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식은 완전히 억울한 얼굴을 하고 두사람 뒤를 따랐다.내려가니 송우재, 송윤구, 송태구 등이 모두 모여있었다. 아침 한 번 먹는데도 대가족이 모두 모인 것이다.송영식이 싱글벙글했다.“제가 복귀했다고 다들 아침 일찍부터 오셨군요.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송태구가 한심하다는 듯 송영식을 흘끗 쳐다봤다.송윤구가 미간을 잔뜩 모았다.“어제 네가 윤상원을 폭행한 영상이 지금 온라인에 돌고 있어서 대책을 논의 중이다. 공 의원 쪽이 배후에서 분란을 조장하고 있는지 지금 일이 아주 커졌어.”송영식과 임윤서의 안색이 동시에 확 변하더니 얼른 휴대 전화를 켰다.은 이미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영상은 우선 임윤서가 단지에서 걸어 나오고 곧 신아영이 다가와 몇 마디 하고 뒤이어 바닥에 꿇어 앉는다. 임윤서가 무시하고 가려고 하자 영상으로 봤을 때는 신아영이 질질 끌려 가는 것으로 보인다. 곧 윤상원이 나타나 윤서의 뺨을 때리고, 그 자리에 송영식이 나타나 무자비하게 윤상원에게 주먹을 날린다.마지막에는 신아영이 맞는 장면까지 나왔다.-임윤서 기고만장한 거 봐라. 사람이 무릎까지 꿇고 비는데 쳐다도 안 보네, 아니 심지어 질질 끌고 감. 송태구 수양딸이라서 그런가? 내 여친이 저랬다가는 가만 안 둔다.-송태구가 아직 대통령도 안 되었는데 수양딸이 저렇게 갑질을 하고 날뛰는데 저 집안 사람을 괜찮겠나?-송영식 풀스윙 날리는 거 봐. 맞은 사람은 지금 입원했대. 완전 심각한 상태인가 봐.-송영식 경찰에도 안 잡혀감?-경찰서에 가기는 했는데 그 집안 사람이 와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바로 빼갔대. -영상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지. 저 여자는 왜 꿇어앉았대?-임윤서가 윤후그룹에 무슨 짓을 했다고 함. 요즘 뉴스에 발암물질 검출된 과자 못 봄? 그게 윤후그룹 거. 사실은 그 정도 함량이면 인체에 피해가 없다는데 뒤에서 송영식 네 집안에서 조작을 좀 한 듯?-너무 하네. 권력 없고 돈 없으면 저렇게 막 갑질해도 되
송태구가 눈을 가늘게 떴다.“이렇게 일없이 나대서 문제를 만드는 녀석은 나도 오랜만이다.”윤서가 입술을 깨물었다.“아무래도 제가 성명을 내서 이번 사건을 자세히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아니다. 괜히 근거도 없이 그런 성명을 내 보아야 불신만 살 뿐이다. 상대는 지금 재벌과 정치가 집안의 일반인에 대한 갑질로 몰고 가려는 모양새인데 난 서민 지지층이 두터워서 이번에 그들의 지지를 잃으면 다음 달 선거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될 거다.”송태구가 일어서서 윤서의 어깨를 두드렸다.“내가 식약청 사람에게 저희가 윤후에 손대로고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겠다. 그러나 영식이가 사람을 때린 것은 사실이니 네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밝히고 영식이가 아버지로서 급한 마음에 손댄 것이라고 알리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윤서는 깜짝 놀랐다. 송정환이 얼른 말을 이었다.“그러면 누나가 혼전임신을 하게 된 사실이 밝혀지잖아요? 그러면 누나의 평판이….”“그러니 역시 영식이가 책임을 지고 둘이 결혼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송윤구가 깊이 한숨을 쉬었다.“어제 단지에서 많은 사람이 둘러싸고 봤다. 게다가 리버사이드 파크는 다들 있는 집안 사람들이라 쉽게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아무래도 상대의 수가 많으니 온갖 방법을 써서 여론을 일으키면 어젯밤 구경하던 사람들은 반드시 너희를 비난하고 나설 게다. 영상을 보면 너희를 보호하러 우리가 나설만한 요소도 분명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게다.”“윤서에게 정말 미안하구나.”송태구가 민망한 듯 윤서를 바라보았다.“수십 년에 걸친 가문의 피와 땀이 벤 이번 대선에서 절대로 의외의 사건이 생겨서는 안 된다.”윤서는 잠시 정신이 아득했다.대외적으로 자신이 임신 중기라는 사실을 공개해야 한다니….그러나 임신 사실이 알려지면 송영식의 폭행은 충분히 이해될 만한 이유를 가지게 된다.‘그러면 나는 어쩌냐고….정말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이랑 결혼해야 해?하지만 사실 이게 다 나 때문
“그걸 지금 위로라고 하는 거야?”윤서가 헛웃음을 웃었다.“어쨌든 사람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지.”여름이 웃었다.“생각해 보면 너랑 자기도 했지만, 외모도 번듯하고, 몸매도 좋고…”“좋지. 섹시하고…. 야, 글쎄 팬티고 핑크색을 입더라.”윤서의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쿨럭쿨럭! 어우야, 너 남의 속옷까지…”여름의 말투가 사뭇 므흣해졌다.“아니, 어쩌다가 그냥 본 거거든.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라고!”윤서가 당황해서 해명했다.“그래 그래, 알겠어. 어쨌든 둘이 이미 서로 볼 거 다 본 사이인데, 뭐 어때?”윤서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도저히 해명할 방법이 안 보였다.“그렇긴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자세히 본 것도 아니라고….”“아, 그러면 최근에 자세히 봤다는 말이구나?”“야….”윤서는 더 이상 여름과 말을 섞기가 싫어졌다.“알았어, 알았어. 이제 장난 그만 할게.”여름이 웃었다.“어쨌든 네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무조건 존중할 거야. 네 마음만 잘 지키면 돼. 누구도 널 함부로 하지 못하게.”“사람 마음이 뭐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줄 아냐?”윤서가 부루퉁해서 받았다.“너도 전에 최 회장이랑 결혼할 때 네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잖아.”“그렇지. 하지만 결국 지키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걸 기억은 하고 있어야 해. 너 스스로를 더 사랑해 줘.”여름이 당부했다.“그래, 알겠어.”윤서가 끄덕였다.‘윤상원을 위해서 모든 사랑을 다 했었지. 자신을 온통 내놓는 사랑이라면 그거 한번으로 족해.이 세상에 날 상처주지 않을 사람은 나 자신 뿐이야.’이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심장이 철렁했다.솔직히 지금은 그다지 송영식의 식구들과 대면하고 싶지 않았다.이번 사태에 죄책감도 느껴지고 한편으로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잠시 망설이다가 결국은 가서 문을 열었다.뜻밖에도 문 앞에는 송영식이 서 있었다. 망설이는 듯도 하고 뭔가 심란한 듯 보였다.“잠깐 들어가도 돼?”“들어와요.”윤서가 돌아서서
왜인지는 몰라도 아까 식구들이 결혼 얘기를 꺼냈을 때 송영식은 예전처럼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아이 때문인지 임윤서가 사실 꽤 괜찮아 보여서 와이프로도 손색이 없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아마도 윤서에게 은근슬쩍 호감이 생긴 것 같았다.‘사랑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앞으로 천천히 윤서랑 아기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당당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윤서는 빨간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송영식은 마음이 조급해졌다.“아니, 뭐라고 말 좀 해 봐. 자기가 아무 말도 안 하니까 너무 떨린다고.”“두 번째 청혼이면서 뭐가 그렇게 떨린대?”윤서가 부루퉁하게 답했다.“……”송영식은 움찔했다. 순식간에 일전에 레스토랑에서 백지안에게 청혼했던 일이 떠올리고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전에 지안이에게 청혼했을 때도 진지하긴 했지만 그 일은 이미 다 지난 일이잖아. 이제 뭐 걔랑 전혀 잘 될 가능성도 없다고. 난 지금 당신한테 청혼하고 있어. 솔직히… 난 당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우리가 결혼해서 우리 집안이 위기를 벗어나게 되면 그때 윤상원을 혼내 주자고. 생각해 봐. 지금 사람들이 온통 우리를 욕하고 있잖아? 윤상원과 신아영이 저렇게 의기양양하게 이 상황을 즐기게 그냥 두고만 볼 거야?”윤서가 어금니를 깨물었다.‘나도 그 꼴을 보고만 있고 싶지는 않다고!’“나도 당연히 저것들이 그러고 있는 거 마음에 안 들지. 하지만 백지안에게 무릎 꿇고 청혼했던 사람이 나한테 와서 대충 이렇게 청혼이라니, 내가 무슨 재활용 센터도 아니고 말이야.”졸지에 재활용품으로 분류된 송영식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왜 말을 그렇게 해? 당신도 윤상원이랑 사귀다 헤어졌고, 난 백지안이랑 사귀다 헤어졌고, 쌤쌤이잖아?”“뭐래? 내가 중고다, 뭐 그런 말이야?”윤서는 임신 중이라 안 그래도 한창 예민해져 있었다.“아, 아니야. 그런 게 아니고. 그냥 동병상련이다… 뭐 그런 뜻이지.”송영식이 무안해 하며 해명했다.그리고, 난 당신이 훌륭한 인재라고 생
윤서는 흠칫 놀랐다. 방금 송영식이 언급한 문제는 자신도 전에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일단 꿇어 앉아 있어.”끝으로 윤서가 한마디 하더니 테이블로 가서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뭘 쓰는지는 몰라도 일단 꿇어 앉아 있으라는 것을 보니 허락을 해줄 모양인 듯했다.‘허락만 해준다면 꿇어앉아 있는 게 뭐 그렇게 대수겠어?’송영식은 꿇어 앉은 채로 윤서의 옆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풍더분한 옷을 입어서 그런지 임신 중반지라도 그렇게 배가 나와 보이지도 않는 윤서를 바라보다가. 송영식이 시선은 그녀의 가슴으로 향했다.문득 어젯밤의 일이 떠올랐다.‘결혼이라는 거 꽤 좋을지도 몰라.이제 명실상부하게 내 사람이 생기는 거잖아?수십 년을 마법사로 살았는데 조금만 더 마법사로 지내다가는 진짜로 마법 부리게 된다고 그랬어.’반 시간을 내내 꿇어 앉아 있은 끝에 윤서가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일어나요.”송영식은 후들거리는 무릎을 겨우 일으켰다. 윤서가 다시 종이를 내밀었다.“봐요. 여기 적힌 사항에 동의하면 결혼하고.”송영식은 얼른 받아서 읽어보았다.혼인 후 남자 측은 여자 측에 육체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명의상으로만 부부로 지낸다.혼인 기간 중 남자 측에서 다른 상대가 생기는 경우 여자 측은 재산은 일절 바라지 않으며 양육권은 여자 측의 소유로 한다.이혼 후 남자 측은 아이의 양육비를 부담한다.혼인 기간은 3년으로 하며 3년 만기 후 여자 측에서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 남자 측은 반드시 동의한다.남자 측은 혼인 기간인 3년 내에 불륜관계를 가질 수 없으며, 혹여 남자 측에 불륜이 발생한 경우 먼저 이혼을 요구하더라도 여자 측은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남자 측은 백지안과 만나거나 밀회를 가질 수 없다. 만약 여자 측에 발각되는 경우 3년 만기가 되지 않았더라도 즉시 이혼한다.남자 측은 매일 아이와 1시간 이상 놀아 준다. 다만 출장 시에는 예외로 한다.혼인 후 음식은 남자 측에서 담당한다.혼인 후 남자 측은 반드시 여자 측의 부
“왜 송태구 의원이 아니라 회장님께서 나오신 거죠? 송의원께서는 수양딸의 갑질에 대해서 해명하지 않으시는 겁니까?”“임윤서 씨는 사과하지 않을 작정인가? 하긴 사과가 무슨 소용이야? 임윤서 때문에 지금 윤후 그룹은 주가가 곤두박질 쳐서 시가가 얼마나 날아갔는지도 모르는데.”“임윤서 씨가 전에 윤후그룹의 윤상원 대표와 사귀다가 헤어지자고 했다던데요. 새 여자친구가 생겨서 기분 나쁘다며 윤 대표에게 새 여자친구와 헤어지리라고 압박하고 회사를 그 지경으로 만들었다는데 사실입니까?”“송근영 전무가 윤후그룹과 신진을 상대하겠다고 했다던데 사실입니까?”“이번 건에 대해서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일전에 송영식 대표는 집에서 쫓겨났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금방 복귀했습니까? 그냥 보여 주기식 대처였나요?”“……”송태구의 정적에게 매수된 일부 기자가 나서서 민감함 문제를 건드렸다.그런 와중에도 산전수전 겪어온 송윤구의 태도는 사뭇 침착했다.시간이 좀 지나자 기자들은 목이 아파왔다.“왜 아무런 대답이 없으십니까? 찔리는 게 있으신가 봅니다?”“답변을 할 시간을 주셔야 답변을 드리죠.”송윤구의 날카로운 시선이 기자들에게 떨어졌다. 송윤구의 말 한마디에 기자들은 움찔했다.“자, 이번 일이 점점 커지면서 분란을 일으키고 있어 기자 회견을 열게 되었습니다.”송윤구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이제 제 며느리와 아들이 사과를 드릴 겁니다.”“드디어 재벌 갑질을 인정하신다는 뜻인가요?”순식간에 기자들은 다시 벌집을 쑤신 듯 시끌벅적해졌다.“폭력을 행사한 것은 확실히 잘못된 일입니다.”송윤구가 미간을 찌푸렸다.“그러나 임산부에게 따귀를 올려 붙이는데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무슨 말씀이죠?”“임윤서 씨가 임신했나요?”“송영식 대표가 언제 남편이 되었나요?”송윤구가 눈짓을 해 보이자 송영식이 일어나 나왔다.“오슬란 신제품 발표회 때 불의의 일이 생기면서 임윤서 씨와 제가 관계를 가지게 된 것은 다들 아실 겁니다.
“산전 검사 결과와 관련 자료입니다. 임윤서 씨는 최근 몇 달 동안 정기적으로 산전 검사를 받아왔습니다.”송영식이 산전 검사 관련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제가 충동적으로 반응한 것은 사실입니다. 잠시 완전히 이성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임신한 아내가 누군가에게 맞는 것을 보게 되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셨을지 묻고 싶습니다.”기자가 연달아 물었다.“하지만 임윤서 씨가 먼저 윤후그룹을 공격했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게 아니었다면 신아영 씨가 먼저 임윤서 씨를 찾아가서 귀찮게 하지 않았겠죠. 게다가 영상을 보면 바닥에 꿇어앉아서 애걸하던데요. 임윤서 씨는 완전히 기세등등한 모습이고요.”임윤서가 미간을 찌푸렸다.“현장 영상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는 처음부터 신아영 씨에게는 손끝도 대지 않았습니다. 신아영 씨가 갑자기 나타나서 다짜고짜 무릎을 꿇은 것뿐입니다. 저는 완전히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고요. 신아영 씨와 그렇게 잘 아는 사이도 아니고 심지어 사이도 안 좋은데 제가 왜 영문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쪽을 상대해야 합니까? 신아영 씨 목소리를 듣는 순간 입덧이 올라와서 자리를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아영 씨는 계속 절 잡고 놓아주지 않았습니다.”“듣고 보니 신아영이 너무했네.”누군가가 신아영을 질책했다.“그런 상황에서 제가 굳이 신아영 씨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애써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건 좋은 거고, 싫은 건 싫은 거죠. 저와 윤상원 씨가 사귈 때 신아영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동생이라는 이름을 걸고 시시때때로 주변에 나타났습니다. 둘이서 쇼핑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데이트를 하거나 밥을 먹거나, 신아영을 데리고 나타났을 때 기분이 어땠겠습니까?”임윤서가 너무나 싫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그렇게 늘 신아영을 달고 다녀야 하는 신세가 너무 싫어서 윤상원 씨와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그 점은 윤후그룹 직원들도 늘 목격한 사실입니다. 저와 윤상원 씨가 사귀는 동안 신아영 씨는 어딜 가도 윤상원 씨와 꼭 붙어 있고는 했습니다. 유
-윤상원, 임윤서랑 학교 같이 다녔는데요. 그때 임윤서가 윤상원한테 정말 잘 해줬습니다. 뭐든 윤상원에게 다 맞춰주고 그랬는데 윤상원은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임윤서가 되게 아팠던 적이 있는데 혼자 병원 가더라고요.-나도 그런 거 봤어. 윤상원 생일이라고 임윤서가 파티 해준다고 친구들 잔뜩 불러보았는데 윤상원은 막상 나타나지도 않았다니까.-그건 아무것도 아니지. 윤상원은 결혼 때문에 임윤서 부모님과 약속을 잡아 놓고 신아영을 만나러 가서는 임윤서 부모님을 바람 맞혔다고. 2시간 넘게 기다렸대.-진짜? 진짜 완전히 댕댕이네. 거의 양유진 수준 아니냐?-양유진은 비열하기가 아주 한도 끝도 없는 거고, 윤상원은 그냥 쓰레기네. 남의 청춘을 낭비하게 만들고.여름이 댓글을 달았다.-윤상원은 자기가 쓰레기인 것도 몰라요. 오히려 임윤서가 신아영에 대해서 예민하게 군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사귀는 동안 막상 임윤서랑 여행가고, 밥 먹고 영화보고, 데이트한 게 다 저였어요. 애초에 윤서는 하찮게 여기고 무조건 신아영만 싸고 돌았어요. 그러면서 윤서가 못돼서 그렇다고 뒤집어 씌웠죠. 그래 놓고는 뭐? 윤서가 자기를 못 잊어서 복수를 하려고 한다고?-맙소사. 강여름이 나한테 댓글 달아줌?-강여름이랑 임윤서랑 절친이니까.-왜 그렇게 신아영을 개무시했는지 알 것 같다. 나같았으면 진작에 줘팼을 거임. 다시 생각해 보니까 임윤서가 진짜 착한 거네.하준이 여름에게 대댓글을 달았다.-윤상원이 한 짓을 생각하니 정말 할 말이 없군.여름이 다시 하준에게 댓글을 달았다.-전에는 윤상원이 윤서더러 나랑 헤어지라고 한 적도 있어. 내가 자기들 사이를 갈라 놓으려고 한다면서. 한번만 더 그런 소리 하면 가만 안 둘 거야.하준이 여름에게 댓글을 달았다.-그런 일은 당신 손 더럽히지 말고 나에게 맡겨.-아니, 최하준이랑 강여름은 왜 여기서 러브러브야?******윤후그룹.윤상원의 부모는 송윤구가 아들, 며느리와 연 기자회견을 보고 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잠깐.”하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아니야. 난 갈게. 어쨌든 넌 이제 예전의 하준이가 아니잖아. 예전 친구 따위가 뭐 그렇게 중요하겠어.”송영식은 한숨을 쉬었다.“잡지 마라.”“너 잡는 거 아니거든.”하준은 어이가 없어 하며 송영식을 쳐다보았다. ‘나에게 저런 신경질적인 친구가 있었다고?’송영식은 잠시 매우 민망해졌다.“…나 간다?”“앉아 봐.”하준이 옆이 의자를 가리켰다.송영식은 그제야 휘적휘적 가서 앉았다. 저도 모르게 시선이 하준의 노트북으로 향했다.“FTT 자료 보고 있었네?”하준은 그에 답하지 않고 미간을 찡그리고 있더니 물었다.“나랑 강여름은 어떤 사이였어?”“어떨 것 같냐?”송영식이 고소해하며 눈썹을 치켜올렸다.“맞추면 여기 앉아서 얘기해 줄 거야?”하준이 냉랭하게 물었다.“말 하기 싫으면 말고. 물어볼 사람이 너밖에 없는 건 아니니까.”“내가 졌다.”송영식은 김이 빠졌다.“네가 느끼기에는 어떨 것 같은데?”하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전에는 노트북도 핸드폰도 만질 줄 몰랐지만 오늘 아침에 핸드폰으로 몰래 뒤져보았다. 성인 남녀 사이에 키스를 한다는 것은 둘이 굉장히 친밀한 사이라는 뜻이었다. 게다가 자신과 여름이 나눈 것은 프렌치 키스라는 것까지 알아냈다.그런 것을 알아내고 나자 하준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뜨거워졌다.“뭐 응큼한 생각하고 있구나?”송영식이 큭큭 웃었다.하준이 송영식을 싸늘하게 흘겨 보았다.“내 여자인구인가? 하지만 결혼했다던데? 아이도 있고. 난… 강여름의 정부인가?”“… 컥컥. 대단하네. ‘정부’ 뭐 그런 단어까지 알아냈어?”송영식이 엄지를 치켜 세웠다.“하지만 그 단어가 딱 적당한 것 같다.”그 말이 맞다는 뜻이었다.하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정말 내가 그렇게 내놓기도 부끄러운 정부야?’“그렇다고 화내지는 말고. 이 지경이 된 것도 다 네 인과응보라고.”송영식이 말을 이었다.“여울이하고 하늘이 아빠가 누군지는 아냐?”“내가 어떻게 알아?”하준은 짜증이 났다.
“요즘 쭌은 자신을 더 이상 두 살짜리 아기로 생각하지 않아. 쭌의 실제 나이는 나보다도 많다고 얘기해 줬거든. 요즘은 선생님들 모셔서 가르치는데 정말 빨리 배워. 앞으로 한 달 정도면 전에 배웠던 지식 수준은 따라잡을 것 같아.”“하지만… 그러면 뭐해? 너희들 사이에 있었던 애정 같은 건 다 잊었을 텐데.”윤서가 망설이면서 말했다.“널 잊어 버린 사람이 다시 널 사랑하게 만드는 게벌써 몇 번 째냐?”여름은 할 말을 잃었다. 다시 슬픈 기분이 되었다.‘그러네. 대체 이게 몇 번 째냐고….처음에 동성에서 만났을 때, 내가 죽을 힘을 다해서 최하준을 따라다닌 바람에 결국 최하준의 관심을 받는 데 성공했지.외국에 나갔다가 돌아와서도 온갖 수단을 써서 백지안 옆에 있던 최하준이 날 사랑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었고.그래, 매번 성공했어. 그래서 피곤했냐 하면, 그래. 정말 피곤했지.두 사람이 서로를 향하는 사랑은 나와는 거리가 멀었어.’“나도 모르겠어.”여름이 망연자실해서 말을 이었다.“전에는 기억에 착란을 일으켰던 거고 이번에는 완전히 어린애나 다름 없게 되어 버렸으니까. 애정 부분도 완전히 백지가 되어 버렸어. 사실 날 사랑하게 만드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인생은 길잖아.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어. 다음에 또 이러지 않을까? 그 다음은? 내가 매번 이렇게 주동적으로 나서고 인내할 수 있을까?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나라고 무쇠로 만들어진 사람도 아니고, 나도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고.”“네 애정 문제에 있어서는 내가 뭐라고 한 적이 없지만, 너 이러는 거 보니까 나도 너무 마음이 아프다. 난… 최하준은 자기 자신도 지킬 줄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아. 혹시나 이번에 다시 고백 받거든 이번에는 쉽게 넘어가지 마.”윤서가 말을 이었다.“본인이야 그러고 싹 다 까먹어도 별 문제 없겠지. 하지만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날 그렇게 몇 번이고 잊어버린다면 그게 뭐 누구의 계략에 빠진 거든 뭐든 막 때려주고 싶을 것 같다. 아내랑 애가 있는
하마터면 윤서의 입술이 송영식의 코에 닿을 뻔했다. 순식간에 호흡이 엉키고 얼굴은 빨개졌다.“왜 이렇게 들이대?”“어떻게 사람이 말 한마디를 곱게 안 하냐?”송영식은 속상했다. 그런데 발그레해진 윤서의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이상하게 간질거렸다.요즘 윤서의 배가 점점 크게 부풀어 올랐다. 얼굴도 동그라니 뺨이 포동포동했다. 워낙 잘 먹여 놔서 피부도 촉촉해서 저도 모르게 한번 꼬집어 주고 싶었다.“좋은 말은 할 줄 알지만 당신한테는 안 쓸 거야.”윤서가 코웃음을 쳤다.“여름이가 장보러 간다니까 우린 좀 천천히 가자.”“마침 잘 됐네. 나도 올라가서 뭣 좀 해야 하거든.”송영식이 묘하게 웃더니 신이 나서 뛰어 올라갔다.송영식의 뒷모습을 보며 윤서는 어리둥절했다.*****1시간 뒤, 송영식이 차를 몰고 하준의 집으로 향했다.송영식의 집에서 하준은 집까지는 멀지 않아서 30분이면 닿았다.윤서는 하준의 집에는 처음이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집을 보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여기 너무 큰 거 아니야? 너희 집에 대니까 우리 집 너무 초라하다.”송영식이 반박했다.“그집이 어디가 초라해?”“그러게. 그런 좋은 집을 두고.”여름이 웃으며 답했다.“같이 한 바퀴 돌까? 그러면서 과일도 좀 따고.”“그래.”윤서가 송영식을 돌아보았다.“따라오지 말고 하준 씨한테나 가 봐요.”“누가 따라간대? 자기가 무슨 인기 연예인인 줄 아나?”송영식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흥, 앞으로는 절대로 나 따라다니지 말라고!”윤서가 싸늘하게 웃었다.송영식의 얼굴이 굳어졌다.“누가 따라다니고 싶어서 따라다니는 줄 아나? 워낙 덤벙대니가 아기 다칠까 봐 그러는 거지.”“고오맙네요. 백지안 때문에 밀치지 않아서. 내 아기는 누구보다 건강할 예정이거든요.”윤서가 비꼬았다.“대체 언제적 얘기를 아직까지…. 됐다. 내가 당신이랑 무슨 말을 하냐? 하준이한테나 가 봐야지.”송영식이 씩씩거리며 자리를 떴다.여름은 어이가 없었다.“너희 둘… 안
여름은 할 말을 잃었다. ‘아까부터 그거 때문에 의기소침한 거였어?’“그래. 완전히 탄복했지.”여름이 끄덕였다. 감탄한 것을 굳이 숨기고 싶지는 않았다.차진욱은 흑과 백을 넘나드는 사람이었지만, 여울이를 구해주고 나서부터는 내심 존경하는 마음이 커졌다.강신희에 대해서도 차진욱은 남편으로서 아껴주었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모두 다 하도록 방임하는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차진욱이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발휘하여 처음부터 하준을 상대했다면 여름과 하준은 진작에 끝장이 났을 것이다.돈이 넘치는 사람은 쓸데없는 못된 버릇도 있기 마련인데 차진욱에게는 그런 결점도 딱히 없었다.강신희에 대해서도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아플 때도 결코 곁을 떠나지 않았다.여름은 강신희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런 사랑과 혼인 관계는 너무나 부러웠다.자신은 결혼 생활도 실패한 것 같았다. 하준은 차진욱처럼 아량이 넓고 포용력이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백지안 같은 불여우에게 속아서 이용당하는 지경이었다.재결합한 뒤에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둘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전에….여름은 슬픈 마음으로 하준을 돌아 보았다. 그런데 하준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우울한 모습이었다.“걱정하지 마. 나도 그런 사람이 될 거야. 여름이가 감탄할 수 있는 그런 사람.”하준이 진지하게 주먹을 쥐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FTT를 되찾아 올 거야.”여름이 빙긋 웃었다.“난 차 회장님의 패기 넘치는 스타일에 감탄한 게 아니야. 쭌은 아직 잘 모르네.”“그럼 뭔데. 말해 봐봐. 나도 배우게.”하준이 다급히 물었다.“배워서 뭐 하게?”여름이 하준을 흘겨 보았다.“혼인 관계에 대한 지조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포용력에 감탄한 거야. 그런 걸 쭌이 배워서 어디에 써먹을 건데?”하준은 흠칫했다.혼인이니, 사랑하는 사람이니, 다 하준과는 너무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하준은 마음이 괴로웠다. 어제 이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말이었다. 사실 하준은 핸드폰에서 여름과 자신의 셀카
“이게…”“그리고, 월급 받는 전문 경영인 주제에 이사회의 결정을 듣지 않고 우리에게 반항한다? 그러면 우리는 당신이 회사를 침탈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할 수 밖에 없죠. 회사 중역은 죄다 당신이 심어놓은 사람이고 아무나 와서 기고 만장하단 말이야.”한마디 한마디 뼈가 시렸다. 맹원규의 안면 근육이 부르르 떨렸다. 하준은 그렇게 싸늘한 여름의 얼굴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모습마저도 너무 매력이 넘쳤다.맹원규가 싸늘하게 웃었다.“강여름 씨는 내 모가지를 쳐내고 내가 고용한 임원까지 싹 솎아내고 싶으신가 보군.”“그러면, 당신은 그만 두고 나갈 건가요?”여름이 비꼬았다.“당신 같은 사람은 철면피처럼 여기 어떻게든 붙어있을 걸.”맹원규는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었다.“절대로 안 비킬 줄 알았지.”여름이 말을 이었다.“하지만 내일부터는 최하준 씨가 회사에 와서 회장직을 수행할 겁니다. 당신은 직위 해제예요. 이사회의 절대적인 행사권 앞에서 당신은 일개 직원일 뿐이에요. 싫다고 말할 권리는 없습니다.”그렇게 말하더니 여름은 하준을 데리고 나갔다.막 문을 나서는데 안에서 뭔가를 부수는 소리가 들렸다.여름이 하준에게 눈짓을 했다.하준은 바로 알아듣고 주먹을 쥐고 돌아섰다.두 사람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맹원규와 깨진 컵이 보였다.“어, 아주 잘나셨어?”하준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일개 직원이 이사 앞에서 컵을 깨고 눈을 부릅뜨다니?”“아닙니다. 제가 실수로 컵을 떨어트렸습니다.”맹원규가 뱉었다.“왜요? 내 안면 근육이 멋대로 수축하는 것도 안 됩니까?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직원이 오너보다 기고만장한 꼴을 다 보고. 당장 나가시오.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하준은 냉엄하게 내뱉고는 여름을 데리고 나갔다.가면서 맹원규의 그 얼굴을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내일 맹원규가 꺼질까?”여름이 웃었다.“그렇게 쉽게 나가겠어?”“그런가…?”하준의 어깨가 쳐졌다.“안 나갈 거야. 배후에 양유진이 있을 테니까. 양유진이 놈에게
차진욱의 변호사가 나섰다.“미안하지만 강여경이 FTT를 구매하는데 사용한 자금은 모두 강신희 여사님의 계좌에서 나온 돈입니다. 계속해서 당신이 FTT 주식을 상속하겠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법원에 주식의 동결을 신청할 수 밖에 없습니다.”“당신은 그럴 권리가 없어!”강태환이 다급히 외쳤다.“돈은 내 동생이 준 거라고. 신희를 불러와.”“강신희는 지금 병으로 입원 중이고, 나는 배우자로서 부부 공동의 자산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지.”차진욱이 몸을 앞으로 쑥 내밀었다.“그리고 난 당신들 셋이 사기범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마침 강여경의 시신이 아직 냉동 보관 중이지? 그러면 이참에 DNA를 검출해서 친자확인을 해보자고. 난 재산도 되찾고 당신들을 사기로 고소도 해야겠어. 천문학적인 금액을 사기쳤지. 아주 전세계 최고 사기액일 거야.”“헛소리! 우리는 사기 같은 거 치지 않았어!”강태환은 온몸의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았다.뭐라고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사실 기절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호흡이 가빠진 척하며 휠체어에 쓰러졌다.이사회를 개최했던 맹원규는 후다닥 일어나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구급차 오고 있나? 회의실에 또 한 명이 기절했어. 같이 실어 보내지. 어서. 사람 죽게 생겼다고….”전화를 끊고 나가 회의실은 쥐 죽은 듯 고요해 졌다.맹원규가 차진욱을 보고 웃었다.“주식에 이렇게 큰 문제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이번 회의는 취소하고 다음에 다시 논의하시죠. 아니면 두 분이 개인적으로 분쟁을 해결하시고 나서 다시 이야기 나누십시다.”차진욱의 날카로운 시선이 맹원규를 훑었다.“강여경이 어마어마한 연봉을 주고 당신을 불렀지? 그 돈도 내 아내의 자금이야.”맹원규의 얼굴이 굳어졌다.사실 강여경이 어마어마한 연봉을 주고 맹원규를 초빙한 것은 사실이었다.“내 아내의 자금을 날려가며 불러온 게 겨우 이따위 쓰레기라니?”차진욱은 경멸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었다.“제가 뭘 잘못한 거라도 있는지요?”맹원규가 깊
기다리지.”차진욱은 셔츠를 정리하고 다시 앉았다.강태환은 바들바들 떨었다. 기절했으면 싶었다. 이제 양유진이 실려나갔으니 혼자서 어떻게 차진욱을 감당하겠는가?차진욱이 손이라도 댄다면 자신도 양유진 꼴이 날 것은 불 보듯 뻔했다.피범벅이 된 양유진을 생각하니 두려워졌다.‘기절한 척할까? 그러면 맹원규가 회의를 취소하겠지?’그런 생각을 하는데 여름이 갑자기 다정하게 다가왔다.“왜 그러세요? 놀라서 기절할 것 같은 건 아니겠죠?”“……”“기절하시면 안 돼요.”여름이 다정하게 말했다.“아빠가 기절하면 강여경의 주식을 어떻게 상속받아요?”강태환은 환장할 지경이었다. “강여경의 주식?”차진욱이 결혼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큭큭 웃었다.“그게 당신 차지가 되겠나? 범죄자 따위가 말이야.”차진욱의 말에 회의실은 묘한 정적에 빠져들었다.강태환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난 강여경의 아버지요. 여경이가 죽었는데 자식이 없으니 우리나라 법에 따라 부모가 재산을 상속받는 거지.”“강여경의 부모인 건 확실하고?”차진욱이 싸늘한 눈으로 노려보았다.“얼마 전 동성에 갔을 때 분명 강여경의 부모는 따로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강여경의 친엄마는 내 아내 강신희라고 말이야.”강태환이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그런가요? 내가 그런 소릴 했나? 어쨌든 법적으로는 걔가 내 딸이거든.”“그래?”차진욱이 옆에 있던 변호사에게 손짓했다.변호사가 바로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건넸다.차진욱이 서류를 강태환에게 들이 밀었다.“그러면 잘 보시지. 소위 당신의 딸이 일전에 내 아내의 재산을 어마어마하게 썼거든. 당신네 나라 법에 따라 강여경이 쓴 돈은 우리 부부의 공동 재산이라서 내게도 그 돈을 추심할 권리가 있어. 강여경이 죽었으니 그러면 그 돈은 법적인 아버지에게서 돌려받아야겠군”“무, 무슨 근거로?”서류의 숫자를 본 강태환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평생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금액이었다.“거 참 우습구먼. 당신 딸이 죽어서 딸이 남긴 주식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와 아무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 차진욱이 눈동자를 보자 양유진은 저도 모르게 몸이 덜덜 떨렸다.양유진은 자신이 차진욱을 완전히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다. 차진욱은 아들이 하나뿐이다. 그것도 강신희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었다. 그러니 분명 매우 애지중지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양유진은 차진욱이 잔인함을 과소평가한 것이었다.양유진은 너무 아파서 입술에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 이마에서는 땀이 송글송글 솟아났다. 고통에 가득 찬 눈에 독기가 서렸다.“계속해 보시지. 그 대가로 아들 시체를 받게 될 거야. 난 놈을 아무도 없는 곳에 숨겨뒀어. 누구도 찾을 수 없게.”“그러시겠지.”차진욱은 큭큭 웃으며 양유진을 놓아주었다. 위협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는 얼굴이었다.“난 이래서 가식적인 인간이랑 말을 섞기가 싫다고. 인질을 잡았으면 잡은 거지 왜 나랑 쇼를 하겠다는 건지?”양유진은 당황해서 비척비척 뒤로 물러났다. 부러진 손을 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차진욱! 당장 내게 사과해! 사과하지 않으면 아들놈을 죽여 버리겠어. 네놈은 이제 대가 끊기게 될 거다.”몸을 빼자마자 다시 차진욱을 협박하다니 너무나 양유진다웠다.맥퀸이 분노했다.“도련님을 다치게 했다가는 네 집안이 쑥대밭이 될 줄 알아!”“우리 집안이 차민욱 만큼 가치가 있지는 않지.”양유진은 화가 난 맥퀸을 보더니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차진욱, 스스로 손가락을 자르면 내가 오늘 일은 없었던 걸로…”말을 마치기도 전에 차진욱은 양유진을 걷어차 날려버렸다.양유진은 바닥에 엎어졌다. 목구멍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차진욱이 다가가 양유진의 얼굴을 밟았다.“그래도 체면을 좀 차리게 해주려고 했더니 끝간 데를 모르고 까부는군. 내가 뭐라고 했는지 잊어버렸나? 내 아들이 팔 다리 잃는 것쯤은 신경 안 쓴다고 했지? 살아만 있으면 된다. 잘 들어. 민우의 목숨은 네가 살수 있는 조건이다. 멋대로 날 협박할 생각은 버려. 난 협박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야.”양유진은 전혀
“난 사람으로서 못할 짓을 한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전세계의 낙후된 국가에 의료 환경을 제공하고자 애썼습니다. 하루하루 병에 침식되어 목숨을 잃는 사람들의 고통을 아십니까?”여름은 구역질이 올라왔다.양유진의 연기는 그야말로 아카데미 주연상 수상감이었다.자기 친조카도 살해할 정도로 잔인한 인간이 병으로 고통받는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니….“윽!”옆에서 듣던 하준이 먼저 반응했다.“구역질이 나는군. 당신네 약은 선진국에 팔자면 무시 당할 수준이니 제3세계 국가에 가서 돈을 버는 수밖에 없지. 가난한 나라지만 의약품은 필수니까. 당신은 죽음에 직면한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거야. 말로는 성인군자인 것처럼 굴지만 사람들이 다 바보인줄 아나?”차진욱은 하준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그래. 내가 살면서 별별 사람을 다 만나 봤지만 너처럼 구역질 나는 인간은 참 드물지.”자존심이 센 양유진은 그런 모욕을 당하자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차진욱이 천천히 일어서 양유진에게 다가갔다.강태환은 양유진과 같이 있다가 차진욱의 거대한 몸이 다가오자 극도로 두려움을 느꼈다.그러나 휠체어에 앉아 있어 마음대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그저 손잡이만 꼭 잡을 뿐이었다.“왜 이러시죠? 여기는 FTT그룹이고, 우리나라입니다.”양유진이 낮은 소리로 경고했다.“내가 모른다더니? 이제는 내가 이 나라 사람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나 보군, 그래?”차진욱은 느릿하게 소매 단추를 풀었다. 소매를 걷으니 그을린 팔뚝이 드러났다. 탄탄한 주먹만 봐도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누구 없나?”상황이 여의치 않아 보이자 맹원규가 냅다 사람을 불렀다.그러나 맥퀸이 맹원규의 팔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머리를 테이블에 짓눌렀다.동시에 차진욱의 주먹이 양유진의 안면을 강타했다.180cm가 넘는 양유진의 몸이 그대로 벽까지 날아갔다. 입에서는 선혈이 흐르고 이빨도 몇 개가 부러졌다. 너무 아파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강태환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머…멈춰요.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