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간의 사랑이라…송지현의 분노에 찬 모습이 이해된다. 송지현의 굳은 얼굴을 본 소은정도 마음속이 불편하였다. 동정은 하지만 불쌍하진 않다. 소은정이 뚫어져라 송지현을 바라보았다. “송대표님, 애정에서 실패한 것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지 마세요. 당신의 짝사랑에 결실이 없는 것은 성강희가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 생긴 일이지 제 탓이 아니에요. 더욱이 제가 당신의 사랑에 끼어든 것도 아니고요. 그러니 당신의 비난을 받을 이유도 없어요.누가 더 불쌍하여 누군가의 편을 들어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소은정은 송지현과 다르다. 송지현은 사랑했지만 성강희를 가지지 못했고 소은정은 정정당당하게 박수혁의 사랑을 기대했던 것이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송지현이 성강희를 가진 적이 있었나?없다. “하지만 성강희가 당신을 좋아…”송지현이 소은정을 째려보았다.소은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송대표님! 제발 인간의 도리를 지키자고요. 성강희가 저를 좋아하는 게 제 탓이에요? 그럼 당신은 성강희를 좋아하면서 왜 놓아줄 생각은 안 하세요?”왜 항상 송지현은 자신이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해 남의 탓으로 돌리려 하는 것일까… 모든 탓을 남의 탓으로 돌려야지만 마음이 편한 건가?송지현이 쇼핑몰을 주름잡고 있으니 소은정도 그녀의 체면을 지켜주려 하였지만 이렇게까지 구질구질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와 말 섞기도 귀찮았다. “송대표님, 인제 그만 물러나 주시죠. 만약 원하신다면 성강희를 불러 같이 터놓고 얘기를 나누는 건 어떤가요?”소은정이 생각하기엔 성강희를 불러내는 것이 좋은 생각이라 생각했다. 송지현이 이렇게 남의 탓만 하다가는 영원히 자신의 사랑에 희망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것이 편하지 않겠는가? 송지현은 잠깐 망설이는 듯싶더니 말했다. “지금 일부러 그 사람 앞에서 나를 난처하게 만들려는 거지?”이 말을 들은 소은정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아니면 말고. “그럼 알아서 해. 아무튼
소은정은 그런 성강희의 농담에 차가운 눈빛과 웃음을 날렸다. 송지현에 관한 얘기를 할까 했지만 생각해보니 필요 없을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성강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테니 말이다. 한유라는 다른 사람과 인사를 나누다가 소은정에게 걸어와 소은정의 손목을 끌어당겼다.“소은정, 저기 박수혁이 있어!”소은정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박수혁이 여기 있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될 수 있는 한 그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한유라가 하던 말을 이어갔다. “박수혁 옆에 있는 저 남자, 엄마가 소개해준 맞선 상대야!”그 말에 술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소은정은 사레에 걸릴 뻔했다. 성강희도 놀란 얼굴로 그들을 번갈아 보았다. 두 사람이 모르던 사이에 한유라가 맞선을 나가다니! 한유라는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엄마가 나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나간 거야. 어차피 내 스타일 아니야. 근데 두 집안끼리는 이미 얘기가 끝났어…”소은정은 한유라를 대신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강희는 부러운 눈빛으로 소은정을 보았다. “우리 부모님도 이렇게 봉건적인 태도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소은정과 한유라가 동시에 외쳤다.“꺼져!”남의 슬픔을 기쁘다고 생각하다니! 올해의 최악의 친구다.“은정아! 나 좀 도와줘.”소은정이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나도 도와주고 싶지만…”도와준다고 해서 그들의 부모님들을 찾아가 전쟁 선포라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유라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소은정을 끌어당겨 더 가까워지게 한 후 자신의 계획을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소은정이 입술을 더욱더 세게 깨물었다. 한유라의 계획은 소은정이 그 맞선남을 찾아가 스캔들을 조성하게끔 유혹하라는 것이었다. “야, 너의 제일 소중한 친구가 이미 그쪽으로 명성이 자자한데 불 난 집에 부채질하려고 그래?”한유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의 팔을 흔들면서 말했다. “하지만 네가 아니면 적당한 사람이 없는걸, 너는 특별한 여자야. 분명히 우리 둘의 집안
소은정의 한 마디에 분위기가 더 싸해졌다. 박수혁의 어두운 눈동자 안에 두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소은정, 대체 뭐 하는 짓이야?”참지 못한 박수혁이 물었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 그 프로젝트에서 송지현을 빼버렸고 SC그룹을 가입시켰다. 소은정의 입에서 보상이라는 단어가 나왔고 박수혁도 그에 응하였다. 보상이 끝나면 서로 빚진 것이 없으니 박수혁도 다시 그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것 아닌가? 오늘의 소은정의 행동이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너무나 알고 싶었다. 소은정은 곁눈질로 박수혁을 보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박대표님, 과거의 빚을 갚았다고 해서 당신이 저한테 이래라저래라할 자격은 없어요.”둘 사이는 친구조차 아닌 관계이다. 그러니 참견하지 말라는 소은정의 말을 들은 박수혁의 얼굴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뚫어져라 소은정을 지켜보았다.그의 눈빛을 못 본 체하고 고개를 돌려 싱긋 웃으며 이태승을 보았다. “이태승씨, 둘이 얘기 좀 할까요?”이태승은 소은정이 무슨 속셈으로 자신한테 다가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소은정, 대체 무슨 속셈이야?”이태승은 차갑고도 싸늘한 어투로 물었다. 소은정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속셈이라니… 모르겠어? 내가 당신한테 마음이 있는 거…”세 남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강서진은 경악의 얼굴을 금치 못했다. 소은정이 이태승을? 애초에 그들의 결혼생활에서 그녀를 깎아내린 이태승을? 그럼… 박수혁은? 소은정의 말을 들은 박수혁의 주위의 공기가 곁에 있는 사람마저 얼게 만들었다. 살기가 느껴질 정도로 무섭게 소은정을 노려 보고 있는 모습이 무섭기까지 하였다. 이태승 또한 온몸이 경직되고 안색이 어두워졌다. 악마를 보는 듯이 소은정을 보고 있었다. 심지어는 소은정에게 자신이 잘못한 일이라도 있나 싶었다. 자기 친구들이 소은정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것을 안 박수혁은 며칠간 그의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다. 간만에 이 파티에서 형제
금방 둘의 모습은 누가 봐도 가까운 사이 같아 보였다. 박수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매서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위의 사람들은 이 사람들을 보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명문가들의 애정은 얽히고 설킨 것이라며 입을 모아 쯧쯧거렸다. 박수혁의 모습에 소은정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대체 박수혁이 뭐길래 나의 감정에 관해 묻는 것이지? 그녀는 담담함을 유지하면서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태승은 잔뜩 긴장해서 해석하려 하였다. “박대표! 나 소은정이랑 안 친해.”박수혁은 애초에 이태승에겐 관심도 없었고 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강서진이 다가와 이상한 삼각관계를 보면서 박수혁을 대신해 입을 열었다. “안 친하다고? 꽤 친해 보이던데…”이태승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고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너 대체 누구 편이야?”강서진… 소은정이 보낸 내부 스파이인가? 강서진은 이태승의 기세에 눌려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이태승은 해병대 출신에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어 강서진이 싸우더라도 이길 확률이 희박했다. 기세등등하던 강서진이 박수혁의 뒤로 물러났다. 박수혁은 소은정의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입을 열지 않은 이상 순순히 보낼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소은정은 박수혁의 태도를 보고 장난이 섞인 어투로 말했다. “삼 년이나 알고 지낸 사이인데 어떻게 안 친해?”이태승은 삼 년 동안 그녀를 막 대했던 남자이다.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고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강서진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긴 하지.”이태성과 박수혁의 싸늘한 눈빛이 강서진을 훑어보았다. 그때 한유라가 그녀의 휴대전화를 들고 다가왔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웃으면서 소은정을 보았다. “누가 전화 오는 것 같던데 확인 좀 해볼래?”소은정은 짧은 한숨을 쉬었다. 드디어 연기를 끝내도 될 듯싶었다. 소은정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한유라를 따라갔다. “어떻게 됐어?”한유라가 웃으면
언니라는 말을 들은 소은정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처음으로 박예리의 입에서 언니라는 소리를 들은 소은정은 악몽을 꾸는 것만 같았다. 박예리의 계획을 미리 들은 것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귀를 의심했을 것이다. 눈앞의 박예리는 예의 바르게 서 있으면서 소은정을 보고 웃었다. “은정언니, 할 얘기가 있는데 잠깐 나가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소은정의 눈썹이 꿈틀거렸고 손에 든 포도 주스를 빙글빙글 흔들었다. 의아한 듯 그녀에게 물었다. “우리가 무슨 할 얘기가 있지?”그 말을 들은 박예리가 멈칫하더니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며칠간 생각 많이 해봤는데 과거에 제가 했던 일들이 후회되고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어 사과하려고요.”“아. 그럼 여기서 그냥 해, 사과. 많은 사람 앞에서 사과를 비는 것이 더 성의 있지 않아?”박예리의 얼굴이 굳더니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좀… 그렇지 않나요? 따로 할 얘기가 있어요.”소은정은 유리잔에 비친 샹들리에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유리잔에 비친 모습이 천장에 걸려있는 모습보다 더 예뻐 보였다. 소은정의 태도를 본 박예리가 한마디 더 보탰다. “언니와 오빠 사이에 있었던 일을 주변 사람들이 듣는 건 좀 그렇지 않나요?”소은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일어서면서 말했다. “그래.”한유라가 소은정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면서 말렸다. 소은정은 웃으면서 그녀의 손을 도닥여 주었다. 박예리 정도는 혼자 처리할 수 있다고 안심시켜 주는 듯하였다.박예리는 눈에 만족스러운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2층의 테라스.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고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컴컴한 하늘에 별바다가 수 놓여 졌다. 박예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박예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생각했다. 역시나… 유치하군…박예리는 소은정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다정한 말투로 소은정에게 말했다.“은정언니, 생각해 봤는데 언니와 오빠는 정말 어울리는 것 같아요. 집안도 비슷하고…
순간, 겁에 질린 박예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모든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그, 그래.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소은정이 손에 힘을 주자 섬유가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이때 그녀는 박예리의 손을 살짝 풀어주었다.박예리는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고 그녀의 몸이 살짝 아래로 내려갔다.하지만 소은정은 결국 끝까지 손에 힘을 풀지 않았고 묘한 표정으로 겁에 질린 박예리의 얼굴을 관찰했다.“잘못을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겠지?”박예리는 더는 참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살려줘!”소은정은 가만히 그런 박예리를 지켜볼 뿐이었다. 곧 그녀의 소리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강서진도 박예리를 발견하곤 기겁하더니 다급하게 박수혁을 찾기 시작했다.젠장, 이게 다 무슨 일이야!소은정은 찢어진 박예리의 치마를 힐끗 바라보며 차갑게 웃었다.“치마가 다 찢어졌는데 사람이 점점 몰려들어도 괜찮겠어?”이때 찌지직 소리와 함께 치마가 더 찢어졌다. 이제 그녀의 치마는 더 이상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듯했다.그 와중에도 창피함은 느끼는지 박예리는 입을 다물고 버둥거리며 난간을 잡으려 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박예리는 방금 전 아래로 추락할 뻔한 걸 생각하며 매서운 눈빛으로 소은정을 노려보았다.“너... 그렇다고 진짜 손을 놔? 인정하면 안 놓기로 했잖아!”박예리는 순식간에 왜 상황이 역전되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소은정을 밀려고 했는데 왜 오히려 그녀가 당해버린 걸까?소은정이 피식 웃었다.“날 해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을 내가 왜 도와줘야 하지? 박예리, 내가 나 건드리지 말라고 했지. 정말 멍청하다니까.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다니.”박예리에게는 이미 수없이 경고를 했었다. 더 이상 건드리지 말라고. 먼저 나대지만 않으면 그녀도 가만히 있을 거라고. 그런데도 돌아서면 다시 그녀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는 박예리에게 제대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박예리는 분노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소은정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부
순간,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주위에 몰린 구경꾼들의 눈동자도 커다래졌다.가족인 박예리를 진심으로 온힘을 다해 때리는 모습에 다들 어안이 벙벙해졌다.바닥에 쓰러진 박예리는 빨갛게 달아오른 뺨을 어루만졌다. 방금 전 충격으로 눈앞이 빙글빙글 돌아갔고 분노와 공포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박예리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고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박수혁을 올려다 보았다.그녀를 바라보는 박수혁의 눈동자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빠에게서 이런 혐오르는 느끼는 건 처음이었다.박예리는 순간 할아버지와 박수혁의 경고를 떠올렸다.소은정을 다시 건드리지 말아라. 또다시 그녀를 건드린다면...쿠궁!설마 이제 정말 집에서 쫓겨나는 건가?그녀는 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돌려보았다. 어딜 가나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아름다운 공주던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에는 조롱, 멸시, 분노가 가득했다.이제 더 이상 물러날 데도 없다. 파티장의 화려한 조명에 박예리의 머리를 더 어지럽게 만들었다.하, 생각보다 더 세게 때렸네?한편, 할일을 다 끝냈다는 생각에 소은정은 바로 자리를 뜨려했다.“뭐, 이제 진실도 밝혀졌으니 내가 더 있을 필요는 없겠지?”입가에 경멸의 미소를 띈 그녀는 박예리의 앞을 지날 때 살짝 멈춰섰다.“박예리, 오늘 일로 제대로 배웠길 바랄게. 넌 나한테 안 돼. 다신 보지 말자.”방금 전 바로 손을 풀지 않은 게 그녀가 베풀 수 있는 최대의 자비였다. 그녀가 민첩하게 피하지 않았다면 이 사고를 당한 건 그녀 자신이었을 테고 결코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박예리가 소은정처럼 그녀의 손을 잡아줄 리도 없고, 오히려 파티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을 불러모아 그녀의 비참한 꼴을 비웃었겠지.누군가는 최고의 벌이 용서라고 생각했지만 소은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그녀의 신조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다.이번 일로 박예리의 이미지는 나락으로 떨어졌을 테고 그녀가 그토록 원하는 재벌 2세 남편은
다음 날, 박예리가 바로 박씨 일가에서 쫓겨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소은정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소은찬과 골프 약속을 잡은 소은정은 프라이빗 골프장으로 향했다. 푸르른 숲에 둘러싸인 골프장은 바라만 봐도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1년 365일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있는 소은찬이 그나마 즐기는 운동이 바로 골프였다. 한신연구원에 취직한 뒤로 한번도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소은정이 특별히 잡은 약속이었다.하지만 골프에는 영 젬병이었던 소은정은 게임이 잘 풀리지 않자 아에 포기하고 옆에 앉아 휴대폰 게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이때 한유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오늘 나 재밌는 얘기 들었다. 박예리가 집에서 쫓겨났다며? 그리고 이태성이랑 스캔들 난 건 또 뭔데?”소은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게 무슨 스캔들이야.”“걱정하지 마. 소문은 안 퍼졌으니까. 파티 끝나기 전에 누가 단단히 입단속을 시켜서 말이야.”한유라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뭐 그런 일을 할만한 사람이라면 박수혁 아니면 이태성이겠지 라는 생각에 소은정은 굳이 묻지 않았다. 그쪽에서 먼저 나서주니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때 한유라가 갑자기 말을 돌리더니 박예리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집에서 쫓겨난 뒤 박예리의 행방에 대해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서 말이다.“태한그룹 쪽에서도 아무런 움직임도 안 보이고.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거 아니야? 네가 박예리를 구한 은인인 건 맞지만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 것도 너잖아? 박수혁이 여동생 복수를 한답시고 또 치사하게 구는 건 아니겠지?”한유라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소은정이 차갑게 웃었다.“걱정해야 할 건 오히려 그쪽이겠지...”전화를 끊은 소은정은 휴대폰을 한쪽에 던져버리고 두 눈을 감았다.하, 복수? 하라고 해. 누가 무섭대?자리에서 일어선 소은정은 다시 골프를 치기 시작했지만 골프공은 그녀를 놀리기라도 하듯 완벽하게 홀을 빗겨나갔다. 옆에서 보다 못한 소은찬이 다가가 그녀의 뒤에서 자세를 잡아주었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