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태의는 이날도 우문호의 상처를 처치하기 위해 찾아왔는데 이 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물어왔다. 하여 탕양이 사람을 보내 원경능을 모셔오게 했다. 원경능이 초 태의에게 말했다.“이 실은 계란 흰자와 같은 물질로 만든 실(蛋白线)이라네. 인체가 흡수할 수 있으니 제거할 필요가 없네.”“계란 흰자로 실을 만든단 말입니까? 대단하군요, 정말 대단해요!”초 태의가 감탄했다.반면 우문호는 몹시 답답해졌다.“허면 본왕은 앞으로 이 실들과 생사를 함께 해야 한단 말이야?”“그렇죠, 실이 살면 당신도 살고, 실이 죽으면 당신도 죽어요.”원경능이 비웃으며 말했다. 이틀 동안 두 사람은 그나마 유쾌하게 지냈기에 가끔 서로를 비꼬기도 했다.서일은 초 태의의 의술에 탄복하고 있었다. 하여 왕야의 상처를 처리한 틈을 타서 급히 그에게 질문했다.“태의, 제가 요즘 몸이 좀 불편합니다. 혹시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어디가 불편한가, 서 시위(徐侍卫)?”초 태의는 겸손하고 온화한 사람이었다. 그는 서일이 일개 왕부의 시위라 하여 얕보지 않았다.“요즘 자꾸 졸립니다. 머리도 좀 멍하고요. 방귀도 잘 나오는데, 냄새는 어찌나 독한지. 참, 입 냄새도 심합니다. 머리도 기름지고 엉덩이에 종기(疙瘩)도 많이 났습니다. 태의, 안쪽으로 들오시면 제가 종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정말 끔직합니다….”이 말을 하며 서일이 태의를 병풍 뒤로 이끌었다.병풍 바로 앞에 앉아 있던 원경능은 서일의 옷 벗는 소리가 들려오자 조금 어색해했다.우문호가 병풍 뒤에 대고 화를 냈다.“서일, 네 방으로 꺼진 후 옷을 벗어라.”병풍 안쪽에서는 서일의 긴 방귀소리가 전해졌다. 소리는 매우 규칙적이었는데 마지막에는 거의 폭발에 가까운 소리를 끝으로 뚝 멎었다.“바로 이 냄새입니다. 태의. 혹시 제가 무슨 병에 걸린 게 아닙니까?”서일은 대놓고 우문호의 분노를 외면하고 있었다. 태의가 코를 틀어막고 뛰쳐나오며 말했다.“됐네, 서 시위. 자네가 무슨 병인지 알겠어. 자넨 비장이 상해서
태의가 진료를 마치고 나온 후에야 경후는 태의와 서일을 이끌고 대청에 가서 차를 마셨다.경후가 서일에게 넌지시 물었다. “왕야의 상처는 괜찮아졌는가?”“경후 덕분에 왕야께서 많이 좋아지셨습니다.”서일은 밖에서는 그래도 신분에 걸맞게 행동했다.“그럼.....”경후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왕비는 친히 왕야를 돌보는 것인가? 본후(本侯)의 딸은 저택에서 너무 떠받들며 키웠던 터라, 왕야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는지 모르겠네?”“왕야는 한번도 왕비에게 화를 내신 적 없습니다.”서일은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해댔다. 이건 탕양이 시킨 것이었다. 그는 만약 경후가 왕비와 왕야의 관계가 안정됐다는 걸 알면 자연히 왕비를 너무 못살게 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가?”경후는 그다지 믿지 않았다. 하지만 하인도 왕비가 왕야를 부축하여 집안에 들어가는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보았다고 말했었다. 설마 원경능이 정말 초왕의 환심을 샀단 말인가? 이때 태의도 귀신같이 그를 도왔다. 그가 수염을 쓸어 내리며 감탄했다. “왕비와 왕야는 참으로 금슬이 좋습니다. 요 며칠 왕야를 치료해줄 때 왕비는 항상 옆에서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당연히 원경능이 옆에 있었던 건 몰래 그의 의술을 배우기 위해서 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중의학(中医)에 대해서 잘 몰랐다. 하지만 중의 치료법은 믿고 있었다. 필경 오랫동안 약물연구를 해온 지라 예전에도 약초에서 성분을 추출해 중약을 만들어 보기도 했었다.”말라리아(疟疾)와 홍반성 낭창(红斑狼疮)을 치료하는 아르테미니신(青蒿素)도 제비쑥(青蒿)에서 직접 추출해내거나 제비쑥에서 함량이 제일 높은 아르테미노산을 추출해 반합성하여 만든 것이다.때문에 이 며칠 그녀는 줄곧 구실을 대서 태의에게서 중의학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경후는 초 태의의 말을 듣고서야 둘의 관계를 믿었다.초왕이 무엇 때문에 원경능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이건 좋은 일이었다. 필경 이젠 저씨 집안의 미움을 산 건 이미
우문호는 서일의 부축임을 받으며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흰색의 비단옷에 허리는 금과 옥으로 만든 띠를 두르고 있었다. 수려한 얼굴은 태양빛에 둘러싸여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병약한 신선 같았다. 걸음걸이가 너무 느려 한 발짝 걸을 때마다 전신의 힘을 다 소진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힘겹게 걸어온 그는 얼굴을 활짝 펴고 부드러운 눈매로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원경능을 바라보았다.“왕야, 건강은 괜찮으십니까?”둘째 노부인이 바삐 문안을 전했다. 난씨도 얼른 일어났다. 좀 놀란 표정이었다. 우문호는 눈길을 원경능의 얼굴에서 둘째 노부인에게로 옮기고 웃으며 말했다. “둘째 노부인 덕분에 본왕이 많이 건강해졌습니다.”말을 마친 우문호가 천천히 원경능에게 걸어가더니 글쎄 볼멘소리로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직도 화 났어? 오늘 날 보러 오지도 않고. 이만 화 푸는 게 어때?”원경능은 그를 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은 도대체 뭘 어쩌려고 이러는 걸까? 고의로 화목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그녀를 위해서라 하지만, 이렇게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저는 화 안 났어요.”그는 그제야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화 나지 않았다니, 다행이야. 허면 오늘 본왕과 함께 나가기로 한 건, 같이 갈 건가?”자신이 그런 말을 한적이 있었던가?“지금은 손님이 와서요.” 우문호는 난처한 표정으로 둘째 노부인을 힐끔 보면서 말했다. “그래? 허면 갈 수 없는 것이 아닌가?”둘째 노부인은 바삐 말했다. “시간도 많이 지났으니 이 늙은이는 이제 돌아가야겠습니다.”“이렇게 빨리 말입니까? 더 앉아있다 가시지요?”우문호는 아주 열정적으로 만류하는 듯했다.“아닙니다, 아닙니다. 이 늙은이도 할 일이 있어서요. 나중에 시간되면 다시 왕야....와 왕비를 뵈러 오겠습니다.”둘째 노부인은 말하면서 난씨와 원경병에게 눈치를 줬다.원경병이 말했다. “방금 큰언니가 말했어요. 제가 여기서 며칠 지내도 된다고요.”“그럼.....”둘째 노부인은 우
우문호는 이를 악물고 가슴을 문지르며 속으로 다짐했다. 이 일이 잘 해결되면 반드시 원경능을 암실로 끌고가 미친개를 풀어 그녀를 백 번 물게 하여 오늘의 이 원수를 갚을 거라고. 원경능은 ‘후’하며 숨을 내쉬었다. 온 몸이 다 개운해진 느낌이었다. 마음도 아까처럼 불안하지 않았다.하지만 그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보노라니 확실히 조금 전에 너무 심하게 물어뜯은 것 같아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미안해요. 당신을 물어뜯으면 안 됐었는데.”우문호는 그녀의 진심 어린 맑은 눈동자를 보며 마음속으로 자신의 뺨을 내리치며 경고했다. 마음 약해지면 안 된다고. 이 여인은 진심으로 사과하는 게 아니라 그저 진심인척 할 뿐이라고.“참,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미친 사람처럼 말이에요. 정말 미안해요.”원경능은 계속 사과했다. 낯빛도 의기소침하고 괴로워하는 듯했다. “저도 당신이 절 위해 그런다는 걸 알아요. 절 위해 친정식구들 앞에서 연기도 해주고 제가 술에 취해 집에 가고 싶다고 한 말도 기억해주고. 당신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저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계속 당신과 맞서기만 했던 것 같아요.”우문호는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됐어. 본왕도 당신하고 따지기 귀찮아.” 원경능은 감격해서 말했다. “저는 진작에 왕야가 도량이 넓은 분이란 걸 알고 있었어요. 그럼 태후 앞에서도 저를 위해 덕담 많이 해주세요.”“본왕은 당신과 한 약속을 절대 저버리지 않아.”우문호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그에 원경능이 온 얼굴에 웃음꽃을 활짝 피우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왕야.” ‘사내들은 달래기가 참 쉽네. 마구 칭찬해주면 되는군.’우문호도 속으로 자신이 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냥 내버려 뒀다. 여인과 똑같이 굴고 싶지 않았다. 특히 이 못생긴 여인과는.이렇게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나니 입궁하는 마음도 그렇게 무겁지 않았다.일년 전에 원경능을 맞이하고 나서부터 매번 입궁할 때마다 그는 기분이 나빴다. 궁의 그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우문호는 열심히 땅바닥을 쓸었다. 바닥을 쓰는 일은 간단해 보였지만 거기에도 학문은 있었다. 예를 들면 낙엽은 될수록 한 무더기로 모여놓아야 했다. 체적이 커야 바람이 불어도 잘 날리지 않았다. 여러 무더기로 해놓으면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다 날려가 버리고 만다.쓸고 있노라니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그의 마음도 많이 후련해졌다.“왕야, 난각(暖阁) 쪽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나무 위에 말벌둥지가 있습니다. 저녁이 되면 태워버릴 예정인데 벌들을 놀라게 하지 마십시오. 큰 일 납니다.”상공공이 주의를 주며 말했다. “말벌둥지?”우문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반문했다. 원경능에게 물어뜯긴 가슴이 아직도 은근히 아팠다. 원경능을 쓸게 했어야 했는데.“네, 이 말벌들은 굉장히 사납습니다. 낮에는 감히 태우지 못했습니다. 태상황이 창문을 닫으려 하지 않으셔서 저녁에만 태울 수 있습니다.”상공공이 말했다.“알겠네.”우문호가 말했다.상공공도 그를 관계하지 않고 태상황을 시중들러 들어갔다.계책이 떠오른 우문호가 탕양에게 명령했다. “가서 왕비를 모셔 오거라. 본왕이 청소하는 곳을 바꾸어 준다고 하거라.”탕양이 말했다. “왕야, 어서방 그곳에는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왕야가 가기에는 좀 부적절 한 것 아닙니까?”. 우문호는 입 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괜찮다. 고사가 거기 있으니 그때 가서 고사더러 좀 주위를 살펴보라 하면 된다. 사람들이 오면 숨으면 그만이다.”탕양이 자리를 떠났다.원경능은 우문호가 자신과 바꾸어 준다는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도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자신이 창피 당하는걸 막으려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의 호의를 받아 들여야지.그녀는 빗자루를 들고 건곤전으로 돌아 왔다. 그는 이미 앞 마당을 다 쓸어놓았다. 굉장히 빠른 속도였다.우문호가 걸어오며 말했다. “본왕이 그대를 생각해주지 않는단 말은 하지 말아. 이 빗자루가 무거우니 당신은 힘이 없어 잘 쓸 것 같지 못해서 본왕이
명원제는 상주서(奏折)를 읽고 있었다. 그가 들어오기 직전에 손 대학사(孙大学士)가 나갔다. 손 대학사는 입이 가볍기로 이름있는 사람이었다. 만약 그가 우문호가 어서방에서 청소하는걸 보았다면 아마 하루가 안돼 조정의 모든 문무백관들이 다 알게 될 것이다.“고개를 들거라!”명원제의 목소리가 그의 왼쪽 어깨 너머에서 들려왔다.우문호는 걸레를 들고 천천히 돌아섰다. 마치 비파를 끌어안고 절반 얼굴을 가리듯, 억지 웃음을 지어냈다. “부황!”명원제는 입술을 실룩거렸다. 몇 초 응시하다가 자신이 확실히 폭소를 참을 수 있다고 확신하자 냉랭하게 말했다. “못난 놈이 더 못된 짓을 많이 한다더니.”우문호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있었다. 이것과 못난 놈이 더 못된 짓을 많이 한다는 게 뭔 상관이란 말인가?“목여, 거독 연고(祛毒膏)를 가져다 다섯째에게 발라주거라!”명원제가 명을 내렸다.“거독 연고요?”목여공공이 흠칫 놀라며 물었다. “그건 …”“무슨 허튼소리가 그렇게 많은 것이냐?”명원제가 차갑게 말했다.목여공공은 응하며 장롱 속에서 대모(玳瑁) 모양의 작은 상자를 꺼내 우문호 앞에 와서 웃으며 말했다. “왕야 좀 참으십시오. 이 거독 연고는 바르면 좀 많이 따끔거리실 겁니다.”“괜찮네. 본왕은 아픔이 두렵지 않네.”우문호는 마음속으로 조금 감동했다. 부황은 참 자애로우신 분이었다.하지만 왜 목여공공의 눈에 안쓰러움이 스친 것인가?얼마 되지 않아 그는 더 이상 이유를 할 수 없었다. 거독 연고를 바르자 이 아픔이 어딜 봐서 따끔거리는 아픔이란 말인가? 그야말로 가슴에 사무치는 아픔이었다. 마치 하나하나의 바늘이 살을 뚫고 심장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 쉬며 말했다. “살살하게 살살하게!”“이런 아픔조차 견디지 못하다니, 너한테 전도가 있긴 하느냐?”명원제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우문호는 막 입 밖에 나오려는 고통의 신음소리를 되삼켰다. 하지만 정말 아팠다. 그는 그제야 왜 목여공공의 눈가에 안쓰
원경능이 청진기를 꺼내 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안 할래요. 황조부를 진찰해드릴게요.”태상황은 익숙한 동작으로 자리에 누워 옷을 거두고 그 차가운 물건이 그의 심장에 놓이기를 기다렸다. 그가 머리를 옆으로 돌려 원경능을 보며 말했다. “과인도 심장소리를 들을 거다.”원경능은 청진기를 그의 귀에 꽂아주며 말했다. “박동소리를 세면서 자세히 들으세요.”태상황은 숨을 길게 내쉬고 자신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이건 한 곡의 자장가 같았다.“얼마예요?”원경능이 일분이 됐을 거라 생각하고 물었다.“쉰여섯이다.”태상황은 이를 들어내고 웃으며 말했다. 이빨이 누랬다.원경능이 청진기를 가져와 들어본 후 말했다. “기준에 달하진 않지만 그래도 많이 진보했습니다.”상공공도 호기심에 머리를 가까이하며 물었다. “이 물건이 재미있습니까? 소인도 들어 보면 안됩니까?”원경능은 웃으며 그에게 넘겨주었다. “그럼, 귀에 걸고 여길 심장에 대면, 자신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다네.”상공공은 원경능의 지시대로 했다. 그리고는 눈썹을 휘날리며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참 신기하군요. 마치 북을 치는 것 같습니다. 쿵덕 쿵덕 하네요.”그는 매우 아쉬워하면서 원경능에게 돌려줬다. “이 물건은 어디에서 팝니까? 소인에게도 구해주면 안됩니까?”“내가 나중에 물어보고 있으면 하나 구해다 주지. 그럼 상공공이 날마다 책임지고 태상황의 심장소리를 들으면 되네.”“좋습니다!”상공공이 기뻐하며 말했다. 복보가 쪼르르 달려와 원경능의 발 밑에서 꼬물거렸다.원경능은 허리를 굽혀 복보를 끌어안았다. 복보는 혀를 날름거리며 그녀의 손을 핥았다. 원경능은 너무 간지러워 그의 혀를 누르며 말했다. “이 장난꾸러기!”복보는 침을 흘리고 있었는데 아주 즐거운 기색이었다.“복보가 모처럼 이렇게 사람에게 친근하게 굽니다.”상공공이 말했다.“개도 총기가 있어 분별할 줄 아는 걸세.”원경능은 복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렇지, 복보야?”복보는 멍멍 두 번 짖
귀비가 문안인사를 드리러 가자 황후와 현비도 계속 앉아있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함께 몸을 일으켰다. 원경능은 태상황을 부축하며 호숫가에서 거닐었다. 태상황은 조금 피로하여 호숫가 나무의자에 걸터앉았다. 원경능은 그를 위해 겉옷을 잘 여며주었다. 비록 추운 날은 아니었지만 마냥 따뜻하지도 않았다.“됐다. 이렇게 세심하게 할 필요가 있느냐?”태상황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당연합니다. 여기까지 꽤 많이 걸었는지라 땀이 나셨을 겁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시면 안됩니다.”원경능이 말했다.“어린 나이에 잔소리가 많구나.”태상황은 목을 빼고 원경능이 옷을 정리하게 했다. 그렇게 머리를 들자 황후 등이 오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태상황은 눈썹을 아래로 드리웠다.“재미없게 되었네.”원경능은 뒤로 흘끔 보고 나서 바로 곧게 서며 두 손을 늘어뜨렸다. 그녀도 속으로 말했다.‘재미없게 되었네.’황후와 귀비, 현비 세 사람이 출동하였는지라 자연히 많은 궁인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호호탕탕하게 걸어오자, 사람으로 하여금 어화원이 비좁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게 하였다.원경능은 다가가 단정하게 문안인사를 올렸다.“황후마마를 뵈옵니다. 귀비마마를 뵈옵니다. 현비마마를 뵈옵니다.”맞지 않는 문안인사였다. 사실 원경능은 황후를 모후로, 고귀비를 적귀모비(狄贵母妃)로, 현비를 현모비로 불러야 했다. 하지만 태상황이 자리에 있으니 원경능과 그것을 따지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들은 함께 다가와서 인사를 올렸다.“신첩, 태상황을 뵈옵니다.”오늘 태상황은 온화한 영감이었다. 그는 입술에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다들 여기에 있었구나.”황후는 한 걸음 다가가며 공손하게 답했다.“태상황께 아룁니다. 오늘 날이 좋은지라 동생들과 함께 활동하러 나왔습니다. 신체는 괜찮습니까?”“좋지, 좋지 않으면 나와서 산책을 하겠느냐?”태상황은 기력이 충천된 모습으로 말했다.“태상황의 강녕이 바로 북당의 복입니다. 초왕비, 그렇지 않느냐?”현비가 웃으며 말했다. 원경능
이 문제에 우문호는 잠시 멍을 때렸다. 왜냐하면 자신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당연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원씨가 임신한 뒤로부터 그의 눈과 마음에는 다른 것들을 담지 못했었다.현재 제왕이 물으니 우문호는 잠시 멍을 때렸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어디 그렇게 많은 왜가 있어, 놓으면 놓는 거지.'"다섯째 형님."제왕은 우문호가 머뭇거리자 조금 몸을 일으키더니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혹 아직도 명취를 좋아하는 건 아니겠죠?"우문호는 그를 흘겨보았다."그런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네 다섯째 형수는 속이 매우 좁아.""형님 아직도 좋아하고 있는 겁니까?"우문호는 고개를 저었다."좋아하지 않아.""어떻게 했습니까? 이렇게 빨리 명취를 잊다니."우문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내가 뭘 했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한참 뒤에 우문호가 고개를 들었는데 빛이 반짝였다."너의 다섯째 형수가 있었기 때문이지.""그 말인즉, 다른 사람이 생기면 잊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이건 아마 대체하는 방법인 듯 하군요. 다른 여인을 찾아야 되지요, 맞나요?"제왕이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우문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연구해본 적도 없는 걸.'허나 표면상으로는 적극적으로 말했다."맞아, 넌 동그란 얼굴의 계집애와 자주 있도록 시도해봐. 아마 곧 잊을 수 있을 거야."원영의를 말하니 제왕이 탄식하며 말했다."이번에 영의가 조태의를 데리고 돌아왔기 다행이지 아니면 전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겁니다.""네 다섯째 형수가 보낸 거다."우문호는 원경능을 위해 공을 쟁취했다. 일곱째는 늘 원씨에게 편견이 있어 이 문제에 대해 우문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공을 쟁취하여야만 했다.그러나 제왕은 그 말을 흘려 보내고 홀로 중얼거렸다."사실, 동그란 얼굴도 괜찮아요. 자상하게 왕비를 소개해줄 것이라 했거든요."우문호가 불현듯 물었다."참, 오늘밤 돌아갈 거야?"제왕은 생각에 잠겼다."돌아갈 거예요. 동그란 얼굴이 있으니 절 괴롭히
우문호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부황...."부황께서 합의 이혼을 동의하시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또한 그 말투에 불쾌한 느낌이 상당했다."그대로 하면 되느니라."명원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저명취가 시집온 뒤로부터 사단이 끊인 적이 없었다. 작은 일은 저수부의 체면을 보아 눈 감아줄 수 있었다. 이렇게 방임했더니 결국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황실의 체면을 깎는 건 괜찮으나 사적으로 친황들의 사이를 이간질 하니 더 이상 용납할 수가 없었다.애당초 그녀의 명성은 그렇지 않았다. 밖에서는 다들 그녀가 현명하고 정숙하며 대가의 풍격이 있다고 했다.그러나 오늘 저씨 노태부인의 그 말을 해 이미 화가 치밀었었다. 저씨 가문의 체면이 참으로 대단했다."부황."우문호가 정색하더니 재빨리 물었다."부황의 뜻은 일곱째의 요구를 동의한다는 겁니까?""동의하지 않을 수 있느냐? 무기를 휘두르기까지 하는데."명원제가 아비로써의 인내를 보여주었다."합의 이혼한 뒤 각자 재혼한다면 두 가문에게 모두 좋은 일이다."우문호는 매우 우러러보았다. 부황의 이 말은 참으로 가식적이었다. 너무 가식적이어서 전혀 가식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각별히 마음을 쓰는 것 같았다."이 일을 일주일 내에 해결하거라. 해결하지 못하면 곤장을 맞으러 와야 한다. 꺼지거라."명원제가 싸늘하게 말했다.우문호는 명을 받고 제왕을 찾으러 들어갔다. 두 형제는 서로를 부축하면서 출궁했다.그러나 명원제는 계속 상소문을 읽어야 했다. 군주로써 다른 이들보다 더 큰 의자가 있는 이외에 뭐가 나은 것이 있던가?황제란 수명이 짧은 직업이었다.옆에서 묵을 갈던 목여공공이 기쁘게 말했다."제왕과 초왕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음을 보셨으니 폐하께서도 시름을 놓으실 수 있습니다."명원제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는 떳떳하고 일곱째는 단순하다. 그렇기에 다행인 거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일찍부터 크게 다투었을 것이다. 다투지 않더라도 이후에는 암투를 벌일 것이지.
우문호가 위로했다."그만 소리 질러, 부황 앞에서도 네가 계속 신음소리를 낸다면 네가 겁쟁이라고 꾸짖으실 거야."제왕은 아픔에 말도 하지 못했다. 끙끙 신음소리와 함께 발을 질질 끌며 가고 있었다. 결국에는 실로 참을 수 없어 말했다."형님, 절 업어줘요.""상처가 앞에 있는데 내가 널 없으면 더 아프지 않을까?"우문호는 그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근심스러워졌다. '왜 이렇게 아픔을 참지 못한단 말인가? 예전에 원씨는 온몸에 부상을 입고 입궁하여서도 억지로 버텼었는데, 일곱째는 여인보다 못하는군.""다쳐서 아픈 것이 낫지 이렇게 상처가 찢기는 고통은 원하지 않습니다." 제왕은 걸음을 멈추고 무기력하게 손을 저었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는데 입술에도 혈색이 보이지 않았다.우문호는 그를 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업고 나니 제왕이 또 "아아아"하고 소리를 질렀다.우문호가 물었다."되겠어?"제왕은 간신히 고개를 돌려 목여공공을 바라 보더니 울상이 된 얼굴로 말했다."아니면 나를 들고 가게."목여공공은 이미 성지를 전하러 출궁한 궁인에게 물어보았었다. 부상 정도가 그렇게 엄중하지 않다고 조태의가 말했다고 전했다. 가슴팍의 상처는 괜찮고 복부의 상처가 조금 깊다고 했다.그리하여 제왕의 이러한 모습을 본 목여공공은 근심을 금할 수 없어 물었다."태의가 확실하게 진찰한 게 맞습니까? 내장이 상한 건 아닙니까?"제왕은 숨을 들이쉬었다."내장이 상한 건 아니네."목여공공은 제왕의 이런 모습으로 실로 궁전까지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말했다."좋습니다. 그렇다면 들고 갑시다."어깨 가마와 들것이 없으니 한 사람은 어깨를, 한 사람은 두 다리를 들고 갔다. 제왕의 머리는 떨어져 있었는데 입에 초롱 손잡이를 물로 있었다. 허나 자신이 걷는 것보다는 나았다.제왕은 칠흙같은 하늘을 바라 보았다. 등불의 빛은 궁중의 밤을 밝히기엔 부족했다. 그는 그저 딴 세상에 온 듯 하였다.왜 살아가다가 갑자기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음은 여전
황후는 완전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일곱째가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 죄명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 죄명이 실증되고 정말 백관 앞에서 죄를 심의 받는다면 절로 미래를 망친 것이었다.그리하여 이 일의 진위를 막론하고 재빨리 답했다."합방을 하지 않았는데 어찌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 말이야 말로 전해진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태노부인도 바보가 아니었다. 저명취의 낯빛을 보고 태후가 말한 것이 진실임을 알고 있었다.다만 바보가 아닌 태노부인은 멍해졌다. '측비 때문이 아니라면 제왕은 왜 합의 이혼하려고 하려는 걸까? 설마, 그 원측비의 말이 진실이란 말인가? 명취와 초왕 사이가 애매하단 말인가?'태노부인의 얼굴은 당장에 어두워졌다. 다만 태후가 자리에 있는지라 무엇이라 말할 수 없어 일단 이 화를 가라앉혔다.그러나 태후는 태노부인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노부인, 한마디 묻겠네. 한 여인이 처로써 작은 일로 자결하고 또 낭군을 중상한 뒤 회개하지 않고 적반하장으로 군다면, 노부인의 부중에서는 어떻게 처단하는가?"태노부인은 실로 체면이 깎였으나 반박할 방법이 없었다. 제왕부부는 예전에 화목했었고 측비가 시집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 또한 합방도 하지 않았으니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다고 억지를 부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태노부인은 그저 기가 죽어 말했다."태후마마, 제가 아둔했습니다. 명확하게 묻지 않고 입궁하여 태후마마와 황후를 귀찮게 했습니다. 다만 젊은 부부가 다투는 건 자주 있는 일입니다. 어찌 되었든지 쉽게 처를 저버릴 수 없습니다. ""합의 이혼이네."태후가 차가운 낯빛으로 곧 시정했다."황실의 체면이 중요하나 황실의 혈육도 잃을 수 없네. 제왕은 황제의 적자네. 부부가 작은 일로 모순이 생겨 무기를 휘두른다면 철로 만든 몸이라 하여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네."태후는 고개를 돌려 황후를 바라 보았다."너의 며느리고 또 너의 조카니 네가 알아서 이 일을 해결하
황후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몰랐다. 안절부절하여 명원제를 흘깃 보았는데 명원제의 낯빛이 매우 어두웠다. 이에 황후는 원만하게 수습할 수 있는 말 몇 마디 하라고 태노부인에게 눈짓을 보냈다.그러나 태노부인이 싸늘하고도 딱딱하게 말했다."폐하, 황후마마, 제왕은 황실자손으로써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렸습니다. 비록 명취가 충동한 것은 잘못이나 모든 잘못이 명취에게 있는 건 아닙니다. 현재 제왕이 측비로 인해 합의 이혼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니 소문이 퍼진다면 실로 웃음거리가 될 겁니다. 이에 황실과 저씨 가문의 체면이 깎일 겁니다. 폐하께서 성지를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제왕의 상처가 호전되면 백관들 앞에서 죄를 심의 받고 합의 이혼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태노부인의 이 말은 절대 사정의 의미가 아니라 몰아붙이는 느낌이었다.심지어 태노부인이 황실의 체면과 저씨 가문의 체면을 함께 논할 때 황후의 낯빛이 돌연 변했다. 크게 경악하더니 고개를 홱 돌려 명원제를 바라 보았다.아까만 해도 낯빛이 어둡던 명원제는 태노부인의 이 말을 듣고 도리어 화를 내지 않았다. 심지어 잔잔한 미소까지 머금으며 말했다."노부인, 조급해하지 말게. 이 일은 짐이 자세하게 물어볼 것이네. 노부인의 신체가 편찮다고 수부에게 들었으니 돌아가 푹 쉬게. 자손들은 자연히 자손들만의 복이 있을 것이니 노부인이 염려해서 되는 것이 아니네."말을 마친 명원제는 몸을 일으켜 떠났다. 나가기 전에 담담하게 저명취를 흘깃 보았다.태노부인은 기가 차 멍해졌다. 명원제가 위로의 말 한마디도 없이 이렇게 가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자신도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이었다.명원제는 나간 뒤 목여공공에게 분부했다."초왕과 제왕을 부르거라."목여공공은 잠시 머뭇거렸다."폐하, 제왕은 아직 부상 당한 몸입니다.""죽지 않을 거다."명원제가 담담하게 말했다. 만일 중상이라면 일찍이 부중에서 보고를 했을 것이었다."그리고 이 일을 태후께 아뢰거라. 태후께 한 번 들리라고 전하고."목여공공은 명을 받
다만 저명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눈을 감고 울고 있었는데 몸을 달달 떨고 있었다.제왕은 조태의와 원영의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이번에 원영의는 매우 눈치가 빨랐다. 조태의를 이끌고 나가려는데 조태의가 약가루를 내려놓으며 시녀에게 분부했다."이건 지혈약이다. 상처부분에 뿌리고 살짝 동여맨다면 이틀 뒤 바로 괜찮아질 거다."시녀는 이미 놀라 손발이 나른해진 상태였다. 약가루를 건네 받고는 감사의 인사를 했다.제왕은 모든 사람들을 물리고 저명취의 곁에 앉아 물었다."왜 그러는데?"저명취는 고개를 돌리고 눈물만 흘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제왕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그러나 늘 흐리멍덩했던 머리가 이번에는 도리어 맑아졌다. 사실 원영의의 말들이 그를 정신차리게 했던 것이다.만일 명취가 정말 자신을 생각했다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들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었다. 자신은 째지게 가난한 사람도 아니었고 당당한 친왕이었다. 다른 것을 쟁취하지 않아도 그녀에게 평생의 부귀영화를 줄 수 있었다.누구도 그를 경쟁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도 한가하게 놀고 있는 왕야를 상대하지 않았다. 명취는 그렇게 총명하니 알고 있을 것이었다. 또한 자신은 저수부의 외손자였고 현재 황후의 적자였다.큰 형님이 태자로, 황제로 된다고 하여도 감히 자신에게 어쩌지 못할 것이다. 아니면 천하 사람들의 공론을 막을 수 없을 터였다.당연히, 좀 못나게 말한다면 큰 형님은 애초에 자신을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그리하니 명취는 정말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다.그렇다면 그가 한 모든 것들은 가치가 있을까? 그리하여 제왕은 마음이 아프지만 계속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이렇게 끝내. 그대가 시집온 날부터 난 그대의 마음 속에 내가 없다는 걸 알았어. 난 자연히 다섯째 형님과 비할 바가 못되지. 나도 내 자신을 알아. 그대는 시종일관 다섯째 형님을 좋아했던 거야. 다만 다섯째 형님이 그대를 저버리자 어쩔 수 없이 나에게 시집온
탕양은 이 말을 듣고 너무 놀라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아사가 들어와 앉더니 물었다."뭐가 산 것이라고요?""본왕의 아들 말이다!"우문호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아사는 머뭇거리다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턍양을 바라 보았다. 탕양은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키며 왕야가 이미 미쳤다는 손짓을 했다.원경능은 기가 막혀 웃음을 터뜨렸다."됐어요, 됐어요, 식사나 해요.""우리 큰 언니는요?""돌아갔어."원경능이 답했다. 아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제왕에게 정말 화가 나요. 글쎄 큰 언니와 서일이 노닥거린다면서 큰 언니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겠어요? 큰 언니가 화를 참고 때리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우문호는 기분이 매우 좋은지라 이 말을 듣고 아사를 흘겨봤다."이 계집아이 좀 봐, 일곱째가 매우 연약한 것처럼 말하네. 일곱째도 무술을 연마했었어.""설마요?"아사가 경악했다."그런데 왜 그렇게 연약하게 굴어요?"우문호는 어깨를 으쓱했다."연약하지 않아, 최소한 손으로 계란을 한 알 깰 수 있으니.""전 돌을 깰 수 있어요."아사가 답하니 우문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원경능이 호기심에 물었다."제왕이 정말 무술을 배운 적이 있나요?""배웠지, 황자로써 누가 배우지 않아도 되겠어? 마술과 궁술, 무술 모두 익혀야 하지. 일곱째도 배웠었는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후로는 배우지 않았어. 싸우는 것도 원하지 않고 말이야."아사는 의아해졌다."왜요?""무슨 자극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무술 하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어."우문호가 말했다. 아사는 믿을 수 없었다."그렇게 많이 맞았는데 정말 무술을 익혔다면 왜 반격을 하지 않았겠어요?""일곱째는 여인을 때리지 않아."우문호가 답했다****여인을 때리지 않는 제왕은 제왕부로 돌아갔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그는 곧장 저명취의 방으로 향했다.요 이틀간 저명취는 많이 울었는지라 눈이 계속 부어있었다. 제왕이 들어오는 것을 보아도 그저 담담히 눈길을 위로 들었다."성지가 내려진 건가요
제왕은 기가 막혔다."당신의 말투가 왜 아이를 달래는 것 같지? 본왕에게 정비를 소개하다니. 본왕의 혼사는 모후의 뜻을 따라야 해."원영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밝은 눈에 하얀 이, 옴폭 파인 보조개가 매력적이었다."조모께서 말씀하셨어요. 남자는 모두 애라 달래면 된다고요. 그리고 당신의 모후는...."제왕이 화를 냈다."당신의 모후이기도 하잖아!"원영의는 그제야 두 사람 사이가 생각난 듯 무미건조하게 코를 만졌다."전 정비가 아니라 모후라고 부르면 안돼요."제왕은 눈을 가늘게 떴다."당신 계속 본왕에게 합의 이혼하라고 하고 지금 또 이러한 말을 하는군. 당신 정비가 되고 싶은 거 아니야?"원영의가 물었다."정비가 되면 좋은 점이 뭔데요?""좋은 점이 많지."제왕은 잠시 생각했다."최소한 당신은 본왕과 명분이 정당한 부부로 되는 거지.""명분이 정당한 부부가 된다면 뭐가 좋아요?"원영의가 다시 물었다. 제왕은 그녀를 바라 보았다."당신은 부중에서 뜻대로 할 수 있어. 하인들도 모두 당신의 명을 따를 것이고."원영의가 반문했다."제가 지금 부중에서 뜻대로 살고 있지 않나요? 지금 하인들이 제 명을 따르지 않나요?""당신 본왕과 함께 여러 장소로 출석할 수 있지."원영의가 웃었다."지금은 제가 여러 장소에 출석할 수 없나요? "제왕은 그녀에게 눈을 부릅떴다."당신 지금 고의적으로 엇나가는 거야? 당신이 정비와 측비의 다른 점을 모를 리가 없잖아. 정비는 처고 측비는 첩이야, 명분부터 다르잖아.""처도 좋고 첩도 좋아요. 그러나 제가 저인 사실은 번함이 없어요."원영의는 손을 내저었다."전 당신의 처가 되기 싫어요 .좋기는 다른 사람을 찾으세요. 그리고 당신이 저명취와 합의 이혼하는가를 관심하는 것은 저와 직접적인 이해득실이 있어서예요. 누가 부중에 그러한 정실이 있기를 원하겠어요? 전 그녀를 보는 것조차 싫어요."말을 마치고는 곧 일어났다. 원영의가 떠나려 하자 우문경이 손을 잡았다."가자마, 본왕과 이야기나 좀
아사는 돌아간 뒤 부두에서 만아를 본 일을 원경능에게 알렸다.원경능은 이를 듣고 조금 마음이 시큰거렸다.이러한 시대에 여인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만아는 남정네들과 함께 막노동을 하고 있으니 어디 얼굴을 드러내는 정도인가?다만 자신의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저 아사더러 만아에게 은 열 냥을 가져다 주라고 하였다.다음날 아침 아사가 돌아왔다. 만아가 안받으려고 하였는데 억지로 만아에게 넣어주고 달아났다고 전했다.원경능이 묵묵히 말했다."그 아이에게 주었으면 되었다.""왕비께서는 참 선량하십니다."아사가 칭찬했다. 원경능은 속으로 자신이 선량하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은 열 냥은 준 것도 사실 자신의 죄책감 때문이었다. 원경능은 이 은 열 냥으로 자신을 홀가분하게 만들려고 했다.엄격하게 따진다면 그녀는 만아에게 빚진 것이 없었다.다만 원경능은 자신의 동정심이 점차 사라짐을 느꼈다. 원래의 원경능도 점차 모진 마음을 갖게 되었는데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혹 자기 보호를 더 잘할 수 있을 수 있으나 결국 자신을 잃게 된 것이었다.우문호가 저녁에 돌아올 때 제왕을 데리고 함께 돌아왔다.그은 노기등등한 모습으로 초왕부에 도착하더니 바로 소월각으로 들어가 숨었다.원경능이 호기심에 물었다."왜요? 왜 구신이라도 본 듯이 숨어요? 누가 기분을 상하게 했기에 노기등등한 얼굴이에요?"우문호는 자리에 앉아 차를 벌컥벌컥 마셨다. 원경능은 자신 곁으로 끌어오고는 배를 어루만지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아들아, 기억하거라. 네가 이후에 만일 일곱째 삼촌처럼 못난 짓을 한다면 뺨을 갈겨 죽일 것이야."원경능은 그의 손을 두드리며 웃었다."무슨 아들이에요? 딸이면 안되나요? 제왕이 왜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어요?"우문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이 놈이 연속 이틀 동안 관아로 와 나를 찾았어. 공무가 가득한데 저놈 때문에 한 건도 해결하지 못했잖아. 이것 봐, 오늘밤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