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씨 어르신은 음흉한 표정을 한 채 이를 갈며 말했다. “안됩니다, 선생님! 찰리님의 뜻을 오해하지는 마세요. 결투하기 전까지, 절대 한지훈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혹여 죽게 되더라도 찰리님의 손에 죽어야 합니다!”로말은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그 이유는 이번 결투는 찰리의 미래 인생이 걸려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한지훈이 찰리의 손에서 죽지 않게 되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 말을 들은 노 씨 어르신은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렇다면 찰리 선생한테 이 말을 꼭 전해줘. 그가 원하는 대로, 결투 그날 반드시 한지훈을 죽여달라고!”그제야 마음이 통한 두 사람은 이내 서로 마주 보고 크게 웃었다. 뒤이어 로말은 자리를 떠났고, 노 씨 어르신은 뒷짐을 진 채 방 안을 몇 바퀴씩 돌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그는 갑자기 약왕파 황약사를 떠올렸다. 그러나 거듭된 고민 끝에 그는 생각을 접었다. 만약 황약사가 한지훈을 상대할 수 있었다면, 한지훈은 진작에 그의 손에 죽게 되었을 것이다. 사실 황약사 또한 무맹이 쉽게 건드릴 수 있는 강자는 아니었다. 필경 무적천과는 동급의 강자였으니까. 노 씨 어르신은 어쩔 수 없이 생각을 접고는 성내의 다른 고수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문득, 귀의 임천덕이 떠올랐다. 귀의문은 무종 중에서도 무도 패륜이라고 불리는 작은 문파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귀의문 역시 만만치 않은 강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나 그들은 독극물을 잘 이용하고 의술도 능통했다. 게다가 약왕파 다음으로, 의도로 문파를 세운 종문이었다. 이내 노 씨 어르신은 급히 휴대폰을 꺼내 귀의문의 문주인 임천덕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평소에 명성이 극히 나쁘기로 유명했던 임천덕이, 무려 노 씨 어르신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 건 그야말로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격이었다. 무맹은 단지 민간 조직일 뿐이긴 하지만, 그 지위는 무시할 수 없었으니까. 노 씨 어르신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귀의문의 미래도
그 말을 들은 임천덕은 깜짝 놀라 멍해졌다. ‘목숨을 살리는 게 아니라 끊으라고?’ “그건... 어렵진 않긴 한데, 어르신께서 그렇게까지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여전히 어리둥절했던 임천덕은, 노 씨 어르신이 자신을 강중으로 부른 목적을 알지 못했다. 임천덕은 사람을 구하는 것에 있어서는 확실히 황약사와는 차원이 다른 실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사람을 죽이는 건 아예 다른 일이었다. “사실...”이내 노 씨 어르신은 한지훈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고, 또 라이언 킹 찰리와 한지훈의 결전에 대해서도 얘기해 주었다. 자초지종을 듣게 된 임천덕은 눈썹을 찌푸리고는 한동안 깊이 생각에 잠긴 후에야, 고개를 들어 말했다. “어르신, 그럼 저더러 독을 넣으라는 것입니까?”그러자 노 씨 어르신은 인상을 찌푸리며 임천덕을 노려보았다. “뭔 소리 하는 거야! 난 엄연히 무맹 장로인데, 어떻게 그렇게나 일을 추잡하게 진행할 수가 있어?” “게다가 라이언 킹 찰리는 이방인이야. 이방인이 우리 용국 공신을 상대로 도전장을 내미는데 내가 어찌 용국 공신에게 독을 먹일 수가 있냐고! 너 날 대체 뭐로 보는 거야?”쉿! 노 씨 어르신으로부터 제대로 혼쭐이 난 임천덕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 식은땀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르신, 그... 그럼 대체 어떻게 진행하실 심산인 겁니까?”노 씨 어르신은 침착한 표정으로 임천덕을 힐끗 보며 말했다. “전에 낙구영과 한번 대결을 치르는 과정에 한지훈이 부상을 입게 됐어. 아마 결전 전에는 어떻게든 반드시 상처를 치료하려 할 거야. 하지만... 상처라고 모두 다 쉽게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내 말 알겠지?”눈을 깜박거리던 임천덕은 한참을 궁리하고 나서야 노 씨 어르신의 의도를 알게 되었다. ‘젠장... 그 말은 즉 한지훈한테 독을 내려라는 거 아니야?’ “하지만 결전 당일 전까지 한지훈은 죽으면 안 돼, 알겠어?”노 씨 어르신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즉 노 씨 어르신
필경 상대방의 신분을 알지는 못했기에, 제자들은 냅다 경솔하게 무력을 행사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키 큰 남자는 여전히 실눈을 뜨고는 고개까지 쳐든 채 얄미운 표정으로 그들을 도발하였다. “얼른 나와서 우리를 맞이하라고 해! 우린 귀의 임천덕 문주의 제자들이거든! 우리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길, 한지훈 사령관이 곧 용국 무종의 체면이 걸린 찰리와의 대결을 앞두고 있기에 특별히 직접 나서서 상처를 치료해 주겠다고 하셨거든!”“사실 우리 사부님은 이렇게 쉽게 주동적으로 나서서 은혜를 베풀지는 않으셔! 이번에는 오직 무종을 위해서 나서신 거지. 무려 우리 사부님의 치료를 받게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생각해!”키 큰 남자는 거만한 표정을 한 채 큰 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천검종의 제자 두 명은 서로 마주 보며 눈빛을 주고받았다. 암만 생각해도 그들이 감히 사사로이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인 것 같아 이내 급히 별장으로 달려가 한지훈에게 보고하였다. “한 선생님, 별장 앞에 두 중년 남자가 찾아왔는데 귀의 임천덕의 문하생들이라고 합니다.” “귀의 임천덕이 직접 하산하여 한 선생님의 상처를 치료하러 왔다고, 선생님더러 얼른 나와서 자신들을 맞이하라고 큰소리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임천덕은 무종의 체면을 위해서 이번에 특별히 나서려고 한답니다!”‘뭐? 임천덕?’ 한지훈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지만, 도청 전인에게는 낯설지 않은 사람이었다. 사실 임천덕은 오래전부터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가 사람을 구한다면 기본적으로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긴 했지만, 반면 누군가 독극물을 먹고 죽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사람들은 열 건 중 아홉 건을 흔히 임천덕의 짓으로 의심하였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갑자기 달려와서 한지훈의 상처를 치료한다니. “주상, 이 사람은 평판이 좋지 않습니다. 게다가 무맹의 편이기도 합니다. 제 생각에는 차라리...”도청 전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지훈은 이미 예상이 갔다. 그는 노 씨 어르신이 보낸 살인자라는
한지훈은 그들을 다시 볼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며, 천검종의 두 제자에게 담담히 말했다.“앞으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그냥 쫓아내라. 나에게 보고할 필요도 없다.”말을 마친 그는 다시 별장으로 돌아갔다.같은 시각. 임천덕의 두 제자는 풀이 죽은 모습을 하고 돌아와 임천덕에게 울며 하소연을 했다.그러자 노 씨 어르신은 반쯤 감긴 눈으로 둘을 훑어보더니 냉랭하게 말했다."쓸모없는 놈들! 이런 네놈들의 태도에 한지훈이 어찌 고분고분 따를 거란 말이냐!"노 씨 어르신이 화를 내자 임천덕이 앞으로 나와 다급히 말했다. “노 씨 어르신, 진정하십시오. 제가 직접 가서 반드시 한지훈이 고분고분 따르게 만들겠습니다!”그렇게 말하며 그는 두 제자를 흘겨보고 소리쳤다.“뭘 멍하니 서 있느냐! 당장 따라와라!”두 사람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임천덕의 뒤를 따라 한지훈의 별장 앞에 다시 도착했다.별장 입구에 있던 천검종의 제자 두 명은 그들이 다시 돌아온 것을 보자 눈썹을 치켜세우며 칼자루를 움켜쥐고 차갑게 말했다. “보아하니 아까 준 교훈이 부족했나 보군!”“아뇨, 아닙니다! 두 분은 진정하시고 제 말 좀 들어 보십시오. 저는 임덕천이라고 하고, 특별히 한지훈 선생님을 뵈러 왔습니다!”임천덕은 상냥하고 공손한 태도로 두 천검종 제자에게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웃는 얼굴에는 침을 뱉지 못하는 법.게다가 임천덕은 어쨌든 귀의문 문주로서 나름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기에, 천검종 제자들도 함부로 그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또한, 그의 두 제자와는 다르게 임천덕은 상황 판단이 빨랐으며 처음부터 태도에서 격식과 진지함이 느껴졌다.“너희 둘, 당장 이리 와라!”임천덕이 뒤에 있던 두 제자를 향해 소리치자, 두 사람은 고개를 숙인 채 풀이 죽은 얼굴로 다가갔다. “두 분께 사과드려라!”두 사람은 서로를 한 번 쳐다보며 임천덕의 의도를 헤아리지 못했다.하지만 그들이 주저하는 사이, 임천덕이 그들의 뺨을 갈겼다. “귀가 먹었느냐?!”임천덕이 또다시 호통을 치자,
문에 들어서자마자, 임천덕은 한마디 말도 없이 두 제자의 뺨을 연달아 갈기고는 한지훈의 발치 앞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아직도 뭐 하고 있느냐! 어서 한지훈 선생님께 무릎 꿇고 사죄드려라!”그러자 한지훈은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됐습니다. 저도 그렇게 속 좁은 사람은 아니니, 그냥 그들을 내버려두십시오.”“어서 한지훈 선생님의 너그러운 은혜에 감사드려라!”임천덕이 제자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한지훈 선생님의 관대함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두 제자는 연신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고 물러났다. 두 사람이 떠난 뒤, 임천덕은 한지훈에게 허리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한지훈 선생님, 다 제 불찰입니다. 제가 평소 문하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제자들이 감히 한지훈 선생님을 모독하는 불경을 저질렀습니다!”“괜찮습니다, 임 문주께서 이곳에 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한지훈은 손을 휘저으며 미소를 띠고 물었다.임천덕은 도청전인을 힐끔 쳐다보더니 잠시 머뭇거렸고, 다시 한지훈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한지훈 선생님, 사실 요 몇 년간 특히 젊은 세대 가운데 제가 가장 존경하는 이는 다름 아닌 한지훈 선생님이십니다!”“무엇보다 한지훈 선생님께서 친히 파용군을 이끄시어 오국 연합군을 격파한 그 업적은, 용국의 국경을 수호하신 그 누구도 잊을 수 없는 위대한 공로입니다!”한지훈은 무표정한 얼굴로 임천덕을 바라보았다.이 늙은이는 말만 열었다 하면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군, 이런 자일수록 더욱 경계해야 하는 법!“며칠 전, 제가 강중 지역을 지나던 중 라이언 킹 찰리가 한지훈 선생님께 도전을 신청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하필 얼마 전, 한지훈 선생님께서 청봉문에서 부상을 입지 않으셨습니까!”“제가 알기로 이 찰리라는 자는 내력이 대단하며, 아시란치 가문의 일원입니다. 그래서 한지훈 선생님의 상태를 염려하여 이렇게 진료를 도와드리려 온 것입니다. 제 의술은 변변찮습니다만, 그래도 귀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지훈 선생님께 조금이
한지훈은 손을 가볍게 저으며 담담히 말했다.“에이, 사람이 이렇게 선의로 다가오는데, 우리가 너무 차갑게 대할 순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임 문주?”임천덕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말했다.“한지훈 선생님, 염려 마십시오. 제가 최선을 다해 진료하겠습니다!”그는 한지훈의 맞은편에 앉아 손을 뻗어 맥을 짚기 시작했다.약 오 분 정도 지나, 임천덕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한지훈 선생님, 제 진단에 따르면 상태가 그리 좋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상처가 가벼워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오장육부에 손상이 갔습니다. 만약 치료를 서두르지 않으면...”한지훈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오? 제 상처가 그렇게 심각합니까? 얼마나 심한 상태란 말이죠? 치료를 미루면 어떻게 됩니까?”“그게... 치료를 미루면 오장이 손상되어 생명까지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임천덕은 신중한 척하며 답했다.하지만 그의 말은 전부 허풍이었고, 그는 한지훈이 의술에 무지하리라 믿고 배짱을 부리고 있었다.그러나 그는 한 가지 사실을 알지 못했다.한지훈 앞에서 그의 의술은 고사하고 황약사조차도 한 수 접어야 할 정도로 보잘것없다는 것을 말이다! 천생서문에는 만 가지 학문이 담겨 있었으며, 의술은 그중 하나에 불과했다.게다가 한지훈은 본래 의술에 관심이 많아, 용국군에서도 ‘신의’라는 칭호를 얻은 인물이었다.천생서문의 여러 학문 중에서도 한지훈이 가장 정통한 분야는 바로 의학이었다.“아이고, 이렇게 위험할 줄이야! 임 문주께서 제때 와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아직도 무지한 채로 있을 뻔했군요. 오늘 아침만 해도 며칠 쉬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한지훈이 이런 말을 하자, 도청전인은 다급해지며 황급히 손을 저었다.“한지훈 선생님, 이런 자의 말만 믿어선 안 됩니다. 비록 제가 부족하지만, 의학에 조금 식견이 있으니, 제가 직접 진맥을 해보겠습니다!”하지만 한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선생님, 저희
임천덕은 품에서 검붉은 약환 세 알을 꺼내 한지훈에게 건네며 말했다.“이 약은 현재 다섯 알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세 알이면 한지훈 선생님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을 겁니다!”그는 말이 끝나자마자, 예를 갖추며 약환 세 알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쳐 한지훈에게 내밀었다.한지훈은 약환 한 알을 집어 들고 코밑에 가져가 냄새를 맡았고, 순간 지독한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사람을 살리는 약이라면, 그 향기가 반드시 은은하게 퍼지기 마련이다.그러나 이처럼 비린내가 나는 약은 독약임이 분명했다.초보적인 의학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도 알아챌 수 있는 이런 속임수는 한지훈 앞에서 더더욱 우스꽝스러워 보였다.“오호, 약이 꽤 좋아 보이는군요. 그런데 왜 하필 이름이 백생단입니까?”한지훈은 약환을 손에 들고 입으로 가져가는 척하더니, 다시 내려놓았다.임천덕은 순간 당황했다. 이건 명백한 만성 독약인데, 백생단이라니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귀의문의 역대 종사들은 독약을 연구하는 데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사람을 살리는 일에는 전혀 열의가 없었다.한지훈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임천덕은 대답을 망설이다 결국 떠듬거리며 말했다.“그, 그것이... 이 약을 복용하면 부패한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살이 돋아나며, 오장을 보양하고 수명을 늘릴 수 있어서 백생단이라 부릅니다!”“임 문주, 이렇게 좋은 약이라면 문주께서도 하나 드셔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한지훈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약환을 들고 임천덕을 바라보았다.“아, 아뇨!”임천덕은 두 손을 흔들며 급히 말했다.“이 약은 너무나 귀해서 제가 먹으면 낭비일 뿐입니다! 필요한 분께 써야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지훈은 갑자기 임천덕의 옷깃을 거칠게 움켜잡으며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임천덕, 정말 내가 의술에 대해 모를 줄 알았나? 이 약의 냄새가 이토록 비릿한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독성이 섞인 것이지?”“아, 아뇨! 한지훈 선생님, 오해십니다! 저희
“짝!”한지훈의 손이 번개처럼 임천덕의 뺨을 강타했다.임천덕은 그 자리에서 바닥을 뒹굴며 마당으로 나가떨어졌고, 그의 광대뼈까지 함몰되었다.얼굴이 시뻘겋게 부어오른 임천덕은 마치 부모를 잃은 듯한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몸부림쳤다.“들어와라!”한지훈은 한 치의 자비도 없이 날카롭게 호통쳤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부드러운 태도로 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이때가 돼서야 도청전인은 사태의 전말을 눈치챌 수 있었다.그는 한지훈의 손에 들린 약환 세 알을 바라보며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한지훈의 의도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임천덕은 손으로 함몰된 얼굴을 부여잡으며, 바닥을 기어 다시 대청 안으로 들어왔다.그가 한지훈을 바라보는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말해라. 이 약은 대체 무슨 약이지? 그리고 네 몸에 해독제는 있는 거냐?!”한지훈은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물었다.“이... 이 약은 ‘백일단장단’이라 불리는 약입니다. 이걸 먹으면 백일을 넘기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아무리 경지가 높은 강자라도 창자가 썩어 죽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임천덕은 말을 하며 몰래 한지훈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한지훈의 살기가 서린 시선을 마주친 순간, 그는 몸을 움츠리며 다시 바닥에 엎드렸다.그러더니 서둘러 몸에서 파란색 작은 병을 꺼내 들고는 한지훈에게 내밀었다.“하, 한지훈 선생님! 이… 이게 해독제입니다!”한지훈이 병을 받아 들고 뚜껑을 열자 은은한 향기가 퍼져 나왔고, 확실히 해독제임이 틀림없었다. 한지훈은 다시 임천덕에게 차갑게 물었다.“이 약을 더 가지고 있나?”임천덕은 고개를 들어 한지훈의 손끝을 보았고, 그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백일단장단이었다.임천덕은 서둘러 남은 다섯 알을 꺼내어 두 손으로 받쳐 들고 한지훈에게 내밀었다.“한지훈 선생님, 이 약은 총 여덟 알뿐입니다. 이것은 제 스승님께서 임종 전에 물려주신 것입니다!”“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도 이 약을 조제할 줄 모릅니다!”한지훈은 약환을 받아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노 씨 어르신의 얼굴에는 화색이 드러났다. 한지훈은 이번만큼은 피해 가기 어려울 거라 확신했다. 설령 참석하든 안 하든 필연코 사신의 큰 화를 불러올 거라 생각했다. 흔쾌히 자리에 참석하게 되면, 그는 결국 무맹 종문의 수많은 강자들에게 의해 포위당하게 된다. 천신과도 같은 강자를 마주하게 되면, 한지훈은 감히 쉽게 저항하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천신계 강자들은 침 한번 뱉는 것만으로도 한지훈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반대로 만약 한지훈이 참석하지 않는다면, 무맹에게는 맹주를 불경하게 대했다는 구실이 하나 생겨 단해룡이 종문 문주들을 거느리고 직접 한 씨 집안으로 향하여 죄를 물을 수도 있었다. 때가 되면 국왕도 한지훈의 목숨을 보장할 수는 없게 된다. 이 생각에 노 씨 어르신은 밖으로 나가면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지금은 정보화 시대이기에, 무맹은 손가락 하나로 세계 각지에 바로 초청장을 보낼 수가 있다. 그날 오후, 무종 대장로는 단해룡의 초청장을 받게 되었다. 심지어 그는 열어보지 않고도, 단해룡의 의도를 알아맞힐 수 있었다. “큰일 났네! 이 사람이 왜 갑자기 관문을 벗어난 거지? 은거하러 갔다고 하지 않았어? 어떡하지!”대장로는 초대장을 손에 쥔 채 왔다 갔다 하며 주위를 서성거렸다. “대장로님, 무종의 권위를 동원해서라도 이번 성회는 취소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이때 옆에 있던 삼장로가 일어나 말했다. “취소?”그 말에 대장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 단해룡이 어떤 성질머리를 갖고 있는지 잘 알고 있잖아. 만약 우리가 감히 막무가내로 권력을 행사한다면, 그는 결국 국왕과 사당의 대립면에 서게 될 거라고!”“상대는 결코 무적천이나 장도령과는 달라. 무맹은 매우 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어. 게다가 그 자신 또한 장도령보다도 약하지 않은 실력을 지니고 있어. 그는 자신이 강한 걸 잘 알기에 이렇게 제멋대로 일을 벌이는 거야!”“만약 정말 우리가 나선다면 나한테 일이 불리
단해룡의 나이에 설령 천산 대전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하더라도 그의 뜻대로 되기는 어려웠다. “저희 장 씨 집안과 천산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단 선생도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말 한마디만 잘해주시면 천산은 필연코 장 씨 집안의 체면을 세워 줄 것입니다! 그러니 단 선생님, 한 번만 눈 감아주시면 얼마든지 소원대로...”장천풍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단해룡은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큰 소리로 단호하게 외쳤다. “한지훈의 목숨을 바쳐 얼마든지 천산을 참배할 수 있다면 나야 흔쾌히 받아주지! 얼른 돌아가서 장 씨 어르신에게 전해, 장도령과의 친분을 봐서라도 반드시 이 원수를 갚을 거라고!”그 말에 장천풍은 차가운 눈빛으로 단해룡을 힐끗 보았다. 만약 천산의 입문 기회를 언급하지 않았다면 단해룡은 진작에 이 위험한 다리를 건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내심 이 상황이 언짢았지만 얼굴에 드러내지는 않았다. 이내 장천풍은 주먹을 꽉 주고는 살짝 웃으며 단해룡을 향해 말했다. “단 선생님, 장 씨 집안을 대표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말을 마치고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떠나가는 장천풍의 뒷모습을 보면서 단해룡도 내심 꿍꿍이를 하였다. 만약 정말 장천풍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지훈은 정말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단해룡은 장도령의 실력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온 천하에 그와 맞붙을 수 있는 사람 자체가 얼마 없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깊은 생각에 잠긴 단해룡은 성큼성큼 산 아래로 걸어갔다. 그렇게 반나절도 안 되어 단해룡은 무맹 본부의 대문 앞에 다다르게 됐다. 갑작스러운 단해룡의 등장에 무맹 장로 몇 명이 급히 달려와 맞이했다. 노 씨 어르신은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단해룡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맹주님!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저... 저희 그동안 정말 비참하게 괴롭힘을 당해왔습니다!”노 씨 어르신은 울음을 터뜨렸고, 한지훈에게 따귀를 맞게 된 것부터 무릎 꿇은 사실까지 모두 털어놓았
단해룡을 찾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장씨 가문의 집사조차도 여러 관계를 거쳐야 그의 소식을 조금이나마 알아낼 수 있었다.몇몇 명산대천을 찾은 끝에야 마침내 망월봉에서 단해룡을 발견할 수 있었다.이때 단해룡은 비록 백 살 가까운 나이였으나, 겉모습은 여전히 마흔 살 정도의 중년으로 보였다.검은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길게 늘어졌고, 새하얀 연마복은 먼지 하나 묻지 않아 고결함을 풍겼다.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단해룡은 천천히 눈을 뜨며, 종소리 같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장천풍인가?”“단 선생님, 과연 귀가 밝으십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제 발소리를 기억하시다니요!”장씨 가문의 집사 장천풍은 멀찍이 단해룡에게 두 손을 모아 예를 표했다.“장 형이라면 바쁜 사람일 텐데, 어찌하여 이 산골까지 나를 찾아온 것이오?”단해룡은 여전히 앉은 자세를 유지하며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단 선생님, 한 가지 부탁드릴 일이 있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장천풍은 한 손을 등 뒤로 하며 단해룡에게 말했다.“오? 무슨 일이오?”단해룡은 약간의 의구심을 띤 채로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장씨 가문은 용국에서 손꼽히는 명문으로, 심지어 국왕조차도 장씨 가문의 체면을 고려해야 할 정도였다.그런 장씨 가문이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할 필요가 있다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단 선생님, 하루 전에 장도령이 한지훈에게 참혹하게 살해당했습니다. 우리 장씨 가문은 비록 그 어린 녀석을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천신계의 금령은 단 선생도 아시다시피 절대 어길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런 일에는 우리 장씨 가문의 원로들이 직접 나설 수 없습니다!”장천풍은 장도령이 왜 죽임을 당했는지를 간략히 설명했고, 단해룡은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시큰둥한 미소를 지었다.한지훈이라는 이름은 몹시 생소했고, 그는 수년간 망월봉에서 고독한 수련에 몰두했다.하지만 그는 천신 경지만 남겨두고 있었고, 이 한 걸음을 돌파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단해룡은 이미 무맹에 맹
도청전인이 말한 천왕은 단순히 경지의 높낮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그것은 현재 한지훈이나 이전의 장도령, 그리고 무적천과 같은 인물처럼 무도와 진법을 융합하여 진정한 천왕의 위엄을 가진 거물을 뜻했다!이들 세 명이 단해룡에게 단숨에 제압당했다는 사실은 그의 실력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 한두 명이라면 운이 작용했을 수 있지만, 세 명 모두가 순식간에 패배했다면 이는 실력으로 압도당한 것이다.“오호라?”한지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도청전인을 바라보았다.“이 세 사람은 만약 한용 선배가 계셨다면 들어보셨을 겁니다. 강한 한 명은 두자산, 또 한 명은 진망해, 마지막 한 명은 70년 전 용국의 정상에 서 있던 강한생이라는 인물들입니다!”“이들 모두 당시 무맹 장로와 적대하여 무맹으로부터 추격을 받았던 인물들입니다. 따라서 무맹의 많은 사람들을 반격해 처치했던 강자들이었죠. 하지만 강한생이 무맹의 부맹주를 죽이면서 결국 큰 화를 초래했습니다!”“단 3일 만에, 그들의 시신은 무맹 본부 바깥의 깃대에 걸렸고, 머리에는 수은이 채워져 미라처럼 처리되었고, 지금까지도 무맹 본부의 문 앞에 높이 걸려 있습니다!”“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이 단해룡은 함부로 건드릴 상대가 아니죠. 심지어 무적천조차도 그와 적대하지 않으려 했으니까요. 이것이 왜 수십 년 동안 무신종과 무맹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해 온 이유입니다!”도청전인의 말을 듣고, 한지훈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단해룡은 정말로 강력하고 위험한 적수임이 분명했다.“즉, 무적천조차도 그를 상대로 절대적인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거군요?”한지훈이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도청전인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적어도 그 당시에는 그랬다.하지만 지난 70년 동안, 무적천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마찬가지로 단해룡 역시 수십 년 동안 세상에서 모습을 감췄으니, 그의 현재 실력을 가늠하기는 더욱 어려웠다!“알겠습니다! 이건 선생님께 드릴 테니, 시간이 날 때 꼼꼼히 읽어보도록 하세요.”
도청전인은 한지훈의 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서둘러 움직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중년 남성을 데리고 서재로 들어왔다.“한천왕님, 북명종 윤지성입니다. 예를 갖춰 인사드립니다!”중년 남성은 한지훈에게 깊숙이 허리를 굽히며 공손히 말했다.“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습니다. 도청전인에게 들었는데, 윤 선생께서 저와 상의할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던데요?”한지훈은 윤지성을 바라보며 물었고, 윤지성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한 선생님, 방금 전에 장도령을 직접 처단하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한지훈은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덮으며 윤지성을 바라보았다.“장도령 그 자체야 큰 문제가 아닙니다만, 장씨 가문을 적으로 돌린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장씨 가문은 분명히 분노할 것이고, 한 선생님께서 모를 수도 있지만, 장도령에게는 비밀리에 친분이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자의 실력은 장도령을 훨씬 능가합니다!”“게다가 장씨 가문이 분노하면 이 사람은 반드시 한 선생님을 찾아올 겁니다. 비록 선생님께서 장도령을 이겼지만, 이 사람은 장도령보다 훨씬 까다로운 자입니다!”윤지성이 담담히 말하자, 한지훈은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물었다. “그게 누구란 말입니까?”그는 자신이 막 위험에서 벗어나 다시 위험에 처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매일 이렇게 사람을 상대할 시간도 있을 리 없었다. “무맹의 맹주, 단해룡입니다!”윤지성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맹의 맹주라니?!한지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무맹은 무종과 거의 동등한 권위를 가진 민간 조직이었다.그 맹주인 단해룡은 신비로운 인물로, 그의 행적을 본 사람은 열 명도 채 되지 않았다.게다가 그의 실력은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단해룡이 이미 천신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추측했다.이런 이유로 그는 세속적인 일에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다.“당신 말은, 단해룡이 직접
처음에 강우연은 한지훈의 말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그녀의 눈은 점점 더 크게 뜨였다.여전히 약간 혼란스러웠지만, 적어도 내용을 세 부분 중 한 부분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특히, 한지훈이 팔을 들어 살짝 휘두르자 흰빛의 광채가 번쩍이며, 동시에 하늘에서 천둥이 내려치는 장면을 보고, 강우연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이게... 당신이 자기장을 이용해서 한 건가요?”강우연은 경이로운 눈빛으로 한지훈을 바라보며 물었다.“맞아. 하지만 처음에는 자기장에 대한 제어 능력이 약해서 이런 효과를 내기 힘들지. 게다가, 진법의 도움으로 이 자기장의 에너지를 증폭시켜야만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어!”한지훈은 설명하며 삼절진의 핵심 원리를 강우연에게 설명했고, 그의 설명을 듣고 난 강우연도 점점 깨달음을 얻기 시작했다.특히 진법에 대한 강우연의 이해력은 남달랐으며, 한지훈이 단 한 번 설명했을 뿐인데 그녀는 그 핵심을 완전히 꿰뚫어 이해했다!“그렇다면, 이른바 진법이란 의념과 자기장 사이의 연결이라는 거네요. 서로 연결만 된다면, 자기장을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다는 거죠?”강우연은 말을 이어가며 손가락을 살짝 움직였다.그러자 보이지 않는 힘이 손끝에서 발산되며, 몇 미터 떨어진 단단한 원목 테이블이 폭발하듯 산산조각이 나버렸다!물론, 이런 정도의 파괴력은 전신 경지의 강자들에게는 보잘것없을지 모르지만 강우연에게는 충분히 큰 진전이었다! 첫 번째로 진법을 활용한 시도에서, 그녀는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둔 셈이었다.“여보, 이… 이렇게 하는 게 맞아요?”강우연은 약간 긴장된 표정으로 한지훈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래, 지금 단계에서 이 정도면 정말 잘한 거야. 처음엔 이런 감각이 익숙하지 않을 테니까.”한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사실, 그 자신도 처음 금용의 심장을 얻었을 때는 단순한 환영 진법만 구사할 수 있었다.이 진법은 모든 진법 중 가장 낮은 수준에 불과했고, 강자들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한지훈
문밖에 있던 상업계의 거물들이 무려 반나절을 무릎 꿇고 있었다.진우가 떠나는 순간, 도청전인이 한지훈을 대신해 말했다. “너희들은 이제 가도 된다! 우리 가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상인은 상업에만 전념해야 하며 아첨이나 권세를 따르는 데에 마음을 두어 선 안 된다고 하셨다!”말을 끝낸 도청전인은 소매를 뿌리치고는 곧장 별장으로 돌아갔다.그제야 상업계의 거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들은 도청전인이 했던 말을 기억할 리 없었고, 어쨌든 오늘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최대의 성과였다.강우연은 멀어져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돌아서서 한지훈에게 말했다.“오늘 정말 아슬아슬했어요. 방금 전에도 내가 다 손에 땀을 쥐고 있었다니까요!”“장씨 가문 사람들이 다시 우리를 괴롭히지 않겠죠?”조금 전, 한지훈과 장도령이 싸우는 동안 강우연은 2층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그 장면들을 모두 그녀는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고, 동시에 그녀의 인식은 완전히 새로워졌다.무도라는 것이 하늘과 땅을 좌우할 수도 있다니!천지의 기상마저 무도에 의해 변화한다는 것을 그녀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강우연의 말에 한지훈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장씨 가문이 어떻게 나올지 그는 알 수 없었고, 알 필요도 없었다.적이 오면 맞서 싸우면 되는 법, 이미 원한을 맺었으니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두려움은 오히려 상대에게 약점이 될 뿐이었다!“장씨 가문이 어떻게 하든 그건 그들의 문제야. 요 며칠 당신 몸 상태는 좀 어때?”한지훈은 강우연의 손을 잡고 함께 침대 옆에 앉으며 물었다.사실, 갓 아이를 낳은 강우연은 지금쯤 몸이 매우 약해져 있어야 했지만, 아이가 태어난 이후 그녀의 몸은 놀라운 속도로 회복되고 있었다.하루 남짓의 시간 동안, 강우연은 이미 삼성 지급 전신 경지의 힘을 되찾은 상태였다.“느낌이... 임신했을 때보다 더 힘이 넘치는 것 같아요. 기운도 훨씬 좋아졌고요. 저도 참 이상해요. 원래라면 아이를 낳고 한 달은 조리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노 씨 어르신은 한지훈의 차가운 시선이 자신의 몸을 꿰뚫고 있는 것을 느끼며, 고개조차 들지 못한 채 한지훈 앞에서 열 번 넘게 머리를 조아렸다.한지훈의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노 씨 어르신은 움직이지 못하다가, 한지훈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비로소 고개를 들어 올렸다.그는 서늘한 눈빛으로 한지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노 씨 어르신, 보아하니... 당분간은 그를 어찌할 방법이 없겠군요.”이때, 임천덕이 군중 속에서 나와 노 씨 어르신에게 다가와 두 손으로 그를 일으켰다.임천덕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존재가 한지훈에게 드러날까 두려워 숨어있었고, 한지훈이 떠난 후에야 그는 군중 속에서 나타났다. “흥! 네 사람들을 시켜 장도령의 시신을 거둬라! 그리고 천산으로 돌려보내도록!”노 씨 어르신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명령했다.“알겠습니다!”임천덕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제자들에게 장도령의 시신을 수습하라고 지시했다.별장으로 돌아온 후, 대장로는 발을 구르며 한지훈을 향해 말했다.“아이고! 북양왕, 너무 감정적으로 나섰군요. 장도령이 죽든 말든 큰일은 아니겠지만, 오늘의 일로 인해 국왕 폐하와 5대 명산 간에 틈이 생길 게 분명합니다!”“대장로님, 말씀은 이해합니다만, 5대 명산은 늘 은둔 생활을 하며 심지어 용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도 방관했던 걸 기억 못 하시는 건 아니겠지요?”“멀리 갈 것 없이, 오국 연합군이 용경을 공격했을 때, 5대 명산이 천왕급 인물 한 명만 내보냈어도 순식간에 백성을 수렁에서 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 일은 무엇입니까?!”“그저 방관했을 뿐입니다!”한지훈이 눈을 가늘게 뜨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면, 이들은 이익을 쟁취할 때는 한 치도 양보하지 않고 모든 것을 독점하려 듭니다. 용국의 국운이 다시 일어나는 지금, 화산이 동방 오우를 세상으로 내보낸 이유가 단순히 동방 가문의 복수를 위함이라고 보십니까? 저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한지훈은 고개를 저었다.5대 명산 같은 존
한지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손에 쥐어진 적색 장총이 가볍게 흔들렸다.푹!한 줄기 핏물이 장도령의 뒤통수에서 튀어나왔다.장도령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대장로는 뒤를 돌아 장도령의 시신을 바라보더니 두 눈을 꼭 감았다.이제 국왕과 5대 명산 간의 균열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장씨 가문은 필히 5대 명산을 선동하여 한지훈과 대립하려 할 것이고, 국왕은 결코 한지훈을 외면하지 않을 터였다.양측이 다시 화합할 수 있다는 희망은 이제 단지 아름다운 꿈이 되어버렸다.노 씨 어르신을 비롯한 이들은 멍하니 장도령의 시신을 바라보다, 잠시 후에야 모두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이 시점에서, 그들은 더 이상 한지훈과 적대할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렸다.예전에는 자신들 뒤에 있는 세력을 의지할 수 있었다.그러나 오늘, 장도령조차 한지훈의 손에 죽고 나니, 이제 그들은 누구도 의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반대로, 무맹의 장로인 노 씨 어르신조차도 앞으로 한지훈을 보면 피해 다녀야 할 처지였다.더욱이 장도령의 죽음은 반드시 무맹에 즉각 보고해야 할 일이었다.한지훈이 과거 노 씨 어르신과의 원한 때문에 무맹에게 복수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성 천급 천왕에 불과했던 한지훈이, 순식간에 오성 용급 천왕 중에서도 최고라 칭해지던 장도령을 쓰러뜨릴 줄이야!오늘의 전투를 통해, 한지훈의 이름은 반드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천신 경지의 강자가 나오지 않는 한, 한지훈은 사실상 천하무적과 다름없었다!그의 조정에서의 신분이든, 무종에서의 지위든, 오늘 전투로 인해 전례 없는 높이까지 올라갈 것이 분명했다.무신종을 제외한 거의 모든 문파가 이제부터는 한지훈의 눈치를 보며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한 천왕을 뵈옵니다!”노 씨 어르신이 가장 먼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한지훈에게 두 손을 모아 예를 표하며 극도로 공손하게 말했다.다른 이들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지훈 앞에 고개를 숙이며 무릎을 꿇었다.천왕!이것은 단순히 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