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변태입니까?”하준은 손을 옮겨 여름의 어깨를 양손으로 잡아 눌렀다. 도발적인 눈빛이었다.여름은 저도 모르게 하준의 입술을 손으로 막았다. 얼굴은 불에 댄 것처럼 화끈거렸다.“입 다물어요.”“왜? 이제 내가 싫어졌습니까?”여름의 손을 걷어내고 이를 갈며 말했다.“강여름 씨, 내가 떠나고 며칠도 안 지났는데 쪼르르 양유진한테 가서 약혼을 했더군요. 할 말 있으면 해 보시지. 양유진은 당신이 지금 나와 함께 있는 걸 알고 있을까?”“그만해요.”여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양유진만 떠올리면 미안해서 죽을 것 같았다.힘없이 풀이 죽은 여름의 모습은 하준을 자극했다. 더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붉은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여름을 증오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입술이 닿자마자 느껴지는 익숙한 향기는 하준을 금새 달아오르게 했다.‘빌어먹을! 너무 달콤하잖아.’여름은 한참동안 버둥거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두 손은 이미 하준에게 제압당한 상태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남자의 힘은 도저히 꺾을 수가 없었다. 하준은 몸을 더 밀착시켜왔고 키스는 더욱 깊어졌다. 여름은 정신이 혼미해졌다.‘이 사람은 날 떠났어.’떠난 최하준을 생각하며 뜬 눈으로 지새운 밤이 여러 날 이었다. 약혼을 하긴 했지만 양유진이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접촉을 피해왔었다.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여름은 하준의 숨결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쾅!”귀에 어렴풋이 아래층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지만 키스에 집중한 하준은 신경 쓰지 않았다.잠시 후, 누군가 밖에서 작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하준 씨, 여기 있어요?”두 사람은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았다.이것은? 서유인의 목소리였다.여름은 새파랗게 질려 그를 밀어냈다. ‘나 어떻게 된 거 아냐?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을….’그 여자친구는 지금 문 밖에 와있다.하준은 짜증이 나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빌어먹을, 서유인이 어떻게 여길 들어왔지?’하준은 재빨리 몸을 일으켜 문 쪽으로 걸어갔다. 슬쩍 뒤
“나가.”하준은 가차없이 유인을 내쫓았다.서유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시울을 붉혔다.“난 당신 여자친구예요.”“여자 친구따위 언제든 바뀌는 거지.”하준은 서유인의 손목을 잡아 끌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하준이 먼저 스킨십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서유인은 오히려 살짝 기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서유인은 곧장 대문 바깥으로 쫓겨났다.“이봐요, 벨도 안 누르고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하다니, 당신 집안은 기본적인 소양도 안 가르칩니까?”서유인은 속이 상할 대로 상해서 울먹이며 말했다.“기본적인 소양이라고요? 그럼 그러는 최하준 씨는 집 안에 다른 여자랑 같이 있으면서 나한테 들킬까 봐 이러는 거 아녜요?!”하준의 얼굴이 시커멓게 굳었다.‘이게 기어이 선을 넘는군.’“내가 하는 일을 하나하나 서유인 씨에게 해명해야 합니까? 주제 파악부터 하시지.”말을 마친 하준은 ‘탁’하고 문을 닫아버렸다.서유인은 문 밖에 서서 한동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럴 줄 정말 몰랐다. 하준은 지금까지 저에게 예의 바르게 대해왔다. ‘그 많은 명문가 아가씨들 중에서 나한테 첫눈에 반한 거 아녔어?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변해?저 안에 여우 같은 것이 들어 앉아 최하준을 홀리고 있는 거야.’******하준은 문을 잠근 뒤, 상혁에게 전화해 번호키를 교체하라고 지시했다.전화를 끊으면서 여름이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옷을 갈아 입었는지 하준의 셔츠와 파자마 바지를 입고 있었다. 헐렁한 셔츠가 오히려 여름을 돋보이게 하는지 섹시해 보였다.하준이 미간을 좁히며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남자 옷을 입은 여자가 이렇게 고혹적일 줄 미처 몰랐다.여름이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왔다. 그러나 이런! 헐렁해서 입을까 말까 망설였던 파자마 바지가 급기야 주르륵 발 밑으로 흘러내렸다!“……”몇 초가 몇 시간 같았다. 본능적으로 손을 내려 재빨리 흘러내린 바지를 추켜 올렸다.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하준은 여름을 안고 소파에 털썩 앉았다.“일부러
하준이 싸늘한 얼굴로 주머니에서 카드키를 꺼내 여름에게 주었다.“가지고 있어요. 앞으로 언제라도 내가 부르면 오십시오.”여름이 복잡한 얼굴로 물었다.“서유인에게 들키면요?”“볼 테면 보라지. 상관 없습니다. 이 나이에 여자도 못 만나본 남자 있습니까?”하준의 말이 끝나자 초인종이 울렸다.문을 열었더니 상혁이 봉투를 들고 들어왔다.“옷 사왔습니다. 아 참, 9시에 회사에 미팅 잡혀있습니다.”“알았어.”하준이 물건을 받아서 여름의 품에 안겼다.“가서 갈아입어요.”여름은 봉투를 받아서 올라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내려왔다. 하준은 가고 없었다. 테이블에 어제 송영식의 유람선에 놓고 왔던 핸드폰이 놓여있었다.들어보니 서경주와 양유진에게서 문자와 톡이 와 있었다. 윤서에게서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급히 전화를 걸었다. 곧 통화가 됐다. 잠이 덜 깬듯한 윤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왜, 무슨 일 있어?”“넌 괜찮아?”여름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나? 나는 괜찮지.”윤서가 고개를 갸웃했다.“그런데 어제 밤에 자료 준다고 갔다가 너무 마셨나 봐. 잠이 들었는데 회사 사람이 집에 데려다 줬더라고. 앞으로는 이러지 말아야지.”“......”여름은 알듯했다. 어젯밤 일은 송영식이 벌인 짓이다. 윤서는 아직까지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여름은 잠시 생각해 보다가 말하지 않기로 했다.윤서 성질에 회사에서 난리를 칠 텐데, 송영식은 애초에 자신들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고 하준이 이제 송영식을 꽉 잡고 있으니 앞으로 함부로 여름의 친구에게 손을 대지는 못할 것이란 판단이 섰다.“괜찮으면 됐어. 그래도 다음부터는 조심해 그러고 나가서 술 취해서 다니지 말고.”“그래. 그런데 이상하다. 내가 그래도 주량이 꽤 되는데 어제는 몇 잔 안 마셨는데도 취했어. 술이 너무 독한 거였나?”여름은 씁쓸하게 웃었다. 술을 섞어 먹였던지 했겠지.하준이 사는 곳을 나와 그대로 화신 서울 사무소로 갔다.하루 동안 서울 상황을 파악해보니 화
화요일, 서경주가 여름을 데리고 본가에 갔다.여름은 서경주에게 선물을 건넸다.“며칠 전에 친구랑 쇼핑하러 나갔다가 하나 샀어요. 원단이 꽤 편해보이더라고요.”“우리 딸 안목이 좋구나. 괜찮은데? 내일 바로 입어 봐야겠다.”서경주는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할아버지랑 할머니 것도 샀는데 좋아하실지….”“괜찮다. 그 분들이 뭐 부족한 분들은 아니니 성의를 보이는 게 중요하지.”서경주가 웃었다.서경주의 본가도 서명산 근처에 있었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본가에 거의 다 왔을 무려 하늘에서 ‘투투투투’하는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다. 여름이 창문을 열고 내다봤다. 서경주는 마침내 딸과 이야기할 거리를 찾았다.“서울에 돈 좀 있는 사람들은 헬기를 가지고 있단다. 쿠베라의 헬기겠지”“송영식의 그 쿠베라요?”여름의 입에서 송영식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 남자에게는 호감을 가지지 않았다. 하준이 그런 자와 친구라니 유유상종이겠거니 싶었다.“송영식 대표도 아는구나.”서경주가 웃었다. “송영식 대표와 최 회장은 절친이지. 두 사람이 색깔만 다른 똑같은 브랜드의 헬기도 샀어. 최 회장은 눈에 띄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자주 타지는 않더라. 그런데 며칠 전 밤 12시에 갑자기 헬기를 타고 나가서 다들 그 집에 무슨 큰일이 생겼구나 했지.여름이 움찔했다. 갑자기 지난번에 유람선에서 취했던 생각이 났다. 그때 무슨 비행기 같은 것을 탄 것 같았는데 그때는 꿈인가 보다 했던 것이다.“그게 언제예요?”“그게, 잘 모르겠구나. 아마도 화요일이나 수요일 쯤일 게다.”서경주가 의아해했다.“왜 그러니?”“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요.”여름은 좀 멍해졌다. 수요일이라면 일이 벌어졌던 바로 그 날이었다.하준이 헬기를 타고 오다니, 뭣 때문에 그렇게 다급했겠는가, 자신을 보고 싶어 왔다면 우스운 소리겠고, 아니면, 걱정이 돼서?그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그럴 리가, 그 남자가 뭐 그렇게 마음이
할아버지 서신일은 만족스러운듯 고개를 끄덕였다.“그게 맞지. 최 회장은 명문가에서 아내를 골라야 할 텐데, 우리 집안이 돈이 부족한 집안도 아니고 보석이 부족하지도 않지. 어디 없는 집 자식처럼 그러면 못 쓴다.”“그러니까 말이에요. 누구처럼 보석에 입이 헤벌레 해가지고 있는 사람하고는 차원이 다르지.”고모가 여름을 흘겨보며 비웃었다.다들 조용히 웃었다. 서경주가 불쾌한 기색을 띠고는 막 한 소리 할 참이었다.여름이 웃었다.“그러게요. 그런데 저는 정말 너무 좋아서요. 비싼 보석을 받아서 그렇다기 보다는 할머니께서 저에게 주신 것이라 너무 기쁘네요.”여름이 잠깐 말을 멈추더니 눈물이 그렁그렁 해지더니 눈시울을 붉혔다.“오는 길에 내내 엄청 두근거렸어요. 저는 유인이랑 달라서 어려서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살았던 게 아니잖아요. 유인이는 성격도 애교스럽던데 저는 그런 것도 잘 할 줄 모르고, 어려서부터 외삼촌 손에 자라서 식구들하고 잘 지낼 줄도 몰라요.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저를 안 좋아하실까 봐 걱정했는데, 할머니께서 이렇게 선물까지 준비해 주시다니 그래도 마음 한 자락에 제 자리가 있구나 싶어서요.”그렇게 말하면서 감동했다는 듯 할머니를 쳐다보았다.할머니는 아들에게 딸이 하나 더 생겼다는 소리를 듣고 기쁘긴 했지만, 그 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이 손녀에게 더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대충 고른 악세사리였는데 손녀애가 그렇게 감동을 하니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 지경이었다.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얼른 손짓을 했다.“이리 와서 할머니 옆에 앉으렴. 다 우리 집 손녀들인데, 네가 고생이 많았다. 외삼촌이랑 외숙모가 잘 안 해줬니?”“전에는 그래도 잘 해주셨는데 친딸이 돌아오고 나서는 냉담해 지셨어요. 오래된 집에 갇혀서 밥도 제대로 못 먹은 적도 있어요.”여름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TH도 그렇게 처지는 집안이 아니던데 설마?”여름의 손을 꼭 잡은 할머니를 보고는 눈꼴이 시어 유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맞은 편에 앉아있던 서경재가 웃었다.“유인이는 최 회장이랑 언제 약혼하니?”서유인이 다들 부러워 하느 시선으로 쳐다보는 것을 느끼고 부끄러워 하며 대꾸했다.“할머니께서 올해나 내년에 하라고 하세요. 약혼 말고 그냥 바로 결혼하라고 하시더라고요.”“정말 마음이 급하신가 봐.”고모가 웃었다.“곧 우리 유인이가 FTT사모님 되겠네?”할아버지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최 회장 잘 잡아야지. 이제 우린 너만 믿는다.”유인이 기뻐했다.“실망시키지 않을게요, 할아버지.”다들 서유인을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데도 여름은 그다지 불편한 기분도 없었다. 그저 담담하게 맞은 편에 앉은 서경재를 흘끗 보았을 뿐이다. 아버지의 둘째 형이라는 서경재는 휠체어에 앉아서 음침한 느낌을 주었다.“아 참, 여보. 지난 번에 우리 동생에게 강변 개발건 주기로 했잖아요. 왜 갑자기 당신네 회사 사람들한테 들으니 화신에 주기로 했다는 것 같던데?”위자영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여름의 젓가락이 움찔했다. 서경주가 이마를 찌푸렸다.“화신은 여름이 회사잖아. 처남은 서울에서 개발 경력도 꽤 되고 돈도 꽤 벌었잖나? 이번에는 여름이에게 양보 좀 해. 얘도 슬슬 서울에서 자리 좀 잡아야지.”“무슨 소리에요? 지난 번 개발건 손해 막심해서 강변 쪽 개발 프로젝트만 보고 있던데.”위자영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이미 기획서도 다 준비했던데. 여보, 일단 지웅이네를 좀 도와줘요. 우리가 여름이한테 다른 데 개발 프로젝트 하나 찾아주는 것쯤은 일도 아니잖아요.”고모도 고개를 끄덕였다.“먼저 지웅이네 웅산을 도와 줘. 여름이는 아직 젊은데 아랫사람들 다루기가 쉽지도 않고 결국 이도저도 안 돼서 실패나 하지.”서경재도 거들었다.“경주가 영 안 내켜 하거든 내일 유인이가 최 회장 한 번 찾아가 봐라. 최 회장한테는 간단한 일일 걸.”할아버지가 바로 말을 끊었다.“됐다. 그 프로젝트는 웅산에 넘겨.”여름은 고개를 떨구었다. 눈에 자조적인 웃음이
유인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지더니 작은 소리로 답했다.“엄마, 하준 씨 성격 이상하고, 나 사실 그 사람 잘 알지도….”“그래도 가! 최 회장한테 안 먹힐 것 같으면 그 댁 할머님이라도 찾아가. 이제는 우리 집안이 어떤 집인지 보여줄 때가 되었어.”위자영이 말했다.서유인의 눈이 빛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승마장.잘 빠진 말이 초원에서 자유롭게 뛰어 놀고 있었다. 말에 타서 채찍을 휘두르며 검은 기수복을 입은 사람의 모습은 귀족적으로 보였다. 온 몸으로 남성적인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곧 말이 멈춰 섰다. 하준이 말 등에서 뛰어 내려 목의 단추를 몇 개 풀었다.회사 임원진이 곧 몰려왔다.“회장님, 승마 시술이 일취월장 하십니다.”“피버를 이렇게 타실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하준은 아무 표정이 없이 싸늘하게 모두를 돌아봤다.“아부들 떨 거면 빨리들 떨고 가시죠.”임원 하나가 간신히 입을 뗐다.“언제쯤 회사로 돌아오십니까? 자리를 비우신 지 4개월이 지났습니다. 회사 이윤은 계속 추락하고, 부회장님은 저희말은 듣지도 않고 혼자 하고 싶은 대로만 하십니다. 제발 회사로 돌아와 주십시오.”“저희는 회장님이 필요합니다.”“돌아오십시오.”하준은 상혁이 내민 물을 받더니 꿀꺽꿀꺽 마사고는 냉담한 눈으로 말했다.“됐어. 다들 가봐요. 다음주에 돌아가지.”“정말 잘 됐습니다. 어서 돌아오십시오. 저희는 그만 가보겠습니다.”임원진은 신이 나서 하나씩 돌아갔다.그 모습을 보고 상혁이 가볍게 웃었다.“4개월 떠나 계시는 동안 최양하 부회장이 전혀 중역의 마음을 사지 못했군요.”“최양하는 제 아버지를 닮았지. 놈의 깜냥이 어느 정도인지는 내가 잘 알아. 다만 우리 어머니는, 날 마음에 안 들어 하시겠지만.”하준이 가볍게 말했다.상혁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속으로는 너무 하준에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하준 씨.”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불렀다.하준은 이마를 찌푸리고 돌아섰다. 하얀 스웨터를 입
경박하기 짝이 없군.하준은 채찍을 휘두르더니 가버렸다.유인은 훤칠한 뒷모습을 넋을 잃고 쳐다봤다. ‘정말 너무 멋있어. 저런 남자를 보고 나니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니까.꼭 저 남자와 결혼하고 말 거야.’******사무실.오봉규 사장이 의기소침해서 여름에게 보고했다.“강변 개발 건은 웅산에 가기로 결정되었답니다.”여름이 깜짝 놀랐다.“어제는 절차만 밝으면 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최 하준 회장 쪽에서 이야기가 들어왔답니다. 웅산은 위 씨네 가문 기업인데 그쪽에서 최 회장 쪽에 줄을 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오봉규가 괴로운 얼굴을 했다.“저희도 이번 프로젝트를 따려고 자금도 꽤 썼는데 아무래도 허탕친 것 같습니다.”여름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웅산이 어떻게 최하준에게 줄을 댔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하준이 정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웅산을 도와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최소한 옛정은 생각해주지 않을까 했는데….아니지, 그 인간이랑 나 사이에 무슨 정이 있겠어?’“다른 지역을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여름이 물었다.“지금은 다들 강변 쪽만 바라보고 있는 데다 다른 지역은 너무 지가가 높아서 프로젝트를 따내도 이득이 없습니다.”오봉규가 답답한 듯 말했다.“그냥 서울을 포기하시죠. 우리는 외지인이라서 서울을 뚫기가 너무 힘듭니다.”“도저히 안 되면 방식을 바꿔야죠. 화신도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하고 있잖아요. 의료, 금융, 여행, 서울은 국제적인 통로를 가지고 있으니 어디에든 돈을 벌 기회는 널려있어요.”여름이 가볍게 말했다.“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거예요. 다원화해야 도태되지 않아요.”오봉규가 활기차게 말했다.“맞습니다. 제가 바로 팀을 꾸려서 논의해 보겠습니다.”여름은 이날 종일 회사에서 회의에 참석했다.그러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밤 10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유인이 느른하게 소파에 늘어져서 팩을 하고 있었다. 눈에 비웃음을 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