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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3화

작가: 류한나
고은서의 외침과 함께 곽승재의 경호원들이 재빠르게 달려왔다.

“곽 대표가 다쳤어요!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강현철은 결코 가벼운 힘으로 안내판을 내리친 게 아니었다.

곽승재가 온몸으로 받아냈으니 부상이 심각할 것이었다.

고은서는 그래도 머리를 맞은 게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곽승재는 의식을 잃지는 않았지만 고통이 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듯 고은서에게 완전히 기대어 있었다.

그때 곽승재의 차가 도착하고 경호원들이 서둘러 고은서와 함께 곽승재를 부축해 조심스럽게 차에 태웠다.

그리고 한 명은 남아 현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차 안에서도 곽승재는 여전히 고은서에게 몸을 기대고 있었다.

두 사람의 팔이 맞닿았고 턱과 이마도 살짝 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숨결과 체온이 교차하는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였다.

곽승재가 그녀 때문에 다친 탓에 고은서는 그를 밀어낼 수도 없었다.

곽승재는 그녀보다 덩치가 훨씬 컸고 체중 차이도 상당했다.

그가 기대고 있으니 고은서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여 창문 쪽으로 자리를 피하려 했다.

곽승재는 그녀의 움직임을 감지하고는 다시 가까이 다가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은서야, 아까는 날 다급하게 불렀잖아. 걱정한 거 맞지?”

‘걱정은. 빚지는 게 싫어서 그런 거지!’

고은서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답했다.

“몸도 성치 않은데 말 좀 아껴.”

“평소에는 날 밀어내기만 하고 제대로 상대해 주지조차 않잖아.”

곽승재는 어딘가 씁쓸한 어조로 덧붙였다.

‘할 말이 없으니까 말할 의지도 안 생기는 거지.’

고은서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곽승재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

“은서야, 나랑 조금만 이야기해 주면 안 돼?”

그의 낮고 쉰 듯한 목소리는 마치 애원하는 듯했다.

고은서는 그 목소리를 듣고 이전의 자신이 떠올랐다.

‘나도 전에는 이렇게 애원했었지.’

[승재 오빠, 메일 그만 보고 나랑 이야기 좀 해주면 안 돼요?]

[승재 오빠, 나랑 꽃 보러 가요. 온실에 꽃이 너무 예쁘게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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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튿날 오후, 고은서는 약속 시간에 맞춰 곽현수가 얘기한 시가 가게에 도착했다.전시 구역에는 다양한 시가 상자가 진열되어 있었고 주변 벽에는 아름다운 예술 작품들이 걸려 있었는데 가게 안에 들어서자마자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직원은 고은서를 VIP룸으로 안내해 주었다.VIP룸에는 검은 가죽 소파와 부드러운 캐시미어 카펫, 그리고 정교한 티 테이블이 놓여있었는데 고급스러우면서도 차분한 느낌 주었다.곽현수는 소파에 앉아 찻잔을 들고 직원이 그에게 다양한 신제품을 소개해주는 걸 듣고 있었는데 그로부터 상위자의 기품이 느껴졌다.곽승재와 달리 유독 더 날카롭게 다가왔는데 함부로 다가가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고은서는 곽현수와 만난 적이 별로 없었는데 이렇게 단둘이 만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전과 같이 고은서는 곽현수를 보자마자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다.그녀는 자신이 이런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면 얼마나 우울한 사람으로 컸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도착했습니다.”고은서가 생각에 빠져있을 때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인기척을 느낀 곽현수도 고개를 들었다.그녀는 곽현수를 향해 덤덤하게 곽 회장님이라고 불렀다.곽현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직원이 들고 있는 트레이 위에 있는 시가 하나를 가리켰다. 그러자 직원은 이내 공손하게 시가를 꺼내주었다.그는 그제서야 눈길을 고은서한테 돌리면서 그녀에게 앉으라고 눈짓했다.고은서가 소파에 앉는 동시에 직원은 곽현수를 위해 시가에 불을 붙여주었다.“난 무슨 일로 찾은 거지?”곽현수는 말하면서 시가를 한 입 맛보았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직원은 아주 눈치 있게 곽현수에게 다른 시가를 건네주었다.그와 동시에 고은서가 입을 열었다.“제가 곽 회장님이 시가를 즐기는 시간을 방해한 것 같은데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곽현수는 새 시가를 들고 냄새를 맡아보더니 마음에 드는지 직원에게 잘라 달라고 한 다음 내려보라고 손짓했다.직원이 나간 후, 그는 시가에 불을 붙이면서 담담한

  • 어게인, 비긴   제910화

    고국성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외쳤다.“이렇게 치밀하게 계산해서 접근한 이유가 결국 돈 때문 아니야? 도대체 얼마면 너랑 네 전남편 배를 채울 수 있는데? 금액이나 말해!”그러나 오미나는 여전히 처량한 표정을 유지한 채 나지막이 말했다.“고 대표님, 아이는 정말 뜻밖이었어요. 저는 그냥 조용히 낳아서 혼자 키울 생각이었는데 당신들이 이렇게 몰아붙이니 어쩔 수 없이 사실을 밝힌 것뿐이에요.”“일부러 접근한 게 아닌데 왜 미리 증거들을 남겨둔 거죠?”유성준이 물었다.고은서는 유성준이 제대로 짚었다고 생각했다.오미나가 제시한 증거들은 단순한 우연으로 준비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모든 정황이 그녀의 의도적인 접근을 증명하고 있었다.하지만 오미나는 유성준을 무시한 채 다시 고국성을 향해 다정한 목소리로 설득하기 시작했다.“고 대표님 그렇게 화내실 필요 없어요. 검사하면서 물어봤더니 남자아이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더군요. 저는 사모님보다 훨씬 젊어요. 그리고 그분처럼 강압적이지도 않죠. 만약 사모님께서 이번 일로 이혼을 원하신다면 저와 함께 사는 것도 고려해 보세요. 우리 함께 아들을 키워요. 따님도 친딸처럼 소중히 보살필게요.”“네가 감히!”오미나의 말에 분노에 찬 고국성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나를 호구로 보지 마! 난 아들 같은 것도 필요 없어!”고은서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다행히 오미나의 말에 혹해서 판단을 흐리지 않았네.’그녀는 유성준에게 눈짓을 보내 고국성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진정시키게 했다.그리고 자신은 남아 오미나와 단둘이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곽현수가 어떤 대가를 제시했길래 이렇게까지 우리 삼촌을 벼랑 끝으로 모는 거죠?”고은서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러나 오미나는 오히려 천연덕스럽게 되물었다.“고 대표님과 저는 평범하게 만나 가까워졌어요. 벼랑 끝으로 내몬다니요?”그 말에 고은서는 손안에 쥐고 있던 녹음 중인 핸드폰을 더욱 꽉 쥐었다.오미나는 곽현수가 누구인지 묻지도 않았고 곽현수와 관련이 없다고

  • 어게인, 비긴   제909화

    기자 회견은 호텔 2층 연회장에서 열렸다.유성준이 철저하게 준비한 덕분에 회견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고국성은 자신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진지하게 사과하며 관련된 사건은 이미 경찰에 신고한 상태이며 조사가 진행되면 자신의 결백이 증명될 것이라고 발표했다.단은숙 역시 남편의 인품을 믿는다며 고국성이 결코 가정을 배신할 사람이 아니며 이번 사건은 누군가의 의도적인 모략이고 아이 역시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고국성의 아이예요! 친자 확인서도 있습니다.”고국성을 향한 여론이 점점 우호적으로 바뀌려던 찰나 입구 쪽에서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고은서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시선을 돌리자 등장한 사람은 다름 아닌 오미나였다.오미나는 헐렁한 임부복 차림을 한 채 손에는 감정서를 들고 있었다.걸어오는 걸음걸이는 다소 불안정해 보였다.“고국성 씨, 당신이 먼저 나에게 끊임없이 호감을 표현하고 선물도 주고 식사에도 초대했잖아요. 그래서 경계를 풀고 친구가 된 건데 당신은 제가 술에 취한 틈을 타 호텔에서 강제로 저를 안은 거잖아요!”오미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회견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기자들은 충격적인 폭로에 즉각 반응하며 고국성을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냈다.“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미나를 유혹한 적도 없고 그런 짓을 저지른 적도 없습니다!”고국성은 분노로 몸을 떨었다.그러나 오미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그녀는 두 사람이 함께 식사하고 술을 마신 사진과 영상 그리고 고국성이 자신에게 선물을 건넨 증거 자료를 하나씩 꺼내 보였다.심지어 두 사람이 호텔에 들어가는 CCTV 영상까지 있었다.“고국성 씨, 원래는 당신과 이렇게 적대적으로 싸울 생각 없었어요. 하지만 당신이 나를 모함하고 내 명예를 짓밟으니 어쩔 수 없이 사실을 모두 공개할 수밖에 없네요!”오미나는 본래 가련한 스타일이었다.화장기 없는 얼굴에 울 것 같은 억울한 표정까지 더해지자 그녀는 완벽한 피해자가 되어 있었다.반면 중년이 되어 배가 나온 고

  • 어게인, 비긴   제908화

    육현석은 자신의 속셈을 들켰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은서야, 난 그냥 네가 승재 형이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네 전화는 꼭 받을 거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해서 말하는 거야. 한번 시험해 볼래?”고은서는 시험해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하지만 흥미를 느낀 박지연이 곽승재의 번호를 눌렀다.육현석이 말릴 틈도 없이 전화기 너머에서 곽승재의 낮고 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연 씨, 은서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요?”“은서는 아무 일도 없어! 형, 내 전화는 왜 안 받았어!”육현석이 화가 난 듯 따져 묻자 곽승재 쪽에서 갑자기 여자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거리가 멀었던 탓에 여자의 신분은 확인하기 어려웠다.“누가 우는 거야? 형 지금 어디야?”육현석이 다급하게 물었다.“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연락할게.”차분하게 답한 곽승재는 단호히 전화를 끊어버렸다.육현석이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이미 전원이 꺼져 있었다.“쯧, 망했네?”박지연이 혀를 차며 말했다.“곽승재가 은서를 특별히 여긴다는 걸 증명하려다가 결국은 여자랑 같이 있는 걸 들켜 버렸네?”육현석은 급히 고은서를 바라보며 말했다.“은서야, 오해하면 안 돼! 형은 그럴 사람이 아니야!”고은서는 여전히 피곤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육현석은 그녀를 유심히 살피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은서야, 넌 지금 화난 거야? 아닌 거야?”고은서는 그를 향해 눈을 흘기며 대답 대신 되물었다.“내가 화내길 바라는 거야? 아니길 바라는 거야?”뜻밖의 질문에 육현석은 말문이 막혔다.화가 났다면 지금 상황이 조금 두려웠고 화가 나지 않았다면 완전히 신경도 안 쓴다는 뜻 같아 왠지 씁쓸했다.“됐어. 음식 준비도 끝났으니까 가서 나르는 거나 좀 도와줘.”박지연은 육현석이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다 못해 주의를 돌렸다.육현석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박지연은 고은서를 바라보며 물었다.“곽승재가 정말 다른 여자랑 데이트하고 있는 거라면 기분이 어때?”

  • 어게인, 비긴   제907화

    고은서의 질문에 전미자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구체적인 상황은 나도 잘 몰라. 연정이와 현수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분명 현수와 관련이 있을 거야.”이 말에 고은서도 깊이 공감했다.하지만 그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기에 뭐라 덧붙이기도 어려웠다.“은서야, 승재는 두 사람으로 인해 많은 영향을 받았어. 그래서 랑과 결혼에 대한 믿음을 잃었지.”전미자는 앨범을 내려놓고 고은서의 손을 잡았다.“너와 승재가 결혼하길 원했던 건 사실 개인적인 욕심이었어. 너는 밝고 자신감 넘치고 또 진심으로 승재를 좋아했잖니. 난 네가 승재를 변화시킬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 승재가 떨떠름하게 승낙했을 때도 난 너희가 행복할 거라고 믿었는데...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겠니.”전미자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었다.고은서는 비슷한 이야기를 전미자로부터 여러 번 들었었다.전미자가 아무리 그녀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말해도 속으로는 여전히 그녀가 곽승재와 함께하길 바라고 있다는 걸 고은서는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문제만큼은 전미자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다.전미자가 휴식을 취하겠다고 하자 고은서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유일 투자은행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은서는 유성준의 연락을 받았다.“아저씨가 경찰에 신고했어. 경찰도 고소를 받아들였어. 공식 기자회견은 모레 오후에 열릴 거야. 홍보팀에서 친분이 있는 몇몇 언론사와 약속을 잡았고 아주머니도 아저씨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로 했어.”빈틈없는 그의 일 처리에 고은서는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했다.게임 회사 쪽의 진행 상황을 점검한 후 그녀는 해 질 무렵이 되어서야 라이트문 아파트로 돌아왔다.집에 들어서자 고은서는 며칠 동안 야근하던 박지연뿐만 아니라 한껏 멋을 낸 육현석도 발견했다.“은서야, 왔어?”박지연이 먼저 말을 건넸다.“육현석이 자꾸 밥 먹자고 꼬드겼는데 난 피곤해서 집에 간다고 했더니 따라왔어.”육현석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지연이가 아주머니 요리가 끝내준다고 해서 오래전부터

  • 어게인, 비긴   제906화

    “민준 씨,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고은서가 정중하게 감사를 표했다.송민준은 우아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별말씀을요. 또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하세요.”“알겠습니다.”말을 마친 고은서는 전화를 끊었다.‘오미나에 대한 일을 숨기지 않은 걸 보면 삼촌과 관련이 없겠어. 민시후가 나를 좋아해서 송민아와 파혼한 일 외에는 특별한 갈등도 없잖아. 처음 만났을 때 싸늘한 시선은 동생의 파혼 때문이었나 보다. 이후에 조금 친절해진 것도 송민아와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겠지. 애정이 있는 사람에게는 관대한 편이라고 했으니까.’송민준에 대한 의심을 거둔 고은서는 컴퓨터 속 자료를 바라보았다.‘오미나와 곽현수의 비서가 만난 적 있다고? 우연일까? 백승엽의 청부 폭행 사건에서 곽현수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백유미를 귀국시키고 원지훈과 함께 회사를 차리도록 지원한 것도 곽현수야. 이혼하긴 했지만 곽승재는 여전히 나를 잡으려고 하고 있어. 그것 때문에 삼촌한테 손댄 건가?’고은서는 곽현수가 대체 왜 이런 일까지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한동안 전미자를 찾아뵙지 못한 게 떠오른 고은서는 그녀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혹시 그녀에게서 무언가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다.전화를 걸어 전미자가 시간이 된다는 걸 확인한 후 고은서는 전미자의 집으로 향했다.전미자는 그녀를 보자마자 반가워하며 여전히 다정하게 맞아주었다.“왜 이렇게 말랐어!”그녀는 걱정스럽게 고은서를 바라보며 주방에 더 많은 음식을 준비하도록 지시했다.고은서는 마음이 따뜻해졌다.비록 곽승재와 이혼했지만 전미자는 여전히 변함없이 그녀를 아껴주고 있었다.식사 후 고은서는 전미자와 담소를 나누고 소파에 함께 앉아 오래된 사진 앨범을 넘겼다.고은서는 젊은 시절의 곽현수를 보고는 무심코 말했다.“할머니, 아저씨 젊었을 때 정말 잘생기셨네요. 분명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을 것 같은데 혹시 감정적인 문제는 없었나요?”전미자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저 고집불통이 무

  • 어게인, 비긴   제905화

    ‘억울하게 오해했더라도 곽승재도 나를 속였으니 사과하지 않을 거야!’고은서는 고은혜에게 앞으로 절대 곽승재를 귀찮게 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둔 뒤 강현철의 상황을 물었다.“그 사람은 곽 대표님 경호원에 의해 경찰서로 넘겨졌어. 그런데 아빠는 일이 커지는 걸 원하지 않아서 처벌을 원치 않으신대.”“이번에 그냥 넘어가면 다음엔 더 심해질 거야! 절대 가만둬선 안 돼!”고은혜는 난감해하며 답했다.“그 사람이 와서 난리 칠 때 그러더라. 무슨 일을 당한다면 자기도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아빠의 추문을 전부 폭로해 버리겠다고 협박했어.”고은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숨길 수도 없었다.고은서는 직접 고국성을 찾아가 이번 일에 대해 공식적으로 잘못을 인정하도록 설득하기로 했다.비록 명예가 다소 손상될지는 몰라도 약점을 잡혀 협박받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차를 부르려던 고은서는 곽승재의 차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고 멈칫했다.차창이 내려졌지만 뒷좌석에서 곽승재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아가씨, 타시죠. 곽 대표님께서 바래다 드리라고 하셨습니다.”운전기사가 다소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곽승재의 상태를 묻기도 귀찮았던 고은서는 그냥 조용히 차에 올라탔다.고은서는 바로 고국성의 집으로 향해 제안했지만 고국성은 단호하게 반대했다.“나는 누명을 쓴 거야! 내가 왜 잘못을 인정해야 해? 그럼 내 체면은? 직원들은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 난 절대 동의 못 해!”“삼촌, 누명을 썼다면 더더욱 공개적으로 해명해야 해요.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끌려다녀서는 안 돼요. 경찰에 신고해서 조사하게 하면 되잖아요. 결과가 나오면 사람들도 이해할 거고요.”고국성이 망설이는 사이 단은숙이 격앙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모든 사람이 네 삼촌이 바람피우고 사생아까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녀? 다른 사모들이 나를 얼마나 비웃겠어!”고은서는 지금 이 상황이 피곤했다.단순히 고국성 개인의 문제였다면 협박을 당하든 망신을 당하든 신

  • 어게인, 비긴   제904화

    곽승재는 오랫동안 저자세로 나왔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는 고은서의 태도를 보고 조금 속상했다.고은서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아무리 고치겠다고 해도 본성은 여전히 독단적이고 강압적인 사람이야. 지금 가지고 있는 죄책감이 사라지거나 소위 말하는 호감이 식어버리면 결국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겠지.”곽승재의 잘생긴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네 말은 내가 그동안 해온 모든 행동이 전부 네가 돌아오게 하려는 연기였다는 뜻이야?”“난 그저 사실을 얘기하는 거야. 당신은 언제나 높은 곳에 있었고 원하는 건 다 가졌지. 한때 당신한테 그렇게 매달렸던 내가 이제는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자존심을 회복하려고 이러는 걸 수도 있잖아. 오늘 구해준 건 고맙게 생각해. 하지만 앞으로 내 일에 신경 쓰지 마. 누군가에게 계속 감시당하는 기분 썩 좋지 않거든.”고은서의 말을 들은 곽승재는 낮게 웃음을 흘렸다.그는 깊고 어두운 눈동자로 고은서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마치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 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듯했다.고은서도 전혀 물러서지 않고 그를 노려보았다.겉으로 보기엔 고은서가 은혜도 모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그녀를 도와줬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기색조차 없었으니까 말이다.하지만 곽현수처럼 사람을 시켜 감시하지 않으면 그녀의 상황을 제때 알 수도 없었고 도움을 줄 수도 없었다.두 사람은 몇십 초간 팽팽하게 대치했다. 그러던 중 곽승재의 전화가 울렸다.발신자를 확인한 그는 눈에 띄게 표정을 굳혔다.속도를 줄인 운전기사는 병원에 도착했음을 알렸다.“차 돌려서 본사로 가죠.”막 차 문을 열려던 고은서는 싸늘하게 기사를 향해 명령하는 곽승재의 목소리를 들었다.“너 많이 다쳤...”“거짓말이야.”고은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곽승재는 무표정하게 답했다.그녀는 말문이 막혔다.“어디로 데려다줄까?”고은서는 이미 문을 열고 한 발을 내디딘 상태였다.그녀는 더 이상 그에게 신세 지고 싶지 않았다.“기사 불러서 알아서 갈게.”말을 마친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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