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너머 들려오는 소리에 윤이건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또 한 번 전화를 걸었는데 같은 알림을 듣고서야 핸드폰을 껐다.차가 아직 주차장에 있고 팔찌가 구석에 떨어져 있는 데다가 핸드폰이 갑자기 꺼진 상태다.이 모든 것들은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알려주고 있기에 윤이건은 불안한 생각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상황을 봐선 그녀한테 분명 사고가 났을 거야…….’이렇게 생각하자 윤이건은 가슴이 아팠는데 그가 나가려던 찰나 유연서가 그를 향해 달려왔다.유연서는 숨을 헐떡이며 윤이건의 앞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윤이건의 표정이 이상하다는 걸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이건 오빠, 왜 그래…….”“방금 오면서 이진을 본 적 있어? 그녀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어.”윤이건은 급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아무나 붙잡고 묻고 싶었다. 한편 윤이건의 말을 듣자 유연서는 마음속으로 기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유호신이 성공했나 보네…….’다만 그녀는 기쁜 마음을 숨긴 채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였다.그녀는 고개를 젓더니 윤이건의 눈을 보며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이진 씨를 보진 못했어. 이 대낮에 설마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겠어?”유연서는 말을 하면서 능청스럽게 사방을 둘러보았다.“이건 오빠, 내가 함께 찾아볼 테니 너무 조급해 하진 마. 이진 씨는 분명 아무 일도 없으실 거야.”윤이건의 절박한 심정은 유연서의 말을 듣자 뜻밖에도 조금 위로되었다. 그가 갑자기 자신을 쳐다보자 유연서는 깜짝 놀랐다.“이건 오빠, 혹시 이진 씨는 사고 난 게 아니라 지난번 일을 오해하셔서 화 나신 게 아닐까…….”“오해?”윤이건은 급한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차분하게 물었는데 유연서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지난번에 사무실에서 오빠가 날 안고 있는 걸 이진 씨께서 보셨잖아. 그래서…….”유연서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윤이건의 차가운 시선을 느껴 하던 말을 멈췄다.현재 윤이건은 이진이 반드시 사고 났
“윤 대표님, 이건 저희도 모르는…….”방금 전까지만 해도 당당했던 책임자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말하는 목소리마저 떨렸다.“윤 대표님, 저희는 정말 모르는 일이에요.”그들은 모두 윤이건과 이진이 어떤 관계인지 알고 있었다. 모두 그들이 그저 계약 결혼한 사이인데다가 지금은 이혼한 상태인 것만 알고 있었다.이번 경매에서 이진한테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아무도 몰랐는데다가 윤이건이 이진의 일에 이렇게 신경을 쓸 줄은 더욱 몰랐었다.윤이건은 순식간에 어두워진 얼굴로 이를 악물며 말을 했다.“제대로 알아보세요.”보안실의 직원은 너무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키보드를 몇 번 만지작거렸지만 어디를 눌러야 할지 전혀 몰랐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책임자를 바라보았는데 당장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이, 이걸…….”“녹화 범위와 시간을 확대해 보세요.”책임자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윤이건은 마치 명령을 내리듯이 말을 했다. 옆에 있던 책임자는 윤이건의 행동에 불만이 가득했으나 입을 열 용기조차 없어 그저 옆에서 어두운 표정으로 서있기만 했다.보안실의 직원은 얼른 그의 말을 따라 영상들을 빼냈다. 그래도 그들은 별 단서를 찾지 못했다.윤이건은 사나운 매와도 같은 눈빛으로 이를 악물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이와 동시에 한 수산시장의 작은 창고 안은 습하고 짠 데다가 비린내가 가득했다. 창고의 중간에는 비교적 굵은 나무 기둥이 있었는데 이진은 땅바닥에 앉은 채 두 손이 묶여있었다.그 외에도 검은색 옷을 입을 남자들이 서 있거나 앉아있었는데 모두 험상궂은 얼굴들이었다.“어떻게 됐어? 유호신한테 해결했다고 말했어?”이때 소파 위에 앉은 남자가 나른하게 입을 열었는데 명령적인 말투였다.그는 분명히 그들의 보스일 것이다.“보스, 제가 이미 유호신한테 메시지를 보냈으니 걱정 마세요. 하지만…….”말을 하던 남자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는데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이진을
“보스, 얼마를 달라고 할까요?”핸드폰을 들고 있던 놈은 흥분된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유호신의 모든 것들을 빼앗고 싶어 안달인 모양이었다.“너무 많이 달라고 하진 마. 우리 한 사람당 2000만 원이면 되. 너무 많이 달라고 했다가 시간을 끌기라도 한다면 우리한테 불리해질 거야.”그들 보스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조금도 긴장한 기색을 보이지 않은 채 앉아있기만 했다.그들은 이 말을 듣자 흥분되어 덩실덩실 춤을 추고는 새로운 조건을 유호신에게 적어 보냈는데 말투는 분명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유호신이 이 돈을 이체하지 않는다면 그들도 손을 쓰지 않을 거다.[가격은 이미 상의했었잖아? 이제 와서 가격을 올리는 게 어디 있어?]보스는 유호신이 보내온 답장을 보더니 직접 핸드폰을 빼앗고는 메시지를 보냈다.[우리한테 이 여자의 신분을 말해주지 않았잖아. 그리고 YS 그룹에서 간섭을 해오는 상황인데 1억이 그렇게 많진 않잖아?]그들이 이렇게 협박을 해오자 유호신은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그러나 사방에서 들려오는 경찰차 소리에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들이 이번 일을 해결하지 않고 그를 고발하기라도 한다면 큰일인 데다가 1억은 그에게 있어서 많지도 적지도 않은 돈이다. 유씨 가문의 세력이 널리 분포되어 있긴 하지만 그는 첩의 아들이라 그가 쓸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있다.하지만 현재 상황으로서는 그들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이때 유호신은 갑자기 유연서의 억울한 표정을 떠올렸는데 그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는 1억을 그들에게 이체했다.[방금 이체했어. 그러니까 꾸물거리지 말고 얼른 해결해!]입금된 소식과 유호신이 보낸 메시지는 동시에 접수되었는데 그걸 보자 납치범들은 너무 기뻐 춤을 출 것 같았다.“유호신한테 정말 1억이 있을 줄이야.”“이렇게 쉽게 보낼 줄 알았다면 조금 더 많이 달라고 했을 텐데. 뭔가 손해 본 기분이야.”돈이 입금되자 그들은 약속대로 진행하려고 준비하기 시작했다.이진은 눈을 감고 있었지만 심장
보스는 시종 그녀들의 반응을 관찰하고 있었다.그들이 총을 꺼내자 임만만은 몸을 심하게 떨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들이 보기에 임만만은 배짱이 큰 편이였다.반면 이진은 총을 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이진은 눈도 깜빡이지 않았는데, 마치 눈앞의 그들을 못 본척하는 것 같았다.그러자 보스는 그녀에게 관심이 생겨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두목은 이진의 얼굴을 훑어보더니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허허, 재밌는 아가씨네.”전에 유호신은 이진을 처리하라고만 했지 죽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그녀의 몸을 망가뜨리는 게 죽이는 것보다 더 악렬한 짓일 거다.보스는 방금까지 그녀에게 관심이 없어 아무 놈한테나 양보하려고 했는데 지금 생각이 바뀌고 말았다.그는 이런 일을 많이 해봤지만 총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여자는 처음이었다.게다가 이렇게 예쁜 여자도 처음이었다.그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는 손을 내밀어 이진의 볼을 어루만졌다.바다 주변이라 그런지 이진의 체온은 다소 차가운 편이었다. 하지만 그가 즐기기엔 딱 좋은 온도였다.보스는 이진을 만지던 손을 멈추지 못한 채 목덜미와 턱까지 어루만졌다. 그의 눈빛은 단 1초도 그녀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한편 이진이 경매장 주차장에서 납치당한 소식이 온 데 간 데 퍼지고 말았다. 윤이건이 아무와도 말하지 않았지만 책임자 측은 그들이 책임을 지게 될까 봐 가능한 한 사람들을 동원했다.결국 경매장에 있던 모든 직원들이 이 일을 알게 되었다.순식간에 모든 직원들은 공포에 빠지고 말았는데 이 일이 자신과 연관되기라도 할까 봐 걱정된 거였다.결국 한시혁도 이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그는 운전기사를 시켜 차를 돌려 경매장으로 되돌아갔다.경매장에서는 주차장의 CCTV만 확보할 수 있었는데 윤이건이 경찰 측과 연락한 덕분에 빠른 속도로 의심 가는 차량 한 대를 포착할 수 있었다. CCTV 속의 검은 SUV 차량을 보자 윤이건은 그들을 죽이고 싶은 심정이 들기 시작했다.“윤 대표님, 걱
“허허, 너무 급해하진 마. 내가 뭐 할지는 곧 알게 될 거야.”보스는 흉악한 미소를 지으며 상의를 벗었는데 이때 허리춤에 있던 총이 그대로 드러났다.모두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이진은 몰래 미소를 지었다.‘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더니 자기가 어떻게 죽을지는 모르나 봐.’보스가 이진의 옷을 벗기려던 찰나 갑자기 하체가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이진을 보자 그녀는 발로 보스를 걷어찬 후 그의 이그러진 이목구비를 보며 냉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뒤에 놓인 손을 풀어진 밧줄에서 빼냈다.사실 임만만이 그들과 다투고 있을 때 그녀는 이미 밧줄을 풀었는데 지금까지 기다렸던 이유는 그녀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조금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다만, 이 정도로는 턱도 없이 모자랐다.이진은 여전히 바닥에 앉아 있었는데 보스는 돼지를 잡는 듯한 비명소리를 질렀다. 이진은 그의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얄밉기도 했는데 그녀는 얼른 팔을 앞으로 내밀어 그의 허리춤에 있던 총을 빼냈다.이때 임만만은 창고의 다른 편에서 납치범의 몸 밑에 깔려있었다. 그 납치범이 손을 임만만의 셔츠에 넣으려는 찰나 보스의 비명소리가 들려와 그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그놈이 고개를 돌려 상황을 파악하려던 찰나 이진이 그를 향해 총을 쏘았다. 그녀는 그의 머리나 심장을 향해 쏜 것이 아니라 허리를 쏘았다. 허리를 쏜다면 많은 출혈을 일으키지만 단기간에 목숨을 잃지는 않는다.“아!”원래 임만만은 죽고 싶은 심정으로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남자의 음흉한 웃음소리와 역겨운 비린내를 맡고 있던 찰나 총소리가 들려오자 그녀는 본능적으로 소리를 지르고는 눈을 떴다.하지만 눈앞의 장면에 임만만은 입을 크게 벌리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그녀는 지금 총을 든 사람이 이진이고 쓰러진 사람이 납치범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이진은 임만만의 표정을 알아차리고는 그녀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안심시키려고 했다.만약 애초에 그녀가 이 아이를 비서로 데려오지 않았
납치범들은 보스가 이렇게 고함을 지르자 온몸이 떨렸다.그들은 서로 쳐다보더니 그중 한 사람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보스, 그런데 그쪽에서 이 계집애를 죽이라고는 하지 않았어요. 괜히 죽였다가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요…….”“X발, 이 개자식들아. 빨리 안 쏘면 내가 너희들 모두 죽여버릴 거야.”보스는 고통스러워하며 욕을 퍼부었다. 그는 일어서려고 했지만 방금 그녀의 발길질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그는 두 다리가 모두 나른해져 땅바닥에 누운 채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보스는 엄청 잔인한 사람이라 그들은 이진보다 보스를 더 두려워했다.그들은 서로 쳐다보더니 저도 모르게 침을 몇 번 삼키고는 마침내 결심을 내렸는데 그들 중 한 놈이 총을 쏘려고 할 때 그는 갑자기 손목이 저려왔다.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봤는데 그놈은 하마터면 놀라 기절할 뻔했다. 그는 손에 쥐던 총을 땅에 떨궜는데 그의 손목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알고 보니, 그가 총을 쏘려고 할 때 구석에서 누군가가 총을 쏴왔다.“누구! 누구야!”갑자기 알 수 없는 사람이 나타난 데다가 그 사람은 분명 이진의 편이였다.가뜩이나 당황한 납치범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그들은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조차 없었다.“누구야! 당장 나오지 못해? 내가 네놈의 머리를…….”또 다른 놈은 두 손이 무척이나 차가웠는데 가능한 한 큰 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한편으론 보스한테 보여주는 거고 다른 한편으론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서다.그러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총소리가 또 한 번 울렸다.“아!”펑 하는 소리와 함께 그놈은 운이 나빠 손목이 아니라 아랫배를 맞았다.갑자기 나타난 알 수 없는 총소리에 이진도 놀라고 말았다. 숨어서 그녀를 돕는 사람이 누군지는 그녀도 알 수 없었다.비록 두 번 모두 납치범들을 향해 쏘았지만 몰래 숨어있는 그 사람이 자신의 편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우선 그렇게 많은 것들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이진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납치범들이
‘정말 오랜만이긴 하네.’이진은 한시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음속으로 대답했다.그녀는 해외에서 돌아온 이후 한 번도 한시혁과 만난 적은 없었고 가끔 연락만 했었다.처음에 그녀는 한시혁의 전화랑 문자 등을 자주 받았었다. 그러나 이진이 계속 답장을 피하자 한시혁도 그녀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은 만나기는커녕 연락을 한지도 오래였다.비록 한시혁이 그녀에게 잘해 주긴 했지만 이진은 그래도 좀 어색했다.그러나 이런 것들은 둘째치고 두 사람은 사이가 정말 좋았고 지금 그는 그녀를 구해주기까지 했다.이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한시혁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밖에서 또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한시혁의 어깨를 넘어 바라보니 한 무리의 경찰들이 이곳에 도착했다. 그 사이에는 윤이건도 있었다.윤이건의 얼굴을 보자 이진은 기분이 좋았는데 그녀 스스로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윤이건은 이진을 다시 보는 순간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는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더니 이진을 한 번 훑어보고 그녀가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만 두 사람이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서 그녀의 이런 낭패 한 모습은 처음이었다.한시혁은 이진의 표정을 눈치채지 못했고 누가 온 건지는 더욱 개의치 않았다.그는 고개를 숙이더니 자신의 외투를 벗어 이진의 어깨에 덮어주었다.이진은 이런 사소한 일들을 따지기 귀찮았고 굳이 따질 마음도 없었다.경찰이 오자 그녀는 바로 앞으로 나가더니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그 납치범들은 뒷문으로 도망갔는데 아직 도망 간지 몇 분 지나지 않았어요.”그러자 대장은 그 말을 듣고 얼른 뒤에 있는 대원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대원들이 모두 출동한 후에야 대장은 이진을 돌아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이진 씨, 다치진 않으셨나요?”“저와 제 비서는 모두 괜찮아요. 이렇게 빨리 도착해 주셔서 감사해요.”대장은 이 말을 듣자 울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보아하니 잘리진 않을 게 분명했다.
유연서는 원래 윤이건한테 말을 걸려고 했는데 이진의 말을 듣자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경찰과 이야기를 나누는 이진을 보았는데 온몸이 후들후들 떨려왔다.만약 경찰 측에서 유호신을 찾았다면, 유호신이 이 일을 까발리기라도 한다면…….유연서는 경찰에게 말을 하려고 입을 오물거렸지만 제 발이 저려 감히 윤이건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경찰은 더욱 쳐다보지도 못했다. 지금 그녀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한편 이진은 납치범들과 유호신이 나눴던 대화 내용을 모두 경찰에게 말했다.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심지어 말투마저 모방하며 상황을 설명했다.경찰 측은 모두 좀 의아해했지만 진지하게 기록을 했다. 정말 이 사람들을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큰일 날것이다.그리고 이진이 경찰과 이야기는 나누는 과정에 윤이건은 그녀의 옆에 꼭 붙어있었다.그의 시선은 이진의 몸에서 단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그녀가 경찰한테 이렇게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을 듣자 그의 마음도 그제야 진정이 되었다.그녀가 정말 다치지 않았다는 것을 그제야 증명할 수 있었다.대장이 사람들을 데리고 철수할 준비를 하려고 할 때 윤이건은 이 틈을 타 이진의 앞으로 걸어갔다.“가자, 데려다줄게.”원래 윤이건이 말하려던 것은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한다면 이진이 싫어할까 봐 결국 억지로 말을 바꿔 말했다.그러나 이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한시혁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말을 했다.“이진아, 정말 오랜만이야. 이렇게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졌으니 배고플 텐데, 내가 밥 사줄 테니 밥 먹으러 갈래?”이 말을 듣자 윤이건은 고개를 돌리더니 이를 악물며 한시혁을 바라보았다.‘이처럼 뻔뻔할 수 있다니.’윤이건의 눈빛이 너무 뜨거웠는지 한시혁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시선을 돌렸다.두 남자의 시선이 마주치자 말은 안 해도 공기 중에는 온통 불꽃이 튀어 보는 사람들이 죽을 지경이었다.다만 그들이 의외인 것은 이진은 그들을 전혀
결혼식 날짜는 8월 초로 정해졌으며,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될 예정이다.웨딩드레스 가게에서 청혼한 이건의 이야기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이건이 바라던 대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진이 윤이건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더욱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다.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친한 지인들 외에 회사 직원들만 초대했다.윤이건의 가족들은 보기 드물게 모두 현장에 참석했지만, 이진 쪽은 텅 비어 있었다.한편 이씨 가문은 여전히 다툼이 지속되고 있었다.“이것 봐! 내가 애초에 뭐라 그랬어? 이진 그년이 양심 없는 년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제 알겠지? 그년은 결혼식처럼 중요한 날조차 아버지인 당신을 부르지 않았어. 이기태, 정말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백윤정은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에게는 예전의 자애로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앞으로 달려들어 이기태를 때리려고 들었다.이기태는 화가 난 마음에 백윤정을 밀어냈다.“좀 저리 꺼져!”‘그래봤자 이진이는 내 친 딸인데, 지금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백윤정 때문이잖아. 백윤정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진이를 그렇게 대했겠어? 백윤정이 자꾸 끼어들어 모순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이진도 날 이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았을 거야.’물론 이기태의 눈에는 그저 이익밖에 없다. 그가 후회하는 건 오직 이진을 통해 이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지금의 이기태는 백윤정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매일 싸우기 바빴다.이기태는 결혼식이 끝날 때가 되자 뻔뻔스럽게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이기태 씨, 전에 제가 전화를 끊을 때 했던 말을 잊으신 거예요?”이기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려왔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그제야 기억난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진, 너!”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시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이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듣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제가 사랑하는 남자는 윤이건 씨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시언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힘겹게 한 마디 물었다.“제가 몇 년 더 빨리 나타났다면.”“그래도 결과는 똑같아요.”이진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진은 더 이상 시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건을 향해 걸어갔다.애초에 이진은 시우가 이 연회를 통해 정희와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진은 마침내 시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이진은 이건의 가슴에 기대어 말했다.“이건 씨, 저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해외여행?”이건은 원래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얼마 후 이진을 데리고 출국할 생각이었다.이진이 먼저 제기한 이상, 이건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이진을 껴안고 말했다.“그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이를 위해 이건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모든 일들 미뤘다. 하지만 이건의 원래 계획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YS그룹에는 이건이 직접 처리해야 될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진을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이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YS그룹의 고위층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쨌든 프로젝트는 끝내고 가야지.하지만 이건의 대답은 그저 한마디뿐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결혼식을 마친 후, 이건은 분명 이진과의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그러기에 앞으로 일에 전념하는 시간은 점점 적어질 게 뻔했다.옆에 있던 이진은 한쪽에 놓인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는 것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내가 너무 충동적인 건 아니겠지? 이건 씨는 날
이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남학생을 꼬드겼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데다가, 시우 씨의 동생인 건 아예 모르던 일이야. 도대체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이진은 화를 내며 이건을 노려보았다.“제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그래요. 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거든요.”“정말이야?”이건은 일부러 장난친 거다. 사실 메시지를 보고 불쾌한 기분이 조금 들었는데, 이진의 반응은 그를 매우 기쁘게 했다.이건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는 나밖에 없다는 거지?”‘그럼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네. 시우 이놈은 겁도 없네, 감히 내 아내더러 자기 사촌 동생을 위로해달라는 거야?’이건은 차갑게 웃으며 이진의 핸드폰을 가지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시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진 씨,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셨나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이 녀석이 술에 취해 밤새 이진 씨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또 뭐 했는데?”이건은 그의 말을 끊은 뒤 질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네 사촌 동생이 대단한 사랑꾼인가 봐.”‘윤이건?’전화 너머의 시우는 하마터면 심장이 터질 뻔했다.“이건아, 이진 씨 핸드폰이 왜 네 손에 있는 거야? 난.”“나랑 이진이가 부부인 걸 잊은 거야?”이건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럼 내 아내를 좋아하는 사람마다 직접 가서 위로해 줘야 되는 거야? 내가 동의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 이진이 정말 간다고 해도 네 동생이 괜찮아질 리는 없어.”마침 뭔가 생각난 이건은 잠시 망설이더니 협박하듯이 말했다.“술에서 깨면 네 동생한테 전해. 어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이건은 다른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들러붙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윤이건? 윤이건이 어떻게?’시언은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와 시우는 사촌 형제이기에, 이건과 시우가 친한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이건은 이미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설마.’시언은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건과 이진이 어떤 사이든, 이진이 이건을 얼마나 의지하든, 그는 자신이 이진을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시언은 몸 옆에 늘어진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그는 앞으로 나아가, 이건의 앞길을 막고 환한 미소를 선보였다.“윤 대표님, 전 민시언입니다. 시우 형의 사촌 동생이에요. 시우 형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너무 영광입니다. 혹시 이진 씨랑은.”“이건 씨, 나 돌아가고 싶어요.”시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진은 취기를 못 이겨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이건의 차가운 표정은 순식간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이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숙여 이진을 안았다. 그리고 시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진을 조수석에 태웠다. 세심하게 안전벨트를 맨 후 무심코 뒤쪽을 스쳐보자, 시언은 방금 자세를 유지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이건 씨, 얼른 돌아가요.”이진은 아직도 이건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이건은 시선을 돌려 이진의 희고 정교한 얼굴을 보자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결혼식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반드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해 줄게.’이건이 직접 이진을 데려간 것을 목격한 시언은, 정신을 잃은 듯이 축 처진 채로 시우의 아파트를 찾았다. “민시언?”시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언을 보자 조금 놀란 듯했다.“네가 이곳엔 왜 온 거야?”시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형, 술 한잔하실 래요?”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술 한잔하는 것쯤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하지만 시우는 정희와 함께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최근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시언의 상
하룻밤 푹 자고 난 뒤, 다음날 아침 이진은 호텔에서 출발해 학교로 갔다.서현도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을 무척 중시하였다. 그녀는 이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수업을 오후로 미뤘다.카페에 앉은 서현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제가 오만해 보이긴 해도, 평범한 작가들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거든요. 제가 쓴 시나리오를 대중들에게 알려, 널리 선보이는 게 제 꿈이에요.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에는 저만의 요구가 있기에,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서현의 요구는 별로 지나치진 않았다. 그저 세훈이 제기했던 요구처럼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이 방면의 문제는 서현이 말하지 않아도 이진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이진이 바로 동의하자 서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전에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서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너무 지나친 행동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이진 씨처럼 훌륭하신 분을 놓치게 되었을 지도 몰라.’ 세부사항을 토론한 후, 이진은 세훈과 서현을 데리고 원작자를 찾아가 판권을 따냈다.그 후 배우의 캐스팅으로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는 물론, 배우들 사이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몇 달 후, 영화는 이건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상영되었다.의 원작 팬이 워낙 많았고, 호기심으로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 모두 영화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개봉 첫날, 전국의 영화관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심지어 대부분 영화관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예정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상영하였다.개봉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는 수십 년간 1위를 차지했던 영화를 뛰어넘기도 했다.이 영화의 촬영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그들은 마치 다크호스처럼 갑자기 대중들의 시선 속에 나
이진은 말을 마친 후 정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떠났다.“이진아, 넌 저분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한참을 걸은 뒤 정희가 호기심에 물었다.이진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현이 딱 봐도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작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모욕을 당하면서 저 여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정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내가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그냥 이서현 말고 다른 작가 소개해 줄까?”“아직은 필요 없어.”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아마 날 거절하지 않을 거야.”이진이 거절한 이상 정희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정희가 포기한 채 택시를 잡으려던 찰나, 앞에서 엄청난 비주얼을 가진 키 큰 남학생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예쁜 누나들,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두 사람을 향해 한 말이지만, 남학생은 줄곧 이진을 훔쳐보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학생, 지금 대시하는 거예요?”생각이 들통난 남학생은 부인하기는커녕 겸연쩍은 듯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누나들은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두 사람 연락처를 모두 받아 가시려는 거예요?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정희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장난을 쳤다.그러자 남학생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용기를 내어 이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누나, 전화번호 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로 귀찮게 굴진 않을 게요!”‘지금 충분히 귀찮은 것 같은데.’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깔끔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네요.”난생처음 대시를 시도해 본 남학생은, 자신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남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옆에 있던 정희는 차마 이대로 지나치기 힘들어, 가방에서 이진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남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연락처는
이진은 자신의 가장 진실된 생각을 전한 것은 물론, 판권을 반드시 따내려는 결심으로 원작자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원작자는 그녀에게 한 번 만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진은 이번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전에 조사한 자료들을 들고 사람을 찾으러 대학으로 향했다.그녀 스스로 배역을 연구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이진은 전문적인 작가를 찾아야 했다. 현재 대학교 교수인 이서현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출발하기 전에 이진은 특별히 학교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서현의 수업시간표를 찾았다. 그리고 교장에게 부탁하여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이진의 신분을 알게 된 교장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했다.한편 이 일을 알게 된 정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애초에 이진이 연예계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경제 뉴스밖에 안 보던 이진이 정말 영화를 찍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진심이었던 거야? 왜 갑자기 영화를 찍으려는 거지?’정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 네가 의 판권을 따내 영화로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이야?”“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비행기 탑승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지금.”“너 지금 공항이야?”눈치 빠른 정희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한가하던 정희는 이진을 따라 서현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우리 이진이가 갑자기 영화를 찍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정희는 결정을 내린 듯이 말했다.“이진아,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정희는 줄곧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방금 정희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착륙했다.이진은 택시를 타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사전에 알아보았던 수업시간표를 따라 강의실을 찾았다. 분명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시간
이진은 별장을 나선 뒤 홀로 국장의 집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여태껏 이진을 만나보고 싶어 하던 가정의도 국장의 집에 있었다.하지만 연이은 실패로 가정의도 이진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이진은 엄청 겸손한 데다가 이건의 아내다. 그녀가 어떤 신분이든 간에, 외부에 자신의 실력을 알릴 생각이 없다면, 가정의도 더 이상 묻진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은 후, 국장의 건강에 대해 자세히 토론하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국장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때때로 몇 마디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이진은 경계심을 내려놓고 많은 의견을 제기하였다. 국장은 모든 의견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모두 이진 씨 덕분이에요. 이진 씨가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가 고질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했을 거예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국장님,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이진은 국장의 말을 얼른 끊은 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게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분이시니, 제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전엔 제가 생각이 짧은 데다가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줄곧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너무 탓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탓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나한테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고마워하기도 모자랄 판에 탓할 리가 있겠어?’마을의 개발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이진도 마찬가지로 세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이 대표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워낙 조건이 후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진심 어린 이야기를 마친 후, 세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저한테 특별한 요구가 하나 있는데, 이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어떤 요구죠?”이진은 호기심에 눈썹을 찡긋거렸다.세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께서 절 좋게 봐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가 방영되었을 때 괜한 추측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방
오 감독은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진에게 사과하기로 한 것이다.이진은 전에 말했던 대로 마음에 들었던 감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마저 몇 개 없는 신인 감독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감독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처럼 유명한 감독을 마다하고 신인 감독과 합작한다는 거야? 내가 그동안 받은 상이 얼마인데! 이진 그년은 분명 사람 보는 눈이 삐뚤어진 거야! 신인 감독 주제에 얼마나 잘 찍을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오 감독은 불만이 가득했으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진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모두 이진이 예상했던 대로다. 전화를 받은 순간, 이진은 만만에게 눈빛을 보내 모 플랫폼에서 생방송을 시작했다.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오 감독은, 애써 웃으며 이진의 용서를 구하는 척했다.“이진 씨, 전엔 제가 너무 무례한 행동을 보였던 것 같네요. 의 촬영을 양세훈한테 맡길 생각인 거죠? 제가 양 감독을 소개해 줄 테니, 실시간 검색어의 글들을 내려 주시면.”“글을 내려달라고요?”이진은 오 감독이 뜻밖의 비장 카드라도 쥐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이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말 같지 않은 조건으로 나와 협상하려는 거야?’이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비웃고는 비꼬듯이 입을 열었다.“오 감독님, 본인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잊으신 거예요? 지금 저한테 조건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제가 양세훈 감독님을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제 방식대로 촬영에 참여하도록 설득시킬 것이니, 당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넘어가지 그래?”오 감독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모욕을 당했기에, 이대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위선적인 모습을 집어치우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굽신거려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윤이건 덕분이라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마 윤 대표한테 들러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