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이신향과 유사라는 백성 그룹과 흑호파의 악명에 대해 너무 많이 들었다.자연히 백씨 가문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았다.그녀들은 번갈아 가며 말을 쏟아냈고,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말에 예천우는 끼어들 틈조차 없었다.겨우 타이밍을 잡아 조용히 입을 열었다.“자, 다 말했어요?”두 사람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예천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그럼 이제 제 차례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백씨 가문 따위로는 절 어떻게 못 해요.”원래는 아예 백성 그룹이 자기 소유라는 말까지 하려다 말았다.이곳은 사람도 많고 흑호파와 백성 그룹의 평판도 좋지 않기에 굳이 입을 열 필요는 없었다.하지만 그 말투는 마치 백씨 가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고 이신향과 유사라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역시 우리 걱정할까 봐 일부러 저렇게 말하는 거겠지...’그녀들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됐어요. 괜히 분위기 망치지 말고 그냥 먹고 마셔요.”예천우는 아까 자리에서 일어난 것도 혹시나 싸움으로 가게를 망칠까봐 걱정했다고 설명했다.그런데 바로 그때 포장마차의 주인인 중년 아주머니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저기 손님... 아까 그 사람들은 아무래도 보통이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들으니까 전화하면서 무슨 사람을 부르네 어쩌네 하던데... 어서 자리를 뜨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이 말을 들은 이신향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러니까요. 천우 씨, 우리 이만 일어나요.”하지만 예천우는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그러곤 예천우는 아주머니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 저희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오히려 우리가 나가버리면 그놈들이 여기 와서 괜히 사장님께 화풀이할 수도 있잖아요. 저희 때문에 피해 보시면 안 되죠.”그 말에 아주머니는 더 이상 말없이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이신향은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천우 씨,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그럼요.”예천우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예천우는 황당하면서도 난감한 표정으로 두 여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애초에 술을 못 마시게 해야 했는데...’그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유사라가 잔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천우 씨, 사실... 나 예전부터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그런데 기회가 없었어요.”예천우는 그 말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유사라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얼핏 감이 왔다.“그러면 그냥 말하지 마요.” 그는 조심스럽게 막아보려 했다.“안 돼요. 오늘은 꼭 말해야 해요.” 유사라는 눈이 붉어진 채 진심을 담아 말했다.“오늘 아니면 평생 말 못 할 것 같으니까요...”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천우 씨, 나... 천우 씨를 좋아했어요. 아니, 지금도 좋아해요. 아주 많이... 너무 많이요...”“처음 천우 씨랑 같이 채무 수금하러 갔을 때 차분하고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하던 모습에 완전히 반했어요. 그 이후로도 계속 저를 도와주고 지켜주고...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자꾸 커졌어요.”“근데... 천우 씨는 제가 천우 씨를 좋아하는 거 한 번도 모르는 것 같았어요. 고백하려고 마음먹은 날도 있었는데... 항상 겁이 나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천우 씨랑 임완유 대표님이... 사귄다는 걸 알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죠. 그때부터 아,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난... 감히 그 사이에 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잊으려고 했어요. 그냥 포기하자고. 그런데 안 되더라고요. 너무 좋아했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차라리 평생 혼자일지언정 천우 씨를 포기하느니 그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제가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게 잘못된 거라는 거 알아요. 두 분 사이에 끼어드는 거니까. 그래서 감히 천우 씨의 아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마음은 멈출 순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그림자처럼 곁에 있을 수 있다면... 누군가 몰래 사
이신향이 흥분하여 말했다.“나도 사라처럼 천우 씨를 정말 좋아해요. 희망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우리의 순결을 천우 씨에게 바치고 싶어요! 천우 씨,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책임지라고 하지 않을게요. 사라도 마찬가지예요. 오늘 밤, 우리 둘이 천우 씨를 모실게요. 제발요!”예천우는 완전히 경악했다.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게다가 ‘제발’이라니!주변에서 이 말들 듣고 있던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벌린 채 방금 들은 말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예천우를 쳐다본 남자 동료들은 그를 삼켜버릴 듯한 표정을 지었다.몇몇은 아름답고 완벽한 두 여자를 보고 마음이 흔들렸지만 방금 예천우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바로 정신을 차렸다.“천우 씨...”이신향이 휘청하자 예천우는 급히 일어나 오른손으로 그녀를 부축했다.이신향은 예천우를 껴안더니 입술을 내밀었다.순간적으로 반응하지 못한 예천우는 잠시 후에야 말했다.“됐어요, 일단 돌아가서 이야기해요.”“네! 우리 바로 저 앞쪽에 살고 있어요! 플라워 아파트...”고개를 끄덕이는 이신향을 보니 확실히 많이 취한 것 같았지만 적어도 유사라보다는 나았고 의식도 또렷한 상태였다. 유사라와 같이 있기도 했고 또 술기운이 있었기에 이신향은 용기를 내어 방금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예천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가게 여자 사장을 불렀다. 상대방이 문제를 일으키러 오면 이곳으로 찾아와 알려달라고 했다.고개를 끄덕인 여자 사장은 예천우 남자 혼자서 여자 두 명과 관계를 하는 것이 지나치다고 생각했지만 두 여자의 말을 듣고는 예천우를 탓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오히려 예천우야말로 군자였다. 일반적인 남자라면 진작 자려고 안달이 났을 것이다. 물론 예천우가 여자들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니 결과는 비슷할 것 같았다.다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러워하며 예천우가 오늘 밤 행복을 톡톡히 누리겠다고 생각했다. 아름답고 섹시한 미녀 두 명이 함께 있을 테니 생각만 해도 행복할 정도였다.이 사람들의 생
방금까지 긴장을 풀고 있었던 예천우는 힘을 주지 않는 바람에 실수로 넘어져 부드러운 몸에 눌렸고 이내 그녀의 온기와 은은한 향기에 휩싸였다.눈 앞에 펼쳐진 백옥 같은 얼굴과 벚꽃 같은 입술, 매혹적인 큰 눈은 어떤 남자라도 취하게 할 만했다.더 참을 수 없게 만든 것은 이신향이 입술을 내밀어 예천우의 입술을 덮쳐 버린 것이었다.적극적이면서 부드럽고 아름다운 여자 앞에서 예천우의 몸은 불처럼 타올랐고 손은 자제할 수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얼굴이 점점 붉어진 이신향은 매혹적인 신음을 내뱉었다.예천우가 위에 올라탔고 이신향의 외투와 짧은 치마는 벗겨져 하얀 피부가 드러났다.두 사람의 움직임이 너무 커서일까, 유사라가 움직이며 이신향 옆에 바짝 다가갔다.이 때문에 두 사람은 모두 예천우 앞으로 왔다.너무 더워서인지 유사라는 오른손으로 옷깃을 잡아당겨 신체를 더 많이 노출했다.치명적이었던 바로 이 순간 귀에 거슬리는 벨 소리에 예천우는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조금 전의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며 아래에 있는 이신향과 유사라를 본 예천우는 급히 일어났다.이렇게 아름다운 두 여자 앞에서 정말 마음이 흔들렸지만 예천우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급히 일어나 휴대전화를 꺼낸 그는 발신자가 임완유인 것을 보고 얼른 일어나 옆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완유야!”“천우야, 왜 이렇게 늦어? 아직도 바빠?”임완유가 물었다.“응, 좀.”조금 전의 행동이 떠오른 예천우는 약간 긴장했다.“오늘 밤에는 일이 있어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아, 그래? 그럼 조심해.”임완유의 전화를 끊은 예천우는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에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취한 두 여자를 흘끗 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여기에 계속 있으면 저도 모르게 또 충동적으로 행동할 것 같았다.술을 많이 마셔서일까, 임완유와 즐긴 후로 점점 절제능력이 약해지는 것 같은 느낌에 예천우는 쓴웃음을 지었다.그렇지 않으면 절제력이 이렇게
“하지만...”약간 당황하던 예천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미안해요, 조금 전 일, 고의는 아니었어요.”“알아요, 내가 먼저 천우 씨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 거니까.”이신향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당당하게 인정하며 말했다.“천우 씨, 내가 그렇게 별로인가요?”예천우는 이신향을 보지도 않고 고개를 저었다.“신향 씨의 몸매, 외모, 인품, 능력 어느 하나 빠질 게 없어요. 하지만 알다시피 나는 이미 주인이 있는 남자예요.”“알아요. 하지만 말했잖아요, 천우 씨에게 그 어떤 책임도 묻지 않을 거라고.”“신향 씨는 책임을 묻지 않을 수는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만약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면 신향 씨도 친구가 되려고 하지 않았을 거예요. 안 그래요?”예천우의 반문에 이신향은 잠시 침묵했다. 사실 예천우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예천우가 이런 태도를 보일수록 이신향은 더 호감이 가는 것 같았다.예천우가 피하는 모습에 아무리 뻔뻔한 여자도 더 이상 제멋대로 굴 수 없었다.“알겠어요, 그럼 난 먼저 쉴게요.”하지만 그 순간 다시 백씨 가문이 떠오른 이신향은 눈에 걱정이 스쳤다.‘차라리 천우 씨를 보내주고 우리는 재빨리 도망치는 게 낫겠어. 잡히더라도 천우 씨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천우 씨, 별일이 없으면 이만 가세요!”“급할 것은 없어요. 누가 와서 두 사람 괴롭히면 어떡해요. 여기 있을게요.”예천우가 말했다.“괜찮아요. 천우 씨와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 이렇게 신세를 지면 안 되죠. 어서 가세요. 아니면 좀 이따 가지 못할 수도 있어요.”이신향이 말했다.“네... 알겠어요.”잠시 생각하던 예천우는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계속 여기에 머물다간 자제할 수 없을 것 같았다.게다가 성종 본사를 다녀온 후부터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정확히 무엇인지는 감지하지 못했다.문을 나선 후 1층에 도착했을 때 밖으로 나오니 흉악한 얼굴의 사내들이 무리 지어 서 있었
“너 대체 누구야? 잘 들어, 난 흑호파의 원로야! 우리 뒤에는 백씨 가문이 있기에 흑호파는 동성시에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조직이야!”채도식은 발에 짓밟혔음에도 여전히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아직도 인정하지 못하는 모양이군.”냉소를 지은 예천우는 휴대전화를 꺼내 백도훈에게 전화를 걸었다.한밤중이었지만 백도훈은 바삐 보내고 있었다. 백강호의 모든 것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쉽지 않았기 때문에 백강호의 친아들인 백지훈이 아직은 쓸모가 있었으므로 목숨을 살려두고 있었다.흑호와 회의 중이던 백도훈은 예천우에게서 전화가 온 것을 보고는 즉시 ‘통화’버튼을 누른 뒤 공손히 말했다.“주인님!”‘주인님?’예천우는 잠시 당황했지만 호칭에 신경 쓰지 않은 채 채도식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이름이 뭐야?”그러자 채도식이 즉시 거만하게 말했다.“내 이름은 채도식, 흑호파의 원로야. 날 건드렸으니 죽을 각오를 해.”예천우의 질문을 들은 백도훈은 잠시 당황했다. 주인님이 자신에게 이름을 묻는 건가 싶었는데 뒤이어 들려오는 목소리를 통해 주인님이 자신에게 묻는 게 아님을 알았다. 특히 ‘흑호파 원로’라는 말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흑호파 놈들이 주인님을 건드렸다고? 주인님을 죽일 거라고?’백도훈의 얼굴이 극도로 일그러졌지만 주인님의 지시가 없었기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예천우는 씩 웃더니 담담히 말했다.“백도훈, 다 들었지?”“들었습니다, 주인님. 죄송합니다. 관리가 부족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정확히 확인하고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백도훈은 즉시 흑호를 향해 말했다.“흑호, 흑호파의 채도식이 주인님을 건드렸을 뿐만 아니라 주인님을 죽일 거라고 했어요!”“뭐라고요!”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흑호는 분노가 치밀었다. 백강호가 사라진 후 모든 흑호파 멤버들에게 조용히 처신하라고 명령했는데 자기 일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주인님을 건드리다니!“당장 채도식에게 전화하세요!”분노하며 외친 백
예천우는 고개를 젓더니 또다시 발로 채도식을 차서 벽 쪽으로 날려버렸다.쾅!몸이 벽에 부딪힌 채도식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전화를 받을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두려움과 분노에 떨고 있었다.“왜 전화를 안 받아?”예천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들을 완전히 복종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데 낭비할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채도식은 전화를 받아도 된다는 말에 즉시 ‘통화’버튼을 눌렀다.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분노 가득한 흑호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채도식! 너 미쳤어? 감히 주인님을 건드려?”“주인님?”채도식은 멍해졌다. 백강호를 말하는 건가? 그럴 리가...“바로 네 앞에 있는 그 젊은 분이야. 당장 주인님께 용서를 빌어. 안 그러면 나도 같이 죽는다고!”흑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뿐만 아니라 백강호 열 명이 와도 주인님을 못 이겨! 그런데 그런 분을 건드리다니!”‘뭐라고?’이 말을 들은 채도식은 기절초풍 직전이었다.백강호 한 명 만으로 그에겐 절대적인 공포의 존재였는데 그런 백강호가 수십 명이 와도 가볍게 무너뜨린다니...그 말이 과장일지라도 실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이렇게 젊은 나이에 그런 실력을 갖춘 인물이라니...대체 어떤 존재일까? 용도 명문가 자제일까?그 순간 자신이 아주 공포스러운 존재를 건드린 것을 느낀 채도식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온몸을 휩싸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회사 평직원 두 명이 어떻게 괴물 같은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이런 배경이 있는데 왜 백성 그룹에서 말단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을까?“지금 어디에 있어?”흑호가 묻자 채도식은 즉시 위치를 보고했다.그러자 흑호가 욕을 퍼부으며 전화를 끊었다.“지금 바로 갈 테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주인님의 용서를 받아내.”완전히 정신이 나간 채도식은 겨우 기어 일어나 예천우 앞에 무릎을 꿇었다.“주인님! 제가 잠깐 미쳐서 눈이 돌아갔나 봐요. 죽을죄를...”채도식을 따라온 일당들은 입을 벌린 채 넋을 잃고 있었다.평소 그토록 위엄
한편 이 자식들이 무슨 짓을 할 용기가 없을 거라고 판단한 예천우는 정말로 올라가지 않았다. 게다가 흑호가 곧 도착할 예정이었기에 흑호가 옆에 있으면 당연히 어떤 문제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여기에 머무는 것보다 차라리 집에 가서 아내 옆을 지키는 게 나았다.아니나 다를까 흑호는 매우 빨리 도착했다.이런 일이 발생하자 한달음에 달려온 흑호는 도착하자마자 바로 예천우를 알아보고는 공손히 말했다.“주인님!”‘또 주인님이라... 다들 이렇게 부르는 게 유행인가?’예천우가 눈살을 찌푸리자 그의 표정을 본 흑호는 겁에 질려 얼굴이 새파래졌다. 백강호가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 그리고 이전에 주인님에게 손을 댄 일이 떠오른 흑호는 창백한 얼굴로 바로 무릎을 꿇었다.“제 부하들이 주인님을 번거롭게 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흥!”예천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죄가 있다는 걸 알고는 있어? 잘 들어, 이전엔 내가 별로 신경 안 썼지만 이제부터 흑호파에서 불법을 저지르는 놈이 있으면 너에게 책임을 물을 거다.”“네! 제가 부하들을 확실히 가르치겠습니다. 누구든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면 평생 후회하게 만들겠습니다.”흑호는 진심으로 예천우와 약속했다.백도훈이 말했듯 주인님을 따라가려면 주인님의 생각까지 따라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주인님께 버림받을 것이다.“그러길 바랄게! 여기 일은 네게 맡길게. 그 여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너희들은 죽을 각오 해.”예천우는 이 말만 남기고 바로 떠났다.흑호는 더 이상 이신향과 유사라에게 문제를 일으킬 용기가 없을 것이기에 안심하고 떠날 수 있었다.“네, 주인님. 조심히 가십시오!”예천우가 사라진 후에야 고개를 든 흑호는 주변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채도식, 망할 놈! 오늘 두 여자에게 용서를 받지 못하면 내 손으로 직접 묻어버리고 말겠어!’위층으로 올라간 흑호는 문 앞에 무릎 꿇고 있는 채도식과 그의 부하들을 발견했다.
“됐어. 난 사과받을 자격 없어.”이성진 회장이 싸늘하게 말하자 조신우는 완전히 얼어붙었다.그는 그저 백주 협회 회장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막말을 퍼부은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인물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게다가 자기 삼촌인 조혁진조차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릴 정도였다.하지만 조신우가 몰랐던 건 애초에 조혁진이 이번 술자리의 자리에 함께하게 된 것도 운이 좋았을 뿐 그조차도 이 자리에 참여할 자격이 애매한 사람이었다.왜냐하면 오늘 자리는 강흥시의 유명 인사인 도 대표님이 이 지역 투자 건으로 방문하면서 직접 시장이 배석해 마련한 자리였기 때문이다.“뭘 멍하니 서 있어. 당장 무릎 꿇어!”조혁진의 얼굴은 이미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조신우를 꾸짖었다.조신우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그 누구보다 조혁진에게는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았고 그의 얼굴만 봐도 지금 자신이 얼마나 큰일을 벌였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특히 이신향 앞에서 무릎을 꿇는 건 자존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았다.조혁진은 이미 분노의 극에 달해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였다.그제야 조신우는 이를 악물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회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눈이 어두워 뵙지를 못했습니다. 제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그에 맞춰 조혁진도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이 회장님, 신우가 정말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제가 따로 시간을 내서 제대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조만간 반드시 직접 찾아뵙겠습니다.”“됐어.”이성진은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사과하러 온다는 건 결국 선물이나 뇌물 같은 걸 들고 오겠다는 뜻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런 건 관심도 없었다.“오늘처럼 기분 상하게 하는 일도 드물었지만 그래도 이 술을 만난 덕분에 기분이 조금 풀렸어. 그 공으로 이번만은 눈 감고 넘어갈게.”그러고는 술병을 가볍게 들어 보이며 물었다.“이 술은 네 것이야
“실례합니다. 혹시 이 술이... 여러분 겁니까?”이성진 회장은 룸에 들어서자마자 묻지 않고는 못 참겠다는 듯 바로 입을 열었다.그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어떻게 이런 고급술을 들고 와서는 가짜라고 단정 짓고 그냥 버리려 한단 말인가.’방금 밖에서 스쳐 지나가던 종업원이 술을 들고 가는 모습을 보고 이상한 향이 나서 따라가 봤더니 그게 바로 그 술이었다.이 말을 들은 모두가 순간 멈칫했다.하지만 가장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이제동이었다. 그는 막 돌아와 후회로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 술병을 든 노인을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저, 저 술이... 다시 돌아왔다고?’그는 거의 튀어나올 듯한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했다.“네. 저희 겁니다. 그 술은 저희 거 맞아요.”이성진 회장은 단호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정말 어처구니가 없군요. 이게 진짜 명품 술인데... 어떻게 가짜라고 생각해서 버릴 수가 있습니까? 이건 그냥 낭비도 아니고 범죄 수준이에요!”이제동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고 사실 그도 진짜인지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저 노인의 말투를 보니 정말 진짜였던 모양이다.그런데 갑자기 조신우가 비죽 웃으며 끼어들었다.“이보세요, 노인네. 연기 참 잘하시네요? 도대체 예천우가 얼마를 쥐여줬길래 이렇게 연극까지 해주는 거죠?”“뭐라고?”이성진 회장의 눈이 번쩍 빛났고 그는 당장이라도 테이블을 뒤엎을 기세였다.“연기 말이에요. 아주 실감 나는데요?”조신우는 비웃으며 예천우 쪽을 힐끔 쳐다봤다.“예천우, 솔직히 말해 봐. 이거 뭐 하자는 거야? 가짜 술 하나로 사람들 속이고 저 노인네까지 고용한 거야?”그 말에 이성진은 완전히 폭발 직전이었다.“헛소리 작작 하게나. 젊은이, 내가 지금까지 했던 말은 하나도 거짓 없고 모두 사실이야. 못 믿겠으면 백주 협회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봐. 내 사진이랑 이력 다 나와 있을 거야.”그 말이 끝나자 조신우는 또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였다.화장실에 간다던 이제동이 다시 돌아왔다.하지만 얼굴엔 미묘한 실망감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사실 그는 화장실에 간 게 아니었다.밖으로 나가 방금 나간 여종업원을 찾아다녔지만 아쉽게도 이미 늦은 뒤였다.그 술을 돌려받지 못한 것이다.‘하... 아까 그냥 진짜라고 말할걸. 괜히 허세 부리다 술까지 날려버렸네...’그는 깊은 후회를 씹어 삼키며 방 안으로 들어섰는데 탁자 위에 놓인 또 다른 술병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이건 뭐야?”“예천우가 또 꺼낸 거죠. 근데 딱 봐도 평범한 마오타이잖아요. 병에 페이톈 마크도 없고 제대로 된 것도 아니네요.” 조신우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고 예천우는 그런 그를 힐끗 보며 마치 바보 보듯 조용히 되받아쳤다.“페이톈 마크가 없으면 무조건 싸구려야?”“당연하지!” 조신우는 자신만만하게 외쳤고 예천우는 피식 웃으며 다시 물었다. “그럼 페이톈이 나오기 전 마오타이가 뭔지 알아?”조신우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는 원래 백주보단 와인을 선호했기에 이런 배경지식엔 무지했다.그때였다.이제동이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설마... 1958년산 오성 마오타이?”그 한마디에 방 안 분위기가 다시 술렁였다.조신우는 다시금 멈칫했고 예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맨날 입에 페이톈만 달고 다니더니... 오성 마오타이는 들어본 적도 없나 보네요? 조씨 가문의 자제라는 분이 참...”“흥. 누가 알아. 그것도 가짜일 수 있잖아?” 조신우는 씩씩대며 말했다.“아저씨, 이번에도 한 번 맛 좀 봐주시겠어요?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 좀 해주시죠.”예천우도 미소를 띠며 맞받아쳤다.“맞아요. 진짜인지 확인해야죠. 가짜라면 또 쓰레기통 직행이니까요.”그 말에 이제동은 손끝이 살짝 떨렸다.그는 천천히 술병을 들어 포장과 마개를 살펴봤다.예전에 단 한 번 직접 본 적 있었고 아주 조금만 맛본 기억이 뇌리에 남아 있었다.‘설마... 정말 그 술이?’조심스레 병을 열고 한 잔을 따랐다.잔을
이제동은 처음엔 이 술이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둘러댈지 고민했지만 예천우가 정확히 이 술의 가치를 알고 있다는 걸 깨닫자 결국 포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예전에 용도에서 열린 경매에서 이 술 한 병이 무려 2억 넘게 낙찰됐어.”“뭐라고요? 2억이요?”방 안이 술렁였다.조신우는 그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말도 안 돼. 저런 평범한 놈이 어떻게 그런 술을 가질 수 있단 말이야?’ 그는 곧바로 외쳤다. “말도 안 돼요. 이거... 이거 분명 가짜예요. 가짜 술이 틀림없다고요!”그 말에 한지연과 이신향도 순간 흔들렸다.‘그러고 보니... 혹시 진짜 가짜 술이면 어쩌지?’예천우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조용히 말했다.“진짜인지 가짜인지야... 아저씨가 한 모금 드셔보시면 아실 겁니다.”“그... 그래. 마셔볼게.”이제동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술잔을 들어 한 잔을 따랐다.입에 가져간 뒤 천천히 음미하자 그 향과 맛이 그대로 온몸에 퍼졌고 마치 영혼 깊은 곳까지 따뜻하게 감싸주는 듯한 느낌이 전해졌다.‘이야... 이건... 진짜야.’말하지 않아도 그의 표정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특히 한지연은 남편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그가 백주에 얼마나 진심인지 그 눈빛 하나로도 이미 확신할 수 있었다.‘진짜... 진짜인 건가?’하지만 조신우는 그 광경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이게 뭐야... 왜 저런 놈이 이런 술을 가지고 있냐고... 왜!’ 그는 억지로 말꼬리를 물었다. “아저씨... 어떠세요? 정말... 정말 이게 진짜 같나요?”그 말엔 은근한 압박이 실려 있었다. 지금 진짜라고 대답하면 조신우의 체면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그걸 눈치챈 이제동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이다가, 곧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어. 맛은 괜찮은데 아주 뛰어나다기보다는 평범한 것 같네. 글쎄... 진짜는 아닌 거 같기도 하고...”그 말에 방 안 분위기가 살짝 멈칫했다.‘진짜...
“천우야, 아까 술 가지고 왔다며? 얼른 꺼내 봐. 네 아저씨가 술 하나는 진짜 좋아하셔.” 한지연이 살갑게 말했다.이제동은 뭔가 말하려다 말았지만 아내가 눈을 부릅뜨며 째려보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조신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그는 이제동도 자기 편이고 이 집 분위기도 다 자기 쪽이라 생각하니 완전히 이긴 기분이었다.‘좋아. 어디 보자. 저 자식이 들고 왔다는 술이 대체 얼마나 형편없는 건지 직접 보자고.’예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용히 가방에서 술 한 병을 꺼냈다.병에는 분주라고 적혀 있었고 얼핏 봐도 평범한 술은 아닌 듯한 깊이 있는 외관이었다.물론 마오타이 같은 유명 술은 아니었지만 병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묘하게 남달랐다.그 모습을 본 이제동은 순간 멈칫했다.평소 백주를 즐겨 마시는 그는 술꾼끼리 떠도는 이야기와 시장 정보를 꽤 알고 있었다.‘이거... 설마... 50년산 한정판 분주야?’그 이름만 들어도 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불리는 고급 백주였다.십몇 년 전 용도에서 열린 한 경매에서 단 한 병에 4억 원 넘게 낙찰됐던 그 술이었다.지금 시세로 치면 훨씬 더 높을지도 몰랐다.‘설마 진짜 그런 술일 리가... 아니겠지?’조신우는 병 라벨을 힐끔 보더니 툭 비웃으며 말했다.“봐. 내가 뭐랬어. 역시 마오타이도 아니잖아. 고작 집에서 들고 온 싸구려 술이겠지.”그러다 이제동이 술병을 유심히 바라보며 표정이 묘하게 변하자 슬쩍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그리 화내지 마세요. 어차피 그냥 술 아닙니까. 다음에 제가 제대로 된 마오타이 한 병 챙겨드릴게요. 진짜 좋은 걸로요.”조신우는 그 말에 은근히 힘을 실었다.지금 마오타이는 프리미엄이 붙어서 웬만하면 60만 원은 훌쩍 넘는 고급술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바로 그때 이신향이 뭔가 말을 꺼내려던 찰나 이제동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눈은 술병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목소리엔 믿기지 않는 떨림이 담겨 있었다. “이, 이게 설마... 50년
예천우가 잠시 말이 없자 한지연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물론 그녀 입장에선 아들을 위해 이신향이 조신우 같은 사람과 인연을 맺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천우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그녀는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서둘러 나섰다.“조신우 씨, 농담이죠? 여긴 그냥 평범한 식당인데 그런 최고급 술이 있을 리가 있나요.”하지만 조신우는 턱을 치켜들며 기세등등하게 말했다.“그럼 딴 데 가시죠. 이딴 데선 도저히 못 먹겠네요.”그 말에는 노골적인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풋, 네가 나한테 밥 한번 사보겠다고? 한참 멀었어. 이 정도 식당에서 몇십만 원 쓰는 것만으로도 네 눈은 휘둥그레지겠지.’조신우는 속으로 그렇게 예천우를 조롱하고 있었다.그런데 예천우는 그를 슬쩍 쳐다볼 뿐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무심하게 말했다.“애초에 난 널 초대한 적도 없어.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돼.”그 말에 조신우의 얼굴빛이 확 어두워졌고 이제동은 깜짝 놀라 급히 끼어들었다.“천우야, 너 지금 무슨 말버릇이니. 조신우 씨가 어떤 분인데? 이런 분께 음식 대접하게 된 것만으로도 너에겐 큰 영광이야.”예천우는 살짝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고 그러자 이신향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아빠, 그런 말은 너무하시잖아요. 오늘은 천우 씨가 초대한 자리예요. 뭐가 나와도 그걸로 먹는 거죠. 손님이 무슨 메뉴까지 고르고 술까지 따져요?”그러고는 예천우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천우 씨, 제가 가서 식당에 무슨 술 있는지 보고 올게요. 적당한 거 가져다드리면 되죠.”하지만 예천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막았다.“괜찮아요. 제가 준비해 왔어요. 굳이 여기 술 안 써도 됩니다.”사실 그가 가져온 술은 모두 공간 반지 안에 들어 있었기에 언제든 꺼낼 수 있었지만 굳이 이목을 끌고 싶진 않아 자연스럽게 옆 가방에서 꺼내는 척을 했다.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잠시 멈칫했다.방금까지 분명 손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느새 술병이 나타난 것이다.하지만 누구
“흥, 그건 당연하지.”조신우는 냉소를 머금고 말했다.“쟤는 그냥 세상 물정 모르는 거죠.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 알아서 무릎 꿇게 될걸요?”“그럼요. 조신우 씨,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죠.”이제동은 말하면서도 속으론 걱정이 가득했다.이신향이 갑자기 남자 친구를 데려왔다는 것도 머리가 아픈데 예천우가 무턱대고 나서서 조신우를 자극할까 봐 더 불안했다.특히나 예천우라는 사람은 뭘 좀 안다고 착각하는 무모함까지 있으니 더 위험했다.예천우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먼저 안으로 향했다.그런 모습에 이제동과 한지연은 눈살을 찌푸렸고 이신향은 난감한 마음에 얼른 뒤따랐다.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괜히 예천우에게 미안한 마음만 커졌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괜히 그가 모욕당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조신우도 마지못해 따라 들어왔고 일행은 함께 식당 안으로 향했다.내부는 화려한 인테리어 대신 전통적이고 소박한 농가 스타일로 꾸며져 있었는데 이런 분위기는 오히려 대도시 고위층들이 선호하는 콘셉트 중 하나였다.하지만 조신우는 들어서자마자 얼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내저으며 투덜댔다. “뭐야, 이런 촌스러운 데를? 딱 봐도 저질이네. 대도시에서 인당 2만 원도 안 되는 데면 분명 어디서 쿠폰이라도 긁어온 거겠지.”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오히려 잘 됐네. 이따가 제대로 면박 줄 수 있겠다.”사실 오늘 조신우는 아버지에게서 활동 자금으로 4억 원을 통 크게 받아온 상태였다.그 돈으로 오늘 제대로 부자의 삶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이었다.이번 자리는 급하게 잡긴 했지만 예천우에겐 아무런 어려움도 아니었다.왜냐하면 이 동강루의 최대 지분을 가진 대주주가 바로 천상 그룹이었고 결국 이 식당도 그의 사업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그러니 예약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사실 식당 대표는 그에게 가장 최고급 방을 준비하겠다고 했지만 예천우는 일부러 거절했다.너무 티 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그의 안내로 모
차는 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한참을 달린 끝에 곧바로 예동구 동강루 주차장에 도착했다.동강루는 동성에서 손꼽히는 고급 식당 중 하나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부자들과 고위 인사들이 주로 회식이나 접대를 위해 찾는 곳이었고 일반인들이라면 예약 잡기도 어려웠다.비록 이신향의 부모는 세상 물정에 밝진 않지만 식당 외관만 봐도 그 수준이 꽤 남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어머니는 감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천우야, 여기 꽤 괜찮아 보이네. 혹시너무 비싼 데는 아니겠지?”예천우는 혹시라도 부담스러워할까 싶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그냥 평범한 집밥 수준이에요. 1인당 2만 원도 안 돼요.”이신향의 부모님이 괜히 위축될까 싶어 대충 둘러댄 말이었다.“그래? 다행이네. 옷차림도 단정하고 검소해 보여서 걱정했는데... 근데 너 옷이 참 잘 어울린다. 보통 옷 같은데도 은근히 멋스럽네?”식당 앞에 내린 뒤 한지연은 그제야 예천우를 천천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전엔 제대로 보지 못했기에 이제서야 그의 차림새를 눈여겨본 것이다.“하하. 그냥 대충 산 거예요.”예천우는 웃으며 답했다.겉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옷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가 입은 건 평범한 브랜드가 아니었다. 다만 보는 눈이 없으면 모를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이런 스타일을 더 선호했고 편하고 자연스러워서 좋았다. 가끔 무시당하는 걸 제외하면 괜찮은 선택이었다.“그럼 이제 안으로 들어갈까요?”예천우가 말했다.하지만 그때 이제동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잠깐만. 조금 있으면 조신우가 올 텐데 여기서 기다리자.”조금 전 조신우에게 실례를 한 것도 있고 괜히 먼저 들어갔다가 또 기분 상하면 어쩌나 걱정되는 눈치였다.이신향은 상황이 불편해질까 봐 급히 말했다.“우선 안으로 들어가요. 천우 씨가 여기 남아서 기다리게 하면 되잖아요. 게다가 조신우도 아마 엄마 아빠 전화번호는 알고 있을 텐데 도착하면 어느 방인지 물어보면 되죠.”하지만 이제동은 단호했다.“안 돼. 꼭
“그래... 예천우란 사람은 내가 잘 모르긴 해도 조신우 같은 남자를 두고 굳이 다른 사람을 택하겠다는 건... 솔직히 이해가 안 돼.”한지연이 조심스레 말을 보탰다. 예천우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조시욱 정도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라 생각했던 것이다.“조신우랑 결혼하면 적어도 네가 남은 인생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거 아니야. 이렇게 고생하지 않고 말이야.”그 말을 덧붙인 뒤 그녀는 예천우를 향해 부드럽게 설명했다.“천우야, 오해하지 마. 아줌마가 너를 싫어해서가 아니야. 그냥... 조신우가 너무 뛰어나서 그래. 신향이한테도 잘 어울리고. 너도 성격이 괜찮은 것 같긴 해. 근데 아무래도 평범한 집안에서 자란 것 같더라. 네가 신향이랑 안 어울린다는 게 아니라... 조신우랑 비교하면 차이가 너무 크잖아.”예천우는 어이없어 웃음이 나왔다. 그냥 잠깐 가짜 남자 친구 행세를 하겠다고 했을 뿐인데 이 집에선 벌써 그를 깎아내리기 바빴다.그는 곁눈질로 이신향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그러자 이신향이 급히 나섰다.“누가 그래요? 천우 씨가 조신우보다 못하다는 건 말도 안 돼요. 엄마 아빠는 모르겠지만 제가 지금 다니는 회사가 어디인지 아세요? 바로 천우 씨 회사예요!”“무슨 헛소리야! 신향아, 넌 원래 거짓말 같은 거 안 하던 애였잖아. 근데 지금은 왜 자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아빠가 그렇게 쉽게 속을 사람인 줄 알아?”이제동은 곧장 나무라듯 말했다.“진짜라니까요!”“진짜는 무슨... 너 며칠 전에 뭐라고 했어? 지금 백성 그룹 다닌다며?”“맞아요!”“그럼 됐지. 네가 그날 뭐랬는지 기억나? 백성그룹은 백씨 가문 거라며? 백씨 가문은 동성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 있는 집안인지 아빠도 다 아는데. 근데 지금 네 남자 친구가 백씨 가문 사람이야?”“아니에요.”“그럼 됐잖아. 백성 그룹이 예천우의 회사라니... 그건 완전 말도 안 되는 소리지.”“그건... 그게... 사실은...”“무슨 사실? 엄마 아빠도 네가 천우랑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