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해는 단호한 소은정의 모습에 혀를 끌끌 찼다. 방금 전 기자에게 분부했던 자신이 너무 자비를 베풀었나 느껴질 정도였다.하지만 대기업을 이끄는 대표로서 이 정도 박력은 필요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오빠, 나 이제 출근해야 해. 어떻게 할 거야?”통화를 마친 소은정이 물었다.방금 전 사건에도 흔들림 없는 동생의 모습에 소은해는 흐뭇하게 웃었다.“나 호랑이 데리고 가면 안 될까? 아빠가 요즘 나만 괴롭힌단 말이야. 걔라도 있으면 좀 나을 것 같은데.”잠깐 생각하던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상, 매일 야근의 연속일 텐데 혼자 두는 것보다 오빠와 아빠와 함께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소은정이 흔쾌히 허락하자 소은해는 아이처럼 밝게 웃으며 말했다.“고마워. 얼른 가봐.”소은해는 자연스럽게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집 안으로 쏙 들어갔다.뭐야? 비밀번호는 언제 알아낸 거야...한편, 태한그룹.이한석이 부랴부랴 달려와 박수혁에게 기사 내용을 보고했다.소은정이 기자들 앞에서 한 말들이 영상으로 인터넷 1면을 장식하고 있었다.영상 속, 단호하게 기자들의 무례한 질문을 받아치는 모습에 네티즌들은 통쾌함을 감추지 않았다.“기레기들, 아침부터 저게 무슨 짓이야?”“우리 은정이 언니 좀 그만 내버려 둬.”“죽으려면 혼자 곱게 죽을 것이지. 사고 낸 기사님은 무슨 죄래...”“은해 오빠 멋지다...”“은해 오빠, 은정이 언니랑 잘 어울리세요! 불륜 남녀들은 꺼져!”......댓글을 확인하던 박수혁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기자들이 왜 은정이 집까지 찾아간 거야?”박수혁의 질문에 이한석은 어이가 없었다.지금 불륜 남녀로 찍힌 상황에 가장 궁금한 게 그거라니...하지만 대표의 질문에 이한석은 고분고분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뭐... 기자들이 냄새를 맡고 찾아간 거 아닐까요...”소은정, 소은해, 한 사람은 지금 최고의 화제를 자랑하는 여자에 다른 한 사람은 최고의 톱스타, 기자들의 흥미를 가질만한 내용이었다.“아닐까요
하지만 소은정은 박수혁에게 해명할 기회를 주지 않고 그의 곁을 스쳐지났다.문 앞의 경비원들이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자 그녀도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정의 무심함에 박수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 그녀의 마음속에 정말 그의 자리는 없는 것일까?소은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하지만 빌딩을 들어가기도 전, 수십 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박수혁 대표님, 올해 안으로 서민영 씨와 결혼하실 계획이신 겁니까?”“불륜 타이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서민영 씨 말고 숨겨둔 다른 애인은 없으십니까?”“정말 불륜녀 때문에 소은정 씨와 이혼하신 겁니까?”“소은정 씨에 관한 루머를 퍼트린 게 박수혁 대표님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사실이십니까?”......끊임없이 밀려드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수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가장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기자를 노려보았다.무시무시한 포스에 기자는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다른 기자들은 질문을 멈추지 않았고 갑작스러운 소란에 거성그룹 경비원들이 달려 나와 기자들을 막아섰다.길이 뚫렸지만 박수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을 떠들던 기자들도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다시 한번 그런 말도 안 되는 일로 찾아온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오늘 이 기사, 인터넷에 올린다면 기자로서 쓰는 마지막 기사가 될 테니 각오하세요.”차가운 박수혁의 말에 정적이 이어졌다. 박수혁의 말은 결코 한낱 허풍이 아님을 다들 잘 알고 있었기에 서로 눈치만 볼 뿐이었다. 소은해의 수표를 받은 기자도 그 포스에 눌려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2층 베란다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소은정은 예상대로인 박수혁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역시, 박대한이 안심하고 회사를 맡길만해. 이런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다니.하지만 불륜남녀라는 타이틀에도 계속 서민영을 사랑할 수 있을까? 서민영을 위해 특별한 선물까지 준비한 소은정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그녀의 시선을 느낀 박수혁이
공은 공, 사는 사라지만 박수혁이 그녀에게 준 상처를 생각하면 화가 나는 건 사실이었다. 두 대표의 날카로운 언쟁에 회의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박수혁은 침묵하며 소은정을 바라보았고 그녀도 그에 대한 혐오를 숨길 생각이 없다는 듯 그 시선을 마주했다.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빛, 왜 그 눈빛에 자꾸 상처를 받는 걸까?박수혁도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이때, 임춘식이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제 생각에도 소 대표님 말씀대로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결국 소은정 뜻대로 진행하게 되고 세 사람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른 사안들을 의논하기 시작했다.회의가 끝나자 이한석이 기다렸다는 듯 들어와 보고했다.“대표님, 태한그룹 주가가 떨어지고 있습니다...”마침 옆을 지나던 소은정은 이한석의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쌤통이다.“중점만 말해.”이한석은 바로 태블릿을 건넸다.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 1위는 바로 “박수혁, 서민영 두 사람의 불륜.”자극적인 글귀와 실명 언급에서 느껴지는 노골적인 분노...네티즌들의 분노가 올라감에 따라 태한그룹의 주가는 끊임없이 하락세를 보였다.“불륜일 줄 알았어. 더럽게...”“저런 사람들이 계속 우리보다 더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게... 현타 온다.”“은정 언니, 팬클럽 주소예요!” ......댓글을 훑어보던 박수혁은 잠깐 침묵하다 고개를 들어 임춘식과 대화를 나누는 소은정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평소처럼 침착하고 차분한 얼굴이었다.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소은정은 살짝 고개를 돌렸지만 곧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갔다.자리에서 일어선 박수혁이 성큼성큼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은정아.”박수혁의 목소리에 소은정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일이시죠?”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고 불꽃이 튀기는 듯한 팽팽한 기싸움에 임춘식은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인기 검색어, 네가 한 거지?”박수혁의 질문에는 확신이 담겨있었다.소은정은 여유롭게 머리를 넘기며 대답했다.“그래.”박
경비원들의 손에 이끌려 박수혁의 사무실에 도착한 박예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곧이어 경비원이 바로 그녀의 휴대폰을 빼앗았다.“오빠, 갑자기 왜 이래?”모르쇠를 대는 박예리의 뻔뻔함에 박수혁은 어이가 없었다.“왜 이래? 내가 왜 이러는 것 같은데?”박수혁의 말에 흠칫 놀라던 박예리는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몰라? 데리고 들어와.”박수혁이 이한석에게 말했다.그와 동시에 소은해에게 수표를 받은 기자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기자는 어색하게 웃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박 대표님, 박예리 씨, 안녕하세요.”박예리는 기자가 자신의 정보를 팔아넘긴 줄 알고 바로 박수혁의 팔에 매달렸다.“오빠, 저 기자 말 다 거짓말이야. 난 기자들을 매수한 적도 없고...”아차, 박예리는 입을 다물었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면 저 남자가 누구인지도 몰라야 하는 게 인지상정, 마음이 급해 스스로 모든 걸 인정해 버린 꼴이었다.박예리는 어색하게 손을 풀고 말했다.“일...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박예리,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박수혁의 차가운 말투에 박예리는 숨이 턱 막혔다. 무슨 짓을 해도 넘어가 주던 오빠였는데... 왜 이러는 걸까?오빠를 건드리지 말라며 당부하던 엄마 이민혜의 말이 떠올랐다. 그런데 왜... 소은정 그 여자를 건드린 것뿐인데. 왜 나한테 화를 내는 거야!박예리가 다시 불쌍한 척 연기를 하려던 그때, 기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대표님, 박예리 씨... 아직 잔금도 안 치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저도 그 돈 못 받겠습니다. 그러니까 전 놔주시죠.”“닥쳐!”다급해진 박예리가 소리쳤다.멍청한 기레기 주제에 눈치 없이 어딜 끼어들어!“박예리, 이제 네가 할 일은 하나뿐이야. 은정이한테 직접 사과해.”“내가 왜? 내가 왜 그 계집애한테 사과를 해! 결국 그 계집애가 피해 본 건 아무것도 없잖아.”이번 사건으로 소은정은 털끝 하나 못 건드린 데다 태한그룹 주가까지 떨어져 이미 짜
자신의 작은 악의가 나비효과가 되어 태한그룹에 이렇게 큰 피해를 입힐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애초에 그녀의 목표였던 소은정은 여전히 멀쩡하다니.집으로 돌아가자 역시 화가 잔뜩 난 박대한이 당장 나가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누구도 그녀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할아버지의 뜻도 오빠와 마찬가지였다. 소은정에게 직접 사과하라.그리고 사당에서 밤새 무릎을 꿇고 반성하라는 말과 함께 박대한은 방으로 들어갔다.다음 날, 성준상의 기일.성준상의 유골함 앞에서 서민영과 박수혁을 보게 될 거라곤 생각지 못한 소은정이 흠칫 멈춰 섰다.역시 두 사람을 발견한 성강희는 소은정의 팔을 끌고 다가갔다.“준상아, 수혁이가 나한테 잘해줘. 그래서 잘 지내고 있어. 걱정하지 마.”서민영은 쑥스러운 듯 박수혁을 힐끔 바라보더니 말을 이어갔다.“수혁아, 나도 알아. 소은정 그 여자 때문에 너도 많이 힘든 거. 최대한 빨리 다시 프랑스로 들어갈게. 그럼 소은정 그 여자도 잠잠해질 거야.”지금은 일단 물러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수혁이도 화가 풀리면 그녀를 모른 척할 수 없을 테지.박수혁이 대답하려던 찰나,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돌린 두 사람의 시야에 소은정의 애매모호한 표정이 들어왔다.무릎까지 내려오는 블랙 원피스, 아무런 액세서리도 하지 않은 심플한 차림이었지만 오히려 그녀의 분위기와 찰떡처럼 어우러졌다.“박 대표가 눈에 밟혀서 떠날 수나 있겠어? 그냥 남지 그래?”소은정이 비아냥거렸다.어딜 도망가려고. 내 복수는 이제 시작이야.“은정 씨가 여길 어떻게?”갑작스러운 소은정의 등장에 서민영의 표정이 바로 표독스럽게 변했다.“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두 사람이 왜 우리 형 앞에 있는 건데.”성강희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박수혁은 진작 성강희가 성준상의 동생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굳이 다가가지 않았다. 반면 성강희는 어렸을 때 유학을 떠나 형이 박수혁과 아는 사이라는 건 전혀 모르고 있었다.서민영은 당황하기 시작했다.만약
성강희의 말에 서민영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비웃음이 섞인 소은정의 눈빛에 입술을 꽉 깨물던 그녀는 바로 자리를 떴다.하지만 소은정은 그대로 그녀를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서민영의 뒤를 바로 따르는 소은정의 모습에 박수혁도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성강희가 그 앞을 막아 나섰다.박수혁의 말을 믿을 수 없었던 성강희는 어떻게든 다시 확인받고 싶었다.차에 타려던 서민영은 그녀의 뒤를 따라온 소은정을 발견하고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왜 따라오는 거야? 왜 날 비웃어주고 싶어서? 착각하지 마. 수혁이가 날 좋아하지 않았다고 해서 널 좋아한 건 아니니까. 너한테 어떻게 했는지 벌써 다 잊은 건 아니지?”전 남자친구의 유언 때문이라지만 그녀는 유일하게 박수혁의 관심을 받았던 여자다.소은정, 넌 나한테 진 거야.말을 마친 서민영은 바로 차에 탔다. 붉은색 BMW, 그녀와 어울리는 화려한 차량이었다.멀어져 가는 서민영의 차량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소은정도 차에 올라타 엑셀을 밟았다.한적한 도로에 있는 납골당이라 넓은 도로에 다른 차는 보이지 않았다. 차가운 눈빛으로 서민영을 추격하던 소은정은 그녀의 차량을 따라잡으려던 순간, 핸들을 오른쪽으로 홱 틀었다.“펑!”순간, 굉음과 함께 두 차량이 부딪혔다.찌그러진 차량 속, 서민영은 눈이 커다래진 채 소은정을 바라보았다.하지만 소은정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그녀는 다시 유턴을 하며 서민영의 차와 마주 본 채 차량을 멈추었다.요란한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소은정은 서민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누구에게 전화를 거는 걸 지켜보았다.누구한테 전화를 하는 건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소은정은 다시 엑셀을 밟았다. “쾅!”굉음과 함께 공포에 질린 여자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찌그러진 채 옆으로 넘어진 차량, 자극적인 휘발유 냄새가 서민영의 코를 찔렀다. 소은정은 그제야 차에서 내려 또각또각 서민영 곁으로 다가갔다.무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서민영을 내려보고 있는 모습, 애초에 두 사람의
눈앞에 펼쳐진 참상에 항상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박수혁의 목소리도 살짝 떨려왔다. 엉망이 된 서민영의 차, 그 옆에 우아하게 서 있는 소은정, 굳이 묻지 않아도 누가 한 짓인지 알 수 있었다.항상 친절하고 착하던 소은정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보면 몰라? 내가 한 거야.”할 말도 다 전했겠다, 박수혁도 왔겠다 더 이상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았던 소은정이 바로 돌아섰다.이때 박수혁이 그녀의 앞을 막아 나섰다.“민영이랑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라 아니라고 말했잖아. 그런데 왜...!”박수혁은 소은정이 그와 서민영이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는 걸 알고 복수를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느꼈던 질투에 대한 복수.비록 그 방식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지만... 화는 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 기쁘기까지 했다.하지만 그 말을 들은 소은정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내가 너 때문에 이렇게 했다고 생각해?”순간, 박수혁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참 가만히 보면 은근히 자뻑이라니까. 세상 여자들이 다 당신을 좋아하는 줄 알지? 그래, 나도 좋아했었지. 하지만 이젠 아니야.”말을 마친 소은정은 의아한 표정의 박수혁을 남겨두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천천히 움직이던 차는 박수혁 옆에서 다시 멈춰 섰다. 차창이 천천히 내려가고 소은정은 창문 틈으로 보고서를 휙 던진 뒤 바로 자리를 떴다.자뻑에 관종, 잘 어울리는 한 쌍이네.보고서를 집어 들어 내용을 확인한 박수혁의 얼굴에 분노가 피어올랐다.서민영과 남자가 소은정의 앞에서 얘기를 나누는 사진이었다.그날 밤, 일어났던 그 사고가... 설마...그날 박수혁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소은정은 분명 죽었을 것이다.그리고 소은정이 버리고 간 보고서는 서민영이 살인을 사주했다는 명확한 증거였다.그래서... 복수를 한 거였어?보고서를 든 손에 힘이 들어가고 종이가 힘없이 구겨졌다. 성준상이 죽은 뒤로 이런 충격은 처음이었다.질투로 인한 복수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실망스러우면서
성강희도 박수혁도 고개도 돌리지 않고 차에 탄 채 자리를 떴다. 넓은 도로 위, 그녀는 쓰레기처럼 버려지고 말았다.이대로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민영은 떨리는 손으로 큰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그는 다짜고짜 욕설을 내뱉었다.“야, 너 도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태한그룹에서 모든 투자금을 회수했어! 우리 가족 길바닥으로 쫓겨나게 생겼다고! 너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거야!”당황한 서민영이 입을 뻐금거리던 그때, 경적소리가 들려왔다.그래, 수혁이가 이렇게 날 버리고 갈 리가 없어. 아직 기회가 있는 거야.하지만 고개를 돌린 서민영은 다시 절망하고 말았다. 그 차량은 박수혁이 보낸 차량이 아니라 경찰 차였으니까.차에서 내린 형사가 사무적인 목소리로 물었다.“서민영 씨 되시죠? 살인미수로 긴급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무표정한 얼굴로 미란다 원칙을 읊는 형사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살인미수? 정말 감옥에 가는 거야?마지막 일말의 희망까지 사라지고 서민영은 그녀를 향한 박수혁의 자비가 드디어 바닥이 났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공포에 질려 부들부들 떠는 서민영의 손에 수갑이 채워지고 그대로 경찰차로 연행되었다.다음 날, SC그룹, 소은찬 덕분에 거성 프로젝트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었고 소은정은 다른 프로젝트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대표가 된 이상, 거성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도 매일 그녀가 확인하고 검토해야 할 프로젝트와 보고서들은 넘쳐났다.회의를 마치고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나오는 소은정을 향해 우연준히 휴대폰을 건넸다.“대표님, 성강희 대표님께서 방금 전 전화를 주셨습니다. 급한 일이신 것 같은데요?”강희가?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은 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몇 초 후, 성강희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은정아, 서민영이 체포됐어!”기사를 확인한 성강희는 가장 먼저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이혼 뒤에도 소은정을 괴롭게 만들던 종양 같은 여자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