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FTT 식당의 주방장이 불려와서 여울이가 좋아할만한 음식을 했다.그러나 여울은 몇 입 먹다 말았다.“싫어. 엄마가 한 게 좋아. 엄마가 한 건 다 맛있는데. 깨도 많이 뿌려주고. 하지만 여울이도 이제 엄마가 한 밥은 못 먹는 거 다 알아요.”그렇게 말하는 여울의 볼을 타고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하지만 애써 참는지 우는 소리는 내지 않았다.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애가 슬픔을 꾹 참으며 우는 것을 보니 하준은 더욱 마음이 아팠다.“우리 아빠한테 가보자.”하준은 이제 정말이지 더는 어쩔 방법이 없었다.“알았어요. 아빠한테 여름이 이모한테 가자고 해야지. 여름이 이모가 한 보쌈은 엄마가 한 것처럼 맛있거든요.”“강여름?”하준은 흠칫했다.“강여름을 말하는 거야?”‘이놈의 자식이 애까지 데리고 강여름을 찾아갔었어? 이런 뻔뻔한 자식을 봤나?’“몰라요. 어쨌든 여름이 이모는 이뻐. 내가 본 이모 중에 제일 예뻐요. 그리고 나한테도 엄청 잘 해줘요. 여름이 이모가 우리 새엄마 하면 안 돼요?”여울이 천진한 눈을 들어 물었다..“……”하준의 입술이 일자로 다물어졌다.‘강여름이 최양하의 아내가 되어 여울이 새엄마가 된다고?’생각만으로도 심장 깊은 곳에서 미친 듯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걔들은 안 돼!”“왜 안 돼요? 난 여름이 이모가 해준 거 먹고 싶은데.”여울이 고개를 숙이고 물었다.하준은 여울을 잠시 쳐다보다가 안아 올렸다.“큰아빠랑 여름이 이모한테 가서 맛있는 거 해달라고 하자.”“좋아요!”여울은 뛸 듯이 기뻐했다.----11시 반.하준은 다시 화신그룹으로 갔다.이번에는 아침에 여름에게 잔소리를 들은 경비가 하준의 차를 들여 보내주지 않았다.할 수 없이 밖에 차를 세워두고 여울을 안고 들어갔다.프론트에서 직원들이 하준이 자신과 똑 닮은 여자애를 안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완전히 깜짝 놀랐다. 다들 모여서 수근거리기 시작했다.“세상에, 최 회장 딸이야?”“보면 몰라? 딸 맞네.”“그런데 어디서 저렇게 큰 애
“아, 알겠습니다.”하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에 팀장들은 숨도 못 쉬고 허둥지둥 자리를 빠져나갔다.사무실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여울은 여름의 목을 끌어안았다.“엄마가 해준 밥이 먹고 싶어서요. 전에 아빠랑 이모네 가서 밥 먹었는데 엄마가 해준 밥이랑 똑같았다고 했더니 큰아빠가 데리고 왔어요.”그러더니 여울은 여름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엄마가 왜 갑자기 이모가 됐어? 최하준만 없었으면 엉덩이 맴매감인데….아니, 그나저나 이게 다 무슨 일이야?어쨌든 일단은 맞춰주는 수밖에 없겠군.’여름이 아무 말이 없자 하준은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애 하는 말 안 들려? 애기가 당신이 해준 밥이 먹고 싶다잖아.”“아니, 근데 왜 둘이 같이 있는데요?”여름은 마른 세수를 하며 진정하고 정신을 차렸다.“얘는 양하 씨 딸 아니야?”“양하한테 애가 있는 걸 알고 있었군.”하준의 말투에는 저도 모르게 원망스러운 감정이 실려있었다. 하준은 여름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보다 최양하가 딸이 있다는 사실을 여름에게 말할 정도로 둘 사이가 가깝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나도 얼마 전에 알았어요.”여름은 하준은 신경도 쓰지 않고 여울에게 다가가 안아 올렸다.“우리 여울이 뭐 먹고 싶어요?”“갈비, 보쌈, 조기구기…”“……”‘정말 누구누굴 닮아서 이놈의 식탐은 정말이지….’“그래, 그러면 우리 마트부터 갈까?”딸이 먹고 싶다니 여름은 열일을 제치고 여울을 데리고 나섰다. 내내 하준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무시당한 하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따라 나섰다.“어디서 할 건데?”“당연히 집에 가야지. 여긴 주방도 없으니까. 그리고 마트부터 가야 돼.”여름은 포기한 듯 하준을 돌아봤다.“당신은 가 봐요. 저녁에 내가 양하 씨한테 연락해서 애기 데려가라고 할 게.”“됐어. 내가 데리고 나왔으니까 내가 데려가면 되지.”하준은 벨트에 손을 대고 멋드러진 포즈로 여름 옆에 섰다.세 사람이 위풍당당하게 복도를
하준은 곧 시동을 걸고 백미러로 여름의 품에 안긴 여울을 보았따.순간 하준은 셋이 한 가족이고 자신이 아내와 딸을 데리고 쇼핑을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리고 그런 느낌이 전혀 싫지 않았다. 아니, 되려 가슴이 뿌듯해지는 기분이었다.뒷좌석에서는 여름이 여울에게 귓속말을 하고 있었다.“이 녀석! 들키면 어쩌려고?”“안 들켜요. 다들 내가 삼촌 딸인 줄 알아요.”여울이 속삭였다.“아까 그 나쁜 이모가 아빠를 찾아왔어요. 마음에 안 들어서 내가 아빠를 데리고 나왔어요. 내가 엄마 대신 복수했어.”“……”웃픈 일이지만 어쩐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요요, 똘똘한 녀석!’“됐어. 그 여자랑은 가까이 하지 마. 넌 아직 어려서 사람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 몰라. 엄마는 여울이를 잃을 수 없어.”“괜찮아요. 아빠가 날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그 나쁜 이모보다 날 훨씬 더 좋아해요.”여울이 확신에 차서 말했다.여름은 그 말을 듣더니 진지하게 여울을 들여다 보았다.“강여울, 너, 아빠를 엄청 좋아하는 거 아니야?”“뭐, 엄청 잘 생겼잖아요.”여울은 그렇게 말하면서 눈을 반짝였다. 분명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었다.“……”‘아이고, 누가 내 딸 아니랄까 봐 얼빠인 거 봐. 사람은 얼굴만 보면 안 된다고 나중에 단단히 가르쳐 놔야지 안 되겠어.’마트에 도착하자 여름이 여울이를 안아서 카트에 태우려고 했다.그러나 이제 여울이 꽤 묵직해져서 여름은 여울을 제대로 앉히지 못하고 헤맸다. 하준이 곧 손을 뻗어 안정적으로 여울을 카트에 앉혔다.여름의 시선이 하준의 팔뚝에 꽂혔다. 하준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힘은 좀 세지.”여름은 웃었다.“힘이 세긴 세지. 안 그랬으면 내가 그렇게 밀려서 쓰러지지도 않았을 텐데.”하준의 입에서 미소가 사라졌다.여름이 3년 전 자신이 밀어 넘어지면서 아이를 잃은 일을 말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미간에서 냉기가 흘러넘쳤다.여울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목소리로 물었다.“큰아빠, 이모를
하준은 곧 복잡한 심경이 되었따.백윤택은 배상을 안 했다 하더라도 백지안은 배상을 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내 앞에서는 그렇게 죄책감에 괴로운 척 하더니….’여름은 하준이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고 식재료를 들고 주방으로 갔다.여울이 소파에 앉아서 교육방송을 보는 동안 주방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풍겨왔다.점심도 못 먹은 하준의 배에서는 내내 꼬르륵 소리가 났다.여름은 곧 음식을 하나씩 내놓기 시작했다.갈비와 보쌈이 어쩐지 매우 익숙했다.여름은 여울에게 밥을 담아주었다. 하준은 여름이 밥을 퍼주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알아서 밥을 뜨러 갔다. 그런데 밥솥을 열어보니 밥이 한 톨도 남아있지 않았다.“강여름, 내 밥은 안 했어?”하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당신도 먹겠다고 하지 않았잖아? 그리고 내가 여울이 밥 해준다고 했지 당신 밥 해준다고 안 했는데? 왜? 오후 3시인데 회장님이 밥도 못 먹은 거야?”여름은 팔짱을 꼈다.하준이 으르렁거렸따.“애 데리고 당신한테 가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밥 먹을 시간이 어디 있어?”여름은 여울이에게 보쌈을 싸주더니 곧 조기도 가시를 하나하나 발라 가며 먹였다.여울은 다람쥐처럼 떠끔떠끔 잘 받아 먹었다.잠시 후 입에 문 음식을 삼키지도 못하고 입을 열었다.“이모가 해주는 고기 진짜 맛있다!”“……”‘맛있지… 나도 먹고 싶다고.’여울은 하준의 마음을 읽었는지 보쌈을 하나 싸서 내밀었다.“난 이거 제일 좋아하는데 먹어 봐요.”하준은 얼른 받아 먹었다. 뱃속에서 식충이가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너무 맛있잖아.이건 세 그릇 각이라고.’하지만 여울은 고기를 한 점 주더니 그 다음부터 하준은 안중에 없었다.하준은 결국 젓가락을 들고 식탁에 앉았다.‘밥이 없으면 고기만 먹으면 되지.’여름이 원래 많이 하지도 않은 데다 식성이 같은 부녀가 다투며 먹다 보니 음식은 곧 바닥이 났다.여울은 갈비 그릇을 앞으로 당기더니 한껏 불쌍한 얼굴을 했다.“큰아빠 그만 먹어요. 이건 내 거야
“응.”여울이 얼른 고개를 끄덕이더니 넘쳐 흐르는 눈물을참으려고 눈을 깜빡였다.“이모가 해주는 밥 먹으면 엄마 생각 나요. 이모가 우리 엄마 같아.”그러더니 여름의 품에 폭 안겼다.“이모, 우리 엄아 하면 안 돼요?”“……”꼬맹이가 어찌나 쇼를 빠르게 끌고 가는지 연기파인 여름조차도 꼬맹이의 속도를 따라가기 벅찼다.‘이 녀석, 당장 스크린 데뷔를 해도 되겠네.’“안 돼!”여름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하준이 불쑥 무거운 목소리롤 입을 열었다.여울이 하준을 쳐다보더니 놀라서 여름에게 다시 얼굴을 묻고 울었다.“큰아빠 무서워.”“애 겁 먹게 왜 그래요?”여름이 화나서 노려봤다.하준도 여울을 무섭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여름이 양하와 결혼한다는 생각을 하니 저도 모르게 노기가 뿜어져 나온 모양이었다.“여울아 미안.”하준이 얼른 사과했다.“네가 아직 어려서 모르는 일이 있어서 그래. 여름이 이모는 아빠랑 결혼할 수 없어.”“왜 안 돼요?”여울이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물었다.“아빠랑 이모랑 잘 어울리는데.”“뭐가 어울려?”하준이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여름이 이모가 전에 내 부인이었거든. 이모가 아빠랑 결혼하면 우리 사이가 엉망이 돼. 할머니 할아버지도 동의하지 않으실 거야.”“그렇구나.”여울이 진지하게 생각했다.“그러면 큰아빠랑 결혼하면 되겠다. 그러면 나랑 가족이 되는 거죠?”여울의 말이 떨어지자 거실에 정적이 깔렸다.하준은 무의식적으로 여름을 쳐다봤다. 여름이 고개를 숙이며 흘러내린 머리를 귀 뒤로 넘겨 따스한 옆 모습이 드러났다.“안 되지.”여름이 부드럽게 말했다.“우리는 결혼했었는데 안 맞아서 이혼했거든. 그리고 큰아빠는 곧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랑 결혼할 거야.”“아, 아침에 그 이모구나.”여울이 고소하다는 얼굴로 하준을 쳐다봤다.“불쌍하다. 이제부터 그 이모가 해주는 맛 없는 밥 먹겠구나. 나는 이제부터 계속 이모가 해주는 맛있는 밥 먹을 건데.”하준은 팩트를 딱 얻어 맞고는 마음이
“만나지 말라는 건 아니야.”하준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듯 실룩거렸다.“이모가 보고 싶으면 내가 데려올게. 아빠는 안 돼.”“왜 안 돼요?”여울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음표 가득한 얼굴을 했다.“큰아빠가 이모를 좋아해요? 그래서 질투해요?”하준의 검은 눈이 확 커졌다.‘내가 강여름을 좋아한다고? 요런 꼬맹이고 알아볼 정도로 그렇게 티가 났나?’“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하준의 표정이 무거워졌다.“좋아하는 게 뭔지나 아냐, 네가….”“알아요. 옛날에 옆집에 잘 생긴 오빠가 있었거든요. 근데 그 오빠가 다른 애들이랑 놀면 기분이 안 좋아요.”여울이 입을 비죽거렸다.“그게 질투잖아.”“……”하준은 골치가 아팠다.“아니, 하여튼 그냥 그런 게 있어. 집에 가자.”하준은 여울과 계속 이러고 대치하고 있다가는 머리만 아파질 것 같았다.“좋아하면 그냥 좋아한다고 말해요.”여울이 으쌰으쌰 하는 포즈를 하며 응원했다.“큰아빠는 결혼할 사람이 있어. 사람이 양다리를 걸치면 안 되는 거야.”하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자신에게 하는 경고이기도 했다.----부녀를 보내고 나서, 여름은 차를 몰고 유치원에 하늘을 데리러 갔다. 유치원 원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사뭇 귀여우면서도 의젓했다.“하늘이 오늘 첫날인데 어땠어? 재미있었어?”여름이 다정하게 물었다.“재미없었어요. 애들이 다들 너무 유치해.”하늘이가 부루퉁했다.“난 7세 반에 들어가고 싶어요.”“…음… 안 되는데. 아직 4살 밖에 안 돼서 7세 반에는 못 들어가.”여름은 한숨을 쉬었다.‘애들이 자랄수록 성격이 확연하게 드러나는구나. 하늘이는 점점 최하준을 닮는데 먹고 마시는 취향은 나랑 똑같고, 여울이는 성격이나 머리는 날 닮아서 영리한데 먹고 마시는 취향은 최하준이랑 똑같아.’그 날은 서경주가 퇴원하는 날이었다.여름은 하늘을 데리고 벨레스 별장으로 갔따.여름이 서경주에게 미리 얘기를 해놓기는 했지만 막상 하늘을 만나더니 서경주는 매우 감격했다.“하늘아, 앞으로
지금 급한 적은 역시나 백지안이었다.아이를 데리고 있으려니 언제 들킬까 조마조마했었는데 친정에 맡기고 나니 한시름이 덜어졌다.저녁에 하늘이 잠들자 여름은 산장에서 빠져 나왔다.차에 타서 바로 전화 번호를 하나 눌렀다.“곽철규 쪽 상황은 어때?”“허구한 날 도박에 술에 바쁩니다. 이틀 연속 밖에서 여자를 데리고 들어갔어요.”육민관이 한탄했다.“백지안은 매주 3번 오는데 한 번 오면 7~8시간 있다가 갑니다. 쯧쯧, 정말이지 최하준에게 병이나 안 옮았을까 모르겠어요. 조만간 옮을 건데….”“시끄러워.”여름은 마른 세수를 했다. 육민관은 입만 열면 그 소리를 하니 여름은 심장이 벌렁거렸다.“놈과 교섭할 사람은 좀 알아봤어?”“다 알아 놨습죠. 그런데 곽철규가 이제 수중에 돈을 다 썼지 싶습니다. 곧 백지안에게 돈을 요구할 거예요. 이제 백지안도 얼마 못 버티지 싶습니다.”“내가 백지안이면 결혼하기 전에 곽철규를 해치우고 싶을 거야.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으니까.”“그러면….”“놈을 살려둬야 해. 결혼식 당일까지 살려 놔야 빅엿을 날리지.”“알겠습니다.”육민관이 답했다.‘살면서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이 있다니까….’----다음날.하준의 본가, 최양하는 아침을 먹고 출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울이 양하를 꽉 껴안았다.“아빠~ 같이 회사 갈래. 할머니 보고 싶어요.”최양하는 할 수 없이 여울을 안았다.“내가 모를 줄 알고? 또 아빠 찾아가려고 그러지?”“삼촌, 내가 어젯밤에 그 나쁜 이모한테 복수할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어요.”여울이 간절한 눈을 했다.“꼭 가고 싶어요. 아, 그리고 이따가 데리러 오지 마세요. 나 그 이모네 가서 자고 와야 돼요. 내가 생각해 놓은 게 있거든요. 이따 말해줄게요.”복수심에 불타는 여울을 보고 최양하는 한사코 거절할 수도 없어서 결국 여울을 데리고 회사에 갔다.어제 여울이 회사에서 지낸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회사에는 이미 그 집안에 꼬마 아가씨가 하나 늘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최양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냐?”하준은 아까 여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최양하, 이제 딸도 있는 사람이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놀러 나가느라고 애를 뒷전에 둬? 여울이에게는 아빠가 필요하다고.”“하지만 저도 가끔은 자유가 있어야지요. 솔직히 처음에는 저도 딸이 생겨서 좋았습니다만 며칠 지나니 너무 얽매여서 자유도 없고 힘듭니다. 여울이가 어머니와 자려고 하지도 않고…. 그러니 형님께 부탁드릴 수밖에요. 잘 부탁드립니다.”그러더니 최양하는 전화를 끊었다.이때 여울이가 울먹울먹 하며 하준을 바라보았다.“아빠는 날 안 좋아하나?”“아니야. 아빠가 일이 있어서 그래. 오늘 밤에는 큰아빠 집에 가서 자자, 어때?”하준은 너무 마음이 아파서 여울이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좋아요.”얌전한 여울을 보면서 하준은 속으로 최양하에게 욕을 퍼부었다.‘이렇게 귀여운 아기를 두고 귀찮다니 그게 말이야? 난 부러워 죽겠구먼, 나쁜 녀석.”----해변 별장.백지안은 차 소리를 듣고 기쁜 얼굴을 꾸미고 뛰어나왔다. 그런데 하준의 어깨에 매달린 여자애를 보는 순간 표정이 어두워졌다.“준, 쟤는….”“오늘 여기서 잘 거야.”하준이 간단하게 설명했다.“이모님께 애 먹을 반찬을 좀 해달라고 하지.”“그래.”백지안은 울컥했다. 요즘 하준은 자신에게 영 뜨뜻미지근한 반응이라 오늘밤에는 한껏 애교를 떨 생각이었던 것이다.그 와중에 여울이 달달하게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이모 오늘 예쁘네요.”“고마워. 너도 귀엽구나.”백지안은 어쩔 수 없이 대꾸했다.저녁을 먹는데 하준의 휴대 전화가 울렸다. 하준은 얌전한 여울을 흘끗 보더니 백지안에게 부탁했다.“잠깐 애 좀 봐줘.”그러면서 하준은 전화기를 들고 저쪽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나 생선 좀 주실래요? 너무 멀어서요.”여울이 말랑말랑한 손으로 조기를 가리켰다.백지안은 생선을 한 조각 떼어 툭 던졌다.어쩐 일인지 꼬맹이를 보기만 하면 짜증이 났다.그런데 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