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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9화

Author: 류한나
문은 제대로 닫혀 있지도 않았고 고은서가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집안은 이미 아수라장이 된 상태였다.

소파 쿠션은 이리저리 땅에서 뒹굴고 있었고 카펫 위에는 깨진 유리 조각과 찻잎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티 테이블 위에 있는 꽃병도 땅에 떨어져 있었는데 그 주변에는 꽃잎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원래는 생기가 넘쳤던 꽃들이 볼품이 없이 되었다.

벽에도 물건 던진 탓에 긁힌 자국이 적지 않게 있었다.

단은숙은 머리가 이리저리 헝클어져 있었고 한쪽 얼굴에는 선명한 손자국까지 보였다.

고국성도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셔츠가 찢어질 정도로 구겨져 있었고 목에도 손톱에 긁힌 자국이 가득했고 유리잔에 맞았는지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반면 고은혜는 옆에 서서 무력하게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현장 상황을 봐서는 두 사람이 아주 심하게 다툰 듯했다.

“언니, 왔어?”

고은혜는 고은서를 보자마자 부랴부랴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곧 대학 졸업을 앞둔 고은혜는 비록 성인이지만 어릴 적부터 단은숙이 엄격하게 단속하는 바람에 독립적 사고 능력이 비교적 부족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맞서 당황해할 수밖에 없었다.

고은서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씩씩거리는 고국성과 단은숙을 보며 애써 침착하게 두 사람을 불렀다.

“은서야, 마침 잘 왔어.”

단은숙은 그녀를 고국성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네 삼촌한테 똑바로 물어봐. 이 나이에 얼마나 파렴치한 짓을 했는지.”

고국성은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호통쳤다.

“단은숙, 그만해.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제삼자고 나발이고 나한테 누명을 덮어씌울 생각하지 마.”

“제삼자가 아닌데 당신 아이를 임신했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단은숙은 그 여자를 떠올릴 때마다 들끓는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고국성에 덮쳐들면서 그를 때리려고 했다. 그러나 고국성의 힘이 훨씬 강한 탓에 얼마 되지 않아 밀려났다.

자신의 힘으로는 고국성을 상대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단은숙은 그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래, 힘으론 나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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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구세요?”고은서가 이어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말하자 안에 있던 오미나는 머뭇거리다가 끝내는 문을 열어줬다.문이 열리자 삼십 대 좌우로 보이는 여자 한 명이 고은서의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오버사이즈 옷을 입고 있었고 단은숙과 비겼을 때 외모가 너무 눈에 띄게 출중하진 않았지만 아주 아련한 상을 하고 있었다.또 단은숙처럼 기가 세가 총명해 보이진 않았으나 연약하면서 강인한 아주 전통적인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그녀의 얼굴엔 아직도 손자국이 남아 있었는데 고은서와 고은혜를 보고도 욕설을 퍼붓거나 냉대하는 대신 겁에 질린 듯 문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고은서는 그제야 왜 고국성이 이 여자한테만 무방비하게 굴었는지 알 것 같았다.너무 공격성이 없는 외모 때문에 아무리 봐도 다른 사람의 가정을 파괴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고 고국성과 어울리는 면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은서가 오미나를 관찰하고 있을 때 고은혜도 똑같이 그 여자를 관찰하고 있었다.방금 집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는데 지금 자신의 엄마보다 훨씬 젊고 기품이 있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당장이라도 덮쳐들어 한 대 때리고 싶을 만큼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그녀의 분노를 느낀 오미나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감쌌다.덕분에 고은혜의 분노가 세게 들끓기 시작했는데 옆에 있던 고은서가 진정하라고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오미나 씨, 들어가서 얘기 좀 나눠도 될까요?”팽팽한 분위기 속에서 고은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오미나는 두 사람을 힐끔 보더니 들어오라고 손짓했다.“들어오세요.”고은서는 소파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오미나 씨, 우선 우리 삼촌을 대신해 사과드리죠. 어떻든 이 일은 우리 삼촌 책임이니까요.”여자는 전혀 꿀리지 않고 답했다.“국성 씨 탓이 아니에요. 누구도 이런 일이 생길 거라 예상치 못했으니까요.”“예상치 못한 일인 걸 알면 우리 아빠랑 깨끗하게 끝냈어야죠. 왜 아이로 우리 아빠를 협박하는 건데요!”고은혜가 분

  • 어게인, 비긴   제892화

    “그럴 시간에 조금 이따 그 여자랑 어떻게 얘기할지나 생각해 봐.”고은서가 고은혜에게 주의를 줬다.그 말을 들은 고은혜의 표정이 순간 굳어버렸다.“언니, 나 이런 일 못 하는 거 알잖아. 그 여자랑도 언니가 나서서 얘기해야 할 걸. 난 그저 집에 있기 싫은 데다가 언니를 응원해주러 따라가는 것뿐이야.”고은서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오미나를 만나러 가는 도중 유성준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그는 전화가 통하자마자 사과부터 했다.“은서야, 미안해. 요즘 너무 바빠서 미처 연락하지 못했어. 다름이 아니라 오늘 아저씨한테 문제가 생긴 것 같던데 자세한 건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아.”“고마워요, 오빠. 저도 이미 들었어요.”함부로 다른 사람한테 말을 꺼낼만한 일은 아니지만 고은서에게 있어 유성준은 가족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그녀는 숨김없이 오늘 있었던 일들을 그에게 알려주었다.유성준은 약간 놀라긴 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내 도움이 필요한 곳은 없어?”“아직까진 괜찮은 데 필요하면 언제든지 오빠한테 연락할게요. 오빠, 그보다 요즘 MQ에는 별다른 일 없죠? 업무 리스트 같은 것도 다 확인했을 텐데 문제가 될 만한 곳은 없었어요?”고은서가 진지하게 물었다.유성준은 긴장해 하는 고은서의 말에 약간 어리둥절하기 했으나 현재 상황 그대로 말했다.“MQ는 정상으로 운영되고 있어. 은서야, 그건 왜 갑자기 묻는 거야? 어디 이상한 점이라도 발견했어?”성아연이 저지른 세무 사건 때문에 유성준도 덩달아 긴장되었다.“아니에요. 그저 생각나서 물어본 것뿐이에요. 오빠, 요즘 MQ에 좀 더 많이 신경 써주세요. 삼촌 일이 좀 많이 복잡할 것 같아서요.”고은서가 유성준에게 부탁했다.“걱정하지마. 네가 말하지 않아도 그럴 거니까. 그런데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요즘 본가에 가지 않았다며? 일이 너무 바빠서 그런 거야? 몸도 챙겨가면서 해.”고은서는 전에 있었던 교통사고에 관해 언급할 생각이 없었다.필경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 어게인, 비긴   제891화

    할 수 있는지는 고은서도 보장할 수 없었다.그러나 MQ와 고씨 집안을 위해서 꼭 찾아가 그 여자가 무슨 목적으로 그러는 것인지 알아내야만 했다.“해보지도 않고 결과가 어떨지 어떻게 알아.”고은혜도 약간 자신이 없긴 했지만 여전히 참지 않고 자신의 불만을 토로했다.“아빠, 지금 우리를 못 믿어서 그러는 거예요? 아니면 그 여자를 놓아주기 아쉬워서 일부러 우릴 보내지 않으려고 그러는 거예요?”딸의 날이 선 질문에 고국성은 뜻밖으로 화를 내지 않았다.비록 자신의 딸과 조카에게 이런 일 처리를 맡기는 게 창피하긴 했지만 지금과 같은 막부득이 한 상황에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일이 해결될 수만 있다면 누가 나서든 상관없었다.고국성은 오미나의 연락처를 고은서에게 알려주었다.“삼촌, 숙모는 삼촌이 좀 달래 봐요. 될 수록이면 이 소식이 할아버지 귀에는 들어가지 않게끔 말이에요.”고은서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예전 같았으면 고국성은 고은서의 말에 피식거리며 대꾸하지도 않았을 텐데 지금은 철이 든 그녀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대체 무슨 속셈인지 가서 얘기해 보고 나한테 알려줘. 그럼 내가 해결 대책을 세울게.”고국성이 이런 태도로 고은서와 말하는 건 그녀가 성인이 된 이후로 처음이었다.전에는 항상 웃어른이라면서 그녀를 향한 불만을 토로하기 바빴다.“해결 대책이 있으면 그 여자가 집까지 찾아오지 않았겠죠.”고은혜가 입을 삐죽거리며 툴툴거렸다. 그리고 이내 고은서의 팔짱을 끼고 밖으로 나갔다.“언니, 가자.”고은서는 단은숙이 화장실에서 나오기도 전에 고은혜랑 함께 주차장으로 갔다.아까까지만 해도 안절부절못하던 고은혜는 곁에 고은서가 있다는 것만으로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안전감이 생겼다.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고은서라면 영문 없이 믿음이 갔다.“언니, 전에는 내가 언니를 상대로 듣기 싫은 소리를 많이 했는데 정말 미안해.”고은혜가 진지하게 사과하기 시작했다.“전에 형부의 관심을 끌기

  • 어게인, 비긴   제890화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고국성은 창피하긴 했으나 어쩔 수 없이 자초지종을 고은서에게 알려주었다.그와 오미나는 처음에는 확실히 사업 파트너로서만 연락하다가 나중에 그녀가 여러 새로운 업무를 소개해주면서 몇 번 밥을 같이 먹은 적이 있었다.그러다 어느 한 모임에서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을 마셨는데 얼마 되지 않아 오미나랑 같은 침대 위에서 눈을 뜨게 되었다.그러나 오미나는 화를 내는 대신 두 사람 다 술을 많이 마신 탓에 일어난 일이라면서 한 번의 사고라 여기고 없던 일로 치자고 하면서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죄책감이 든 고국성은 그 후로 오미나에게 적지 않은 선물을 사줬는데 또 그 일이 단은숙에게 들키면서 고준석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었다.그 이후로 고국성은 오미나와의 만남 횟수를 줄였고 그녀에게 먼저 연락하는 일도 없었다.그러나 오미나가 갑자기 임신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고국성은 아이를 지우라고 오미나를 몇 번이고 달랬지만 그녀는 기어코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고 고집을 부렸는데 갑자기 오늘 단은숙을 찾아와 고국성을 자신에게 주면 안 되냐고 애원하기 시작했고 단은숙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그녀의 뺨을 후갈리기 시작했는데 옆에서 싸움을 말리려던 고국성까지 봉변을 받게 된 것이었다.단은숙이 행여나 일을 크게 만들까 봐 걱정되었던 고국성은 오미나를 먼저 보내려고 했는데 이는 단은숙의 화를 더 돋우게 되었고 끝내는 참지 못하고 그의 몸에까지 손을 댔고 따라 화가 났던 고국성도 참다못해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고 한다.방에서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고 있던 고은혜도 소란 소리에 깜짝 놀라 거실로 달려 나와 보니 이미 상황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고은서가 전화를 받고 달려왔다.“삼촌, 그래서 어쩔 생각이에요?”고국성이 아무리 실수로 저지른 일이라고 해도 그의 잘못이 분명했다.그는 두 여자에게 모두 상처를 준 사람이 되었다.고국성은 물려서 아픈 손목을 문지르면서 자신은 단 한 번도 그 아이를 남길 생각이

  • 어게인, 비긴   제889화

    문은 제대로 닫혀 있지도 않았고 고은서가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집안은 이미 아수라장이 된 상태였다.소파 쿠션은 이리저리 땅에서 뒹굴고 있었고 카펫 위에는 깨진 유리 조각과 찻잎들이 널브러져 있었다.티 테이블 위에 있는 꽃병도 땅에 떨어져 있었는데 그 주변에는 꽃잎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원래는 생기가 넘쳤던 꽃들이 볼품이 없이 되었다.벽에도 물건 던진 탓에 긁힌 자국이 적지 않게 있었다.단은숙은 머리가 이리저리 헝클어져 있었고 한쪽 얼굴에는 선명한 손자국까지 보였다.고국성도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셔츠가 찢어질 정도로 구겨져 있었고 목에도 손톱에 긁힌 자국이 가득했고 유리잔에 맞았는지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반면 고은혜는 옆에 서서 무력하게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현장 상황을 봐서는 두 사람이 아주 심하게 다툰 듯했다.“언니, 왔어?”고은혜는 고은서를 보자마자 부랴부랴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곧 대학 졸업을 앞둔 고은혜는 비록 성인이지만 어릴 적부터 단은숙이 엄격하게 단속하는 바람에 독립적 사고 능력이 비교적 부족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맞서 당황해할 수밖에 없었다.고은서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씩씩거리는 고국성과 단은숙을 보며 애써 침착하게 두 사람을 불렀다.“은서야, 마침 잘 왔어.”단은숙은 그녀를 고국성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네 삼촌한테 똑바로 물어봐. 이 나이에 얼마나 파렴치한 짓을 했는지.”고국성은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호통쳤다.“단은숙, 그만해.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제삼자고 나발이고 나한테 누명을 덮어씌울 생각하지 마.”“제삼자가 아닌데 당신 아이를 임신했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단은숙은 그 여자를 떠올릴 때마다 들끓는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참지 못하고 고국성에 덮쳐들면서 그를 때리려고 했다. 그러나 고국성의 힘이 훨씬 강한 탓에 얼마 되지 않아 밀려났다.자신의 힘으로는 고국성을 상대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단은숙은 그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그래, 힘으론 나 혼

  • 어게인, 비긴   제888화

    회사의 프로젝트는 아주 순리롭게 운행되고 있었고 고은서는 이 기회에 전체 직원들에게 밥 한 끼를 사주기로 했다.밥을 먹은 후 송민아는 먼저 돌아가서 쉬라고 고은서를 달랬다.“돈도 쉬면서 벌어야지. 얼른 돌아가서 쉬어.”그러나 고은서는 뜬금없이 그녀에게 민시후에 관해 물었다.“민시후는 이미 해외 병원으로 이송되었겠지? 잘 도착했대?”송민아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네가 나를 통해 민시후 소식을 알려고 할 줄은 전혀 생각도 못 했는데. 분명히 민시후한테 두 사람 사이에 관해 말했는데 왜 전혀 믿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혹시 민시후한테 뭐라고 한 거야?”고은서도 따라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말해 보았자 무슨 소용이야. 이게 제일 좋은 결과야.”송민아는 더는 캐묻지 않고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M국으로 갔어. 시아 언니랑 시현 오빠도 같이 갔고. 그리고 전에 쓰던 폰이랑 번호도 다 바꿨다고 하던데 필요하면 내가 새로운 연락처를 알아 봐줄게.”고은서는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다.“필요 없어.”...시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자비하게 흘러갔다.고은서는 매일 회사에서 바삐 보냈고 그나마 보람찬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도아름의 명운주류도 상장에 성공했고 고은서가 전에 투자했던 이백억 되는 투자금도 열 배 가까이 거두어들일 수 있게 되었다.제인 제약까지 잘 운행되고 있는 덕분에 고은서는 투자계에서 꽤 높은 명망을 얻게 되었다.그 어느 평범하게 느껴지던 하루, 고은서가 사무실에서 서류를 확인하고 있을 때 고은혜한테서 연락이 왔다.“언니, 큰일 났어!”고은혜는 평소와 달리 처음부터 그녀를 부르면서 다급하게 말을 꺼냈다.고은서도 따라서 저도 모르게 긴장되었다.“왜 그래? 설마 할아버지가 편찮으시기라도 한 거야?”마침 전생에 이맘때쯤에 고준석이 다친 다리 때문에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었는데 이번 생엔 다리를 다치지 않아 별로 신경쓰지 않았었다.그러나 고은혜 때문에 갑자기 마음이 졸여왔다.“할아버지는 괜찮아.”고은서는 고은혜의 말

  • 어게인, 비긴   제887화

    고은서는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그저 호기심 때문에 물어본 거예요.”서연정은 고은서가 했던 말들을 돌이켜보면서 무언갈 깨달았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은서야, 이번 사고 백씨 집안이랑 연관되어 있지? 그래서 혹시 승재 아빠가 지시한 건 아닐까 하고 조사해보았는데 하필 손문호가 현장에 나타나서 두 사람 사이에 관해 묻는 거지?”아니나 다를까 서연정의 추측이 맞았다.고은서도 부인하지 않았다.“곽승재랑 경찰 측에서 다 조사해보았는데 곽 회장님과는 연관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확실히 그 일 때문에 묻는 건 맞아요.”백승엽한테 일이 생겼다는 건 서연정도 듣긴 했으나 별로 깊이 캐묻진 않았었다. 그러나 고은서가 그 일에 엮여 있을 줄은 미처 생각 못 했던 것이다.서연정은 무언갈 고민하다가 이내 말을 이어갔다.“승재 아빠가 일을 하면서 고집이 세고 독단적이긴 하지만 또 자기가 한 일을 부인할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기도 하거든. 손문호에 관해서는 내가 왜 그날 경마장에 갔는지 한 번 물어볼게.”“물어보지 않으셔도 돼요. 저랑 아는 사이도 아닌데 저를 해치려 하는 사람은 아닐 거예요.”고은서가 단호하게 거절했다.“괜찮아. 의문이 있으면 해결해야지. 단도직입적으로 묻진 않을 거야.”서연정이 걱정하지 말라고 그녀를 위안했다.“고마워요, 어머니.”쓸데없는 생각을 한다고 반감하면서 비난할 만도 한데 자신을 이렇게 믿어줄 줄은 몰랐던 고은서는 감동받는 일면 약간의 어색함을 느꼈다.이어 서연정은 손문호한테 연락해 곽승연에 관해 한참 얘기하다가 자연스럽게 요즘 바쁘냐고 물었다.“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일을 너무 많이 받진 않았어. 그리고 요즘 힐링할 만한 곳을 찾아다니곤 했는데 해성에 꽤 괜찮은 경마장이 있더라고. 얼마 전에 한 번 가봤는데 시간 되면 승연이를 데리고 가보지 않을래?”서연정은 웃으면서 승연이가 말을 타보겠다고 고집부릴까 봐 경마장은 잠시 안 가겠다고 사양했다.스피커 모드로 통화한 덕분에 고은서도 옆에

  • 어게인, 비긴   제886화

    비록 너무 큰 연관이 없는 일이지만 사실을 파헤쳐 보고 싶었던 고은서는 서연정한테 오후에 병원 옆에 있는 도자기 공방에서 만나자고 연락했다.서연정도 아주 흔쾌히 받아들였다.그날 오후.서연정은 곽승연을 데리고 약속대로 도자기 공방에 나타났다.일주일 동안 못 본 탓인지 곽승연은 고은서를 보자마자 눈에 띄게 기뻐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언니라고 불렀다.고은서도 웃으면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승연아, 여기 도자기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는데 언니를 위해 선물 하나 만들어주면 안 될까?”곽승연은 거절하지 않고 기분 좋게 도자기 체험을 하러 갔다.고은서는 이내 서연정을 데리고 옆에 있는 휴식실로 갔고 직원은 두 사람을 위해 물을 따라주고 나갔다.서연정은 얼굴이 창백한 고은서를 보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은서야, 왜 이리 초췌해 보여?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어?”고은서는 아주 덤덤하게 답했다.“사고가 좀 있었어요.”“사고라니? 크게 다쳤어?”서연정은 이내 무언갈 떠올린 듯 말을 이어갔다.“승재도 네가 다친 걸 알고 있어?”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요 며칠 저녁마다 저를 케어해 주러 오곤 했어요.”“요 며칠 승재가 엄청 바삐 보내는 것 같았는데 심지어 어머니 말로는 본가에도 가지 않아서 몇 번이고 오라고 불렀는데도 시간이 없다고 거절했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네가 다쳐서 그런 거라고는 미처 생각도 못 했지.”서연정이 마음 아파하며 말했다.“은서야, 다쳤으면 나한테 얘기해줬어야지. 그럼 나도 승연이를 데리고 널 보러 갔을 텐데.”“어머니한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요. 게다가 지금은 다 나았어요.”고은서가 웃으면서 답했다.“오늘은 무슨 일로 날 부른 거야?”“별일 아니에요. 그저 승연이도 볼 겸 어머니랑도 얘기 좀 나누려고요.”고은서가 미소를 잃지 않고 말했다.“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데?”서연정이 온화한 눈길로 고은서를 바라보며 물었다.고은서는 약간 어색한 기색을 띠며 자신의 의문을 제기했다.“얼마 전에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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