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왕부에 들어가기 전에 나부터 죽이고 가!”이의진은 검을 든 채 꼿꼿이 서서 강력한 기세로 홀로 대문을 지켰다.그녀의 무공은 그리 강하지 않았고 고작 선천 무사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뿜어내는 기세는 무도 마스터보다 훨씬 강했다.일반 병사들은 물론이고 진승민조차도 압도되어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다른 세 제후에게 눈짓을 보낼 뿐이었다.위협은 위협이고 압박은 압박이지만 적어도 명분은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천하의 조롱을 받고 만민에게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다.그들은 살인범을 추적한다는 명분으로 왕부를 포위했다. 비록 행동이 과격하긴 하지만 나중에 슬픔에 북받쳐 잠시 이성을 잃은 것이라고 변명할 수 있었다.하지만 압박 과정에서 왕비를 죽인다면 아무리 변명하고 이유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그 죄를 씻을 수 없을 것이다.그때가 되면 사람들의 공분을 일으킬 게 분명했다.그뿐만 아니라 서경 각지의 세력들이 동요할 것이고 심지어 연경에서도 군사를 보내 진압할 것이다.어찌 됐든 이의진은 서경 왕비이자 용국의 공주이기도 하니까.그런 신분을 가진 그녀 앞에서 그들은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간단히 말해 왕부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일 수 있어도 이의진만은 절대 건드려선 안 되었다. 하여 이의진이 함께 죽자는 듯한 태도를 보인 순간 오히려 그들이 당황했던 것이었다.“세 분, 이제 어떡하면 좋을까요?”진승민은 옆에 선 세 제후를 보며 낮게 물었다.“이미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이유가 없죠.”노정한이 차갑게 말했다.“맞습니다. 이제 한 걸음만 더 가면 성공인데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강윤기가 맞장구를 쳤다.“물론 압니다. 제 말은 왕비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겁니다.”진승민이 낮게 말했다.“왕비의 목숨만 해치지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하원휘가 불쑥 한마디 던졌다.“제후님 뜻은... 묶어놓자는 말입니까?”진승민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다른 방법이 있나요?”하원
아들이 무사히 돌아온 걸 본 이의진은 반가워하다가 이내 다시 표정이 굳어졌다.왜냐하면 아들이 갈 때와 마찬가지로 몇 명만 왔을 뿐 군대는 한 명도 데려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혹시 실패했어?”마음이 무거워진 이의진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들의 유일한 희망이 바로 남쪽 4대 제후를 설득하여 북쪽 4대 제후와 맞서는 것인데 지금 상황을 봐서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은 듯했다.“간덩이가 부은 것들! 감히 왕부로 쳐들어와? 모두 죽고 싶어?”유천우가 호통쳤다. 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마치 천둥처럼 현장 전체가 크게 울렸다.4대 제후의 수만 병사는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도련님께서 돌아오셨군요.”진승민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희 4대 제후는 왕부 안에 진범이 숨어 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위왕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 부득이하게 들어가서 수색해야 하니 길을 비켜주십시오.”“수색은 무슨 수색.”유천우가 냉담하게 외쳤다.“왕부가 어떤 곳인데 함부로 수색하겠다고 난리야? 저리 썩 꺼지지 못해?”“도련님, 저희는 진심으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움직이는데 이렇게 계속해서 방해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진승민이 태연하게 물었다.“흥. 내 앞에서 가식 떨지 마! 너희들의 속셈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없어.”유천우가 차갑게 말했다.“도련님, 당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진승민이 말했다.“진승민, 한 번만 기회를 줄게. 만약 지금이라도 떠난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 너희들은 여전히 서경 제후이고 여전히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다.”유천우는 말하다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하지만 만약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반역을 하려 한다면 내가 장담하는데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도련님, 저희는 대국을 생각해서 이러는 것이니 부디 길을 비켜주십시오.”진승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나머지 세 사람 역시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노려보며 조금도 물러설 기색이 없어 보였다.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그들은 물러설 이유가
“이것들이 죽으려고.”몰려드는 무장병사들을 보며 유천우는 순식간에 분노를 터트렸다.그는 더 이상 자비를 베풀지 않고 칼을 들고 인파 속으로 돌진했다.지금의 그는 이미 무도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랐고 게다가 수년간 전장을 누빈 덕에 쌓은 전투 경험 또한 풍부했다.혼자서 적진을 누비는데도 아무도 막지 못할 정도로 용맹했다.“도련님을 지키고 놈들을 죽여라!”이의진이 검을 하늘 높이 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뒤에 있던 유만군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 들었다.“전부 죽여버려.”석태혁이 장검을 휘두르며 백여 명의 유만군을 이끌고 적진으로 돌격했다.유만군의 수는 적었지만 모두 엄청난 실력을 지닌 고수였고 게다가 훈련도 잘되어 있었다.무도 마스터인 석태혁의 지휘 아래 그들은 파죽지세로 적진을 휘저으며 나아갔다.백여 명의 부대는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수만 명에 달하는 대군의 심장을 찔러 가차 없이 죽여버렸다.혹시라도 암살당할까 봐 4대 제후는 친위대의 보호 아래 즉시 전장에서 멀리 도망쳤다.“왕부 안에 저런 정예 부대가 숨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가차 없이 적을 베어버리는 유만군을 보며 진승민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다행히 백여 명밖에 안 되는군요. 수가 적어서 망정이지, 안 그러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노정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추측건대 저들이 바로 유만군일 겁니다. 유만수가 흑용군의 정예 병력 중에서 가장 뛰어난 고수들을 뽑아 만든 부대인데 전부 뛰어난 실력을 지녔습니다.”강윤기가 말했다.“그렇군요. 어쩐지 엄청 대단하더라니.”하원휘가 고개를 끄덕였다.“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숫자가 적어서 우리한테는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해요. 지금은 용맹해 보이지만 체력이 고갈되면 목숨을 내놓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진승민이 말을 이었다.“혹시 무슨 변수가 생기진 않겠죠?”노정한이 갑자기 물었다.“무슨 변수요? 왕부가 포위된 이상 함락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왕성 밖에도 우리 대군이 주둔하고 있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면 즉시 알아차릴 수 있어
옆에 있던 하원휘가 말을 하려던 찰나 갑자기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해지더니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저기 좀 봐요. 저게 대체 뭔가요?”사람들이 하원휘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하늘에서 한 줄기의 검은 빛이 내려오더니 대군들 속에 떨어졌다.쾅.엄청난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렸고 먼지가 피어올랐다.강력한 충격파는 마치 해일처럼 충돌 지점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충격파가 지나간 곳마다 사람이 나가떨어졌고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단 한 번의 충격으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X발, 대체 뭐야?”진승민이 눈살을 찌푸렸다. 먼지가 너무 심해서 방금 떨어진 게 무엇인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혹시 운석 조각 같은 건 아닐까요?”노정한이 의아해하며 말했다.“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졌다고요? 그런 우연이 있을 리가요.”강윤기는 전혀 믿지 않았다.“제가 봤어요. 사람이었어요.”눈치 빠른 하원휘가 떨어진 지점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저자가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먼지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오더니 4대 제후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그 사람은 검은 검을 들고 매우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는데 지나가는 곳마다 병사들이 맥없이 쓰러졌고 아무도 막지 못했다. 무장병사들은 그의 앞에서 맥없이 쓰러졌다.순식간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자객이다. 어서 막아라!”하원휘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급히 군사를 모아 갑자기 튀어나온 자객을 공격하려 했다.“흥, 그래봤자 계란으로 바위 치기입니다. 우리한테는 대군이 수만 명이 있어요. 저자가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저 많은 병사를 뚫고 우리의 목을 벤다는 건 불가능합니다.”진승민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비록 적을 잡으려면 우두머리를 먼저 잡으라고 하지만 실제로 실행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 대부분은 암살로 우두머리를 제거했다.이렇게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우두머리를 죽이려는 행위는 그야말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왜냐하
하원휘는 매우 현명했다. 자객의 기세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바로 친위대를 지휘하여 뒤로 물러섰다.푸른 산이 남아 있으면 땔나무 걱정은 없다고 자객을 잠시 피했다가 체력이 고갈될 때 대군들이 포위해서 죽이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다.“진 제후님, 하 제후님 말이 맞습니다. 안전이 우선이니 저도 뒤로 가서 잠시 피해있겠습니다.”하원휘가 철수하자 노정한도 더는 지체하지 않고 친위대의 보호를 받으며 천천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흥, 겁쟁이들.”진승민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불만을 드러냈다가 강윤기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강 제후님은 용맹한 분이니 저 두 분처럼 겁먹고 물러나지는 않겠죠?”“당연히 물러나지 않죠.”강윤기가 몸을 풀면서 싸늘하게 웃었다.“자객 한 명뿐이지 않습니까? 전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았습니다.”제후가 된 그는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살아남았다. 큰 전투도 겪은 그가 작은 자객 하나에 겁을 먹을 리는 없었다.“좋습니다. 그렇다면 저 자객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봅시다.”진승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크게 휘둘렀다.“진을 치고 자객을 잡아라.”“알겠습니다.”그의 말에 친위대 수백 명이 바로 칼을 뽑아 들고 자객을 향해 공격하려 했다.“자객을 잡아라.”강윤기도 지지 않고 칼을 뽑아 들고 자신의 친위대를 지휘하며 다른 방향에서 공격을 펼쳤다.그들의 친위대는 정예 중의 정예였다. 혼자서 백 명을 손쉽게 해결할 정도로 일반 병사들보다 훨씬 강했다.자객의 실력이 대단하긴 해도 수많은 병사 사이를 휘젓고 다닌다는 건 아직 진짜 정예병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그들의 친위대가 투입되면 지금처럼 휘젓고 다니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아니나 다를까 두 제후의 친위대가 투입되자 자객의 돌격 속도도 눈에 띄게 느려졌다.친위대는 실력, 장비, 전투 경험 모두 일반 병사보다 훨씬 뛰어났다. 최고의 강자들을 상대할 수는 없었지만 제한하는 역할은 할 수 있었다.또한 일반 병사는 일반 철 갑옷을 입었으나
그러다가 친위대가 완전히 모이자 자객은 갑자기 놀라운 실력을 드러냈다.이렇게 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의 친위대를 유인하여 주변 방어력을 약화시키고 더 쉽게 암살하기 위해서였다.“X발, 정말 간사하고 교활한 놈이군. 어서 철수해.”친위대가 제때 복귀할 수 없다는 걸 안 진승민은 그제야 당황하며 옆에 있는 장교들과 함께 철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최적의 철수 시기를 놓쳤다.자객의 공격 속도는 그들의 철수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단 2분 만에 양측의 거리는 20m도 채 남지 않았다.“제후님, 저희가 자객을 막을 테니 먼저 피하십시오.”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몇 명의 장교들은 망설임 없이 칼을 뽑아 들고 자객을 향해 돌격했다. 하지만 10초도 버티지 못하고 모두 패배했다.“X발, 절대 가만 안 둬!”강윤기가 분노를 터트리면서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강 제후님, 흥분하면 안 됩니다.”진승민이 급히 말렸지만 이미 늦었다.앞으로 달려나간 강윤기가 자객의 목을 베려던 순간 자객이 검날을 덥석 잡더니 강윤기의 어깨를 찔러버렸다.“너 대체 누구야?”강윤기는 신음을 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자객은 아무 말 없이 갑자기 강윤기의 옷깃을 잡고 하늘로 내던졌다.휙.강윤기는 마치 발사된 포탄처럼 수백 미터 날아가 왕부 대문을 넘은 후 마당에 떨어졌다.쿵.곧이어 굉음이 울렸다. 강윤기의 몸이 땅에 떨어지면서 구멍이 생겼고 피를 토하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온몸의 뼈가 얼마나 부러졌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다쳤다.“강윤기.”대문을 지키고 있던 이의진은 급히 몸을 돌려 검을 강윤기의 목에 겨누고 외쳤다.“지금 당장 병사들한테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명하거라. 그렇지 않으면 내 손에 죽을 것이다.”...왕부 밖.강윤기가 날아가는 것을 본 진승민은 깜짝 놀라 잠시 멍해졌다가 곧바로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그는 그제야 후회했다. 만약 자객이 이렇게 강하다는 걸 알았다면 노정한과 하원휘처럼 빨리 도망쳤을 것이다.
유진우의 계획은 간단했다. 적을 잡으려면 먼저 우두머리를 잡아야 했다.쌍방이 전투를 시작할 때 먼저 유천우와 유만군이 대부분의 병사를 유인하도록 했다. 그다음 유진우가 틈을 타 적진에 침입하여 4대 제후를 생포하는 것이었다.그의 실력으로 수만 대군을 모두 죽일 수는 없지만 대군 중에서 우두머리의 머리를 베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4대 제후가 겁을 먹고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유진우는 맨 처음 적진에 침입할 때 실력 대부분을 숨기고 약한 척했다. 진승민과 강윤기 주변의 친위대가 떨어져 나간 순간 갑자기 실력을 폭발시켜 단숨에 두 사람을 잡았다.이제 진승민과 강윤기는 붙잡혔고 남은 건 노정한과 하원휘뿐이었다. 마지막 두 제후만 처리하면 왕부 밖의 대군은 자연스럽게 물러날 것이다.“이제 너희 차례다.”유진우는 눈빛을 번뜩이며 두 제후의 위치를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어서 저놈을 막아라.”“여봐라. 절대 저놈이 가까이 오게 해선 안 된다.”노정한과 하원휘는 겁에 질려 연신 소리쳤고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들은 그동안 전장에서 수많은 적을 홀로 상대하는 자를 본 적이 있었지만 아무리 강한 무사라도 포위되면 결국에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이 자객은 달랐다. 싸우면 싸울수록 더욱 강해졌고 피로한 기색조차 전혀 없었다.수만 대군이 한 사람을 막지 못하다니 실로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정도면 서경의 검선 백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왕부에 언제 이런 고수가 나타난 것일까?“제후님을 지켜라.”공격해오는 유진우를 아무도 막지 못하자 두 제후의 친위대는 즉시 방어 진형을 만들고 유진우의 접근을 막으려 했다.자객을 죽일 자신이 없었던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두 제후가 안전하게 탈출하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것밖에 없었다.“제후님, 그만 보시고 빨리 차에 타십시오.”몇 명의 측근 장교들이 노정한과 하원휘를 차에 태웠다.왕부를 포위할 때 근처의 모든 거리는 이미 봉쇄되어 있었다. 차량이 거침없
노정한은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으면서 쿵쾅거리는 마음을 진정했다.다행히 친위대가 필사적으로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빠르게 도망칠 수 있었다. 자객이 공격할 때까지 계속 가만히 있었더라면 그들도 진승민과 강윤기처럼 생포 당했을 것이다.그때가 되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목숨마저 잃을지도 모른다.“너무 이상합니다. 왕부에 언제부터 이렇게 강한 사람이 있었죠? 수만 명에 달하는 대군조차도 그 사람을 막지 못했어요.”하원휘는 고민에 잠긴 듯 얼굴을 찌푸렸다.그들의 조사에 따르면 왕부에는 석태혁과 홍복홍이라는 두 강자뿐이었다.홍복홍은 이미 유태범의 손에 잡혔고 석태혁도 조금 전 모습을 드러냈다. 왕부에 정예 부대가 숨겨져 있다는 것도 그들이 예상했던 것이었다.하지만 자객은 예상 밖이었다. 단순한 자객이라면 몰라도 문제는 상대가 너무 강했다. 수많은 군사를 뚫고 쉽게 우두머리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을 정도였다.이런 무서운 압박감은 홍복홍이나 석태혁에게서는 절대 받을 수 없었다.자객은 그들에게 아주 위협적인 존재가 돼버렸다.“이 일 빨리 대장군님께 보고하는 게 좋겠어요. 자객의 실력이 강해서 우두머리를 제거하는 작전을 실행한다면 방어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노정한이 매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맞습니다. 지금 당장 대장군님께 직접 군대를 이끌고 진압하러 오시라고 연락해. 반드시 이 기회를 이용하여 자객을 죽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후환이 생길지 몰라.”하원휘가 진지하게 말했다.“알겠습니다.”조수석에 앉은 한 장교가 전화를 꺼내 정보를 전달하기 시작했다.끼익.그런데 그때 차가 갑자기 급정거했다. 타이어가 지면과 마찰하면서 자국 네 줄을 길게 남겼다.차 안에 있던 노정한과 하원휘는 몸이 앞으로 쏠린 나머지 머리를 앞 좌석 등받이에 부딪히고 말았다.“무슨 일이야? 왜 멈췄어?”노정한이 머리를 어루만지며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제후님, 앞에 누군가 길을 막고 있습니다.”운전하던 장교가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두 사람이 눈을 크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유진우의 손에 있는 검은 기체 덩어리를 보고 모두 놀라 멍해졌다.조금 전까지만 하여도 멀쩡했던 영기가 어떻게 눈 깜짝할 사이에 통째로 삼켜 없어질 수가 있을까.머리카락보다도 더 가는 사악한 기운이 이렇게 강력한 위력을 갖고 있을 줄이야.“이 물건이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어요. 오늘 많은 것을 배워가네요.”서지석은 당황한 표정으로 침만 삼켰다.유진우가 때맞게 확인시켜 주어서 다행히 큰 불행은 모면했지만 사실을 모르고 오령정의 영기를 그대로 흡수하여 사악한 기운을 체내에 끌어들였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고 사악한 기운이 폭발할 때쯤이면 결국 바람처럼 될 것이 분명했다.“과연 내 예상대로 이 물건은 흉악하기 그지없네.”유진우의 손가락에 가해지는 압력이 점점 커지자 에너지 커버에 싸인 검은 색의 사악한 기체가 완전히 발광하여 미친 듯이 솟구치고 전력 질주하며 에너지 커버에 끊임없이 부딪혀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듯하였다.희미하게 짐승이 포효하는 듯한 소리도 들리는 것을 보아하니 이 사악한 기운은 이미 영성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이렇게 좋은 보물이 안타깝게도 사악한 기운에 오염되다니, 정말 낭비네요.”서지석은 한숨을 내쉬며 손에 쥐었던 오령정을 모두 바닥에 던지고 발로 부스러뜨려 사악한 기운이 사람을 해치는 것을 방지하였다.“사건이 비정상적으로 넘어갈 땐 반드시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니 바람의 최후는 오아시스와 관련이 있을 것이에요. 우리는 앞으로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 해요.”유진우가 말하면서 한 손을 꽉 움켜쥐자 손에 있던 검은 기체가 순식간에 폭발하여 완전히 사라졌다.현장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손에 든 오령정을 처리한 후 모두의 시선은 일제히 조이준한테로 향했다.조금 전 조이준은 가장 먼저 앞다투어 오령정을 빼앗아 지금은 손에 달걀만큼 한 크기의 오령정을 40여 개나 쥐고 있었으며 품질은 매우 좋아 보였고 모두 합치면 그 가치는 엄청났다.“왜 다들 날 쳐다봐?”
조금 전의 바람은 이미 인간이 아닌 짐승처럼 변화되었었고 그로 인해 또 다른 불가능도 있었을 것이다.“설령 오령정은 바람의 혈육의 결정체라 하여도 뭐가 문제에요? 당신이 방금 말한 3일을 못 버틴다는 말은 또 어떤 뜻일까요?”서지석은 이어 의문을 제기했다.“오령정은 이미 오염되었어요.”유진우는 엄숙한 표정으로 계속하여 말했다.“바로 전에 바람의 상황을 여러분들도 보셨겠지만 이유 없이 발광하고 인성을 잃고 몸까지 변화된 것을 보면 이 오령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수 있을까요?”“진우 씨, 이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에요. 단지 이런 추측으로 사람들을 설득할 능력이 부족할 것 같은데 혹시 증거라도 있나요?”서지석은 다시 물었다.금도문 제자들은 방금 꽤 큰 오령정을 8개나 주워 넉넉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만약 이 오령정을 사용할 수 없다면 그들에게 큰 손실이기에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이러한 결과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매개 오령정에는 모두 한 가닥의 사악한 기운이 숨어 있고 겉으로 보면 발견하기 매우 어려울 거예요. 다만 그 안의 영기를 추출한다면 비로소 증거를 찾을 수 있어요.”유진우는 말하면서 한 손을 평평하게 하여 자신의 오령정을 여러 사람 앞에 보여 주었고 이어 다른 손을 내밀어 손바닥으로 오령정을 향해 살며시 짓누르자 쟁쟁한 소리가 들려왔다.짝!소리와 함께 오령정은 순식간에 터졌고 그와 동시에 짙은 영기가 그 속에서 뿜어져 나왔다.유진우는 손가락을 약간 구부리고 사악한 가운을 감쌀 수 있는 투명한 에너지 커버를 준비해 두었고 이 영기들은 매우 짙은 유백색으로 구름과 안개처럼 끊임없이 밀려왔으며 이것을 모두 흡수하면 무자의 수련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이 영기 속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자세히 보세요.”유진우의 말에 서지석과 몇몇 금도문 제자들이 자세히 눈여겨보더니 갑자기 놀라며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들은 이 유백색의 영기 속에 뜻밖에도 한 가닥의 검은 기체가 숨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이 검은 기체는 유백색의 영기에
“이청성 씨, 방금 그 두 놈이 당신의 오령정을 빼앗은 거 맞죠? 제가 바로 되찾아 올게요.”상황을 지켜보던 서지석은 조금 전에 이청성의 곤룡띠만 아니었으면 자신은 바람을 대처할 수가 없었을 것이고 심지어 죽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를 대신해 오령정을 되찾아 오려고 바로 결단력 있게 손을 쓸 준비를 했다.“ 서지석 씨, 쫓아가지 않아도 돼요.”이청성은 쫓아가려는 서지석을 급히 멈춰 세우며 말했다.“빼앗긴 것이 아니라 제가 그들에게 준 것이니 저한테는 소용없는 물건이에요.”“네?”서지석은 머뭇거리더니 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의문스러운 태도로 물었다.“이청성 씨, 오령정은 무사에게는 아주 귀한 보물이잖아요. 내공을 향상할 수 있고 설령 당신이 쓰지 않더라도 돈으로 팔면 가치도 매우 높아요.”“전 돈이 부족하지 않아요.”이청성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네, 그게….”서지석은 한순간 말문이 막혀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몰랐다.그러고보니 눈앞의 이 여성은 부잣집 아가씨로 부족한 것이 없었고 게다가 곤룡띠 같은 보물도 가지고 있었으니 오령정 한두 개 정도는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이청성에게는 돈이 부족하지 않았지만 서지석은 돈이 부족했으니 신세를 한 번 더 진다 치고 그녀가 원치 않은 오령정을 자신한테 줘도 되는 건데 돌처럼 던져버리다니 너무 낭비라고 생각했다.“서지석 씨, 제가 보물을 그냥 버린 것이 아니라 이 오령정은 뭔가 이상했어요.”이청성은 이어 해명하며 말했다.“당신 손에 있는 오령정을 자세히 봐봐요. 어딘가 특별한 점이 없어요?”“특별한 점요?”서지석은 오령정 하나를 집어 들고 자세히 관찰했지만 아무런 이상한 점도 발견하지 못하고 의아해하며 물었다.“대체 어디가 특별해요? 안에 있는 짙은 영기는 바로 흡수할 수 있으니 수련에 사용해도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아요.”“서지석 씨, 만약 이 물건으로 수련하면 아마 3일도 못 살고 죽을 거예요.”이때 유진우는 손톱만 한 크기의 오령정을 손에 집어 들고 천천히 앞으
조이준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이미지에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바로 땅에서 오령정을 줍고 있었다.이것들은 천금 같은 보물이어서 팔든 직접 사용하든 모두 좋은 선택이었다.“오령정? 이게 모두 오령정이라고?”“어서 와. 빨리 주워.”이 순간 많은 사람이 땅 위에 널려 있는 검은 결정체의 정체를 알고 하나둘씩 쟁탈전을 벌이기 시작했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이유를 모르더라도 모두가 빼앗는 것을 보고 주저하지 않고 쟁탈 대열에 합류했다.“이 오령정은 내가 먼저 본 거야, 이리 내놔.”“헛소리 집어치워, 지금은 내 손에 있으니 바로 내 것이야. 인정하기 싫으면 한판 붙던가.”“제기랄, 누가 감히 나한테서 뺏어간다면 다 죽을 줄 알아.”이익이 있는 곳에는 항상 싸움이 따르기 마련이다.오령정의 가치를 알게 된 후 각 세력은 미친 듯이 경쟁하기 시작했으며 실력이 강한 사람은 몇 개를 더 얻을 수 있었고 실력이 약한 사람은 남은 찌꺼기만 조금 주워가며 약육강식의 정글 법칙을 유감없이 정교하게 보여주었다.만약 양측의 실력이 모두 강하고 아무도 물러서려 하지 않는다면 큰 싸움으로 승패를 나누었고 불과 몇 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바로 전까지만 해도 비교적 평화롭던 곳에서 이미 적지 않은 사망자가 발생했다.“사람은 재물을 위해 죽고 새는 먹이를 위해 죽네.”사방에서 피 터지는 싸움을 하는 것을 본 이청성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겨우 몇 조각의 오령정으로 사람들이 목숨 걸고 싸우다니, 만약 이보다 더 가치 있는 보물이 나온다면 또 어떤 장면일까?“이봐요, 손에 쥐고 있는 오령정을 내놔요. 아니면 제가 무례하다고 탓하지 마세요.”그때 갑자기 두 남자가 다가오더니 이청성이 손에 쥐고 있는 오령정에 시선을 고정하며 앞뒤로 그녀를 에워싸면서 말했다.“어디서 감히 아가씨를 협박해! 너희들 다 뒤지고 싶어?”상황을 목격한 이청성 주변에 있던 근위병들은 바로 칼을 빼 들며 말했다.그들은 모두 반은 종사급 고수들이니 무림인들의 세계 부하들을 상대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
갑작스러운 폭발에 모두가 깜짝 놀랐고 에너지파가 휩쓸면서 적지 않은 무사들이 사방으로 날려 아수라장이 되었다.다행히 서지석과 제자들이 빨리 달린 탓에 피해를 면했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폭발했더라면 그들도 크게 다쳤을 것이다.모든 먼지가 다 떨어질 때쯤 다들 시선을 집중하고 보니 마을 이장의 집은 이미 평지로 변해 있었고 사방의 무너진 담벼락에 의해 온 땅이 어질러져 있었다.허공에 매달렸던 바람은 나무와 함께 완전히 사라졌고 곤룡띠만 덩그러니 땅에 떨어져 있었으며 그 외에도 땅에는 정체 모를 검은 결정체들이 마치 조약돌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유진우는 분명히 바람의 몸이 폭발하면서 튀어나온 물건이라고 확신했다.결정체에서 나오는 피비린내는 아마도 혈액에 의해 녹아서 나는 냄새일 것이고 정상인의 피는 액체 상태이지만 바람이 죽기 전의 피는 고체 상태로 결정체가 되어버렸으니 확실히 이상한 점들이 있어 보였다.유진우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이 많아 식견이 넓다고 생각했지만 오늘 바람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그의 인식을 뛰어넘었다.처음에는 이유 없이 미친 듯이 발광하다가 그 뒤로 신체 소질이 갑자기 배로 강해져 고통과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한 마리의 미친 짐승과도 같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의 몸에 이해할 수 없는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날카로운 이빨, 칼날 같은 손톱, 갑자기 몸에 생겨난 검은 비늘은 칼로도 베기 힘들 정도였고 총적으로 바람은 이미 사람이 아니라 괴물로 보였으며 현재 땅에 널려진 검은색 고체 상태의 결정체들만으로도 문제를 설명하기에 충분했다.도대체 무엇이 바람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전에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도 바람은 모든 면에서 정상이었는데 왜 불과 몇 시간 만에 이렇게 큰 변화가 생긴 것인지.혹시 그가 뭐라도 빠뜨린 것이라도 있었는지.유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긴 듯하였고 비록 무슨 원인인지 모르지만 바람이 짐승처럼 변한 것은 분명 그 괴상한 오아시스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고 안타깝게도 바람은 이미 죽었으니 더
자부심이 강하고 지려고 하지 않는 성격의 조이준은 몇 번이고 거절당한 유진우한테 다소 불만이 있었지만 생사를 가를 때가 되면 반드시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 믿고 더는 조르지도 않았다.“당신들은 여기 멍하니 서 있지만 말고 얼른 가서 서지석 씨를 도와줘요.”유진우는 머리를 돌려 가만히 서 있는 금도문의 제자들을 보고 말했다.그때 서지석은 한창 미쳐 발광하는 바람과 싸우고 또 싸우고 있었다.다만 기력이 소모됨에 따라 서지석은 속도와 힘이 현저히 느려지고 있었고 반면, 바람은 여전히 힘이 넘쳤고 지칠 줄을 몰랐다.이대로라면 서지석은 얼마 못 버티고 패배할 것이 분명했다.“빨리 대선배를 도우러 가요.”금도문의 몇 명 제자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곧 칼을 빼 들고 앞으로 돌진하려 했다.“잠깐만요, 이걸 가지고 가요.”그때 이청성은 갑자기 금빛 밧줄을 꺼내며 금도문 제자에게 던져주었다.이 금색 밧줄은 매우 단단했고 표면에 은은한 빛이 돌고 있어 평범해 보이진 않았다.“뭐죠?”금색 밧줄을 본 조이준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라며 물었다.“이것은 말로만 듣던 곤룡띠가 아니에요?”“조 선배님 눈썰미가 참 대단하시네요.”이청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뭐라고요? 곤룡띠라고요?”곤룡띠에 대해 들은 적 있는 금도문의 제자들은 그 가치를 알고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곤룡띠는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유명한 보물로 매우 보기 드문 물건이었고 어떠한 칼로도 상처를 내기 힘들고 물과 불에도 쉽게 손상되지 않으며 매우 단단하고 질긴 것으로 설령 무도 종사를 묶어 두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다만 곤룡띠는 너무 희귀해서 무림인들의 세계에서도 가진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게다가 가진 자는 모두 최고의 대문 파인데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여인이 이런 보물을 지니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이 여인은 대체 어떤 사람이지?“그만 쳐다보고 빨리 서지석 씨를 도우러 가요.”이청성은 재촉하며 말했다.“네, 그래야죠.”금도문 제자들은 잠깐 꿈에서 깨어난 듯 그제야 정신을
툭!손이현의 머리가 그대로 땅에 떨어져 마치 공처럼 몇 바퀴 굴러다니더니 마침 몇몇 금도문 제자들의 발밑에서 멈추었다.이 상황에 충격을 받은 제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두 눈을 부릅뜨고 멍하니 서 있었다.손이현은 죽기 전까지도 자신이 미쳐 날뛰는 바람의 손에 죽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서 있던 유진우에게 목이 잘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손이현은 도명창으로 명성이 자자했고 총잡이 원호를 사부로 모시고 있었으며 배경이 좋아 앞길도 창창하였고 죽음의 사막으로 온 이유는 보물을 찾아 내공을 높여 온 천하에 이름을 날리려는 목적이었다.자신은 분명 주인공이 될 운명이었고 여태까지 운수가 좋았으며 이번에도 제일 먼저 보물을 찾아 사람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고 작은 마을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목숨이 끊어질 줄이야.아니야, 내가 원한 건 이런 것이 아니었어!손이현은 마음속으로 울부짖었지만 결국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고 그의 휘황찬란한 인생은 마치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그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재능이 남달랐고 또 뜻밖의 인연이 끊기지 않아 무슨 일을 하든지 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서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았다.사부님 원호의 말대로라면 그의 무도 재능은 미래의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온 천하가 존경하는 최고의 강자로 되였을 것이다.그렇게 아름다운 꿈이었고 그리워했던 일이었었는데 이제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되어 버렸다.‘알고 보니 나는 주역이 아니었고 천명이 아니었으며 결국 나도 이렇게 죽는구나.’후회의 외침 속에서 손이현의 의식은 점점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이게 뭐야?”땅에 떨어진 손이현의 머리를 마주한 몇몇 금도문의 제자들은 너무 놀라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고 바로 전에 그들이 가까스로 위험에서 구해낸 손이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시체가 분리된 상태로 눈앞에 나타날 줄은 생각도 못 했다.어떻게 된 거지?몇몇 사람이 경악하며 뒤를 돌아보니 유진우의 손에 든
“너... 이놈!”손이현이 막 맞서려고 할 때 앞에서 갑자기 짐승 같은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눈여겨보니 바람은 이미 사납게 덮쳐오고 있었고 손발을 함께 사용하여 빠르게 달리며 매번 땅을 디딜 때마다 손톱이 땅에 맞닿으며 몇 줄의 깊은 흔적까지 남겼고 그 날카로운 정도가 강철 칼날에 불과했다.“거기 누구 없어? 빨리 날 구해줘! 이 괴물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손이현은 안색이 크게 어두워지며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랐다.“야, 이 제기랄. 빨리 손을 쓰지 않고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야.”손이현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흉악한 얼굴로 유진우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그러나 유진우는 꿈쩍하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진우 씨, 지금은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아요. 손이현이 죽으면 안 돼요.”옆에 있던 서지석이 급해하며 말했다.“저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유진우는 여전히 움직이지도 않았다.“됐어요, 됐어요. 보아하니 제가 손을 쓸 수밖에 없겠네요.”유진우가 너무 고집을 부리자 서지석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칼을 뽑아 들고 직접 손이현을 구하러 나섰다.하지만 실력이 자신보다 더 막강한 손이현도 바람을 굴복시킬 힘이 없는데 자신이 대신하면 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팍!바람은 피비린내에 이끌려 다시 손이현에게 달려들었다.“죽이지 마, 날 죽이지 마.”손이현은 너무 놀라 바짓가랑이는 이미 다 젖어 있었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버젓한 도명창마저 놀라 바지에 오줌을 쌀 지경이라니.“망할 놈, 그렇게 날뛰더니!”손이현이 갈기갈기 찢겨 부스러기가 될 뻔할 때 서지석이 그의 앞을 가로막아주며 바람과 혈투를 시작했다.바람의 신체가 더 크게 강화되어 그 상태에서 정면으로 맞서게 되면 서지석은 더는 상대하기 어려웠지만, 다행히 바람은 이미 공격에 아무런 준비가 없이 이성을 잃었고 진기도 사용할 줄 몰랐기에 서지석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서지석은 민첩한 몸놀림과 함께 손에 쥔 보검으로 바람을 간신히 견제했다.그
“으르렁!”바람은 깊고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입에서는 알 수 없는 검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와 함께 왜곡된 얼굴, 송곳니로 가득한 입, 그리고 사나운 표정은 마치 악마의 형상처럼 끔찍하게 변해 있었다.그와 눈이 마주친 손이현은 놀란 나머지 온몸을 움찔했다.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려버렸다.“야! 저기 누구! 어딜 가는 거야! 제발 나 좀 구해줘!”유진우가 등을 돌리고 가는 모습에 손이현은 순간적으로 어안이 벙벙해져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바람의 광기를 직접 목격한 손이현은 싸움의 의지를 잃었다. 그의 눈에 비친 바람의 존재는 이제 그저 공포의 대상일 뿐이었다.“콧대가 높으시잖아요? 내가 못된 마음을 품었다고 했죠? 그럼 저도 이제는 신경 끌 게요. 그쪽이 알아서 하세요.”유진우는 차갑게 말했다.그는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에게 더 이상 신경 쓸 가치를 느끼지 않았다. 손이현이 죽든 말든 그것은 유진우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멈춰! 당장 멈춰! 내가 명령한다! 이 미친놈을 빨리 쫓아내!”손이현은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소리쳤다.하지만 유진우는 그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 듯 아무런 반응도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야! 내가 누군 줄 알아? 난 도명창 손이현이야! 내 사부님은 서남 지방 5대 강자 중 하나인 원호야! 오늘 네가 내 목숨을 구하지 않으면 사부님은 절대로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손이현은 죽을힘을 다해 소리쳤다. 협박이라도 할 셈이었다.서남 지방에서 원호라는 이름은 듣기만 해도 다들 숨을 죽이기 마련이었다.“뭐? 원호? 그 사람은 서남 지방에서 실력이 상위 3위 안에 드는 존재잖아!”“손이현의 스승이 원호라니! 그가 왜 그렇게 유명했는지 이제 알겠네. 아무도 그를 건드릴 수 없었겠지.”“원호는 성격이 포악하고 자기를 아끼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하다고 들었어. 만약 손이현이 죽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멀리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이 속속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원호의 명성은 사막의 교룡보다도 더 위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