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이 차갑게 웃었다. 정말 날 바보로 아는 건가?그깟 사과가 정말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지금 이 자리에서 박예리가 무릎을 꿇는다 해도 소은정은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소은정의 태도에 충격을 받은 박예리는 무언가를 더 말하려다 고개를 숙였다.소은정은 더 이상 그녀의 말에 고개를 숙이던 계집애가 아니다. 그녀는 이제 원하는 건 모두 다 얻을 수 있는 SC그룹의 대표이사, 실제로 그녀 덕분에 태한그룹도 요즘 주가 하락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소은정... 너 지금 그게 사과하러 온 사람한테 할 말이야? 적어도 예의는 지켜야지!”박예리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차피 할아버지 말대로 사과도 했다. 소은정이 받아들이고 말고는 그녀가 더 이상 간섭할 수 없는 일이었다.소은정은 시간을 확인한 뒤 바로 사무실 책상 위에 있는 전화기를 들었다.“경비 불러요. 손님 나가십니다.”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이 커다래진 박예리의 얼굴을 보며 소은정은 한 마디 덧붙였다.“그리고 앞으로 SC그룹 사람들은 들여보내지 마세요.”“소은정, 너무 잘난 척하지 마. 네가 언제까지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아!”사과하러 와서 쫓겨났다는 사실이 퍼진다면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그녀가 제대로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이다.“잘난 척? 박예리 씨, 일단 사과하는 법부터 배우고 오세요. 못 배운 티 내지 말고.”이때 노크와 함께 경비들과 우연준이 들어왔다.“박예리 씨, 가시죠.”우연준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분한 마음에 소은정을 한참 노려보던 박예리는 하이힐 뒷굽으로 바닥을 쾅 내리친 뒤 사무실을 나섰다.하지만 기세등등하게 SC그룹을 나온 지 얼마 안 돼 박예리는 후회가 밀려왔다.돌아가서 할아버지와 오빠한테 뭐라고 말해야 하지? 아, 조금만 참을걸.본가로 돌아가는 동안, 박예리는 불안감에 손톱을 물어뜯었다.집에 들어선 순간, 박대한은 그녀를 향해 찻잔을 던졌다. 다행히 제때에 피한 덕에 맞지 않았고 찻잔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할아버
박수혁과의 이혼으로 유명세를 얻은 주제에 이제 와서 능력 있는 여자인 척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 소은정의 문란한 사생활도 꼬집었다.그제야 소은정은 고개를 들어 남자와 시선을 마주쳤다. 아름답지만 차가운 눈빛에 재벌 2세도 흠칫 뒤로 물러섰다.“네, 무시하는 겁니다.”별 어중이떠중이까지 다 들러붙네.더 이상 남자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소은정은 한유라에게 가기 위해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이대로 물러서면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생각에 남자는 짜증스런 얼굴로 소은정의 손목을 잡아끌었다.“야, 네가 뭐가 그렇게 잘났어? 박수혁한테 버림받은 여자 주제에. 너 같은 중고품한테 관심 가져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받을 것이지. 어디서 도도한 척이야. 아, 너 돈 좋아하지? 야, 얼마면 되는데. 얼마 주면 나랑 마실 거냐...”남자가 말을 끝내기 전에 소은정은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샴페인 잔을 빼앗아 얼굴에 끼얹었다.술 방울이 남자의 머리카락을 따라 뚝뚝 떨어졌다. 남자의 고함에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씩 두 사람을 바라보며 수군댔다.소은정은 욱신거리는 손목을 어루만지며 말했다.“중고품? 요즘 시대에 여자를 물건 취급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는 줄 몰랐네요. 정신 좀 차리라고 그랬어요. 그리고 술?”소은정은 남자의 행색을 훑어보았다. 로고가 조잡한 명품들, 졸부들이나 입는 옷차림에 소은정은 피식 비웃음을 날렸다.“내가 마시는 술, 네가 살 수나 있을까?”화가 난 듯 그녀를 노려보는 남자와 달리 여유롭게 미소를 짓는 소은정은 도도한 여왕처럼 빛났다. 그 누구도 감히 다가갈 수 없는 타고난 귀티가 그녀의 아우라를 감쌌다.하지만 술을 뒤집어쓴 재벌 2세는 이미 이성을 잃기 시작했다. 돈 좀 있다는 사실 하나로 여기저기서 갑질을 하는 게 일상인 남자는 이런 수모를 견딜 수 없었다.여기서 물러서면 모두의 웃음거리가 될 게 분명했으니까.박수혁한테 걸레짝처럼 버려진 계집애 주제에. 감히...“너... 죽었어!”남자가 이를 악물고 손을
순식간에 일어진 상황에 사람들의 얼굴에도 의아함이 피어올랐다.박수혁과 소은정은 이혼한 사이, 서로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게 당연할 텐데 왜 굳이 나선 걸까?한유라도 부랴부랴 달려와 소은정의 모습을 이리저리 살폈다.“야, 괜찮아?”소은정은 침착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실력으로 남자의 허접한 공격 따위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그저 갑자기 나타난 박수혁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끙끙대며 바닥에서 일어선 남자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이를 갈았다.소은정의 앞을 막아선 남자가 박수혁일 거라곤 생각지도 못한 하민호가 바로 욕설을 내뱉었다.“왜 끼어들고 난리야?”소은정은 박수혁한테 버림받은 여자라는 걸 모르는 건가? 눈치 없이 누가 끼어든 거야!소리를 지르는 순간,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느낌에 하민호는 다시 끙끙대기 시작했다.그 모습에 강서진도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야, 하민호, 두 눈 제대로 뜨고 똑바로 봐. 너 정말 미쳤어?”평소에는 강아지처럼 온갖 아양을 떨어대던 자식이 바로 욕부터 내질러?그제야 강서진의 목소리를 인지한 하민호가 두 눈을 번쩍 떴다.순간, 무표정한 박수혁과 시선이 마주친 하민호는 고통도 잊은 채 바닥을 기어 박수혁 앞으로 다가갔다.“수혁이 형, 여긴 어떻게...”뭐야? 박수혁은 소은정을 증오하는 거 아니었나? 이게 아닌데...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하민호가 다급하게 변명했다.“오해세요. 저 여자가 요즘 주제도 모르고 형에 관한 루머를 퍼트리니까... 제가 대신 복수라도 하고 싶어서... 형은 저딴 여자가 뭘 하든 신경 안 쓰겠지만 전 못 참아요!”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박수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또다시 하민호의 가슴을 걷어찼다.“네가 뭔데 못 참아. 그리고 형? 너 나 알아?”강서진도 쪼르르 소은정에게 다가와 박수혁 편을 들었다.“우리 친구 아니에요. 형은 하민호 저 자식 알지도 못한다고요. 저희가 시킨 게 아니라 저 미친 자식이 제멋대로... 은정 씨, 오해하지 마세요.”박수
참 공짜로 보기 아까운 공연이라는 생각에 소은정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공연에 맞춰주고 싶지 않았다.소중한 인생을 왜 다른 사람의 생쇼를 보는데 허비해야 하지?“자리 옮기자. 보고 싶지 않은 사람 얼굴 보는 거 이제 그만할래.”소은정이 한유라에게 말했다. 물론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란 박수혁을 가리켰다.그런 소은정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한유라는 괜히 그녀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게 후회가 되었다. 한유라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은정은 핸드백을 들고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유라가 주차해 둔 차를 끌고 오는 동안 소은정은 조용히 호텔 문 앞에서 기다렸다.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조용한 밤, 소은정은 괜히 하이힐 끝머리를 툭툭 건드렸다.이때 뒤에서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은정아, 서민영도 받아야 할 벌을 받았고 우리... 친구라도 하면 안 될까?”소은정에게 다가온 박수혁이 물었다. 지금까지 친구라도 하자며 다가오는 여자들을 우습게 매정하게 쳐내던 그였는데 그 방법을 소은정에게 쓰게 될 줄은...그때 그에게 다가오던 여자들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친구라는 단어로 옆에 묶어놓고 싶을 만큼 간절했을까?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소은정에게 미안한 게 너무 많았다. 적어도 그동안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라도 받고 싶었다.게다가 지금까지 두 사람 사이를 막던 서민영까지 사라졌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나 친구 많아. 그리고 난 아무하고나 친구 안 해. 당신 같은 사람과는 친구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아.”고개를 든 소은정이 비아냥거렸다. 소은정의 확신에 찬 거절에 박수혁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반면 소은정은 박수혁과 친구가 아니라 아예 모르던 사이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았다.“설마... 내가 서민영 그 여자 때문에 당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해? 이제 서민영도 사라졌으니 내가 당신을 용서해 줄 것 같아?”소은정의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오르고 박수혁의 안색은 무거워졌다.“그게 무슨 말이야?”가
다음 날 아침, 태한그룹, 회의를 마치고 나오던 박수혁은 무언가를 떠올린 듯 이한석에게 분부했다.“지금 하진건설과의 모든 계약을 중지하고 헐값에 인수해. 며칠 안으로 내 눈 앞에서 치워버려.”뜬금없는 박수혁의 말에 가만히 있던 이한석이 사실대로 보고했다.“대표님, 회의하시는 동안 하진건설이 부도가 났다는 기사가 떴습니다. 저택이며 전부 경매로 넘어가고 밤새 야반도주를 했다던데요.”박수혁은 미간을 찌푸렸다.소은정, 생각보다 더 빨리 움직였네...그리고 자연스레 어제 나눴던 대화가 떠오르며 마음은 더 불편해졌다.박수혁은 사적인 감정을 누르려 애쓰며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한편, 역시 이 소식을 접한 강서진은 왠지 등골이 오싹해져 들고 있던 숟가락을 조용히 내려놓았다.소은정 그 여자... 나한테는 그나마 착하게 군 거였구나...그래도 언제 변할지 모르는 게 사람 마음, 전에 자신이 저질렀던 일까지 한 번에 복수를 하고 싶어지면 회사 부도가 아니라 먼지가 되어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박수혁이 있긴 했지만 요즘 소은정에게 푹 빠진 걸 보면 딱히 도움이 될 것도 같지 않았다.잠깐 고민하던 강서진은 바로 SC그룹으로 달려갔다.잠시 후, 우연준의 보고에 소은정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신경 쓰지 말고 예정대로 회의 진행하죠.”“네, 대표님.”오전 내내 회의를 하고 프로젝트 제안서를 검토하고...밥 한 술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바쁜 하루가 이어졌다. 어느새 날이 어둑해지고 그제야 급한 업무를 끝낸 소은정이 고개를 들었다.“아, 설마 아직도 있어요?”“네, 계십니다.”소은정이 가리키는 게 누구인지 바로 눈치챈 우연준이 대답했다.“회사 커피숍에서 벌써 아메리카노 두 잔, 카페라테 두 잔, 샌드위치 2개를 드셨습니다.”풉, 문전박대 하면 바로 가버릴 줄 알았는데. 그래. 다른 건 몰라도 의지력 하나는 인정해 줄게.“들어오라고 해요.”“네.”잠시 후, 강서진은 꽃다발까지 들고 조심스레 사무실로 들어왔다.꽃다발? 소은정이 미간을 찌
소은정은 고개를 저었다.싫어! 이제 와서 용서해 달라고?꿈 깨!평소에는 온갖 똑똑한 적은 다 하던 사람들이 왜 이렇게 멍청하게 구는 건지?소은정의 반응에 강서진의 미소가 어색하게 굳었다. 실망한 그가 사무실을 나서려던 순간, 소은정이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강서진 씨, 몇 번을 다시 찾아온다 해도 그쪽을 용서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평생 그렇게 불안하게 하면서 살아요.”소은정의 멈칫하던 강서진은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고개를 돌렸다.“은정 씨, 혹시 아직 수혁이 형 좋아해요?”아직 박수혁에 대한 호감이 남아있다면 지금 다시 재결합을 한다 해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에 물은 것이었다. 3년 전에 배경 차이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했다면 신분이 밝혀진 지금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커플이 도리 수 있을 테니까.하지만 강서진의 말을 들은 소은정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정말 죽고 싶어요?”이렇게 대놓고 협박을 한 건 처음이었다. 이에 겁을 먹은 강서진은 어색하게 웃은 뒤 부랴부랴 사무실에서 도망쳤다.아직도 좋아하냐고? 그 꼴을 당하고도? 웃기는 소리.SC건물에서 나온 강서진은 바로 박수혁에게 전화를 걸었다.“형, 사실 나 지금까지 한 번도 형이랑 소은정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적 없었다?”하지만 방금 전 그녀의 모습을 본 강서진은 다시 깨달았다. 성격, 포스, 가문의 배경, 외모, 스펙까지 소은정은 완벽했고 강서진은 소은정이야말로 박수혁에게 어울리는 단 한 사람이라는 생각라는 걸.“뭐?”아무렇지 않은 척 차갑게 물었지만 강서진의 말에 왠지 기대감이 차올랐다.하지만 강서진이 한숨과 뱉은 말에 기분은 다시 바닥까지 곤두박질쳤다.“그런데 이제 다시 잘 될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짜증스레 전화를 끊은 박수혁이 욕설을 내뱉었다.“미친 놈.”강서진이 사무실을 나서고 다시 퇴근 준비하려던 그때, 소은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저녁에 있을 자선 파티에 함께 참석해야 한다는 소식이었다.아직도 소은해와 소은정의 사이를 의심하는
얼마 전 귀국한 허하진은 오늘 경매가 국내에서 참석한 첫 행사였다. 물론 박수혁의 옆에 앉은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경매장에서 박수혁을 발견하고 의도적으로 다가간 것이었다. 3년 전에는 소은정에게 빼앗겼지만 이번에는 어떻게든 박수혁을 내 남자로 만드리라 칼을 갈고 있었다.허하진의 말에 박수혁은 아무런 대답 없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오랫동안 박수혁을 모신 이한석은 바로 그의 언짢음을 눈치채고 물었다.“대표님, 불편하시면 저랑 자리 바꾸시죠.”이한석의 제안에 박수혁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고 이한석이 박수혁이 원래 앉았던 자리에 착석했다. 옆에서 허하진의 따가운 눈빛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하면서 말이다.이때 소은정의 휴대폰이 울렸다.“하늘이: 박수혁 옆에 앉은 여자 말이야. 트윈즈 엔터 사장 딸 허하진 아니야?”허하진? 미간을 살짝 찌푸리던 소은정이 답장했다.“글쎄. 허하진이 누군데?”한참 뒤에야 소은정은 허하진이 누구였는지 떠올랐다. 엔터 업계를 꽉 잡고 있는 트윈즈 엔터 대표 허강운의 딸 허하진, 평소에 워낙 박수혁과 결혼하겠다고 떠벌리고 다닌 탓에 그녀가 박수혁을 짝사랑하는 걸로 재벌 2세들 사이에서는 이미 소문이 쫙 퍼져있었다.하지만 박수혁에게 무참하게 차인 뒤 해외로 성형까지 했지만 그 사이에 소은정과 박수혁이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굉장히 슬퍼했다는 사실을 소은정도 건너 건너 들어 알고 있었다.“하늘이: 얼굴 뜯어고치는데 몇 억은 퍼부었다더라. 저 턱 좀 봐... 아주 종이도 뚫겠어.”문자와 함께 김하늘이 “뜨헉!”하는 듯한 이모티콘을 보내자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곧이어 경매가 시작되었지만 소은정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바로 커프스단추였다.드디어 커프스단추 경매가 시작되었다.시작 가격 2천만 원, 아무리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이라지만 커프스단추 치고는 이미 상당히 높은 가격이었다. 소은정의 옆에 앉아있던 유준열이 팻말을 들었다.“2500만원.”“3000만원.” ......어느새 6000만원까지 올
소은정을 바라보던 박수혁은 다시 전방을 주시하더니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마음에 든다면 그깟 단추 하나 양보하는 것쯤이야.“2억!”낙찰을 알리는 망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싱겁게 끝난 대결에 실망스러우면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천하의 박수혁이 이렇게 쉽게 물러난다고?한편, 소은정은 그제야 박수혁을 힐끗 바라보고 코웃음을 쳤다. 1억이면 낙찰받을 수 있었던 걸 괜히 끼어들더니 1억이나 더 쓰게 되었다. 일부러 엿 먹이는 건가?소은정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고 유준열이 졸졸 그 뒤를 따랐다.결제를 마치고 커프스단추가 담긴 상자를 받은 소은정은 바로 옆에 있는 유준열에게 건넸다.“받아요.”“네?”유준열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2억이나 쏟아부은 커프스단추를 이렇게 쉽게 선물한다고?“선배 부탁이라 어쩔 수 없이 나온 거 알아요. 오늘 많이 지루했죠? 그래도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어요. 그러니까 받아요.”“아, 마음은 감사하지만 이렇게 귀한 걸 제가 어떻게... 괜찮습니다.”“아니요. 유준열 씨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에요.”꿈을 위해 모든 걸 버릴 수 있다는 말에 꽤 감동을 받은 소은정이었다.이때, 뚜벅뚜벅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소은정은 딱히 개의치 않았다. 유준열이 또다시 거절하려 하자 소은정은 억지로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마음에 안 들면 다른 사람한테 선물하든가요. 나 이 정도 돈은 충분히 쓸 수 있는 사람이에요. 민망하게 만들지 말고 받아요.”이때 소은해와 김하늘도 대기실로 들어왔다.“박수혁 대표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나가던데. 싸웠어?”김하늘이 질문에 유준열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대기실에는 저와 은정 씨뿐이었는데요?”방금 전 들려온 인기척을 떠올린 소은정은 대충 상황을 눈치챘지만 역시 모르는 척 어깨를 으쓱했다.“배고프다. 밥 먹으러 가자.”김하늘이 소은정의 손을 잡았다.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은 소은해, 유준열에게 인사를 전한 뒤 김하늘을 따라나섰다.“박수혁이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