 카메라를 보며 미소를 지었고 분명히 이는 그녀가 선택한 결말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운명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으니까.판결 결과를 본 날 공지민은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주변의 바람이 매우 거셌다. 그녀는 자신이 흘리는 눈물이 악어의 눈물처럼 느껴졌다. 염정아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자신 때문이었다. 자신이 그녀에게 칼을 쥐여준 것처럼 느껴졌다.공지민은 입을 틀어막으며 울음소리가 흘러나오지 않게 참았으며 고통에 젖어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고 연승혁이 다가왔다.“지민아, 오늘 밤에 해산물 바비큐 할 건데 저번에 먹었던 킹크랩 또 먹을래? 이따가 나랑 시장에 가서 사 오자.”연승혁은 공지민 앞에 서서 그녀의 붉어진 눈을 보더니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야? 울었어?”최근 며칠 동안 연승혁은 매우 부드러워졌고 이전의 그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의 친구들이 여기 있었다면 아마 그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공지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늘 바람이 너무 세서 눈에 모래가 들어갔어요.”연승혁은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의 얼굴을 받쳐 들고 자세히 살펴보았다.“혹시 뉴스 때문에 그래? 봤었어? 사실 무기징역을 받을 수도 있었는데 법정 쪽에 말대로라면 법정에서 자기가 직접 자백하며 죽는 걸 원했대. 아무도 살릴 수 없었어. 지민아,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말고 오늘 밤에 뭐 먹을지 생각해 보자.” 공지민의 눈빛에는 조롱이 가득했다. 오늘 밤 뭐 먹을지가 한 생명보다 중요하다고? 마음속에서 조롱이 커질수록 그녀의 얼굴에는 더욱 감동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의 목을 감싸며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연승혁의 눈빛이 깊어지고 손은 그녀의 허리에 닿아 한껏 힘을 주었다. 공지민은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연승혁은 웃음을 터뜨렸고
온시환은 일어나서 집을 나와 헬기를 타고 염정아의 집에 가기로 했다. 그녀의 집에 아이들이 다섯 명이나 있었으니까. 그가 도착했을 때는 저녁 무렵이었다. 옆에는 두 사람이 따라왔고 모두 그의 사람들이었다. 염정아의 집을 알아낸 후 그는 서둘러 그곳으로 갔다.아래층 슈퍼마켓 사장님은 그들을 보고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염정아에게 부탁받고 왔다는 걸 듣고 몇 마디 더 묻고 나서야 방 열쇠를 건넸다. 온시환은 문 앞에 서서 잠시 망설였다. 문에는 작은 광고들이 잔뜩 붙어 있었고 집은 꽤 오래된 것 같았다. 그렇게 크지도 않아 보였다. 그는 열쇠를 꽂고 들어갔을 때 방 안에 있던 몇 명의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 일부는 소파에서 TV를 보고 있었고 일부는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었다.온시환은 입을 열려고 하다가 이 아이들이 아마 죽음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아이만이 어느 정도 어른스러워 보였다. “아저씨, 엄마 아빠가 우리 보러 오라고 하신 건가요? 우리는 언제 엄마 아빠를 만날 수 있어요?”온시환은 웃어보려 했지만 어떻게 해도 웃어지지 않았다. 염정아는 이미 사형선고를 받았고 곧 처형될 예정이다. 그는 정말 이 아이들을 모두 복지관에 보내야 할까? 그는 잠깐 망설였다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아이들 챙겨. 제원으로 간다.”만약 아이들을 이곳 복지관에 두면 이곳은 너무 멀어서 아이들이 괴롭힘을 당해도 알지 못할 수 있다. 차라리 제원 복지관에 보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온시환은 이 아이들을 직접 돌볼 고민도 했었지만 그들을 보면 염정아의 인생이 떠올랐다.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고 그걸 떠올리면 마음이 불편했다.그는 제원의 복지관에 기부할 수 있었고 매주 사람을 보내 아이들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자라도록 챙기고 학교에 보내어 나중에 직장을 찾아서 스스로 먹고살 수 있게 할 수 있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그는 늘 자신이 쓴 시나리오가 가장 막장 같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잔을 비우고 또 비웠다. 문득 공지민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속의 쓰라림도 점점 더 커졌다. 그때 VIP룸의 문이 열리고 반승제는 조금 늦게 도착했다. 그가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보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셔.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이러는 거야? 아니면 우리 다 같이 시간 내서 놀러라도 가자. 마침 혜인이도 요즘 놀러 가고 싶어 하던데.” 한때 온시환은 노는 걸 가장 즐겼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갈 생각만으로도 힘이 빠졌다. 그는 멍하니 손에 든 술잔을 바라보다가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그때 반승제가 물었던 적이 있었다. ‘어떻게 해야 그 여자가 나를 사랑하게 될까?’ 그때 그는 우습게 느껴졌다. 반승제처럼 완벽한 남자가 여자의 사랑이 부족할 리가 있나? 세상에 여자는 넘쳐나는데 이 여자가 아니면 다른 여자를 찾으면 될 일 아닌가.하지만 세상일은 돌고 도는 법이라더니 그도 결국 한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하물며 그 사람은 그를 원하지도 않았다. 그를 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다른 남자의 감정을 갖고 장난치려 들었다. 그날 경찰서 앞에서 연승혁을 봤을 때 온시환은 공지민의 대략적인 계획을 알 것 같았다. 그때 연승혁이 그녀를 바라보던 눈빛은 분명히 순수하지 않았고 연승혁도 그와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빠졌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온시환은 질투가 아니라 씁쓸함을 느꼈다. ‘연승혁 너도 참. 평생을 거만하게 살아온 네가 유일하게 사랑한 여자가 오히려 네 목숨을 노리다니.” 온시환은 술을 또 한 모금 마시며 자신과 연승혁 중 누가 더 불행한지 가늠할 수 없었다. 옆에 앉아 있던 서주혁은 손을 천천히 내밀어 그가 마시려던 술을 가로챘다. “그만 마셔. 위 출혈 나서 병원에 실려서 가고 싶어?” 온시환은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
연승혁의 상처가 조금 나아졌을 때 공지민은 그를 데리고 해변을 거닐었다. 마치 그들이 처음 섬에 왔을 때처럼. 연승혁은 체력이 좋아 빠르게 회복되었고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연인처럼 보였다. 이 섬에 와서 부상을 당한 그날을 제외하고 그는 매일 자신과 공지민이 연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진실이 무엇인지. 그것은 오직 그만이 알고 있었다. 그날 두 사람이 다시 여기서 석양을 바라보고 있을 때 연승혁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지민아, 여기서 돌아가면 나랑 함께할래?” 공지민은 잠시 의아해하며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우리가 이미 함께 있는 게 아니에요? 전에 우리가 미혼 부부였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렇긴 한데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 네가 나를 선택한다면 그 문제들은 내가 모두 해결할 거야.” 김경자 쪽에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그가 한 일이 기존의 규범을 어기는 일이었지만 반대하는 이들을 모두 없애 버리면 그만이었다. 예전처럼 말이다. 어차피 김경자도 그가 하는 방식에는 이미 익숙해졌을 터였다. 그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짓더니 그녀를 품에 안았다. “너만 원하면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공지민은 속눈썹을 내렸다. 머릿속에는 연승혁과의 일보다는 염정아가 떠올랐다.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사건이 그렇게 커졌는데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온시환은 염정아를 도왔을까?’ 그녀는 심지어 이런 생각도 했다. ‘만약 자신이 죽는다면 온시환은 슬퍼할까?’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예전부터 살고 싶은 의욕이 없었다. 그래서 제원에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반드시 방법을 찾아 연승혁이 자신과 함께 여기 남아있게 할 것이다. 마치 그때 구은우가 영원히 바닷가에 남았던 것처럼. 제원 쪽에서 온시환은 더 이상 공지민과 연락하려는 시도를 포기했다. 그가 들은 바에 따르면 공지민은 이미 연승혁과 함께 그 섬으로 갔고 그 섬에는 그가 배치해
공지민이 눈을 떴을 때 천장이 보였는데 연승혁이 말한 대로 안전해진 것 같았다.그녀는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연승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공지민은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을 열었다. 밖에 서 있던 연승혁의 부하들은 그녀가 나오는 걸 보고 격정스런 눈빛을 지었다. “공지민 씨, 괜찮으신가요?”공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오빠는요?”“형님은 아직 의식이 없으십니다.” “오빠 보러 가고 싶어요.”그때 그녀는 일부러 미친 척하며 그를 몇 번 밀쳤고 기억에 의하면 그를 불더미 속에 밀어 넣었다. 그의 등은 아마 화상을 입었을 것이다.하지만 연승혁은 정말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를 안고 탈출할 수 있었으며 그녀가 다치지 않도록 잘 보호했다.공지민은 감동하기보다는 오히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원래는 그와 함께 그곳에서 같이 죽을 생각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무사히 살아남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연승혁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연승혁은 병상에 누워 있었고 의사가 그의 상처를 살펴보고 있었다.섬의 의료 수준은 제원에 미치지 못했다. 연승혁은 등 부상으로 인해 이미 이틀째 의식을 찾지 못했고 의사는 감염을 우려하며 그의 곁을 이틀 동안 지키고 있었다. 공지민의 눈빛에 조롱의 기색이 스쳤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왜 이 사람은 타 죽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곧 눈가가 붉어진 채 천천히 병상 옆에 앉았다.“오빠는 괜찮아졌나요?”의사는 그녀를 보며 공손하게 답했다. “위험한 고비는 넘겼습니다. 이제 깨어나기만 기다리면 됩니다.”공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승혁의 손을 잡았고 그대로 병상 옆에 앉아 떠나지 않았다.의사는 곧 방을 떠났고 방 안에는 연승혁과 공지민 두 사람만 남았다.공지민은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이 방에는 카메라가 없었다. 그녀는 옆에 있는 베개를 가져다 이 남자를 질식시켜 죽일 생각도 했다. 그러면 모든 게 끝날 테니까. 그녀가 그렇게 하려던 찰나
남자는 이미 죽고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연승혁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옆에 있는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옆에 있던 부하들에게 짧게 말했다. “정리해. 난 먼저 간다.” 호텔 쪽에는 이미 그의 부하들을 배치해 두었으니 원래라면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방금 그 남자의 말이 자꾸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결국 직접 돌아가 확인해야만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승혁은 자신이 공지민에게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이걸 단순한 게임으로만 여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만약 공지민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이 어떻게 될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는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원래는 30분은 걸려야 할 거리였지만 그는 10여 분 만에 도착했다. 그가 머물던 호텔은 이미 짙은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고 서둘러 앞으로 나가 자신의 부하를 붙잡고 물었다. “공지민 어디 있어!” “형님, 공지민 씨는 아직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방 안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연승혁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바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불길은 이미 너무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고 섬의 소방은 아직 빠르지 않아 불은 이미 1층에서부터 꼭대기까지 번져 있었다. 지금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연승혁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며 밖에서 소식을 기다려야 한다고 여겼다. 어쩌면 공지민이 운 좋게 스스로 탈출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이성을 차릴 수 없었다. 곧바로 옆에 있던 사람들을 밀쳐내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자신이 자던 방으로 들어갔다. “공지민! 공지민!” 그는 큰 소리로 외쳤고 곧 방 한구석에서 공지민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짙은 연기에 눈을 뜰 수 없었던 연승혁은 최대한 몸을 낮추며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공지민은 방구석에 웅
연승혁은 즉시 공지민을 바라보며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넌 이 방에 가만히 있어. 내가 가서 그 사람을 처리하고 나서 나랑 같이 제국으로 돌아가자.”공지민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오빠가 위험하진 않겠죠?”“걱정하지 마. 금방 돌아올 테니까 한잠 푹 자고 있어.”연승혁이 묵고 있는 호텔은 이 섬에서 가장 큰 호텔로 매우 호화로운 데다가 그의 부하들도 지키고 있기 때문에 공지민은 안전했다.공지민은 서서 그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연승혁은 겨우 몇 걸음을 걸었을 뿐인데 이상하게 매우 불안했고 심지어 공지민이 그와 함께 움직이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하는 건 결코 안전하지 않았고 그 사람이 혹시나 손에 총이 있다면 공지민은 위험할 수 있었다.그는 신이 아니었고 공지민을 100%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약간의 과실로 그녀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는 감히 모험할 수 없었고 그녀를 호텔에 남겨 둘 수밖에 없었다.연승혁은 차에 올라탔고 차는 30분 동안 달리다가 암초가 있는 곳에 멈췄다.근처의 암초는 크고 새까맣기 때문에 숨어 있기에 좋은 장소였다.연승혁은 옆에 있는 부하한테 물었다.“여기에 있는 게 확실해?”“네. 확실해요. 저희 쪽 사람들이 지금 수색하고 있어요. 늦어도 30분이면 결과가 나올 거예요.”연승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보헤미안 스타일의 소매를 입고 있었는데 평소의 옷차림과는 전혀 달랐고 휴가를 온 것 같았다.멀지 않은 곳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양측이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연승혁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입꼬리를 천천히 올렸다. 이제 그 사람은 도망칠 수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부하들은 온몸이 새까만 남자를 붙들고 걸어왔다.어쩐지 이 남자가 그렇게 오랫동안 숨어 있더라니 그의 몸에는 검은 물감이 칠해져 있었고 마치 암초와 융합된 것처럼 보였으며 사람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연승혁은 담배에 불을 붙였고 밤바다 바람에 그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그는 심호흡한 뒤 그 남자
연승혁은 한동안 그녀와 꽁냥꽁냥하다가 해변의 경치를 구경하러 가자고 말하며 그녀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떴다.공지민은 바다를 극도로 두려워했다. 구은우가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후 그녀는 평생 악몽 속에서 살았다.그녀는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며 가슴이 격하게 오르내리기 시작했지만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연승혁은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한 채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모래 위를 걸었다.“지민아, 어때? 여기 달이 특별히 예쁜 것 같지 않아?”공지민은 얼굴에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뻐요. 이렇게 예쁜 달은 처음 봐요.”연승혁의 입꼬리는 올라갔고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말없이 서 있었다.그는 정말로 여기의 달이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여자와 함께 경치를 보면서 느낀 감정은 뭔가 더 특별했고 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공지민은 내내 연승혁한테 맞춰줬고 그가 바닷물을 만지고 싶다고 해서 그녀도 따라나섰다.바닷물에 발을 담그면서 연승혁이 물었다.“이런 해변을 보고 있으면 뭔가 떠오르는 게 있어?”공지민의 눈에는 의문으로 가득 찼고 그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연승혁은 구은우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다. 그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공지민은 그때 구은우를 매우 사랑했고 그들이 서로를 가장 열정적으로 사랑할 때 구은우가 사망했는데 그녀가 그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이상우가 최면술을 사용했음에 불구하고 연승혁은 그녀가 갑자기 기억해 낼까 봐서 걱정이었다.하지만 공지민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고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듯했다.연승혁은 안도감을 느꼈고 그녀를 품에 안았다.“기억 안 나면 됐어. 손 줘봐. 우리 여기 좀 둘러보다가 돌아가자.”공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오빠가 잡으려는 그 사람은요?” “아마 일주일 안에 잡힐 거야. 이 섬이 제국만큼 크지는 않지만 숨을 수 있는 동굴이 많아. 그 사람이 이곳에 들어온 후 바로 숨어버렸어. 그래서 내 부하들이 그를 찾아내려면 구석구석을 돌아다녀야 해.”그들이 며
공지민은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저 연승혁한테 기대어 있기만 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누군가가 그녀를 들어 올려 따뜻한 침대에 눕혔다.이곳은 작은 섬으로 보였고 원주민들도 꽤 많아서 야시장은 매우 북적거렸다.공지민은 안겨서 이동하는 동안 많은 노점상들의 외침 소리를 들었다.또 30분이 지났을 때 음식의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스쳤다.연승혁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왜 이렇게 많이 자는 거야? 너 하루 종일 잠만 잤어. 얼른 일어나서 뭐라도 좀 먹어. 이따가 야시장 구경하러 가보자.”“사람 잡으러 왔다면서 야시장을 구경할 기분은 나요?”“그 사람이 지금 이 원주민들 사이에 있어. 멀리 도망가지 못할 거야. 이곳의 출입구는 이미 부하들이 지키고 있어서 그 사람이 함정에 빠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돼.”공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기울여 그의 뺨에 뽀뽀했다.“역시 오빠는 대단해요.” 연승혁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듯했다.“네 약혼자가 될 수 있는 걸 봐서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그러고 보니 네가 보는 눈이 있네.”“그럼요. 내가 안목이 높긴 하죠.” 그녀의 말을 들은 연승혁은 기분이 더 좋아졌고 그녀를 품에 껴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야시장에서 파는 것들인데 먹고 싶은 게 있나 봐봐.”연승혁은 많은 음식을 사 왔고 그녀는 확실히 배가 고파서 그의 품에 안겨 마음껏 먹기 시작했다.연승혁은 여자가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전부다 네 거니까 천천히 먹어.” “오빠가 뺏어 먹을까 봐 그러죠.”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눈이 깊어졌다.공지민은 눈치채지 못한 듯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곧장 침대에서 일어났다.“야시장 구경하러 간다면서요? 얼른 가요. 나도 너무 구경하고 싶고 이곳의 풍습이 궁금해요. 여기 국내는 아니겠죠?”연승혁은 그녀가 어린아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