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236화

작가: 류한나
곽승재가 물었다.

“왜 운호 산장에 돌아가지 않은 건데?”

고은서는 대답하기 싫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곽승재의 표정이 굳어지며 불쾌한 기색이 감돌았다.

“약을 바꿔치기 한 일이 너랑 관련이 있는지는 일단 내버려두고, 네가 아저씨를 차서 허리를 다치게 했으면 그렇게 무책임하게 가버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그 말을 들은 주민기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큰일 났다.

곽 대표가 이렇게 말하면 둘 사이가 더 어색해질 텐데.

아니나 다를까 고은서는 그 말에 참고 있던 화가 폭발했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네가 병원에 오라 해서 왔건만. 꼬치꼬치 캐묻고는 그것도 모자라서 이젠 돌아도 못 가게 하는 거야? 아주 그 자리에서 나한테 죄명을 씌워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었나봐? 아저씨랑 백유미한테 무릎 꿇고 사과라도 해야 한다는 거야?”

“...”

곽승재는 그녀의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주민기는 이 상황을 도저히 지켜볼 수 없어 운전기사에게 급히 신호를 보냈다.

어서 칸막이를 내려야만 이 불똥이 자신에게 튀지 않을 테다.

칸막이가 내려가자 곽승재도 억누르고 있던 분노를 더는 참지 못했다.

“고은서, 지금 이 상황에서도 네가 억울하다는 거야?”

“약봉지에 네 지문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어? 아니면 약국에 가기 전에 백유미가 나타난 데에 화가 난 적도 없다고 말하는 거야?”

역시 곽승재는 이미 지문 검사를 했던 것이다.

“백유미는 GS그룹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일 뿐이야. 이사 자리에 있는 것도 그만한 실력이 있어서고. 본사에 와서 원하는 자리를 고르라고 기회를 줬는데 네가 거절했잖아. 그런데 지금 와서 또 백유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설치고. 대체 원하는 게 뭐야?”

곽승재가 물었다.

“그쪽이랑 거리 두는 게 내가 원하는 거라고. 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아는데?”

고은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가 서류에 도장 찍는 걸 미루면서 애매하게 구니까 백유미가 계속해서 이런 자극적인 행동을 하는 거잖아!”

“자기 몸과 생명을 걸고 장난칠 사람이 어디 있어?”

“있잖아. 백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어게인, 비긴   제237화

    곽승재의 걱정이 담긴 목소리는 고은서의 귀에 비웃음처럼 들릴 뿐이었다. 고은서는 입술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떻게 된 거라뇨? 자갈이나 깨진 유리가 살 속으로 박힌 것 같은데 짚이는 군데 없어요?”의사가 고은서 대신 대답했다.곽승재는 그제야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혹시 쓰레기통 위에 있던 방화용 자갈에?”고은서는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의사는 그녀를 타이르듯 말했다.“아가씨, 손을 이렇게 다쳤으면 조심했어야죠. 겨우 아물어가던 상처가 다시 찢어져서 얼마나 아프겠어요. 괜히 고생을 두 번 하잖아요.”“아내가 다친 줄 몰랐습니다. 내가 너무 세게 잡았어요.곽승재는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의사는 고개를 들며 곽승재를 쳐다보았다.“아내라면서 다친 것도 모르셨어요?”평소 자신감 넘치던 곽 대표도 그 순간 의사의 한 마디에 얼굴이 뜨거워졌다.그는 헛기침하며 변명하듯 말했다.“당시 상황이 좀 급해서요.”“그럼 현장에 있었다는 얘기네요? 그런데도 아내가 다친 걸 몰랐어요?”의사는 더 놀란 듯 물었다.“아내가 다친 것보다 더 급한 일이 뭐가 있길래요?”곽승재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고은서는 그런 그를 보며 속이 시원했다.예전 같았으면 분명 곽승재 대신 해명해 주었겠지만, 지금은?잘 됐다. 이렇게 당해도 싸지.“혹시 강제로 결혼하신 건 아니죠? 평소에도 저렇게 무관심한가요?”의사는 조심스레 고은서에게 물었다.고은서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런 셈이죠.”비록 맞선으로 만난 건 아니지만 곽승재가 그녀와 결혼한 건 할머니의 뜻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지금 진료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험담하는 겁니까?”곽승재는 눈살을 찌푸리며 의사에게 말했다.“환자 진료나 제대로 보시죠.”의사는 다시 한번 곽승재를 훑어보았다. 그의 큰 키와 기품 있는 외모를 보며, 작게 속삭였다.“아가씨, 남편 고를 때 이렇게 겉만 멀쩡한 사람 말고 진짜로 잘

  • 어게인, 비긴   제238화

    “됐어. 쓸데없는 말로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은서는 곽승재의 말을 끊었다.“네가 의사라도 돼? 알면 뭐 어쩔 건데. 상처가 저절로 낫는 것도 아니고.”곽승재는 또다시 말문이 막혔다. 지금의 고은서는 마치 온몸에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 같았다. 지금 상대로는 제대로 대화할 수조차 없었다.결국 곽승재는 이 주제를 접고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냈다.“이거 받아.”고은서는 웃음을 터뜨렸다.“뭐야, 보상이라도 해 주려는 거야?”이전에 고은서가 그에게 ‘10만 원 한 달 패키지’ 라 조롱했던 일이 있었기에 곽승재는 그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곽승재는 차분하게 말했다.“너희 외할아버지와 같이 지방에 동행할 시간이 없으니까 여행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내가 부담할게.”고은서는 단호하게 거절했다.“필요 없어. 우리 집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런 돈은 필요 없어.”고승아가 ‘우리 집’이라 콕 집어 말하자 곽승재는 그 사이에서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속에서 불쾌함이 밀려왔지만 곽승재는 애써 감정을 억누르고 물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면 되겠네?”그 말을 듣자마자 고은서는 잽싸게 카드를 낚아챘다.지금은 장난처럼 말했지만 혹시라도 진짜 화가 나서 따라오겠다고 하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니까.어차피 준다는데 안 받을 이유는 없었다.곽승재는 그녀의 속내를 읽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몇십 분 후, 차는 고은서의 집에 도착했다.고은서는 왼손에 외투를 걸친 채 작은 가방을 들고 먼저 차에서 내렸다.고준석은 이미 마당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은서는 활짝 웃으며 달려갔다.“할아버지!”“은서야, 네가 할아버지랑 같이 해찬시에 가고 싶다고 할 줄이야. 예전에는 기후가 너무 건조하다고 싫다고 하더니.”고준석은 놀란 듯 물었다.고은서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괜찮아요, 충분히 수분 보충할 스프레이랑 마스크팩도 챙겨왔다고요. 그냥 외할아버지랑 같이 있고 싶어서요.”두 사람은 손을 잡고 웃으며 얘기 나누고 있었다. 그때 곽승재가 보따리를

  • 어게인, 비긴   제239화

    곽승재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습니다. 곧 갈게요.”전화를 끊자마자 운전기사가 다가와 보고했다.“대표님, 사모님께서 바쁘시면 점심은 함께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짐을 챙겨야 할 것들이 있어 안으로 들어가셨어요.”이 말은 그야말로 ‘그만 가라’는 뜻이었다. 곽승재는 잠시 서 있다가 이내 걸음을 돌려 차 쪽으로 향했다.운전기사가 재빨리 뒷좌석 문을 열어 주었지만 곽승재는 문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그리고 곧 결심한 듯 다시 돌아서서 집 안으로 걸어갔다.그때 고은서는 외할아버지와 함께 거실 테이블에 앉아 태블릿으로 해찬시의 관광지들을 보고 있었다. 고은서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보는 애교 섞인 환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할아버지.”곽승재가 낮은 소리로 불렀다.고준석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승재야, 아직 안 갔나?”“가보려던 참이었는데,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곽승재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은서의 손이 제 부주의로 다쳤습니다. 이 일에 대해 사과드리려고요.”고준석은 그제야 외손녀가 손을 옷 안에 숨기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어디 다친 거야? 손 좀 보자!”고준석이 다급하게 말했다.고은서는 곽승재를 째려보며 귀찮다는 듯 손에 감긴 붕대를 내보였다.“어제 실수로 작은 돌멩이에 찍혔어요. 이제 거의 다 나았어요, 할아버지.”고준석은 여전히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넌 원래 아픈 걸 못 참잖니. 평소엔 가시 하나만 뽑아도 울고불고 난리였는데 이렇게 붕대를 감을 정도면 얼마나 아팠겠어. 소독도 해야 하고 약도 발라야 할 텐데, 어떻게 참았대.”예전의 고은서는 사소한 상처에도 엄살을 부리곤 했다.작은 상처만 있어도 외할아버지와 도우미들이 온갖 방법으로 달래야 겨우 진정했었다.곽승재는 한때 할머니에게 등 떠밀려 고은서의 집에 와서 아팠던 고은서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그때 외할아버지는 고은서에게 용감한 아이라고 칭찬하며 약을 먹이려 했지만, 고은서는 약 한 모금을 마시자마자 쓴맛에 얼굴을 찌푸리며 뱉어냈었

  • 어게인, 비긴   제240화

    기사는 뒤에서 들려오는 곽승재의 낮은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대표님, 저한테 물으신 건가요?”곽승재는 대답하지 않았다.기사는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저희 집은 모든 일을 아내가 알아서 처리합니다. 급한 일이 생겨도 제가 나설 필요가 없죠.”그가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걸 알았지만 곽승재는 더 이상 설명할 마음이 없었다.의사도 현장 상황을 모른 채로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고은서가 백유미와 관련된 일로 화를 낸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무조건 그녀의 편을 들어줬다면 오히려 더 제멋대로 굴었을 거였다.게다가 고은서가 다친 것도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녀가 떠난 뒤에야 뒤늦게 알게 되어 연락하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연락이 닿지 않았었다.따라서 이번 일은 자신이 잘못 처리한 게 아니라고 곽승재는 생각했다.고은서가 이번 일로 화가 나서 외할아버지와 함께 외국으로 간다 해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곽승재는 스스로 이성적으로 정당화하려 했다.하지만 고은서의 얼굴에 떠오른 비웃음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불편했다....점심을 먹고 난 후, 고은서는 외할아버지와 오춘식과 함께 공항에 도착했다.고은서는 여자였기에 외할아버지와 같은 방을 쓸 수 없었고, 전생에서 외할아버지가 사고를 당했던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를 알 수 없었기에 더 안전하게 오춘식까지 동행하도록 했다.탑승 수속을 마친 후 세 사람은 퍼스트 클래스 라운지에 앉아 있었다.오춘식과 외할아버지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고은서의 휴대폰이 울렸다.전화 화면을 확인하니 전미자였다.이 시간에 왜 전화를 했을까?고은서는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할머니, 무슨 일이세요?”전미자가 다정하게 물었다.“은서야, 오늘이 승재 아빠가 귀국하는 날이잖니. 오늘 저녁에 우리 집에 와서 같이 밥 먹자고 약속했었잖아.”고은서는 순간 머리를 탁 쳤다. 이 중요한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아침에도 곽승재는 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물론,

  • 어게인, 비긴   제241화

    전미자와의 통화를 마친 고은서는 탑승 시간이 다 되어 외할아버지와 오춘식과 함께 비행기에 탑승했다.약 두 시간 후, 세 사람은 해찬시에 도착했다.시간이 늦은 터라 그들은 먼저 호텔에 묵기로 하고 다음 날 아침 외할아버지의 오래된 친구를 만나러 병원에 가기로 했다.그 후, 고은서는 외할아버지와 오춘식을 모시고 현지의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었다.호텔로 돌아온 고은서는 곽승재에게 부재중 전화가 온 것을 발견했다.식사할 때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서 듣지 못했던 모양이다.전화뿐만 아니라 ‘도착했어?’ 라는 짧은 메시지도 와 있었다.이미 한 시간도 더 지난 일이었기에 고은서는 굳이 답장할 생각이 없었다.그녀는 캐리어에서 옷을 꺼내 들고 욕실로 향했다....예원별장.곽승재는 할머니 댁에서 돌아와 거실로 들어섰다.이미숙이 다가와 물었다.“차 드릴까요, 대표님?”곽승재는 고개를 저었다.평소 집에 돌아왔을 때와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지만 왠지 집 안이 허전하게 느껴졌다.“어제 차에서 가져오신 그 떡은 냉장고에 넣어놨습니다. 누구 드릴 건가요? 아니면 사모님에게 드릴까요?”이미숙이 물었다.곽승재는 떡의 존재조차 잊고 있었다.원래는 고은서가 외할아버지와 전미자를 위해 사 온 것이었다. 하지만 어젯밤 일들이 꼬이면서 결국 누구에게도 주지 못한 채 잊혀졌다.고은서는 항상 섬세한 마음으로 어딜 가든 가족을 생각하며 작은 선물을 준비하곤 했다.그녀는 예전에도 그와 함께 새로운 음식점을 탐방하고 싶어 했지만 곽승재는 시간 낭비라며 매몰차게 거절하곤 했다.그래서 고은서는 늘 직접 음식을 사 와 곽승재가 집에 돌아오면 함께 나누려 했지만, 곽승재는 항상 바쁜 척하며 그녀 곁에 머무르려 하지 않았다.고은서의 기대에 찬 눈빛이 점점 실망으로 바뀌는 것을 보는 것이 힘들었지만, 다음 날이면 고은서는 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활기찬 모습으로 다시 그의 곁을 맴돌았다.곽승재는 고은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떡 어떻게 할까?’몇 초간 기다렸지만 고은서는

  • 어게인, 비긴   제242화

    곽승재가 전화를 끊은 뒤 휴대폰이 진동하며 알림이 왔다. 화면을 보니 육현석이 보낸 메시지였다.메시지에는 고은서의 SNS 캡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형, 형수님 어디 가신 거야? 어제까지만 해도 운호산장에서 잘 보내고 계셨잖아?’곽승재는 그에게 답장하지 않고 보내온 사진을 확대했다.사진 속에는 고은서가 찍은 맛집 음식 사진과 그녀가 외할아버지와 함께 찍은 셀카가 있었다.그리고 사진이 올라온 시간은 겨우 5분 전.그러니까 고은서는 자신의 메시지를 확인하고도 못 본 척하고 답장하지 않았던 것이다!바로 그때, 주민기가 호텔 프런트와 고은서의 객실 번호를 보내왔다.곽승재는 주저하지 않고 호텔로 전화를 걸었다....고은서는 일회용 장갑을 끼고 샤워를 마친 뒤, 어깨에 약을 뿌리고 나서 침대에 편안하게 누웠다.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사진 앨범을 열고 SNS에 올릴 사진을 골라 보정을 하기 시작했다.그 사이 곽승재에게서 또 메시지가 왔지만 이제는 아예 확인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사진을 신중하게 골라 게시물로 올리고는 다른 예쁜 사진들도 천천히 구경하려던 찰나 방 안의 전화기가 울렸다.호텔 프런트에서 걸려 온 전화겠거니 생각하며 고은서는 무심코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해맑은 여성의 목소리에 곽승재는 잠시 멍해졌다.가득 차오르던 짜증도 순간 조금 가라앉는 듯했다.“여보세요? 무슨 일인가요”고은서가 다시 불렀다.그제야 곽승재는 입을 열었다.“왜 내 메시지에 답장하지 않는 거야?”“...”고은서는 잠시 멈칫하다가 그가 호텔 방으로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은서, 내가 지금 묻고 있잖아.”곽승재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고은서는 귀를 살짝 막으며 차갑게 말했다.“무슨 일인데?”그녀의 싸늘해진 목소리에 곽승재는 더 이상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내 메시지 못 봤어? SNS에 글 올릴 시간은 있으면서 왜 내 메시지엔 답이 없어? 아직 이혼한 것도 아닌 데 없는 사람 취급하겠다는 거야?”헛웃음이 새어

  • 어게인, 비긴   제243화

    메시지는 도아름에게서 온 것이었다.그녀는 서인수가 경찰서에서 풀려나 오늘 집으로 찾아왔다고 전해왔다.‘술 공장이 무슨 이유에선지 갑자기 폐쇄되었고 전에 보육원의 그 여자아이가 갑자기 진술을 번복했어요. 자기가 자발적으로 한 게 아니었다고 했거든요. 지금 서인수는 미친개처럼 보이는 사람이면 아무나 물려고 해요. 억지로 내쫓긴 했지만 조심하세요. 지금 서인수는 잃을 게 없으니까. 외출할 땐 꼭 곽 대표와 함께 다니는 게 좋을 거예요.’아름 언니는 지난번 곽승재가 나서서 두 남자를 내쫓고 서인수를 경찰서에 보냈던 일을 떠올리며 그와 고은서의 관계가 좋아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 것이었다.고은서는 그녀의 말에 굳이 반박하지 않고 자신이 지금 타지에 있어서 서인수와 마주칠 일은 없을 거라고만 전했다.‘그럼 다행이네요. 지금 경찰 측이 증거를 수집하고 있어요. 보육원 여자아이가 진짜 진술을 한 거라면 며칠 안에 서인수는 다시 잡혀갈 거예요. 최소 2년은 살게 될 거고.’...다음 날, 고은서는 고준석과 함께 병원으로 유정길을 만나러 갔다.고은서는 이미 이분을 여러 번 만나본 적이 있어서 낯설지 않았다.하지만 몇 년 사이에 그가 이렇게 병마에 시달리며 병상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백발이 성성하고, 몸은 뼈만 남은 채 가죽만 덮여 있는 모습이었다.전생에 외할아버지도 이렇게 병상에 누워 계셨던 모습을 떠올리자 고은서는 마음이 무너지며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이 녀석, 보고 싶어서 눈물까지 흘리다니 너무 과한 거 아니냐?”상황을 모르는 외할아버지는 장난스럽게 말했다.유정길도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고은서는 민망하게 눈물을 훔치며 물었다.“할아버지, 지금은 좀 어떠세요?”유정길은 기운을 차리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너희를 보니 훨씬 나아진 것 같구나.”고은서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럼 빨리 나으셔야 해요. 저희 자주 찾아뵈러 올게요. 이번에도 며칠 동안 외할아버지랑 같이 병문안 자주 올 거예요.”“그래그래.

  • 어게인, 비긴   제244화

    고은서는 민시후와 여러 번 만난 경험이 있기에 그가 진짜로 기밀 자료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전적으로 송민아와 관련된 일이었기 때문이다.잠시 생각하던 고은서가 물었다.“송민아 씨가 지난번에 받은 충격이 부족했나 보네요. 이번엔 또 뭘 원하는 거죠?”“역시 눈치가 빠르시네요.”민시후가 말했다.“어디서 들었는지 은서 씨가 다음 달에 ZY그룹에서 일하게 된다는 소식을 알아버렸어요. 그래서 송민아도 거기 가겠대요.”“그래서요?”“매니저가 필요하지 않나요?”“필요 없거든요!”“그럼 그렇게 결정된 거로 할게요.”민시후는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어버렸다.“...”고은서는 어이가 없었다.‘민시후 저 인간은 대체 왜 자꾸 골칫거리를 만들어내는 거야!’송민아가 자신에게 적대적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 매니저로 붙이겠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화가 치민 고은서는 화단 옆의 잡초를 발로 차버렸다.하지만 잡초는 튕겨 나오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분통이 터진 고은서는 발로 꾹 밟아버리며 말했다.“감히 나한테 덤벼? 어디 두고 봐!”“풉.”갑자기 등 뒤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고은서는 고개를 돌렸다.그곳에는 나이가 26, 27세쯤 되어 보이는 캐주얼 차림의 안경을 쓴 온화한 미소를 띤 남자가 서 있었다.‘이 사람 어디서 본 적 있는 것 같은데...’“은서야, 정말 우연이네.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어.”남자가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그의 인사말을 듣고 나서야 고은서는 그가 누구인지 떠올렸다.그는 유전길의 손자 유성준이었다.몇 년 만에 다시 본 그는 이전에 풋풋한 모습은 사라지고 한층 성숙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마치 봄바람 같은 느낌이었다.유성준은 고은서보다 네 살이 많았기 때문에 고준석은 그에게 ‘은서’ 라고 부르도록 했었다.일반적으로 이런 호칭은 다소 가벼워 보일 수도 있었지만 유성준이 부를 때는 정말 친형제 같은 느낌이 들었다.몇 년 만에 만났는데도 어색하지 않고

최신 챕터

  • 어게인, 비긴   제843화

    고은서의 제안에 여시은이 반응하기도 전에 곽승재가 차갑게 말했다.“미안하지만 바쁩니다.”여시은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곽 대표님, 한가해도 저랑 가지 않을 거잖아요! 곽 대표님 안목을 믿을 수가 있어야죠.”말을 마친 여시은이 고은서를 보며 말했다.“은서야, 곽 대표님이 고양이 돌보게 두고 넌 나랑 같이 가자. 다른 고양이한테 정신 팔려서 쿠아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결국 고은서는 여시은과 함께 삼색 고양이를 보러 갔다.고양이는 귀여웠지만 쿠아는 그 고양이를 경계하며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 오히려 살짝 겁을 먹은 듯 보였다.“삼색 고양이는 고양이 세계의 미녀라 누구든 보면 좋아한다고 하던데 왜 쿠아는 싫어하는 거지?”여시은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쿠아가 아직 이 환경에 적응을 못 해서 그런 걸 수도 있어.”“그러네. 그럼 그냥 쿠아를 혼자 두는 게 낫겠다. 괜히 다른 고양이를 들여서 외롭다고 느끼게 만들면 안 되잖아.”여시은은 그렇게 말하며 쿠아의 머리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그녀의 애틋한 표정을 보며 고은서는 문득 자신의 판단이 맞는지 혼란스러워졌다.‘여시은이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일까?’일부러 SNS에 사진을 올려 곽승재를 현장으로 불러내 그 앞에서 친밀하게 행동했지만 정작 여시은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정말 곽승재에게 관심이 없는 걸까? 아니면 연기력이 뛰어난 걸까?’고은서는 그 진위를 가늠할 수 없었다.오후가 되어서야 일정이 마무리되었고 여시은은 곽승재에게 고은서를 데려다 줄 것을 부탁하며 그녀는 쿠아를 데리고 먼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퀸은 한없이 애교를 부렸다.고은서가 안고 있으면 자꾸만 얼굴에 몸을 부비며 애교를 부리는 탓에 마음이 무너져내린 고은서는 결국 곽승재의 차를 타기로 했다.가는 길에 고은서는 무심하게 곽승연의 근황을 물었다.‘호원 저택에 가 있긴 하지만 어머니가 자주 본가로 데리고 나와. 게다가 심리 상담도 받고 아로마 테라피도 병행하는 중이라 상태는 나쁘지 않아.’

  • 어게인, 비긴   제842화

    고은서는 어릴 적 드럼을 배우면서 자신만의 멋진 별명을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퀸이었다.예전에 곽승재를 쫓아다닐 때 재미 삼아 이 이야기를 그에게 한 적이 있었다.당시 곽승재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었다.‘갑자기 그 얘기를 꺼낸 걸 보면 기억하는 걸까?’그가 기억하든 말든 고은서는 굳이 확인할 생각이 없었다.“마음대로 해.”어차피 그 별명은 중2병 시절에 장난으로 붙인 거였고 이제는 고양이 이름으로 써도 나쁘지 않았다.고은서는 시선을 거두려다 뜻밖에도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했다.단아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서연정이었다.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그녀는 곽승연을 데리고 나오는 대신 오십 대쯤 되어 보이는 무테안경을 쓴 남자와 함께하고 있었다.남자는 세련되게 차려입었고 성숙한 남성 특유의 차분함이 느껴졌다.우연히 마주친 건지 일부러 약속을 잡은 건지 남자의 표정에는 은근한 기쁨이 묻어나 있었다.서연정이 등을 돌린 채 서 있어서 그녀의 표정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여자의 직감이 그 남자는 서연정의 구애자라고 말해주고 있었다.“왜 그래?”곽승재는 한참 동안 반응 없는 고은서를 보며 어디에 정신이 팔린 건지 궁금해했다.“곽승재!”곽승재가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고은서가 그를 불러 세웠다.곽승재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고은서는 두어 번 빠르게 눈을 깜빡이며 얼른 핑계를 지어냈다.“눈에 뭐가 들어간 것 같아. 좀 봐줄래?”그러면서 그녀는 동그랗게 눈을 크게 뜨고 곽승재에게 다가섰다.“어느 쪽?”“오른쪽!”곽승재는 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그 안에 물결이 일렁이는 듯했고 햇빛이 비치는 그녀의 하얀 얼굴은 가느다란 솜털까지 선명하게 드러냈다.연분홍빛 입술도 살짝 벌어져 있었는데 그 모습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곽승재는 갑자기 목이 바짝 말랐다.그는 무의식적으로 침을 삼키다 결국 참지 못하고 고은서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촉촉한 감촉이 입술에 닿자 고은서는 깜짝 놀라 곽승재를

  • 어게인, 비긴   제841화

    생각을 마친 고은서는 작게 숨을 들이마시고 품에 안고 있던 아기 고양이가 그녀의 손가락을 살짝 깨물어 놀란 척하며 곽승재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곽승재는 재빠르게 그녀를 붙잡았다.그는 그녀의 팔 부상이 아직 완전히 낫지 않은 걸 신경 쓰는 듯 먼저 팔을 지탱했다가 곧 허리 쪽으로 손을 옮겼다.옷을 사이에 두고도 그의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느껴졌다.코끝에는 익숙한 삼나무 향이 은은하게 스쳤다.고은서는 불쾌감을 참아내며 그릴 밀쳐내는 대신 오히려 그의 품에서 살짝 고개를 돌려 뒤쪽을 확인했다.하지만 여시은은 쿠아에게만 신경을 쓰며 조용히 무언가를 말하고 있을 뿐 두 사람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아, 망했다. 괜히 연기했네. 완전 헛수고잖아.”그 순간 곽승재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은서야, 손은 괜찮아?”그는 그녀의 손을 직접 잡아 올리며 상태를 확인했다.고은서는 자연스럽게 손을 빼내며 한 걸음 물러섰다.“괜찮아. 아기 고양이라 이가 아직 덜 자라서 가볍게 물렸을 뿐이야.”그렇게 말한 뒤 고은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쪽으로 걸어갔다.곽승재는 아무 말 없이 온기가 희미하게 남아 있는 손끝을 살짝 문지르고 천천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무대 쪽에는 행사 주최 측뿐만 아니라 고양이 사육 전문가들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곽승재는 워낙 유명한 인물인지라 이런 자리에서도 그를 알아본 몇몇 사람들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한편 고은서는 사육 전문가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쿠아가 심하게 낯을 가리는 문제가 떠올라 전문가에게 문의했다.전문가는 차분히 설명했다.“고양이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 다쳤다면 종종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어요. 이럴 땐 장난감과 간식을 준비해 주고 주인이 충분히 함께 시간을 보내 주면 서서히 나아질 겁니다.”장난감과 간식은 여시은이 충분히 준비해 둔 것으로 보였고 함께 있는 시간도 많아 보였다.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이어갔다.“그런데 다친 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깜짝 놀라거나 털을 세

  • 어게인, 비긴   제840화

    행사는 공원에서 진행됐다.이미 무대가 세워져 있었고 주변에는 다양한 게임 부스와 음료, 간식들이 마련되어 있었다.고양이 가방과 케이지 대여 서비스도 제공되고 있었다.고양이들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에서 고은서와 여시은은 쿠아를 안고 몇 장의 사진을 찍은 뒤 SNS에 게시했다.행사는 즐길 거리가 풍부하고 체계적이고 질서 있게 진행되고 있었다.고은서와 여시은은 고양이를 키우는 여러 친구와 교류하며 시간을 보냈다.또한 많은 고양이 아빠들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다른 사람들에게 안긴 고양이 혹은 기품 있어 보이거나 귀여워 보이는 고양이에 비해 쿠아는 평범한 축에 속했다. 어쩌면 이 행사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것 같았다.평범한 믹스묘인데 다쳐서 털도 완전히 자라지 않아 쿠아의 모습은 더욱 초라해 보였다.심지어 케이지에 있는 길고양이들보다도 평범해 보였다.하지만 여시은은 신경 쓰지 않았다.그녀는 피곤해 보이는 쿠아를 품에 안고 행사장을 둘러보았다.고은서는 그런 그녀를 따라다니면서도 은근히 주변을 살폈다.여시은에 대한 의심이 완전히 풀리기 전까지는 방심할 수 없었다.하지만 행사 내내 별다른 이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고 여시은은 그저 평소처럼 고양이를 구경하며 자연스럽게 행동했다.“어머나! 저 남자 좀 봐. 너무 잘생겼어.”그때 여자들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키도 크고 손도 예술이다! 저 손으로 머리 한 번 쓰다듬어주면 진짜 행복할 것 같아.”“그러니까 말이야! 저 남자가 들고 있는 케이지 속 고양이가 되고 싶다.”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가자 곽승재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그는 평소와 달리 짙은 회색 캐주얼 차림에 흰색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다.햇살이 그의 머리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아 그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한층 더 부드럽게 만들고 있었다.그의 손에는 고양이 케이지가 들려 있었는데 안에는 얼마 전 그가 입양한 새하얀 아기 고양이가 있었다.차가운 이상의 남자와 작고 보들보들한 새끼 고양이의 조합

  • 어게인, 비긴   제839화

    쿠아의 이마 한쪽에는 털이 빠져 있어 붉은 피부가 드러나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끔찍했다.전에는 부드럽고 포동포동했던 쿠아는 이제 털도 엉망이 되고 마른 데다 전보다 겁도 더 많아져 있었다.고은서가 손을 뻗자 쿠아는 긴장한 나머지 털을 바짝 세우고 낮게 경고하는 소리를 냈다.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입을 벌릴 때 보니 이가 하나 빠져 있었고 예전에 다쳤던 입가에는 흉터가 남아 있었다.그녀의 고양이는 아니었지만 고은서는 마음이 몹시 아팠다.“쿠아가 지난번에 떨어져 다친 이후로 점점 더 겁이 많아졌어요. 아무도 못 만지게 해요. 저도 좋아하는 간식을 많이 줘서야 겨우 가까이 갈 수 있었어요.”여시은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쿠아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래서 오늘은 바깥에 데리고 나와 기분 전환도 시키고 친구를 한 마리 골라주려고요. 그러면 덜 외롭지 않을까 해서요.”여시은의 손길에도 쿠아는 진정하지 못하고 계속 사납게 굴었다.여시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은서 씨, 일단 차에 타요. 차 안에 간식 있어요.”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차 안에서 쿠아에게 간식을 줘도 진정되지 않았고 계속 뒷자리로 물러나며 발톱을 날카롭게 세웠다.보다 못한 고은서가 말했다.“시은 씨, 제가 쿠아를 안고 있을 테니 직접 먹여볼래요?”여시은은 흔쾌히 수락했다.“좋아요.”쿠아를 조심스레 안아 무릎에 올릴 때 보니 쿠아는 예상보다 훨씬 가벼웠다.쿠아의 털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자 쿠아는 서서히 진정했고 한참 지나자 피곤했는지 눈도 감아버렸다.“은서 씨는 정말 인기가 많네요. 구애자도 많은데 쿠아까지 은서 씨를 좋아하네요.”여시은이 웃으며 말했다.고은서는 쿠아를 계속 쓰다듬으며 무심히 말했다.“시은 씨도 인기가 많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미 좋아하시는 분이 있으셔서 사람에게 신경을 안 쓰는 것뿐이겠죠.”여시은은 한순간 멍하니 있더니 이내 깔깔 웃었다.“은서 씨, 제가 했던 농담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어요? 저 좋아하는 사람 같은 거 없어요. 그때 은서

  • 어게인, 비긴   제838화

    “어떻게 알았어?”민시후가 조금 우쭐해하며 말을 이었다.“설마 내 일정 몰래 캐고 다니는 거야? 몰래 하지 않아도 돼. 비서에게 매일 일정을 너한테 보내라고 할게.”고은서는 참지 못하고 그를 노려보았다.“며칠 전 진 비서가 나한테 전화한 거 잊은 거야? 네가 하루하루 더 바빠져서 토요일에도 출장을 간다고 하더라.”“진 비서가 그런 것까지 너한테 말했어?”민시후는 불만스러운 듯했다.고은서는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네가 따로 시킨 게 아니라면 나한테 연락할 리가 있겠어?”들킨 민시후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ㄴ“나는 그렇게 자세히 말하라고 하진 않았어. 그냥 내가 빈둥거리는 게 아니라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만 전하라고 했다고.”고은서는 약간 야윈 듯한 민시후의 얼굴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넌 분명히 성공할 거야.”“은서야, 네가 그런 표정으로 나한테 얘기하면 나 발이 안 떨어져.”고은서는 말문이 막혔다....그 후 이틀 동안 고은서는 게임 회사 프로젝트를 챙기는 한편 동료들과 다른 실현 가능한 프로젝트들도 논의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회사에 운전기사 두 명을 고용했는데 두 사람은 운전 실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필요할 경우 보디가드 역할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고은서가 게임 회사 쪽에 도착해 보니 골목과 아파트 단지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고 보안 수준이 대폭 향상되어 있었다.“어떤 사람이 사비로 설치한 거예요.”게임 회사 직원이 설명했다.“이 낡은 아파트에는 관리자조차 없어서 CCTV 달아달라는 신청도 여러 번 했지만 계속 반려됐거든요. 다행히 이번에 누군가가 사비를 들여 설치해 줬어요. 아니었으면 기대도 못 했겠죠.”“사비를 들여서 이런 공익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요?”고은서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어떤 그룹 대표라고 하던데요? 성이 뭐더라, 곽이었나? 고였나? 그런 신분을 가진 사람들은 선행을 해도 이름을 남기거나 과시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더 신기해요.”고은서는 순간 멍해졌다.

  • 어게인, 비긴   제837화

    민시후의 의문에 고은서는 솔직하게 답했다.“여시은을 떠볼 기회를 찾고 싶어서.”“뭘 떠보고 싶은데?”고은서가 차분히 설명했다.“예전에 여시은이 나한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어. 그런데 해성에 온 지도 꽤 됐는데 그 사람을 만나러 간다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어.”보통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예전의 그녀가 곽승재에게 그랬듯이 그리고 지금의 민시후가 그녀에게 그러하듯이 하루라도 빨리 상대를 보고 싶어 했다.하지만 여시은은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면서도 전혀 초조하거나 그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좋아하는 사람에 관하여 얘기할 때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을 모르고 있다고 하기도 했다.“그래서 난 여시은이 곽승재와의 정략 결혼설을 막지 않는 이유가 두 가지일 거로 생각해.”고은서는 차분히 분석했다.“첫째, 여시은이 그 소문을 이용해 좋아하는 남자가 긴장하고 다가오도록 유도하는 것. 둘째는 여시은이 좋아하는 사람이 곽승재일 가능성이야.”처음 서운에서 만났을 때 여시은은 곽승재를 한눈에 알아봤다.여시은이 1년 전 어느 술자리에서 봤다고 했지만 곽승재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그에 반해 여시은은 술자리에서의 일을 너무나도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어쩌면 그때부터 곽승재에게 마음이 있었을지도 몰랐다.민시후는 고은서의 추측을 부정하는 대신 물었다.“너는 두 번째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는 거야?”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만약 여시은이 처음부터 곽승재를 좋아했다면 나를 경쟁자로 생각했을 거야. 그렇다면 여시은이 지금껏 보인 호의도 진심이 아닐 확률이 높지. 그리고 어젯밤 일도 여시은이 했을 확률이 더 높아지는 거지.”민시후는 그녀의 말을 듣고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다.“은서야, 너 말이야. 곽승재를 좋아할지도 모르는 여자에 관해 얘기하면서도 무척 덤덤해. 이제 정말 곽승재를 완전히 내려놓은 거야? 그렇다면 나한테도 기회가 있는 거잖아.”고은서는 민시후를 흘겨보며 말했다.“난 지금 사랑에는 관심이 없어. 돈 버는 데만 집중할

  • 어게인, 비긴   제836화

    민시후는 사무실 문을 닫고 고은서에게 말했다.“어젯밤 우리가 떠난 후 타이어 수리 업체가 현장에 도착했어. 업체 사람들은 예비 타이어로 교체한 후 차를 정비소로 가져갔어. 그런데 오늘 아침 확인해 보니 네 타이어 단순히 못이나 돌을 밟아서 찢어진 게 아니었어. 누군가 일부러 찔러 손상한 거야. 게다가 꽤 깊이 베였더라.”그 말을 들은 고은서가 미간을 찌푸렸다.‘그렇다면 어젯밤 그 사건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의 계획적인 행동이었다는 뜻인가?’먼저 그녀의 타이어를 망가뜨리고 두 떠돌이 남성이 꼭 지나칠 쓰레기통에 약을 탄 술과 음식을 배치했다. 고은서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약기운이 돌기 시작한 떠돌이들이 딱 맞춰 반응하도록 말이다.‘도대체 누가 이렇게까지 해서 나를 해치려고 하는 거지?’“타이어를 망가뜨린 사람 찾을 방법 있을까?”민시후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그 골목에는 CCTV가 없어. 뒤편은 전부 주택가라서 범인을 추적하기가 쉽지 않아.”“여시은 한번 조사해 보는 건 어때?”고은서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비록 아무런 증거도 없었지만 어젯밤 여시은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민시후는 그녀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은서야, 우리 정말 통하나 봐. 나도 여시은이 등장이 의심스러워서 사람 시켜 조사하고 있거든.”고은서가 민시후의 말에 답하기도 전에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화면에 뜬 여시은의 이름을 확인한 고은서가 민시후에게 핸드폰을 보여주며 말했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더니 이게 딱 그런 경우인가?’민시후가 콧방귀를 뀌었다.“대단한 배포네. 밖에서는 곽승재와 곧 정략결혼할 거라는 소문이 퍼졌는데도 너랑은 또 이렇게 친하게 지내는 걸 보면 말이야.”사실 고은서도 그 점이 이해되지 않았다.여시은은 줄곧 그녀에게 다정하게 대해 왔고 심지어 그녀와 곽승재를 이어주려고까지 했다.그러면서 곽승재와의 결혼설은 부정한 적이 없었다.여시은이 정말 원하지 않았다면 소문을 잠재울 방법은 얼마든지

  • 어게인, 비긴   제835화

    고은서뿐만 아니라 송민아와 송민준도 민시후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살짝 놀랐다.민시후는 그들의 시선을 느끼긴 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고은서에게 붉은 장미 꽃다발을 내밀었다.화려하고 싱싱한 장미를 보고 고은서는 어리둥절해졌다.“이게 뭐야?”민시후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말했다.“나 결심했어. 다시 은서 씨를 쫓아다닐 거야!”“은서 씨도 말했잖아, 어차피 1년 후에도 우리 가족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그럼 굳이 1년을 헛되이 보낼 필요 없잖아!”고은서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자신의 거절이 오히려 민시후를 더 자극할 줄은 몰랐다.그때, 송민준이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민아야, 차에 고객이 선물한 체리가 있던데 가져와서 다 같이 나눠 먹자.”송민아는 오빠의 의도를 금방 알아차렸다.굳이 말하지는 않았지만 송민준은 동생이 이 자리에 있는 게 불편할까 봐 배려해 준 것이다. 사실 ZY그룹에 있을 때도 민시후는 고은서에게 꽃다발을 준 적이 있었기에 송민아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시후가 과거에 송민아와 약혼했던 사람이라서, 이 자리가 확실히 어색했다.“알겠어.”송민아는 더 말하지 않고 사무실을 나갔다.여전히 장미를 들고 서 있던 민시후는 송민준을 발견하고 불쾌한 목소리로 물었다.“뭐야, 송 가주가 왜 또 여기 있는 거지?”송민준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민아를 보러 왔다가 마침 은서 씨랑 밖에서 만났어.”민시후는 관심 없다는 듯 다시 고은서에게 장미를 내밀었다.“장미가 마음에 안 들면 밑에 다른 꽃들도 준비해 놨으니까,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볼래?”고은서는 피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됐어.”이 꽃 한 다발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과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주목받고 싶지 않아 조용히 꽃을 받아들였다.“고마워. 하지만 다음부터는 이렇게 부담스럽게 하지 마.”민시후는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좋아하는 여자한테 꽃 선물하는 건 당연한 거야. 익숙해져야지!”그때 송민준이 의미심장한 미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