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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2화

작가: 류한나
고은서에게 거절당한 곽승재는 자신의 차를 향해 걸어갔다.

차에 오르기 전, 곽승재는 손에 있는 버블티를 보면서 넋을 잃은 듯 서 있었다.

“곽 대표님?”

바로 이때, 뒤에서 익숙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보니 고양이를 안고 있는 여시은이었다.

“진짜 곽 대표님이었네요.”

여시은은 약간 의아해했다.

“곽 대표님이 왜 여기에 계세요? 오늘 바쁘다면서 저랑 아빠가 같이 밥 먹자고 초대하는 걸 거절하셨잖아요.”

곽승재는 아주 간결하게 답했다.

“개인적인 일이에요.”

그러자 여시은은 그의 손에 있는 버블티를 빤히 바라보면서 부럽다는 듯 말했다.

“와, 곽 대표님도 버블티를 마시나요? 이거 해성에서 엄청 이름 있는 브랜드인데 평소에 사려면 줄이 엄청 길던데요.”

그러나 곽승재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자리를 뜨려고 했다.

“별다른 일 없으시면 먼저 가보겠습니다.”

“곽 대표님, 마침 이렇게 만났는데 저랑 얘기 좀 나누시죠?”

여시은이 눈을 깜빡이면서 말했다.

“정략결혼 일로 아저씨랑 다툰 걸 저도 알고 있어요. 우리 같이 해결 대책을 생각해 보는 건 어떤가요?”

“저는 정략결혼을 하지 않을 겁니다.”

곽승재가 직설적으로 말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이 일로 이틀 전에 은서 씨를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이 앞에 양꼬치집 꽤 괜찮다고 들어서 오늘 특별히 저녁도 먹지 않고 찾아온 건데 저 밥 한 끼 사주세요. 그리고 자세한 건 먹으면 얘기하도록 하죠.”

여시은이 나긋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두 집안 어른들이 가까이 지내는 데다가 또 사업 파트너이기도 했기에 두 사람은 여러 차례 같은 식사 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고은서의 이름을 들은 곽승재도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양꼬치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버블티를 기사에게 건네주면서 당부했다.

“몇 잔 더 사서 라이트문으로 가져가.”

기사는 알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곽승재는 이내 양꼬치집으로 들어갔다.

여시은은 웃으면서 기사 손에 있는 버블티를 힐끔 보고는 쿠아를 안고 곽승재를 따라갔다.

양꼬치 집은 환경뿐만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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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서에게 거절당한 곽승재는 자신의 차를 향해 걸어갔다.차에 오르기 전, 곽승재는 손에 있는 버블티를 보면서 넋을 잃은 듯 서 있었다.“곽 대표님?”바로 이때, 뒤에서 익숙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뒤돌아보니 고양이를 안고 있는 여시은이었다.“진짜 곽 대표님이었네요.”여시은은 약간 의아해했다.“곽 대표님이 왜 여기에 계세요? 오늘 바쁘다면서 저랑 아빠가 같이 밥 먹자고 초대하는 걸 거절하셨잖아요.”곽승재는 아주 간결하게 답했다.“개인적인 일이에요.”그러자 여시은은 그의 손에 있는 버블티를 빤히 바라보면서 부럽다는 듯 말했다.“와, 곽 대표님도 버블티를 마시나요? 이거 해성에서 엄청 이름 있는 브랜드인데 평소에 사려면 줄이 엄청 길던데요.”그러나 곽승재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자리를 뜨려고 했다.“별다른 일 없으시면 먼저 가보겠습니다.”“곽 대표님, 마침 이렇게 만났는데 저랑 얘기 좀 나누시죠?”여시은이 눈을 깜빡이면서 말했다.“정략결혼 일로 아저씨랑 다툰 걸 저도 알고 있어요. 우리 같이 해결 대책을 생각해 보는 건 어떤가요?”“저는 정략결혼을 하지 않을 겁니다.”곽승재가 직설적으로 말했다.“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이 일로 이틀 전에 은서 씨를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이 앞에 양꼬치집 꽤 괜찮다고 들어서 오늘 특별히 저녁도 먹지 않고 찾아온 건데 저 밥 한 끼 사주세요. 그리고 자세한 건 먹으면 얘기하도록 하죠.”여시은이 나긋하게 웃으면서 말했다.두 집안 어른들이 가까이 지내는 데다가 또 사업 파트너이기도 했기에 두 사람은 여러 차례 같은 식사 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고은서의 이름을 들은 곽승재도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그는 양꼬치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버블티를 기사에게 건네주면서 당부했다.“몇 잔 더 사서 라이트문으로 가져가.”기사는 알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곽승재는 이내 양꼬치집으로 들어갔다.여시은은 웃으면서 기사 손에 있는 버블티를 힐끔 보고는 쿠아를 안고 곽승재를 따라갔다.양꼬치 집은 환경뿐만이 아

  • 어게인, 비긴   제801화

    민시후가 망설임의 알아차린 고은서가 입을 열었다.“너무 급한 일이 아니면 여기서 밥 먹고 가.”처리할 일이 있는 건 맞았으나 너무 오랫동안 고은서를 못 본 탓에 이렇게 떠나기는 아쉬웠다.민시후가 고개를 끄덕이려고 할 때 고은서가 말을 보태었다.“전에 병원에서 요리를 잘한다고 큰소리쳤잖아. 오늘 요리 실력 좀 보여줘야지 않겠어?”고은서의 도발에 민시후는 남아야겠다는 마음을 더 굳게 먹었다.그는 옷소매를 걷어 올리며 자신이 거짓말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이려 했다.그러나 엄연히 따지면 손님이었기에 이미숙은 모든 일을 민시후에게 떠넘기는 대신 그가 제일 잘하는 음식만 손보게 하고 나머지 음식은 자신이 도맡아 했다.얼마 후, 민시후는 자신이 만든 물고기 요리를 들고 나왔다.송민아는 눈치 있게 이미숙을 도우러 부엌으로 들어갔다.노랗게 구워진 물고기 위에는 견과류가 뿌려있었고 옆에는 녹색 잎으로 플레이팅까지 되어 있었다.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 정도의 비주얼이었다.민시후의 기대하는 눈빛 아래 고은서는 망설임 없이 한 입 먹어보았다.오렌지 껍질과 고춧가루 향이 물고기 잡냄새를 잡아준 덕분에 물고기의 특유한 고소한 맛이 미각을 자극했는데 너무 맛있었다.고은서도 전에 곽승재의 관심을 받기 위해 요리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는데 민시후의 요리 솜씨와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민시후는 고은서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며 자랑스럽다는 듯 턱을 치켜올렸다.“내가 말했지. 큰소리친 게 아니라고.”고은서가 옆에서 맞장구를 쳐주었다.“물론이죠. 너무 맛있어요. 제가 보는 눈이 없어서 우리 민 도련님 실력을 의심했네요. 십 점 만점에 십 점을 드리겠습니다.”바로 그때, 이미숙이 폰을 들고 부엌에서 나오는 바람에 전화 너머에 있는 곽승재는 그 광경을 전부 목격하게 되었다.밥상 위에는 아주 맛있게 생긴 음식이 놓여 있었고 고은서는 젓가락을 내려놓는 것도 까먹은 채 민시후의 요리 솜씨를 칭찬하고 있었는데 민시후는 아주 자랑스러워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드러냈다.“은

  • 어게인, 비긴   제800화

    “은서야, 전에 동물원도 거절했잖아. 이번만은 네 거절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민시후는 자신의 손목에 있는 염주 팔찌를 흔들어 보이면서 말을 이어갔다.“게다가 나한테 선물도 줬잖아. 그저 주고받는 거라고 생각해.”‘염주 팔찌랑 기업이 어떻게 같아.’고은서는 민시후가 자신이 빨리 자리 잡기를 원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백씨 집안 기업이 아무리 파산했다고 해도 여전히 아주 성숙된 기업이었는데 인수 절차를 마치기만 하면 많은 업무를 또다른 준비 없이 계속 진행해 나갈 수 있었다.“내 고백도 거절했잖아. 그러니까 이 계약서만은 받아줘. 나도 쾌락을 한 번쯤 느껴 보자.”민시후가 말했다.“그럼 넌 주주로 들어와.”이는 고은서가 고민 끝에 생각해낸 방법이었다.“아니. 온전히 다 네 거야.”민시후가 단호하게 말했다.고은서는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는 민시후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감동 받았다.그녀는 애써 여유로운 척하면서 답했다.“민시후, 후회하기 없기야. 나중에 내가 돈을 벌어도 넌 옆에서 보고 있기만 해야 해.”민시후는 오랜만에 껄렁대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성공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내 안광도 좋다는 걸 의미하겠지.”약간 애매하게 와닿는 말이긴 했지만 고은서는 자연스럽게 그의 말을 받아줬다.“민 도련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노력할게요.”민시후는 고은서의 발을 더 가까이 다가가 보려고 하다가 꾹 참고 소파에 앉은 채 물었다.“아직도 아파? 약은 발랐어?”고은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답했다.“그냥 살짝 삐인 것뿐이야. 안 아파. 의사가 며칠 더 쉬는 게 좋다고 해서 나도 이 기회에 집에서 농땡이 좀 부려 보려고.”민시후는 고은서의 장난을 받아주는 대신 그녀의 발을 빤히 바라보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일 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고되게 느껴질 줄은 생각도 못 했어.”그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마음이 아파왔다.“아버지랑 형이 아직도 계속 널 찾아?”민시후는 쓸쓸함을 애써

  • 어게인, 비긴   제799화

    고은서는 협조적으로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무슨 빅뉴스인데?”“한 번 맞춰 봐.”박지연이 일부러 뜸을 들이며 말했다.“육현석이 너한테 프러포즈했어?”고은서가 물었다.“커헙!”박지연은 순간 자신의 침에 사레가 들렸다.“왜 상상력이 갑자기 그쪽으로 넘어가는 거야? 우리가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웬 프러포즈야.”“다른 빅뉴스가 떠오르지 않는 걸 어떡해.”박지연은 더는 뜸을 들이지 않고 고은서에게 아침에 육현석한테서 전해 들은 소식을 알려줬다.다름 아닌 백유미가 요 며칠 고열에 시달려 검사해 본 결과 성병에 걸렸다는 것이다.“그 소식을 전해 들은 범가온이 백유미를 찾아가 한바탕 비아냥거렸는데 끝까지 배 속에 있는 아이를 없애는 걸 반대 했다지 뭐야. 백승엽이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대.”‘약간 의외이긴 하지만 너무 놀라운 일은 아니네. T국에서 만난 그 남자들 처음부터 별로 좋은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는데 성병을 앓고 있는 것도 너무 희귀한 일은 아니야.’“그런데 이 상황에 태아는 건강하대?”고은서가 물었다.박지연은 일부 성병은 사 개월 안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으면 태아가 감염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고 그녀에게 알려줬다.그리고 범가온이 아들을 잃었는데 손주까지 잃을 수 없다면서 아이가 배 속에서 죽지 않는 이상 어떻게서든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고집부리고 있다면서 상황 설명을 보태었다.“악행에는 악과가 따른다고 다 백유미 업보야.”박지연이 통쾌하다는 듯이 말했다.고은서도 이 모든 게 백유미가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라고 생각했다.‘만약 그날 내가 원지훈을 설복하는 데 실패했다면 지금쯤 성병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은 내가 되겠지.’고은서는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발을 삐인 탓에 이틀 동안 회사에 나가지 않았다.급히 처리해야 할 일은 송민아가 직접 들고 라이트문으로 찾아오곤 했다.이미숙도 이틀 동안 라이트문에 머물면서 집안일을 도와주며 어떻게 달래도 예원 별장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다행히

  • 어게인, 비긴   제798화

    고은서는 소파에 앉은 채 다리를 높게 올려놓고 서류를 보고 있었다.일인 소파에 앉은 곽승재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다른 한 손으로 폰을 들고 통화하고 있었는데 누군가의 사업보고를 듣는 듯했다.분위기는 아주 기괴했는데 위화감이 느껴지는가 하면 또 말할 수 없는 조화로움도 느껴졌다.인기척을 들은 곽승재는 전화를 끊고 박지연을 향해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지연 씨.”“당신이 왜 여기에 있어요?”박지연이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은서가 발을 삐어서 집까지 부축해준 거예요.”곽승재가 설명했다.박지연이 고개를 돌려보니 고은서는 확실히 발에 압력 붕대를 감고 있었다.“왜 나한테 안 알려줬어? 알려줬으면 더 일찍 돌아왔을 텐데.”그녀가 고은서를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괜찮아. 별로 큰일도 아닌데.”고은서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은서야, 지연 씨도 돌아왔는데 나도 이만 가볼게.”곽승재는 이내 고개를 돌려 박지연을 보며 말했다.“은서 잘 부탁해요.”말하는 속도, 표정, 말투 모든 게 다 알맞춤했는데 너무 열정적이지도 않고 너무 서먹하지도 않았다.박지연은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대체 어떻게 된 거야? 곽승재는 왜 여기로 들인 거야? 게다가 어떻게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이렇게 평화롭게 지낼 수가 있어?”T국에서 돌아온 이후로 고은서는 곽승재를 향한 마음을 완전히 접은 상태였다. 그에 관한 얘기를 꺼낸 적도 없었고 들었다고 해도 모른 척하면서 그를 낯선 사람 취급을 했었다.심지어 민시후의 마음을 받아들일 준비까지 하고 있었는데 곽승재가 갑자기 태연한 모습으로 쫓겨나지도 않고 집에 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곽씨 가문 본가에서 발목을 삐어서 날 병원까지 데려다주고 또 집까지 부축해줬어. 그리고 혹시나 더 다치기라도 할까봐 네가 올 때까지 기다려준다고 해서 여기에 있는 거야.”“정말이야?”박지연은 고은서의 말을 의심했다.“그렇다니까.”박지연은 고은서를 아래 우로 훑어보았다,‘표정은 정상인데 그래도 어딘가 이상한 것

  • 어게인, 비긴   제797화

    맞은편 도로의 차량 불빛이 곽승재의 얼굴을 비추면서 그의 쓸쓸한 표정이 숨김없이 드러났다.차가 지나가면서 고은서도 따라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과거의 일은 더는 원망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 줄 수 있어. 하지만 나에겐 이미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고 너랑 다시 시작할 생각도 없어. 난 새로운 인생을 살 거야.”가로수 길은 어느새 다시 조용한 모습으로 돌아갔고 고은서의 담담한 목소리가 차 안에서 울려 퍼졌다.“여시은 씨한테서 네 근황에 관해 들었는데 정략결혼 하기에 맞춤한 상대인 것 같아. 몇 년 동안 나한테 편견을 가지고 살았는데 그만큼 내가 중요하지도 않다는 걸 의미하겠지. 아무튼 이젠 이혼도 했거니와 사랑을 추구하겠거든 상대를 여시은 씨로 바꾸는 게 나을 것 같아. 여재훈 씨도 널 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은데. 너만 원한다면 행복한 결혼생활과 크나큰 재부를 동시에 얻을 수 있어.”겉으론 부드럽게 들리는 말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곽승재의 마음에 꽂혔다.곽승재는 아직도 자신을 원망하고 있는 고은서와 계속 말을 이어가 보았자 그녀의 기분만 더 망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는 자신의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조금 이따 또다시 얼음찜질을 해야 하니까 내가 데려다줄게.”...반 시간 후, 곽승재는 고은서를 라이트문 아파트로 데려다주었다.박지연은 육현석과 데이트 하러 나간 후로 지금까지 들어오지 않았고 또 고은서는 발이 삐인 탓에 혼자 걸을 수가 없었기에 곽승재가 그녀를 집까지 부축해주기로 했다.원래는 직접 안아서 데려다주려고 했는데 고은서가 단호하게 거절하는 바람에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그저 부축만 해주었다.엘리베이터에서 나온 후 고은서가 지문을 누르면서 문을 열고 곽승재는 그녀를 부축해 소파에 앉혔다.그리고 이내 냉장에서 얼음팩을 가져와 고은서를 위해 얼음찜질을 해주었다.고은서는 자신의 집 구조를 아주 익숙히 알고 있는 곽승재를 보며 약간 의아해했다.“난 방금 부엌이 어딘지 알려준 적이 없는

  • 어게인, 비긴   제796화

    [그날 연회에서 가여운 척하면서 꽤 고생했을 텐데 그래도 곽승재 눈에 들어서 다행이야. 그런데 진짜 잘생겼다. 기품도 말이 아니고. 방금 학교에서도 엄청 많은 여자애들이 곽승재를 몰래 쳐다봤다니까. 확실히 네가 그럴 만도 해.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훌륭한 남자를 어떻게 얻겠어.]곽승재는 더는 듣지 않고 곧장 도서관 밖으로 나와버렸다.“당시 너한테 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너무 나서 머리핀을 서랍 안에 던져둔 이후로 더는 그 일에 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어.”차 안의 불빛이 어두운 탓에 곽승재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고은서는 그가 지금쯤 깊이 후회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은서는 사실 약간 놀랐다. 그녀는 곽승재가 자신을 찾으러 온 줄도 몰랐고 다른 사람한테서 그런 소식을 전해 들은 적도 없었다.그녀에 관한 일을 꿰뚫고 있으면서 망치려 하는 사람은 베프라고 여겼던 성아연 외에는 더는 없었다.고은서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했다.‘나를 거짓말하면서 누군갈 해치려 하는 악녀라고 생각한 게 다 그 일 때문이었던 거구나. 그리고 날 좋아하지도 않는데 계속 집착하니까 날 더 반감했던 거고.’“은서야, 어떻든 다 내 잘못이야. 너에 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고 모르는 사람의 말을 함부로 믿었던 내 탓이야.”곽승재의 목소리에서 진심 어린 미안함이 느껴졌다.고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열여덟 살 때의 기억 때문에 북받쳐 오른 감정이 점차 사그라들면서 그녀의 마음도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전생에 팔 년 동안 곽승재가 왜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그토록 증오하는지도 모른 채 집착했었는데 지금 그 답을 알고 난 후로 몹시 흥분해 할 것 같았지만 도리어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그녀가 몇 년 동안 자신의 모든 감정을 쏟아부으면서 애써 그의 사랑을 추구하고 또 이년이라는 결혼생활을 함께 해왔지만 끝내는 그의 편견을 깨부수지 못했다.“은서야, 다 내 일방적인 생각 때문에 너한테 그 많은 상처를 입혔던 거야.”곽승재가

  • 어게인, 비긴   제795화

    곽승재가 스물두 살이 되던 해, 그는 절망 속에 빠져있는 고은서를 제때에 구했다.열여덟 살인 고은서는 그를 영웅과 기사로 여기면서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은서야.”허스키한 남자 목소리가 그녀를 현실로 다시 끌어왔다.“괜찮아.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곽승재가 그녀를 위안했다.“당시에 설 전날까지 경찰서에 갇혀있었는데 정신을 못 차릴 줄은 생각도 못 했어. 이번에 들어가면 더는 쉽게 나오지 못할 거야.”고은서는 기억 속의 그와 똑같은 얼굴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가슴이 떨려왔다.그 남자의 얼굴을 알아보는 걸 봐서는 곽승재도 그해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곽승재, 그날 혹시 크리스탈 머리핀 하나 줍지 않았어?”고은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그녀는 그제서야 당시 자신이 반달 모양의 크리스탈 머리핀을 끼고 연회에 참가했다는 걸 떠올렸다.그리고 연회에서 돌아온 후부터 그 머리핀을 찾을 수 없었다.그 변태 남자를 피하면서 떨어뜨린 듯했지만 너무 겁먹은 탓에 그런 자세한 것까지 상관할 겨를이 없었다.곽승재는 크리스탈 머리핀이란 말을 듣자마자 약간 어색한 기색을 드러냈다.“돌려주려고 했는데 그땐 이미 네가 할아버지랑 떠난 후여서 어쩔 수 없었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까먹어버렸어.”‘본가에 서랍에 있던 그 머리핀이 진짜 곽승재가 주은 내 머리핀이었던 거야.’고은서는 순간 코끝이 찡해나면서 그동안 억누르고 있던 사랑과 원망의 감정이 한꺼번에 북받쳐 올랐다.“몇 달 전에 경찰서에서 성아연한테 다른 여자를 좋아한 적도 없고 다른 여자랑 결혼을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하면서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결혼하고서 나한테 그토록 차갑게 굴었던 거야?”눈시울이 빨개진 고은서가 곽승재를 향해 물었다.곽승재는 순간 멈칫하더니 넋을 잃은 듯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그녀는 전과 달리 아주 연약한 모습을 보였는데 얼굴에는 아주 진실한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눈동자 속에는 이성을 잃을

  • 어게인, 비긴   제794화

    기사는 이미 차 문을 열고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오른 후, 곽승재는 아주 자연스럽게 고은서의 발을 들어 자신의 다리 위에 올려놓았다.“의사 선생님께서 높이 놓고 있으면 더 빨리 낫는다고 했잖아.“...” 그럼으로써 고은서는 어쩔 수 없이 그와 마주 앉게 되었다.고개를 들 때마다 그의 잘생긴 얼굴이 계속 눈에 들어오는 바람에 고은서는 아예 시선을 차창 밖으로 돌렸다.병원 주차장에서 나와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을 때 옆 가로수 길에서 어떤 수상한 남자 한 명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그 남자의 얼굴을 알아본 고은서는 이내 온몸이 굳어버렸다.곽승재도 이내 이상함을 감지했다.그가 두려운 표정을 하고 있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큰 코트를 입고 음탕하게 웃으며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바로 그때, 남자가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여자를 향해 코트를 촤락 열었는데 여자는 이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버렸다.남자는 만족하는 듯 흥분한 미소를 지으며 여자를 쫓아가려고 했다.무언갈 떠올린 듯한 곽승재는 얼굴빛이 삽시에 어두워졌다.“차 세워.”그는 고은서의 다리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차에서 내려 성큼성큼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다른 타깃을 찾고 있던 변태 남자는 키 크고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표정을 한 남자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걸 발견했다.그리고 그는 반응하기도 전에 곽승재의 발에 차였다.“으악!”변태 남자는 뒤로 넘어지면서 고통스러운 비명소리를 냈다.가로수길에는 사람이 너무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몇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다 그 비명소리를 들었다.곽승재의 기사도 경각심이 높고 호신술을 배웠던 사람인지라 이내 비상등을 켜고 차에서 내려 상황을 처리하러 갔다.가로수길에는 신고하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 그리고 곽승재를 도와 변태 남자를 제압한 사람들로 가득찼다.반면 고은서는 차에 가만히 앉아있었다.열여덟 살 되던 해의 기억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고준석과 함께 연회에 참가한 그녀는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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