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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Author: 온완유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2-24 14:27:50
은하는 아무런 표정 없이 옷을 갈아입고, 씻고 나와 문을 나서기 직전 입을 열었다.

“오늘 밤에도 내가 잠결에 침대로 올라오면, 나를 침대에서 발로 차서 떨어뜨려 주세요. 그래도 싸니까요.”

그녀는 ‘그래도 싸’다는 말에 힘을 주어 말한 뒤, 바로 자리를 떠났다.

아래층에서는 장예정이 아침 식사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뒤, 은하는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섰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다른 직원들이 자신을 보는 눈빛이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무슨 일 있어요?”

은하는 자신의 자리로 가 앉으면서, 출장에서 돌아온 강유리가 옆자리에 앉아 있는 걸 보고 물었다.

“오늘 모두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 혹시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유리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들 네가 부러워서 그러는 거야.”

“내가 뭐가 부러울 게 있나?”

은하는 그녀가 농담하는 줄 알고 가볍게 받아쳤다.

“설마 내가 상사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게 부러운 건가?”

그 말을 하자마자 주변이 조용해졌고, 은하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대체 무슨 일이야?”

그녀는 표정을 굳히며 목소리를 낮췄다.

“이상한 짓을 한 것도 없는데.”

“이상한 짓 한 건 네가 아니지.”

유리는 고개를 저으며 은하에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PF 그룹의 부세준 대표님은 알지? 그분이 최근에 독점 인터뷰를 한다는데, 원래 우리 쪽에는 기회조차 없었어. 그런데 편집장이 네 이름을 언급했더니 그쪽에서 우리를 선택했어.”

은하의 눈에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

‘PF 그룹 부 대표님이라면... 부세준?!’

더 물어볼 새도 없이, 편집장에게서 호출이 왔고, 은하는 편집장실로 가야 했다.

편집장이 말한 내용은 바로 부세준의 인터뷰에 관한 것이었고, 그 자리에서 시간까지 확정되었다.

편집장실에서 나온 은하는 부세준의 인터뷰를 맡기로 했다. 인제야 마침내 다른 직원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이 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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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에 대한 걱정 외에도, 은하의 머릿속에는 또 다른 일이 떠올랐다. 카메라 앞에서는 오늘 수아가 일부러 넘어진 상황이 수아의 자작극이고 자신은 결백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었다. 지금은 회사 직원들만 오늘의 일을 알고 있지만, 만약 그 영상이 유출된다면 은하의 커리어는 이대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은하는 바로 광수에게 물었다. “카메라 메모리 카드 좀 볼 수 있을까요? 안에 유용한 자료가 있는지 확인해 보려고요.” 광수는 그녀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즉시 장비를 찾아 메모리 카드를 가져오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광수가 가져간 여러 대의 카메라를 모두 확인했지만, 오전에 녹화된 영상이 들어 있는 메모리 카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은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간 편집장이 자신을 배제하고 해당 칼럼 작업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 한다는 점이었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퇴근 후, 은하는 기운이 없었다. 그때 동생 태하의 전화가 걸려 왔다. [누나, 오늘 저녁에 집에 와서 나 밥 좀 해줄 수 있어?] 며칠간 정신없이 바빠 동생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탓에, 태하는 주로 밖에서 끼니를 때우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태하의 외로운 모습을 상상하자 은하는 동생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스며들었다. 어차피 지금 회사에 남아 있어봐야 할 일은커녕, 밤낮없이 준비한 자료가 다른 이의 공로로 돌아갈 게 뻔한 상황이었다. 그런 판에 굳이 붙잡혀 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은하는 시계를 확인했다. 마침 태하가 아직 학교에 있을 시간대라는 걸 깨닫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동생을 데리러 직접 나서기로 마음먹었다.학교 앞에는 이미 많은 학부모가 차를 세우고 자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고급 차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은하는 조용히 길가 한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차창이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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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은하의 가슴은 여전히 미어지는 듯한 고통으로 가득했다. ‘수년간의 내 진심이 진제현에게는 그저 한낱 거품이었구나.’ 현장 분위기가 점점 심상치 않게 흐르자, 한 직원이 다가와 은하를 조심스레 붙잡으며 설득했다. “은하 씨, 오늘 우리 여기 일로 온 거잖아요. 절대 감정적으로 행동하면 안 돼요.” 그 말에 은하는 속으로 씁쓸히 동의했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지. 일을 하면서 억울한 일이 생겨도, 결국 이를 악물고 참아내야 하는 게 현실이니까.’ 깊은 한숨을 내쉰 은하는 이 모든 감정을 꾹 눌러 담으며, 차분히 참아내기로 결심했다.그런데도 제현의 눈빛은 그녀에게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은하가 더 이상 경찰에 신고할 기색이 없자, 제현은 그녀의 핸드폰을 돌려주며 수아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남겨진 회사 직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머뭇거렸다. “그냥 우리도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라이브로 예정되었던 인터뷰가 모두 녹화로 바뀌어 있었고, 회사로 돌아온 뒤에는 편집장이 모든 팀원을 편집장실로 소집했다. 편집장실에는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 있었고, 이번 인터뷰 실패에 대한 편집장의 분노는 가라앉을 기미가 없었다. “심은하 씨!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을 이렇게 만든 거예요? 잘 진행되던 인터뷰를 엉망으로 만들다니!” 편집장은 두꺼운 기획서를 책상 위에 내던지며 큰소리 쳤다. 주변 직원들은 고개를 숙이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꾸중을 듣는 분위기였다. 촬영을 맡은 광수도 꾸중을 면치 못했다. 그가 라이브를 녹화로 전환했던 사실이 밝혀졌고, 연말 보너스 절반이 삭감되는 징계까지 받았다. 큰 사건을 수습한 후, 주간 편집장의 사무실을 나오는 직원들의 분위기는 한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은하는 맨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며 진광수를 불렀다. 은하는 오늘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제안 때문에 징계를 받게 된 진광수에게만큼은 사과하고 싶었다. “광수 씨, 오늘 일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7화

    은하는 이런 비난과 지적에 냉담한 표정으로 응수했다. “임수아 씨, 참 대단한 연기네요. 아카데미상에 도전하지 않는 게 아쉬울 정도예요.” 상황을 자작극으로 해결하려는 수아의 의도는 완전히 빗나갔다. 아무리 누명을 씌우려 해도, 은하는 절대 이런 수아에게 사과하지 않을 것이었다. 은하는 주위에서 구경하는 동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위에서 바닥에 넘어져 있는 수아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아까 본인이 일부러 넘어진 것도, 커피를 자신에게 부은 것도 모두 당신이 한 일이잖아요. 저에게 덮어씌우려면 확실한 증거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수아는 억울한 척하며 말했다. “방금 그 장면 다 촬영됐어요. 라이브로 본 관객들이 다 지켜보고 있었을 거예요.” 그 말이 힌트라도 된 듯, 주변 사람들이 놀라며 말했다. “우리 장비 아직 켜져 있었던 거 아니야?” 이런 일이 라이브로 나갔다면 큰 문제가 될 것이 분명했다. 스태프들이 급히 촬영 장비를 점검했다. 수아는 그런 상황을 보고 입꼬리를 올리며 은하를 바라봤다. 그러나 이내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라이브 장비가 꺼져 있잖아?” “이건 라이브가 아니라 녹화였어!” 수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미 라이브 형식 인터뷰가 수아의 제안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은하는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다. 그녀는 평소 함께 일하며 친분이 있는 카메라 감독 진광에게 부탁해, 라이브를 녹화로 전환해 놓았다. 은하는 담담하게 말했다. “방금 촬영된 화면은 임수아 씨가 넘어지는 장면만 찍혔을 텐데, 그게 제가 당신을 밀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그 순간, 카페 직원 한 명이 나서며 은하를 겨냥했다. “촬영이 안 됐다는 것이 당신이 안 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잖아요. 우리 사장님을 질투해서 이런 짓을 벌였다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라고 보는데요?” 그때, 전화를 끝내고 돌아오던 제현이 이 상황을 목격했다. “무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6화

    “죄, 죄송합니다. 방금 한 말은 그냥 농담이었어요.” ‘다분히 고의적인 악담이 이런 사과 한마디로 끝나는 거야?’ 은하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러분이 오늘 처음 배치돼서 제 업무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은 거 알아요. 하지만 괜찮아요. 앞으로 함께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익숙해질 겁니다.” 그 말에 험담하던 직원들은 은하가 정말 화해를 뜻하는 건지, 아니면 속으로 가만두지 않겠다는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했다. 수아는 그런 상황을 오히려 속으로 즐기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단순한 오해였던 것 같네요. 심 기자님, 절대 화내지 마세요.” 은하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수아가 건넨 커피를 받아 들며 말했다. “그럼 감사히 마실게요. 고맙습니다, 임수아 씨.” 그녀는 커피를 들고 촬영 장비가 있는 자리로 걸어갔다. 하지만 수아가 이렇게 쉽게 물러설 리 없었다. 그녀는 은하의 뒤를 따라오며 한마디 던지려고 했다. 수아는 녹화 장비의 빨간불이 깜박이는 것을 힐끗 보더니, 눈빛이 살짝 변했다. “심 기자님, 방금 동료들의 말이 저는 아주 그럴듯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예쁘게 하고 다니니 남자들이 마음을 뺏기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요?” 은하는 수아가 숨긴 의도를 바로 알아채고, 손에 든 커피를 한쪽에 내려놓으며 비웃었다. “혹시 임수아 씨는 자기 외모에 별로 자신감이 없어서 남자의 마음을 붙잡지 못하는 건가요?” 수아는 외모에 대한 지적을 듣고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그녀는 원래 자기 외모에 대해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자, 수아도 더 이상 온화한 척하지 않고 본색을 드러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나와 제현이는 오랜 시간 알고 지냈어. 당신 말 몇 마디로 뺏을 수 있는 사이가 아니라는 뜻이야. 당신도 남자들의 관심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 왜 꼭 진제현이어야 해? 지난번에 날 죽음으로 몰아넣지 못해 아쉬웠나?” 수아는 눈물까지 글썽이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5화

    은하의 반응에 오히려 제현은 은근한 즐거움을 느끼는 듯했다. 그의 입가에 비뚤어진 웃음기가 살짝 번지며, 눈가에 희미한 장난기가 어렸다. “물론이죠. 나도 심 기자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까.”테라스는 습지 공원에 자리 잡고 있었고, 은하 팀의 팀원들이 목재 산책로 위에 유럽풍의 심플한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해 마주 앉았다. 은하는 카메라를 잡고 있는 동료에게 손짓을 보냈고,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일할 때 은하는 프로답게 누구보다도 집중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최근 제현이 진행한 여러 사업을 중심으로 꼼꼼히 질문하며 제현의 답변을 끌어냈다. 초반에 제현은 성실히 질문에 대답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제현의 대답은 묘하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서구 상권 개발과 관련해서는, 앞으로 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다양한 시설이 통합된 쇼핑몰을 갖출 예정이니, 그때 심 기자도 한 번 체험해 보시면 좋을 겁니다.” 은하는 순간 미세하게 멈칫했지만, 제현의 말 뒤에 덧붙여진 문장은 무시한 채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인터뷰 내내 제현은 질문에 성실히 답하는 듯했으나, 끝에는 꼭 대화를 은하와 연결하려 했다. 그런 제현의 모습은 수아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멀찍이 서서 대기하던 수아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은하도 승자의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 결국 자신은 결혼 생활에서도 승자가 아니었다. 촬영 담당 스텝이 손짓을 보내며 중간 휴식 시간을 알렸다. 수아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다가와 직원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희 카페에서 준비한 커피와 디저트 드시러 카페로 가세요. 편히 쉬면서 마음껏 드시면 좋겠습니다.” 무료로 다과를 대접받은 직원들은 고마워하며 카페로 이동했다. 누군가 은하에게 함께 가자고 권했으나, 그녀는 부드럽게 거절했다. “인터뷰 내용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해서요.” 제현은 인터뷰를 마치자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4화

    은하는 죽 그릇을 건네기 전에 고개를 들어 제현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는 은은한 빛이 번졌다. “왜 갑자기 라이브 형식의 인터뷰를 하겠다는 거야? 평소 당신 스타일과는 전혀 안 어울리는데.” 제현은 오랜만에 맡는 죽의 익숙한 향기에 약간 안정감을 느꼈다. 그러나 죽을 먹기도 전에 그는 은하의 말을 듣고 이마를 찌푸렸다. “남편으로서, 네 인터뷰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면 안 돼?” 은하는 냉소를 지으며, 뜨거운 죽이 담긴 그릇을 제현의 손에 직접 쥐여주었다. “임수아가 시킨 게 아니라면, 당신이 이런 형식을 생각해 낼 리 없지. 또 무슨 의도가 있는 거야?” 제현은 죽의 뜨거운 온도에 손을 뎄지만, 은하가 일부러 그러는 것을 알면서도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제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이미 경고했잖아. 윤씨 가문은 네가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왜 말을 안 들어?” ‘이 남자는 늘 이런 식이야!’또다시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제현의 태도에 은하의 눈빛이 점차 어두워졌다. 그녀는 고개를 떨군 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됐어. 더 할 얘기 없어.” 은하는 말을 마치자마자 제현을 지나쳐 주방을 나섰다. 밤은 점점 깊어져 갔고, 주방의 적막함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제현은 식은 죽을 바라보며 손도 대지 않았다. ...은하는 항상 일에서는 고집이 센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제현의 인터뷰가 예정된 날, 은하의 팀 스텝들은 제현과 사전 조율을 마치고 인터뷰 장소를 카페의 뒤편 테라스로 정했다. 적당한 온도와 날씨에 녹음이 가득한 카페의 테라스는 원래 딱딱한 경제 인터뷰를 보다 부드럽고 흥미롭게 만들어줄 수 있는 배경이었다. 은하는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사전에 현장을 직접 둘러보았다. 하지만 조사를 마친 뒤, 그 카페의 투자자 목록 중 한 사람이 임수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은하는 이번 인터뷰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임수아가 무언가 음흉한 계획을 세우고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3화

    은하는 집 안에서 걷기 힘든 태하가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정리한 뒤, 그를 방에 두고 나왔다. 거실에 나와 보니 제현과 세준 둘 다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핸드폰에 메시지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아래층 주차장에서 기다릴게.] 제현 특유의 간결한 문장이었다. 오늘 은하는 몇 차례 제현을 도발했고, 결국 태운 갈치를 억지로 먹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은하에게 이렇게 호락호락 넘어갈 리 없을 것이다. 은하는 메시지를 무시한 채 1층으로 내려가, 단지 입구에서 택시를 잡으려 했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근처에서는 택시를 잡기 쉽지 않았다. 은하가 한참 동안 기다렸지만, 호출 앱에서도 택시를 찾지 못했다. 잠시 후, 검은색 차 한 대가 그녀 앞에 멈춰 섰다. 창문이 내려가더니, 제현의 옆모습이 드러났다. 날카롭고 단정한 그의 이목구비는 지금 약간 느긋해 보였다. “내가 보낸 메시지 못 봤어?” 그의 목소리는 평온해 보였지만, 그 속에는 은하만 느낄 수 있는 불만이 감춰져 있었다. 은하는 남자의 기색을 읽고 경계심을 품었고, 마치 전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메시지? 못 봤네.” 제현은 냉소를 지으며, 그녀의 변명을 굳이 따지려 들지 않았다. “타.” 은하는 차에 올라탔다. 그녀는 가까이서 보니, 제현의 얼굴이 창백했다. 은하는 방금 제현이가 억지로 먹었던 그 갈치를 떠올리며, 속으로 짐작했다. ‘설마 그 갈치구이 때문에 속이 안 좋아진 건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는 마음으로, 은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병원에 가는 게 어때? 상태가 안 좋아 보여.” 제현은 사실 속이 몹시 불편했다. 몇 년간 힘들게 회복된 위장에 다시 탈이 난 것 같았다. 아까 그는 은하 집에서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고, 지금도 통증을 참느라 이마에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제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병원에 갈 필요 없어.

  • 아내가 떠난 후, 진 대표의 광기 어린 추적이 시작됐다   제32화

    태하는 방에서 나와 이어폰을 귀에서 빼며 거실로 향했다. 그리고 거실에 앉아 있는 제현을 발견하자마자, 본능적으로 누나를 찾았다. 태하는 제현이 집에 온 것이 몹시 불쾌했다. ‘매형이 여기 웬일이지?’ 은하는 태하에게 제현이 온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동생과 시선을 잠시 마주치며 안심시키려 했다. ‘신경 쓰지 마.’ 은하는 제현이 가장 좋아하는 갈치구이를 그의 앞에 놓았다. 그러나 그녀의 태도는 평소에 비해 지나치게 온화하고, 깍듯하게 예의를 차렸다. “이거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갈치 요리예요. 근데 주방에서 다른 요리에 정신이 팔려 깜빡하는 바람에 조금 오래 구워졌어요. 그래도 괜찮죠?” 모두의 시선이 그 새까맣게 탄 요리에 쏠렸다. ‘이게 갈치야?’ 그녀가 말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제현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비웃는 듯 말했다. 은하의 이런 반항적인 행동은 처음이 아니었다. 제현은 곧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괜찮아. 네가 만든 요리는 뭐든 좋으니까.” 그의 대답에 말을 잘 하지 않던 태하조차 경외의 눈빛을 보냈다. ‘저걸 먹고도 탈이 안 나면 이상한 거지.’ 네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갈치구이를 제외한 다른 요리는 모두 맛있어 보였고, 향도 좋았다. 은하는 일부러 제현에게 갈치 한 조각을 집어주며 말했다. “한번 먹어봐요. 생각보다 맛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제현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은하의 겉모습은 부드럽고 온화했지만, 그 눈빛 속에는 교묘한 장난기가 숨어 있었다. 제현은 잠시 주저하더니 결국 그 갈치를 입에 넣었다. 모두가 놀란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제현은 옆에 놓인 물 한 컵을 들어 천천히 반쯤 마셨다. 그러나 입안에 퍼지는 짠맛에 그만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도저히 입에 넣고 삼킬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짠맛이었다. 그는 속으로 확신했다. ‘이건 분명 날 위해 ‘특별히 준비한 요리’군.’ 순간 떠오른 생각에 제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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