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은 병이 재발했는데 사모님이 떠나려 한다면서 회장님이 사모님을 와인 창고에 가뒀어요. 말리는 이모님까지 소동 속에서 쓰러지셔 가지고 제가 또 오밤중에 구급차 불러서 이모님 병원으로 모셔드리고…. 이제는 정말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눈물을 줄줄 흘리는 지다빈을 보고 송영식은 열이 뻗쳤다.“아니 정말 제정신이 아니구먼, 어디 보자….”“진정해.”이주혁이 송영식을 잡았다.“하준이 꼴을 보라고. 지금 하준이 병세가 더 급해. 내 생각에는 여름 씨가 하준이를 자극해서 병세를 악화시키고는 재산을 가져가려고 노리는 것 같아.”지다빈이 조그맣게 말했다.“제가 아침에 몰래 가서 와인창고 문을 열어놨거든요. 도망가시라고요. 아무래도… 사람을 그렇게 가둬두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아서요. 회장님이 또 발병해서 사람 해치고 그러면 어떡해요?”이주혁이 동의하는 듯한 얼굴을 했다.“잘했어요. 사람을 가두는 건 안 되지.”“하지만 깨어나셔서 저한테 뭐라고 하시면…”지다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흐렸다.“우리가 풀어줬다고 말해요.”이주혁이 말했다.“고맙습니다.”얼마 안 있어 하준이 깨어났다. 머리를 꽉 잡고 있는 모습이 많이 아픈 듯 보였다.“하준아, 좀 괜찮아?”송영식이 다정하게 물었다.하준이 친구들을 보더니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너희들이 왜 여기 있어? 강여름은? 밤새 집에 안 왔어?”“……”다들 깜짝 놀랐다. 송영식은 이상한 표정으로 이주혁과 시선을 나누었다.이주혁이 한참 만에 물었다.“하준아, 어젯밤 일이 기억 안 나?”“어젯밤에 뭘 어쨌는데? 잤잖아?”하준이 의아해 했다.“그저께 밤에 강여름이랑 싸웠거든. 어젯밤에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길래 짜증이 났었는데 침대로 와서 어쩌다가 잠들었나 보네.”이주혁이 하준의 어깨를 토닥였다.“솔직하게 말해줄게. 어젯밤에 너 또 여름 씨랑 대판 싸웠대. 지금 집에서 나갔어. 이모님은 네가 밀어서 다치시는 바람에 입원하셨고. 다행히 어젯밤에 이모님께서 다빈이를 불러놨더라고.”하준의
호반빌.강변에 별장이 늘어서 있고 단지 안에는 호수와 구장 등 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다.직원은 여름과 윤서를 데리고 전기차로 단지 안을 구경시켜 주었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위층에 있던 매니저가 여름의 얼굴을 알아보고 놀라서 안색이 확 변하더니 바로 대표에게 알렸다. 대표는 다시 곧 상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혁은 전화를 받고 즉시 하준에게 보고했다.“사모님이 집을 사시나 봅니다.”서재에서 서류를 보고 있던 하준은 안색이 확 변했다.“아니 부부싸움 좀 했다고 집을 사다니 무슨 뜻이야? 이제 아주 집에 안 들어오겠다 그런 뜻인가?”“……”상혁은 입을 다물었다.‘그게 어딜 봐서 그냥 부부싸움입니까?’그렇지만 하준을 자극할 수는 없어서 좋은 말로 위로했다.“아마도… 투자 같은 거 아닐까요? 요즘 좀 사는 댁 사모님들은 부동산 투자 같은 걸 잘하시니까요.”하준이 안색이 다시 돌아오더니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말했다.“내 와이프가 투자를 하겠다면 거기 얘기해서 제일 저렴한 가격에 달라고 해. 90% 할인 받아.”“……”상혁의 입가가 떨렸다.“아니, 회장님, 그렇게 90%씩 할인을 받으면 사모님께서 의심하실 텐데요. 그러면 집을 안 사실지도 모릅니다.”하준이 ‘아 진짜 짜증나네’ 표정으로 상혁을 한 번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그러면 70% 할인해주라고 해. 더 받지 말고.”“……네.”상혁은 할 말을 잃었다.이렇게 어렵게 고객에게 할인을 해주기는 또 처음이었다.******호반빌 정원.여름과 윤서는 한 번 둘러보고 이곳이 꽤 마음에 들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가격이 좀 세다는 것이었다.“해주실 수 있는 최대한 할인된 가격을 말씀해 주세요. 그러면 돌아가서 좀 생각해 볼게요.”여름이 마지막으로 부탁했다.“네, 그러면 제가 윗분께 좀 여쭤보고 오겠습니다.”직원이 올라가서 잠깐 있더니 매우 놀란 얼굴로 돌아왔다.“좋은 소식입니다. 대표님께서 마침 1000번째 고객이시라 대표님께서 50% 할인을 해주신다고 합니다. 그리
윤서가 와락 여름의 어깨를 부여잡았다.여름은 아무 말 없었다.‘잘 됐다. 이렇게 자유로운 게 얼마 만이야? 간만에 바에 가서 한 번 진탕 놀아봐야지.’******밤 9시.두 사람은 함께 바에 들어섰다.이런 분위기가 너무 오랜만이라 여름은 결혼 이전으로 돌아간 듯 자유로움을 느꼈다. 그런데 마시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하와이언 셔츠를 입고 불량스러운 얼굴을 한 사람이 다가왔다.“임윤서, 오랜만이다? 이런 데서 다 만나네?”그 사람은 씩 웃으며 윤서의 얼굴을 만졌다.윤서의 안색이 확 변하더니 손을 탁 쳐냈다.“백윤택 씨, 관심 없다고 말했을 텐데요. 저한테 함부로 손대지 마시죠.”여름은 깜짝 놀랐다.‘이 사람이 백지안의 오빠 백윤택이구나.’“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침대에서 내 기술 보고 나면 아주 날 잊지 못하게 될걸.”백윤택이 가식적인 웃음을 웃으며 계속 윤서를 만지려고 들었다.“우리 집안에 들어오면 영광으로 여기게 될 거라니까.”“계속 이러시면 경찰을 부르던지 동생에게 연락하겠어요.”여름이 윤서를 뒤로 보냈다.“아이코, 이게 뭐야? 아유, 무서워라.”백윤택이 여름을 빤히 보더니 갑자기 웃었다.“어, 이제 보니까 최하준이 마누라잖아? 누가 이렇게 건방진가 했네.”여름은 기분 나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윤서가 여름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우리 여름이는 FTT의 사모님이라고요, 내 절친이기도 하고. 괜히 건드렸다가 큰코다칠 줄 알아요.”백윤택은 그 말을 듣더니 껄껄 웃었다.“최하준 본인이 여기 와 있으면 모를까, 겨우 최하준 마누라 따위. 그리고 솔직히 내가 최하준 마누라를 어쩐다고 해도 몇 대 맞으면 끝날걸.”여름은 백윤택의 건방진 꼴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무거웠다.‘백윤택이 하는 말은 사실인지도 몰라.백지안의 오빠니까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지른대도 최하준이라면 함부로 어쩌지 못하겠지.’백윤택의 시선이 거침없이 여름을 위아래로 훑었다.“쯧쯧쯧쯧, 내 동생 미모 반도 안 되겠네. 대체 무슨 운이 그렇
“입 다물어. 너 같은 인간쓰레기 손에 들어갔다가는 영하도 곧 끝장이야.”백소영이 백윤택의 어깨를 확 잡아 돌리더니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바닥에 처박았다.여름과 윤서는 깜짝 놀랐다. 윤서가 제일 먼저 박수를 쳤다.“좀 하시네요! 너무 근사해요.”백윤택은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자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야, 두고 보자고. 내가 널 가만두나 봐라.”그러더니 비틀비틀 일어서서 가슴을 부여잡고 바 문을 나섰다.“고마워요.”여름이 와인 두 잔을 따라 하나를 백소영에게 건넸다.이전까지는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면 오늘은 완전히 백소영에게 감탄하고 말았다.“천만에요. 마침 이쪽을 지나가다가 바에서 그 인간이 일 벌이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서 와 본 것뿐이에요.”백소영은 와인을 꿀꺽 단번에 다 마셔버렸다.“너무 멋있어요.”윤서가 엄지를 들어 보였다.“내가 남자였으면 따라다녔을 것 같아요.”“별말씀을. 멋있어서 뭐에 쓰게요.”백소영이 자조적으로 웃었다.“제가 사과를 드려야 할 판인데….”“친오빠도 아닌데 사과는요, 무슨.”여름이 의자를 끌고 왔다.“잠깐 같이 앉아요.”백소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망설였다.“됐어요. 우리는 같은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에요. 만약 최 회장이 알았다가는….”“이미 최하준 씨와는 헤어졌어요.”여름이 말을 끊었다.“이제 더는 바보짓 안 하려고 그 집에서 나왔거든요.”백소영이 흠칫했다. 강여름이 이렇게 시원스럽게 박차고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그래도 돼요?”“잠깐 세게 아픈 게 가늘고 길게 아픈 것보다야 낫죠.”여름이 억지로 웃어 보였다.“사실 백지안의 존재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죽은 사람을 두고 신경 쓰는 것도 우습고 했는데 대체할 사람이 나타났다면 이건 뭐 게임이 안 되는 거잖아요?”“그렇네요. 세상에 하고많은 남자 두고 굳이 죽은 사람에게 집착하는 사람한테 목맬 이유도 없고요.”윤서가 동의했다.“최하준이 돈이 많다지만, 뭐 돈 없는 사람 있나요? 가서 벌면 되는 거.”“말
최하준이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데 지다빈이 우유를 들고 서 있었다.“머리 말려드릴까요?”살짝 손이 닿았을 뿐인데 하준은 홱 몸을 움츠렸다.“됐습니다.”하준은 우유를 마시더니 건조하게 말했다.“내려가 봐요. 일 있으면 부를 테니까.”“하지만….”차마 그러기 싫다는 눈으로 지다빈이 말했다.“지금 상태로는 혼자 계시면 위험한데, 제가 간이침대라도 놓고 곁에서….”“아니, 됐습니다”하준이 확 인상을 쓰더니 직설적으로 말했다.“여기는 나와 내 와이프의 공간이에요. 다른 여자가 오래 머무르는 거 불편합니다.”“죄송합니다. 제가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 했네요.”지다빈은 당황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침실에서 나오면서 지다빈은 입술을 깨물었다.‘내 얼굴이 이렇게 백지안이랑 닮았는데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뭐, 어쨌든 목표의 반은 달성했으니까.’지다빈이 빈 우유컵을 보더니 싸늘하게 씩 웃었다.지다빈이 나가고 나서 하준은 침대에서 여름과의 톡을 열어보았다. 여전히 아무런 메시지는 없었다. 스토리도 텅 비어 있었다.‘이 사람이 말이야, 그까짓 거 부부싸움 좀 했다고 집을 나가서 소식도 없고 말이야.평생을 같이하겠다더니 나만 집에 남겨 놓고, 어?’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인터넷을 열었다가 메인 화면에 뜬 를 발견하고 얼굴이 굳어졌다. 급히 클릭해 보았다.화려한 조명 속에서 여름이 윤서, 백소영과 함께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었다. 셔츠를 허리에 묶어서 춤을 추면 배와 허리가 다 드러나는 것이 사뭇 매혹적이었다.하준은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아니, 이 사람이 어디 가서 얌전히 있는 줄 알았더니 춤을 추고 다녀 가지고 온 나라 사람들이 다 알게 만들어?집에다 가만히 앉혀 놓고 못 나가게 했어야 하는 건데.’하준은 여름에게 바로 톡으로 그 영상 링크를 보냈다. 잠시 후 채팅창에 ‘1’은 사라졌는데 여름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전화도 걸리지 않았다. 차단을 해 놓은 것이 분명했다.‘이런 젠장.’화가 나서
하준이 입술을 핥더니 결국 아무 말 없이 시동을 걸었다.둘은 곧 바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던 백윤택이 곧 다친 허리를 손으로 받치고 다가왔다.“왔어? 다들 아직 안에서 춤추고 있는데.”그런데 말 끝나기가 무섭게 안에서 셋이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 나왔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걸음도 똑바로 못 걸어서 비틀거렸다.“아직 들 마셔써! 더 마셔야쥐. 내가, 낵아, 나는 지금 3차까지 갈 수 이따 이거야!”윤서가 손을 높이 쳐들었다.“오늘 우리 머꼬 죽자!!!!”“난 그럼 먼저 치맥부터 먹고 싶어.”백소영이 끄덕였다.여름이 덧붙였다.“그러고 나서 내 집으로 가서 밤새 마시자!”“와, 쵝오야 증짜! 남자는 다 꺼지라 그래!”“남자들 다 꺼져!”최하준의 얼굴이 까맣게 되었다.‘아주 잘하는구먼, 날더러 꺼지라는 건가, 지금?’하준은 성큼성큼 다가가 여름을 홱 낚아챘다.“집에 갑시다.”여름을 다치게 할까 봐 한동안 떨어져 있으려고 했는데 이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여름을 곁에 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눅우야? 이거 왜 이러세요?”여름이 몽롱한 눈을 들어 상대를 쳐다봤다. 하준이라는 것을 알자 머릿속에 지다빈이 하준의 몸에 올라타 있던 장면이 번개처럼 확 꽂혔다. 갑자기 속이 메스꺼웠다. 여름은 ‘우웩!’하더니 저녁에 마신 술을 하준에게 다 게워냈다.“강여름 씨!”하준이 이를 갈며 한 자 한 자 힘주어 불렀다.“회장님!”지다빈이 급히 다가와 하준의 몸에 묻은 오물을 닦아 냈다.윤서는 그 장면을 보니 울컥했다. 들고 있던 핸드백으로 지다빈의 등짝을 내리쳤다.“넌 전생에 남자가 없어서 죽었냐? 왜 가는 데마다 남의 남편한테 붙어 있어? 이게 진짜 뻔뻔하네?”졸지의 일격에 당한 지다빈은 ‘아야야…’하고 소리 질렀다.여름은 속으로 통쾌했지만 말리는 척했다.“아우, 윤서야. 그러면 안 되지….”말은 그렇게 했지만 윤서에게 다가가면서 발을 헛디딘 척 지다빈에게 툭 부딪혀 지다빈이
“수준이 낮아? 그 수준이 대체 뭔데?”이때 여름의 눈에 하준 뒤에 선 백윤택이 보였다.“저런 사람은 달고 와서 뭐 하는 거예요? 지금 저 사람 대신 나한테 화풀이하는 거예요?”정곡을 찔리자 백윤택이 소리 질렀다.“이봐요, 진짜로 백소영 같은 인간이랑 친해지면 안 된다니까요. 쟤는 목적이 있어서 접근하는 거라고요.”“아까는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굴더니 갑자기 존댓말은 또 뭐지? 아까 대충하고 넘어가 준 게 후회되네, 진짜.”백소영이 백윤택을 노려봤다.백윤택은 놀라서 다시 바로 하준의 몸 뒤로 숨었다.“저거 봐. 쟤가 저런다니까.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사람 막 협박하고….”“내가 그동안 너무 자비로웠나 보군.”하준이 싸늘하게 뱉었다.“잘 들어. 한 번만 더 내 와이프 주변에서 얼씬거렸다가는 영하 대표 자리에서도 물러나게 될 줄 알아.”백소영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입술을 깨물었다. 여름이 백소영의 손을 꼭 잡더니 하준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백소영 씨는 내 주변에 얼씬거릴 필요 없어요. 오늘부터 내가 백소영 씨 주변에 얼씬거릴 거거든요. 소영 씨는 내가 서울 와서 처음 사귄 친구예요.”하준은 폭발했다.“내가 저 사람이 얼마나 위험하고 악랄한 속을 잘 감추는 사람인지 그렇게 말을 했는데, 아직도 붙어 다닙니까? 생각이라는 걸 안 해요?”“네, 내가 머리에 생각이라는 걸 안 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당신 같은 사람을 사랑했었나 봐요.” 여름이 냉소를 띠었다.“대체 누가 위험하고 악랄한 속을 잘 숨기는 사람인지 모르겠네. 백소영 씨는 나한테 아무것도 거짓말한 거 없어요. 하지만 내 남편이라는 사람은 전 여친이랑 똑닮은 사람을 밤낮으로 끼고 다니는 주제에 입으로는 날 사랑한다네? 정말 더러워.”하준은 흠칫했다. 놀라움과 당황이 눈을 스치더니 곧 싸늘한 시선이 백소영을 향했다.“네가 말했나?”백소영은 아무 말이 없었다. 여름이 그 앞을 막아섰다.“영하를 볼모로 잡고 협박하는데 백소영 씨가 그런 말 나한테 할 수 있겠어요? 당신이랑 백지
“그만, 제발 그만하고 우리 집으로 가자.”여름이 침착을 찾을수록 하준은 더욱 당황했다.그러나 여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되려 입가에 조롱하듯 웃음을 띠었다.“당신 전 여친 때문에 내가 백소영이랑은 친구가 될 수 없다니 그렇게 백지안을 못 잊겠으면 대신 그냥 지다빈이랑 살아요. 흔쾌히 이혼해드릴게요.”“왜 이래, 정말. 지금 내가 사랑하는 건 당신이야.”하준은 머리가 아팠다. 이제 대체 무슨 말을 해야 여름이 믿어줄지 알 수가 없었다.“그래, 나를 사랑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게 백지안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정도인 거야.”여름이 씁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오늘은 지안이 닮은 지다빈이라지만, 내일 또 얼마나 더 지안이 닮은 사람이 나타날지 모르지. 나는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대용품일 뿐이에요. 난 이런 상태로 계속 살 수는 없어요. 미안해요. 당신은 아픈 사람이니까 이런 말은 하면 안 되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의 병은 앞으로 내가 함께 극복해 나갈 수 없을 것 같아요. 부디 스스로 몸 잘 돌보세요.”“아니야, 아니야. 당신은, 강여름은 이 세상에 하나뿐이야. 아무도 대체할 수 없어. 가지마. 제발 가지 말아줘.”하준은 있는 힘껏 여름을 안았다. 이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된 아이처럼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이 차가운 세상에서 여름만이 자신이 곁을 지켜주었다. 이제 여름이 떠나가면 하준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정말 하나도 없었다.“이제 그만 해요. 나는 당신에게 그렇게 소중한 사람이 아니야. 당신 친구들도 나를 비난하고, 당신은 툭하면 사람을 감금하지. 이젠 친구 사귀는 것까지 당신이 동의가 있어야 하다니… 이젠 다 그만두고 싶어.”여름은 힘껏 하준을 뿌리치려고 했다. 그러나 하준은 여름을 더 한껏 껴안았다.“가지 마. 난 당신이 없으면 안 돼. 다빈이는 가라고 할게, 응? 우리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하준은 너무나 두려웠다. 여름과 이런 지경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그저 아무것도 아닌 부부싸움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