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은 간단했다. 유진우는 배신자를 극도로 혐오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중적인 자들은 마땅히 엄벌에 처해야 했다. 반란을 일으킨 다섯 명을 처형한 후, 그들을 따랐던 고급 장교들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처분이 내려졌다. 강등될 자는 강등되고 포섭할 자는 포섭하며 감옥에 가야 할 자들은 감옥에 보냈다. 구체적인 처분은 자발적인 배신이었는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에 따라 달라졌다. 유진우는 반란을 수습하는 동시에 홍복홍에게 유만군의 한 부대를 이끌고 보물 지도의 위치를 따라 호룡각의 보물 창고를 찾아가도록 지시했다. 모든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호룡각에도 고수들이 지키고 있었지만 대 마스터인 홍복홍 앞에서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손쉽게 호룡각의 잔당을 소탕하고 보물 창고에 있던 모든 재물을 회수해 왔다. 사철수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보물 창고 안에는 재물이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서경 왕부에서 동원한 수백 대의 대형 트럭과 수만 명의 인력을 총동원해야만 창고를 완전히 비울 수 있었다. 그 모든 재물의 양과 가치는 어마어마해서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이 보물만으로 서경의 향후 20년 군자금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창고 하나만으로 이 정도라면 남은 세 개의 보물 창고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나라를 사고도 남을 부가 될 것이었다. 보물을 가져온 뒤 가장 먼저 진행된 것은 바로 공로를 논하고 상을 주는 일이었다. 남방의 세 명의 제후인 회음 제후 은성종, 평양 제후 장범규, 선평 제후 주한휘는 모두 큰 공을 세운 자들이었기에 마땅한 보상을 받았다. 그들의 휘하에 있던 장군과 병사들도 저마다 공훈에 따라 상을 받았다.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 어느덧 사흘이 지나 있었다. 3일 후, 정오. 유진우가 식사하던 중 홍복홍이 갑작스레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나무 상자가 들려 있었다. “세자 전하, 아뢸 일이 있습니다.” 홍복홍은 몸을 숙이며 최대한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
점심을 먹고 난 후, 유진우는 갑자기 이청성의 전화를 받았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 상의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만날 장소는 성서의 옛 저택으로 정했다. 성서에 있는 그 오래된 집은 유진우가 이미 구매해 놓은 곳으로 주로 밀사 훈련을 위한 장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전에 소현무에게 피해를 보았던 여자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서경의 밀사 대열에 합류했다. 그들의 큰 뜻은 다시는 자신들처럼 고통을 겪는 사람이 없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깊은 뜻에 유진우는 존경을 표했으며 그들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손도운의 훈련을 거친 그 여자들은 이제 입문 단계에 있지만 진짜 임무를 수행하려면 최소한 3년 이상의 연습이 필요했다. 유진우는 그들이 평생 임무를 수행할 일이 없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그것은 곧 모든 것이 평화롭다는 의미였다. 밀사들은 잠재적인 위협이 있을 때만 활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 그들은 거의 죽을 각오로 임무를 수행한다. 30분 후, 유진우는 성서의 오래된 집에 도착해 회의실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청성이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이청성은 푸른 옷을 입고 있었다. 얼굴은 여전히 면사포와 모자로 가리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몸매만 봐도 여전히 매우 유혹적이었다. 특히 그녀에게서 풍기는 신비롭고도 매혹적인 기운은 마치 타고난 매력처럼 사람들을 쉽게 끌어당기는 느낌을 주었다. “왔어요?” 이청성은 직접 유진우에게 차를 따라 주었다. “공주마마, 갑자기 절 찾으시다니, 무슨 일로 저를 부르신 겁니까?” 유진우는 태연하게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우리 이렇게 친해졌는데 공주마마라 부르는 게 좀 어색하지 않나요? 다른 호칭을 쓰는 건 어때요?” 이청성은 미소를 머금은 듯, 아닌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뭐라 부르면 되나요? 아가씨? 아니면 여사님?” 유진우는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에이, 그런 거 말고 그냥 청성 씨라고 불러도 되잖아요. 왜 그렇게 격식을 차려요?” 이청성은
“유 대표님, 이건 이 대표님께서 준비한 이혼 합의서입니다. 사인 부탁드려요.”청성 그룹 대표 사무실 안.OL유니폼을 입은 장 비서가 A4용지 한 장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그녀의 맞은편엔 수수한 옷차림에 준수한 외모를 지닌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이혼이라니? 무슨 뜻이지?”유진우가 흠칫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아직도 모르시겠어요? 대표님과 이 대표님의 결혼생활은 이젠 끝이에요. 두 분은 더 이상 같은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요. 대표님의 존재가 이 대표님에겐 걸림돌만 될 뿐이에요!”장 비서가 가차 없이 쏘아붙였다.“걸림돌?”유진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러니까 청아가 날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야?”두 사람이 결혼할 때 이씨 일가는 한창 저조기에 처해있어 빚더미가 산을 이뤘다.유진우가 그런 이씨 일가를 도와 난관을 극복해 주었다.그런데 인제 와서 부귀영화를 누리더니 이청아가 그를 발로 뻥 차버리다니.“그렇게 생각하셔도 좋습니다.”장 비서는 턱을 치켜세우고 책상 위의 잡지를 가리켰다. 잡지 표지 화면에 절세미인과도 같은 한 여자의 사진이 찍혀 있었다.“유 대표님, 이 타이틀 좀 보세요. 짧디짧은 3년 안에 이 대표님의 가치가 무려 2천억 원을 돌파했다고요. 기적을 창조할 뿐만 아니라 강능 전체에서 가장 핫한 미녀 대표가 되었어요! 이 대표님은 뛰어난 미모와 실력으로 구름 위를 걸으며 만인의 존경을 받고 있어요! 그런데 정작 유 대표님은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 이 대표님께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부디 저 자신을 알고 눈치껏 물러서세요!”유진우가 아무 말 없자 장 비서는 미간을 확 찌푸리며 계속 말을 이었다.“썩 내키지 않는다는 거 잘 알아요. 하지만 현실이 이런 걸 어쩌겠어요? 전에 이 대표님을 도와준 건 사실이지만 이 3년 동안 대표님은 그 신세를 전부 다 갚았어요. 이젠 유 대표님이야말로 우리 대표님께 신세를 지고 있다고요!”“이 결혼이 한 차례 거래였어?”유진우가 숨을 깊게 들이쉬며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만약
엘리베이터 안.유진우는 낙담한 눈길로 가슴팍의 옥 펜던트를 내려다보았다.진작 예상은 했으나 막상 이혼하니 좀처럼 기분이 후련하지 못했다.그가 바라던 행복은 아주 단순했다. 하루 세끼를 함께하고 소소하고 행복하게 보내는 것뿐이었다.다만 이제야 알게 됐다.소소함도 죄라는 것을.소소한 행복에 흠뻑 빠진 3년이란 세월, 이젠 그만 깨어날 때가 되었다.“띠리링...”한창 넋 놓고 있을 때 휴대폰 벨 소리가 갑자기 울렸다.전화를 받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진우 씨, 안녕하세요. 저는 강능 상회의 안병서예요. 오늘이 진우 씨와 청아 씨의 결혼기념일이라면서요. 제가 특별히 두 분께 선물을 준비했는데 언제 시간이 되실지 모르겠네요.”“고마워요, 병서 씨 마음만 잘 받을게요. 앞으론 이런 거 준비하실 필요 없어요.”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네?”안병서는 흠칫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그는 문득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회장님, 또 다른 용건 남으셨나요?”유진우가 화제를 돌렸다.“그게 사실... 대표님께 부탁드릴 사연이 하나 있어서요.”안병서가 어색한 듯 마른기침을 해가며 말을 이었다.“다름이 아니라 제 친구가 요즘 이상한 병에 걸려서 온갖 명의를 수소문해 봐도 치료가 잘 안돼서요. 실례지만 진우 씨가 한번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회장님도 제 룰을 잘 알고 계실 텐데요.”“물론이죠! 빈손으로 감히 부탁을 청하겠나요. 제 친구 집에 마침 진우 씨가 원하던 용심초가 하나 있어요. 도와만 주신다면 이 희귀한 약재를 보상으로 드리겠습니다.”안병서가 대답했다.“진짜예요?”유진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렇다니까요!”“좋아요, 그럼 직접 한번 찾아뵙겠습니다.”유진우가 바로 허락했다.그는 돈과 보석 따위에 아무런 흥미가 없지만 일부 희귀한 약재는 꿈에도 오매불망 그릴 정도였다.왜냐하면 그것으로 목숨을 구해야 하니까!“고마워요, 진우 씨. 지금 바로 분부해서 진우 씨 모시러 가겠습니다!”안병서가 한시름 놓인 듯 웃으며 말했다.강
“꺼져!” 간결한 이 두 글자에 장경화는 겁에 질려버렸다.평소 한없이 자상하고 늘 웃기만 하던 유진우가 화를 내니 이토록 무서울 줄이야.그 눈빛은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은 기세였다.“사람 살려요! 구해주세요!”정신을 차린 그녀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곧이어 청성 그룹의 경호원들이 와르르 몰려왔다.“사모님, 무슨 일이시죠?”그중 경호 대장이 장경화를 알아보고는 곧장 그녀를 편들었다.“유성빈, 당장 저 녀석 끌어내! 감히, 감히 내 아들을 때렸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장경화가 강경하게 말했다.“이 자식이! 감히 우리 그룹 문 앞에서 소란을 피워? 죽고 싶어 환장했어?!”경호 대장이 손을 휘두르자 뭇사람들이 청성 그룹 앞에 몰려들었다.이건 대표님 어머님께 잘 보일 절호의 기회였다.표현만 잘하면 승진하고 연봉을 올리며 아름다운 미인과 결혼해 인생의 절정에 오를 천재일우의 기회였다.“뭘 보고 있어? 당장 제압하란 말이야!”경호 대장이 나서려 할 때 갑자기 앙칼진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감히 누가 손대려고?!”이때 실버 롱드레스로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낸 아름다운 여자가 경호원을 몇 명 데리고 이곳으로 걸어왔다.강렬한 불꽃과도 같은 새빨간 립스틱에서 요염한 풍채가 한껏 드러났고 살짝 눈웃음 지으니 고혹한 자태에 저도 몰래 스며들 것 같았다.그녀는 요정처럼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와, 너무 예뻐!”한 무리 경호원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그녀를 훑어보았다.눈앞의 그녀는 절세의 미인이 따로 없었다!“유진우 씨, 괜찮으시죠?”그 여인은 주변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도 마다한 채 곧게 유진우 앞으로 다가왔다.“네? 누구시죠?”유진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그의 눈가에 어렸던 표독한 기운도 점차 사라졌다.“안녕하세요, 저는 조선미라고 해요. 안 회장님의 소개로 왔어요.”그 여자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순간 한 무리 경호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조선미? 설마 그 조씨 일가의 따님 조선미를 말하는 거야?
“엄마, 일단 현이 데리고 병원부터 가요. 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몇 초 동안 고민한 후 이청아가 끝내 마음을 정했다.“청아야, 현이가 당한 굴욕 반드시 갚아야 해. 절대 그놈 봐주지 마!”장경화가 표독스럽게 말했다.“걱정 말아요. 내가 알아서 해요.”이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두 경호원에게 장경화와 이현을 병원으로 실어 가라고 분부했다.“장 비서는 이번 일 어떻게 생각해?”이청아는 머리가 지끈거려 관자놀이를 문질렀다.“대표님, 보다시피 유진우 씨가 먼저 이현 씨를 때렸어요. 방금 경호원들도 다 봤다잖아요. 이건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장 비서가 대답했다.“다만 우리 엄마의 입방정이...”이청아는 말을 잇지 않았다.엄마의 표독스러움과 동생의 막무가내가 어느 지경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다.“어쨌거나 사람을 때린 건 잘못이에요!”장 비서가 진지하게 말했다.“정말 무슨 오해가 있더라도 대화로 풀어야 하잖아요? 게다가 이현 씨는 대표님 친동생인데 이 지경으로 때렸다는 것은 대표님이 전혀 안중에 없다는 뜻이에요. 이 점만으로 유진우 씨가 얼마나 저질스러운 사람인지 충분히 증명되지 않나요?”이청아는 미간을 구기고 의심의 골이 점점 더 깊어졌다.‘그래, 엄마와 현이가 아무리 표독스럽고 막무가내여도 손을 대는 건 잘못이야. 게다가 이렇게 심하게 때리다니. 전에 괜히 미안한 마음을 가졌어, 내가. 인제 보니 이혼은 더할 나위 없이 현명한 선택이야.’“대표님, 이번 일은 이대로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반드시 끝까지 추궁해야 해요! 감히 사람을 때리다니, 유진우 씨는 무조건 대가를 치러야 해요!”장 비서가 차갑게 말했다.안 그래도 심란했던 이청아는 이 말을 듣자 화가 울컥 치밀었다.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유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 도로를 질주하는 실버 벤틀리 안에서.유진우는 휴대폰에 뜬 발신자 표시를 보더니 미간을 살짝 구겼다.다만 결국 수신 버튼을 눌렀다.“유진우, 나한테 해명할 거 없어?”이청아가 다짜고
“어떻게 알았어요?”조아영이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벌게진 얼굴로 물었다.창피함도 있지만 그녀를 더 놀라게 한 건 상대가 이토록 정확하게 증상을 집어냈다는 것이었다.편두통에 생리 불규칙까지, 게다가 배탈이 난 것도 바로 알아채다니.‘너무 신기해! 설마 헛짚은 건 아니겠지?’“한의학은 자고로 견문을 중시해요.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병명을 충분히 보아낼 수 있어요.”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어때, 아영아, 이젠 믿을 만해?”조선미가 가볍게 웃었다.그녀도 속으로 한숨을 돌리며 상대가 정말 실력 있는 의사란 걸 믿게 됐다.“쳇! 그냥 한번 얻어걸렸을 뿐이야. 뭐 대단한 거 있다고!”조아영은 여전히 인정하지 않았다.“진우 씨, 얘가 말만 못되게 굴어요. 신경 쓰지 마세요.”조선미가 미안한 듯 유진우에게 사과했다.“괜찮아요. 일단 병부터 보죠.”유진우도 썩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그는 어르신 앞에 다가가 자세히 훑어보더니 대충 짐작이 갔다.어르신은 중독되었는데 일반 독성이 아니었다.다행히 제때 발견하여 구급했으니 망정이지 두 날만 더 미뤘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선미 씨, 은침 한 세트 사 오실래요?”유진우가 말했다.“네, 바로 사 올게요.”조선미가 손을 흔들자 경호원 한 명이 발 빠르게 나갔다.5분도 채 안 돼 경호원이 은침 한 세트를 들고 왔다.“고마워요.”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곤 어르신의 옷부터 벗겼다.그는 둘째 손가락을 내밀어 어르신의 복부를 두드려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후 은침을 꺼내 한 개씩 그 위에 찔렀다.그는 가벼우면서도 신속하고 정확하게 침을 놨다.잔잔한 수면을 가볍게 찌르듯 행동이 너무 날렵하여 그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참 대단한 침법이네요!”이 광경을 본 조선미가 속으로 감탄했다.그는 비록 의술을 잘 모르지만 국내의 몇몇 유명한 신의를 알고 있는데 그런 분들도 침술만큼은 유진우의 노련하고 정확한 손놀림을 따라오지 못한다.이는 천부적인 재능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고된 노력
“이런 폐인 따위가!”조선미는 울화가 치밀어 장 교수의 멱살을 잡고 으름장을 놓았다.“그러게 내가 침을 빼지 말랬잖아. 기어코 빼더니 끝내 이 사달을 내! 너 대체 뭐 하는 인간이야?!”“아니요, 이건 저랑 상관없는 일이에요. 저도 최선을 다했다고요.”장 교수가 고개를 내저으며 책임을 전가하기 시작했다.“아참, 그 돌팔이 때문이에요. 그 돌팔이가 함부로 침을 놔서 어르신을 해쳤어요!”“찰싹!”조선미는 장 교수의 뺨을 한 대 갈겼다.“X발, 개 같은 놈! 본인이 멍청한 것도 모르고 남 탓하려고 해? 경고하는데 우리 할아버지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너 절대 가만 안 둬! 껍질을 다 발라버릴 거야!”장 교수는 순간 사색이 되었다.조씨 일가의 실력으로 그를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무슨 일이죠?”바로 이때 유진우가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다만 그는 안색이 어둡고 입과 코에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어르신을 보더니 미간을 확 찌푸렸다.“침을 빼지 말라고 했잖아요! 왜 말을 안 듣는 건데!”유진우도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진우 씨, 아까는...”조선미가 해명하기도 전에 장 교수가 불쑥 앞으로 다가오더니 유진우의 멱살을 잡고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다.“너였어? 야 이 자식아, 그렇게 침을 놓으면 어떡해! 네가 함부로 치료한 탓에 어르신이 위태로워진 거야, 알아? 네가 어떻게 책임질지 제대로 지켜볼 거야!”드디어 죄를 뒤집어쓸 자가 나타났으니 장영호는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보아하니 당신이 침을 뺐겠네?”유진우가 미간을 찌푸렸다.“그래, 나다. 어쩔래?”“아니야, 아무것도. 그저 당신같이 능력 없고 책임을 회피할 줄밖에 모르는 뻔뻔스러운 인간들이 대체 어떻게 의사가 됐는지 몹시 궁금했거든!”“너...”“그 입 닥쳐!”조선미가 장 교수를 밀치고는 재빨리 유진우를 병상 옆으로 끌고 갔다.“진우 씨, 지금 상황이 위급해요. 어서 할아버지부터 구해주세요!”“선미 씨, 이 녀석은 돌팔이라 아무 실력 없어요.
점심을 먹고 난 후, 유진우는 갑자기 이청성의 전화를 받았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 상의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만날 장소는 성서의 옛 저택으로 정했다. 성서에 있는 그 오래된 집은 유진우가 이미 구매해 놓은 곳으로 주로 밀사 훈련을 위한 장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전에 소현무에게 피해를 보았던 여자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서경의 밀사 대열에 합류했다. 그들의 큰 뜻은 다시는 자신들처럼 고통을 겪는 사람이 없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깊은 뜻에 유진우는 존경을 표했으며 그들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손도운의 훈련을 거친 그 여자들은 이제 입문 단계에 있지만 진짜 임무를 수행하려면 최소한 3년 이상의 연습이 필요했다. 유진우는 그들이 평생 임무를 수행할 일이 없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그것은 곧 모든 것이 평화롭다는 의미였다. 밀사들은 잠재적인 위협이 있을 때만 활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 그들은 거의 죽을 각오로 임무를 수행한다. 30분 후, 유진우는 성서의 오래된 집에 도착해 회의실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청성이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이청성은 푸른 옷을 입고 있었다. 얼굴은 여전히 면사포와 모자로 가리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몸매만 봐도 여전히 매우 유혹적이었다. 특히 그녀에게서 풍기는 신비롭고도 매혹적인 기운은 마치 타고난 매력처럼 사람들을 쉽게 끌어당기는 느낌을 주었다. “왔어요?” 이청성은 직접 유진우에게 차를 따라 주었다. “공주마마, 갑자기 절 찾으시다니, 무슨 일로 저를 부르신 겁니까?” 유진우는 태연하게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우리 이렇게 친해졌는데 공주마마라 부르는 게 좀 어색하지 않나요? 다른 호칭을 쓰는 건 어때요?” 이청성은 미소를 머금은 듯, 아닌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뭐라 부르면 되나요? 아가씨? 아니면 여사님?” 유진우는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에이, 그런 거 말고 그냥 청성 씨라고 불러도 되잖아요. 왜 그렇게 격식을 차려요?” 이청성은
원인은 간단했다. 유진우는 배신자를 극도로 혐오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중적인 자들은 마땅히 엄벌에 처해야 했다. 반란을 일으킨 다섯 명을 처형한 후, 그들을 따랐던 고급 장교들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처분이 내려졌다. 강등될 자는 강등되고 포섭할 자는 포섭하며 감옥에 가야 할 자들은 감옥에 보냈다. 구체적인 처분은 자발적인 배신이었는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에 따라 달라졌다. 유진우는 반란을 수습하는 동시에 홍복홍에게 유만군의 한 부대를 이끌고 보물 지도의 위치를 따라 호룡각의 보물 창고를 찾아가도록 지시했다. 모든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호룡각에도 고수들이 지키고 있었지만 대 마스터인 홍복홍 앞에서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손쉽게 호룡각의 잔당을 소탕하고 보물 창고에 있던 모든 재물을 회수해 왔다. 사철수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보물 창고 안에는 재물이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서경 왕부에서 동원한 수백 대의 대형 트럭과 수만 명의 인력을 총동원해야만 창고를 완전히 비울 수 있었다. 그 모든 재물의 양과 가치는 어마어마해서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이 보물만으로 서경의 향후 20년 군자금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창고 하나만으로 이 정도라면 남은 세 개의 보물 창고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나라를 사고도 남을 부가 될 것이었다. 보물을 가져온 뒤 가장 먼저 진행된 것은 바로 공로를 논하고 상을 주는 일이었다. 남방의 세 명의 제후인 회음 제후 은성종, 평양 제후 장범규, 선평 제후 주한휘는 모두 큰 공을 세운 자들이었기에 마땅한 보상을 받았다. 그들의 휘하에 있던 장군과 병사들도 저마다 공훈에 따라 상을 받았다.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 어느덧 사흘이 지나 있었다. 3일 후, 정오. 유진우가 식사하던 중 홍복홍이 갑작스레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나무 상자가 들려 있었다. “세자 전하, 아뢸 일이 있습니다.” 홍복홍은 몸을 숙이며 최대한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
“됐어, 시간도 늦었으니 일찍 방에 들어가서 쉬어.”유만수는 피곤한 얼굴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유만수가 유진우한테 왕위를 계승해 줄 생각을 했던 건 한편으로는 유진우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것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죄책감 때문에 조금이나마 보상을 해주고 싶어서였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유진우는 야망도 없고 많은 사람이 우러러보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그러니 유만수도 싫다는 아들을 억지로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얼마 남지 않은 삶이니 이젠 두 아들이 평안하고 행복하게 지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그 외에 일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유진우는 뭔가를 말하려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우는 아직 왕이 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확실히 아니었다.다른 사람들한테는 서경의 왕은 최고의 권세를 대표하고 무궁무진한 부귀영화를 대표하며 세계 정상에 서는 위풍을 대표하겠지만, 유진우한테 서경의 왕은 너무 무거운 자리였다.그 자리는 오르기만 하면 짊어져야 할 것이 너무 많고 더 이상 자기 자신보다 전체 서경, 더 나아가 천하의 백성을 생각해야 한다.유진우는 자신은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 이렇게 무거운 책임을 질 자신이 없었다. 유진우는 이번만큼은 그냥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며칠 동안 유진우는 왕부에서 시간을 보냈다.반역을 평정하는 이번 일은 호룡각을 소탕하는 것을 제외하고도 처리해야 할 사소한 일이 많았다.유만수의 건강이 좋지 않아 유진우가 그를 대신하여 일을 처리했다.먼저 유태범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문제였다. 유진우는 유태범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첫째, 병권을 반납하고 서경에 머물며 매일 개를 산책시키고 말을 타고 활을 쏘며 한가로운 귀족으로서 부귀한 삶을 누린다. 단, 어떤 세력도 있어서는 안 되며 수중의 호위대도 백 명을 넘지 말아야 한다.둘째, 어느 정도의 금전을 가지고 서경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서 발전한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왕부는 절대 간섭하지 않을 것이고
“아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 그리고 제가 한 약속이니 제가 지켜야죠.”유진우가 꿀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그는 보물 황옥주를 가지고 있어 용원의 기를 찾는 데 성공할 확률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높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야말로 해변에서 바늘 찾는 격이었다.“그래. 그럼, 네 말대로 용원의 기는 네가 찾아봐. 그런데 문제는 그걸 찾고 난 다음에는 뭐 할래?”유만수는 되물었다.“그건 그때 가서 다시 얘기해요. 아직 그렇게 멀리까지 생각 안 해봤어요.”유진우는 고래를 저으며 말했다.“생각할 필요 없어. 내가 하라는 대로 해.”유만수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약속을 지킨 뒤 두말 말고 다시 돌아와서 왕위를 이어받아. 뒷걱정 없이 모든 걸 다 준비해 놓을 테니까.”“말했잖아요. 저는 왕이 되고 싶지 않아요.”유천우는 단번에 거절했다.“내 아들인 네가 왕위를 이어받지 않으면 누가 이어받아? 설마 정말 천우에게 이 중책을 맡길 생각이야?”유만수는 퉁명스러운 어투로 말했다.“천우는 학문도 능하고 무술도 능한데 안 될 건 또 뭐예요?”유진우가 반박하며 물었다.“우수한 건 맞지만 천우는 대장군이 더 어울려. 서경의 왕은 아니야.”유만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우리 서경이 세력이 크긴 하지만 내우외환이 끊지지 않고 있어. 만약 내가 죽게 된다면 많은 세력이 반드시 들고 일어날 거야. 그때가 되면 천우가 막아낼 수 있을 거 같아? 천우한테 왕위를 계승하는 건 그를 해치는 길이야.”“그럼, 저는 왜 막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거예요?”유진우가 물었다.“너는 팔자가 굳세고 대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야. 이 세상에서 너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어.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연경에 있는 분도 같은 생각이야. 네가 서경의 왕이 된다면 전체 국면을 안정시킬 수 있어. 나중에 서경에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너는 그만한 중책을 다 짊어질 수 있는 사람이야.”유만수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듣다 보니까 결국 저는 정세
유태범은 분한 마음에 울화통이 터졌지만 그렇다고 감히 입 밖에 낼 수는 없었다.유진우와 유천우가 거절하며 왕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왕은 그 두 사람 중에서 나와야 한다는 걸 유태범도 잘 알고 있었다.조금이라도 허튼 생각을 한다면 그의 최후도 채원진과 똑같아질 것이 뻔했다.“그만! 그만! 이 녀석들이! 왕위를 계승하라는데 무슨 처벌을 받듯이 말하고 있어? 그게 그렇게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야?”두 아들의 태도에 화가 난 유만수는 욕을 퍼부었다.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왕위를 값이 없이 여기며 서로 안 한다고 싸우는 두 아들 때문에 유만수는 너무 창피했다.“저는 정말 생각이 없어요. 천우한테 물려 주세요.”유진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저는 왕위를 감당할 재목이 아니에요. 무조건 형을 시키세요.”유천우는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둘 다 입 다물어!”유만수는 탁자를 세게 치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내가 결정해. 너희들이 제멋대로 이래라저래라할 일이 아니야! 그리고, 내가 몸만 괜찮았다면 너희들이 왕위를 이렇게 빨리 넘겨받을 수 있었을 거 같아?”유만수가 화를 내자 유천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절대 못 하겠다는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자기 생각을 밝히고 있었고 유진우는 여전히 자신과 상관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유만수는 심호흡을 몇 번 한 후 겨우 감정을 가라앉히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모두에게 말했다.“자식놈들이 모두에게 못 볼 꼴을 보여줬네요. 왕위 문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고 오늘에는 모두 즐겁게 먹고 마시며 좋은 시간을 보냅시다.”“자자, 다들 마십시다.”장범규는 웃으면서 분위기를 풀었다. 그는 누가 왕위를 이어받든 상관없었다.결정은 순전히 유만수의 손에 달렸으니, 장범규는 누가 왕이 되었던 유만수의 결정을 따르고 지지할 생각이었다.방금까지 얼어있던 분위기는 금세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다만 아까와 달리 사람들은 세 부류로 나뉘어져 있었다.첫 번째 부류는 회음 제후 은성종을 필두로 유진우를
“뭐?”유진우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서로를 쳐다보며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서경의 왕위는 수많은 사람이 바라지만 누구도 얻을 수 없는 자리였다.이렇게 존귀하고 최고의 권세를 누릴 수 있는 자리를 서로 마다하는 유진우와 유천우 때문에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예전에는 왕의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싸웠거늘, 유진우와 유천우는 완전히 반대였다.두 사람은 싸우기는커녕 오히려 서로 양보하며 왕위를 전혀 신경 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이런 일은 처음이라 유진우를 지지하던 사람도 유천우를 지지하던 사람도 모두 입만 벌린 채 얼어있었다.당사자를 제외한 사람들은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있는데 정작 두 형제는 서로 양보하고 있으니, 사람들은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었다.“형, 애초에 약속했잖아요. 형이 왕이 되고 내가 장군이 돼서 형을 보좌한다고. 왜 말을 바꿔요?”유천우는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언제? 난 그런 약속 한 적 없어.”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나는 게으르기도 하고 내 마음대로 하고 사는 것에 익숙해. 구속받는 것도 싫고 부담스러워서 싫어. 그리고 너를 지지하는 사람이 더 많아. 왕위는 네가 더 합당해.”“합당하기는 개뿔!”유천우는 퉁명스럽게 말했다.“내 능력이 어느 정도 인지 내가 제일 잘 알아요. 애당초 나는 왕이 될 재목이 아니에요. 하지만 형은 다르죠. 형은 모든 면에서 나보다 우수하고 형이야말로 아버지가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계승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후계자예요.”“천우야, 함부로 너 자신을 낮추지 마. 네가 나보다 부족한 건 아무것도 없어.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거야. 너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야.”유진우가 말했다.“난 몰라요! 아무튼 서경의 왕은 형이 하세요!”유천우는 화가 나서 책상을 두드리며 말했다.“익지 않은 참외를 억지로 비틀어 따봤자 그 참외는 달지 않아. 나는 큰 포부도 없고 남을 위하는 고상
유태범의 말 한마디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쳐다봤다. 지난날 표기대장군이었던 유태범은 인품 논란은 많았지만, 그의 능력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유태범은 여러 차례 치열한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오늘 이 자리까지 오른 것이었다.그러니 유태범처럼 패기 있고 안목이 있는 사람조차 유진우가 왕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했다.조금 전에 그들은 유진우를 지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거로 생각해 유천우를 지지했지만 지금 보니 그건 아니었다.먼저 전쟁의 신 조무진이 힘을 보탰고 이어서 표기대장군 유태범이 지지했으니, 이 두 사람의 선택은 많은 사람들의 결정을 바꾸기에 충분했다.“셋째야, 왜 장혁을 선택하겠다는 건지 자세히 말해봐.”유만수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제가 장혁을 선택한 이유는 조무진과 비슷합니다. 저는 한 사람의 재능과 능력을 더 중시합니다.”유태범은 진지하게 말했다.“이번에 호룡각을 어떻게 소탕했는지 모두 잘 알 거로 생각합니다. 전부 장혁이 작전을 짜고 계략을 펼쳤기에 교활하기 여지없던 채원진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호룡각의 숨겨진 보물까지 전부 찾아냈죠. 이건 그야말로 아주 큰 공이 아닙니까? 종합해 보면 장혁의 용기와 지략은 왕위를 계승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입니다. 천우는 대장군이 되기에는 손색이 없지만 왕의 자리에 오르기에는 조금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유태범의 말이 끝나자, 유만수가 입을 열기도 전에 주한휘는 흥분하며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허튼소리! 이번 호룡각을 소탕한 것은 유진우 한 사람만의 공이 아니잖아요. 유천우도 큰 공을 세웠습니다. 유천우의 도움이 없었다면 일이 이렇게 순조롭게 되었을 리가 있겠습니까? 재능과 능력으로 따지면 유천우는 유진우보다 못 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더 젊고 더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요.”“선평 제후, 뭘 그렇게 흥분하고 그러십니까? 저는 그냥 가족의 일원으로서 제 생각을 말했을 뿐이고 모든 권한은 저의 형님한테
“괜찮아. 오늘은 가족 연회야. 여기 있는 사람은 모두 식구와 마찬가지이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걱정 말고 해봐.”유만수가 웃으며 말했다.“위왕 님께서 물어보셨으니 그럼, 사양하지 않고 말씀 올리겠습니다.”조무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두 손을 맞잡아 가슴에 올려 예의를 갖추고 말했다.“제 의견은 지극히 제 개인 생각일 뿐이니, 혹시 의견이 달라도 저를 원망하거나 탓하지 말아주십시오.”“전쟁의 신께서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당신은 나라의 기둥과 마찬가지인 사람이니 보는 눈이 분명 다를 거로 생각합니다.”“전쟁의 신께서는 누구를 지지하는 겁니까? 어서 말해보세요.”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용국의 전쟁의 신이자 왕족 조씨 가문의 후계자인 조문진의 영향력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만큼 모든 사람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여 있었다.“자, 그럼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조무진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정중하게 말했다.“종합적인 능력과 현명함을 바탕으로 한다면 저는 유진우가 서경의 왕으로서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유진우에게는 많은 단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서경을 떠난 지 너무 오래되어 서경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고, 둘째는 토대가 없어 대중들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위왕 님께서 저 자리에 오르실 때도 똑같은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그 당시 많은 세력이 위왕 님께 좋지 않은 눈총을 보냈었지만, 결과는 어떻습니까? 위왕 님은 뛰어난 개인 능력으로 서경의 영토를 넓히며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하여 지금의 지위와 영광을 얻었지요. 유진우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개인 능력으로 보면 위왕 님보다 전혀 뒤지지 않습니다. 서경뿐만 아니라 용국 전체에서도 유진우 같은 사람은 더 없을 겁니다. 저는 유진우에게 조금만 시간을 준다면 그는 반드시 훌륭한 서경 왕이 되어 여러분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제 생각입니다. 여러분께서 다른 의견이 있으시다면 마음껏 말씀하셔도 됩니다. 저는 여기까
은성종의 발언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똑똑한 사람이라면 유천우의 지지자가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유천우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는 걸 잘 알 텐데, 서경의 인재로서 어린 제갈량이라고 불리는 은성종이 왜 반대로 유진우를 지지하는지 모두 의아해했다.“회음 제후,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주한휘가 반박했다.“유진우의 무도 재능은 서경 전체를 놓고 보면 확실히 따라올 사람이 없지만, 왕의 자리는 싸움을 잘한다고 맡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유천우는 학문과 무예를 골고루 겸비한 데다 지지자까지 많으며 무엇보다 전쟁에서 몇 년 동안 연마하여 모든 면에서 매우 훌륭합니다. 만약 유천우가 왕이 된다면 서경은 분명 더욱 빛날 것입니다!”유천우는 황제의 조카이자 주한휘의 미래 사위이고 양측은 이미 혼약까지 맺은 사이였다.그러니 주한휘는 유천우가 왕의 자리에 오르기만 하면 자기 딸은 왕비가 되는 것이고 본인도 자연히 신분이 상승할 테니 무조건 유천우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저도 선평 제후의 견해에 동의합니다.”흑용군 주장 한 명이 말했다.“유진우가 우수하다는 건 물론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는 서경을 떠난 지 여러 해가 되었고 서경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일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유천우는 다르지요. 어릴 때부터 서경에서 자랐으니, 인맥도 넓고 군사 내막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유천우가 왕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맞습니다. 유진우는 10년 동안 서경을 떠나 있었으니 그를 따르지 않을 자들이 많을 겁니다. 저도 유천우가 왕이 되는 것을 지지합니다.”이때 일부 군사의 고급 장교들이 모두 유천우를 지지하기 시작했다.유진우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서경을 떠난 지 너무 오래되었기에 그들한테 유진우는 서먹서먹했지만, 유천우는 달랐다.유천우가 예전에는 믿음직하지 못했던 건 맞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뛰어난 성과를 보였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유천우의 성격상 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