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차를 타면서 생수를 몇 병이나 마신 나는 새벽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 잠에서 깼다. 비몽사몽인 상태로 눈을 떠보니 아내는 옆에 없었다. 화장실에 갔다가 거실을 지나가는데 옆방에서 어두운 빨간색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집에는 나와 아내밖에 없었기에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정말 아내라면 이 늦은 밤에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안에서 듣기만 해도 얼굴이 뜨거워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바로 아내가 내는 신음이었다.나는 문틈으로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봤다. 아내는 옷을 벗은 채 손에 도구를 들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핸드폰은 나를 등지고 있어 뭘 보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나는 그런 아내를 보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서 있었다.화장실에서 돌아온 나는 침대에 누워 방금 봤던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며 자책했다. 아내의 수요를 만족시킬 수 없는 모자란 남편 때문에 아내가 이런다는 생각에 나는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아내는 나를 배신한 게 아니었다. 이에 나는 아내가 그런 행동을 보여도 원망할 생각이 없었다.반 시간쯤 지났을까, 화장실에서 들리던 물소리가 멈췄다. 나는 아내가 샤워를 마쳤다는 걸 알고 자는 척을 했다. 아내는 방으로 돌아와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고 나도 몸을 돌려 아내를 꼭 끌어안았다. 아내는 내 몸에 손을 대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지만 나는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다.이튿날 아침에 잠에서 깨보니 아내는 이미 옆에 없었다. 나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혹시나 엉켜 붙으며 잠자리를 요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밥을 먹고 나서 청소를 하고 있는데 쓰레기통에 버린 듀렉스 포장지가 눈에 들어왔다.‘이... 이게 왜 여기 있는 거지?’어젯밤 나와 아내는 관계를 가지지 않았고 나는 보름 동안 출장 나가 있었다. 게다가 나는 출장 가기 전에 쓰레기통을 비우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 쓰레기통에 누워있는 포장지를 보고 나는
아내는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 같았지만 애써 그렇지 않은 척 침착함을 유지했다. 나는 아내가 걷어 올린 바짓가랑이 아래로 무릎에 큰 멍이 들어있는 걸 발견했다.“여보, 앞으로 조심해. 다치잖아.”유진이 얼른 웃으며 말했다.“알았어요. 조심할게요.”나는 내가 아내를 오해했다고 생각했다. 본분을 잘 지키는 아내가 나를 배신할 리 없다고 생각했고 넘어가려 했다. 자꾸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미안하기도 했다. 아내를 만족시키지 못하면서 의심까지 하는 내가 못나 보였다.“여보, 나 샤워 좀.”아내가 헤벌쭉 웃으며 내 옆으로 지나갔다. 그때 나는 이상한 향기를 맡게 되었다. 일종의 고무 냄새였는데 나는 맡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그 냄새는 듀렉스 냄새 같았다.나는 아내가 나를 배신할 리 없다고 애써 자신을 위로하며 허튼 생각은 버리자고 다짐했다. 그때 샤워하던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여보, 올라오다가 소시지 좀 사 왔는데 점심에 구워줄게.”“고마워. 여보. 하지만 나는 회사 나가봐야 해. 출장 다녀온 거 아직 회사에 얘기하지 않았거든. 점심은 집에서 못 먹을 것 같아.”나는 이렇게 말하며 현관문을 열었다.“알았어. 여보. 그러면 저녁에 구워줄게.”회사에 도착한 나는 출장 보고서를 대표인 공진우에게 보고하려 했다. 하지만 내 보고가 끝나기도 전에 공진우가 인내심을 잃고 이렇게 말했다.“황인호 씨, 내일 다른 건으로 출장 좀 가야겠어요.”나는 넋을 잃었다. 이제 막 출장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또 나가라고 하니 화가 치밀어올라 속으로 대표를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욕했지만 늘 그렇듯 월급쟁이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내가 살짝 망설이자 공진우가 말을 이어갔다.“대신에 이번 달 월급은 두 배로 드리죠.”이 말에 나는 얼른 이렇게 대답했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임무도 잘 마치고 오겠습니다.”“오늘까지만 쉬고 내일 출발하게 해주십시오.”공진우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몸을 돌려 사무실에 나가려는데 공진우의 핸드폰이 울리는
‘대표님이랑 채팅하던 사람은 다른 사람인가?’아내의 핸드폰을 다시 내려놓으려는데 갑자기 ‘띠링’하는 소리가 두 번 들렸다. 그리고 이내 아내의 핸드폰에 카톡 알림이 떴다. 분명 누군가 아내에게 문자를 보내왔지만 나는 시스템에서 그 문자를 찾을 수가 없었다.설정으로 들어가 확인해 보니 아내의 핸드폰에는 시스템이 두 개 깔려 있었다. 다른 시스템으로 전환한 나는 드디어 안에서 비밀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 시스템에 저장된 대화 상대는 대표 공진우뿐이었다.아내와 공진우는 5년 전부터 시작된 관계였다. 5년 전이라면 아직 아내를 만나기 전이었다. 나는 두 사람의 대화에서 아내가 공진우의 내연녀였음을 알게 되었다. 공진우는 이러다 아내가 내연녀라는 사실이 밝혀질까 봐 서둘러 나를 소개해 준 것이었다. 게다가 아내는 나와 결혼할 때 이미 임신 중이었다.여기까지 확인한 나는 걷잡을 수 없는 화가 치밀어올랐다. 아내가 왜 그렇게 쉽게 넘어왔는지 알 것 같았다. 배가 불러오면 내가 의심할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 게다가 대표란 놈은 내가 힘들게 밖에서 주문을 받아오는 동안 뒤에서 내 아내와 붙어먹었다. 나는 절대 이 연놈을 봐줄 생각이 없었다.그렇게 채팅 기록을 뒤지다가 어젯밤에 나눈 대화를 보게 되었다. 순간 나는 걷잡을 수 없는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어젯밤 아내는 그런 유형의 영화를 보면서 욕구를 해소한 게 아니라 대표 놈과 페이스톡을 나누며 서로 욕구를 해소한 것이었다.게다가 공진우가 아내에게 욕구를 해소하고 남은 소시지를 내게 구워주라고 한 문자를 보고는 너무 속이 메슥거려 화장실로 달려가 한 시간 토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해도 해도 너무한 이 연놈을 내 손으로 처단하고 싶었다.마지막 문자까지 확인한 나는 내가 요즘 그 일에 맥을 못 추는 원인을 찾아냈다. 몇 년 전부터 대표 놈은 아내와 짜고 내가 아내에게 손을 대지 못하게 내 몸을 망가트리고 있었다. 대표 놈은 아내를 독점하기 위해 아내에게 식사를 준비할 때 내가 먹는 음식에 ‘달걀가루’를
나는 아내가 집에 없는 틈을 타 집으로 돌아가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리고 그 ‘달걀가루’를 전문 기관에 감정 의뢰했다. 감정 보고서를 손에 넣어야만 아내가 나를 해쳤다는 증거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관계가 깨진 이상 이제 더 봐줄 체면도 없었다.근처 호텔에 방을 잡은 나는 대표 놈의 아내인 서유리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유리는 회사에서 재무로 일하고 있었다. 공진우가 내 아내와 얼마나 몸을 섞었는데 서유리가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요즘 월급을 받을 때마다 카드에 예정된 금액보다 더 입금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실수로 입금했다고 생각했는데 연속 3달째 같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매번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재무에 영수증 처리하러 가면 서유리는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다른 사람은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만 영수증 처리가 가능했지만 나는 단번에 처리할 수 있었다.서유리가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만약 정말 그런 거라면 일이 쉬워진다.“여보세요? 인호 씨? 무슨 일이에요?”대표 놈은 거의 쉰 살이 되지만 대표 놈의 아내인 서유리는 나와 같은 또래였다. 회사에서 나는 서유리를 형수님이라고 불렀고 서유리는 나를 직급으로 불렀기에 이렇게 바로 이름을 부를 줄은 몰랐다.“유리 씨, 내 아내와 유리 씨 남편이 붙어먹은 거 유리 씨도 알고 있죠?”나는 굳이 에둘러 말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전화한 이유를 밝혔다. 서유리가 잠깐 뜸 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잠깐만요. 자리를 옮겨서 얘기하는 게 좋겠네요.”“어디예요? 지금 그쪽으로 갈게요.”나는 서유리에게 호텔 주소를 보내주고 그녀가 올 때까지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집에 설치한 감시 카메라가 생각나 얼른 어플을 켜봤다. 어플을 켜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가슴이 훤히 보이는 원피스를 입은 아내였다. 길고 풍만한 다리에는 누드 색 스타킹에 하얀 하이힐을 신고 있었는데 스타킹 사이로 핑크빛 발가락이 보일락 말락 했다. 이런 몸매에 끔뻑 죽지 않을 남자는 없을 것
서유리는 초록색 슈트를 입고 까만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뭐 하고 있었길래 초인종도 못 들은 거예요? 얼마나 오래 누르고 있었는데.”나는 핸드폰을 서유리에게 건네줬지만 서유리는 보고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남편이 외도하는데 이렇게 덤덤하다고요?”“이제 놀랍지도 않아요.”서유리가 차갑게 대답했다. 아마 남편이 배신한 사실을 진작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핸드폰에서 아내의 흥분에 겨운 신음이 끝도 없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 내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서유리가 뿜어내는 커리어우먼의 카리스마에 설레기도 했다.서유리가 나를 보면서 웃었다.“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어요. 얼른 와이프에게 전화해서 반응 떠봐야죠.”“지금요?”내가 물었다.지금 전화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비록 아내가 나를 배신하긴 했어도 말이다.“네. 지금 바로 해요.”“그래요.”나는 서유리의 말대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창 흥에 젖어있는 아내를 방해하기 싫었지만 말이다. 아내는 언짢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어 전화한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더니 바로 끊어버렸다.“안 받아요.”“계속 해요.”서유리의 말투는 어딘가 강압적이었다. 원래는 대책을 상의하고 싶어서 불렀지만 지금은 오히려 야릇한 영화를 같이 감상하고 있는 꼴이 되었다.다시 전화를 걸어도 아내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대표 놈이 동작을 멈췄다.“지니야, 누구야?”“신경 쓸 거 없어. 남편이야.”아내의 말에 대표 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웃었다.“남편인데 왜 안 받아?”“하던 거 계속하면서 남편이랑 통화하면 더 짜릿하지 않겠어?”나는 속으로 대표 놈을 변태 X끼라고 욕해댔다. 처음 걸었던 전화처럼 두 번째 전화도 받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내가 대표 놈의 실력을 얕잡아본 것이었다. 아내가 정말 대표 놈의 지시에 따라 전화를 받고야 말았다.“여... 보. 무슨 일이야?”아내의 목소리가 뚝뚝 끊겼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유진아, 지금 뭐 해?”나는 아내가 뭐 하고
한창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누구예요?”서유리가 물었다.“유진이요. 갑자기 왜 전화하는지 모르겠네요.”“받아야죠.”서유리가 재촉했다. 나는 타이밍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서유리가 시키는 대로 받았다.“여보, 무슨 일로 전화했어?”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여... 여보. 아까 뭐 하고 있냐고 물었잖아. 근데 방금 그거 무슨 소리야?”아내가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서유리가 신음하자 나는 얼른 서유리의 입을 틀어막았다. 일부러 아내가 들으라고 낸 소리였다.“아무것도 아니야. 아까 누군가 내 옆에서 계단 탔어.”나는 얼른 이렇게 둘러댔다.“아, 그랬구나. 그냥 사실대로 말할게. 나 방금 당신 회사 대표랑 잤어.”아내가 스스럼없이 모든 걸 내게 털어놓았다.“유진아, 네가 어떻게 나를 배신해?”나는 일부러 화난 척 연기했다.“인호야, 우리 이혼하자. 너 몸도 안 좋고 돈도 쥐꼬리만큼 벌잖아. 너랑 살면서 나 고생 많이 했어...”유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전화를 끊었다. 나를 배신해 놓고 내가 꺼내기도 전에 먼저 이혼하자고 한 것이다. 도대체 대표 놈의 어디가 좋아서 그러는 건지 알 수 없었다.나는 감시 카메라로 유진이 대표 놈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시키는 대로 다 했어. 약속 지킬 거지?”전투를 끝낸 두 사람은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누워 있었다.“지니야, 걱정하지 마.”대표 놈이 유진의 어깨를 꼭 끌어안고 말했다.“별장도 다 사놨어.”대표 놈이 가자 나는 어플에서 나왔다. 서유리와 나의 전투는 이제 막 시작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서야 나와 서유리의 전투도 마침내 막을 내렸다. 방에서 나가기 전 서유리가 이렇게 물었다.“인호 씨, 나랑 결혼할 거예요?”나는 서유리가 이런 질문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저 두 연놈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나와 몸을 섞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혼 얘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 나는 서유리도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유리 씨, 나
유진이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내가 너를 너무 얕잡아봤네.”“처음부터 나 감시했던 거야? 나 사람 보는 눈이 없어도 너무 없네.”“잔말 말고 1억 내놔. 아니면 이혼 협상의 여지 없어.”“그리고 네가 소송에 휘말리는 걸 공진우가 보고 싶어 할까?”“비겁한 자식.”유진이 욕설을 퍼붓더니 당장 1억을 내 계좌에 이체했다. 나는 미련 없이 이혼 서류에 사인했다. 어차피 더는 이어갈 수 없는 관계였다. 유진은 내가 이혼 서류에 사인하자 비꼬기 시작했다.“황인호, 나를 이렇게 대한 걸 후회하게 될 거야.”“곧 회사에서 해고 통지 날아오겠지.”진작 그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던 터라 잘려도 전혀 타격이 없었다. 게다가 이미 많은 인맥을 쌓아둔 터라 잘린다고 해도 무서울 건 없었다.이튿날, 내가 회사로 출근하자 대표 놈이 사무실로 불렀다. 왜 출장 가서 하라고 한 일을 제대로 완성하지 않았는지 묻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웃겨 되물었다.“공진우, 내가 왜 완성하지 않았는지 정말 몰라?”“나 출장 보낼 때마다 우리 집으로 기어들어 와서 내 와이프랑 붙어먹었지?”공진우가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느긋하게 말했다.“그 말이 맞다고 한들 네가 뭘 할 수 있는데?”“그리고 너 오늘부로 잘렸어. 인사팀에서 바로 공고 올릴 거야.”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채팅방에 내가 잘렸다는 소식이 퍼졌다. 공지에는 회사 인감도장도 찍혀 있었다.나는 그 공지를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원래도 미련이 없는 회사라 거의 타격이 없었다. 나는 난리를 피우는 대신 공지를 핸드폰에 저장했다.‘나를 해고한다 이거지? 내가 이대로 나갈 것 같아?’공진우는 내가 노동 법규를 모르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 법규의 매 조항을 마음에 새기다시피 정독한 상태였다. 이 공지를 들고 법원에 찾아가 회사가 아무 이유 없이 해고했다고 고소하면 공진우는 어쩔 수 없이 배상해야 할 것이다.법원의 효율은 생각보다 빨랐다. 내가 회사에서 나온 지 3일 만에 경제적인 보상
유진이 고개를 저었다.“아니, 서유리가 회사의 대부분 재산을 가져갔어. 사업에 실패한 공진우는 다 나 때문이라면서 헤어지자고 했고.”이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것 같았다.유진이 내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인호야, 나 아직 사랑하는 거 알아. 맞지?”“내가 잘못했어.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안 돼? 나 용서해줄 거지?”나는 유진을 밀어냈다.“유진아. 나도 아무 사람이나 다 되는 건 아니야.”“이제 가. 더는 너 욕하고 싶지 않다. 우린 끝났어.”“아니야. 인호야. 나 이제 갈 데가 없어. 뱃속에 공진우 아이가 있는데 누가 나를 만나주겠어.”나는 유진의 말이 너무 우스워 헛웃음이 나갔다.“만나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다시 온 거야?”“그래. 유진아. 네 말이 맞아. 나 아직 너 사랑해. 이 1,000만 원은 일단 넣어둬.”“다시 돌아와 주다니 너무 고맙다.”“일단 몸조리 좀 하고 있어. 본가에 좀 다녀올게.”나는 유진이 지낼 수 있게 근처에 집까지 얻어줬다.“빨리 와야 해. 기다리고 있을게.”한 달 후, 유진이 사진을 한 장 보내오며 임신 4개월임을 알렸다. 나는 그 문자를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4개월이 된 이상 중절 수술은 불가능했다.나는 유진의 카톡을 차단하고 모든 연락처를 지웠다. 같은 곳에 두 번 넘어질 생각은 없었다. 이제 유진에 대한 복수는 끝났다. 유진과의 악연을 철저히 잘라냈다는 생각에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그날 나는 동료들을 모아놓고 술을 마셨다. 그때 아름다운 여자 한 명이 내 뒤에 자리를 잡는 게 보였지만 나는 알지 못했다. 동료들이 내게 눈을 찡긋거리며 뒤를 한 번 보라고 눈짓했다. 뒤를 돌아보니 서유리가 어느새 내 뒤에 서 있었다. 오랜만에 본 서유리는 예전보다 더 매혹적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룸에서 나왔다.“요즘 잘 지내요?”서유리가 물었다. 말투에서 다소 거리감이 느껴졌다.“그럭저럭요. 근데 여기는 어쩐 일로 왔어요?”내가 물었다.“밥 먹다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길래
유진이 고개를 저었다.“아니, 서유리가 회사의 대부분 재산을 가져갔어. 사업에 실패한 공진우는 다 나 때문이라면서 헤어지자고 했고.”이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것 같았다.유진이 내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인호야, 나 아직 사랑하는 거 알아. 맞지?”“내가 잘못했어.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안 돼? 나 용서해줄 거지?”나는 유진을 밀어냈다.“유진아. 나도 아무 사람이나 다 되는 건 아니야.”“이제 가. 더는 너 욕하고 싶지 않다. 우린 끝났어.”“아니야. 인호야. 나 이제 갈 데가 없어. 뱃속에 공진우 아이가 있는데 누가 나를 만나주겠어.”나는 유진의 말이 너무 우스워 헛웃음이 나갔다.“만나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다시 온 거야?”“그래. 유진아. 네 말이 맞아. 나 아직 너 사랑해. 이 1,000만 원은 일단 넣어둬.”“다시 돌아와 주다니 너무 고맙다.”“일단 몸조리 좀 하고 있어. 본가에 좀 다녀올게.”나는 유진이 지낼 수 있게 근처에 집까지 얻어줬다.“빨리 와야 해. 기다리고 있을게.”한 달 후, 유진이 사진을 한 장 보내오며 임신 4개월임을 알렸다. 나는 그 문자를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4개월이 된 이상 중절 수술은 불가능했다.나는 유진의 카톡을 차단하고 모든 연락처를 지웠다. 같은 곳에 두 번 넘어질 생각은 없었다. 이제 유진에 대한 복수는 끝났다. 유진과의 악연을 철저히 잘라냈다는 생각에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그날 나는 동료들을 모아놓고 술을 마셨다. 그때 아름다운 여자 한 명이 내 뒤에 자리를 잡는 게 보였지만 나는 알지 못했다. 동료들이 내게 눈을 찡긋거리며 뒤를 한 번 보라고 눈짓했다. 뒤를 돌아보니 서유리가 어느새 내 뒤에 서 있었다. 오랜만에 본 서유리는 예전보다 더 매혹적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룸에서 나왔다.“요즘 잘 지내요?”서유리가 물었다. 말투에서 다소 거리감이 느껴졌다.“그럭저럭요. 근데 여기는 어쩐 일로 왔어요?”내가 물었다.“밥 먹다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길래
유진이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내가 너를 너무 얕잡아봤네.”“처음부터 나 감시했던 거야? 나 사람 보는 눈이 없어도 너무 없네.”“잔말 말고 1억 내놔. 아니면 이혼 협상의 여지 없어.”“그리고 네가 소송에 휘말리는 걸 공진우가 보고 싶어 할까?”“비겁한 자식.”유진이 욕설을 퍼붓더니 당장 1억을 내 계좌에 이체했다. 나는 미련 없이 이혼 서류에 사인했다. 어차피 더는 이어갈 수 없는 관계였다. 유진은 내가 이혼 서류에 사인하자 비꼬기 시작했다.“황인호, 나를 이렇게 대한 걸 후회하게 될 거야.”“곧 회사에서 해고 통지 날아오겠지.”진작 그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던 터라 잘려도 전혀 타격이 없었다. 게다가 이미 많은 인맥을 쌓아둔 터라 잘린다고 해도 무서울 건 없었다.이튿날, 내가 회사로 출근하자 대표 놈이 사무실로 불렀다. 왜 출장 가서 하라고 한 일을 제대로 완성하지 않았는지 묻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웃겨 되물었다.“공진우, 내가 왜 완성하지 않았는지 정말 몰라?”“나 출장 보낼 때마다 우리 집으로 기어들어 와서 내 와이프랑 붙어먹었지?”공진우가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느긋하게 말했다.“그 말이 맞다고 한들 네가 뭘 할 수 있는데?”“그리고 너 오늘부로 잘렸어. 인사팀에서 바로 공고 올릴 거야.”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채팅방에 내가 잘렸다는 소식이 퍼졌다. 공지에는 회사 인감도장도 찍혀 있었다.나는 그 공지를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원래도 미련이 없는 회사라 거의 타격이 없었다. 나는 난리를 피우는 대신 공지를 핸드폰에 저장했다.‘나를 해고한다 이거지? 내가 이대로 나갈 것 같아?’공진우는 내가 노동 법규를 모르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 법규의 매 조항을 마음에 새기다시피 정독한 상태였다. 이 공지를 들고 법원에 찾아가 회사가 아무 이유 없이 해고했다고 고소하면 공진우는 어쩔 수 없이 배상해야 할 것이다.법원의 효율은 생각보다 빨랐다. 내가 회사에서 나온 지 3일 만에 경제적인 보상
한창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누구예요?”서유리가 물었다.“유진이요. 갑자기 왜 전화하는지 모르겠네요.”“받아야죠.”서유리가 재촉했다. 나는 타이밍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서유리가 시키는 대로 받았다.“여보, 무슨 일로 전화했어?”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여... 여보. 아까 뭐 하고 있냐고 물었잖아. 근데 방금 그거 무슨 소리야?”아내가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서유리가 신음하자 나는 얼른 서유리의 입을 틀어막았다. 일부러 아내가 들으라고 낸 소리였다.“아무것도 아니야. 아까 누군가 내 옆에서 계단 탔어.”나는 얼른 이렇게 둘러댔다.“아, 그랬구나. 그냥 사실대로 말할게. 나 방금 당신 회사 대표랑 잤어.”아내가 스스럼없이 모든 걸 내게 털어놓았다.“유진아, 네가 어떻게 나를 배신해?”나는 일부러 화난 척 연기했다.“인호야, 우리 이혼하자. 너 몸도 안 좋고 돈도 쥐꼬리만큼 벌잖아. 너랑 살면서 나 고생 많이 했어...”유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전화를 끊었다. 나를 배신해 놓고 내가 꺼내기도 전에 먼저 이혼하자고 한 것이다. 도대체 대표 놈의 어디가 좋아서 그러는 건지 알 수 없었다.나는 감시 카메라로 유진이 대표 놈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시키는 대로 다 했어. 약속 지킬 거지?”전투를 끝낸 두 사람은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누워 있었다.“지니야, 걱정하지 마.”대표 놈이 유진의 어깨를 꼭 끌어안고 말했다.“별장도 다 사놨어.”대표 놈이 가자 나는 어플에서 나왔다. 서유리와 나의 전투는 이제 막 시작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서야 나와 서유리의 전투도 마침내 막을 내렸다. 방에서 나가기 전 서유리가 이렇게 물었다.“인호 씨, 나랑 결혼할 거예요?”나는 서유리가 이런 질문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저 두 연놈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나와 몸을 섞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혼 얘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 나는 서유리도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유리 씨, 나
서유리는 초록색 슈트를 입고 까만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뭐 하고 있었길래 초인종도 못 들은 거예요? 얼마나 오래 누르고 있었는데.”나는 핸드폰을 서유리에게 건네줬지만 서유리는 보고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남편이 외도하는데 이렇게 덤덤하다고요?”“이제 놀랍지도 않아요.”서유리가 차갑게 대답했다. 아마 남편이 배신한 사실을 진작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핸드폰에서 아내의 흥분에 겨운 신음이 끝도 없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 내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서유리가 뿜어내는 커리어우먼의 카리스마에 설레기도 했다.서유리가 나를 보면서 웃었다.“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어요. 얼른 와이프에게 전화해서 반응 떠봐야죠.”“지금요?”내가 물었다.지금 전화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비록 아내가 나를 배신하긴 했어도 말이다.“네. 지금 바로 해요.”“그래요.”나는 서유리의 말대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창 흥에 젖어있는 아내를 방해하기 싫었지만 말이다. 아내는 언짢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어 전화한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더니 바로 끊어버렸다.“안 받아요.”“계속 해요.”서유리의 말투는 어딘가 강압적이었다. 원래는 대책을 상의하고 싶어서 불렀지만 지금은 오히려 야릇한 영화를 같이 감상하고 있는 꼴이 되었다.다시 전화를 걸어도 아내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대표 놈이 동작을 멈췄다.“지니야, 누구야?”“신경 쓸 거 없어. 남편이야.”아내의 말에 대표 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웃었다.“남편인데 왜 안 받아?”“하던 거 계속하면서 남편이랑 통화하면 더 짜릿하지 않겠어?”나는 속으로 대표 놈을 변태 X끼라고 욕해댔다. 처음 걸었던 전화처럼 두 번째 전화도 받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내가 대표 놈의 실력을 얕잡아본 것이었다. 아내가 정말 대표 놈의 지시에 따라 전화를 받고야 말았다.“여... 보. 무슨 일이야?”아내의 목소리가 뚝뚝 끊겼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유진아, 지금 뭐 해?”나는 아내가 뭐 하고
나는 아내가 집에 없는 틈을 타 집으로 돌아가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리고 그 ‘달걀가루’를 전문 기관에 감정 의뢰했다. 감정 보고서를 손에 넣어야만 아내가 나를 해쳤다는 증거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관계가 깨진 이상 이제 더 봐줄 체면도 없었다.근처 호텔에 방을 잡은 나는 대표 놈의 아내인 서유리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유리는 회사에서 재무로 일하고 있었다. 공진우가 내 아내와 얼마나 몸을 섞었는데 서유리가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요즘 월급을 받을 때마다 카드에 예정된 금액보다 더 입금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실수로 입금했다고 생각했는데 연속 3달째 같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매번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재무에 영수증 처리하러 가면 서유리는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다른 사람은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만 영수증 처리가 가능했지만 나는 단번에 처리할 수 있었다.서유리가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만약 정말 그런 거라면 일이 쉬워진다.“여보세요? 인호 씨? 무슨 일이에요?”대표 놈은 거의 쉰 살이 되지만 대표 놈의 아내인 서유리는 나와 같은 또래였다. 회사에서 나는 서유리를 형수님이라고 불렀고 서유리는 나를 직급으로 불렀기에 이렇게 바로 이름을 부를 줄은 몰랐다.“유리 씨, 내 아내와 유리 씨 남편이 붙어먹은 거 유리 씨도 알고 있죠?”나는 굳이 에둘러 말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전화한 이유를 밝혔다. 서유리가 잠깐 뜸 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잠깐만요. 자리를 옮겨서 얘기하는 게 좋겠네요.”“어디예요? 지금 그쪽으로 갈게요.”나는 서유리에게 호텔 주소를 보내주고 그녀가 올 때까지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집에 설치한 감시 카메라가 생각나 얼른 어플을 켜봤다. 어플을 켜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가슴이 훤히 보이는 원피스를 입은 아내였다. 길고 풍만한 다리에는 누드 색 스타킹에 하얀 하이힐을 신고 있었는데 스타킹 사이로 핑크빛 발가락이 보일락 말락 했다. 이런 몸매에 끔뻑 죽지 않을 남자는 없을 것
‘대표님이랑 채팅하던 사람은 다른 사람인가?’아내의 핸드폰을 다시 내려놓으려는데 갑자기 ‘띠링’하는 소리가 두 번 들렸다. 그리고 이내 아내의 핸드폰에 카톡 알림이 떴다. 분명 누군가 아내에게 문자를 보내왔지만 나는 시스템에서 그 문자를 찾을 수가 없었다.설정으로 들어가 확인해 보니 아내의 핸드폰에는 시스템이 두 개 깔려 있었다. 다른 시스템으로 전환한 나는 드디어 안에서 비밀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 시스템에 저장된 대화 상대는 대표 공진우뿐이었다.아내와 공진우는 5년 전부터 시작된 관계였다. 5년 전이라면 아직 아내를 만나기 전이었다. 나는 두 사람의 대화에서 아내가 공진우의 내연녀였음을 알게 되었다. 공진우는 이러다 아내가 내연녀라는 사실이 밝혀질까 봐 서둘러 나를 소개해 준 것이었다. 게다가 아내는 나와 결혼할 때 이미 임신 중이었다.여기까지 확인한 나는 걷잡을 수 없는 화가 치밀어올랐다. 아내가 왜 그렇게 쉽게 넘어왔는지 알 것 같았다. 배가 불러오면 내가 의심할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 게다가 대표란 놈은 내가 힘들게 밖에서 주문을 받아오는 동안 뒤에서 내 아내와 붙어먹었다. 나는 절대 이 연놈을 봐줄 생각이 없었다.그렇게 채팅 기록을 뒤지다가 어젯밤에 나눈 대화를 보게 되었다. 순간 나는 걷잡을 수 없는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어젯밤 아내는 그런 유형의 영화를 보면서 욕구를 해소한 게 아니라 대표 놈과 페이스톡을 나누며 서로 욕구를 해소한 것이었다.게다가 공진우가 아내에게 욕구를 해소하고 남은 소시지를 내게 구워주라고 한 문자를 보고는 너무 속이 메슥거려 화장실로 달려가 한 시간 토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해도 해도 너무한 이 연놈을 내 손으로 처단하고 싶었다.마지막 문자까지 확인한 나는 내가 요즘 그 일에 맥을 못 추는 원인을 찾아냈다. 몇 년 전부터 대표 놈은 아내와 짜고 내가 아내에게 손을 대지 못하게 내 몸을 망가트리고 있었다. 대표 놈은 아내를 독점하기 위해 아내에게 식사를 준비할 때 내가 먹는 음식에 ‘달걀가루’를
아내는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 같았지만 애써 그렇지 않은 척 침착함을 유지했다. 나는 아내가 걷어 올린 바짓가랑이 아래로 무릎에 큰 멍이 들어있는 걸 발견했다.“여보, 앞으로 조심해. 다치잖아.”유진이 얼른 웃으며 말했다.“알았어요. 조심할게요.”나는 내가 아내를 오해했다고 생각했다. 본분을 잘 지키는 아내가 나를 배신할 리 없다고 생각했고 넘어가려 했다. 자꾸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미안하기도 했다. 아내를 만족시키지 못하면서 의심까지 하는 내가 못나 보였다.“여보, 나 샤워 좀.”아내가 헤벌쭉 웃으며 내 옆으로 지나갔다. 그때 나는 이상한 향기를 맡게 되었다. 일종의 고무 냄새였는데 나는 맡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그 냄새는 듀렉스 냄새 같았다.나는 아내가 나를 배신할 리 없다고 애써 자신을 위로하며 허튼 생각은 버리자고 다짐했다. 그때 샤워하던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여보, 올라오다가 소시지 좀 사 왔는데 점심에 구워줄게.”“고마워. 여보. 하지만 나는 회사 나가봐야 해. 출장 다녀온 거 아직 회사에 얘기하지 않았거든. 점심은 집에서 못 먹을 것 같아.”나는 이렇게 말하며 현관문을 열었다.“알았어. 여보. 그러면 저녁에 구워줄게.”회사에 도착한 나는 출장 보고서를 대표인 공진우에게 보고하려 했다. 하지만 내 보고가 끝나기도 전에 공진우가 인내심을 잃고 이렇게 말했다.“황인호 씨, 내일 다른 건으로 출장 좀 가야겠어요.”나는 넋을 잃었다. 이제 막 출장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또 나가라고 하니 화가 치밀어올라 속으로 대표를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욕했지만 늘 그렇듯 월급쟁이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내가 살짝 망설이자 공진우가 말을 이어갔다.“대신에 이번 달 월급은 두 배로 드리죠.”이 말에 나는 얼른 이렇게 대답했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임무도 잘 마치고 오겠습니다.”“오늘까지만 쉬고 내일 출발하게 해주십시오.”공진우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몸을 돌려 사무실에 나가려는데 공진우의 핸드폰이 울리는
낮에 차를 타면서 생수를 몇 병이나 마신 나는 새벽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 잠에서 깼다. 비몽사몽인 상태로 눈을 떠보니 아내는 옆에 없었다. 화장실에 갔다가 거실을 지나가는데 옆방에서 어두운 빨간색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집에는 나와 아내밖에 없었기에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정말 아내라면 이 늦은 밤에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안에서 듣기만 해도 얼굴이 뜨거워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바로 아내가 내는 신음이었다.나는 문틈으로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봤다. 아내는 옷을 벗은 채 손에 도구를 들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핸드폰은 나를 등지고 있어 뭘 보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나는 그런 아내를 보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서 있었다.화장실에서 돌아온 나는 침대에 누워 방금 봤던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며 자책했다. 아내의 수요를 만족시킬 수 없는 모자란 남편 때문에 아내가 이런다는 생각에 나는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아내는 나를 배신한 게 아니었다. 이에 나는 아내가 그런 행동을 보여도 원망할 생각이 없었다.반 시간쯤 지났을까, 화장실에서 들리던 물소리가 멈췄다. 나는 아내가 샤워를 마쳤다는 걸 알고 자는 척을 했다. 아내는 방으로 돌아와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고 나도 몸을 돌려 아내를 꼭 끌어안았다. 아내는 내 몸에 손을 대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지만 나는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다.이튿날 아침에 잠에서 깨보니 아내는 이미 옆에 없었다. 나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혹시나 엉켜 붙으며 잠자리를 요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밥을 먹고 나서 청소를 하고 있는데 쓰레기통에 버린 듀렉스 포장지가 눈에 들어왔다.‘이... 이게 왜 여기 있는 거지?’어젯밤 나와 아내는 관계를 가지지 않았고 나는 보름 동안 출장 나가 있었다. 게다가 나는 출장 가기 전에 쓰레기통을 비우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 쓰레기통에 누워있는 포장지를 보고 나는
나는 황인호, 회사원인 나는 한 달의 대부분 시간을 출장 나가 있었다. 이번에도 보름 정도 나가라는 지시를 받고 그저 한숨만 푹 내쉬었다. 말단 사원이라 직접 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보름이 지나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저번과 달라진 게 있다면 아내에게 돌아간다고 미리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나타나 서프라이즈 해주고 싶었다.내 아내의 이름은 유진, 예전에는 같은 회사에서 출근했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전업 주부로 전향하고 내 월급으로 생활했다. 그래도 나는 전혀 원망한 적이 없었다. 그만큼 아내를 사랑했기 때문이다.문을 열고 몰래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내는 등을 돌린 채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몸에는 비단 가운과 짧은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봉곳한 엉덩이와 뽀얀 다리, 아내와 결혼한 지 몇 년이나 됐지만 이런 모습을 보니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내 눈에 제일 아름다운 여자는 여전히 아내였고 몇 년 동안 변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보름이나 출장 나가 있으면서 매일 밤 아내를 그리워하며 솟구쳐 올라오는 욕구를 꾹꾹 참아왔던지라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모습에 더는 충동을 참지 못하고 뒤에서 아내를 꼭 끌어안았다. 아내의 말캉한 엉덩이가 내 몸에 닿자 충동을 해소하는 듯한 쾌감이 내 영혼을 잠식했다. 하지만 아내를 안자마자 아내가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화상, 먹을 복은 있다니까.”이 말에 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결혼하고 나서 지금까지 아내는 나를 이렇게 불러본 적이 없었다. 나는 혹시 잘못 들은 게 아닌지 싶어 얼른 다시 물었다.“여보, 방금 뭐라고? 화상은 누구야?”이 말에 나는 아내의 몸이 파르르 떨리는 걸 느꼈다. 아내는 몸을 돌리더니 나를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여... 여보, 어쩌다 벌써 돌아온 거예요?”아내의 반응에 나는 그 화상이 나는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보름 동안 혹시 나를 배신한 게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유진아, 아까 뭐라고 부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