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양유진은 그윽한 눈으로 여름을 내려다볼 뿐이었다.“오랜만이네요.”“네, 막 퇴근하다가 여름 씨가 보여서 저도 모르게 들어와 버렸습니다.”양유진이 조금 슬픈 목소리로 물었다.“요즘 잘 지냅니까? 아까 보니까 별로 기분이 안 좋아 보이던데….”“아뇨. 그냥 생각을 좀 하느라고요.”여름은 부인했다.“하긴, 이제는 사랑하는 남자의 품으로 돌아갔으니 기뻐야겠지요.”양유진이 자조적으로 웃었다.“양 대표님, 죄송해요….”여름은 너무나 죄책감이 느껴졌다.“이번에는 천만에요, 라고 말하지 못하겠네요.”양유진이 씁쓸하게 웃고는 크루 손에서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더니 하나를 여름에게 건넸다.“저… 저는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여름은 당황해서 핑계를 대며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이제는 저랑 잠시도 같이 있기 싫은가요? 정말 잔인하군요.”양유진이 애원하는 얼굴로 말했다.결국 여름은 모질게 굴지 못했다.두 사람은 자리를 잡고 앉아서 사는 얘기와 회사 얘기를 잠시 나누었다.그러느라고 맞은 편에 앉은 누군가가 몰래 사진을 찍는 줄도 몰랐다.30분쯤 앉아 있다가 여름이 다시 핑계를 대며 일어섰다.“잠시만요….”양유진이 갑자기 여름의 손을 잡았다.여름은 무의식적으로 확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이제는… 손만 잡아도 이렇게 놀라는군요.”양유진의 눈동자가 조금 어두워졌다. 심하게 충격받은 듯했다.“하긴, 예전에도 나는 건드리지도 못하게 했었죠.”“제가 빚을 많이 진 것은 알아요. 네 평생을 두고 갚겠다고 했었죠. 하지만 이제 사람 마음이라는 것은 억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요. 저는… 제 신장을 대표님께 이식해 드릴게요.”여름은 결심한 듯 굳은 얼굴로 말했다. 양유진은 깜짝 놀랐다. 한참 후에야 약간 화난 얼굴을 했다.“여름 씨, 날 뭐로 보는 겁니까? 네, 저 화났습니다. 씁쓸하네요. 날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보상받고 싶지는 않습니다.”양유진은 천천히 일어서더니 주머니에서 사진을 한 장
“……”여름이 깜짝 놀라 양유진을 쳐다봤다.‘화이트 스노우 월드라고?’화이트 스노우는 유명한 테마파크였다. 안에는 세계 각지의 재미있다는 온갖 놀이 시설이 다 들어있고 가운데에는 동화에나 나올 것 같은 높다란 성도 있었다.양유진이 여름에게 가엾다는 시선을 보냈다.“심지어 백지안을 기념하기 위해서 FTT에서는 테마파크에 ‘백’에서 따온 ‘화이트’를 이름에 넣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여름 씨를 부러워할지 몰라도 재벌가에서는 당신을 조롱하고 있어요, 그건 알고 있습니까?”“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군요.”여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저히 더는 들을 수가 없었다.“한 가지 더 있습니다.”양유진이 갑자기 거칠게 여름의 팔을 잡았다.“예전에 왜 윤정후가 여름 씨를 해치려고 했는지 압니까?”“……”여름의 입술이 떨렸다.양유진은 여름에게 피할 기회를 주었다.“윤정후는 최하준이 백윤택의 소송을 도와주는 바람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백윤택이 바로 백지안의 오빠예요. 그래서 최하준은 무작정 백윤택을 도와주고 싶었던 겁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안하무인이고 양심 없는지는 접어두고, 최하준은 백지안을 위해 자신의 원칙도 버릴 수 있었던 거예요.”여름은 멍해졌다. 짐작은 하고 있었다.그러나 다른 사람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걸 들으니 심장이 너무 아파서 질식할 것 같았다.여름은 하준이 돈 때문에 그런 일을 벌였다고 생각했었다.하준이 엄청난 금수저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그저 이기는 것이 좋아서 그런 줄 알았다.‘그게 아니었어. 모든 것이 다 백지안을 위해서였어.대체 백지안이 최하준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길래.양유진은 마음 아픈 듯 고개를 숙였다.“여름 씨는 최하준이 전 여친을 위해 벌였던 일 때문에 죽을 뻔했습니다. 잘못은 최하준이 저질렀는데 왜 강여름 씨가 저에게 빚을 갚습니까?”“그만 하세요.”여름은 더 듣기 싫었다. 곧 이성이 모두 날아갈 지경이었다.“여름 씨, 당신이 이성을 찾았으면 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최하준
소리에 놀란 이진숙이 달려왔다. 하준은 미친 듯했다. 테이블 위의 그릇을 하나씩 집어 던졌다. 손에서는 피가 흘렀다.이진숙은 얼른 여름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러나 응답이 없었다.거실 상황이 점점 더 심각해지자 이진숙을 할 수 없이 지다빈을 떠올렸다.‘회장님 병이 도진 것 같은데 그래도 지다빈 씨가 회장님을 잘 돌봤었지.’******패스트푸드점에서 나온 다음.여름은 차도 타지 않고 내내 길을 따라 걸었다.얼마를 걸었는지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화이트 스노우 월드 앞이었다.캐슬 위에서 화려한 불꽃이 터졌다.깜짝 놀라서 보고 있는데 한 쌍의 연인이 옆을 지나갔다.“불꽃 너무 예쁘다.”“그렇지? 왜 이 시간에 하는지 알아?”“몇 시지? 10시 10분이네?”“응, 10시 10분에 235발로 만든 불꽃이래.”“그러면 1010235, ‘열렬히 사모’?”“오, 똑똑한데? 이 테마파크는 몇 년 전에 어느 금수저가 여자친구에게 바친 거래. 테마파크 오픈 전날 금수저는 여자친구에게 청혼하려고 했대. 그날 밤에는 이 일대 하늘이 온통 불꽃으로 가득했고, 가운데에는 LOVE라는 모양의 불꽃도 만들었다더라. 그날부터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매일 주말 10시 10분이면 235발 쏘는 불꽃놀이를 한대. 여기서 같이 불꽃 보는 연인은 평생 행복해진다던데?”“너무 로맨틱하다. 그 금수저 여친 부럽네. 둘은 행복하게 잘살고 있겠지?”“그렇겠지.”“……”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여름이 정신을 차려보니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1010235, 테마파크, 불꽃놀이....아름다운 한 편의 동화 같잖아.그런데 그 금수저는 여친이 세상을 떠나고 이렇게 이상한 얼굴을 한 사람이랑 결혼을 해버렸네.’여름은 후회됐다.‘애초에 최하준의 곁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면 이렇게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을 텐데.’******자정.여름은 무거운 다리를 끌고 별장으로 들어갔다.마침 소파에서 졸던 이진숙이 여름을 보고 놀라서 펄쩍 뛰었다.“사, 사모님. 오셨어
여름의 눈에 큰 침대에서 편안히 잠든 하준이 보였다. 그런데 지다빈이 하준 곁에 반쯤 누워 있었다. 두 사람은 손까지 꼭 잡고 있었다.인기척을 느낀 지다빈이 벌떡 일어나 앉더니 여름을 보고 불안해했다.“저, 오해하지 마세요….”여름은 아무 말 없이 와락 달려들더니 지다빈의 어깨를 뒤로 밀쳤다.“처음부터 수상했어. 간호하라고 했지, 누가 남의 남편 옆에 누우라고 했어?”“그런 게 아니에요.”지다빈이 억울하다는 듯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뭐가 아닌데?”여름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어제 내가 나가라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하루도 안 돼서 다시 들어와서는 이제 여주인 행세를 해? 수치심이라는 걸 모르나?”“아, 시끄러워.”침대에서 자던 하준이 갑자기 깼다. 피곤한 듯 일어나 앉던 하준의 눈에 눈물을 뚝뚝 흘리는 지다빈과 기세등등하게 서 있는 여름이 들어 왔다.“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하준이 노기 어린 눈으로 여름을 쏘아 보았다.“집에 오자마자 사람부터 잡다니 내가 우스워 보여서 이럽니까?”여름은 눈이 커졌다.‘그러니까, 나는 집에 와서 다른 사람이 남편이랑 손을 잡고 침대에 누워 있는 꼴을 보고도 가만히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단 말이야?내가 지금 이 모든 진상을 알고도 어떤 마음을 그러 모아서 집으로 돌아왔는지 알지도 못하면서.그래도 아픈 사람이라고,아무리 내 마음이 아파도 이 고비는 넘고 다음 일은 다음에 생각하자 다짐하며 돌아왔는데.내가 둘의 연애를 방해했다 이거야?’“지다빈 씨 왜 여기 있어요?”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여름이 지다빈을 가리켰다.“어제 나가라고 하지 않았어요?”“내가 내보내고 싶으면 내보내고 들이고 싶으면 들일 겁니다. 내 마음이지.”하준의 눈이 분노에 벌겋게 달아올랐다.‘지다빈을 내보내라고? 저는 나 몰래 나가서 양유진이랑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면서 공공장소에서 희희낙락하다 들어온 주제에 지금 내 기분이 어떤지는 알고 저러는 거야?’“그래, 알겠어요.”상처 받은 여름의 심장은 이제 아주 너덜너덜해졌
악마… 악마…그 듣기 싫은 단어가 하준의 뇌를 자극했다. 하준은 힘껏 귀를 막았다.듣고 싶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증오하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하준은 자신에게 병이 있다는 것도, 여름이 왜 자신을 싫어하는지도 잘 알았다.이진숙이 와서 하준이 팔을 잡았다.“사모님께 이러시면 안 돼요. 일부러 그런 말을 하신 게 아닐 거예요. 회장님하고 지다빈 씨가 너무 친밀한 모습으로 있어서 그만….”그러나 하준은 이진숙의 말은 듣지도 않고 팔을 꼭 잡고 매달린 이진숙을 힘껏 뿌리쳤다. 그 바람에 이진숙이 벽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히고 기절했다.지다빈이 즉시 하준의 팔에 주사기를 찔러 넣었다. 하준은 쓰러지더니 얌전해졌다.거실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와인 창고에서 울부짖는 여름의 울부짖음만 들렸다. 지다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정하던 눈이 번뜩하고 악마처럼 빛났다.‘강여름,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거다.’******와인 창고.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러봤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그래도 와인 창고는 창문이 없다 뿐이지 등도 들어오고 온도 조절기도 돌아가고 있었다.여름은 하준의 마음속에서 자신은 죽은 사람은 물론이고 죽은 사람의 대용품보다도 못한 존재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최하준, 나도 이제 더는 못하겠어.’너덜너덜해지도록 목숨 걸고 싸워봤지만 결국 아름다운 결과는 얻지 못했다.여름은 이제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한동안 갇혀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일단 잤다. 한참 자고는 깨어나서 문을 두드리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문에 손을 대자마자 문이 열리는 것이었다.여름은 깜짝 놀랐다. 안에서 살그머니 나와서 보니 이미 다음 날 아침 9시였다. 거실은 조용했다.그대로 도망가려다가 어젯밤 하준이 화내던 모습을 생각하니 나중에 어찌 되었으려나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가만히 침실 문을 밀어보았다.살짝 열린 문틈으로 보니 하준이 상반신을 드러낸 채 엎드려 있고 지다빈이 슬립 하나만 입은 채로 하준의 등 위에
“회장님은 병이 재발했는데 사모님이 떠나려 한다면서 회장님이 사모님을 와인 창고에 가뒀어요. 말리는 이모님까지 소동 속에서 쓰러지셔 가지고 제가 또 오밤중에 구급차 불러서 이모님 병원으로 모셔드리고…. 이제는 정말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눈물을 줄줄 흘리는 지다빈을 보고 송영식은 열이 뻗쳤다.“아니 정말 제정신이 아니구먼, 어디 보자….”“진정해.”이주혁이 송영식을 잡았다.“하준이 꼴을 보라고. 지금 하준이 병세가 더 급해. 내 생각에는 여름 씨가 하준이를 자극해서 병세를 악화시키고는 재산을 가져가려고 노리는 것 같아.”지다빈이 조그맣게 말했다.“제가 아침에 몰래 가서 와인창고 문을 열어놨거든요. 도망가시라고요. 아무래도… 사람을 그렇게 가둬두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아서요. 회장님이 또 발병해서 사람 해치고 그러면 어떡해요?”이주혁이 동의하는 듯한 얼굴을 했다.“잘했어요. 사람을 가두는 건 안 되지.”“하지만 깨어나셔서 저한테 뭐라고 하시면…”지다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흐렸다.“우리가 풀어줬다고 말해요.”이주혁이 말했다.“고맙습니다.”얼마 안 있어 하준이 깨어났다. 머리를 꽉 잡고 있는 모습이 많이 아픈 듯 보였다.“하준아, 좀 괜찮아?”송영식이 다정하게 물었다.하준이 친구들을 보더니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너희들이 왜 여기 있어? 강여름은? 밤새 집에 안 왔어?”“……”다들 깜짝 놀랐다. 송영식은 이상한 표정으로 이주혁과 시선을 나누었다.이주혁이 한참 만에 물었다.“하준아, 어젯밤 일이 기억 안 나?”“어젯밤에 뭘 어쨌는데? 잤잖아?”하준이 의아해 했다.“그저께 밤에 강여름이랑 싸웠거든. 어젯밤에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길래 짜증이 났었는데 침대로 와서 어쩌다가 잠들었나 보네.”이주혁이 하준의 어깨를 토닥였다.“솔직하게 말해줄게. 어젯밤에 너 또 여름 씨랑 대판 싸웠대. 지금 집에서 나갔어. 이모님은 네가 밀어서 다치시는 바람에 입원하셨고. 다행히 어젯밤에 이모님께서 다빈이를 불러놨더라고.”하준의
호반빌.강변에 별장이 늘어서 있고 단지 안에는 호수와 구장 등 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다.직원은 여름과 윤서를 데리고 전기차로 단지 안을 구경시켜 주었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위층에 있던 매니저가 여름의 얼굴을 알아보고 놀라서 안색이 확 변하더니 바로 대표에게 알렸다. 대표는 다시 곧 상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혁은 전화를 받고 즉시 하준에게 보고했다.“사모님이 집을 사시나 봅니다.”서재에서 서류를 보고 있던 하준은 안색이 확 변했다.“아니 부부싸움 좀 했다고 집을 사다니 무슨 뜻이야? 이제 아주 집에 안 들어오겠다 그런 뜻인가?”“……”상혁은 입을 다물었다.‘그게 어딜 봐서 그냥 부부싸움입니까?’그렇지만 하준을 자극할 수는 없어서 좋은 말로 위로했다.“아마도… 투자 같은 거 아닐까요? 요즘 좀 사는 댁 사모님들은 부동산 투자 같은 걸 잘하시니까요.”하준이 안색이 다시 돌아오더니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말했다.“내 와이프가 투자를 하겠다면 거기 얘기해서 제일 저렴한 가격에 달라고 해. 90% 할인 받아.”“……”상혁의 입가가 떨렸다.“아니, 회장님, 그렇게 90%씩 할인을 받으면 사모님께서 의심하실 텐데요. 그러면 집을 안 사실지도 모릅니다.”하준이 ‘아 진짜 짜증나네’ 표정으로 상혁을 한 번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그러면 70% 할인해주라고 해. 더 받지 말고.”“……네.”상혁은 할 말을 잃었다.이렇게 어렵게 고객에게 할인을 해주기는 또 처음이었다.******호반빌 정원.여름과 윤서는 한 번 둘러보고 이곳이 꽤 마음에 들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가격이 좀 세다는 것이었다.“해주실 수 있는 최대한 할인된 가격을 말씀해 주세요. 그러면 돌아가서 좀 생각해 볼게요.”여름이 마지막으로 부탁했다.“네, 그러면 제가 윗분께 좀 여쭤보고 오겠습니다.”직원이 올라가서 잠깐 있더니 매우 놀란 얼굴로 돌아왔다.“좋은 소식입니다. 대표님께서 마침 1000번째 고객이시라 대표님께서 50% 할인을 해주신다고 합니다. 그리
윤서가 와락 여름의 어깨를 부여잡았다.여름은 아무 말 없었다.‘잘 됐다. 이렇게 자유로운 게 얼마 만이야? 간만에 바에 가서 한 번 진탕 놀아봐야지.’******밤 9시.두 사람은 함께 바에 들어섰다.이런 분위기가 너무 오랜만이라 여름은 결혼 이전으로 돌아간 듯 자유로움을 느꼈다. 그런데 마시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하와이언 셔츠를 입고 불량스러운 얼굴을 한 사람이 다가왔다.“임윤서, 오랜만이다? 이런 데서 다 만나네?”그 사람은 씩 웃으며 윤서의 얼굴을 만졌다.윤서의 안색이 확 변하더니 손을 탁 쳐냈다.“백윤택 씨, 관심 없다고 말했을 텐데요. 저한테 함부로 손대지 마시죠.”여름은 깜짝 놀랐다.‘이 사람이 백지안의 오빠 백윤택이구나.’“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침대에서 내 기술 보고 나면 아주 날 잊지 못하게 될걸.”백윤택이 가식적인 웃음을 웃으며 계속 윤서를 만지려고 들었다.“우리 집안에 들어오면 영광으로 여기게 될 거라니까.”“계속 이러시면 경찰을 부르던지 동생에게 연락하겠어요.”여름이 윤서를 뒤로 보냈다.“아이코, 이게 뭐야? 아유, 무서워라.”백윤택이 여름을 빤히 보더니 갑자기 웃었다.“어, 이제 보니까 최하준이 마누라잖아? 누가 이렇게 건방진가 했네.”여름은 기분 나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윤서가 여름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우리 여름이는 FTT의 사모님이라고요, 내 절친이기도 하고. 괜히 건드렸다가 큰코다칠 줄 알아요.”백윤택은 그 말을 듣더니 껄껄 웃었다.“최하준 본인이 여기 와 있으면 모를까, 겨우 최하준 마누라 따위. 그리고 솔직히 내가 최하준 마누라를 어쩐다고 해도 몇 대 맞으면 끝날걸.”여름은 백윤택의 건방진 꼴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무거웠다.‘백윤택이 하는 말은 사실인지도 몰라.백지안의 오빠니까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지른대도 최하준이라면 함부로 어쩌지 못하겠지.’백윤택의 시선이 거침없이 여름을 위아래로 훑었다.“쯧쯧쯧쯧, 내 동생 미모 반도 안 되겠네. 대체 무슨 운이 그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