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한창 땀을 흘리며 바삐 움직이던 온사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아, 너였구나.”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허리를 숙이고 하던 일을 했다.김사도는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불쾌해졌다.“빨리 말해! 내 벌레 어딨어? 그걸 어디에 숨겼어?”온사는 일할 때 방해받는 게 제일 싫었다.그녀는 짜증스럽게 고개를 들고 김사도를 흘겨보며 되물었다.“그 지네 말하는 거야? 그거 나한테 있기는 한데 내가 그걸 왜 너에게 돌려줘야 하지?”온사는 냉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나 그 지네한테 물려서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 그런데 넌 뻔뻔하게도 내 앞에 나타났구나? 내가 사람 불러 너 죽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넌 그렇게 못해.”김사도는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사람을 불러 날 공격하면 나도 이 관내의 여승들을 가만 안 둘 거야!”“설마 고결한 성녀 전하께서 눈 뜨고 선배님들이 죽는 걸 지켜보겠어?”김사도는 자신이 온사의 약점을 잡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온사는 냉소를 짓고는 말했다.“어디 해봐. 넌 이곳 사람들 머리털 하나 건들지 못할 거니까.”김사도는 그 말을 듣고 한심한 눈으로 온사를 바라보며 딴지를 걸었다.“성녀라더니 그냥 멍청이인가? 승려들은 원래 머리가 없어.”온사는 어이없는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어차피 넌 관내의 사람들을 못 건드려. 나도 너에게 그 독지네를 돌려줄 생각 없고.”말을 마친 그녀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대문 앞에서 온사의 답을 기다리던 김사도는 또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성큼 안으로 들어왔다.그런데 그가 안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정원에서 순식간에 살기가 일더니 그에게 달려들었다.김사도가 다시 대문 밖으로 물러서자 살기가 사라졌다.그는 상대가 대문 밖에서 얘기 나누는 것은 괜찮으나, 이 정원에 발을 들이지 말라고 경고한다고 생각했다.김사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살기가 덮쳤던 쪽을 노려보았다.아쉽게도 그는 원래 복종을 싫어하는 인간이었다.그래서 다시 발을 들어 정원 안으로 들어왔다.
다시 안으로 들어가 수저까지 챙겨서 나온 온사는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그만들 싸우고 와서 밥 먹어.”추월은 즉각 동작을 멈추고 온사의 옆으로 날아왔다.약간 우위를 점하고 있던 김사도는 허망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싸워줄 상대가 없으니 그는 어쩔 수 없이 식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굉장히 어색한 표정으로 국수를 힐끔거렸다.“고귀한 성녀 전하께서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이거 하나는 내 몫이지?”온사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꾸했다.“아니, 추월이 거야. 얘가 밥을 좀 많이 먹거든.”추월도 고개를 끄덕였다.“맞아.”김사도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무슨 여자가 배가 그렇게 커? 아, 몰라. 여기 수저도 세 개나 있으니까 이 그릇은 내 거야.”말을 마친 그는 털썩 식탁 앞에 마주 앉더니 수저를 들고 먹기 시작했다.김사도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맛있게 먹더니 결국엔 국수 한 그릇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두 사람은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왜 그렇게 봐?”온사는 피식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넌 여길 왜 왔는지 벌써 잊었어?”기세등등하게 벌레 내놓으라고 협박하던 놈이었다.그런데 국수 한 그릇에 이리도 온순해지다니.물론 일부러 만든 거긴 하지만 김사도가 이렇게 쉽게 속아 넘어올 줄은 예상밖이었다.김사도는 그제야 기억이 되살아난 듯, 뒤로 후퇴하더니 품에서 쌍검을 꺼냈다.“그래, 내 벌레는? 빨리 내 벌레 내놔!”온사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그에게 말했다.“그거 이미 없어. 먹어 치웠잖아.”“뭐라?”김사도가 눈을 부릅떴다.“방금 너 국수 맛있게 먹었잖아. 안에 네 벌레가 들었어. 내가 그걸 잘 다져서 안에 넣었는데 맛 괜찮았지?”김사도는 분노를 표출하려다가 피식, 비웃음을 터뜨렸다.“내가 바본 줄 알아? 내 벌레가 죽었으면 내가 몰랐을까? 그러니 내 벌레는 아직 너에게 있어.”온사는 그냥 바보로 살라고 말하며 비웃을 뻔했다.그녀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당연히 네가 내 정원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지.”온사는 피식 웃고는 약초밭에 심은 약초들을 바라보았다.거기에는 사람이 환각을 보게 하는 독약도 있었다.외부에서는 구하기 힘든 약초라고 하는데 그녀가 독약을 배우고 싶다 하여 북진연이 일부러 그녀를 위해 구해다준 약초였다.약재 씨앗 중에는 그것 외에도 적지 않은 독약 씨앗과 묘목이 있었다.지금 약초밭에 심은 것은 곧 꽃이 필 묘목이었다.온사는 김사도가 계속 밖에만 서 있어서 독약을 알아본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그런데 얼마 안 지나 그는 스스로 이 정원에 발을 들였다.이국 사내는 독을 쓸 줄 알아도 독초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지 않았다.그게 아니라면 이 정도 속임수에 쉽게 속아넘어갔을 리 없었다.국수는 그의 체내에 흡입한 독초의 약효를 촉진하는 작용이었다.이 정도 성년 사내를 쓰러뜨리려면 약초의 향을 맡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이다.온사는 오늘의 최대 수확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추월, 얘는 주방에 가둬. 이따가 내가 볼일 다 보고 다시 어찌 처리할지 고민해 보자.”김사도를 처리하기 전에 일단 옥패 공간에 들어가보고 싶었다. 김사도에게 그 지네는 아주 중요한 벌레인 듯했다.추월이 김사도를 끌고 간 후에 그녀는 방 안으로 들어가 옥패 공간을 열었다.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지네가 있는 곳이 느껴졌다.그것은 냇가에 있었다.온사가 도착했을 때, 지네는 냇가에 엎드려 령수를 마시고 있었다.“이런 괘씸한 놈, 감히 내 령수를 훔쳐 마셔?”온사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오두막으로 가서 저 녀석을 포획할 뭔가를 찾으려 했다.그런데 갑자기 심장이 철렁하더니 무언가와 연결된 느낌을 받았다.그리고 그 신경 쓰이는 느낌은 천천히 지네에게까지 연결되었다.냇가에서 물을 마시던 지네는 그녀의 생각을 느낀 건지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오지 마!”이 녀석의 독에 당한 적 있는 온사는 그것이 가까이 다가오자 본능적으로 뒤로 후퇴했다.그리고 지네는 그녀의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온사는 놀란
그게 아니라면 김사도가 여기까지 찾아와서 지네를 내놓으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온사는 김사도도 같이 있는 자리에서 지네가 누구의 말을 따를 것인지 궁금했다.그래서 한번 시험해 보기로 했다.“녀석, 이리 와. 네 주인을 보러 가야지.”그렇게 온사는 지네를 데리고 주방으로 왔다.안으로 들어가자 기둥에 꽁꽁 묶여 있는 김사도가 보였다.“파군아? 파군! 이리 와, 파군!”온사가 독지네를 데리고 들어가자 의식을 회복한 김사도가 뭔가를 느낀 건지 지네를 부르기 시작했다.“이 녀석 이름이 파군이었어?”온사는 손수건으로 싼 시커먼 독지네를 바닥에 내려놓았다.그러자 김사도는 다급히 자신의 벌레를 부르기 시작했다.“파군… 이리 와. 와서… 날 구해줘.”그는 아직 정신을 덜 차린 듯했다.주인의 부름을 들은 독지네는 바로 김사도를 향해 다가갔다.그런데 뒤에서 온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파군, 어딜 가니? 당장 돌아와.”그러자 김사도를 향해 다가가던 독지네가 걸음을 멈추더니 온사가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파군, 이 멍청이가 어디 가?”김사도는 정신을 차리려고 머리를 기둥에 찧었다.지금 보고 있는 것도 환각 같았다.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벌레가 저 여자의 말을 들을 리 없었다.‘이건 분명 환각이야.’분명 저 성녀가 자신에게 먹인 독이 약효가 지나가지 않은 거라고 김사도는 확신했다.“어서 이쪽으로 와, 파군. 쿨럭… 저 여자한테 가지 마. 저 여자 널 분해해서 가마솥에 끓일 여자야.”온사는 웃음을 꾹 참았다.구석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추월이 한심한 얼굴로 말했다.“사태, 환각제의 약효가 곧 사라질 텐데 좀 더 먹이는 게 좋지 않을까요?”그 말에 온사는 고개를 저었다.“그럴 필요 없어. 저 인간을 상대할 방법은 이미 찾았어.”온사는 독지네와 김사도 사이의 연결이 얼마나 깊은지 확인하고 싶었다.어쩌면 저 벌레를 갖고 김사도를 통제할 수도 있었다.온사의 시선은 벌레에게서 기둥에 묶여 있는 김사도에게로 옮겨갔다.그녀는 피식 웃음을
“읍! 읍….”지네가 물에 잠긴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둥에 몸이 묶인 김사도가 발버둥치기 시작했다.그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마치 숨을 못 쉬는 사람처럼 눈을 크게 뜨고 안면근육도 흉하게 일그러졌다.마치, 물 안에서 파군이 느끼는 고통을 김사도도 똑같이 느끼는 것 같았다.“이 지네를 죽이면 김사도가 죽거나 중상을 입는 걸까요?”온사는 지네가 죽는다고 김사도가 죽을 거라고 보지는 않았다.정말 그런 거라면 아마 독지네를 풀어서 병기로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 벌레를 신경 쓰는 정도로 봐서 파군이 죽으면 그에게 큰 영향을 주는 건 사실인 것 같았다.사실을 확인한 온사는 손을 뻗어 나무통의 물을 전부 바닥에 부어버리고 축 늘어진 지네를 바닥에 내려놓았다.파군이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되자 김사도의 상황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그러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그 소란 덕분에 김사도도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그는 이를 갈며 온사를 노려보았다.“여인이 독하면 무섭다더니 대명인이 한 말이 역시 틀린 게 아니었어!”온사는 그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또 욕해 보시지?”김사도도 지지 않고 덤볐다.“퉤! 이 악랄한 여자야!”온사는 나무통을 바닥에 내려놓고 조롱박으로 안에 물을 부었다.“너!”김사도는 화들짝 놀라며 욕설을 퍼부으려 했지만 마치 그가 물에 잠긴 것처럼 숨이 조여왔다.파군이 아직 나무통에 있었다.“읍…”손발이 묶인 김사도는 미친 사람처럼 발버둥쳤다.추월이 어찌나 꽁꽁 묶었는지 그가 아무리 몸부림쳐도 속박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온사는 느긋하게 나무통의 물을 쏟아버렸다.“쿨럭….”드디어 숨을 쉴 수 있게 된 김사도는 게걸스레 공기를 들이마셨다.그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온사를 노려보며 욕설을 퍼부었다.“이 악랄한 여자야! 이러고도 네가 선량한 척하는 성녀야? 너 힘없는 벌레를 그런 식으로 괴롭히고도 양심의 가책도 안 느껴?”온사는 손사래를 치며 그에게 말했다.“너 나에 대해 큰 오해를 하고 있구나. 그럼 해명을
온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사도가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온모가 순수하고 선량해? 천진난만? 웃기고 있네. 내 살면서 이런 웃기는 소리는 처음 들어보는군!”김사도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웃음을 터뜨렸다.“걔 그냥 사기꾼이야. 걔는 우리 모두를 속였어. 그 망할 어미랑 같이 우리 모두를 속였다고!”온사는 그가 실컷 욕설을 퍼부은 뒤에야 담담히 말했다.“내 말 또 한번 끊으면 네 벌레를 계속 괴롭힐 거야.”온사는 손가락으로 나무통을 가리켰다.김사도는 그제야 풀이 죽어 말했다.“알았어, 계속해봐.”“네 주인 얘기는 이쯤하고 이제 저 벌레 얘기를 하자.”온사는 약간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저 녀석은 네가 날 독살하라고 보낸 놈이지. 저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알아?”게다가 공간의 령수마저 몰래 훔쳐 마신 놈을 지금까지 살려둔 것만으로 자비를 베푼 것이었다.저놈이 령수를 먹고 변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시체가 되었을 것이다.“그러니 난 저 놈을 예뻐할 수가 없어. 방금처럼 고통받기 싫으면 내 질문에 솔직히 대답해야 할 거야.”이미 포로가 된 김사도는 더 이상 반항할 수도 없었다.“물어봐. 아는 건 답해줄게. 모르는 건 나도 어쩔 수 없는 거고.”온사는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꺼냈다.“넌 온모가 네 주인이 아니라고 했어. 그럼 온모랑은 어떤 관계지? 너희랑 온모, 그리고 온모의 어미 말이야.”수많은 암살자들이 온모의 지시에 따랐다.온사는 그들이 온모 어미의 부하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김사도가 하는 걸 보니 생각과 전혀 다른 것 같았다.“우린 그 여자의 어미와 아무런 관계도 없어.”김사도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굳이 관계를 설명하자면 독에 당한 허수아비라고 보는 게 맞겠지.”“허수아비?”온사는 예상치 못했던 답에 살짝 놀랐다.“그래. 우리의 체내에는 온모의 어미가 몰래 먹인 독이 들어 있어. 일년에 한번씩 발작을 일으키고 해독제가 없으면 죽기보다 힘든 고통을 겪어야 하지. 그러다 가장 고통스럽게 죽어가.”‘독
의미심장한 말에 온모는 순간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설마 너희들 오랫동안 해독제를 먹지 못했니?”김사도가 이를 갈며 답했다.“그래. 아주 오랜 고통의 시간이었지.”그들은 해독제를 못 먹은지 이미 3년이 지났다.세번의 발작을 일으켰지만 그들은 해독제를 받지 못했다.그래서 그들의 인원수는 삼백 명에서 이미 이백 남짓으로 줄었다.그러다 금주로 온사를 암살하러 갔다가 실패하면서 또 반이 줄었다.현재 그들은 수십 명밖에 남지 않았다.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못가 모두가 죽게 될 것이다.“그럼 왜 죽이지 않고 살려뒀어?”온사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김사도는 한심하다는 듯이 온사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래도 성녀인데, 출가한 승려 주제에 무슨 그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해?”“말 안 할 거야?”온사는 그를 노려보며 압박했다.“해, 해! 하면 되잖아.”김사도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말했다.“우리도 죽이고 싶지. 그런데 온모의 어미는 죽기 전에 우리들한테 자신은 해독제의 처방을 온모에게 전수해 주었고 그러니 우린 온모 걔가 처방전을 해독할 수 있는 날까지 잘 지켜주어야 한다고 말했어. 그럼 독을 완치할 수 있는 해독제를 받을 수 있다고.”“최후의 해독제? 정말 그렇게 말했어?”“맞아.”“너희는 그걸 믿고 온모를 지켜준 거야?”온사는 무슨 이런 멍청이가 다 있나 하는 눈빛으로 김사도를 바라봤다.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은 속은 것 같았다.거짓말이 아니라고 해도 해독제만 있으면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데 온모가 최후의 해독제를 그들에게 줄 리가 없었다.그들의 체내의 독을 완치한다면 온모는 그들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잃게 되는 것이다.김사도와 그의 무리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데 온모가 그런 멍청한 짓을 할 리 없었다.‘그동안 그 고생을 했으니 해독제를 받으면 온모를 갈가리 찢어 죽일 수도 있겠지.’“왜 그런 눈으로 봐? 안 들을 거야?”김사도는 온사의 눈빛이 불쾌했다.“알았어, 빨리 말해봐.”온사는 김사도가 순순히 말해줄 때 더 많은
애지중지하는 지네를 남기고 가라니 김사도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넌 파군을 쓸 일도 없는데 왜 굳이 데리고 있으려는 거야?”“그걸 네가 어찌 알아?”온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도 저 녀석의 독을 연구하고 싶다고.”“알았어.”김사도는 마지못해 대답했다.“이제 나 좀 풀어줘야지?”온사는 등을 돌려 나무통에 있는 지네를 공간에 들여보낸 후, 추월에게 눈빛을 보냈다.추월이 다가와 장검으로 김사도를 묶고 있는 밧줄을 끊었다.드디어 자유를 되찾은 김사도는 밧줄을 벗어던지고 뻐근한 손목과 발목을 문질렀다.“독벌레는 내가 가진 게 좀 있어. 거미, 전갈, 불개미도 있고. 어떤 걸 원해? 지금은 줄 수 없고 다음에 올 때 가지고 올게.”“다 줘.”온사는 주저없이 말했다.김사도는 눈을 부릅떴다.“정말 전혀 사양을 안 하네. 그 많은 독충을 먹여 살릴 방법은 있고? 그것들에게 네가 당할 수도 있는데?”온사는 미소를 지으며 싸늘히 대꾸했다.“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내가 뭐 너 걱정해서 그러는 줄 알아? 그렇게 자신만만하다가 충독에 당해 죽을까 봐 그러지. 그럼 나도 또 해독제를 연구할 사람을 새로 찾아야 하잖아.”김사도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그건 걱정 마. 내가 죽으면 너와 온모 먼저 죽이고 죽을 거니까. 그러니 네가 다른 사람을 찾아갈 일은 없어.”그녀를 도와 진실을 파헤치거나, 죽음을 기다리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의미였다.분명한 협박에 김사도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알았어, 알았어. 내가 사람 시켜 좀 알아볼게.”말을 마친 그는 온사의 주방을 떠났다.환각제 밭을 지날 때, 김사도는 한송이 챙겨갈 생각으로 손을 뻗었다.그러자 등 뒤에서 온사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너 내 약초 건드리면 난 네 파군의 배를 가를 거야.”김사도는 순간 손을 내렸다.“참, 쪼잔하긴.”“누가 쪼잔해? 넌 도둑놈이야. 추월, 당장 저놈을 발로 차서 내쫓아 버려!”“야, 야! 하지 마. 내가 갈게!”김사도
그는 혹시라도 막수가 이상한 생각을 할까 봐 해명을 덧붙였다.하지만 그럴수록 막수의 눈에는 더 수상해 보일 뿐이었다.온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그랬군요. 어서 앉으세요. 제가 차를 내오죠.”그녀는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가고 북진연과 막수만 정원에 남았다.막수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섭정왕 전하의 마음이 너무 티가 납니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다 보일 정도예요. 무우는 현재 우리 수월관 사람이니 전하께서 이럴수록 무우의 수행을 망치는 것입니다.”북진연은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서신을 받은 후, 너무 걱정되는 마음에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온 그였다.수월관에 도착하고 막수와 부딪쳤을 때에야 그는 자신의 행위가 선을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밤중에 여인의 처소로 달려오다니, 다른 사람이 봤으면 온사의 명성에 큰 누를 끼칠 것이다.북진연은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생각이 짧았군. 사태, 너그러이 양해해 주세요. 다음엔 더 주의하겠습니다.”막수는 다음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려 불만 가득한 눈으로 북진연을 노려보았다.이때, 온사가 뜨거운 차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세 사람은 정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온사는 북진연에게 간단히 인사를 건넨 뒤, 막수와 아까 나누던 이야기를 계속했다.“사부님, 독사의 사체는 어디에 쓰려고 남기라고 한 건가요?”온사는 혐오스러운 눈으로 구석 쪽을 바라보았다.북진연은 그제야 구석진 곳에 쌓인 피 묻은 보따리를 발견했다.살짝 풀어진 틈새로 독사의 머리가 보였다.비취색의 영롱한 색상을 보고 북진연은 인상을 찌푸렸다.독성이 매우 강한 독사인데다가 한 마리가 아니었다.보따리의 형태로 봐서 적어도 열 마리는 될 것 같았다.이게 모두 온사의 정원에서 나왔고 오늘 온사가 하마터면 독사에게 물릴 뻔했다고 생각하니 북진연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이미 죽은 녀석들이고 좋은 약재로 쓰일 수 있어. 마침 3일 후에 그 사구라는 인간을 만나야 하니 그 전에 이것들로 좋은 선물을 준비할
약속 시간을 잡은 사구는 그 길로 뒤돌아섰다.그렇게 온사의 정원을 지나던 그는 뭔가 발견하고 고개를 돌렸다.그곳에는 음산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는 늙은 여승이 있었다.사구는 그 여승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그가 옷소매를 휘두르자 뱀들이 소매에서 기어나와 여승이 있는 곳을 향해 기어갔다.사구는 그걸 본 여승이 겁에 질려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지만 여승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흥미가 사라진 사구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그 길로 수월관을 벗어났다.사구가 떠난 후, 추월은 정원 안팎을 꼼꼼히 확인했다.그리고 정원 곳곳에서 십여 마리의 뱀을 잡아냈다.“사구 놈이 다녀간 후로 내 처소가 뱀 소굴이 다 되었네.”독사를 전부 처치한 추월은 굳은 표정으로 뱀의 사체를 한곳에 모아 불사르려 했다.그리고 이때, 막수의 목소리가 대문 밖에서 들려왔다.“잠깐, 그 독사들은 그대로 둬.”고개를 돌린 온사가 물었다.“사부님? 어쩐 일로 오셨어요?”“내가 안 왔으면 네가 나 몰래 이렇게 큰 일을 치르고 있을 줄도 몰랐잖니.”막수는 싸늘한 시선으로 온사를 쏘아보았고 온사는 괜히 찔려서 어깨를 움츠렸다.사부는 밖에서 그녀와 사구의 대화를 다 들은 모양이었다.온사는 어색한 표정으로 해명했다.“사부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작정하고 숨긴 게 아니라 확실해지면 사부님께 말하려고 했어요!”“정말이니?”막수 사태는 못 믿겠다는 어투로 그녀에게 재차 물었다.온사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출가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죠. 저도 출가인입니다, 사부님!”“하, 말은 잘해.”막수는 냉소를 지으며 온사에게 말했다.“일단은 믿어주도록 하마. 허나 삼일 후 나도 너와 같이 가겠다.”“그건 안 돼요, 사부님!”온사는 당황하며 막수를 말렸다.“아주 위험한 상황이란 말이에요. 상대가 몇이나 데리고 나올지도 모르고 그쪽에서 만약 사람이 많이 오면 한바탕 피바다가 될 거예요. 사부님은 출가인인데 어찌 그런 상황을 지켜볼 수 있겠어요?”“그럼 넌 출가인이 아니고?”
미리 대비를 해두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정말 그 독사에게 물릴 뻔했다.“나에 대한 정보를 대체 누가 줬을까?”중년 사내는 위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런 배신자는 빨리 제거해야 해서 말이야.”온사는 당연히 이 시점에 김사도를 배신할 이유가 없었다.그녀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주인이 워낙 겁쟁이라 좀 겁만 줬을 뿐인데 전부 말하더라고. 그걸 꼭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야 알아?”“쯧,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군.”사구는 눈썹을 꿈틀하더니 질문을 이어갔다.“그런데 참 궁금하단 말이야. 고결하신 성녀 전하는 대체 우리 아가씨한테 어떤 식으로 겁을 줬을까?”능글맞게 웃는 그의 눈매에서 위협이 느껴졌다.하지만 온사에게는 저런 속임수가 통하지 않았다.“내가 할 줄 아는 게 하도 많아서 말이야. 궁금하면 너도 경험하게 해줄 수 있어.”말을 마친 그녀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됐어. 난 비밀이 많은 사람이라고. 성녀 전하의 시련 같은 건 받고 싶지 않아. 그러니 본론부터 얘기하지.”사구는 손을 뻗더니 소매 안에서 고급 소재의 헝겊 하나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성녀 전하, 이게 뭔지는 알고 있지?”온사는 그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그것은 사망하신 어머니께서 입관할 때 입었던 옷이었다.온사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좋아. 어디 네 얘기 한번 들어보지.”그녀는 소매를 만지는 척하며 공간 안에서 뭔가를 꺼내 상 위에 올려놓았다.피 묻은 머리카락이었다. 딱 봐도 억지로 잡아당겨 뽑은 것으로 보였다.사구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온사는 냉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내 어머니의 물건으로 날 협박하려 하지 마. 네가 어머니를 완전한 상태로 돌려준다면 너희의 아가씨도 무사할 테니까.”물론 지금 인사불성이 되었다는 얘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그래도 사지 멀쩡하고 손발가락 그대로 붙어 있으니 완전하다고 할 수 있었다.사구는 냉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호통쳤다.“이런 식으로 나에게 협박한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없었어!”“그건 예전이고 지
“뭐라고?”온자월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온사를 노려보았다.온사는 그런 그를 싸늘히 노려보고는 말했다.“거래 안 한다고. 알아들었어? 내가 다시 말해줘?”“온사, 너!”온자월이 온사의 이름을 부른 그 순간, 검은 인영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놀란 온자월은 품에 간직한 비수를 꺼내려 했다.하지만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추월의 주먹에 맞아 바닥에 떨어졌다. 곧이어 추월은 주먹으로 온자월의 얼굴을 쳤다.퍽!온자월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그가 일어나서 반격하기도 전에 추월은 그의 복부를 걷어차 멀리 날려버렸다.“너… 넌 누구야? 감히 진국공가의 공자에게 무력을 휘두르다니!”온자월은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하고 신분으로 추월에게 겁을 주려 했다.온사는 그런 그들에게 한발 한발 다가갔다. 추월이 고개를 숙이고 온사의 뒤에 섰을 때에야 온자월은 상황을 눈치챘다.“이 아이는 내 사람이야. 뭐, 불만 있어?”온사는 바닥에 쓰러져서도 소중히 연을 감싸고 있는 온자월을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아들이 원수의 딸을 구한답시고 친히 만들어준 연을 거래 조건으로 들고 나온 걸 어머니가 아시면 참 후회하실 거야.”“원수의 딸이라니! 또 무슨 헛소리야!”온자월은 바닥에 쓰러져 몸도 못 일으키면서도 언성을 높여 말했다.“참, 내 정신 좀 봐. 또 쓸데없는 얘기를 했네.”온사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머니는 생전에 우리를 무척 사랑하셨어. 네가 불효자인 걸 아셨어도 후회는 없으셨을 거야.”말을 마친 온사는 온자월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온자월 너는 후회 안 해?”온자월은 주먹을 꽉 쥐고 온사를 노려보며 말했다.“네가 뭘 하려는 건지 알아. 넌 나와 막내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어. 하지만 착각하지 마. 혈연을 떠나서 막내는 내 동생이야!”“그래? 진실을 알게 되는 날에도 그 말 후회하지 않기를 바랄게.”그 말을 끝으로 온사는 수월관으로 돌아가 버렸다.그녀는 더 이상 온자월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그가 끝까지 정신 못 차리고
온사는 그가 뭐 하러 온 건지 바로 알아차렸다.그녀는 온자월이 대체 뭘 갖고 왔을지 궁금했다.밖으로 나가서 온자월이 들고 있는 연을 보자 그녀는 웃음이 나왔다.“어머니께서 직접 만들어 주신 연까지 가지고 왔네?”온자월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이 연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안다면 나도 쓸데없는 말 안 할게. 너 어머니의 물건을 원하잖아? 이 연을 너에게 줄게. 당장 막내를 풀어줘.”온사는 피식 냉소를 터뜨렸다.“온모를 위해 이 정도까지 할 줄이야. 걔를 위해서 어머니까지 버릴 생각이야?”“어머니를 버린 게 아니야!”그 말을 들은 온자월은 곧바로 반박했다.“네가 막내를 납치하지 않았으면 내가 어머니의 물건을 꺼낼 일도 없었어!”온사는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니까 넌 결국 어머니와 외부인 둘 중에 외부인을 택했다는 거잖아!”“헛소리하지 마!”온자월은 격앙된 목소리로 호통쳤다.“막내는 외부인이 아니야. 외부인은 너지! 잊지 마, 넌 이미 진국공가의 딸이 아니야. 진국공가의 딸은 막내 한 명뿐이야. 걔가 내 동생이라고!”“그래! 양심도 없는 놈. 역시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끼리 잘 어울리네. 원래부터 너희가 일가족이었나 봐!”온사는 눈을 부릅뜨고 온자월을 노려보며 소리쳤다.“지금 누굴 욕한 거야?”온자월도 눈을 부릅뜨고 온사를 노려보았다.“온사, 내가 너한테 주먹을 못 휘두른다고 함부로 막내 욕하지 마!”온사는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나한테 주먹을 휘둘러? 참 대단하네. 경성의 사내들 중에 여자한테 주먹을 휘두르는 건 아마 너밖에 없을 거야?”“너!”온자월은 발끈하며 온사에게 다가가려다가 손에 든 연을 놓칠 뻔했다. 그는 뒤늦게 연이 괜찮은지 살펴보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온사는 그 모습을 보고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연을 외부인인 나에게 갖고 와서 거래를 하자는 사람이 뭘 그렇게 긴장해?”그녀는 비웃음 가득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설마 내가 이걸 소중히 보관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나중에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온자월은 나무상자에서 조심스럽게 연 하나를 꺼냈다.이것은 그가 어릴 적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 주신 연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간 이후로 그는 한 번도 이것을 꺼낸 적 없었다.오늘에 와서야 이것을 꺼내보지만 목적은 좀 달랐다.“분명 온사가 막내를 숨겨뒀을 거야. 온사가 막내를 풀어주게 하려면 걔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으로 교환할 수밖에.”온사가 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는 온자월은 잘 알고 있었다.온사는 출가하러 수월관으로 떠날 때도 그들 몰래 어머니의 위패를 가져간 사람이었다.나중에는 온자신을 갖고 그들을 협박하여 어머니의 혼수품까지 모두 챙겨갔다.그래서 이 집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물건은 별로 많지 않았다.이걸 온사에게 내어주기엔 너무 아깝지만 막내가 온사의 손에 있다고 생각하니 어쩔 수 없었다.게다가 온사는 막내가 어머니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모함하고 있지 않은가! 빨리 막내를 구해내지 않으면 명성이 더럽혀질 것 같았다.“어머니, 죄송합니다. 아들의 불효를 용서하세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막내만 구출하고 어떻게든 이 연은 다시 돌려받을게요.”온자월은 결국 결정을 내렸다.그는 연을 들고 말에 올라 남산 쪽을 향해 달려갔다.그가 경성을 나간 후, 진국공부.“국공 어르신, 셋째 공자께서 외출하셨습니다. 성녀를 찾아간 것 같아요.”침상에서 휴양 중이던 온권승은 그 말을 듣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집사가 재빨리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온권승은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뭐 하러 가는지는 말이 없었고?”집사가 답했다.“셋째 공자께서는 손에 연 하나를 들고 나가셨습니다. 다른 건 소인도 모릅니다.”“연을 갖고 나가?”온권승은 잠시 기억을 회상하다가 집사에게 물었다.“제비 모양의 연 말이야?”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예, 맞습니다. 크지 않고 자그마한 어린애용 연 같았습니다.”온권승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온자월이 뭐 하러 갔는지 알 것 같았다.“됐어. 갈 테면 가라고 해. 수월관에 침입하지 못하도
그러나 김사도는 사구와 그저 몇번 지나치다 본 사이라고만 했다.말투나 표정을 보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온사는 일단 제쳐두기로 했다.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옥패 공간으로 돌아간 온사는 사구가 찾아올 것을 미리 대비해 두기로 했다.그 시각, 경성 진국공부.“그럴 리 없어요. 막내가 그런 짓을 했을 기 없잖아요! 분명 온사 그 계집애가 막내를 모함하는 걸 거예요!”그날 집으로 돌아온 후 아버지에게 완전히 실망한 온장온은 어머니의 무덤이 도굴당한 일을 두 동생에게 알렸다.두 사람의 반응은 무척 격했다. 하지만 온장온이 예상했던 반응은 아니었다.“지금 그게 중요해? 먼저 어머니의 시신부터 찾아야 하는 게 아니야?”“당연히 알죠. 하지만 형님, 온사가 막내를 모함하는데 그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온자월은 격분해서 온장온에게 언성까지 높였다.온장온의 표정도 순간 차갑게 변했다.“온사가 이런 일로 장난칠 애로 보여? 잊지 마! 걔도 우리처럼 어머니의 자식이야!”“형님!”온자월은 실망한 눈으로 온장온을 바라보며 따져물었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막내는 우리와 같은 배에서 나온 자식이 아니라서 마음대로 의심해도 된다는 거예요?””내가 언제 그렇다고 했어? 셋째야, 내 말을 왜곡하지 마!”“제가 왜곡을 했다고요?”온자월은 냉소를 짓고는 온옥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그럼 넷째에게 물어보세요. 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형제는 아까부터 침묵을 지키고 있는 온옥지에게 고개를 돌렸다.온옥지는 담담히 말했다.“큰 형님, 어머니의 시신이 사라져서 많이 놀라고 초조한 마음 이해요. 하지만 말이 너무 심하잖아요. 돌아온 막내가 그 말을 듣고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얼마나 속상하겠냐고요?”온자월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온장온은 한숨이 나왔다.그는 이 둘과는 말이 안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어쩌면 매번 막내와 연관된 일에 한해서는 그랬던 것 같았다.예전의 그 역시 막내의 편에 섰기에 그게 틀렸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최근에 그놈을 만났어?”온사는 고개를 저었다.“아니. 놈이 나한테 정말 소중한 것을 훔쳐갔어. 그래서 놈을 찾고 있어.”김사도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온모가 시킨 거겠지. 그 인간 평소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해. 나도 몇 번 마주친 게 다라고. 사구의 다른 무리는 본 적도 없어.”“그렇게 은밀히 행동해?”온사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김사도가 말했다.“놈들을 찾자면 쉽지 않을 거야. 하지만 사구는 곧 나타날걸.”온사가 흠칫하며 물었다.“온모가 내 손에 있기 때문에?”“맞아. 놈들은 온모가 변을 당하는 걸 보고만 있지 않을 거야. 그러니 조심해. 내 해독제를 만들어내기 전에 죽지 말라고.”말은 그렇게 해도 김사도는 꽤 신이 난 표정이었다.온사가 담담히 말했다.“그렇다면 너도 조심해야겠지.”“내가 왜 조심해? 난 어차피 온모에게 조종당하던 허수아비일 뿐이야. 지금은 온사가 너에게 잡혀가고 내 통제권이 너한테 넘어간 것일뿐. 한낱 허수아비일 뿐인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김사도는 어깨를 으쓱하며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온모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맞아. 넌 이미 내 허수아비가 되었으니 사실을 말해주지. 온모의 몸에서 수색한 처방전을 보고 감히 확신하건대, 이 대명왕조에서 나를 제외하고 너희들의 해독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어.”김사도는 놀란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혹시 처방전을 훼손한 거야?”“그거도 그거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자세한 원인은 지금은 말해줄 수 없어. 내가 죽으면 너희는 영원히 해독제를 못 구할 거라는 것만 명심해.”“정말 너무하네.”김사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래도 이제 동맹이자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친구한테 그런 것도 얘기 못해줘?”“미안하지만 나한테 동맹과 친구는 달라. 동맹은 언제든지 적이 될 수 있지만 친구는 아니거든. 그러니 넌 내 친구가 아니야.”온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김사도는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나 상처 받았어.”“그래. 그
“쿨럭… 처리하기도 전에 납치를 당해서… 시신은 사구한테 있어.”온사가 온모를 납치하던 날에 온모가 사구를 시켜 무덤을 도굴하게 했다는 얘기였다.온사는 만약 추월이 그날 온사를 납치해서 끌고 오지 않았더라면 어머니의 시신은 진작에 온모의 손에 훼손되었을 거라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사구는 누구야?”“모… 몰라. 난 태어날 때부터 그 사람들과 함께 있었어.”‘그 사람들? 온모의 배후에 그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건가?’온사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환각제를 먹고도 상대의 정체를 밝히지 못한다면 김사도 무리처럼 온모의 어미 백초유가 미처 온모한테 알려주지 못하고 남기고 간 사람들일 것이다.‘아니면 온모의 배후에 비밀의 존재가 있거나.’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온사는 어머니의 시신을 되찾은 후에 바로 온모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놈은 어디 있어? 너희는 어떻게 연락해?”“나도 걔가 어디 있는지 몰라. 그저 내가 필요할 때 알아서… 나타났어.”말을 마친 온모는 갑자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환각제의 약효가 끝난 것이다.온사는 싸늘한 눈으로 온모를 내려다보았다.“네가 필요할 때 알아서 나타난다라….”‘그렇다면….’방법을 떠올린 온사는 온모를 끌고 가서 다시 철장에 가두었다.그러고는 김사도에게 서신을 보내 속히 수월관으로 오라고 했다.다음 날, 김사도는 저녁 무렵에 온사의 처소 앞에 나타났다.“무슨 일인데 이리도 급하게 사람을 불렀어? 고귀하신 성녀 전하께서 내가 그리웠나?”그는 늘 이렇게 시정잡배처럼 굴었다.온사는 한심한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아, 알았어. 내가 안 보고 싶었나 보네. 그럼 내 해독제 연구에 진전이라도 있는 건가?”김사도는 온사의 옆으로 다가가서 싱글거리며 질문을 던졌다.“진전은 있어. 온모의 몸에서 네가 말한 해독제 처방을 찾았거든.”김사도는 순간 고개를 번쩍 들더니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정말? 성녀가 보기에 그 처방 어땠어? 만들어낼 수 있어?”그의 목소리에서 초조함이 느껴졌다.물론 온사는 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