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기울어지며 저녁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할 무렵. 고개를 숙인 황금 빛 논자락이 오랜 역사를 품은 이 시골 마을에 색채감을 더하고 있다.마침 하교 시간이라 삼삼오오 짝을 지어 길을 따라 늘어선 교복 차림의 아이들로 소란스러웠다.책가방을 손에 든 송성연이 아이들 가운데를 뚫고 지나갔다. 다소 나른한 듯한 표정에 몸을 더 작아 보이게 하는 헐거운 교복, 개성을 드러내는 길이가 다른 바지자락. 개구장이처럼 묶은 포니테일의 머리가 발걸음에 따라 흔들거리며, 흠잡을 데 없이 예쁜 얼굴이 더욱 시선을 끌게 한다.길가 느티나무 아래 앉아 더위를 식히던 할아버지가 성연을 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렀다.“성연이 학교 다녀오는 거냐?”“네. 학교 다녀왔어요.”성연이 웃으며 대답하고는 주머니에서 초콜릿 한 알을 꺼내 건넸다.“새로 나온 맛이에요. 드셔 보세요. 무척 달아요.”“그래.”‘허허’웃으며 받은 할아버지는 잠시 뭔가 생각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참, 네 아버지가 또 왔었다. 너를 도시에서 지내게 하려고 데리러 온 걸게야.”그 말을 듣던 성연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웃음이 사라지며, 어두워진 눈동자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집 쪽을 바라보았다.그곳에는 고급스러운 벤츠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하…… 그렇다면 좋겠네요!”성연의 입가에 한 줄기 조소가 걸렸다.성연의 부모는 어렸을 때 이미 이혼했다. 3개월도 안 되어 새가정을 꾸린 아버지는 그녀보다 한 살 어린 여동생도 데려왔다.계모는 그녀를 키울 수 없다며 집에서 쫓아냈다.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성연의 친엄마 역시 그녀를 키우려 하지 않았다.결국 성연을 불쌍하게 생각한 외할머니가 데려와 여태까지 키웠다.하지만 몇 달 전 외할머니가 돌아 가시자, 할 수 없이 엄마가 성연을 떠맡았다. 그런데 지금 남자친구와 결혼하려 안달이 난 엄마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그녀를 아버지에게 버릴 생각인 것이다.그러나 그녀의 아버지 역시 성연을 키울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아니나 다를까 성연이 막 집 입
남자는 거의 1미터 90에 육박하는 키와 체중이었다.묵직한 체중에 눌린 성연이 지탱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땅바닥으로 넘어졌다.“윽, 아파!”성연에게서 숨이 터져 나왔다.등이 바닥에 완전히 닿을 정도로 넘어진 데다 위에서 누르고 있는 남자때문에 몸이 으스러지는 것 같았다.이중으로 전해지는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그러다 성연은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심하게 잘 생긴 이목구비는 성별이 모호할 만큼 정교해서 천사와 요괴 중간쯤 되는 것 같았다. 길게 뻗은 속눈썹과 살짝 치켜 올라간 눈꼬리. 반듯한 미간을 쓸어 올리니 정신을 잃고 있는 와중에도 냉랭한 포스가 배어 나온다.꽉 다문 얇은 입술은 서늘한 호선을 그리고 있었고, 도자기 같은 피부는 병적일만큼 창백해 보였다.그때,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머리카락 사이로 남자의 이마 위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약하고 가쁜 호흡이 그녀의 얼굴 위에 뿌려졌다.몹시 초조해진 성연이 속으로 생각했다.‘아니, 이게 다 뭐람?’그러나 남자가 이미 몸을 누르고 있는 이상,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젖 먹던 힘까지 짜내 간신히 일어난 성연은 남자를 끌며 근처의 폐창고로 갔다.이 폐창고는 평소 달리 오는 사람이 없는 곳이라, 성연이 망설이지 않고 피로 물든 비싼 양복과 셔츠를 재빨리 풀어헤쳤다.상처가 드러났다!복부에 위치한 새끼손가락 길이의 상처는 칼에 찔린 자상이었다. 흘린 피의 양을 봤을 때, 확실히 가벼운 상처가 아니었다.이 상황이라면 병원에 보내는 게 맞겠지만, 이 작은 마을엔 제대로 된 병원이라고는 없었다.유일하게 진료하는 보건소에서도 이 상처를 제대로 처치하지 못할 것이다.하지만 성연에게는 이 정도 상처 치료쯤 일도 아니었다. 성연은 손을 재게 놀리며 책가방을 열고 안에서 잡다한 병이랑 용기들을 꺼내었다. 남자의 상처를 깨끗이 씻고 소독한 다음 지혈을 시키고, 약을 발랐다!치료하는 모든 과정들이 아주 깔끔한 것이 매우 숙련되어 보였다.모든 처치를 끝낸 성연은 다
반쯤 눈을 뜬 채 생각하던 강무진은 정신을 잃기 전의 상황이 기억나기 시작했다.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적의 흉계에 걸려 이 작은 마을까지 오게 되었다.당시 골목에서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를 만나 구조를 요청했었다.결국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의식을 잃었고!“목숨은 건졌나 보군!”고요한 눈동자에 차가운 빛이 감돌았다.임무 중 상대의 계략에 빠졌던 것은 팀 내의 스파이가 적에게 정보를 팔아먹었기 때문이다.기억을 떠올리던 강무진의 얼굴이 살기를 띠고 있었다. 그는 손목시계의 버튼을 눌러 구조 신호를 보냈다.약 20분 뒤, 창고 밖에서 일사불란한 발자국 소리가 울렸다.곧이어 검은 옷의 한 무리가 우르르 들어왔다.강무진을 본 수석비서 손건호는 다소 감정이 격해지면서 바짝 긴장했다.“보스, 괜찮으십니까? 제가 애들을 데리고 보스를 한참 찾고 있었습니다! 보스 상처는 어떻습니까?”“괜찮아, 이미 처치했어!”잔뜩 잠긴 음성은 무심한 듯 냉담함이 배어 있는 어조였다. 미간에는 타고난 위압감이 잔뜩 서려 있었다.그는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나자, 상태를 살표보고 있던 손건호가 얼른 부축했다.강무진의 상태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창백했던 얼굴에 혈색도 약간 돌아와 있었다.“보스, 보스 상처는…… 누가 처치했습니까?”손건호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강씨 집안 후계자 강무진은 오랫동안 수면장애를 앓아 왔다. 집안에서는 세계 명의들은 모두 찾아 모셔왔지만, 근본적인 치료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부상을 당한 강무진이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상처로 인해 반 송장이 되어 있지는 않을까 걱정하던 차였다.그런데 이렇게 기운이 생생할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질문을 받은 무진도 잠시 멍하다가 곧바로 기억을 되살렸다. 정신을 잃기 직전, 희미한 약 냄새를 맡았던 같았다. 그러다가 바로 의식을 잃었고.막 대답하려던 그는 ‘어'하는 손건호의 음성을 들었다.“이건 뭐지?”그리고 허리를 굽힌 손건호가 건초 더미에서 향낭을 하나 집어 올렸다.은은한 약향이
당시에는 나이가 어려서 쫓겨나도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다 자란 지금은 다르다. 누구도 자신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성연의 말을 들은 송종철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너…… 너는 정말 싹수가 없구나!”성연은 그 말에도 아랑곳없이 몸을 돌려 자신의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트렁크를 끌고 집안으로 들어가며 물었다.“제 방은 어디예요? 피곤해서 좀 쉬고 싶네요!”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송종철은 이 큰딸이 더 싫어졌다.그런데도 데려왔다. 그리고…… 지금 송씨 집안은 성연을 이용해 위기를 넘겨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두 사람은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거실에서 마스크 팩을 쓴 채 피부관리를 하고 있는 계모 임수정과 피아노를 치고 있는 의붓 여동생 송아연이 눈에 들어왔다.이 두 모녀는 예쁘장한 외모가 무척 닮았다.특히 송아연은 상큼한 얼굴에 어릴 때부터 받은 교육 덕택에 고상한 분위기를 지녔다.작은딸을 보는 송종철의 눈에 자랑스러운 빛이 가득했다.성연을 돌아보니, 낡아빠진 교복을 입고 온몸에 말로 표현 안되는 거친 기운이 넘실거렸다. 건들건들 책가방을 들고 저쪽에 서 있는 폼이 아주 비딱해 보였다.둘을 비교해 보려던 송종철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을 느꼈다.앞에 걸어가던 성연의 뒤에서 송종철이 소리쳤다.“나 왔어.” “아빠, 오셨어요?”건반을 두드리던 손가락을 멈춘 송아연이 먼저 반가운 기색으로 고개를 들었다.임수정 역시 돌아보며 말했다.“어떻게 이제 왔어요? 나는 당신이 또 진미선 그 여자를 못 잊어서 못 오나 했는데…….”말을 막 끝내며 돌아보던 그녀의 눈에 뒤편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성연이 보였다. 순간 표정이 돌변한 임수정이 손으로 마스크 팩을 뜯어내며 노발대발했다.“송종철, 당신 무슨 짓이야? 내가 말했지? 데려오면 안 된다고. 당신 뭐 때문에 얠 데려온 거야? 우리집에 얘가 들어와도 된다고 생각해?”눈살을 찌푸린 송아연도 일어서며 불만스럽게 말했다.“그래요, 아빠.
성연은 트렁크를 들고 송아연의 뒤를 따라 올라갔다.아름답게 차려 입은 송아연은 걷는 것도 작은 보폭의 잰 걸음이었다. 낡은 교복의 성연은 한가하기 짝이 없는 자태로 마치 구경 온 듯 조금도 궁색해 보이지 않았다.이런 성연의 모습을 힐끗 곁눈질하던 송아연은 속으로 비웃었다. ‘예쁘면 뭐해? 품격이라는 건 아무나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지.’‘쓰레기는 쓰레기인 채 진흙탕에 있어야지. 이런 대도시는 그녀가 올 곳이 아니지.’가슴을 꼿꼿이 세운 송아연은 좀 더 반듯한 자세로 걸으며 성연에게 보여줄 참이었다. 스스로 창피하게 여겨 더 이상 여기 있을 낯이 없게 말이다.하나하나 모두 화려하게 장식된 방들을 지나 마침내 송아연은 성연을 데리고 복도 끝에 가서 멈추었다.송아연은 위에서 아래로 성연을 훑어본 뒤, 손을 뻗어 문을 힘껏 열었다.헛방 안의 잡동사니들은 미처 정리할 시간이 없어 방 한쪽에 쌓여 있었고, 다른 한쪽 구석에 작은 침대 하나가 간신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방이 밝은 편이라 공기 중에 부유하는 먼지들이 부옇게 보였다.바닥에 세워 놓은 트렁크 옆에 반쯤 기댄 성연은 헛방의 환경을 보고도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팔짱을 낀 느긋한 자세로 송아연을 쳐다보았다.가진 수를 다 꺼내 보이는, 이런 어린애 장난하는 듯한 얕은 생각은 그녀의 눈에 볼품없었다.방안으로 머리를 내밀고 한 번 둘러본 송아연은 다시 성연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어째 그녀가 기대했던 효과에 미치지 못한 것 같았다.‘송성연은 왜 저리 잘난 척을 하는 거야? 일부러 신경 안 쓰는 척하는 걸까?’아무것도 개의치 않는 듯한 성연의 태도에 송아연은 화가 나 가슴이 답답해졌다.“언니, 집이 꽉 차서 지낼 곳이 없네요. 섭섭하겠지만 아쉬운 대로 여기에서 지내는 수밖에 없겠어요.”“집에 객실도 있지 않아?”나른한 음성으로 묻는 성연은 송아연의 몸을 한 바퀴 휘돌던 시선을 아무런 기색 없이 다시 거두어들였다.뒷짐을 진 송아연이 미간에 여자들 특유의 애교스러운 표정을 띄었다
송씨 저택에서 나온 성연은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로 갔다.최고급 스위트 룸을 잡은 성연은 샤워를 한 후 넓고 푹신한 침대에 엎드려 누웠다. 시큰거리는 목을 잠시 주무른 뒤 머리를 베개에 묻고 세상 모르게 한숨 잘 생각이었다.막 잠이 들려는 찰나, 테이블 위에 올려 둔 휴대전화가 울렸다.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발신자 번호를 슬쩍 본 성연은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한쪽으로 던져버렸다.비록 저장해 놓진 않지만 기억력이 좋은 성연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버지 송종철의 번호였다.연속해서 몇 차례나 울렸지만, 성연은 신경 쓰지 않았다. 벨 소리가 울리게 그냥 둔 채 그쪽으로는 시선도 돌리지 않았다.또 다른 벨 소리가 울릴 때까지 성연은 눈을 뜨고 있었다. 살짝 들려 올라간 가는 눈꼬리가 완벽한 이목구비에 날카로운 느낌을 더했다.전화를 집어 든 그녀는 헤드셋을 끼고서 전화를 받았다.성연이 직접 디자인한 헤드셋으로,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은 소리는 절대 새어 나가지 않는다.“보스, 제가 직접 나서서 혈귀, 그 개자식을 잡으러 북성에 갈까요?” 서한기가 걸어온 전화였다.혈귀의 행방을 알았을 때, 서한기는 감정을 좀처럼 억제할 수가 없었다.혈귀는 그들 조직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놈이었다. 하마터면 조직원 두 명을 잃을 뻔했다.이 배신자는 반드시 잡아와야만 했다.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성연에게서 아무런 말이 없자, 서한기 역시 어떤 동작도 취할 수가 없었다.얼굴에 표정을 지운 성연이 발 아래 드리워진 북성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필요 없어. 내가 직접 나선다.”이번에는 서한기가 멍하니 있다 놀란 나머지 말까지 더듬거렸다.“어? 보스, 직접 나서시게요? 보스까지 움직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북성으로 돌아왔어. 앞으로 한동안 북성에서 생활할 가능성이 높아.”이어서 성연은 담담한 음성으로 서한기에게 자신의 현재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서한기는 보스의 성질을 잘 알고 있었다. 송성연의 손에 떨어진다면, 그게 누구든 국물도 없
잠시 후, 마침내 강무진이 입을 열었다.“이 여자아이의 뭐가 특이하다는 거지?”손건호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아……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웃의 말에 따르면, 평소 잔병을 앓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여자아이가 준 약을 먹고 아주 좋아졌다고 합니다. 이웃들 모두 그 여자아이가 평범하지 않다고 입을 모아 칭찬하더군요…… 다만 보스를 치료한 그 약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자료를 한쪽에 내려놓은 강무진이 쫙 펼친 손바닥을 다리를 덮은 담요 위에 올려놓았다.“기회가 되면 그녀를 데려올 수 있겠지.”손건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보스가 여자아이에게…… 아, 아니, 여성 생물에게 저리 관심 가지는 건 처음 보았다.……성연은 이튿날 정오까지 내리 잠을 잤다.깨고 싶지 않았지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귓가에서 끊이지 않았다.그야말로 귀를 찢는 듯한 ‘쿵쿵쿵’ 소리가 잠을 깨웠다.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여는 성연의 아름다운 얼굴이 짜증을 참지 못해 온통 찌푸려졌다.송종철과 임수정이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송종철은 하룻밤 꼬박 성연을 찾아다니다 겨우 여기에서 찾아낸 것이다.어느 육교 밑에서나 찾을 줄 알았었다.그런데 5성급 호텔에 와서 로열 스위트룸에 묵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이곳은 하룻밤 숙박료만 수백만 원이다. 평소 접대할 일이 없으면, 그 역시 이리 사치스러운 스위트룸에 묵은 적이 없었다.성연에 대한 미운 감정이 다시 한 단계 상승했다.‘진짜 분수를 모르는 천방지축이구나!’두 사람을 본 성연이 우아한 동작으로 하품을 했다. 아직 잠이 덜 깬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른한 모습으로 문틀에 기대었다.밤새도록 자고 일어났는데도 성연의 머리카락은 가지런한 모양으로 등뒤에 얌전히 내려와 있었고, 하얀 피부는 모공 한 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끈했다.임수정의 눈이 질투의 빛으로 가득 찼다.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송성연의 이 얼굴이 엄청난 밑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많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
날파리 같이 귀찮게 웽웽굴던 두 사람이 떠나자, 성연은 점심을 먹고 백화점으로 갔다.5성급 호텔 바로 옆이 북성에서 가장 번화한 쇼핑몰이었다. 몰 안에는 없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곳곳에 조화롭게 자리한 각종 매장들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의류 매장에 들어간 성연은 눈에 들어오는 옷을 집어 들고 가격표도 보지 않은 채 바로 매장 직원에게 포장하게 했다. 쇼핑을 끝낸 성연은 호텔로 돌아와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원래 본바탕이 좋은 그녀는 옅은 화장으로 충분했다. 길게 뻗은 아이라인에 약간의 음영을, 맑고 선명한 눈에 약간의 색감만 더했을 뿐이다. 몸에 딱 붙는 반 슬릿 레드 스커트는 그녀의 완벽한 몸매를 여실히 드러내었다.호텔에서 나와 택시를 잡아탄 성연은 바로 킹스 클럽으로 향했다.성연이 클럽에 들어서자 즉시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당겼다.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바로 갔다. 비어 있는 좌석에 툭 걸터앉은 성연이 색이 예쁜 칵테일 한 잔을 주문했다.앉은 지 얼마돼지도 않아 다가와 말을 걸은 남자가 벌써 여러 명이었다.“아가씨, 혼자 왔어요?”와인색 슈트를 걸친 남자가 다가왔다. 왁스로 머리를 가지런히 뒤로 빗어 넘긴 남자는 자리에 선 채 일부러 손목에 찬 명품 비취시계를 슬쩍 드러냈다.삽시간에 시선을 아래로 내린 성연이 다시 따분하다는 듯이 시선을 들어올렸다.아름다운 눈동자에는 어떤 흔들림도 없었다.의기양양한 기색이던 남자가 얼굴을 굳혔으나 곧 포기하지 않고 다시 말했다.“아가씨, 제가 안에 룸을 하나 빌렸는데, 안에 가서 한 잔 같이 마시지 않겠어요?”말하는 남자의 손이 성연의 손등으로 뻗어왔다.곧 ‘우드득'하고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렸다.남자가 손을 가린 채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사납게 성연을 쳐다보는 남자의 눈이 음흉하게 변했다.“내 눈에 띈 것 자체가 네 복이야. 이 몸의 호의를 무시해선 안되지!”성연이 슬쩍 올라간 입술에 검지를 갖다 세웠다. 이어서 손목을 슬슬 돌리
채연 언니의 원래 이름은 유채연으로 집은 바로 옆 마을에 있었다.두 마을 사이에는 왕래가 아주 빈번했다.이리저리 오가는 중에 유채연도 성연과 성연의 사형들하고 익숙해졌다.유채연은 원래 성격이 좋은 사람이다.그렇지 않았다면 그래함의 성격상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성연은 그래함과 함께 유씨 가문의 고택으로 갔다.이곳의 길은 좁아서 운전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연과 그래함은 걸어갔다.다행히 거리도 가까웠고 두 사람의 체력도 좋았다. 그래서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다만 그곳에 도착했을 때.한때 기세등등했던 유씨 가문의 고택은 이미 잡초가 무성했고, 이미 사람이 거주한 흔적이 없어 황량해 보였다.성연과 그래함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혹시 채연 언니가 이사를 갔나요?” 의문이 든 성연이 물었다.유채연에 대한 그래함의 마음이 그렇게 깊다는 걸 알았다면, 성연이 이쪽의 움직임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모르겠어.” 눈앞의 정경을 보자, 그래함의 표정이 아련해지는 것 같았다.결과가 반드시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오기 전에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이미 황량하고 인적이 없는 이곳의 모습을 보자, 그래함의 마음속에는 한바탕 복잡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그래함의 표정을 본 성연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위로하고 싶은데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어.’‘지금 사형은 이미 이곳에 도착했어.’‘하지만 여전히 채연 언니를 생각하고 있어.’‘두 사람의 당시 감정이 꽤 깊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어.’‘다만 나중에는 정말 유감스럽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지.’눈앞의 장면을 바라보던 성연의 뇌리에 갑자기 뭔가 생각이 번쩍였다.“사형, 우리 이 마을의 이장님한테 가 봐요. 이장님은 채연 언니의 소식을 알 거예요.”“맞아.” 그래함의 눈에 드디어 생기가 돌았다.“빨리 가 보자.” 그래함의 발걸음은 바빴다.그 뒤를 따르던 성연은 그래함의 절박한 모습을 보자 자기도
무진은 원래 성연과 함께 가려고 했다.그러나 안금여가 가로막고 나섰다.[성연이는 너무 오랫동안 돌아가지 않았어. 그리고 사형이 함께 있는데, 네가 끼어서 무슨 구경을 하겠다는 거야? 그럴 시간이 있으면 빨리 결혼 준비를 해.]무진은 그야말로 꿈속에서도 성연을 아내로 맞아 집으로 데려가고 싶었다.그러니 당연히 결혼식의 일부터 준비해야 했다.무진이 안금여와 전화 통화를 할 때 성연은 옆에서 듣고 있었다.갑자기 얼굴이 빨개졌다.‘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어.’‘결혼도 조만간의 일이야.’성연도 이번 결혼식을 정말 기대하고 있었다.옆에 있으면서 반박하지 않고 묵인함으로써 동의한 셈이다.성연이 들었다는 걸 아는 무진이 다가가서 볼에 뽀뽀를 했다.“그럼 너 혼자 가. 안전에 주의하고. 나는 집에서 기다릴게.”“알았어요.” 성연은 부끄러워하며 무진의 가슴에 머리를 묻었다.성연도 자신이 그렇게 일찍 결과를 만들어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그러나 이 모든 게 무진과 함께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자신도 이 남자를 사랑하고 있으니까.성연과 그래함이 시골로 가는 날, 무진은 여전히 집에서 성연의 물건을 정리해주었다.무진의 손에 든 가방을 받은 성연이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이 안에... 뭐예요?”“세면용품에 옷도 몇 벌 있고 외투도 있어. 저쪽은 모두 산간 지역이니까 추울 수도 있어. 만약 무슨 의외의 사고가 생겨서 돌아오지 못한다면 이걸로 우선 아쉬운 대로 참아.” 무진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그러나 지금 자신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다.앞에 있는 물건들을 본 성연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우리는 잠깐 갈 뿐인데 어디에 그렇게 많은 물건이 필요해요? 그쪽에서 살 수 있어요.”“네가 쓰는 게 익숙하지 않을까 걱정돼.” 무진은 가방을 성연의 손에 밀어 넣었다.무진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성연은 가방을 건네받았다.“그래요, 알았어요.”무진은 줄곧 아주 주도면밀하게 고려했다. 지금 성연과 동반할 수 없게 되자, 잘 보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던 성연이 뭔가를 떠올리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여전히 채연 언니를 잊지 않았어요? 어쩐지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사형이 여자 친구 이야기도 하지 않더라니.”그래함은 속내를 들킨 듯이 우물쭈물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잠시 후에 성연이 비로소 말했다.“사형의 생각을 알겠어요. 괜찮아요.”“이틀만 있다가 가자.” 그래함의 심정은 사실 좀 불안했다.자신이 한결같이 마음에 두고 있던 사람이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그러나 결국 돌아가서 한 번 보려던 것이 이미 여러 해가 되었다.“그래요.” 성연이 대답했다.모처럼 그래함이 국내에 왔는데, 이 작은 소원을 성연이 어떻게 들어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그리고 성연도 오랫동안 할머니를 보러 가지 않았기에 할머니를 뵈러 가야 했다.‘할머니는 나를 기대하시면서 잘 지내셨을 거야.’‘이제는 할머니에게 나는 확실히 잘 지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별장에서 돌아간 성연은 무진에게 이 일을 알려주었다.“시골 마을로 돌아간다고? 왜 갑자기 시골에 갈 생각을 했어?” 무진은 여전히 호텔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까 봐 걱정을 했다.‘지금은 정말 안전하지 않아.’‘시골 마을에 가면 불안정한 요소가 많아.’“그래요, 사형이 부탁한 건데 어쨌든 같이 가 봐야죠.” 성연은 이런 일을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몰랐다.“좀 보자, 성연아. 네가 시골 마을에 있을 때 그래함도 너하고 함께 살았어?”무진이 물었다.‘알고 보니 그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냈구나.’‘그리고 이제서야 내가 이 일을 알게 된 거야.’성연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 일은 말하자면 길어요.”원래 당시 성연이 스승님 밑에서 배우고 있을 때 그래함도 있었다.스승님은 그래함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함으로써 해외 유학을 하고 사업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다만, 지금은 제자들이 하나같이 모두 이름을 날리게 되었지만, 스
무진이 며칠 동안 조사했지만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매일 자신이 직접 이 일의 진척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성연도 서한기에게 이 일을 처리하라고 지시했다.‘결코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지는 않겠어.’지금은 누구라도 성연에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다.성연이 만약 계속 이렇게 있다면, 아마 그 사람들은 성연이 만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다.성연에게는 자신만의 원칙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정말 너무 지나쳤다고 생각했다.만약 이번에 이로 인해서 정말로 그래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면.성연은 필연적으로 그 일당을 잡아내고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앞서 무진이 일을 처리하고 있어서 성연은 더 이상 관여하지 않았다.하지만 이제는 성연이 이 일에 관여해야 했다.이 일을 수하에게 맡긴 뒤, 성연은 수시로 그래함과 함께 북성을 돌아다녔다.이제 그래함의 몸은 많이 좋아졌다.호텔에 있으면 또 비슷한 일이 생길까 봐 무진이 그래함에게 한적한 별장을 준비했다.그리고 하인 두 명을 뽑아서 보냈다.모두 우리 편이기에 마음 놓고 사람을 쓸 수 있었다.“사형, 아니면 사형이 국내로 돌아오세요. 여기는 사람도 많아서 우리도 자주 만날 수 있어요. 사형 혼자 외국에서 외톨이로 지내면서 고독하게 명절을 보내잖아요.” 성연은 그래함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그래함이 가까스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기에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성연도 잘 알고 있었다.그래도 한마디 더 하자면성연도 사형들을 가족으로 여긴다는 것이다.“됐어, 나도 요 몇 년 동안 외국에 있으면서 익숙해졌어. 적응하지 못할 것도 없으니까 나 때문에 걱정하지 마.” 그래함은 성연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그 동작은 다른 감정이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여동생에 대한 오빠의 사랑과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사형, 잘 생각해보세요.” 성연은 애교를 부렸다.“그래, 생각해 볼게. 넌 지금 강무진이 좋지 않아? 나보고 너희 훼방꾼이 되라는 거야?” 그래함이 성연을 놀렸
그래함은 모든 일의 과정을 자세히 돌이켜보았다.풀리지 않는 의혹이 가득한 표정이었다“나는 방금 이곳에 왔고 다른 사람과 원한도 없는데, 나한테 왜 이런 거지?”‘일부러 내 방으로 물건을 보낸 건 분명히 나를 해치려는 거야.’그래함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남에게 미움을 샀다면, 나는 방금 북성에 왔기에 불가능한 일이야.’성연도 일찌감치 이 문제를 생각했다.그래함이 문제를 제기한 이상 성연이 바로 말했다.“그자가 나를 목표로 했을 거예요. 독을 쓴 대상이 아마도 나였을 거예요. 다만 그때 내가 먹을 수 없었지요.”‘그때 성연이 정말 음식을 다 먹었다면 그 결과가 어땠을지는 상상할 수도 없어.’‘지금 그래함이 성연을 대신해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거야.’무진은 갑자기 당황스러웠다.‘지금 결국 누군가가 성연에게 독수를 썼어.’바로 옆을 보고 말했다.“손 비서, 사람을 보내서 그 대체되었다는 종업원을 추적해!”“예.” 손건호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나갔다.그래함의 마음속에는 더욱 많은 의문이 들었다.“성연이는 줄곧 선량했고 또 의술을 익혀서 적지 않은 사람들을 도와주었어. 그런데 어떻게 그런 악랄한 인간들에게 미움을 살 수 있겠어?”그는 눈썹을 잔뜩 찌푸렸다.‘다 큰 남자인 나도 그 아픔을 견딜 수 없었는데, 여린 소녀인 성연은 더 말할 것도 없어.’무진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성연이 상처를 받은 것은 십중팔구 모두 나 때문이야.’‘만약 내 옆에 있지 않았다면, 성연이가 그렇게 많은 고생을 겪지는 않았을 거야.’‘성연을 잘 보호해야 했어.’무진이 자신 때문이라고 막 입을 열려고 했다.옆에 있던 성연이 바로 말했다.“사형, 이 일은 얘기하자면 길어요. 다음에 다시 사형에게 얘기해 줄게요. 때로는 사형이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도 귀찮은 일이 찾아오는 법이지요.”성연은 이런 것들이 모두 무진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모두 나쁜 마음을 품은 그 인간들이 소란을 피웠을 뿐이야.’“네 말도 맞지만, 이런 일은
집에 돌아온 성연은 약재를 가지고 황급히 해독약을 조제했다.다 만든 뒤에 바로 그래함에게 보냈다.“사형, 이건 해독환이에요. 빨리 먹어요.”그래함이 바로 해독환을 먹자 작용도 빨랐다. 그래함의 배는 곧 아프지 않게 되었고 안색도 많이 좋아졌다.“괜찮아요? 사형?” 성연은 시종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그래함이 위로하며 말했다.“네 약이 아주 효과가 있네. 지금은 이미 많이 좋아졌어.”“그럼 됐어요.” 성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혹시 그래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두려워서, 오는 도중에 성연의 마음은 시종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아무 일도 안 생겼으니 그나마 다행이야.’이때 무진도 병원에 도착해서 그래함에게 조사 결과를 알려주었다.“원래의 종업원이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매수되었을 겁니다. 제가 지배인으로부터 전화번호를 받고 전화를 걸었지만 이미 연락을 할 수 없었습니다.”무진은 눈썹을 찌푸렸다.대신한 사람에 관해서도 어떤 소식도 찾을 수 없었다.누가 자신의 눈앞에서 소란을 피웠다고 생각하니 무진은 정말 화가 났다.“강 대표님이 고생이 많으셨습니다.”그래함도 이런 일은 성연과 무진이 바라던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아닙니다. 총재님의 몸은 좀 어떻습니까?” 무진도 걱정이 되었다.그래함은 성연에게 있어서 당연히 아주 중요한 사람이다.“성연이가 방금 약을 가져와서 지금은 이미 많이 좋아졌습니다. 강 대표님께 걱정을 끼쳐서 죄송합니다.” 그래함의 손에는 아직 링거가 꼽혀 있었다.병원의 약효는 성연 자신이 배합한 약보다 못했다.효과도 느렸다.성연의 약이 있어서 그래함의 몸은 육안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었다.“별일이 없어서 다행입니다.” 무진이 입술을 꽉 다물었다“제가 배후에 있는 자를 잡아낼 테니, 그 점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만약 이런 작은 일도 잘 처리하지 못한다면, 그래함 그들도 틀림없이 내가 성연이를 잘 보호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거야.’“저는 걱정하지
성연이 바로 119에 전화를 걸어서 그래함을 긴급히 병원으로 호송했다.그리고 남아서 현장에 남겨진 증거들을 수집한 성연은 무진에게 전화를 해서 알려주었다.무진은 서류들을 다 처리하고 마침 호텔 방향으로 달려오던 중이었다.‘이런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어.’무진이 운전기사에게 다급하게 지시했다.“빨리 가자!”조수석에 앉아 있던 손건호도 무진의 초조한 말투를 듣고 물었다.“보스,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그래함에게 사고가 생겼어. 서둘러.” 무진은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그러나 손건호도 그래함 이 사람의 중요성을 알기에 눈썹을 찌푸리면서 표정이 굳어졌다.곧 호텔 입구에 도착했다.성연이 뛰어나와서 무진에게 말했다.“음식에 독이 있었어요. 무진 씨가 여기를 조사해 보세요. 난 돌아가서 물건을 좀 가져올게요.”급하게 나온 성연은 몸에 다른 물건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방금 그래함에게 은침을 놓아서 독소의 확산을 어느 정도는 억제했다.그러나 그래함의 독은 일반적인 독이 아니라서 반드시 성연이 돌아가서 조제해야 했다.병원이라고 반드시 잘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무진은 성연이 무엇을 하러 가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건호와 함께 들어갔다.호텔의 지배인이 이미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여기서 큰 인물에게 사고가 생겼다는 말에 지배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그는 정말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지배인 앞으로 다가간 무진이 바로 노여워하며 물었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당신네 호텔 음식에 누가 독을 넣었어요?”지배인은 정말 억울했다.무진의 앞에 선 채 땀도 감히 닦지 못했다.“강 대표님, 저희 음식은 모두 겹겹이 점검해서 깨끗하지 못하거나 누가 독을 넣는 상황은 생길 수 없습니다.”“손 비서, 가서 물건을 가져와.” 무진이 지시했다.손건호는 무진의 말 뜻을 알아차렸다.바로 그래함의 방으로 가서 그 음식들을 모두 가져왔다.그리고 검사를 담당하는 의사도 왔다. 음
성연은 잠시 눈썹을 찌푸렸지만 물을 좀 마시자 많이 좋아졌다.가슴에서 솟구치던 메스꺼움도 이렇게 내려갔다.그러나 앞에 있는 음식에는 감히 손을 대지 못했다.그래서 성연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괜찮아요. 방금 너무 많이 먹었나 봐요.”그래함이 휴지를 주면서 말했다.“괜찮아. 불편하면 억지로 먹지 마. 나 혼자 먹으면 돼.”“그래요, 옆에서 과일이나 좀 먹으면서 기다릴게요.” 성연도 자신이 왜 이런지 의아했다.이전에는 이런 상황이 발생한 적이 없었다.그러나 곧 개의치 않았다. 이런 불편한 느낌은 포도를 먹자 많이 완화되었다.그래함은 혼자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아주 깔끔하게 먹는 모습은 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했다.성연은 정말 아쉬워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내 주변의 사형들은 모두 최고의 남자들이야.’‘내게 절친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최고인 사형들을 다른 여자들이 채 가는 걸 걱정하지 않았을 거야.’성연은 아쉬운 표정이었다.그래도 다행히 성연이 주문한 음식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식량 낭비를 피하기 위해서 그래함은 앞에 있는 음식들을 모두 깨끗하게 먹었다.성연이 때맞춰서 그래함에게 물 한 잔을 꺼냈다.“사형, 물 드세요.”그래함이 물컵을 받으며 말했다.“너는 정말 철이 들었어”성연은 다소 불복하는 것처럼 중얼거렸다.“당연하지요. 나는 지금 성인인데요, 그렇죠? 사형들은 나를 어린애로 보지 말아요.”“너 근데 애잖아?” 그래함이 성연을 놀렸다.그래함의 눈에 성연은 줄곧 자신이 보살펴야 할 여동생이었다.“나야말로 아니거든요. 난 결혼도 할 건데요.” 성연이 불만스럽게 반박했다.그래함이 감탄하면서 말했다.“맞아,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갔네.”“빨리 사형을 받아줄 사람을 찾아요. 혼자는 외롭잖아요.” 성연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그래함이 막 대답하려고 하는데 배에서 따끔따끔한 통증이 밀려왔다.이 통증은 너무 심해서 그래함처럼 인내심이 좋은 사람조차 허리를 굽힐 정도로 아팠다.심
무진은 그래함에게 로얄 스위트룸을 마련해 주었다.안에는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었고 그래함은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었다.그래함과 밥을 먹은 후, 무진은 아직 처리해야 할 급한 서류가 남아 있었다.성연을 남겨두고서 회사에 갔다가 다시 오겠다고 했다.성연은 그래함과 함께 소파에 앉았다.무릎 위에 땅콩 한 봉지를 놓고 먹으면서 아주 쾌적한 모습이었다.그리고 그래함의 앞에는 뜨거운 김이 나는 커피 한 잔이 놓여 있었다.“왜 강무진을 선택했어?”“사형, 이유를 모르겠어요? 왜 또 물어봐요?” 성연은 그래함이 일부러 이렇게 물었다고 느꼈다.“난 잘 모르겠어. 네 마음속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이야.” 그래함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이 녀석은 어렸을 때부터 똑똑하고 장난도 심한 데다가 애교도 잘 부려서, 거의 아무도 굴복시킬 수 없었지.’‘엄격한 고학중 사부님조차도 성연이를 대하면서 총애할 수밖에 없었어.’‘성연이가 우리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결혼하는 사람일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인연이 오는 건 누구도 막을 수 없잖아요.” 성연은 어깨를 으쓱거릴 수밖에 없었다.“말도 안 돼.” 그래함은 담소하면서 성연의 말을 믿지 않았다.사실 성연 자신도 무진과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 잘 몰랐다.애초에 두 사람이 상대방에게 접근했을 때 목적은 모두 단순하지 않았다.나중에 두 사람이 서로 보살피고 고백하면서 성연은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성연은 이렇게 발동이 늦게 걸리는 사람이다.무진만 성연을 원하면서 인내심 있게 성연이 깨닫기를 기다렸을 뿐이다.무진의 성연에 대한 이 인내심만으로도 성연은 완전히 마음이 기울었다.“사형, 정말로, 감정 이런 일은 인연에 달려 있어요.” 성연은 자신의 생각에 어떤 문제도 없다고 느끼면서 말했다.“그래.” 그래함의 시선은 어딘가 아련해 보였다.마치 아주 먼 곳까지 날아가는 것 같았다.성연이 말한 인연이 있는 그곳...“그 얘기는 그만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