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눈이 어떻게 된 거야?’“말을 왜 그렇게 못되게 해?”송영식은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었다.“아저씨, 그냥 현실을 받아들여요. 나이가 어디 가나?”윤서가 유유히 덧붙였다.“그만, 사람 그만 놀려. 지금 운전 중인데 사고 나고 싶니?”폭발하려는 송영식을 보더니 여름이 한마디 했다.윤서는 결국 입을 다물고 한숨을 쉬었다.그러나 그 한숨이 말 열 마디 보다 더 송영식의 심장을 아프게 했다.여름에게 남자 친구가 있는 것 때문에 한숨을 쉬었는지, 자신이 결혼을 해서 마음에 드는 연하남을 만날 수 없어서 인지 알 수 없었다.******집에 도착하자 여름과 윤서는 2층으로 올라갔다.송영식은 뒤척이며 영 잠들지 못하다가 벌떡 일어나 앉아서 눈썹을 비춰보고, 입도 비춰보았다.결국은 참지 못하고 친구들 단톡방에 톡을 보냈다.-내 눈썹 너무 제멋대로 자라지 않았지? 입술 옹졸하게 생겼어? 애들아, 이 정도면 나도 잘 생긴 축 아니냐? 어? 우리 넷이 우리 나라에서 제일 잘 생긴 4인 아니었냐?이주혁- 너 약 먹을 때 된 것 같다.최하준- 취했냐? 왜 이 시간에 톡방에 주정이야?송영식은 당황했다.- 오늘 눈썹은 제 멋대로 뻗은 데다가 입술도 옹졸하게 생긴 어린 놈을 만났는데 아주 여자 둘이 그 녀석에게 푹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는 거야.최하준- ??? 거짓말이면 죽을 줄 알아.이지훈- 몇 살인데? 머리에 피는 말랐냐?송영식- 스물 갓 넘은 녀석인 같은데, 윤서는 보자마자 그냥 막 턱이 떨어져서 입을 못 다물지, 강여름은 외국에서 왔다고 치킨 먹는 법까지 자세히 가르쳐 주더니 나중에는 막 발라주더라. 다 먹고 나니까 그 녀석을 호텔까지 태워주라고 그러더라니까.그렇게 털어놓으면 하준도 기분이 안 좋을 것이라 생각하니 어쩐지 속이 시원했다.최하준- 장난이지?이주혁- 오밤중에 하준이 잠 안 재우고 싶어서 그래?이지훈- 야야, 그만해라. 이러다가 나 한밤중에 하준이 데리러 공항 나가게 생겼다.송영식- 내가 왜 거짓말을 해? 야, 최하준 너는
“자기야….”멍하니 있는 동안 하준이 여름의 코앞으로 다가오던 와락 품에 안아 들였다. 그리고는 자느라고 뻗친 여름의 머리를 꾹꾹 눌러 쓰다듬었다.여름은 최하준 특유의 시원한 냄새가 코에 들어오자 그제서야 정말 최하준이 동성에 왔다는 것이 실감났다.“최 회장이 6시 반에 왔더라.”임유환이 웃었다.“아마도 밤새 비행기를 타고 왔나 보다. 최 회장은 정말… 너랑 떨어져서는 하루도 못 사는가 보네?”임유환이 빤히 쳐다보자 여름의 얼굴이 화르륵 달아오르더니 얼른 하준을 밀어 떨어트렸다.하준의 얼굴이 싸늘해졌다.‘보자마자 날 와락 밀어내다니 정말 그 녀석보다 내가 못하다고 생각하는 거야?”“갑자기 여긴 무슨 일이야?’고개를 들어보니 하준의 눈 아래 다크 서클이 보였다. 저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밤 새웠어? 왜 이렇게 다크 서클이 심해?”하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다크 서클이 생겼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여름의 말을 듣고 나더니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난 산책을 다녀올 테니 둘이 천천히 이야기 나누거라.”임유환은 둘을 당해하기 싫어서 슬쩍 뒷짐을 지고 나갔다.“식사 하시겠어요?”이모님이 웃으며 물었다.“네, 부탁 드릴게요.”여름이 끄덕였다.곧 이모님이 두부 된장 찌개와 계란찜, 호박 볶음, 콩나물 등 아침 식사를 차려 놓았다.여름은 하준에게 수저를 건넸다.“윤서네 부모님은 기저질환이 좀 있으셔서 찬이 좀 심심하고 채소 위주거든. 하지만 영양도 충분하고 몸에도 좋으니까 먹어.”하준은 수저도 받지 않고 꼼짝 않았다.“왜 그래?”여름은 마침내 하준이 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준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내가 나이 들어서 싫어?”“……”여름은 어리둥절했다.하준의 검은 눈에 원망이 가득했다.“오늘 만나서부터 지금까지 분위기도 그렇고, 이제는 다크 서클이 있다고 뭐라고 하고? 내가 예전처럼 잘생기지 않았다고 돌려 까는 거야? 이제는 건강 신경 쓰라는 말도 하고. 그래, 내가 자기보다 나이가 많
“믿거나 말거나.”여름은 따뜻한 된장국을 떠 먹으며 속을 달래다가 불쑥 뱉었다.“대체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도 모르겠네. 나이가 그만큼 먹었으면 이제 유치함도 빠지고 성숙해져야 할 때가 아닌가? 어딜 봐서 나이 먹었다고 자꾸 툴툴거리는 거야? 나가면 사람들이 자기만 쳐다보는 거 몰라?”하준의 눈이 반짝거리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나 곧 애써 입꼬리를 눌렀다.“어쨌든 나는 연하남처럼 해사하고 에너지 넘치지는 않잖아? 재미도 없고 딱딱하고….”여름은 이마를 짚고 식은 땀을 흘렸다.“영식 씨가 뭐라고 했구나?”하준의 눈에 원망이 가득한 것이 보였다.“어제 연하남이랑 노니까 좋았어요? 최하준 선생은 생각도 안 나던가요?”여름은 하마터면 푸흡하고 뿜을 뻔했다.얼른 티슈를 뽑아 입을 가렸지만 어깨가 들썩거리는 것은 숨길 수 없었다.“아주 재미있으신가 봐요?”하준은 가만히 여름을 쳐다보았다..“그저께 밤에 제 이 얼굴을 보면서 너무 봐서 질렸다고 하셨죠?”“이 사람이 오늘 왜 이렇게 웃기지?”여름은 너무 웃어서 이제는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가가서 하준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이리저리 돌려보았다.“세상에, 이렇게 잘 생긴 얼굴을 두고 누가 질린대? 이 쭉 뻗은 눈썹이랑 콧대 높은 거 봐. 이 입술은…”여름이 일부러 손가락으로 입술을 부드럽게 스쳤다“키스할 때 얼마나 매혹적인데, 내가 다른 사람에게 정신을 팔 수가 있나? 연하남처럼 어린애가 당신이랑 비교가 되는 줄 알아? 유치하기나 하지. 난 성숙한 사람이 좋다고. 특히 난 이 옷 아래 있는 근육이 딱 마음에 들어. 너무 울룩불룩하지 않으면서 딱 보기 좋…”“그만!”하준은 강도를 높이는 여름의 낯 간지러운 칭송을 도저히 더 참을 수 없었다.‘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도 므흣하지만 이 손길은 진짜 반칙이라고!’“그러면 이제 화 안 내는 거지?”여름이 빙그레 웃었다.“난 화내는 게 아니라 불안한 거라고. 당신 앞에서 예전처럼 자신이 없다니까. 하지만 지금 뽀뽀 한
임준서도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했다.하준은 가만히 임준서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임윤서도 눈 코 입이 또렷해 시원스러운 얼굴이지만 오빠인 임준서도 만만치 않았다. 다만 피부가 검게 그을었다는 것이 달랐다.가만히 생각해 보니 문득 여름의 주위에는 미남이 끊임없이 등장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대표님은 우리 여름이랑 아신 지가 오래 되셨죠?”하준이 물었다.“10년 넘었죠. 우리 윤서랑 워낙 친해서 전에는 늘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곤 했거든요.”임준서는 바로 하준의 의도를 파악했다. “하지만 그때는 여름이가 남친이 있어서 저를 윤서처럼 오빠로 대했고 저도 여름이를 동생으로 대했습니다.”하준도 알아들었다.“또 무슨 망상을 하는 거야?”여름이 하준을 흘겨 보았다.“제발 내 주변에 남자만 보면 안테나 좀 세우지 말아줄래?”“사랑하게 되면 다 그렇게 되는걸.”하준이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안녕히 주무셨습니까?”이때 1층 손님방 문이 열리더니 송영식이 아작 잠이 덜 깬 상대로 어슬렁어슬렁 나왔다. 그러나 거실에 있는 하준을 보더니 놀라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야. 너 정말 밤사이에 동성으로 온 거야?”하준이 싸늘한 눈으로 송영식을 보았다. 여름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아주 1등 꼬지름쟁이 나오시네.”“내가 뭘 꼬질렀다고.”송영식은 모른 척했다.“별 말 안 했는데. 어젯밤에 웬 아이돌 같은 애랑 같이 치킨 먹었는데, 애가 잘 생겼더라. 우리는 걔 보다 나이가 한참 많더라, 뭐 그런 얘기밖에 안 거든요.”“거 나이 많은 거에 나는 왜 집어 넣어?”하준이 담담히 말했다.“어허, 이거 너무하네. 우리 다 동갑이거든?”송영식이 툴툴거렸다.“어젯밤 그 녀석이 네 여자친구한테 반한 게 확실하다니까. 그래서 내가 남자친구랑 결혼도 했고 애도 있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마음을 접던 걸.”“앞으로 그 녀석 만나게 되거든 가까이 하지 마. 절대 당신에게 다가올 기회도 주지 말라고.”하준이 인상을 썼다.“양유진처럼 멀쩡하게 생겨서 못된 녀석도
“날 안 도와주면 누굴 도와주는데요?”윤서가 도발하듯 눈썹을 치켜 세웠다.“나는 우리 여름이랑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뿐 아니라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도 곁을 지킨 사람이라고요.”“……”송영식이 유유히 말했다.“말로는 임윤서 못 이긴다니까.”여름은 속으로 웃었다. 막 입을 열려는 순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여보세요? 강여름 씨죠? 여기 공원묘지 관리소인데요. 저기… 어젯밤에 강여름 씨 가족의 묘가 파헤쳐졌습니다.”“뭐라고요? 누구 묘가요?”여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강신희 씨요.”관리자가 말을 이었다.“오늘 아침에 둘러보다가 묘다 파헤쳐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안은 텅 비었더라고요.”“바로 가겠습니다.”여름이 벌떡 일어났습니다.“왜 그래?”하준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여름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화난 여름의 모습은 오랜만이었다.“엄마 무덤이 밤새 파헤쳐졌대.”여름이 주먹을 쥐었다.“누구야! 대체 누가 그렇게 무식한 짓을!”윤서도 화나서 소리쳤다.“같이 가자.”하준이 가볍게 여름의 어깨를 감쌌다.******1시간 뒤. 하준이 모는 차가 여름을 데리고 공원 묘지에 도착했다.여름은 강신희의 묘 앞에 도착해서 묘만 파헤쳐 진 것뿐 아니라 묘비도 훼손되어 바닥에 뒹구는 것을 발견했다. 이름도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게다가 훼손된 사진은 여름에게 어머니와 관련해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었다. 여름은 눈시울을 붉혔다.“누구지? 대체 누가 이렇게 악랄한 짓을 한 거야? 남의 어머니 무덤을 이 지경으로 만들다니.”“혹시… 양유진이 아닐까?”하준이 물었다.“나도 모르겠어.”여름은 막연한 기분으로 고개를 저었다.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실제 시신이 안치된 묘가 아니라 그저 의관묘일 뿐이지만 묘를 훼손하는 일은 망자에 대한 모욕이었다.“저희가 가족분 묘 앞에서 아침에 이걸 발견했습니다.”관리인이 하얀 쪽지를 건넸다.열어 보니 위에 글자가 쓰여 있었다.“강여름, 내가 돌아왔다. 우리 사이에 쌓인 원한은
하준은 미간을 찌푸렸다.모호하긴 해도 강여경에 관한 기억이 있기는 했다.아주 악랄한 여자라서 어디 먼 오지로 보내버렸는데 탈출했던 것이다.“자기야, 걱정하지 마. 내가 있으니까 이번에는 절대 살려두지 않을 거야.”하준이 단호하게 말했다.“아니. 강여경이 대놓고 돌아왔다고 이렇게 말을 남길 정도라면 그 동안 뭔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서 지금은 우리가 감히 상대할 수도 없는 인간이 되어서 돌아왔을 거야.”강여름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어제 말했잖아. 우리 외삼촌이랑 외숙모가 출소한다고. 이제 알겠어. 강여경이 뒤에서 손을 쓴 거야.”하준이 깜짝 놀랐다.“수십 년 형을 받은 거 아니었나?”“그래. 살인에 재산을 가로챈 혐의로…. 그런데 벌써 나오네.”여름이 쓴웃음을 지었다.“이제 지금 강여경의 파워가 어느 정도 인지 알 수 있겠지?”“무슨 일이 벌어져도 내가 당신을 지켜줄게.”하준은 저도 모르게 여름을 꼭 안았다. 그제야 여름의 몸이 오들오들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다만 화가 나서인지 다른 이유인지는 알 수 없었다.“당신은 몰라. 강여경이나 백지안 같은 인간들은 죽여도 죽여도 계속 살아 기어 나오는 바퀴벌레 같은 존재야. 겉보기에는 내가 이기고 있는 것 같아도 사실 강여경에게는 늘 철저히 지고 있었다고.”여름이 분한 듯 말했다.강여경은 할머니도 살해하고, 죄를 쓰고 들어간 사람까지 몇 년 만에 빼냈다.백소영을 시신도 못 찾는 상대로 죽게 만들어 놓고 다시 돌아온 것이다.“난 내가 정말 하나도 쓸모 없는 인간인 것처럼 느껴져.”여름이 눈물을 흘렸다.“우리 엄마는 아무 것도 남긴 게 없이 오로지 이 무덤 하나뿐이었는데 그것마저 부숴버렸어. 당신은 추성호를 상대해야 하고, 나는 양유진을 상대해야 하지, 백지안은 또 언제 독수를 뻗칠지 모르지. 그런데 강여경까지 나타났어. 이 위기를 헤치고 나갈 수 있을까?”“자기야 그 동안 파도를 헤치고 비바람을 뚫고 왔지만 그래도 여기 이렇게 살아 있잖아? 우리가 다른 사람이 든
“대표님….”반듯하게 차려 입은 부하가 걸어 들어왔다.“시키신 일을 처리하고 왔습니다.”부하가 건네는 사진을 받아보니 어머니 묘비의 사진이었다.“멀쩡하게 산 사람에게 묘가 다 뭐야? 엄마를 저주하는 거냐고?”차민우가 유유히 말을 이었다.“아 참, 경고 쪽지는 거기 남겨두고 왔어?”“네. 아마도 공원묘지 쪽에서 강여름에게 연락했을 겁니다. 보면 바로 알겠죠.”“응, 찔리는 짓을 많이 했으니 지금쯤 완전 벌벌 떨고 있겠지. 그러니까 우리 가족은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넌 이제 죽는 수밖에 없어.”차민우가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눈에 서늘한 빛이 번뜩였다.“아, 우리 외삼촌이랑 외숙모 일은 어떻게 됐어?”“3일 뒤면 출소하십니다.”“좋아. 나중에 내가 직접 마중 나갈 거야.”차민우가 손을 휘휘 저었다.“네, 알겠습니다.”부하가 나가고 나서 얼마 안 있어 차민우의 비서가 다시 들어왔다.“말씀하신 강여름 관련 자료 가져왔습니다.”“줘 봐.”차민우가 느긋하게 손을 뻗었다.비서가 내미는 자료를 받아 열어 첫 페이지의 사진을 본 순간 차민우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다가 술잔이 엎어지면서 갈색 카펫 위에 툭 떨어졌다.“아이고….”싸늘한 차민우의 얼굴에 경악한 표정이 뜬 것을 보고 비서는 어쩔 줄을 몰랐다.“어떻게 그 사람일 수가 있어?”차민우가 중얼거렸다.절대 잘못 알아봤을 리는 없다. 사진 속의 여자는 분명 서가을이었다. 어제 자신을 구해줬던 바로 그 대협이다.어젯밤 같이 치킨을 먹은 그 사람이었다.어쩐지 엄마랑 닮았다, 친숙한 느낌이 든다 싶었는데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이제 보니 그 사람이 바로 외삼촌의 딸이었구나.바로 내 사촌 누나….나 참, 그 여자가 강여름일 줄이야?’강여경의 말에 따르면 강여름은 비열하고 교활하고 악독한 여자였다.그러나 자신이 강여름에게서 느낀 것은 선량함, 자상함, 따스함이었다.‘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위선을 잘 떨 수가 있는 거지?하지만 강여름은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어제도 완전히
“그렇습니다.”비서가 끄덕였다.“하지만 네티즌 반응을 보면 대체로 강여름과 최하준을 응원하는 듯합니다. 가정폭력을 일삼는 못된 습관이 있어 양유진은 평판이 아주 형편 없습니다. 게다가 강여름을 속여서 결혼을 한 것이라고 하는데 온라인에는 워낙 가짜 뉴스가 많아서 우리 같은 외지인이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다소 어렵습니다.”“그건 그렇네.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지.”차민우가 무표정하게 비서가 건넨 자료를 넘겼다.“하나는 양유진이 실제로 아주 저질이거나, 아니면 강여름이 교활하거나. 대놓고 바람을 피우고 싶어서 남편의 평판을 떨어트려 놓았을 수도 있어. 그러면 사람들은 당연히 바람이 나도 피해자로 생각되는 사람을 옹호할 수밖에 없거든.”비서가 차민우의 분석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이유겠네요. 강여경 님께서 강여름은 아주 악독하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자기 할머니와 부모까지도 해칠 정도로.”차민우가 입을 꾹 다물었다.예전 같았으면 조금도 망설임 없이 그 말을 그대로 믿었을 것이다.‘강여름이 진짜 그렇게 나쁜 사람일까?정말 나쁜 인간이라면 어제는 왜 날 구해줬지?사람이 그렇게까지 가식을 떨 수 있나?’계속 서류를 넘겨보던 차민우는 깜짝 놀랐다.“강여름이 아직도 헤이즐의 수석 디자인 이사인가?”헤이즐은 회장은 만나본 적이 있는데 매우 능력있는 사람이었다. 니아만에서 가장 유명한 바도 헤이즐 회장이 직접 설계한 곳이었다.‘이거 뜻밖인데….정말 까도 까도 새로운 인간이군.’“작전 개시를 좀 늦춰.”차민우가 갑자기 파일을 덮었다.“내가 직접 나서겠다.”“네.”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사람 하나 해결하는 건 간단한 일인데 왜 차민우가 직접 나선다고 하는지 비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여름은 20분이나 기다려서야 겨우 교도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곧 이정희가 나왔다.몇 년이나 못 본 사이에 이정희는 많이 늙었다. 피부와 몸매에 돈 깨나 쏟아 붓던 사람이었지만 쉰이 넘은 이정희는 이제 일흔은 되어
“잠깐.”하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아니야. 난 갈게. 어쨌든 넌 이제 예전의 하준이가 아니잖아. 예전 친구 따위가 뭐 그렇게 중요하겠어.”송영식은 한숨을 쉬었다.“잡지 마라.”“너 잡는 거 아니거든.”하준은 어이가 없어 하며 송영식을 쳐다보았다. ‘나에게 저런 신경질적인 친구가 있었다고?’송영식은 잠시 매우 민망해졌다.“…나 간다?”“앉아 봐.”하준이 옆이 의자를 가리켰다.송영식은 그제야 휘적휘적 가서 앉았다. 저도 모르게 시선이 하준의 노트북으로 향했다.“FTT 자료 보고 있었네?”하준은 그에 답하지 않고 미간을 찡그리고 있더니 물었다.“나랑 강여름은 어떤 사이였어?”“어떨 것 같냐?”송영식이 고소해하며 눈썹을 치켜올렸다.“맞추면 여기 앉아서 얘기해 줄 거야?”하준이 냉랭하게 물었다.“말 하기 싫으면 말고. 물어볼 사람이 너밖에 없는 건 아니니까.”“내가 졌다.”송영식은 김이 빠졌다.“네가 느끼기에는 어떨 것 같은데?”하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전에는 노트북도 핸드폰도 만질 줄 몰랐지만 오늘 아침에 핸드폰으로 몰래 뒤져보았다. 성인 남녀 사이에 키스를 한다는 것은 둘이 굉장히 친밀한 사이라는 뜻이었다. 게다가 자신과 여름이 나눈 것은 프렌치 키스라는 것까지 알아냈다.그런 것을 알아내고 나자 하준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뜨거워졌다.“뭐 응큼한 생각하고 있구나?”송영식이 큭큭 웃었다.하준이 송영식을 싸늘하게 흘겨 보았다.“내 여자인구인가? 하지만 결혼했다던데? 아이도 있고. 난… 강여름의 정부인가?”“… 컥컥. 대단하네. ‘정부’ 뭐 그런 단어까지 알아냈어?”송영식이 엄지를 치켜 세웠다.“하지만 그 단어가 딱 적당한 것 같다.”그 말이 맞다는 뜻이었다.하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정말 내가 그렇게 내놓기도 부끄러운 정부야?’“그렇다고 화내지는 말고. 이 지경이 된 것도 다 네 인과응보라고.”송영식이 말을 이었다.“여울이하고 하늘이 아빠가 누군지는 아냐?”“내가 어떻게 알아?”하준은 짜증이 났다.
“요즘 쭌은 자신을 더 이상 두 살짜리 아기로 생각하지 않아. 쭌의 실제 나이는 나보다도 많다고 얘기해 줬거든. 요즘은 선생님들 모셔서 가르치는데 정말 빨리 배워. 앞으로 한 달 정도면 전에 배웠던 지식 수준은 따라잡을 것 같아.”“하지만… 그러면 뭐해? 너희들 사이에 있었던 애정 같은 건 다 잊었을 텐데.”윤서가 망설이면서 말했다.“널 잊어 버린 사람이 다시 널 사랑하게 만드는 게벌써 몇 번 째냐?”여름은 할 말을 잃었다. 다시 슬픈 기분이 되었다.‘그러네. 대체 이게 몇 번 째냐고….처음에 동성에서 만났을 때, 내가 죽을 힘을 다해서 최하준을 따라다닌 바람에 결국 최하준의 관심을 받는 데 성공했지.외국에 나갔다가 돌아와서도 온갖 수단을 써서 백지안 옆에 있던 최하준이 날 사랑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었고.그래, 매번 성공했어. 그래서 피곤했냐 하면, 그래. 정말 피곤했지.두 사람이 서로를 향하는 사랑은 나와는 거리가 멀었어.’“나도 모르겠어.”여름이 망연자실해서 말을 이었다.“전에는 기억에 착란을 일으켰던 거고 이번에는 완전히 어린애나 다름 없게 되어 버렸으니까. 애정 부분도 완전히 백지가 되어 버렸어. 사실 날 사랑하게 만드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인생은 길잖아.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어. 다음에 또 이러지 않을까? 그 다음은? 내가 매번 이렇게 주동적으로 나서고 인내할 수 있을까?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나라고 무쇠로 만들어진 사람도 아니고, 나도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고.”“네 애정 문제에 있어서는 내가 뭐라고 한 적이 없지만, 너 이러는 거 보니까 나도 너무 마음이 아프다. 난… 최하준은 자기 자신도 지킬 줄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아. 혹시나 이번에 다시 고백 받거든 이번에는 쉽게 넘어가지 마.”윤서가 말을 이었다.“본인이야 그러고 싹 다 까먹어도 별 문제 없겠지. 하지만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날 그렇게 몇 번이고 잊어버린다면 그게 뭐 누구의 계략에 빠진 거든 뭐든 막 때려주고 싶을 것 같다. 아내랑 애가 있는
하마터면 윤서의 입술이 송영식의 코에 닿을 뻔했다. 순식간에 호흡이 엉키고 얼굴은 빨개졌다.“왜 이렇게 들이대?”“어떻게 사람이 말 한마디를 곱게 안 하냐?”송영식은 속상했다. 그런데 발그레해진 윤서의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이상하게 간질거렸다.요즘 윤서의 배가 점점 크게 부풀어 올랐다. 얼굴도 동그라니 뺨이 포동포동했다. 워낙 잘 먹여 놔서 피부도 촉촉해서 저도 모르게 한번 꼬집어 주고 싶었다.“좋은 말은 할 줄 알지만 당신한테는 안 쓸 거야.”윤서가 코웃음을 쳤다.“여름이가 장보러 간다니까 우린 좀 천천히 가자.”“마침 잘 됐네. 나도 올라가서 뭣 좀 해야 하거든.”송영식이 묘하게 웃더니 신이 나서 뛰어 올라갔다.송영식의 뒷모습을 보며 윤서는 어리둥절했다.*****1시간 뒤, 송영식이 차를 몰고 하준의 집으로 향했다.송영식의 집에서 하준은 집까지는 멀지 않아서 30분이면 닿았다.윤서는 하준의 집에는 처음이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집을 보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여기 너무 큰 거 아니야? 너희 집에 대니까 우리 집 너무 초라하다.”송영식이 반박했다.“그집이 어디가 초라해?”“그러게. 그런 좋은 집을 두고.”여름이 웃으며 답했다.“같이 한 바퀴 돌까? 그러면서 과일도 좀 따고.”“그래.”윤서가 송영식을 돌아보았다.“따라오지 말고 하준 씨한테나 가 봐요.”“누가 따라간대? 자기가 무슨 인기 연예인인 줄 아나?”송영식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흥, 앞으로는 절대로 나 따라다니지 말라고!”윤서가 싸늘하게 웃었다.송영식의 얼굴이 굳어졌다.“누가 따라다니고 싶어서 따라다니는 줄 아나? 워낙 덤벙대니가 아기 다칠까 봐 그러는 거지.”“고오맙네요. 백지안 때문에 밀치지 않아서. 내 아기는 누구보다 건강할 예정이거든요.”윤서가 비꼬았다.“대체 언제적 얘기를 아직까지…. 됐다. 내가 당신이랑 무슨 말을 하냐? 하준이한테나 가 봐야지.”송영식이 씩씩거리며 자리를 떴다.여름은 어이가 없었다.“너희 둘… 안
여름은 할 말을 잃었다. ‘아까부터 그거 때문에 의기소침한 거였어?’“그래. 완전히 탄복했지.”여름이 끄덕였다. 감탄한 것을 굳이 숨기고 싶지는 않았다.차진욱은 흑과 백을 넘나드는 사람이었지만, 여울이를 구해주고 나서부터는 내심 존경하는 마음이 커졌다.강신희에 대해서도 차진욱은 남편으로서 아껴주었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모두 다 하도록 방임하는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차진욱이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발휘하여 처음부터 하준을 상대했다면 여름과 하준은 진작에 끝장이 났을 것이다.돈이 넘치는 사람은 쓸데없는 못된 버릇도 있기 마련인데 차진욱에게는 그런 결점도 딱히 없었다.강신희에 대해서도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아플 때도 결코 곁을 떠나지 않았다.여름은 강신희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런 사랑과 혼인 관계는 너무나 부러웠다.자신은 결혼 생활도 실패한 것 같았다. 하준은 차진욱처럼 아량이 넓고 포용력이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백지안 같은 불여우에게 속아서 이용당하는 지경이었다.재결합한 뒤에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둘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전에….여름은 슬픈 마음으로 하준을 돌아 보았다. 그런데 하준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우울한 모습이었다.“걱정하지 마. 나도 그런 사람이 될 거야. 여름이가 감탄할 수 있는 그런 사람.”하준이 진지하게 주먹을 쥐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FTT를 되찾아 올 거야.”여름이 빙긋 웃었다.“난 차 회장님의 패기 넘치는 스타일에 감탄한 게 아니야. 쭌은 아직 잘 모르네.”“그럼 뭔데. 말해 봐봐. 나도 배우게.”하준이 다급히 물었다.“배워서 뭐 하게?”여름이 하준을 흘겨 보았다.“혼인 관계에 대한 지조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포용력에 감탄한 거야. 그런 걸 쭌이 배워서 어디에 써먹을 건데?”하준은 흠칫했다.혼인이니, 사랑하는 사람이니, 다 하준과는 너무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하준은 마음이 괴로웠다. 어제 이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말이었다. 사실 하준은 핸드폰에서 여름과 자신의 셀카
“이게…”“그리고, 월급 받는 전문 경영인 주제에 이사회의 결정을 듣지 않고 우리에게 반항한다? 그러면 우리는 당신이 회사를 침탈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할 수 밖에 없죠. 회사 중역은 죄다 당신이 심어놓은 사람이고 아무나 와서 기고 만장하단 말이야.”한마디 한마디 뼈가 시렸다. 맹원규의 안면 근육이 부르르 떨렸다. 하준은 그렇게 싸늘한 여름의 얼굴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모습마저도 너무 매력이 넘쳤다.맹원규가 싸늘하게 웃었다.“강여름 씨는 내 모가지를 쳐내고 내가 고용한 임원까지 싹 솎아내고 싶으신가 보군.”“그러면, 당신은 그만 두고 나갈 건가요?”여름이 비꼬았다.“당신 같은 사람은 철면피처럼 여기 어떻게든 붙어있을 걸.”맹원규는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었다.“절대로 안 비킬 줄 알았지.”여름이 말을 이었다.“하지만 내일부터는 최하준 씨가 회사에 와서 회장직을 수행할 겁니다. 당신은 직위 해제예요. 이사회의 절대적인 행사권 앞에서 당신은 일개 직원일 뿐이에요. 싫다고 말할 권리는 없습니다.”그렇게 말하더니 여름은 하준을 데리고 나갔다.막 문을 나서는데 안에서 뭔가를 부수는 소리가 들렸다.여름이 하준에게 눈짓을 했다.하준은 바로 알아듣고 주먹을 쥐고 돌아섰다.두 사람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맹원규와 깨진 컵이 보였다.“어, 아주 잘나셨어?”하준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일개 직원이 이사 앞에서 컵을 깨고 눈을 부릅뜨다니?”“아닙니다. 제가 실수로 컵을 떨어트렸습니다.”맹원규가 뱉었다.“왜요? 내 안면 근육이 멋대로 수축하는 것도 안 됩니까?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직원이 오너보다 기고만장한 꼴을 다 보고. 당장 나가시오.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하준은 냉엄하게 내뱉고는 여름을 데리고 나갔다.가면서 맹원규의 그 얼굴을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내일 맹원규가 꺼질까?”여름이 웃었다.“그렇게 쉽게 나가겠어?”“그런가…?”하준의 어깨가 쳐졌다.“안 나갈 거야. 배후에 양유진이 있을 테니까. 양유진이 놈에게
차진욱의 변호사가 나섰다.“미안하지만 강여경이 FTT를 구매하는데 사용한 자금은 모두 강신희 여사님의 계좌에서 나온 돈입니다. 계속해서 당신이 FTT 주식을 상속하겠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법원에 주식의 동결을 신청할 수 밖에 없습니다.”“당신은 그럴 권리가 없어!”강태환이 다급히 외쳤다.“돈은 내 동생이 준 거라고. 신희를 불러와.”“강신희는 지금 병으로 입원 중이고, 나는 배우자로서 부부 공동의 자산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지.”차진욱이 몸을 앞으로 쑥 내밀었다.“그리고 난 당신들 셋이 사기범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마침 강여경의 시신이 아직 냉동 보관 중이지? 그러면 이참에 DNA를 검출해서 친자확인을 해보자고. 난 재산도 되찾고 당신들을 사기로 고소도 해야겠어. 천문학적인 금액을 사기쳤지. 아주 전세계 최고 사기액일 거야.”“헛소리! 우리는 사기 같은 거 치지 않았어!”강태환은 온몸의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았다.뭐라고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사실 기절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호흡이 가빠진 척하며 휠체어에 쓰러졌다.이사회를 개최했던 맹원규는 후다닥 일어나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구급차 오고 있나? 회의실에 또 한 명이 기절했어. 같이 실어 보내지. 어서. 사람 죽게 생겼다고….”전화를 끊고 나가 회의실은 쥐 죽은 듯 고요해 졌다.맹원규가 차진욱을 보고 웃었다.“주식에 이렇게 큰 문제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이번 회의는 취소하고 다음에 다시 논의하시죠. 아니면 두 분이 개인적으로 분쟁을 해결하시고 나서 다시 이야기 나누십시다.”차진욱의 날카로운 시선이 맹원규를 훑었다.“강여경이 어마어마한 연봉을 주고 당신을 불렀지? 그 돈도 내 아내의 자금이야.”맹원규의 얼굴이 굳어졌다.사실 강여경이 어마어마한 연봉을 주고 맹원규를 초빙한 것은 사실이었다.“내 아내의 자금을 날려가며 불러온 게 겨우 이따위 쓰레기라니?”차진욱은 경멸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었다.“제가 뭘 잘못한 거라도 있는지요?”맹원규가 깊
기다리지.”차진욱은 셔츠를 정리하고 다시 앉았다.강태환은 바들바들 떨었다. 기절했으면 싶었다. 이제 양유진이 실려나갔으니 혼자서 어떻게 차진욱을 감당하겠는가?차진욱이 손이라도 댄다면 자신도 양유진 꼴이 날 것은 불 보듯 뻔했다.피범벅이 된 양유진을 생각하니 두려워졌다.‘기절한 척할까? 그러면 맹원규가 회의를 취소하겠지?’그런 생각을 하는데 여름이 갑자기 다정하게 다가왔다.“왜 그러세요? 놀라서 기절할 것 같은 건 아니겠죠?”“……”“기절하시면 안 돼요.”여름이 다정하게 말했다.“아빠가 기절하면 강여경의 주식을 어떻게 상속받아요?”강태환은 환장할 지경이었다. “강여경의 주식?”차진욱이 결혼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큭큭 웃었다.“그게 당신 차지가 되겠나? 범죄자 따위가 말이야.”차진욱의 말에 회의실은 묘한 정적에 빠져들었다.강태환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난 강여경의 아버지요. 여경이가 죽었는데 자식이 없으니 우리나라 법에 따라 부모가 재산을 상속받는 거지.”“강여경의 부모인 건 확실하고?”차진욱이 싸늘한 눈으로 노려보았다.“얼마 전 동성에 갔을 때 분명 강여경의 부모는 따로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강여경의 친엄마는 내 아내 강신희라고 말이야.”강태환이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그런가요? 내가 그런 소릴 했나? 어쨌든 법적으로는 걔가 내 딸이거든.”“그래?”차진욱이 옆에 있던 변호사에게 손짓했다.변호사가 바로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건넸다.차진욱이 서류를 강태환에게 들이 밀었다.“그러면 잘 보시지. 소위 당신의 딸이 일전에 내 아내의 재산을 어마어마하게 썼거든. 당신네 나라 법에 따라 강여경이 쓴 돈은 우리 부부의 공동 재산이라서 내게도 그 돈을 추심할 권리가 있어. 강여경이 죽었으니 그러면 그 돈은 법적인 아버지에게서 돌려받아야겠군”“무, 무슨 근거로?”서류의 숫자를 본 강태환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평생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금액이었다.“거 참 우습구먼. 당신 딸이 죽어서 딸이 남긴 주식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와 아무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 차진욱이 눈동자를 보자 양유진은 저도 모르게 몸이 덜덜 떨렸다.양유진은 자신이 차진욱을 완전히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다. 차진욱은 아들이 하나뿐이다. 그것도 강신희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었다. 그러니 분명 매우 애지중지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양유진은 차진욱이 잔인함을 과소평가한 것이었다.양유진은 너무 아파서 입술에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 이마에서는 땀이 송글송글 솟아났다. 고통에 가득 찬 눈에 독기가 서렸다.“계속해 보시지. 그 대가로 아들 시체를 받게 될 거야. 난 놈을 아무도 없는 곳에 숨겨뒀어. 누구도 찾을 수 없게.”“그러시겠지.”차진욱은 큭큭 웃으며 양유진을 놓아주었다. 위협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는 얼굴이었다.“난 이래서 가식적인 인간이랑 말을 섞기가 싫다고. 인질을 잡았으면 잡은 거지 왜 나랑 쇼를 하겠다는 건지?”양유진은 당황해서 비척비척 뒤로 물러났다. 부러진 손을 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차진욱! 당장 내게 사과해! 사과하지 않으면 아들놈을 죽여 버리겠어. 네놈은 이제 대가 끊기게 될 거다.”몸을 빼자마자 다시 차진욱을 협박하다니 너무나 양유진다웠다.맥퀸이 분노했다.“도련님을 다치게 했다가는 네 집안이 쑥대밭이 될 줄 알아!”“우리 집안이 차민욱 만큼 가치가 있지는 않지.”양유진은 화가 난 맥퀸을 보더니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차진욱, 스스로 손가락을 자르면 내가 오늘 일은 없었던 걸로…”말을 마치기도 전에 차진욱은 양유진을 걷어차 날려버렸다.양유진은 바닥에 엎어졌다. 목구멍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차진욱이 다가가 양유진의 얼굴을 밟았다.“그래도 체면을 좀 차리게 해주려고 했더니 끝간 데를 모르고 까부는군. 내가 뭐라고 했는지 잊어버렸나? 내 아들이 팔 다리 잃는 것쯤은 신경 안 쓴다고 했지? 살아만 있으면 된다. 잘 들어. 민우의 목숨은 네가 살수 있는 조건이다. 멋대로 날 협박할 생각은 버려. 난 협박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야.”양유진은 전혀
“난 사람으로서 못할 짓을 한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전세계의 낙후된 국가에 의료 환경을 제공하고자 애썼습니다. 하루하루 병에 침식되어 목숨을 잃는 사람들의 고통을 아십니까?”여름은 구역질이 올라왔다.양유진의 연기는 그야말로 아카데미 주연상 수상감이었다.자기 친조카도 살해할 정도로 잔인한 인간이 병으로 고통받는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니….“윽!”옆에서 듣던 하준이 먼저 반응했다.“구역질이 나는군. 당신네 약은 선진국에 팔자면 무시 당할 수준이니 제3세계 국가에 가서 돈을 버는 수밖에 없지. 가난한 나라지만 의약품은 필수니까. 당신은 죽음에 직면한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거야. 말로는 성인군자인 것처럼 굴지만 사람들이 다 바보인줄 아나?”차진욱은 하준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그래. 내가 살면서 별별 사람을 다 만나 봤지만 너처럼 구역질 나는 인간은 참 드물지.”자존심이 센 양유진은 그런 모욕을 당하자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차진욱이 천천히 일어서 양유진에게 다가갔다.강태환은 양유진과 같이 있다가 차진욱의 거대한 몸이 다가오자 극도로 두려움을 느꼈다.그러나 휠체어에 앉아 있어 마음대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그저 손잡이만 꼭 잡을 뿐이었다.“왜 이러시죠? 여기는 FTT그룹이고, 우리나라입니다.”양유진이 낮은 소리로 경고했다.“내가 모른다더니? 이제는 내가 이 나라 사람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나 보군, 그래?”차진욱은 느릿하게 소매 단추를 풀었다. 소매를 걷으니 그을린 팔뚝이 드러났다. 탄탄한 주먹만 봐도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누구 없나?”상황이 여의치 않아 보이자 맹원규가 냅다 사람을 불렀다.그러나 맥퀸이 맹원규의 팔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머리를 테이블에 짓눌렀다.동시에 차진욱의 주먹이 양유진의 안면을 강타했다.180cm가 넘는 양유진의 몸이 그대로 벽까지 날아갔다. 입에서는 선혈이 흐르고 이빨도 몇 개가 부러졌다. 너무 아파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강태환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머…멈춰요.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