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는 반달, 길게는 1년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죠?”유진우의 몸은 경직되고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자신이 늘 유만수의 부작위를 원망했어도 그들은 결국 같은 피가 흐르는 부자였다.유만수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유진우는 저도 모르게 불안해하고 있었다.그의 곁에 남아있는 가족은 몇 명밖에 안 되는데 유만수까지 떠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그 소식 확실한가요?”유진우는 침착해 보이려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만 테이블 밑에 숨어 있던 손을 저도 모르게 꽉 움켜쥐었다.“전하, 이 소식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확실합니다. 어르신께서 제가 전하께 알려드리는 것을 원치 않으시지만, 저는 전하께서 이 사실을 아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손도운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어르신께서 항상 몸이 정정하셨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거예요?”사철수가 물었다.“지난 10년 동안 어르신께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서경을 지키고, 오랑캐의 침략을 막고, 모든 내부 세력도 항상 경계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어르신께서 정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손도운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유만수의 근위병으로서 그는 모든 것을 안중에 두고 있었다.예전의 서경왕은 손가락만 까딱해도 조정과 민간을 뒤흔들 정도로 위엄있고 패기가 넘쳤다.그러나 이제 영웅은 죽어가고 있으며 그의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정말 슬프고 안타까웠다.“휴... 어르신께서 지난 몇 년 동안 정말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셨습니다. 혼자의 힘으로 서경 전체뿐만 아니라 용국의 절반에 가까운 영토도 함께 짊어지셨습니다. 비록 높은 공들을 세웠지만 몸이 너무 많이 상했습니다.”손도운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유만수...또 다른 말은 없었어요?” 유진우는 감정을 억누르며 애써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서경은 전하의 영원한 집이니 전하께서 힘들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언제든지 돌아오셔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손도운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어둠 속을 지니면서 자신을 희생하는 용사들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소중하고 중점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존재였다.“전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손도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전하의 신분이 특수하여 모든 세력이 은밀히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밀정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쉽게 노출될 수 있었다.“손 장군님, 왕부에 대해 많이 알고 있을 텐데 지금 상황이 어떤지 말씀해 주세요.” 유진우가 다시 물었다.“전하, 지금 상황은...”손도운이 말을 꺼내기 무섭게 갑자기 아래층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그들은 눈길을 주고받으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그들이 어떤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가면을 쓴 암살자 무리가 한꺼번에 달려들었다.암살자들은 날카로운 눈빛과 함께 강력한 아우라를 뿜어냈다.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선두에 선 한 사람은 붉은 옷을 입었고 그 옆에 있는 네 명은 흰옷을 입었고 나머지는 모두 검은색 옷을 입었다.“당신들 누구야?”왕현이 가장 먼저 검을 뽑아 유진우의 앞에 막아섰다.“전하, 먼저 가세요. 제가 뒤따라가겠습니다.”손도운은 살기 어린 눈빛으로 허리에 차고 있던 단검을 천천히 뽑았다.“유장혁! 네가 우리 호룡각을 무너뜨리고 각주를 죽였으니 오늘 피의 대가를 치르게 해줄게!”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분노하며 소리쳤다.“고작 당신들 몇 명만으로 날 죽일 수 있겠어요?”유진우는 조용히 앉아서 차를 천천히 마시며 말했다.전혀 개의치 않는 무덤덤한 표정이었다.“이 오만한 놈아, 오늘 호룡각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 줄게!”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진 쳐! 저놈을 죽여라!”“예!”옆에 있던 흰옷의 암살자 네 명은 아무 말 없이 곧바로 검을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네 사람의 속도가 매우 빨랐고 움직임이 신비로웠으며 그들이 피하고 이동하는 모습은 거의 잔상만 보일 뿐이었다.가장 관건적인 것은 네 사람의 공격과 방어가 매우 잘 조율되어 있었고 진법이 완성되면서 살상력이 배가되었다.“나
손도운의 검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빨랐다.게다가 그의 검술은 극히 사납고 위압적이며 전형적인 군무 스타일로 꾸밈이 없고 불필요한 움직임이 없었다.그의 모든 움직임과 검법은 살인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깔끔하고 효과적이면서 매우 폭력적이었다.4대 호법의 진형이 신비롭기는 했지만, 손도운의 빠른 검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그들이 진형을 바꾸려고 할 때마다 손도운은 빈틈을 발견하고 빠른 검으로 돌파했다.한 차례의 교전 끝에 네 사람은 완전히 제압당해 반격할 여지가 없었다.“손 장군님이 이렇게 강한 무도 마스터인 줄 몰랐네요!” 사철수는 조금 놀랐다.“유만수의 근위병이자 밀정단까지 이끄는 자인데 당연히 평범할 리가 없죠.” 유진우는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손도운을 처음 봤을 때부터 그는 예사롭지 않을 거라고 느꼈다.유만수로부터 중임을 받고 연경까지 먼 길을 왔다는 것만으로도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손 장군님의 나이를 보아하니 겨우 30대에 불과한데 이런 성취를 거둘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위왕 님 곁에는 숨은 인재들이 많네요.”사철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끝났네요.”유진우가 불쑥 말했다.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도운의 공세가 거세졌다.거센 파도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칼날의 기세는 막을 수 없었다.초반부터 기세가 꺾인 4대 호법은 순간적으로 압박을 받아 열수를 버티기도 전에 손도운의 빠른 검에 처져 입과 코로 피를 뿜으며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졌다.“흥! 감히 전하를 해치려고 해? 그전에 내가 든 검이 동의하는지 물어봐!”손도운은 살기가 가득한 아우라를 뿜으며 위풍당당하게 말했다.그가 유진우를 마주했을 때 보여준 겸손함은 온데간데없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렸다.“고수를 만났네.”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손을 들어 계속 공격하려는 4대 호법을 제지했다.“이제 당신 차례야!”손도운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고 칼끝을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의 얼굴을 향해 겨눴다.“흥! 네가 4명을 이겼다고 해서
“난 너랑 시간 낭비할 생각 없어! 꺼져!”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분노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는 더 이상 부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맹렬히 공격을 시작했다. 원래 서로 비슷한 수준이던 손도운은 금세 밀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실력은 결국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전에 손도운이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와 팽팽하게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의 뜨거운 혈기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제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손도운의 그 우세는 사라졌고 남은 건 오직 순수한 실력 차이였다. 이제 싸움은 더 이상 간단한 기술이나 혈기 싸움이 아니었다. 실력의 차이가 승패를 가를 수밖에 없었다. “죽어라! 죽어라!”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며 공격을 퍼부었다. 그 공격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격렬해졌다. 손도운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직 방어할 뿐 반격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3분 내로 손도운은 완전히 패배할 것이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이 모습을 본 유진우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고 앞에 나서려는 순간 갑자기 경계심이 솟구쳤다. 아직 반응하기도 전에 ‘펑!’하는 소리와 함께 발아래에서 검은 안개가 퍼져 나갔다. 유진우는 본능적으로 호신 진기를 발동시켜 방어막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 검은 안개는 마치 영혼처럼 유진우의 호신 진기를 뚫고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더욱 기이한 것은 이 안개가 눈, 귀, 입, 코, 그리고 피부의 모든 모공을 통해 침투해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지?” 유진우는 깜짝 놀라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아무리 많은 것을 봐왔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호신 진기마저 막지 못하는 이런 괴이한 안개는 대체 뭐지?’ 생각할 여유도 없이 유진우는 곧바로 기운을 모아 독을 빼내려 했다. 비록 이 검은 안개가 매우 이상하긴 했지만 그의 실력이라면 그것을 제거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장혁아! 괜찮아? 아무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빠르고 정확하게 내리쳤다. 전신의 강기를 극한까지 끌어올렸고 뒤에서 기습 공격을 한 탓에 방어할 틈이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유진우가 여전히 사철수를 치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주변 상황을 전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긴 칼을 내리칠 때 유진우는 재빨리 호신 진기를 발동시켜 몸에 방어막을 만들었다. “쾅!”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의 긴 칼이 유진우의 호신 진기를 강하게 가격했다. 그 충격으로 잔잔한 물결처럼 진기의 파장이 퍼져 나갔다. 엄청난 반동에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의 칼은 튕겨져 나가고 그는 몸이 휘청이며 뒤로 물러섰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방금 자신은 전력을 다해 칼을 내리쳤고 심지어 기습 공격이었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유진우는 죽지는 않아도 크게 다쳤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를 보면 전혀 흔들리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자신이 밀려서 뒤로 물러섰다. ‘이 어린놈이 나보다 더 강하다고?’ “윽!” 그때, 치료 중이던 유진우가 갑자기 검은 피를 토했다. 얼굴은 온통 새카맣게 변했다. 방금 전 독기는 너무 강력해서 유진우의 몸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막을 수 없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사철수를 치료하는 데 너무 많은 진기를 소모한 탓이었다. 그로 인해 독소를 억제할 수 없었고 그대로 오장육부에 침투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의 기습에 맞서려고 무리하게 방어를 했고 그로 인한 여러 가지 충격이 겹쳐 결국 피를 토하게 된 것이다. “하하하, 결국 너도 다 죽어가고 있구나!”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유진우가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며 웃음을 터뜨렸다. ‘엄청 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한 방에 바로 무너지네.’ “이번엔 너의 목숨을 가져가겠다!”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떨어진 칼을 다시 움켜잡고 유진우에게 달려들어 한 번 더 칼을 휘둘렀다. “전하!” 중상을 입
두 손이 맞붙으며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유진우는 몸을 한 번만 움찔했을 뿐인데 모든 힘을 가볍게 막아냈다. 반면,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유진우의 한 손에 의해 수십 미터나 날아가며 땅에 떨어졌고 코와 입에서 피를 토하며 온몸의 경락이 반쯤 부서져버렸다. “너... 너 어떻게 이렇게 강한 거지?”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가슴을 움켜잡았고 얼굴에는 놀람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유진우는 분명 독에 중독되었고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런데 어떻게 단순한 한 방으로 나를 이렇게 쉽게 물리친 거지? 우리의 실력 차이가 이렇게 컸던 건가?’ “내가 기습당하기 전에 내 실력을 조사하지 않았나?” 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입가에는 검은 피가 묻어 있었다. 사철수 몸속의 독은 이미 모두 빠져나갔고 목숨에 지장은 없었다. 유진우 자신은 부상을 입고 독에 중독되었지만 깊은 수련 덕분에 당장 쓰러지지는 않았다. “넌 아무리 강해도 결국 그냥 무도 마스터에 불과하다. 우리는 충분히 널 죽일 수 있어!”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큰 소리로 외쳤다. 호룡각이 파괴된 날, 그곳의 고위 인물들은 대부분 죽임을 당했다. 남은 사람들은 각자 흩어져 싸웠고 사실상 더 이상 조직을 구성할 수 없었다.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는 잘 모르지만 서경 왕부의 음모였고 유진우가 그 모든 일의 주범이라고 알고 있었다. 오늘 그는 유진우가 서경 왕부의 밀사를 만나러 온다는 비밀 정보를 받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복수를 꿈꿨지만 상대가 이토록 강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흥! 만약 내가 그저 평범한 무도 마스터였다면 아마 오래전에 죽었을 거야. 지금 살아있는 게 기적이지.” 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대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건가?”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눈을 크게 뜨며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유진우가 겨우 20대 중반의 나이라면 이렇게 젊은 나이에 대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유진우는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자신을 습격한 사철수를 보며 순간적으로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그는 내통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의심해 왔다. 왕현, 유공권 등도 그중 하나였지만 유독 사철수만은 의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철수는 그동안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 왕부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 그래서 그는 사철수에 대해 항상 죄책감을 느껴왔고 그랬기에 아까 전심을 다해 치료해 주었던 것이다. 자신이 독에 걸리고 상처를 입어도 사철수를 구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하지만 그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왕부의 결사대원이었고 마치 가족처럼 여기던 사철수가 뒤에서 칼을 꽂을 줄은... ‘도대체 왜?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아저씨? 뭐 하시는 거예요?” 유진우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장혁아, 미안하다. 이렇게 해야만 했어.” 사철수의 얼굴은 복잡해 보였고 그 눈빛에는 죄책감이 섞여 있었다. “예전에 내가 말했지. 그때의 진실을 조사하지 말라고. 그런 건 죽음을 부를 위험이 크다고. 그런데 왜? 왜 너는 그걸 듣지 않았니? 너는 잘 살 수 있었는데 왜 이렇게 스스로 죽으려 드는 거야?” “당신... 도대체 누구야?” 유진우는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나 사철수는 서경 중군 부장이지만 그전에 내 진짜 신분은 호룡각의 밀사였다.” 사철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호룡각의 밀사?” 유진우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사철수가 호룡각에서 보낸 첩자라는 사실을. ‘그렇다면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들이 그를 습격한 것은 사철수가 미리 정보로 전달했기 때문일까? 그리고 그때 터졌던 검은 독기 역시 사철수의 짓이라고?’ 사철수는 일부러 자신을 독에 중독시켜 유진우에게 독을 풀게 하면서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공격할 기회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얽힌 계략은 그를 완벽하게 속여왔고 지금까지 아무런 의심 없이 믿고 있던 것들이 전부 거
이제 유진우가 할 수 있는 건 함께 죽는 것뿐이었다. “응?” 유진우의 빠른 철권을 맞닥뜨린 사철수는 눈이 커지며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막았다. “펑!”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철수의 두 팔이 그대로 부러졌고 그의 몸은 마치 자루처럼 10미터 정도 날아가다가 땅에 떨어졌고 입에서는 피가 터져 나왔다. “배신자!” 유진우는 눈을 부릅뜨고 분노를 터뜨리며 계속 공격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사철수는 상황이 급박해지자 두 손으로 인을 그렸고 발을 힘껏 구르자 갑자기 그의 몸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한 무더기의 옷만 남았다. 이건 분명히 기문둔술이었다. “와!” 사철수가 도망친 뒤 유진우는 거칠게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그는 흔들리며 쓰러질 듯한 몸을 지탱했다. 전 상처가 아물지 않았고 몸은 독에 중독되었으며 가슴을 관통한 그 칼이 여전히 그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제 유진우는 죽음 직전까지 다가갔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전하!” 손도운은 절망하며 소리를 질렀지만 중상을 입은 상태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진우 형님!” 왕현 역시 비틀거리며 일어설 수 없었다. 세 사람의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고 게다가 호룡각의 킬러들이 여전히 주변에 많았다. “왕현 씨! 손도운을 데리고 먼저 가요!” 유진우는 부서진 몸을 힘겹게 지탱하며 어떻게든 쓰러지지 않으려고 했다. 칼이 몸에서 뽑지 않는 한 대략 한 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진우 형님! 그럼 형님은요?” 왕현은 당황스러워하며 물었다. 세 사람 중 유진우의 부상이 가장 심각했다. “걱정하지 마요. 저는 수련이 깊으니 죽지 않아요.” 유진우는 겨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만 떠들고 손도운 데리고 가요!” 왕현은 계속 말하려 했지만 유진우의 호통에 말을 잇지 못하고 결국 손도운을 부축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호룡각의 킬러들은 두 사람을 쫓지 않고 오히려 유진우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표는 분명했다. 다른 두 명
조이준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이미지에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바로 땅에서 오령정을 줍고 있었다.이것들은 천금 같은 보물이어서 팔든 직접 사용하든 모두 좋은 선택이었다.“오령정? 이게 모두 오령정이라고?”“어서 와. 빨리 주워.”이 순간 많은 사람이 땅 위에 널려 있는 검은 결정체의 정체를 알고 하나둘씩 쟁탈전을 벌이기 시작했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이유를 모르더라도 모두가 빼앗는 것을 보고 주저하지 않고 쟁탈 대열에 합류했다.“이 오령정은 내가 먼저 본 거야, 이리 내놔.”“헛소리 집어치워, 지금은 내 손에 있으니 바로 내 것이야. 인정하기 싫으면 한판 붙던가.”“제기랄, 누가 감히 나한테서 뺏어간다면 다 죽을 줄 알아.”이익이 있는 곳에는 항상 싸움이 따르기 마련이다.오령정의 가치를 알게 된 후 각 세력은 미친 듯이 경쟁하기 시작했으며 실력이 강한 사람은 몇 개를 더 얻을 수 있었고 실력이 약한 사람은 남은 찌꺼기만 조금 주워가며 약육강식의 정글 법칙을 유감없이 정교하게 보여주었다.만약 양측의 실력이 모두 강하고 아무도 물러서려 하지 않는다면 큰 싸움으로 승패를 나누었고 불과 몇 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바로 전까지만 해도 비교적 평화롭던 곳에서 이미 적지 않은 사망자가 발생했다.“사람은 재물을 위해 죽고 새는 먹이를 위해 죽네.”사방에서 피 터지는 싸움을 하는 것을 본 이청성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겨우 몇 조각의 오령정으로 사람들이 목숨 걸고 싸우다니, 만약 이보다 더 가치 있는 보물이 나온다면 또 어떤 장면일까?“이봐요, 손에 쥐고 있는 오령정을 내놔요. 아니면 제가 무례하다고 탓하지 마세요.”그때 갑자기 두 남자가 다가오더니 이청성이 손에 쥐고 있는 오령정에 시선을 고정하며 앞뒤로 그녀를 에워싸면서 말했다.“어디서 감히 아가씨를 협박해! 너희들 다 뒤지고 싶어?”상황을 목격한 이청성 주변에 있던 근위병들은 바로 칼을 빼 들며 말했다.그들은 모두 반은 종사급 고수들이니 무림인들의 세계 부하들을 상대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
갑작스러운 폭발에 모두가 깜짝 놀랐고 에너지파가 휩쓸면서 적지 않은 무사들이 사방으로 날려 아수라장이 되었다.다행히 서지석과 제자들이 빨리 달린 탓에 피해를 면했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폭발했더라면 그들도 크게 다쳤을 것이다.모든 먼지가 다 떨어질 때쯤 다들 시선을 집중하고 보니 마을 이장의 집은 이미 평지로 변해 있었고 사방의 무너진 담벼락에 의해 온 땅이 어질러져 있었다.허공에 매달렸던 바람은 나무와 함께 완전히 사라졌고 곤룡띠만 덩그러니 땅에 떨어져 있었으며 그 외에도 땅에는 정체 모를 검은 결정체들이 마치 조약돌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유진우는 분명히 바람의 몸이 폭발하면서 튀어나온 물건이라고 확신했다.결정체에서 나오는 피비린내는 아마도 혈액에 의해 녹아서 나는 냄새일 것이고 정상인의 피는 액체 상태이지만 바람이 죽기 전의 피는 고체 상태로 결정체가 되어버렸으니 확실히 이상한 점들이 있어 보였다.유진우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이 많아 식견이 넓다고 생각했지만 오늘 바람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그의 인식을 뛰어넘었다.처음에는 이유 없이 미친 듯이 발광하다가 그 뒤로 신체 소질이 갑자기 배로 강해져 고통과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한 마리의 미친 짐승과도 같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의 몸에 이해할 수 없는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날카로운 이빨, 칼날 같은 손톱, 갑자기 몸에 생겨난 검은 비늘은 칼로도 베기 힘들 정도였고 총적으로 바람은 이미 사람이 아니라 괴물로 보였으며 현재 땅에 널려진 검은색 고체 상태의 결정체들만으로도 문제를 설명하기에 충분했다.도대체 무엇이 바람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전에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도 바람은 모든 면에서 정상이었는데 왜 불과 몇 시간 만에 이렇게 큰 변화가 생긴 것인지.혹시 그가 뭐라도 빠뜨린 것이라도 있었는지.유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긴 듯하였고 비록 무슨 원인인지 모르지만 바람이 짐승처럼 변한 것은 분명 그 괴상한 오아시스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고 안타깝게도 바람은 이미 죽었으니 더
자부심이 강하고 지려고 하지 않는 성격의 조이준은 몇 번이고 거절당한 유진우한테 다소 불만이 있었지만 생사를 가를 때가 되면 반드시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 믿고 더는 조르지도 않았다.“당신들은 여기 멍하니 서 있지만 말고 얼른 가서 서지석 씨를 도와줘요.”유진우는 머리를 돌려 가만히 서 있는 금도문의 제자들을 보고 말했다.그때 서지석은 한창 미쳐 발광하는 바람과 싸우고 또 싸우고 있었다.다만 기력이 소모됨에 따라 서지석은 속도와 힘이 현저히 느려지고 있었고 반면, 바람은 여전히 힘이 넘쳤고 지칠 줄을 몰랐다.이대로라면 서지석은 얼마 못 버티고 패배할 것이 분명했다.“빨리 대선배를 도우러 가요.”금도문의 몇 명 제자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곧 칼을 빼 들고 앞으로 돌진하려 했다.“잠깐만요, 이걸 가지고 가요.”그때 이청성은 갑자기 금빛 밧줄을 꺼내며 금도문 제자에게 던져주었다.이 금색 밧줄은 매우 단단했고 표면에 은은한 빛이 돌고 있어 평범해 보이진 않았다.“뭐죠?”금색 밧줄을 본 조이준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라며 물었다.“이것은 말로만 듣던 곤룡띠가 아니에요?”“조 선배님 눈썰미가 참 대단하시네요.”이청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뭐라고요? 곤룡띠라고요?”곤룡띠에 대해 들은 적 있는 금도문의 제자들은 그 가치를 알고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곤룡띠는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유명한 보물로 매우 보기 드문 물건이었고 어떠한 칼로도 상처를 내기 힘들고 물과 불에도 쉽게 손상되지 않으며 매우 단단하고 질긴 것으로 설령 무도 종사를 묶어 두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다만 곤룡띠는 너무 희귀해서 무림인들의 세계에서도 가진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게다가 가진 자는 모두 최고의 대문 파인데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여인이 이런 보물을 지니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이 여인은 대체 어떤 사람이지?“그만 쳐다보고 빨리 서지석 씨를 도우러 가요.”이청성은 재촉하며 말했다.“네, 그래야죠.”금도문 제자들은 잠깐 꿈에서 깨어난 듯 그제야 정신을
툭!손이현의 머리가 그대로 땅에 떨어져 마치 공처럼 몇 바퀴 굴러다니더니 마침 몇몇 금도문 제자들의 발밑에서 멈추었다.이 상황에 충격을 받은 제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두 눈을 부릅뜨고 멍하니 서 있었다.손이현은 죽기 전까지도 자신이 미쳐 날뛰는 바람의 손에 죽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서 있던 유진우에게 목이 잘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손이현은 도명창으로 명성이 자자했고 총잡이 원호를 사부로 모시고 있었으며 배경이 좋아 앞길도 창창하였고 죽음의 사막으로 온 이유는 보물을 찾아 내공을 높여 온 천하에 이름을 날리려는 목적이었다.자신은 분명 주인공이 될 운명이었고 여태까지 운수가 좋았으며 이번에도 제일 먼저 보물을 찾아 사람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고 작은 마을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목숨이 끊어질 줄이야.아니야, 내가 원한 건 이런 것이 아니었어!손이현은 마음속으로 울부짖었지만 결국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고 그의 휘황찬란한 인생은 마치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그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재능이 남달랐고 또 뜻밖의 인연이 끊기지 않아 무슨 일을 하든지 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서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았다.사부님 원호의 말대로라면 그의 무도 재능은 미래의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온 천하가 존경하는 최고의 강자로 되였을 것이다.그렇게 아름다운 꿈이었고 그리워했던 일이었었는데 이제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되어 버렸다.‘알고 보니 나는 주역이 아니었고 천명이 아니었으며 결국 나도 이렇게 죽는구나.’후회의 외침 속에서 손이현의 의식은 점점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이게 뭐야?”땅에 떨어진 손이현의 머리를 마주한 몇몇 금도문의 제자들은 너무 놀라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고 바로 전에 그들이 가까스로 위험에서 구해낸 손이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시체가 분리된 상태로 눈앞에 나타날 줄은 생각도 못 했다.어떻게 된 거지?몇몇 사람이 경악하며 뒤를 돌아보니 유진우의 손에 든
“너... 이놈!”손이현이 막 맞서려고 할 때 앞에서 갑자기 짐승 같은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눈여겨보니 바람은 이미 사납게 덮쳐오고 있었고 손발을 함께 사용하여 빠르게 달리며 매번 땅을 디딜 때마다 손톱이 땅에 맞닿으며 몇 줄의 깊은 흔적까지 남겼고 그 날카로운 정도가 강철 칼날에 불과했다.“거기 누구 없어? 빨리 날 구해줘! 이 괴물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손이현은 안색이 크게 어두워지며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랐다.“야, 이 제기랄. 빨리 손을 쓰지 않고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야.”손이현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흉악한 얼굴로 유진우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그러나 유진우는 꿈쩍하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진우 씨, 지금은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아요. 손이현이 죽으면 안 돼요.”옆에 있던 서지석이 급해하며 말했다.“저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유진우는 여전히 움직이지도 않았다.“됐어요, 됐어요. 보아하니 제가 손을 쓸 수밖에 없겠네요.”유진우가 너무 고집을 부리자 서지석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칼을 뽑아 들고 직접 손이현을 구하러 나섰다.하지만 실력이 자신보다 더 막강한 손이현도 바람을 굴복시킬 힘이 없는데 자신이 대신하면 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팍!바람은 피비린내에 이끌려 다시 손이현에게 달려들었다.“죽이지 마, 날 죽이지 마.”손이현은 너무 놀라 바짓가랑이는 이미 다 젖어 있었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버젓한 도명창마저 놀라 바지에 오줌을 쌀 지경이라니.“망할 놈, 그렇게 날뛰더니!”손이현이 갈기갈기 찢겨 부스러기가 될 뻔할 때 서지석이 그의 앞을 가로막아주며 바람과 혈투를 시작했다.바람의 신체가 더 크게 강화되어 그 상태에서 정면으로 맞서게 되면 서지석은 더는 상대하기 어려웠지만, 다행히 바람은 이미 공격에 아무런 준비가 없이 이성을 잃었고 진기도 사용할 줄 몰랐기에 서지석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서지석은 민첩한 몸놀림과 함께 손에 쥔 보검으로 바람을 간신히 견제했다.그
“으르렁!”바람은 깊고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입에서는 알 수 없는 검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와 함께 왜곡된 얼굴, 송곳니로 가득한 입, 그리고 사나운 표정은 마치 악마의 형상처럼 끔찍하게 변해 있었다.그와 눈이 마주친 손이현은 놀란 나머지 온몸을 움찔했다.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려버렸다.“야! 저기 누구! 어딜 가는 거야! 제발 나 좀 구해줘!”유진우가 등을 돌리고 가는 모습에 손이현은 순간적으로 어안이 벙벙해져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바람의 광기를 직접 목격한 손이현은 싸움의 의지를 잃었다. 그의 눈에 비친 바람의 존재는 이제 그저 공포의 대상일 뿐이었다.“콧대가 높으시잖아요? 내가 못된 마음을 품었다고 했죠? 그럼 저도 이제는 신경 끌 게요. 그쪽이 알아서 하세요.”유진우는 차갑게 말했다.그는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에게 더 이상 신경 쓸 가치를 느끼지 않았다. 손이현이 죽든 말든 그것은 유진우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멈춰! 당장 멈춰! 내가 명령한다! 이 미친놈을 빨리 쫓아내!”손이현은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소리쳤다.하지만 유진우는 그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 듯 아무런 반응도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야! 내가 누군 줄 알아? 난 도명창 손이현이야! 내 사부님은 서남 지방 5대 강자 중 하나인 원호야! 오늘 네가 내 목숨을 구하지 않으면 사부님은 절대로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손이현은 죽을힘을 다해 소리쳤다. 협박이라도 할 셈이었다.서남 지방에서 원호라는 이름은 듣기만 해도 다들 숨을 죽이기 마련이었다.“뭐? 원호? 그 사람은 서남 지방에서 실력이 상위 3위 안에 드는 존재잖아!”“손이현의 스승이 원호라니! 그가 왜 그렇게 유명했는지 이제 알겠네. 아무도 그를 건드릴 수 없었겠지.”“원호는 성격이 포악하고 자기를 아끼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하다고 들었어. 만약 손이현이 죽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멀리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이 속속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원호의 명성은 사막의 교룡보다도 더 위세를
“응?”손이현이 뒤를 돌아보자 한 줄기 차가운 빛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속도는 엄청나게 빨랐고 그와 함께 피의 비린내가 짙게 맴돌았다.공격을 가한 자는 다름 아닌 바람이었다!나무에 박혀 몸을 움찔거리던 바람은 결국 두 손으로 창대를 붙잡고 비틀어 간신히 반 미터 정도 앞으로 몸을 끌어당겼다.그는 손이현에게 다가가며 그 날카로운 손톱을 펼쳐 내리치려 했다.그의 손톱은 마치 날 선 강철처럼 그 자체로도 무지하게 치명적이었다.“고작 이런 기술로 나를 공격하겠다고?”손이현은 갑작스레 다가오는 공격에 콧방귀를 끼며 팔을 휘둘렀다.“펑!”폭발적인 소리가 울렸다.손이현의 진기가 바람의 손톱에 의해 가볍게 찢어졌다. 손목마저 그대로 잘려 나가서 뜨거운 피가 튀며 바닥에 떨어졌다.현장은 순식간에 피바다가 되었다.“아악!”손이현은 떨어진 손목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가 곧이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그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바람의 손톱이 이렇게 날카롭고 강력할 줄을 말이다.한순간에 자신의 진기를 뚫고 손목을 자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내 손! 내 손!”손이현은 잘린 손을 붙잡고 고통과 당혹감에 휩싸여 있었다.그는 바람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으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펼쳐졌다. 바람은 그의 손목을 마치 두부를 베어내듯 손쉽게 잘라버렸다.갑작스레 다가온 공격에 손이현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으르렁!”바람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손톱을 휘둘러 창대를 부러뜨리고 속박에서 벗어났다.그리고 다시 포효하며 손이현을 향해 달려들었다.“안 돼... 가까이 오지 마!”손이현은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을 쳤다.바람의 손톱에 이미 트라우마가 생긴 듯했다.잘린 손목은 아픈 데다 창은 나무에 고정되어 있어 바람을 제대로 막아낼 수도 없었다.그는 그저 극심한 통증 속에서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바람을 죽여버려야 했다.바람은 폭주해서 고통을 느끼지 못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너무 공포 그 자체였다.
바람은 그로 인해 계속 후퇴하며 포효했다.그는 이미 폭주한 상태였고 진기라는 보호막조차 거두어낸 채 오직 육체만으로 모든 것을 견디고 있었다.그리하여 손이현의 날카로운 창끝이 바람을 찔러대며 그의 온몸을 갈기갈기 베어가자 그의 피는 마치 폭포처럼 쏟아졌다.모두가 바람이 이번엔 쓰러질 거라 생각했을 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바람은 고통을 모르는 듯 자신에게 난 상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또다시 미친 듯이 손이현에게 달려들었다.가장 두려운 점은 그의 상처가 눈에 띄게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었다.그의 회복력은 그 자체로 공포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놀라웠다.“흥! 죽기 전까지는 깨닫지 못하는군! 한 방에 너를 끝장내겠다!”바람이 다시 달려들었으나 손이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긴 창을 한 손에 쥐고 떨자 은색 빛이 사방으로 퍼지더니 주위를 밝게 밝혔다.“이 창이 세상을 놀라게 하리!”손이현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창을 뒤로 당기곤 그것을 무자비하게 앞으로 내질렀다.윙!웅장한 소리가 들렸다.그 순간, 창끝에서 은빛의 기운이 폭발하듯 터지며 마치 하늘을 가르는 용처럼 바람을 향해 돌진했다.그의 일격은 너무나 빠르고 강력하여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와, 정말 멋진 창법이야! 기세가 정말 무서워!”“이게 바로 도명창의 실력인가? 역시 대단해!”“이 창 한 방이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어. 바람은 이제 끝장났다고 봐야지!”사람들은 손이현이 내뿜은 은빛용을 바라보며 놀라움과 경외의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그들은 손이현의 이름을 익히 들어왔지만 그가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이번에야 비로소 도명창 손이현의 위력을 깊이 체감하게 된 것이다.“으르렁!”손정의 공격을 마주한 바람은 여전히 피하지 않고 그대로 정면으로 돌진했다.“펑!”폭발적인 소리가 울려 퍼지며 손이현의 은빛 창이 바람의 배를 뚫고 들어갔다.창끝이 그의 배를 관통하고 몸을 뚫고 지나가며 온몸을 꿰뚫었다.하지만 기이하게도 창끝에 묻은 피는
“큰일이에요! 금실망이 곧 터질 거 같아요!”그때, 누군가가 외쳤다.모두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금실망에 갇힌 바람은 거대한 존재로 변해 가는 것처럼 보였다.그의 온몸은 검은 문양에 휩싸이게 되었다.그의 이빨은 날카로운 송곳처럼 치솟았고 손톱은 뾰족하게 변했다. 그의 눈은 붉은빛에서 칠흑처럼 깊고 검은색으로 변했으며 입에서는 짐승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그르렁! 으르렁! 크아악!”바람의 포효는 점점 더 커져갔고 그 표정 또한 야수처럼 흉측하게 일그러졌다.그의 등은 천천히 부풀어 올랐으며 팽팽하게 펴진 금실망을 한 줄, 한 줄씩 찢어 나갔다.“으르렁!”바람은 또 한 번 포효했다.그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금실망을 움켜잡고 힘껏 찢었다.“쾅!”튼튼한 금실망이 그대로 두 동강 나며, 거대한 틈이 벌어졌다.금실망을 잡고 있던 청년들은 그 힘에 순간적으로 밀려나며 바닥에 쓰러졌다.“큰일 났다! 이 미친놈이 나왔어!”“빨리! 빨리 그를 막을 방법을 찾아!”그들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었고 급한 대로 줄을 꺼내 바람을 다시 묶으려 했다.“으르렁!”바람은 하늘을 향해 포효하며 그의 근육질 몸체를 한 번 더 흔들어 강력한 힘을 발산했다.그러자 거대한 밧줄들이 순식간에 부러지며 바람을 막을 힘이 없음을 증명해 보였다.“막을 수 없어! 모두 도망쳐!”마을의 청년들은 절박한 상황에서 두려움에 빠진 채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바람이 방금 전 마을 사람들을 처참히 무찌르던 그 장면이 눈앞에 떠올라 다시 그에게 다가가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이 괴물 같은 존재를 상대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쓸모없는 놈들! 내가 나서마!”그때 갑자기 청색 의복을 입은 한 남자가 군중 속에서 솟구쳐 나와 바람 앞을 가로막았다.긴 창을 든 그 남자는 바람 앞에 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옷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내뿜는 기세는 마치 고요한 폭풍처럼 강렬했다.“봐! 손이현이야!”“손이현? 서남 지역에서 명성을 떨친 도명창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