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경은 정신을 차렸다. “그… 내가 나중에 엄마한테 다시 설명할 게요. 이순이랑 만나지 말라고. 그러니까 화 내지 말아요. 나도 여기까지는 예상 못 했어요. 예전에는 이런 앤지 몰랐는데…” 진몽요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나 정말… 하하… 할말이 없네요. 걔가 잘못 생각한 거 같아요, 우리의 관계를 갈라놓는데 어머님이랑 사이가 좋아진다고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요? 어차피 내가 어머님이랑 사는 것도 아닌데, 걔가 완전 잘못 생각했어요! 당신이 남자라면, 오늘 저녁에 어머님한테 직접 가서 설명해요. 내가 계속 억울함 당하게 하지 말라고요!” 경소경은 거절하지 못 하고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 “그래요, 내가 가면 되죠? 당신은요? 나랑 같이 안 갈 거예요?” 그녀는 이를 꽉 깨물었다. “난 안 가요! 갔는데 이순이 거기 있으면요? 내가 가서 화를 못 참으면 어떡해요? 내 성격 알잖아요. 난 어머님 앞에서 내 이미지 망치고 싶지 않아요. 난 신경 끌 거고, 당신이 잘 해결 못하면 두고 봐요! 일단 연이네 집에 데려다 줘요.” 목가네. 경소경은 같이 차에서 내린 후 서재로 향해 목정침을 찾았다. “나 진짜 머리가 터질 거 같아. 화해한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또 몽요씨한테 혼나게 생겼어. 넌 여자가 한번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 내가 당부하는데 온연이랑 몽요씨랑 절대 단 둘이 있게 해선 안돼. 온연은 너무 똑똑해서 몽요씨한테 제안해주는 방법들을 내가 당할 수가 없어. 제발 나 좀 봐줘라!” 목정침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건 그래, 우리 연이가 진몽요 보다 똑똑하긴 하지. 이번엔 또 무슨 일인데?” 경소경은 이순을 떠올리면 화가 치밀었다. “이순 때문이야. 오늘 공관에 가서 우리 엄마를 만났더라고. 나한테 전화까지 했는데 몽요씨한테 들켰어. 그래서 그 둘이 싸웠는데 지금 내가 이걸 해결하러 가야 해. 내가 그때 이순을 받아준 게 내 무덤을 판 거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텐데.” 목정침은 눈썹을 움직였다. “넌
목정침은 힘 빠진 손을 흔들었다. “얼른 가, 난 더 간섭 못 하겠다.” 거실을 지나치면서 경소경은 얼굴에 미소를 띄었다. “두 사람 얘기 나눠요, 내가 저녁에 데리러 올 게요.” 진몽요는 좋지 표정을 짓지 않았다. “해결 못 하면 나 데리러 올 생각 말아요. 당신 얼굴만 봐도 열 받으니까!” 온연은 그저 웃었다. 그리고 바로 그녀는 경소경으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몽요씨 좀 잘 달래줘요. 이상한 아이디어 내주지 말고요. 내가 감당 못하니까. 부탁 좀 할 게요.’ 그녀는 저번 싸움에서 그에게 트라우마가 남았다고 짐작했다. 중요한 건 그녀도 진몽요가 그녀의 말 대로 행동할 줄 몰랐고, 짐을 싸서 나가는 건 그저 차선책일 뿐이었지만 경소경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경가네 공관. 집에 들어서기도 전에 하람의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이런 분위기의 집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순은 당연히 아직 가지 않았고 그를 보자 하람은 웃으며 인사했다. “소경아, 안 온다고 하지 않았어? 몽요는?”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정침이네서 온연이랑 같이 있어요. 온연이 임신중이라 몸이 불편해서 마음대로 못 나가거든요. 엄마, 잠깐 저 좀 따라오세요. 할 얘기 있어요.” 하람은 이순을 보았고 이순은 강아지를 안으며 웃었다. “저는 괜찮아요, 다녀오세요.” 윗층으로 올라가자 경소경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엄마, 이순이 이제 집에 못 오게 하세요. 이러면 저랑 몽요씨랑 둘 다 곤란해요. 엄마가 보시는 것처럼 그런 애가 아니에요. 아직 다 모르셔서 그렇지, 집에서 편하게 있고 싶으시면 제 말 대로 해주세요. 이런 사람 몰랐던 셈 치시고요.” 하람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넌 엄마가 바보인 줄 알아? 내가 몰랐을까 봐? 너가 이순이랑 연락 안 했을 때부터 무슨 일 있는 줄 알아서 진작에 알아봤어. 네 성격은 그래도 내가 잘 알지. 네가 사람을 잘 안 가리지만 너무 억지로 붙어 있으려고 하면 오히려 밀어 내잖아.” 경소경은 의아했다. “알면서 왜 지금까지
거실로 내려온 뒤 하람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순아, 너 오후에 다른 일 있다고 하지 않았어? 소경이가 마침 간다고 하니까 가는 길에 데려다 주면 딱일 텐데.” 경소경은 하람이 귀찮은 일을 자신에게 맡길 줄 모르고 굉장히 심기가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자.” 이순은 당연히 이걸 바라고 있었다. “그럼 저 먼저 갈게요 어머님, 나중에 또 뵈러 올 게요.” 하람이 두 사람을 문 앞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오자 계단 앞에 선 경성욱이 물었다. “소경이 갔어?”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갔어. 애 왔을 때는 숨어 있더니 다 간 다음에 뭘 울어.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보기만 해도 피곤해. 얼른 가서 그림 그려, 한 동안 편하게 못 그렸을 텐데. 얼른 가서 많이 그려야지. 그 그림 팔아서 난 쇼핑 좀 해야겠어. 당신 돈 좀 써야 내 마음이 편하지.” 경성욱의 미소에는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지만 진실 된 미소였다. “내 돈 다 당신 줬잖아…맨날 쇼핑하러 가도 다 못 쓸 돈인데…” 하람은 눈을 부릅뜨고 그를 보았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는 나무처럼 감정이 메말라 있었고, 그와의 로맨스는 바다에서 바늘을 찾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차 안, 이순은 조수석에 앉았고 경소경은 그게 싫었다. 하지만 이 ‘거머리’를 빨리 보내 버리면 된다는 생각에 그는 애써 참았다. “너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이순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무슨 뜻이에요? 제가 무슨 생각이냐니요. 의심병이 또 생기셨네.” 그는 그녀와 농담할 생각이 없었다. “예군작이 이렇게 하라고 시켰어? 그 사람은 왜 진몽요씨를 가까이 하는건데? 솔직하게 말해.” 이순은 앉아서 편한 자세를 취했고, 의자까지 조절하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저희 이제 예전 같은 사이가 아닌데 제가 왜 도련님 말을 들어야해요? 도련님 말을 들어도 제가 얻는 게 없잖아요. 저는 이제 착하고 말 잘 듣는 아이가 아니에요. 잊지 마세요, 저를 버린 건 도련님이에요
그녀는 살짝 웃었다. “하하… 제가 아는 비밀이 하나 더 있는데, 들어 보실래요?” 그가 궁금해하던 찰나에 그녀는 다가가 그의 목을 당겨 입을 맞췄다. 그녀도 나름 고수였고, 다른 순진한 여자들과는 달랐다. 경소경은 잠깐 당황했지만 바로 밀쳐냈고, 한번에 뿌리칠 수 없었다. 은색 스포츠카 안, 진몽요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녀는 불안해서 경가네 공관에 가 볼 생각이었다. 가는 길에 그의 차와 마주쳤고, 이런 상황까지 보게 될 줄 몰랐다… 그녀의 각도에서는 경소경이 이순을 안은 채 키스하는 거처럼 보였다! 경소경이 밀어내는 동작은 오히려 격력해서 안달 난 사람처럼 보였다… 그녀는 혼자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온연은 같이 나오고 싶어했지만 목정침이 허락하지 않았고 그녀에게 차만 빌려주었다. 그리고 이 차가 목정침의 차여서 다행이었다. 아니면 그녀는 경소경의 차를 이미 받아버렸을 것이다. “적당히 해!” 드디어, 경소경은 이순을 떼내었다. 그는 화가 잔뜩 나서 그녀를 보았다. “할 만큼 했어? 이순, 너 내가 말하는데, 너랑 예군작이 무슨 수작인지는 몰라도 다 해 봐. 우리는 몰랐던 사이였던 걸로 하자, 그러니까 꺼져!” 이순은 상처받은 눈빛이었지만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 경소경이 다시 시동을 걸었을 때 진몽요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그녀는 꼭 영혼을 빼았긴 인형처럼 화도 내지 않았고, 머리속에는 온통 그 장면만 맴돌았다. 그녀는 자신이 없을 때 경소경이 몇 명의 여자와 잤을까 라는 생각을했다… 예전부터 쌓아왔던 신뢰가 이 한 순간에 의해 무너졌고, 그는 원래부터 바람기가 있는 사람인데 이제 그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온연은 그녀가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 모르고 다가가 물었다. “왜 이렇게 빨리 왔어? 경가네 공관 간 거 아니었어?” 진몽요는 어렵게 질문했다. “연아, 나는 누군가한테 사랑받을 수 없는 건가? 난 이미 깨끗하지 않으니까 이런 질문할 권리도 없는
온연은 그녀를 품 안으로 안았다. “그러지마… 몽요야… 속상하면 울어도 돼. 분명 오해한 거 일거야. 경소경 그런 사람 아니잖아. 분명 그런 사람 아닐 거야. 돌아오면 그때 우리가 제대로 물어보는 거 어때?” 진몽요는 온연을 밀어냈지만 힘을 주진 않았다. “뭘 물어? 내가 직접 봤다니까. 꼭 거짓말할 기회까지 내가 줘야겠어? 꼭 핑계거리를 만들게 해야 해? 내가 내 눈으로 봤는데 어떻게 해야 그게 오해일 수 있어? 연아, 다 상관없는데… 정말… 유일하게 이건 내가 못 견디겠어. 너 알잖아… 전지랑 처음 헤어졌을 때 걔도 다른 여자가 있었어. 그때 내 심정이 어땠는 줄 알아? 집은 망하고, 아빠는 돌아 가시고, 남자한테도 버림받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어… 경소경은 나를 그 굴레에서 꺼내 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오랜 친구인 온연은 진몽요의 성격을 모를리 없었다. 그녀는 이번에는 아무리 말려도 정말 끝이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지금 진몽요의 정서는 불안정했고, 그녀는 혹시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까 봐 섣불리 다가갈 수 없었다. “몽요야! 진정해, 일단 경소경을 기다려보자.” 진몽요는 해탈한 듯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 만나기 싫어… 꼴도 보기 싫어…” 온연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사람을 시켜 목정침을 불렀다. 이런 상황을 임산부가 감당하긴 힘들었다. 목정침은 빠르게 아랫층으로 내려왔다. 이때 경소경도 들어왔고, 아까 이순과의 키스를 생각하면 그는 몹시 불쾌해서 미간이 저려와서 진몽요의 상태를 바로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목정침은 그들이 싸우게 될까 봐 경소경을 막아섰다. “소경아… 너 뭐 했어? 내가 조심하라고 말 했잖아!” 경소경은 이해하지 못 했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진몽요는 떨면서 말했다. “똑똑한 사람이라 바보연기는 참 못하네요, 진짜 바보가 아닌 이상 다 알 거 같은데. 벌써 끝난 거예요? 이순이랑 더 붙어 있다 오지 그랬어요? 당신 좋다는 사람한테 그렇게 매정하게 굴 거 없잖아요…
경소경의 마음에는 큰 파도가 휘몰아치고 있었고, 한참후에 입을 열었다. “당신 마음 속에는 내가 그 정도 밖에 안돼요? 내가 분명히 말했었죠, 나 이제 아무나 안 건드린다고.” 그녀는 왜 그를 믿지 못하는 것일까?” 진몽요는 빨개진 눈으로 그를 보며 애써 단호한 척했다. “알아요, 그 말 했던 거 기억나요. 하지만 사실상 당신은 아무나 건드리죠.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이랑 소란 피우면서 싸울 생각 없어요. 여기까지 왔으니 그럴 필요도 없죠. 약혼 예금은 최대한 빨리 이체해줄게요. 경가네에서 준 것도 이젠 필요 없어요. 매체에는 우리가 합의하에 이별했다고 발표할게요. 그래도 사랑했던 사이니까 당신 안 좋은 얘기까지는 밝히지 않을게요.” 그는 늘 털털했던 그녀에게 이런 단호한 면이 있을 줄 몰랐다. 파혼이라는 말을 꺼내는데 망설이지도 않고 이미 추후의 일까지도 계획하고 있었다. 그녀의 침착한 태도는 그에게 정말 끝났다고, 다시는 예전으로 못 돌아간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압박, 그녀의 불신은 그를 미치게 만들었고, 이 오해 하나 때문에 이렇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 했었다. “마지막으로 물어볼게요, 진짜 되돌릴 수 없어요? 해명할 기회도 안 주는 거예요?”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한 글자 한 글자가 위태로웠다. 진몽요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가방을 챙겨 그를 지나쳤다. “그럴 필요 없을 거 같아요.” 멀어지는 그녀를 보며 그는 쫓아갈 용기가 없었고, 두 다리는 모래주머니를 달고 있는 것처럼 무거웠다. 온연은 그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목정침은 인상을 쓰고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려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진실이 중요해? 저 사람은 나를 믿은 적이 없었어. 파혼하고 싶으면 알아서 하라 그래. 나도 지쳤어.” 그는 그러고 목가네를 떠났다. 이 모든 걸 목격한 온연과 목정침은 그저 어리둥절 했다. 경소경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몽요는 이미 짐을 다 싸 놓은 상태였고
강령은 그녀가 아무 말이 없자 사실이라는 걸 알고 잔소리를 시작했다. “걔가 예전에는 바람기 있어도 그랬다 쳐, 근데 얼마나 됐다고 또 이래? 나랑 네 아빠가 제일 싫어하는 거야. 네 아빠가 어렸을 때부터 너한테 정직하게 살아야 된다고 가르쳤잖아. 결혼 안 한 여자도 막 건드려선 안되고, 사귀는 사람 있을 때도 한 눈 팔면 안된다고. 나랑 네 아빠는 그 오랜 세월동안 한번도 다른 마음 품은 적 없었어. 그 사람이 세상 떠나고 나서야 재혼생각이 들었지. 소경이는 애가 왜 그러니? 그래도… 너 정말 파혼하게? 하긴… 이런 일은 참으면 안되지. 아직 결혼 안 했는데도 이러는데, 남은 세월은 어떻게 참겠어? 엄마는 네가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꼴 못 봐, 카드 다시 줄게!” 진몽요는 간신히 눈물을 참았다. 목가네에선 울지 않았지만 지금은 더 울 수 없었다. 적어도 강령은 그녀의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해서 말리지 않았다. 강령이 카드를 건네주자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받았다. “고마워요 엄마. 사실… 경소경씨는 나한테 잘못한 거 없어요. 그 사람이 아니라 내 문제예요. 난 그 사람이랑 어울리지 않나 봐요. 결혼까지 안 가서 다행이에요. 지금이라도 헤어져야 서로 나중에 덜 피곤하죠.” 강령은 놀랐다. “그 사람 문제가 아니라 네 문제라니? 네가 바람폈어? 진몽요, 너 죽고싶어?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널 어떻게 가르쳤어? 어떤 집 자식이 경소경보다 나은 거야? 내가 봤을 때 그런 사람은 목정침 밖에 없는데, 목정침일리는 없고, 누구야? 어떤 놈이 널 그렇게 만들었어?” 이 일을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았고, 진몽요는 돈을 모두 경소경의 계좌로 이채했다. 그리고 장문의 문자를 하람에게 보냈고, 다 쓸데없는 말이었지만 핵심은 파혼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하람에게 전화가 올까 봐 문자를 보내고 바로 핸드폰을 꺼버렸다. 생각할수록 너무 황당해서 그녀는 전화카드를 빼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오늘부터 그녀와 경가네는 더 이상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 그 날
하람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살짝 닦으며 말했다. “이유가 있어야지? 둘이 계속 못 만난다고 해도 회사는 계속 다닐 수 있는 거잖아. 별 문제 안 될 거 같은데… 내 마음속에 너는 이미 딸이야.” 여기까지 말한 후 그녀는 문득 떠올랐다. “아니면 나한테 화난 거야? 나도 소경이랑 이순 일 알고 있어. 오늘 내가 이순을 집에 들였던 건 소경이가 나랑 우리집 영감 보러 공관에 왔으면 해서 자극한 것뿐이야. 난 그냥 연기였어. 이순이는 이미 갔는데…” 진몽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어머님이랑은 상관없어요.” 하람의 마음은 다급해졌다. “그럼 왜 그러는 거야? 전화도 안 받고. 네 문자 보자마자 깜짝 놀라서 소경이 찾으러 갔는데, 걔도 별장에 박혀서 안 나오고 있더라. 혼이 나가서 내가 아무리 말을 걸어도 애가 대답도 안 하고. 너라도 이유 말 안해주면 난 오늘 집에 절대 안 가!” 진몽요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저 예전에 강간당했어요. 이 일은 제가 소경씨 만나기 전에 일어난 일이고요. 제가 숨기지 않아서 그 사람도 알고 있어요. 비록 받아들이는 것 같아 보였지만 마음속으로는 안 그랬던 모양이에요. 안 그래도 저는 집안부터 그 사람이랑 어울리지 않는데 그런 일까지 당했으니 저도 비참했어요… 저는 늘 그 사람이랑 끝까지 잘 될 거라는 생각도 없었고요. 매번 어머님이랑 만날 때도 괜히 속이는 것 같고, 경가네에서 어떻게 저 같은 사람을 받아줄 수 있겠어요? 이게 다에요. 다 제 문제고, 그 사람 때문 아니에요.” 이 얘기를 들은 하람을 숨을 참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진몽요는 하람의 표정을 볼 자신이 없었다. 아마 자신을 혐오하지 않을까? 부잣집에서는 절대 그녀 같은 사람을 받아드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미 예측하고 있었고, 이제 와서 털어놓아서 죄책감이 들었지만 어차피 이젠 상관없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안았다. “몽요야… 너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어? 그건 네 탓이 아니잖아, 네 잘못도 아니고… 소경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