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안의 모든 인테리어는 변함이 없지만, 나는 다시는 예전의 따스함과 평온함을 느낄 수 없었고 차가운 공기만 남아 있었다.이 ‘집’은 나의 피난처였고, 20년 동안 떠돌아다녔던 내가 안착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일 줄 알았는데, 지금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이 되었다.내가 불치병 진단을 받은 순간부터 집안의 분위기가 완전히 변해 버렸고 웃음소리가 냉담함과 소외감으로 대체되어 나는 이 집의 외부인이 된 것 같았다.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지금 이 집에서 내가 기절해도 그들이 별도의 돈을 써서 나를 병원에 보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나의 가치는 그 가혹한 진단서와 함께 사라진 지 오래인 것 같다.남편의 야유 섞인 목소리가 거실에서 들려왔다.“어머, 깼어? 나는 네가 며칠 동안 잠만 자는 줄 알았어.”주원은 나를 관심하기는커녕 비꼬기만 했다. 예전 같으면 미지근한 물을 떠다 주었을 텐데, 심지어 물 한 잔도 따라주지 않았다.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그의 말에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온기 없는 대화에 동참한 시어머니의 웃음소리가 귀에 거슬렸다.“마침 밥을 먹을 때 일어났구나. 너는 정말 일은 하지 않고 매일 먹을 시간만 기다리네?”아까부터 코끝까지 확 느껴지는 매콤함이 오늘 어떤 메뉴인지 알 수 있었다.내가 침실을 나서자, 밥상에 갖가지 매운 요리가 차려져 있는 것이 보였는데, 시어머니와 주원이 소리 없이 나를 도발하고 괴롭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나는 심호흡을 하고 몸살을 꾹 참으며 식탁으로 다가갔다.식탁에는 빨갛고 푸른 고추가 뒤엉킨 요리가 가득했고 내 운명을 비웃는 듯했다.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갑게 식탁 위의 요리를 바라보았다. 심리적인 작용인지 뭔지 속이 메스꺼워져서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두 사람의 만족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렸다.거실에서 남편이 쩝쩝 소리를 내며 먹고 있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그는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도를 지나쳤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한 듯 오히려
나는 희원의 집 앞에 서서 손가락으로 가볍게 초인종을 어루만지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이희원,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나 친해지게 된 이 여자가 지금 내 가정을 위협하는 인물이 되었고 내 목숨을 구할 돈까지 앗아갔어.’나는 심호흡을 하고 초인종을 눌렀다.문이 서서히 열리며 희원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그녀는 조금 놀라는 것 같았으나 곧 평정을 되찾았다. 나는 희원의 안색이 조금 어둡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희원은 나를 차갑게 바라보며 물었다.“여긴 왜 왔어?”그녀의 반응을 보니, 이미 내가 왜 왔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예전의 가까웠던 관계는 더 이상 없었다.나는 희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확고한 말투로 말했다.“장주원이 너한테 준 1,000만 원 돌려받으러 왔어. 이 돈은 우리 부부의 공동 자산인데, 주원이 내 동의 없이 너에게 준 것은 불법이니까 네가 그 돈을 돌려줬으면 해.”내 말을 들은 희원은 비아냥거리며 웃기 시작했다.그녀는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고 침착하게 말하기 시작했다.“왜 불법 증여라고 확신하는데? 내가 주원이랑 계약했으니까 정당한 투자라고 할 수 있지. 네가 경찰에 신고해도 아무런 증거도 제공하지 못할 거야.”희원의 말은 내 마음속의 희망을 깨뜨렸고, 곧이어 계약서를 꺼내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서 희원은 주원에게 전화를 걸었다.내가 그 계약서를 읽어보자, 그 위에 명확하게 쓰여있었다.나는 너무 놀라 한참 동안 대답할 수 없었고 마음속으로는 돈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바로 그때, 주원이 갑자기 문 앞에 나타났는데, 그의 얼굴은 끔찍할 정도로 어두웠고 나를 보는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라 나에게 달려들어 뺨을 두 대 때렸다.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귀가 울려 통증과 굴욕이 뒤엉켜 거의 쓰러질 뻔했다.비틀거리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지만, 눈물이 핑 돌았다.내가 사랑했던 이 남자가 지금 이렇게 나를 대하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절망한 표정으로 주원을 바라보았다. “네가 어떻게 이
나는 무의식적으로 웃기 시작했다.남편과 시어머니는 충격적인 소식에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그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얼음처럼 굳어 숨 쉬는 것조차 선명하게 느껴졌다.창밖으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빛도 온기를 잃어가는 듯했다.두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시간은 그 순간에 멈춰버린 듯했다.주원이 가장 먼저 침묵을 깼다. 그는 갑자기 앞으로 뛰어와 내 손에서 휴대전화를 빼앗아 의사에게 소리를 질렀다.“일 처리를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겁니까? 이렇게 중요한 일을 어떻게 잘못 처리할 수 있어요! 아니면 이 결과도 틀린 건가요? 그럴 리가 없는데?”주원의 목소리에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고 크게 뜬 두 눈에 핏기가 서려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절망감을 모두 쏟아내는 것 같았다.병원 직원들은 전화기 너머로 연신 사과하면서 동정 어린 목소리로 주원이 빨리 입원해 치료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주원의 안색은 분노와 절망 사이에서 빠르게 변했고 손을 떨며 주머니에서 은행 카드를 꺼냈다. 하마터면 제대로 잡지 못해 땅에 떨어뜨릴 뻔했다. 모든 행동이 자신의 병세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말이다.입으로 ‘이럴 수가', '말도 안 돼'를 반복하는 주원의 눈빛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현실 도피로 가득했다.그 해프닝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전에 느낄 수 없었던 편안함과 안도감을 느꼈다.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나의 미소는 운명이 사람을 농락하는 것에 대한 비웃음이며 자신이 마침내 이런 상황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이었다.나는 심지어 주원에게 그가 희원에게 아낌없이 투자한 돈이 그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주원의 안색이 더 안 좋아지더니 희원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의 오진과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다년간의 감정'을 빌미로 돈을 돌려달라고 애원하면서 협박하는 말투로 말했다.“안 돼요, 오빠, 돈 다 넣어서 제 손에 없어요.”전화를 받은 희원은 웃으며 애교를 부리는 등 갖가지 이유를 대며 돈을 투자해 당분간 돈을 돌려
“이 팜므파탈 같은 여자 같으니라고! 내 아들이지만, 네 남편이잖아! 네 남편이 위암 말기 진단을 받았는데, 아무렇지 않아? 집을 파는 거 왜 동의하지 않는 건데? 이 집 너 혼자 산 거 아니잖아!”그러자 시어머니가 나를 손가락질 하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나는 차갑게 웃으며 비웃는 눈으로 시어머니를 바라보았다.“네? 상관없어요. 제가 산 게 아니라도 제 서명 없이는 못 팔거든요. 능력이 있으면 내연녀를 찾아가 돈을 달라고 하라고 하세요. 왜 아내인 저를 괴롭히세요?”“‘오랜 시간’의 정이 있지 않나요? 그까짓 거 못 도와줄까요?”그렇게 말하고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시어머니를 뒤에 남겨둔 채 가려고 했다.“너! 너 정말 너무 하네!”텅 빈 거실에 울려 퍼지는 시어머니의 목소리에 손가락을 떨었지만, 대꾸할 자격이 없었다.나는 침실로 돌아와 문을 닫고 모든 소음을 차단했다.곧이어 시어머니가 화를 내며 문을 열고 들어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내가 먼저 나섰다.“남편은요?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죠? 밖에서 죽은 거 아니에요?”나는 일부러 도발적으로 고개를 들고 물었다.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된 시어머니는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아들의 병이 다 나으면 그때 다시 얘기해!”말을 마친 시어머니는 가방을 들고 문을 세게 닫고 나가버렸다.시어머니가 남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금고의 돈을 사용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시어머니는 돈이 있었지만 내 병을 고치는데 돈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는 사실에 나는 내가 이 집의 ‘외부인’이라고 단정 짓게 되었다.저녁 무렵 시어머니가 보낸 메시지가 방의 정적을 깨뜨렸다.[너 집에 있니? 밥 좀 해, 밖에 음식은 비싸고 맛없어.]나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띠며 답장했다.[네, 어머니, 준비할게요.]나는 주방에서 정성껏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준비했는데, 그것은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시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와 식탁 위의 새빨간 음식을 보고 얼굴이 새
“웃기네요, 그때 네가 고아라는 걸 동정하지 않았다면 누가 너랑 결혼하고 싶겠어? 그때의 동정이 지금 배은망덕한 놈을 키워냈구나!”시어머니의 목소리에는 분한 감정이 가득했다.이유 없는 비난과 모욕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가슴속의 억울함은 홍수처럼 쏟아졌다.나는 벌떡 일어나 물컵을 들고 시어머니의 얼굴에 뿌렸다.물방울이 사방으로 튀면서 공기 중에는 형언할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나는 죽어도 되고? 당신 아들은 살아야 해? 네가 뭔데 나를 그렇게 말하는데!”내 목소리는 분노로 떨렸지만, 한 글자 한 글자가 또렷하고 힘이 있었다.“요 몇 년 동안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내가 처리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어요? 매일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까지 힘들게 일하는데, 당신 아들은요?”“그 사람은 집안일도 대충 했는데 집안일 말고 뭘 했어요? 말로만 저를 기쁘게 할 뿐인데, 무슨 자격으로 저를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하세요?”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놀란 시어머니는 손으로 얼굴의 물을 닦으며 놀란 듯이 날 바라보았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강경한 태도를 버리지 않고 더 큰 목소리로 나를 억누르려 했다.하지만 나는 이미 시어머니의 생떼에 질렸다.나는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가 시어머니를 문밖으로 내쫓고 문밖에서 울부짖도록 내버려두었다.이웃들이 시어머니의 울음소리를 듣고 걱정하자, 그녀는 기회를 만났다는 듯이 나를 더욱 강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다들 와서 보세요. 제 며느리가 저를 집에서 쫓아냈어요!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그녀는 울면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전에 나와 내 아들이 이 여자를 좋은 마음에 받아들였는데, 우리 집에 와서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그러나 시어머니는 내가 오랫동안 이웃에게서 좋은 평판을 얻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이웃들이 나서서 시어머니의 생떼를 비난하며 할 말이 있으면 말하라고 나를 달래주었다.“아줌마, 수진이 평소에 다른 사람을 얼마나 잘 생각해 주는지 아는데요? 부지런하고 착한 좋은 며느리예
나는 짐을 싸서 억압과 분쟁으로 얼룩진 그 ‘집'을 떠날 준비를 했다.집을 나서려는 순간 뒤를 돌아보니 햇빛이 거실 커튼 사이로 내 얼굴에 쏟아지는 것이 마치 자연이 나에게 주는 부드러운 격려 같았다.나는 깊은숨을 들이마시면서 알 수 없는 삶에 대한 두근거림을 느꼈고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에 결연히 문을 닫았다.새집은 비록 조금 작았지만 나에게 전에 없던 평온과 자유를 주었고 나는 일부러 더 따뜻하고 질서 있게 배치했다.벽에는 내가 그린 그림이 걸려 있는데, 그 그림이 내 마음을 위로해 줘서 내가 힘들 때마다 힘을 얻게 한다.창턱에는 화분이 여러 개 놓여 있는데, 그 화분들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가장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만의 빛을 발할 수 있음을 알려줬다.나는 부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야만 진정으로 나를 위해 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그리고 새로운 직업을 찾아 일하기 시작했다.확진 판정으로 포기해야 했던 일을 오진되면서 급히 쫓아가게 됐다.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는 등 한 걸음 한 걸음 도전했고 오랜만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결국 나는 새 직장을 얻는 데 성공했고, 예전만큼 빛나진 않을지 몰라도 내가 독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성장 무대를 마련해 주었다.이 과정에서 남편과의 연락도 조용히 회복됐다.그러나 그 연결고리는 주원에 대한 나의 연민이나 옛정이 되살아난 것이 아니라, 보다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고려에서 비롯되었다.나는 우리 사이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려면 먼저 충분한 증거와 발언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나는 희원을 고소했다는 핑계로 내연녀에게 그동안의 지출 내역을 털어놓도록 교묘하게 유도하고 상세한 명세서를 제출하게 했다.나는 그 명세서를 보자 속이 메스꺼웠고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호텔 돈만 해도 만만치 않은 지출이었는데, 다른 거액의 지출은 말할 것도 없었으며예전의 모든 부부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틈만 나면 이희원이랑 놀고, 먹었구나.’내가 여행을 갔을 때, 휴가를 냈을 때
“야, 어떻게 됐어? 돈 문제는 해결할 수 있어?”주원의 목소리는 무척 어두웠고 초조함으로 가득했다.나는 담담하게 대꾸했다.“아직 절차를 밟고 있어 서두를 수 없어.”나는 일부러 가벼운 말투로 얘기하면서 주원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이따금 전화기 너머로 시어머니와 다투는 소리가 들렸고, 시어머니의 꾸지람에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두 사람이 싸우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는데도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다 네 탓이야, 그때 너 이사 가는 거 막아야 했는데!”시어머니의 질책이 들려왔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속으로 대꾸했다.‘어머니, 마음대로 얘기하세요. 어차피 안 들리니까.’희원도 참지 못했는지, 끝내 나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왜 그러는데? 왜 그 쓰레기 남자를 도와 돈을 요구하는 거냐고!”그녀의 목소리에는 의문과 분노가 가득했다.나는 가볍게 웃으며 희원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이희원, 사랑과 돈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해?”나는 일부러 애매모호한 질문을 던져 그녀 스스로 생각하게 했다.“당연히 돈이지, 내가 정말 네 남편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 구절도 녹음해서 앞으로의 증거로 남겼다.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원의 몸 상태가 나빠지자, 빈번하게 나를 부르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병원으로 불렀다.나는 그의 병상 앞에 서서, 한때는 익숙했지만, 지금은 낯설고 여윈 그 얼굴을 바라보고 마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여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내가 정말 잘못했어.”눈물을 흘리던 주원이 갑자기 나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기 시작했다.나는 차갑게 그를 바라보았고 이것은 그저 주원이 죽기 전 후회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장주원, 우리는 이제 돌아갈 수 없어. 당신이 나에게 준 상처를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말을 마친 나는 주원이 나를 잡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남편이 숨을 거두던 날, 시어머니는 완전히 무너졌다.유일하게 의지할 곳을 잃고 나도 찾지
“여보, 내일 입원할 건데 돈은 다 준비됐어?”내일이 입원이라서 나는 옆에서 기분 추스르고 주방에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남편은 과일 한 접시를 들고 나와서 아무렇지 않은 듯 혼자 먹기 시작했다.“무슨 돈? 돈 남한테 다 줬는데?”나는 결혼한 후로 그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희원한테 줬어.”남편은 나의 경악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앉아서 과일을 계속 먹었다.그 이름을 듣고 나는 많이 놀랐다.‘그게 내 목숨을 구하는 돈인데, 어떻게 이희원에게 준 거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나의 추궁에 남편은 어쩔 수 없이 사실을 말했다.“가게 차려줬어, 투자야, 너 투자라고 못 들어봤어?”요즘 몸이 아파 심리적 압박감이 상당했는데, 남편의 말을 듣고 내 생명의 마지막 희망도 없어지는 것 같았다.그래서 나는 남편을 때리고 과일 그릇까지 뒤집어엎었다.“장주원! 그게 내 생명을 구할 돈인데, 네가 감히!”“미친년! 희원이 가게 차릴 돈이 필요한데, 돈 좀 주는 게 뭐 어때서?”“너 위암 말기인데 나을 수 없어! 곧 죽을 사람이 산 사람과 뭘 뺏어! 나랑 엄마 돈이랑 사람 다 잃게 하면 안 되잖아!”땅바닥에 주저앉은 나는 남편의 이렇게 낯선 모습은 처음이었다.전에, 주원이 나에게 이렇게 한 적이 없었다.우리는 대학에서 만나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내고 순조롭게 결혼식까지 하게 되었는데, 주원은 내가 고아인 것을 개의치 않았고, 심지어 몇 년 동안 스스로 분투한 것을 안타까워했다.친구나 동기들은 주원을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결혼한 후 몇 년 동안 주원은 나를 잘 챙겼고 이렇게 심하게 다툰 적이 없었다.얼마 전 정기 건강검진에서 위암 진단을 받은 후로 갑자기 태도가 바뀌더니 4,000만 원을 다른 사람에게 줘서 가게를 여는 것을 도와주기도 했다.지난 몇 년간 함께 한 주원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좋은 사람의 탈을 쓰고 지냈는지 의심이 들게 했다.주원은 내가 멍해 있자, 말
“야, 어떻게 됐어? 돈 문제는 해결할 수 있어?”주원의 목소리는 무척 어두웠고 초조함으로 가득했다.나는 담담하게 대꾸했다.“아직 절차를 밟고 있어 서두를 수 없어.”나는 일부러 가벼운 말투로 얘기하면서 주원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이따금 전화기 너머로 시어머니와 다투는 소리가 들렸고, 시어머니의 꾸지람에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두 사람이 싸우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는데도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다 네 탓이야, 그때 너 이사 가는 거 막아야 했는데!”시어머니의 질책이 들려왔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속으로 대꾸했다.‘어머니, 마음대로 얘기하세요. 어차피 안 들리니까.’희원도 참지 못했는지, 끝내 나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왜 그러는데? 왜 그 쓰레기 남자를 도와 돈을 요구하는 거냐고!”그녀의 목소리에는 의문과 분노가 가득했다.나는 가볍게 웃으며 희원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이희원, 사랑과 돈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해?”나는 일부러 애매모호한 질문을 던져 그녀 스스로 생각하게 했다.“당연히 돈이지, 내가 정말 네 남편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 구절도 녹음해서 앞으로의 증거로 남겼다.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원의 몸 상태가 나빠지자, 빈번하게 나를 부르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병원으로 불렀다.나는 그의 병상 앞에 서서, 한때는 익숙했지만, 지금은 낯설고 여윈 그 얼굴을 바라보고 마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여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내가 정말 잘못했어.”눈물을 흘리던 주원이 갑자기 나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기 시작했다.나는 차갑게 그를 바라보았고 이것은 그저 주원이 죽기 전 후회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장주원, 우리는 이제 돌아갈 수 없어. 당신이 나에게 준 상처를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말을 마친 나는 주원이 나를 잡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남편이 숨을 거두던 날, 시어머니는 완전히 무너졌다.유일하게 의지할 곳을 잃고 나도 찾지
나는 짐을 싸서 억압과 분쟁으로 얼룩진 그 ‘집'을 떠날 준비를 했다.집을 나서려는 순간 뒤를 돌아보니 햇빛이 거실 커튼 사이로 내 얼굴에 쏟아지는 것이 마치 자연이 나에게 주는 부드러운 격려 같았다.나는 깊은숨을 들이마시면서 알 수 없는 삶에 대한 두근거림을 느꼈고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에 결연히 문을 닫았다.새집은 비록 조금 작았지만 나에게 전에 없던 평온과 자유를 주었고 나는 일부러 더 따뜻하고 질서 있게 배치했다.벽에는 내가 그린 그림이 걸려 있는데, 그 그림이 내 마음을 위로해 줘서 내가 힘들 때마다 힘을 얻게 한다.창턱에는 화분이 여러 개 놓여 있는데, 그 화분들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가장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만의 빛을 발할 수 있음을 알려줬다.나는 부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야만 진정으로 나를 위해 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그리고 새로운 직업을 찾아 일하기 시작했다.확진 판정으로 포기해야 했던 일을 오진되면서 급히 쫓아가게 됐다.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는 등 한 걸음 한 걸음 도전했고 오랜만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결국 나는 새 직장을 얻는 데 성공했고, 예전만큼 빛나진 않을지 몰라도 내가 독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성장 무대를 마련해 주었다.이 과정에서 남편과의 연락도 조용히 회복됐다.그러나 그 연결고리는 주원에 대한 나의 연민이나 옛정이 되살아난 것이 아니라, 보다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고려에서 비롯되었다.나는 우리 사이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려면 먼저 충분한 증거와 발언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나는 희원을 고소했다는 핑계로 내연녀에게 그동안의 지출 내역을 털어놓도록 교묘하게 유도하고 상세한 명세서를 제출하게 했다.나는 그 명세서를 보자 속이 메스꺼웠고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호텔 돈만 해도 만만치 않은 지출이었는데, 다른 거액의 지출은 말할 것도 없었으며예전의 모든 부부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틈만 나면 이희원이랑 놀고, 먹었구나.’내가 여행을 갔을 때, 휴가를 냈을 때
“웃기네요, 그때 네가 고아라는 걸 동정하지 않았다면 누가 너랑 결혼하고 싶겠어? 그때의 동정이 지금 배은망덕한 놈을 키워냈구나!”시어머니의 목소리에는 분한 감정이 가득했다.이유 없는 비난과 모욕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가슴속의 억울함은 홍수처럼 쏟아졌다.나는 벌떡 일어나 물컵을 들고 시어머니의 얼굴에 뿌렸다.물방울이 사방으로 튀면서 공기 중에는 형언할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나는 죽어도 되고? 당신 아들은 살아야 해? 네가 뭔데 나를 그렇게 말하는데!”내 목소리는 분노로 떨렸지만, 한 글자 한 글자가 또렷하고 힘이 있었다.“요 몇 년 동안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내가 처리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어요? 매일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까지 힘들게 일하는데, 당신 아들은요?”“그 사람은 집안일도 대충 했는데 집안일 말고 뭘 했어요? 말로만 저를 기쁘게 할 뿐인데, 무슨 자격으로 저를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하세요?”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놀란 시어머니는 손으로 얼굴의 물을 닦으며 놀란 듯이 날 바라보았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강경한 태도를 버리지 않고 더 큰 목소리로 나를 억누르려 했다.하지만 나는 이미 시어머니의 생떼에 질렸다.나는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가 시어머니를 문밖으로 내쫓고 문밖에서 울부짖도록 내버려두었다.이웃들이 시어머니의 울음소리를 듣고 걱정하자, 그녀는 기회를 만났다는 듯이 나를 더욱 강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다들 와서 보세요. 제 며느리가 저를 집에서 쫓아냈어요!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그녀는 울면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전에 나와 내 아들이 이 여자를 좋은 마음에 받아들였는데, 우리 집에 와서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그러나 시어머니는 내가 오랫동안 이웃에게서 좋은 평판을 얻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이웃들이 나서서 시어머니의 생떼를 비난하며 할 말이 있으면 말하라고 나를 달래주었다.“아줌마, 수진이 평소에 다른 사람을 얼마나 잘 생각해 주는지 아는데요? 부지런하고 착한 좋은 며느리예
“이 팜므파탈 같은 여자 같으니라고! 내 아들이지만, 네 남편이잖아! 네 남편이 위암 말기 진단을 받았는데, 아무렇지 않아? 집을 파는 거 왜 동의하지 않는 건데? 이 집 너 혼자 산 거 아니잖아!”그러자 시어머니가 나를 손가락질 하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나는 차갑게 웃으며 비웃는 눈으로 시어머니를 바라보았다.“네? 상관없어요. 제가 산 게 아니라도 제 서명 없이는 못 팔거든요. 능력이 있으면 내연녀를 찾아가 돈을 달라고 하라고 하세요. 왜 아내인 저를 괴롭히세요?”“‘오랜 시간’의 정이 있지 않나요? 그까짓 거 못 도와줄까요?”그렇게 말하고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시어머니를 뒤에 남겨둔 채 가려고 했다.“너! 너 정말 너무 하네!”텅 빈 거실에 울려 퍼지는 시어머니의 목소리에 손가락을 떨었지만, 대꾸할 자격이 없었다.나는 침실로 돌아와 문을 닫고 모든 소음을 차단했다.곧이어 시어머니가 화를 내며 문을 열고 들어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내가 먼저 나섰다.“남편은요?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죠? 밖에서 죽은 거 아니에요?”나는 일부러 도발적으로 고개를 들고 물었다.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된 시어머니는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아들의 병이 다 나으면 그때 다시 얘기해!”말을 마친 시어머니는 가방을 들고 문을 세게 닫고 나가버렸다.시어머니가 남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금고의 돈을 사용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시어머니는 돈이 있었지만 내 병을 고치는데 돈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는 사실에 나는 내가 이 집의 ‘외부인’이라고 단정 짓게 되었다.저녁 무렵 시어머니가 보낸 메시지가 방의 정적을 깨뜨렸다.[너 집에 있니? 밥 좀 해, 밖에 음식은 비싸고 맛없어.]나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띠며 답장했다.[네, 어머니, 준비할게요.]나는 주방에서 정성껏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준비했는데, 그것은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시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와 식탁 위의 새빨간 음식을 보고 얼굴이 새
나는 무의식적으로 웃기 시작했다.남편과 시어머니는 충격적인 소식에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그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얼음처럼 굳어 숨 쉬는 것조차 선명하게 느껴졌다.창밖으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빛도 온기를 잃어가는 듯했다.두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시간은 그 순간에 멈춰버린 듯했다.주원이 가장 먼저 침묵을 깼다. 그는 갑자기 앞으로 뛰어와 내 손에서 휴대전화를 빼앗아 의사에게 소리를 질렀다.“일 처리를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겁니까? 이렇게 중요한 일을 어떻게 잘못 처리할 수 있어요! 아니면 이 결과도 틀린 건가요? 그럴 리가 없는데?”주원의 목소리에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고 크게 뜬 두 눈에 핏기가 서려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절망감을 모두 쏟아내는 것 같았다.병원 직원들은 전화기 너머로 연신 사과하면서 동정 어린 목소리로 주원이 빨리 입원해 치료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주원의 안색은 분노와 절망 사이에서 빠르게 변했고 손을 떨며 주머니에서 은행 카드를 꺼냈다. 하마터면 제대로 잡지 못해 땅에 떨어뜨릴 뻔했다. 모든 행동이 자신의 병세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말이다.입으로 ‘이럴 수가', '말도 안 돼'를 반복하는 주원의 눈빛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현실 도피로 가득했다.그 해프닝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전에 느낄 수 없었던 편안함과 안도감을 느꼈다.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나의 미소는 운명이 사람을 농락하는 것에 대한 비웃음이며 자신이 마침내 이런 상황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이었다.나는 심지어 주원에게 그가 희원에게 아낌없이 투자한 돈이 그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주원의 안색이 더 안 좋아지더니 희원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의 오진과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다년간의 감정'을 빌미로 돈을 돌려달라고 애원하면서 협박하는 말투로 말했다.“안 돼요, 오빠, 돈 다 넣어서 제 손에 없어요.”전화를 받은 희원은 웃으며 애교를 부리는 등 갖가지 이유를 대며 돈을 투자해 당분간 돈을 돌려
나는 희원의 집 앞에 서서 손가락으로 가볍게 초인종을 어루만지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이희원,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나 친해지게 된 이 여자가 지금 내 가정을 위협하는 인물이 되었고 내 목숨을 구할 돈까지 앗아갔어.’나는 심호흡을 하고 초인종을 눌렀다.문이 서서히 열리며 희원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그녀는 조금 놀라는 것 같았으나 곧 평정을 되찾았다. 나는 희원의 안색이 조금 어둡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희원은 나를 차갑게 바라보며 물었다.“여긴 왜 왔어?”그녀의 반응을 보니, 이미 내가 왜 왔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예전의 가까웠던 관계는 더 이상 없었다.나는 희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확고한 말투로 말했다.“장주원이 너한테 준 1,000만 원 돌려받으러 왔어. 이 돈은 우리 부부의 공동 자산인데, 주원이 내 동의 없이 너에게 준 것은 불법이니까 네가 그 돈을 돌려줬으면 해.”내 말을 들은 희원은 비아냥거리며 웃기 시작했다.그녀는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고 침착하게 말하기 시작했다.“왜 불법 증여라고 확신하는데? 내가 주원이랑 계약했으니까 정당한 투자라고 할 수 있지. 네가 경찰에 신고해도 아무런 증거도 제공하지 못할 거야.”희원의 말은 내 마음속의 희망을 깨뜨렸고, 곧이어 계약서를 꺼내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서 희원은 주원에게 전화를 걸었다.내가 그 계약서를 읽어보자, 그 위에 명확하게 쓰여있었다.나는 너무 놀라 한참 동안 대답할 수 없었고 마음속으로는 돈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바로 그때, 주원이 갑자기 문 앞에 나타났는데, 그의 얼굴은 끔찍할 정도로 어두웠고 나를 보는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라 나에게 달려들어 뺨을 두 대 때렸다.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귀가 울려 통증과 굴욕이 뒤엉켜 거의 쓰러질 뻔했다.비틀거리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지만, 눈물이 핑 돌았다.내가 사랑했던 이 남자가 지금 이렇게 나를 대하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절망한 표정으로 주원을 바라보았다. “네가 어떻게 이
방안의 모든 인테리어는 변함이 없지만, 나는 다시는 예전의 따스함과 평온함을 느낄 수 없었고 차가운 공기만 남아 있었다.이 ‘집’은 나의 피난처였고, 20년 동안 떠돌아다녔던 내가 안착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일 줄 알았는데, 지금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이 되었다.내가 불치병 진단을 받은 순간부터 집안의 분위기가 완전히 변해 버렸고 웃음소리가 냉담함과 소외감으로 대체되어 나는 이 집의 외부인이 된 것 같았다.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지금 이 집에서 내가 기절해도 그들이 별도의 돈을 써서 나를 병원에 보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나의 가치는 그 가혹한 진단서와 함께 사라진 지 오래인 것 같다.남편의 야유 섞인 목소리가 거실에서 들려왔다.“어머, 깼어? 나는 네가 며칠 동안 잠만 자는 줄 알았어.”주원은 나를 관심하기는커녕 비꼬기만 했다. 예전 같으면 미지근한 물을 떠다 주었을 텐데, 심지어 물 한 잔도 따라주지 않았다.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그의 말에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온기 없는 대화에 동참한 시어머니의 웃음소리가 귀에 거슬렸다.“마침 밥을 먹을 때 일어났구나. 너는 정말 일은 하지 않고 매일 먹을 시간만 기다리네?”아까부터 코끝까지 확 느껴지는 매콤함이 오늘 어떤 메뉴인지 알 수 있었다.내가 침실을 나서자, 밥상에 갖가지 매운 요리가 차려져 있는 것이 보였는데, 시어머니와 주원이 소리 없이 나를 도발하고 괴롭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나는 심호흡을 하고 몸살을 꾹 참으며 식탁으로 다가갔다.식탁에는 빨갛고 푸른 고추가 뒤엉킨 요리가 가득했고 내 운명을 비웃는 듯했다.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갑게 식탁 위의 요리를 바라보았다. 심리적인 작용인지 뭔지 속이 메스꺼워져서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두 사람의 만족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렸다.거실에서 남편이 쩝쩝 소리를 내며 먹고 있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그는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도를 지나쳤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한 듯 오히려
나는 자기적으로 진정할 수 있도록 조절했는데, 문득 내가 혼수로 받은 금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고 다시 일어설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너무 흥분했다고 잠시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의 말도 일리가 없지 않다고 얘기했다.여러 번의 대화 끝에 두 사람은 내 표정을 믿은 것 같았고 고아인 나도 이제 그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나는 침실 침대에 앉아 조용히 방을 훑으며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주원이 오후에 외출한다고 했다.주원이 집을 나서는 순간, 이번이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라는 느낌이 왔다.나는 재빨리 조용하게 방 안을 뒤졌는데, 너무 긴장해서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그런데 액세서리를 넣어뒀던 함을 찾았을 때 문 앞에 불쑥 시어머니가 나타났고 그녀의 눈에는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여기서 뭐 하는 거야?”그녀의 목소리는 날카롭고 귀에 거슬려 마치 날카로운 칼날로 내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았다.나는 머리를 빠르게 움직여서 손에 들고 있던 함을 방구석의 쓰레기통에 재빨리 집어던지고는 침착한 척 쓰레기 봉지를 집어 들었다.“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쓰레기통이 가득 차서 버리려고요. 어머니 평소에 주원이 고생한다고 했잖아요? 제가 아직 병이 덜 악화했을 때 좀 도와주려고요.”“어쨌든 앞으로 주원이랑 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면서 병 치료해야 하니까요.”시어머니는 의심스러운 듯이 나를 바라보았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어 발길을 돌렸다.나는 이 기회를 타 방에서 탈출했는데, 이 액세서리들을 돈으로 바꾸면 적어도 나를 위해 조그마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금은방에 가서, 나는 희망을 품고 액세서리를 점원에게 건넸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이 액세서리의 겉면이 금으로 싸져 있고 속은 은이라는 것이다. 내 마음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가라앉았고, 모든 희망은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분명히 내가 직접 산 건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모양
주원과 희원은 진작부터 묘한 기류가 있었는데, 지금 내가 불치병을 진단받았으니, 주원이 더 이상 연기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몸에 소름이 쫙 끼쳤는데, 시어머니가 안방에서 나와 곁눈질로 나를 보았다.“이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내 아들이 고생하는데, 그동안 넌 뭘 한 게 있어? 지금 또 돈 잔뜩 써서 병을 치료하게 생겼으니, 죽어도 싸!”“어머니, 제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잊으신 건 아니죠? 이 집 계약금 제가 절반 냈어요!”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너무 황당한 나머지 헛웃음이 나왔다.“제가 그동안 얼마나 노력했어요? 왜 아들한테는 뭘 노력했는지 물어보지 않으시는 거죠? 어머니 아들이 이희원이랑 어떤 관계인지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어요.”“어머니 아들 실업한 뒤에 매일 집에서 청소만 했어요! 남자가 이런 일까지 제 도움을 받아야 하나요? 이까짓 거 하는 게 도대체 뭐가 힘들었을까요? 저는 출근 안 하나요? 제가 받는 쥐꼬리만큼 한 월급으로 당신들까지 먹여 살려야 하는데, 제가 노력 안 했다고요?”시어머니는 어두운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하려다 주원의 눈빛에 제지당했다. 나는 차갑게 웃으며 계속 말했다. “어머니, 전 항상 어머니가 공정해서 제 편일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지금 보니, 다 한통속이네요! 당신들만 한 가족이고 저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원이 내 뺨을 때렸다.귀에서 윙윙 소리가 나서 나는 얼굴을 가리고 주원을 노려보았다.주원이 회사에서 잘린 후 온 집안이 내 돈벌이에 의지하여 먹고 살았고 그는 청소만 했는데, 자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얘기했다. 심지어 나를 때리기까지 했다.“예금 중에 절반은 내 돈이야!”두 사람은 내가 눈물을 흘릴 줄 알았는데, 나는 큰소리로 저항하면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장난하나? 불치병에 걸린 내가 뭐가 무서워?’내 말을 들은 두 사람의 안색이 재밌게 변했다. 사실이 그러했으므로 반박하고 싶어도 핑계를 찾을 수 없어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당신들이 나에게 돈을 줘야죠! 그렇지 않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