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연주의 두 친구가 분위기를 띄우는 듯 샴페인을 마구 뿌리며 축하하기 시작했다.물이 섞인 술이 소원의 온몸을 적셨다.모두가 환호하며 즐거워하는 가운데 소원만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에 사로잡혔다.그 물기가 가슴속까지 스며들어 얼음처럼 차가웠다.마음 깊은 곳까지 차갑고 그 차가움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소원은 서현재가 과거를 잊었기를 바랐음에도 육연주가 그의 인생에 어울리지 않는 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만약 서현재가 육연주와 함께한다면 그는 서씨 가문의 완벽한 통제 아래 놓이게 될 뿐 아니라 육연주의 지배 아래에서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지금도 서현재의 고통과 갈등이 그녀에게 보였는데 앞으로는 더 말할 것도 없을 터였다.만약 언젠가 서현재가 과거를 기억해낸다면 그것은 고통스러운 순간들의 시작일 것이다.그를 너무나 잘 알기에 소원은 미리부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만약 서현재가 기억을 되찾는다면 그 고통은 그를 완전히 무너뜨릴 것이 분명했다.소란이 끝난 후, 모두가 술을 꽤 많이 마신 상태였다.서현재도 붙잡혀 적지 않게 술을 마셨고 육경한과 방민아 역시 몇 잔 마셨다.특히 육연주와 그녀의 친구들은 거의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마셔버렸다.육연주는 친구를 서현재로 착각하며 안긴 채 사랑을 속삭였다.“현재 씨, 나 정말 현재 씨 사랑해요... 정말로... 근데 현재 씨는 왜 나를 신경도 안 써요...”“헤헤... 그래도 결국 현재 씨는 내 사람이 됐잖아요... 이제 내 거잖아요...”친구를 안고 입맞춤까지 하며 정신없이 울부짖는 육연주의 모습이 주변 사람들조차 당황하게 만들었다.서현재는 그런 그녀를 더 이상 쳐다보지 않았고 자신의 상태도 좋지 않아 가슴을 누르며 비틀거리더니 방을 나갔다.소원은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잠시 망설였다.아무도 서현재의 이탈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밖으로 나간 그녀는 그의 뒷모습이 복도 모퉁이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소원은 육경한을 바라보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육경한, 너희가 현재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너희 스스로가 잘 알겠지! 여기서 도덕적인 척하며 남 심판하지 마. 진짜 가장 비도덕적인 건 너희 같은 인간들이니까!”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육경한은 갑자기 손을 뻗어 소원의 목을 움켜쥐며 이를 악물었다.“그래, 내가 쓰레기라면 너네 현재는 뭐... 착한 사람이라는 거야?”소원은 목이 졸려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소원, 네가 그렇게 서현재가 착한 사람이라 믿는다면 나는 끝까지 너를 실망시키고 말 거야!”곧 육경한은 손을 거칠게 놓으며 소원을 벽에 내팽개쳤다.소원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어 헐떡였다.“똑똑히 봐. 남자는 변하지 않을 것 같지? 서현재도 변할 거야. 나 같은 쓰레기보다도 더 못한 인간으로.”그는 마지막으로 이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소원은 머릿속이 하얘져 무슨 생각도 할 수 없었다.육경한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그들은 서현재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걸 말이다.자신이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하게 만들어 서현재를 평생 후회하게 할 것이다.그리고 언젠가 진실을 알게 되더라도 그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게 될 것이다.소원은 바닥에 주저앉아 목을 감싸 쥐었다.목이 불에 데인 듯 화끈거렸다.또각또각.누군가가 하이힐 소리를 내며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방민아가 소원을 내려다보며 비웃음을 지었다.“소원 씨, 이렇게 보니까 정말 개 같아요. 꼬리를 흔드는 한심한 개 말이에요.”소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제 가식을 벗어던진 방민아와 얘기할 가치는 없다고 느꼈다.방민아는 가방에서 10만 원을 꺼내 소원의 머리 위에 던지며 경멸스럽게 말했다.“이건 경한 씨를 대신해 소원 씨에게 주는 팁이에요. 소원 씨가 어떤 존재인지 잊지 않길 바랍니다.”클럽에서 가장 낮은 등급의 서비스 요금이 바로 한 시간에 10만 원이었다.이 말은 방민아가
소원은 손에 있는 10만 원의 현금을 꽉 움켜쥐었다.정말 ‘특별한 선물’이라는 게 대체 뭘 의미하는지 뻔했다.유진이, 그 아이가 그들의 손에 있다는 사실 말고 또 뭐가 있을까.소원은 고개를 약간 들어 방민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 뒷모습이 멀어질수록 머릿속 생각은 복잡해졌다.그때 진아연이 우연을 가장하며 소원 곁으로 다가왔다.“체리, 무슨 일이야? 오늘 손님이 그렇게 힘들게 했어? 어쩌다 이렇게 됐대?”진아연은 일부러 따라온 것이었다. 그녀는 방금 육경한의 태도와 방민아가 말하는 것을 전부 지켜보았다.육경한이 소원에게 보이는 태도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한때 그는 소원에게 미쳐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달랐다.현재 육경한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방민아였다.그리고 진아연의 생각에 오직 방민아만이 그와 어울릴 자격이 있었다.진아연은 속으로 흡족해했다.한때 육경한이 소원에게 보였던 미친 행동이 정말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것도 그저 지나가는 집착에 불과했던 것이다.육경한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오래된 것에 금방 싫증을 느끼는 사람이었다.‘그럼 내가 저질렀던 죄도 언젠가는 용서받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소원은 아무 말 없이 진아연을 외면했다.그녀와 대화하고 싶지도, 그녀의 속셈을 지금 당장 폭로하고 싶지도 않았다.소원은 진아연이 어떤 목적으로 접근했는지 그리고 그녀 뒤에 누가 있는지 지켜보고 싶었다.경솔하게 누군가와 한편이 되는 건 절대 안 될 일이었다.겉으로 도와주는 척하는 사람이 실제로는 자신을 이용해 다른 악행을 저지르려는 경우가 많았다.그리고 그런 일이 드러나면 결국 죄를 뒤집어쓰는 건 자신이었다.진아연은 소원이 말을 하지 않자 어딘가 거리감을 느꼈다.사실 그녀는 소원이 자신을 알아보는 게 두려웠지만 지금까지 소원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걸 보며 안심했다.소원이 자신을 의심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자신이 여전히 이 세상에 살아있다는 증거는 없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다만 그 사람으로
영숙은 차갑게 말했다.“그 셋은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참을 수 있으면 참아. 아니면 피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이 터져도 내가 대신 해결해줄 일은 없을 거야!”소원은 바보가 아니었는지라 영숙의 말 속에 담긴 선의를 금세 알아챘다.다음에 또 그 셋을 마주친다면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결근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처럼 서로 계산만 가득한 곳에서 같은 여성이 보여주는 호의는 그녀에게 작지 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소원은 영숙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알겠습니다, 언니. 절대 폐 끼치는 일 없을 거예요.”소원이 미소 짓는 것을 보고 영숙은 잠시 멍해 하더니 어딘가 어색한 듯 담배를 끄며 고개를 돌렸다.그러고는 자리를 떠나면서 넌지시 말했다.“미친 거 아니야? 너 도와주는 거 아니라니까.”소원은 영숙이 떠난 후에도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이제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영숙은 선한 사람이었다.그녀가 왜 자신을 돕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진심과 가식은 구분할 수 있었다.그렇게 씻고 나서 소원은 다시 밖으로 나왔다.걸어가던 중에도 머릿속은 온통 서현재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정말 현재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번 기억 상실이 현재에게 축복일까, 아니면 불행일까?’만약 기억을 잃지 않았다면 서현재는 분명 싸울 것이었다.서씨 가문의 결혼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통제에도 절대 굴복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는 어두운 복도를 따라 걸으며 뒤편 문 근처에 도착했다.그 순간, 2층 창문 쪽에서 들려오는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렸다.희미하게 들리던 대화 속에 ‘서씨 가문’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자 소원은 멈춰 서서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기로 했다.“서씨 가문에서 요즘 그 사생아를 꽤 중시하는 것 같더라.”“사생아라니? 그 자식은 사생아보다도 더 낮은 존재야. 사생아조차도 못 되는 잡종이지.”“야, 그런 말 하면 큰일 난다. 서씨 가문 어르신이 그 사람을 중히 여긴다는데... 네가 그
”축하해요. 임신하셨습니다!”멍 때리고 있던 윤혜인 머릿속에는 오후에 의사 선생님이 했던 말만 계속 떠올랐다.그때, 조용하게 다가온 이준혁이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으면서 물었다.“무슨 생각하는 거야?”그녀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이준혁이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잡으며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한참 뒤, 이준혁은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고 윤혜인은 온몸에 힘이 풀린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땀으로 젖은 머리와 글썽이는 눈망울은 조금 전에 많이 힘들었음을 설명해 주었다.겨우 숨을 고른 그녀는 서랍을 열어 임신 검사 보고서를 꺼냈다.요즘따라 계속 위에 통증을 느꼈던 윤혜인은 오늘 오후 병원에 찾아갔고 피검사를 한 결과, 의사는 그녀에게 임신 5주 차라고 얘기했다. 그 말을 들은 윤혜인은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분명 매번 안전 조치를 확실하게 취했는데.다시 돌이켜보니 저번 달에 딱 한 번, 술자리를 마친 이준혁은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준 뒤, 집 앞에서 갑자기 그녀에게 한마디 물었었다.“지금 안전하지?”그런데 안전기에도 임신할 수 있는 거구나…욕실 안에는 물소리로 가득했다. 안에 있는 남자는 2년 전에 윤혜인과 아무도 몰래 결혼한 그녀의 남편이자 그녀의 상사이기도 한 이산 그룹 대표 이준혁이다.그때 당시 술이 많이 취한 윤혜인은 뜻하지 않게 그녀의 상사와 잠자리를 가지게 되었고 마침 이준혁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병으로 쓰러지시는 바람에 이준혁은 그녀에게 가짜 결혼을 제안한 것이다. 이준혁 할아버지의 최대 소원이 손자가 하루 빨리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은 그렇게 결혼 계약서에 사인하게 되었다. 대외적 비밀 결혼으로 언제든 종료할 수 있는 가짜 결혼이었다.그때 당시 윤혜인은 그저 너무 행복했다. 그녀는 자신이 8년 동안이나 짝사랑해온 남자와 결혼할 수 있다는 말에 고민없이 동의했던 것이다.결혼한 뒤에도 이준혁은 매일 너무 바빴다. 한달 동안 그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하지만 2년 동안
윤혜인은 우유를 마시면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는 연예 뉴스로 가득했지만 윤혜인은 이런 쪽에 관심이 없었던 터라 핸드폰을 내려놓으려 했다.그러던 중 갑자기 익숙한 이름이 보여서 그 기사를 클릭하게 되었다.기사와 함께 기재된 사진 속에서 임세희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고 함께 걷고 있는 남자는 흐릿한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한 눈에 봐도 몸매 비율은 완벽했다.사진을 확대한 윤혜인은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버렸다.사진 속 실루엣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이준혁이다!그럼 오후에 갑자기 회의를 취소하고 외출을 했던 게, 그의 전 여자친구인 임세희를 데리러 공항에 간 거란 말인가?그 순간, 윤혜인의 가슴에는 큰 돌멩이 박힌 듯 답답했고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만지다가 의도치 않게 이준혁에게 전화를 걸게 되었고 다급하게 끊으려고 했지만 상대방은 이미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유난히 다정하고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였다.너무나도 깜짝 놀란 윤혜인은 바로 핸드폰을 던져버렸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했다.한참 뒤, 날이 밝아오자 윤혜인은 시간에 맞춰 회사로 출근했다.이준혁과 가짜 결혼을 한 뒤, 이준혁은 그녀가 집에 있길 원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능력으로 돈을 벌고 싶다고 했다.이준혁도 그녀의 말에 동의하긴 했지만 다른 회사가 아닌 이산 그룹에 취직해야 한다고 했고 그렇게 윤혜인은 이준혁 곁에 비서로 남아 물을 따르거나 간단한 심부름을 하는 등 소일거리 역할을 맡게 되었다.그리고 중요하고 핵심적인 비서 일은 이준혁의 수행 비서인 주훈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회사에 윤혜인의 진짜 신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주훈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이산 그룹의 이준혁 대표는 지금까지 계속 남자 비서만 채용했고 2년 동안 여자 비서는 윤혜인 한 명밖에 없었기에 다들 윤혜인과 회사 대표가 특
사무실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김성훈이었다. 그는 사무실을 떠나려는 듯했다.윤혜인은 주먹을 꽉 쥐고 감정을 숨긴 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김 대표님, 안녕하세요.”그러고는 김성훈을 지나 대표 사무실로 들어갔다.고급스러운 책상 앞에 앉아있는 이준혁은 고가의 정장을 입고 있었고, 윤혜인은 단번에 이 옷이 어젯밤 그가 입고 나갔던 옷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윤혜인은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 마케팅 보고서입니다. 결재해 주세요.”이준혁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서류에 사인한 뒤 윤혜인에게 건넸고 서류를 받은 윤혜인이 사무실 밖으로 나와보니 김성훈이 여전히 사무실 입구에 서있었다.그녀의 모습이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김성훈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젠장, 혜인 씨가 우리 대화를 들은 거 아니야?”이준혁의 눈빛에는 그 어떤 미동도 없었다. 그는 김성훈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다.성격이 온순하고 착한 윤혜인은 질투 같은 걸 절대 안 한다. 그녀가 계속 지금처럼 조용하게 살아준다면 이준혁은 앞으로도 그녀에게 많은 걸 해줄 것이다.한편, 엘리베이터 안에서.윤혜인은 최대한 눈물이 흐르지 않게 고개를 높이 들었지만 어느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그녀는 2년이라는 시간이 충분할 줄 알았다. 그녀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녀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 모든 건 그저 그녀 혼자만의 착각일 뿐이였다.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전 여자친구의 복귀에는 역부족이었다.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윤혜인이 평소와 같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지만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는 몸을 가까스로 가눈 채, 탕비실로 향했다.커피로 정신을 좀 맑게 하고 싶었다. 탕비실 안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기사 봤어? 임세희 귀국했대.”“응? 그게 누군데?”“너 몰라? 임세희는 임씨 가문의 아가씨잖아. 본인도 유명한 탑급
”뭐가 그렇게 잘나서 맨날 머리 치켜들고 다니는 거야? 다들 네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거든. 부모도 없는 잡종 주제에…”팍!송소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혜인이 그녀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 송소미는 평소에 고분고분하던 윤혜인이 감히 그녀에게 손찌검을 할 줄은 상상도 못해서 순간 멍한 표정이었다.한참 뒤, 송소미가 이를 꽉 깨물며 소리를 질렀다.“너, 너 지금 감히 날 때린 거야?!”“당신에게 예의를 가르친 겁니다.”윤혜인이 싸늘한 눈빛으로 송소미를 보며 대답했다. 윤혜인은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을 잃었지만 그렇다고 절대 아무나 그녀의 부모님을 모욕하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송소미는 화가 나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준혁의 사촌 여동생인 그녀는 늘 타인의 아부를 받아왔기에 이렇게 대놓고 그녀와 맞서 싸우는 사람은 윤혜인이 처음이었다.“이 나쁜 계집애!”송소미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윤혜인에게 달려들었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할퀴려고 했지만 반응 속도가 빠른 윤혜인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은 채 송소미를 꿈쩍도 못하게 만들었다.윤혜인보다 체구가 작은 송소미는 어떻게든 윤혜인을 때리려고 발버둥을 쳤고 그 모습은 매우 추했다.화가 잔뜩 난 송소미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네가 뭐라도 되는것 같아? 넌 단지 우리 준혁 오빠가 침대에서 가지고 노는 장난감일 뿐이라고! 넌 몸 파는 여자보다 더 천박해!”송소미는 갈수록 심한 욕을 입 밖에 꺼냈고 모여드는 직원도 점점 많아졌다.“지금 뭐 하는 거야!”낮게 깔린 이준혁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그는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난동을 부리고 있는 송소미를 발견했던 것이다.그의 등장에 순식간에 탕비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준혁 오빠?”송소미는 평소에도 이준혁을 조금 무서워했다. 이 사촌 오빠는 가차없는 성격이라 그녀의 어머니도 그녀에게 이준혁 앞에서는 까불지 말라고 경고했었다.하지만 조금 전에 뺨을 맞은 게 생각나자 송소미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벌겋게 부어오른 얼굴을
영숙은 차갑게 말했다.“그 셋은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참을 수 있으면 참아. 아니면 피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이 터져도 내가 대신 해결해줄 일은 없을 거야!”소원은 바보가 아니었는지라 영숙의 말 속에 담긴 선의를 금세 알아챘다.다음에 또 그 셋을 마주친다면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결근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처럼 서로 계산만 가득한 곳에서 같은 여성이 보여주는 호의는 그녀에게 작지 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소원은 영숙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알겠습니다, 언니. 절대 폐 끼치는 일 없을 거예요.”소원이 미소 짓는 것을 보고 영숙은 잠시 멍해 하더니 어딘가 어색한 듯 담배를 끄며 고개를 돌렸다.그러고는 자리를 떠나면서 넌지시 말했다.“미친 거 아니야? 너 도와주는 거 아니라니까.”소원은 영숙이 떠난 후에도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이제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영숙은 선한 사람이었다.그녀가 왜 자신을 돕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진심과 가식은 구분할 수 있었다.그렇게 씻고 나서 소원은 다시 밖으로 나왔다.걸어가던 중에도 머릿속은 온통 서현재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정말 현재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번 기억 상실이 현재에게 축복일까, 아니면 불행일까?’만약 기억을 잃지 않았다면 서현재는 분명 싸울 것이었다.서씨 가문의 결혼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통제에도 절대 굴복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는 어두운 복도를 따라 걸으며 뒤편 문 근처에 도착했다.그 순간, 2층 창문 쪽에서 들려오는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렸다.희미하게 들리던 대화 속에 ‘서씨 가문’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자 소원은 멈춰 서서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기로 했다.“서씨 가문에서 요즘 그 사생아를 꽤 중시하는 것 같더라.”“사생아라니? 그 자식은 사생아보다도 더 낮은 존재야. 사생아조차도 못 되는 잡종이지.”“야, 그런 말 하면 큰일 난다. 서씨 가문 어르신이 그 사람을 중히 여긴다는데... 네가 그
소원은 손에 있는 10만 원의 현금을 꽉 움켜쥐었다.정말 ‘특별한 선물’이라는 게 대체 뭘 의미하는지 뻔했다.유진이, 그 아이가 그들의 손에 있다는 사실 말고 또 뭐가 있을까.소원은 고개를 약간 들어 방민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 뒷모습이 멀어질수록 머릿속 생각은 복잡해졌다.그때 진아연이 우연을 가장하며 소원 곁으로 다가왔다.“체리, 무슨 일이야? 오늘 손님이 그렇게 힘들게 했어? 어쩌다 이렇게 됐대?”진아연은 일부러 따라온 것이었다. 그녀는 방금 육경한의 태도와 방민아가 말하는 것을 전부 지켜보았다.육경한이 소원에게 보이는 태도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한때 그는 소원에게 미쳐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달랐다.현재 육경한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방민아였다.그리고 진아연의 생각에 오직 방민아만이 그와 어울릴 자격이 있었다.진아연은 속으로 흡족해했다.한때 육경한이 소원에게 보였던 미친 행동이 정말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것도 그저 지나가는 집착에 불과했던 것이다.육경한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오래된 것에 금방 싫증을 느끼는 사람이었다.‘그럼 내가 저질렀던 죄도 언젠가는 용서받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소원은 아무 말 없이 진아연을 외면했다.그녀와 대화하고 싶지도, 그녀의 속셈을 지금 당장 폭로하고 싶지도 않았다.소원은 진아연이 어떤 목적으로 접근했는지 그리고 그녀 뒤에 누가 있는지 지켜보고 싶었다.경솔하게 누군가와 한편이 되는 건 절대 안 될 일이었다.겉으로 도와주는 척하는 사람이 실제로는 자신을 이용해 다른 악행을 저지르려는 경우가 많았다.그리고 그런 일이 드러나면 결국 죄를 뒤집어쓰는 건 자신이었다.진아연은 소원이 말을 하지 않자 어딘가 거리감을 느꼈다.사실 그녀는 소원이 자신을 알아보는 게 두려웠지만 지금까지 소원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걸 보며 안심했다.소원이 자신을 의심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자신이 여전히 이 세상에 살아있다는 증거는 없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다만 그 사람으로
소원은 육경한을 바라보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육경한, 너희가 현재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너희 스스로가 잘 알겠지! 여기서 도덕적인 척하며 남 심판하지 마. 진짜 가장 비도덕적인 건 너희 같은 인간들이니까!”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육경한은 갑자기 손을 뻗어 소원의 목을 움켜쥐며 이를 악물었다.“그래, 내가 쓰레기라면 너네 현재는 뭐... 착한 사람이라는 거야?”소원은 목이 졸려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소원, 네가 그렇게 서현재가 착한 사람이라 믿는다면 나는 끝까지 너를 실망시키고 말 거야!”곧 육경한은 손을 거칠게 놓으며 소원을 벽에 내팽개쳤다.소원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어 헐떡였다.“똑똑히 봐. 남자는 변하지 않을 것 같지? 서현재도 변할 거야. 나 같은 쓰레기보다도 더 못한 인간으로.”그는 마지막으로 이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소원은 머릿속이 하얘져 무슨 생각도 할 수 없었다.육경한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그들은 서현재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걸 말이다.자신이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하게 만들어 서현재를 평생 후회하게 할 것이다.그리고 언젠가 진실을 알게 되더라도 그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게 될 것이다.소원은 바닥에 주저앉아 목을 감싸 쥐었다.목이 불에 데인 듯 화끈거렸다.또각또각.누군가가 하이힐 소리를 내며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방민아가 소원을 내려다보며 비웃음을 지었다.“소원 씨, 이렇게 보니까 정말 개 같아요. 꼬리를 흔드는 한심한 개 말이에요.”소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제 가식을 벗어던진 방민아와 얘기할 가치는 없다고 느꼈다.방민아는 가방에서 10만 원을 꺼내 소원의 머리 위에 던지며 경멸스럽게 말했다.“이건 경한 씨를 대신해 소원 씨에게 주는 팁이에요. 소원 씨가 어떤 존재인지 잊지 않길 바랍니다.”클럽에서 가장 낮은 등급의 서비스 요금이 바로 한 시간에 10만 원이었다.이 말은 방민아가
육연주의 두 친구가 분위기를 띄우는 듯 샴페인을 마구 뿌리며 축하하기 시작했다.물이 섞인 술이 소원의 온몸을 적셨다.모두가 환호하며 즐거워하는 가운데 소원만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에 사로잡혔다.그 물기가 가슴속까지 스며들어 얼음처럼 차가웠다.마음 깊은 곳까지 차갑고 그 차가움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소원은 서현재가 과거를 잊었기를 바랐음에도 육연주가 그의 인생에 어울리지 않는 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만약 서현재가 육연주와 함께한다면 그는 서씨 가문의 완벽한 통제 아래 놓이게 될 뿐 아니라 육연주의 지배 아래에서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지금도 서현재의 고통과 갈등이 그녀에게 보였는데 앞으로는 더 말할 것도 없을 터였다.만약 언젠가 서현재가 과거를 기억해낸다면 그것은 고통스러운 순간들의 시작일 것이다.그를 너무나 잘 알기에 소원은 미리부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만약 서현재가 기억을 되찾는다면 그 고통은 그를 완전히 무너뜨릴 것이 분명했다.소란이 끝난 후, 모두가 술을 꽤 많이 마신 상태였다.서현재도 붙잡혀 적지 않게 술을 마셨고 육경한과 방민아 역시 몇 잔 마셨다.특히 육연주와 그녀의 친구들은 거의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마셔버렸다.육연주는 친구를 서현재로 착각하며 안긴 채 사랑을 속삭였다.“현재 씨, 나 정말 현재 씨 사랑해요... 정말로... 근데 현재 씨는 왜 나를 신경도 안 써요...”“헤헤... 그래도 결국 현재 씨는 내 사람이 됐잖아요... 이제 내 거잖아요...”친구를 안고 입맞춤까지 하며 정신없이 울부짖는 육연주의 모습이 주변 사람들조차 당황하게 만들었다.서현재는 그런 그녀를 더 이상 쳐다보지 않았고 자신의 상태도 좋지 않아 가슴을 누르며 비틀거리더니 방을 나갔다.소원은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잠시 망설였다.아무도 서현재의 이탈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밖으로 나간 그녀는 그의 뒷모습이 복도 모퉁이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손님, 케이크 좀 드세요.”소원이 다시 한번 방민아를 불러서야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감사합니다.”계속해서 케이크를 나눠주던 소원이 서현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육연주가 갑자기 그것을 가로채며 말했다.“현재 씨, 현재 씨가 사 온 케이크가 얼마나 달콤한지 한번 먹어봐요.”이 케이크는 분명 서씨 가문에서 준비한 것이었다.서현재는 아무 말 없이 케이크를 받았다.이런 자리에서 굳이 육연주의 얼굴에 먹칠을 할 이유는 없었다. 비록 아무런 감정이 없어도 돌아가 서진태와 분명히 얘기할 때까지는 참아야 했다.육연주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소원이 자신의 친구들에게 케이크를 나눠줄 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그녀의 두 친구는 즉시 알아차리고 소원이 케이크를 나눠주고 돌아서기도 전에 양옆에서 그녀를 덮쳤다.“어머 어머!”모두들 단순한 생일 장난이라 생각하며 웃음을 터뜨렸다.하지만 두 친구는 일부러 더 심하게 장난을 쳤다.케이크를 얼굴에 던지고도 멈추지 않고 양손으로 얼굴에 더 세게 밀어붙이며 소원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게 만들었다.“연주야, 생일은 이렇게 즐겨야 재밌지 않겠어?”두 사람은 남은 케이크를 소원의 몸에 온통 문질러댔다.결국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케이크로 엉망이 되었고 마치 작은 밀가루 인형처럼 보일 때까지 괴롭힘을 당했다.곧 서현재가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한 기색으로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육연주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꺅!”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리자 육연주는 천천히 입에서 반지를 꺼냈다.눈부시게 빛나는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현재 씨가 준비한 깜짝 선물이에요?”육연주는 서현재를 끌어안으며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흑흑... 현재 씨, 정말 감동이에요.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해주다니...”이 반지는 서씨 가문에서 준비한 것이었지만 서현재는 전혀 몰랐다.반지가 번쩍이는 모습을 본 서현재는 무의식적으로 소원을 바라보았다.온몸이 케이크 범벅이 되어 표정을 읽을 수 없었지
육연주의 이런 행동은 남자들에게 더 미움을 살 뿐이었다.그러나 정작 본인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계속해서 서현재가 싫어할 행동만 골라서 하고 있었다.만약 육경한이 든든히 그녀를 지원해 주지 않았다면 서씨 가문조차 그녀 같은 질투 많은 여자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방민아에게는 이런 멍청한 아군이 필요한 존재였다.그녀는 육연주의 행동에 만족하며 손을 끌어 잡고 오늘 옷차림이 참 예쁘다고 열렬히 칭찬했다.그러자 육연주는 마치 깃털을 활짝 펼친 공작처럼 더욱 자랑스러워하며 우쭐해졌다.소원이 케이크를 자르러 오자 육연주는 일부러 서현재를 향해 말했다.“현재 오빠, 내가 방금 무슨 소망을 빌었는지 알아?”서현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대충 반응해 줄 생각조차 없었다.그는 자신이 이런 자리에 다시 온 것이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느꼈다.‘이렇게 강압적이고 몰상식한 여자가 과거 내가 사랑했던 사람일 리 없어.’최근 그는 자주 꿈을 꾸었다.꿈속의 여자는 나비의 날개처럼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고 그녀가 웃을 때면 별조차 빛을 잃는 듯했다.그녀는 일반적인 여자들과 달리 애교를 부리지 않았고 자유롭고 거침없으면서도 용감했다.그 순간, 서현재는 그녀에 대한 사랑이 폭발할 것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끝내 보이지 않았고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가슴 한구석의 공허함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때문에 서현재는 분명 누군가를 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누군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그 사람이 육연주는 아니라는 것이다.서현재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자 방민아가 나서며 분위기를 맞추려 했다.“연주야, 뭐 빌었는지 한번 말해 봐. 나랑 경한 씨도 듣고 싶거든.”그제야 덜 민망해진 육연주가 말했다.“현재 오빠랑 빨리 한 가족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어요.”방민아는 입을 가리더니 웃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소망이야? 두 사람은 곧 가족이 될 거잖아.”그리고 육경한을 바라보며 농담하듯 말했다.“연주가 정말 못 참
소원은 순순히 점화기를 육연주에게 건넸다.곧 육연주는 그것을 받아들고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저리 가서 구석에 서 있어요!”오늘은 자신의 생일,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이런 재수 없는 여자가 가까이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소원은 고개를 숙이고 ‘네’라고 대답한 뒤 조용히 구석으로 물러났다.어둠 속으로 물러나 섰지만 여전히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시선들이 따라오는 느낌이었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소원은 고개를 숙이며 바닥을 응시했다.이곳에는 소원을 미워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그 시선들이 더 뜨겁게 느껴졌다.육연주는 소원을 무시한 채 소망을 빌었고 이어서 서현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현재 오빠, 우리 같이 촛불 불어요. 네?”잡힌 손이 약간 굳어 있는 것을 느낀 육연주는 속으로 이를 악물었지만 손을 더 꽉 잡았다.‘삼촌 앞이라 내 손을 뿌리치지는 못할 거야. 안 그럼 서씨 가문이 삼촌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테니까.’역시나 서현재는 살짝 손을 빼려 했지만 실패하자 더는 저항하지 않았다.그러나 그는 눈을 내리깔며 육연주를 기다리지 않고 홀로 촛불을 꺼버렸다.“불 껐어.”서현재는 무심하게 말했다. 육연주의 굳어버린 얼굴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육연주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고마워요, 현재 오빠.”서현재는 말없이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자리에 앉았다.그 순간 소원이 고개를 살짝 든 것을 육연주가 보았다.육연주는 이를 악물며 억지로 웃음을 짓더니 이내 손가락으로 소원을 가리키며 말했다.“아가씨, 와서 케이크 좀 잘라봐요.”그녀는 소원을 ‘소원 씨’라고 부르지 않고 그냥 ‘아가씨’라고 부르며 명령조로 말했다.이런 곳에서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은 명백히 사람을 비하하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소원은 평온한 얼굴로 다가가 케이크를 자르기 위해 플라스틱 칼을 들었다.그러나 육연주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잠깐! 손 멈춰요!”소원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고 육연주는 혐오스럽다는 듯 말했다.“손은
육연주는 서현재와 단단히 팔짱을 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현재 오빠, 드디어 왔네요! 할아버지가 오빠 프로젝트 준비한다고 하던데 많이 힘들었죠?”서현재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팔을 뽑아냈다. 이어서 손을 주머니에 깊이 넣어 육연주가 다시 끼지 못하게 만들었다.지난번 서현재가 결혼식을 취소하겠다고 말한 이후, 육연주는 분노에 차 사흘간 그를 무시했다.그러나 사흘이 지나자 참지 못하고 서진태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했다.예상대로 서진태는 둘 사이의 갈등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사실을 알게 된 뒤 서현재를 심하게 꾸짖었다.그러나 이번에는 서현재가 처음으로 서진태의 말에 의문을 품었다.“제가 이 여자를 사랑했다고요? 혹시 거짓말하시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 제가 이런 여자를 사랑할 수 있죠?”서현재가 무언가 기억해낸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서진태는 속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지금의 서현재는 과거와 달리 순종적이라 서진태로서는 매우 만족스러웠다.예전에는 그가 서씨 가문과 육씨 가문의 협력을 무시하며 소원의 손에 증거 자료를 넘기고 결국 함께 도망친 일까지 있었다.하지만 기억을 잃은 후 서현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만약 약물을 과다 사용할 시 부작용이 생긴다고 의사가 말하지 않았더라면 서진태는 서현재가 평생 기억하지 못하도록 더 많이 투여하고 싶을 정도였다.의사는 기억 상실이 일시적이며 언제든 다시 떠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몇 년 혹은 10년이 지나도록 기억을 되찾지 못할 수도 있다고도 말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현재가 이렇게 빨리 의심할 줄은 서진태도 예상치 못했다.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내가 왜 너한테 거짓말하겠냐? 네가 먼저 그 애와 결혼하겠다고 고집부린 거잖아. 이제 와서 싫다고 하면 그 애는 어딜 시집가겠니? 네가 그 애의 평판을 이렇게 망쳐놓았는데.”서현재는 여전히 믿지 않았다.“제 안목이 그렇게 없을 리 없어요. 다른 사람에게 악독한 그런 여자를 좋아할 리 없잖아요.”서진태는 한숨을 내쉬며 서현재
소원은 말없이 있었지만 방민아는 내심 무척 즐거워했다.물론 그녀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육연주에게 다소 정색하며 말했다.“연주야,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그러고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소원에게 말했다.“그렇다면 다행이네요. 혹시라도 어려운 일 생기면 꼭 말해주세요. 소원 씨랑 경한 씨 서로 동창이잖아요. 도울 수 있는 건 도울 겁니다.”소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말하지 않았다.방민아는 자신이 충분히 ‘배려 깊은’ 모습을 보였다고 느끼며 만족한 듯했다.이어서 그녀는 작은 보석 가방을 꺼내 육연주에게 건네며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연주야, 이건 나랑 네 삼촌이 같이 고른 거야.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그러자 육연주는 기쁘게 가방을 받아들며 말했다.“언니는 뭘 주셔도 다 좋아요. 언니 눈썰미는 최고니까요.”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제윤’ 브랜드 최신작 보석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이 목걸이는 단순히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다이아몬드 등급의 회원만이 예약 가능한 특별한 제품이었다.육연주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모, 삼촌, 고마워요.”이 말에 방민아는 약간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아직 그렇게 부를 때는 아니잖아, 연주야...”그러자 육연주는 장난스럽게 웃었다.“곧 그렇게 부를 날이 오잖아요. 미리 연습하는 거예요.”“어머, 이 녀석 정말...”육연주는 방민아의 손을 잡고 앉으며 말했다.“어서, 저희 삼촌이랑 이모한테 술 한 잔 따라 드려요.”소원은 이 상황에서 육연주가 자신을 쉽게 보내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피할 수 없다면 정면으로 부딪치는 수밖에 없었다.소원은 무릎을 살짝 굽히며 술잔을 채운 뒤 육경한에게 건넸다.“드세요.”하지만 육경한은 어딘가 허공을 응시하며 잔을 받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드세요.”소원이 다시 말했지만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다.그때 방민아가 잔을 대신 받아들며 말했다.“죄송해요. 경한 씨가 요즘 술을 끊었거든요. 담배도 마찬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