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굳이 여기서 먹어야 하는 거예요?” 이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식당 내부는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인테리어였다. 이서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환이라면 굳이 이런 곳이 아니라, 훨씬 더 좋은 7성급 호텔에서 우아한 분위를 즐기며 식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호텔의 고급스러움은 이 식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식당, 속설이 하나 있대.” 잠시 침묵을 지키던 지환이 입을 열자, 이서가 지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치 무언가 말하기 어려운 사연이라도 있는 듯, 지환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여기서 밥을 먹은 부부는, 가정법원 앞까지 가서 이혼하려고 했던 사이라도 다시 화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 이서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나를 여기로 끌고 온 거예요?” 지환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채, 창밖만을 바라보았다.이서는 그런 지환을 흘겨보았지만, 어느새 마음속 깊은 곳이 살짝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럼 이 비서님께 미리 예약하라고 하지 그랬어요.”그 정도는 지환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괜히 여기서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는 없었을 텐데 말이지.’지환에게는 매 순간이 아까운 시간일 터였다. 지환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진지하게 대답했다. “이천한테 예약하라고 시키면 정성이 부족한 거잖아. 정성이 부족하면 일이 잘 안 풀릴 수도 있단 말이야.”이서는 순간 멍해져서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물었다. “정성을 들여도 안 통하면요?” 지환은 담담하게 말했다. “안 통하더라도 시도는 해봐야지. 우리 둘이 다시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이라면, 아무리 바보 같아 보여도 해볼 만한 가치가 있어.” “하지환 씨...” 이서가 무언가 더 말하려던 순간, 지환이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이서야,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아. 하지만 하도훈 문제가 해
단톡방은 한동안 조용했는데, 한참 지나서야 하나가 고개를 빼꼼 내밀며 말했다. [대체 뭐가 네 눈을 흐리게 만든 거야? 형부가 인기가 없다고 생각한 이유가 대체 뭐냐고.]이서가 당황하던 찰나, 소희도 메시지를 보내왔다.[언니가 싫어할 말인 건 알지만, 형부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줄 세우면, H국에서 M국까진 이어질걸요?]나나도 끼어들며 한마디 했다. [솔직히 말해서 형부가 원한다면 매일 여자 친구를 바꾸는 것도 가능할 거예요. 매번 다 다른 사람일 거고, 죄다 아주 예쁜 여자들이겠죠... 아, 물론 형부가 원한다는 전제가 있어야겠지만요!]“...” 이서는 조용히 지환을 쳐다보았고, 이서의 시선을 느낀 지환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이서는 지환을 몇 번 더 흘깃 본 후, 마지못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서는 지환이 정말로 인기가 많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서 그저 닭고기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맛이 나쁘진 않았지만 그렇게 대단한 정도는 아니었다. 이서는 이 식당이 이렇게 인기 있는 건 순전히 ‘속설’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을 한 입 더 먹은 이서는 문득 지환과 두 시간 넘게 줄은 선 게 별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 먹고 나서는 뭐 할 거예요?”이서가 물었다. “영화 보러 가자.” 이서는 눈썹을 살짝 올리며 말했다. “우리 같이 영화 본 적은 없지 않아요?” “정확히 말하면,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한 적이 없었지.” 지환은 조용히 이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해, 이서야.” 이서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런 일로 사과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난 늘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 내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우리 사이는 달라졌을지도 모르잖아.” 지환은 속눈썹을 내리깔며 말했다. 이서는 지환의 그런 모습에 마음이 묘하게 불편해졌다. “다 지나간 일일 뿐이에요. 오늘은 그런 얘기하지 말고... 우리 그냥 제대로... 데이
윤이서는 결혼했다.그러나 결혼 상대는 그녀가 8년 넘게 사랑을 했던 약혼자인 하은철이 아닌 만난 지 5분도 안 된, 기본적인 정보만 대충 아는 남자였다.“후회되시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사무소 대기실에서 남자는 조금 귀찮다는 눈빛으로 윤이서를 흘겨보았다.윤이서는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며 머릿속은 하은철의 차갑고 매정한 얼굴이 떠올랐다.3일전, 줄곧 윤이서를 피했던 하은철이 직접 그녀를 저녁식사에 초대를 했고, 전화를 받은 그녀는 순간 지난 8년간의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정성껏 꾸미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하지만 약속장소에서 도착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은철뿐만이 아니라 그와 손을 깍지를 낀 채 휠체어에 앉아 달콤한 미소를 짓고 있는 윤수정도 함께 있었다.--그녀의 사촌 여동생!그녀가 아직 두 사람의 관계를 모르고 있을 때, 하은철은 갑자기 폭탄발언을 했다.“네 신장을 수정이에게 주면 너와 결혼할게.”윤이서는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 몸이 굳어지며 믿을 수 없단 듯이 하은철을 바라보았다.맞은편 남자의 눈빛은 시종 차갑고 증오로 가득 찼다. 마치 자신을 8년 동안 정성껏 뒷바라지 한 약혼녀가 아닌 아버지를 죽인 원수라도 보는 것 같았다.그녀는 마치 갈 곳을 잃어 절벽에서 추락하는 것 같았다.하은철과 어릴 때 약혼한 사이였고, 16살 되던 해 귀국한 후, 하은철을 걷잡을 수 없이 사랑하게 되었다.이 8년 동안 그를 뒷바라지 하기 위해 그녀는 빨래와 밥하는 것을 배웠고, 또 그에게 걸맞는 아내가 되기 위해 피아노, 그림 등을 배웠으며 심지어 그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오직 그가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그녀와 결혼해주기 꿈꾸며.그러나 현실은 그녀에게 매몰찼다. 하은철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촌 여동생을 사랑하고 있었다.심지어 그의 애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전혀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하는 것도
“무슨 문제 있나요?” 하지환은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윤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벌리고 있다가 또 하지환이 오해할까 봐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아니요, 가요.”어차피 언젠가 마주해야 할 문제였다.도중에 윤이서는 하은철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스크린이 끊임없이 반짝이는 것을 보면서 윤이서는 마치 지난 8년 동안 비굴했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전에는 모두 그녀가 먼저 하은철에게 전화를 걸며 그의 관심을 끌려했다.그러나 하은철은 단 한 번도 먼저 그녀에게 전화를 지 않았다.설령 그녀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한다 하더라도 그는 한 마디 관심도 없었다.그러나 지금, 윤수정을 위해 그는 몇 번이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 수 있었다.두 사람 사이의 차이는 정말 컸다.“안 받아요?” 조수석에서 눈을 감고 쉬고 있던 하지환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윤이서는 남자의 완벽한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비록 그의 표정을 보지 못했지만, 그녀는 왠지 모르게 그가 짜증이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잠시 망설이다가 그녀는 수신 버튼을 눌렀다.입을 열기도 전에 맞은편 하은철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윤이서! 너 당장 병원으로 오지 못해! 지금 얼마나 많은 전문가들이 너 기다리고 있는지 알아? 수정이는 얼마나 괴로운지 아냐고? 너 어떻게 이렇게 이기적일 수 있어? 나는 이미 너와 결혼하는 것에 동의했는데, 넌 또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거야?!”윤이서의 입가에는 씁쓸한 웃음이 번졌다.비록 하은철이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하은철의 마음속에 있는 자신이 그렇게 형편없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이왕 이렇게 된 이상…….“내가 원하는 게 뭔지 잘 알잖아?” 윤이서의 눈빛은 차가워졌다.“난 너의 사랑을 원하는데, 너는 줄 수 있어?”“뻔뻔한 년!”하은철은 그녀를 비꼬았다.“나는 절대로 너 같은 여자 사랑하지 않을 거야! 윤이서, 너 지금 오면 아직 하씨 집안 아
윤이서의 가슴은 놀라움에 줄곧 두근거렸다.마치 바다에서 떠 있다 마침내 부목을 잡은 것 같았다.고개를 들자 그녀는 마침 하지환의 눈빛과 부딪쳤다.그의 눈빛은 더 이상 장난기가 없었고, 오히려 무척 다정했다. 그 순간, 윤이서마저 하마터면 그에게 속아 넘어갈 뻔했다.그녀는 황급히 윤재하와 성지영을 바라보았다.두 사람은 놀라서 소파에 주저앉았다.한참 뒤, 윤재하는 먼저 반응하여 고개를 들어 윤이서에게 물었다.“이서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윤이서는 막 입을 열려고 했지만 하지환은 그녀를 자신의 뒤로 감쌌다.이런 전 없었던, 누군가에 의해 보호받는 느낌은 그녀의 머리를 하얗게 만들었고 이때 귓가에서 하지환의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울렸다.“오늘 금방 혼인 신고를 했는데, 정말 너무 바빠서 두 분께 미처 알리지 못했네요.”윤재하는 화를 참으며 이성을 유지했다.“이서야!”윤이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말했다.“네, 저 사람 말이 모두 사실이에요. 난 결혼했고, 그 이유는 바로 하은철과 결혼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성지영이 달려와 윤이서의 두 어깨를 쥐고 말했다.“이서야, 너 왜 그래? 너 줄곧 은철을 좋아했잖아, 지금 은철이 마침내 너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너 어떻게…….”그녀는 갑자기 경계하며 하지환을 바라보다가 목소리를 낮추었다.“너 솔직히 말해봐, 누가 널 협박한 거 아니야?”성지영이 하지환을 오해했다는 것을 깨닫고 윤이서는 얼른 설명했다.“엄마, 아무도 나를 협박하지 않았어요. 나는 그냥 날 전혀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그녀는 지쳤다.그리고 더 이상 그에게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성지영의 손톱은 윤이서의 살에 깊이 파고들었다.“이서야, 너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니? 네가 은철과 혼약을 맺었을 때부터 우리는 널 그의 미래의 아내로 키웠고, 네가 시집가는 것은 윤씨 가문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지, 그 따위 사랑을 위한 것이 아니야!”윤이서는 통증에
하지환은 어두운 얼굴로 사람을 조수석에 앉힌 다음 운전석으로 올라왔고 문을 쾅 닫았다.윤이서는 놀라서 몸을 움츠렸고 하지환의 보기 흉한 안색을 슬쩍 바라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화낼 사람은 분명히 그녀인데, 왜 하지환이 그녀보다 더 화가 난 것 같지?다음 순간, 하지환은 갑자기 차에 시동을 걸었고, 차는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윤이서는 하마터면 날아갈 뻔했다. 그녀는 안전벨트를 꽉 잡았고, 목소리는 바람에 의해 다르게 변했다.“도대체 뭐 하려는 거예요?”하지환은 그녀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한 듯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고, 검은 눈동자는 마치 어두운 밤의 야수처럼 앞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순간, 평범한 아우디 A6는 철장에서 벗어난 맹수처럼 조용한 거리를 거침없이 질주했다.윤이서는 창백한 얼굴로 온 힘을 다해 안전벨트를 잡았고, 큰 소리로 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거대한 바람소리는 마치 블랙홀처럼 그녀의 소리를 삼켰다.그렇게 윤이서는 차츰 발버둥 치는 것을 포기하고 광풍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불도록 내버려 두며 하지환이 미친 사람처럼 그녀를 어디론가 데려가도록 내버려 두었다.3일 전, 그녀는 이미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자살은 너무 아파서 그녀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그리고 그때, 그녀는 부모님이 아무리 자신을 하씨 집안으로 시집가게 만들고 싶어도 하은철의 황당한 요구만 들으면 반드시 자신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것 또한 그녀가 하지환을 데리고 부모님을 만나러 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그러나 부모님의 눈에는 윤씨 집안을 다시 정상으로 만드는 것이 그녀의 행복보다 훨씬 중요했다.20여 년의 모든 아름다운 기억은 지금 산산조각이 났다.바람은 그녀의 차가운 얼굴을 향해 불었고, 그녀는 이미 눈물이 다 말랐다.마음은…… 죽었으니까.차 속도는 어느새 느려졌고 윤이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차는 해변에 도착했고, 노을에 물든 모래사장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다. 그들은 마치 작은 검은 점처럼 움
윤이서는 임하나의 터무니없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너 말이야, 드라마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그냥 상담소에서 찾은 사람이야. 하씨 집안과 관계가 없고, 유일하게 엮인 것은 그가 HS 그룹에서 일한다는 거야.”“아.”임하나는 크게 실망했다.“그러니까, 그는 심지어 하은철의 부하다 이거야? 그럼 앞으로 하은철이 너를 괴롭히려고 하면 더욱 쉬운 거 아니야?”윤이서는 눈동자가 어두워졌다.“아마…… 아닐 거야, 하씨 집안 어르신을 봐서라도 말이야. 게다가 난 이미 결혼했으니 하은철은 나를 귀찮게 하지 않을 거야.”임하나는 약간 안심했다. 그러나 하은철이 한 짓을 생각하면 그녀는 또 참지 못하고 절친을 위해 불평을 품었다.“그때 내가 제대로 손봐줬어야 했는데. 설마 네가 얼마나 지랑 결혼하고 싶어 했는지 모르는 거야?”윤이서는 작은 소리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하나야, 이미 지나간 일이야. 앞으로 나와 하은철은 각자의 삶을 사는 서로 상관이 없는 사람이야.”“그럼 그 혼약은…….” 임하나가 물었다.“어르신 쪽은 아직 모르지? 어르신께서 아시면 틀림없이 상심할 거야.”윤이서는 방금 전까지 내려놓은 근심을 다시 걱정하기 시작했다.하은철의 할아버지에 대해 윤이서의 마음속에는 양심의 가책만 남았다.그녀와 하은철의 혼약은 어르신이 직접 정한 것이었다. 윤씨네 집안이 몰락한 후, 모두들 어르신이 그 약속을 회수하며 그녀가 바닥까지 추락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그러나 어르신은 혼약을 취소하기는커녕 공식 석상에서 여러 차례 그녀만 손자며느리로 인정한다고 밝혔다.심지어 그녀 때문에 어르신은 손자인 하은철과 자주 다투곤 했다.지금 일이 이렇게 되자, 윤이서는 유일하게 미안한 사람이 바로 어르신이었다.“그냥…… 오늘 밤에 할아버지께 말씀드려야겠어.”윤이서가 말했다.다른 사람의 입에서 듣는 것보다 차라리 그녀가 직접 어르신께 말씀드리는 것이 낫다.임하나는 걱정을 금치 못했다.“내가 같이 가줄까?”“아니야.” 윤이서는 웃었다.“할아버지
30분 지난 후, 윤이서는 어르신이 준비한 차를 타고 천해 호텔로 갔다.룸 입구에 도착해서야 윤이서는 오늘 밤 하씨네 집안에 환영회가 있다는 것을 집사로부터 들었다.“하은철도 있나요?” 윤이서가 물었다. 그녀는 지금 그가 정말 보고 싶지 않았다.집사는 그녀의 뜻을 오해하고 웃으며 말했다.“아가씨 안심하세요. 도련님은 곧 오실 거예요.”“…….”‘지금 갈까?’그러나 뒤쪽의 문이 열렸다.윤이서는 어쩔 수 없이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할아버님.”“그래!” 어르신은 윤이서를 보며 주름살이 펴질 정도로 웃었다.“우리 이서 왔구나. 자, 얼른 할아버지 옆에 앉거라.”윤이서는 어르신 곁에 자리를 잡았다.그리고 그녀는 앉고 나서야 주변 사람들 아무도 아직 젓가락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아마 중요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윤이서의 마음을 간파한 듯 하 어르신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오늘 밤은 은철이 둘째 작은아버지가 귀국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란.”비록 하지환이 귀국 소식을 비밀로 할 것을 요구했지만, 어르신은 윤이서를 무척이나 신임했다.그녀는 절대로 이 사실을 함부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윤이서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제야 무언가가 생각났다.어르신에게는 형이 하나 더 있었는데, 젊었을 때 외국에 가서 혼자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더 대단하다고 들었는데, 사장직을 맡은 후, 1년도 안 되어 회사를 지역 내 가장 큰 회사로 만들었다고 했었다.다만 그 아들은 무척이나 겸손하여 언론 앞에서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오늘 밤 이 전설적인 인물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윤이서는 은근 기대감이 부풀었다.바로 이때, 문이 다시 열렸다.윤이서는 궁금해하며 바라보았다.그리고 들어오는 사람을 보자마자 그녀는 눈빛이 싸늘해졌다.하은철도 웃음이 굳어졌고 눈빛에서 혐오감이 조성되었다.“네가 왜 여기 있어?!”윤이서는 그에 대한 원한을 숨긴 채 무뚝뚝하게 입을 열었다.“당연히 할아버님 보러 왔지.”하은철은 냉
단톡방은 한동안 조용했는데, 한참 지나서야 하나가 고개를 빼꼼 내밀며 말했다. [대체 뭐가 네 눈을 흐리게 만든 거야? 형부가 인기가 없다고 생각한 이유가 대체 뭐냐고.]이서가 당황하던 찰나, 소희도 메시지를 보내왔다.[언니가 싫어할 말인 건 알지만, 형부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줄 세우면, H국에서 M국까진 이어질걸요?]나나도 끼어들며 한마디 했다. [솔직히 말해서 형부가 원한다면 매일 여자 친구를 바꾸는 것도 가능할 거예요. 매번 다 다른 사람일 거고, 죄다 아주 예쁜 여자들이겠죠... 아, 물론 형부가 원한다는 전제가 있어야겠지만요!]“...” 이서는 조용히 지환을 쳐다보았고, 이서의 시선을 느낀 지환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이서는 지환을 몇 번 더 흘깃 본 후, 마지못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서는 지환이 정말로 인기가 많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서 그저 닭고기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맛이 나쁘진 않았지만 그렇게 대단한 정도는 아니었다. 이서는 이 식당이 이렇게 인기 있는 건 순전히 ‘속설’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을 한 입 더 먹은 이서는 문득 지환과 두 시간 넘게 줄은 선 게 별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 먹고 나서는 뭐 할 거예요?”이서가 물었다. “영화 보러 가자.” 이서는 눈썹을 살짝 올리며 말했다. “우리 같이 영화 본 적은 없지 않아요?” “정확히 말하면,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한 적이 없었지.” 지환은 조용히 이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해, 이서야.” 이서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런 일로 사과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난 늘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 내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우리 사이는 달라졌을지도 모르잖아.” 지환은 속눈썹을 내리깔며 말했다. 이서는 지환의 그런 모습에 마음이 묘하게 불편해졌다. “다 지나간 일일 뿐이에요. 오늘은 그런 얘기하지 말고... 우리 그냥 제대로... 데이
“왜 굳이 여기서 먹어야 하는 거예요?” 이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식당 내부는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인테리어였다. 이서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환이라면 굳이 이런 곳이 아니라, 훨씬 더 좋은 7성급 호텔에서 우아한 분위를 즐기며 식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호텔의 고급스러움은 이 식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식당, 속설이 하나 있대.” 잠시 침묵을 지키던 지환이 입을 열자, 이서가 지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치 무언가 말하기 어려운 사연이라도 있는 듯, 지환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여기서 밥을 먹은 부부는, 가정법원 앞까지 가서 이혼하려고 했던 사이라도 다시 화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 이서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나를 여기로 끌고 온 거예요?” 지환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채, 창밖만을 바라보았다.이서는 그런 지환을 흘겨보았지만, 어느새 마음속 깊은 곳이 살짝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럼 이 비서님께 미리 예약하라고 하지 그랬어요.”그 정도는 지환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괜히 여기서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는 없었을 텐데 말이지.’지환에게는 매 순간이 아까운 시간일 터였다. 지환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진지하게 대답했다. “이천한테 예약하라고 시키면 정성이 부족한 거잖아. 정성이 부족하면 일이 잘 안 풀릴 수도 있단 말이야.”이서는 순간 멍해져서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물었다. “정성을 들여도 안 통하면요?” 지환은 담담하게 말했다. “안 통하더라도 시도는 해봐야지. 우리 둘이 다시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이라면, 아무리 바보 같아 보여도 해볼 만한 가치가 있어.” “하지환 씨...” 이서가 무언가 더 말하려던 순간, 지환이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이서야,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아. 하지만 하도훈 문제가 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지환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이서의 귓가에 들려오자, 이서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지환을 바라보았다. 햇살 아래 빛나는 지환의 완벽한 이목구비는 어떤 각도에서 보더라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더라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잘생기지 않았다’는 말은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바로 지환이었다. 지환은 이 세상에 내려온 최고의 선물과 같았는데, 한때 그를 가졌던 이서에게도 그것은 분명 큰 행운이었다.“‘그날 내가 하지환 씨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복수 계획에 동의했더라면 지금쯤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서의 조용한 목소리에 지환이 잠시 이서를 바라보다 대답했다. “글쎄,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해.” 이서는 왠지 지환의 다음 말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뭔데요?” 지환은 이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널 사랑하게 됐을 거라는 건 변함이 없다는 거지.” 그 한마디에 이서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서는 미칠 듯한 두근거림을 감추려 애써 지환의 시선을 피했다. “우리... 오늘 하루 종일 여기에 있는 거예요?” 지환이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나한테 주어진 시간은 24시간뿐이잖아. 물론 너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소중하지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진 않아. 이제 두 번째 장소로 가자.”“어디로 갈 건데요?” 이서는 호기심을 가득 담아 물었지만, 지환은 대답 대신 조수석 문을 열어줄 뿐이었다.이서는 잠시 망설이다가 차에 올랐고, 차는 천천히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서는 지환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가정법원 앞에 서 있는 신혼부부와 이혼하러 온 듯한 부부들을 보며 이서가 말했다. “덕분에 생각났네요. 우리... 아직 이혼 안 했잖아요.”지환은 안전벨트를 풀던 손을 멈추고 이서를 바라보았다.“혹시 지금 내려서 이혼하자는 건 아니지?”이서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왜 이미 고이서의 정보를 손에 넣고도 나한테 바로 알리지 않은 거예요?” 이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고, 지환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자료를 받았을 때는 어떤 카페의 근처였어. 그런데 마침 네가 소지엽을 만나러 가는 걸 보게 된 거지.”“하지환 씨가 밖에 있었다고요?” 이서가 놀라며 되물었다. ‘그럴 수가 있다고?’그 말은 곧 두 사람이 비슷한 시간대에 고이서의 자료를 입수했다는 얘기였다. ‘뭔가 이상한데...’ 이서는 지환을 보면서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 지환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서를 바라보았지만, 이서가 조수석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야 뭔가 눈치챈 듯 미소를 지었다.“내가 이겼다는 거야?” 이서는 살짝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시간을 계산해 봤는데, 하지환 씨는 구태우 씨보다 하루 늦게 고이서를 조사하기 시작했어요. 시간을 계산해 보면 하지환 씨가 이긴 게 확실한 셈이죠.”이서는 괜히 혼자서 이리저리 고민했던 게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럼...”지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앞으로 24시간 동안 네 시간은 내 거라는 거야?” 이서는 그 말이 묘하게 들렸지만, 어쨌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든 해도 돼?” 이서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뭘 하려고요?” 지환은 이서를 힐끗 보며 미소를 지었다.“내가 뭘 할 것 같은데?” 이서는 눈썹을 찌푸리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불순한 생각들을 애써 지우려고 했다. 지환은 이서의 표정을 다시 한번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 “왜 말이 없어?” 지환은 이내 무슨 생각이 났는지 환한 웃음을 지었다.“이서야, 혹시...” “그런 거 아니에요!”이서는 빠르게 부인했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 수상쩍었다. “네가 원한다면 나는 기꺼이 맞춰줄 수 있어.”지환이 즐거운 듯 웃음을 터뜨리자, 이서가 눈살을 찌푸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그것은 지환이 이서에게 보낸 고이서에 관한 자료였다.‘이게 왜 열린 거지?’이서는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왜 그래?]이서의 목소리가 좀처럼 들리지 않자, 지환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서의 시선은 시종일관 고이서의 자료에 머물러 있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지금 고이서의 자료를 보는 중인데, 다 보고 나서 다시 전화할게요.”이서는 전화를 끊고 자료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 자료의 내용은 고이서가 제공한 이력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이서는 5살 때 화재 사고를 겪은 후 해외로 보내졌다.하지만 지환이 보내온 자료에는 더욱 상세한 내용이 있었는데, 그 당시 겨우 5살이던 고이서는 하룻밤 사이에 해외로 보내졌고, 병원에 도착한 후에는 병원에 있던 환자들이 차례로 퇴원하게 되었다. 딸의 치료 기간 동안, 성지영과 윤재하는 각기 다른 시점에 귀국했는데, 아주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이 귀국한 후 처음으로 향한 목적지가 모두 보육원이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매번.보육원 쪽에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두 사람이 고이서를 대신할 아이를 구하러 간 것임을 알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 아이가 바로 이서였다. ‘그때 윤수정이 내가 윤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던 게 전부 사실이었구나.’ 모든 퍼즐이 들어맞는 순간이었다.처음에 하은철이 이서와 결혼한 이유는 그녀의 신장을 위한 것이었는데, 윤재하와 성지영은 하은철의 행동이 지나치다고 생각하기는커녕, 오히려 이서와 하은철이 결혼하도록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도우려 했다. ‘하긴, 나는 윤씨 가문에 있어서 시집을 통해 하씨 가문의 도움을 받게 할 도구일 뿐이었어. 누가 그런 도구한테 큰 관심을 쏟으려 했겠어?’‘윤재하가 그렇게 막대한 자금을 횡령했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하씨 가문은 윤씨 가문에 그토록 많은 돈을 투자했지만, 윤씨 가문은 줄곧 재기하지 못했다. ‘이상하긴 했지만, 내가 윤씨 가문 사람들한테 배신당하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어제, 이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지환과 지엽이 보낸 자료를 동시에 받았다. 이서는 어떤 자료를 먼저 열어야 할지 심란해졌고, 아예 두 자료 모두 열어보지 않기로 했다.하지만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되었다. ‘하지환 씨를 골라야 할까, 아니면 지엽이를 골라야 할까?’이서는 서류봉투에 있는 전화번호를 쳐다보았지만, 여전히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랐다.이서는 갑자기 동전 던지기를 떠올렸다.‘그래,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모를 때는 동전을 던지라고 했어!’사실, 동전을 던지는 최종 목적은 선택하기 위함이 아니라, 동전을 던지는 순간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에 있었다.하지만 이서는 동전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서 잔돈을 바꿨고, 끝내 500원짜리 동전을 손에 쥐게 되었다.이서는 차로 돌아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동전 던지기를 시작했다.짤랑.이서의 머리가 하얘지던 찰나, 동전은 바닥에 떨어졌다. “...”‘내가 방금 무슨 생각을 한 거지?’‘됐어, 한 번 더 해보자.’생각을 정리한 이서는 곧장 동전을 던지지 않고, 깊게 한숨을 내쉬며 머릿속이 맑아지기를 기다린 후에야 동전을 위로 던졌다.동전은 다시 바닥에 나뒹굴었지만, 이서의 머릿속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이서는 어이가 없어서 동전을 다시 주워 들었다.‘이 방법은 전혀 쓸모가 없는 것 같아.’ ‘그래, 차라리 숫자나 그림으로 고르는 게 좋겠어.’ 이서는 다시 동전을 집어 들었다.‘숫자는 하지환 씨를, 그림은 지엽이를 가리키는 걸로 하자.’마음을 확실히 정한 이서는 다시 동전을 던졌다. 이번에는 동전이 그녀에게 확실한 답을 주었다.‘그림이구나.’하지만 이서는 명확한 답을 얻고도 기쁘지 않았다. 이서는 핸드폰을 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지엽이 건넨 서류를 들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한없이 얇은 서류 더미가 천근처럼 무겁게 느껴졌다.이서는 손을 들어 어렵사리 서류봉투를 열었는데, 서류를 꺼내려는 순간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지환에게서
“그럼 이번 일은 구태우 씨에게 조사를 맡기를 걸로 하겠습니다.”이서가 몸을 일으키며 소지엽을 바라보았다.“세부적인 내용은 심 대표님과 직접 이야기하면 돼. 나는 돌아가서 회사 일부터 처리해야겠어.”소지엽은 이서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바래다줄게.”“괜찮아.”이서는 짧은 대답을 끝으로 몸을 돌려 떠났다. 그 단호한 뒷모습과 깔끔한 마무리, 소지엽은 이서의 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달갑지 않은 게 분명해.’“소지엽 씨?”지엽은 심근영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심근영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자세히 이야기해 보자면...”한편, 아래층에 도착한 이서는 주동적으로 소희 모녀와 인사를 나누었다. 이서가 돌아가겠다고 하자, 이지숙은 꽤 의아해했다.“이렇게 빨리?” “네, 구체적인 사항은 지엽이가 대표님과 상의할 거예요. 저는 여기 있어도 도울 수 있는 게 없으니 먼저 가보겠습니다.”소희가 이서의 팔을 붙잡았다.“언니, 제가 데려다줄게요.”이지숙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마음속으로는 소희와 이서의 관계가 더 좋아져서 지환이라는 큰 나무에 기댈 수 있기를 바랐다. “언니, 오늘 소지엽 씨와 같이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렇지 않았다면, 유인이 언니의 만행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을 거예요.”이서가 말했다.“그러게, 타이밍을 잘 맞춘 것 같아.”“참, 소희 씨의 양부모가 아직도 문제를 일으키는 건 아니지?” “조금 이상하긴 해요. 꽤 오랫동안 저를 귀찮게 하지 않았거든요.”이서가 말했다. “심태윤도?”“네.”이서가 눈살을 찌푸렸다.“소희 씨에게 게임 회사의 기밀문서를 훔쳤다는 누명을 씌운 사람이 심태윤일 가능성은 없을까?”소희는 고개를 저었다.“걔가 벌인 짓이었다면 심씨 가문 사람들이 벌써 잡아냈을 거예요.” “심씨 가문 사람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조사했는데도 못 찾아내는 걸 보면, 심태윤이 벌인 짓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럼 심태윤이 심씨 가문 사람들과 협력해서 벌인 일인 건 아닐
‘소희 씨의 심씨 가문 생활, 꽤 재미있는 것 같은데?’ “우리... 2층에 가서 얘기 좀 할까?”심근영이 2층 방향을 가리켰다. 이서는 소지엽을 한 번 보았고, 그가 고개를 끄덕인 후에야 대답했다.“네.”세 사람은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고용인이 차와 음료를 내려놓고 떠나자, 심근영이 입을 열었다.“윤 대표는 어떤 생각을 했길래, 소지엽 씨한테 우리 소희 사건을 조사해달라고 한 거지?” 이서가 대답했다.“말하자면 깁니다.”시간은 주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이서는 고이서와 성지영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 회사로 돌아갔고, 지환은 이서에게 구태우와 자신 중에 누가 먼저 고이서의 자료를 찾는지 비교해 보라고 했다.이서는 일요일 하루 종일 지환을 만나지 못했기에, 그가 분명히 고이서를 조사하러 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환 씨... 꽤 진지한 것 같아.’이서는 약간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서도 자신이 왜 긴장했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지환이 구태우보다 더 빨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환이 지기를 바란다고 말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지환이 이기기를 바라는 복잡한 마음이었다. 복잡한 마음에 시달리던 이서는 오후 3시쯤 구태우의 메시지를 받았다.메시지를 보는 순간, 이서는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는데, 그제야 자신이 지환이 이기기를 바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그때, 이서는 구태우의 전화를 받았다.[회사로 가겠습니다.]“그냥 자료를 보내주시면 되잖아요.” 구태우의 말투는 평소와 같지 않았다.[자료를 원하신다면 가져가겠습니다. 만나서 이야기하시죠.]이서는 자신이 구태우를 화나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오직 고이서를 생각하면서 카페로 향했다.몇 분 후.카페에서 소지엽을 만난 이서의 구태우의 말투가 어두운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서는 잠시 생각한 후, 소지엽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왜 네가 온 거야?” “내가 구태우한테 자료를 달라고 했어. 왜, 불편하기라도 한 거야?” 이서는 소지엽의
심유인이 말하지 않자, 심근영은 소민찬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소민찬은 선물에 대해 전혀 몰랐던 터라, 값싼 선물들을 보고 당황하여 얼른 설명했다.“저,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 선물들은 제가 산 게 아니라, 전부 유인이가 산 거예요. 저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애초에 유인이는 저한테 몸만 오면 된다고 했습니다.”“여러분,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소민찬이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답례 선물은 안 받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럼 되겠죠?” 소민찬은 이 말을 끝으로 도망치듯 심씨 가문의 저택을 떠났다. 심유인은 그의 뒤를 쫓아가려다가 심근영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유인아, 우리가 알아듣게끔 설명을 해야 하지 않겠니?”심유인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삼촌, 숙모, 저... 저는...”“차마 말이 안 나오는 모양이네요.”소희가 심유인의 곁으로 다가가 냉소하며 말했다.“제가 대신 말씀해 드릴게요.” “제 남자 친구가 운전기사라는 걸 알고, 일부러 소민찬 씨를 찾아가서 남자 친구 역할을 해달라고 한 거죠?” “소민찬 씨는 남자 친구인 척만 하면 되니까, 이 선물들도 소민찬 씨가 샀을 리 없어요.”“전부 다 언니 사비로 사신 거죠?” 심유인의 안색이 아주 어두워졌다.“그런 거 아니야...!”심유인은 아직도 변명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았다.“소민찬 씨가 선물을 준비한 게 아니라면, 그 많은 돈은 어디서 난 거니?”이지숙이 물었다. ‘다른 세 가지 선물은 전혀 가짜가 아니었어. 확실히 수십억은 되는 것들이었다고.’‘회사에서 근무하지도 않는 유인이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겠어?’심유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심근영은 심유인의 반응을 살피다가 집사를 불렀다.“당장 조사해, 당장!”심유인은 체면을 구기고 싶지 않아 ‘털썩’ 소리를 내며 심근영 앞에 무릎을 꿇었다.“삼촌, 제가 다 설명해 드릴게요. 그 선물들은... 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