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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불닭김치
그것은... 머리였다!

피와 살이 모두 사라진 하얀 해골 머리!

‘하지만 분명 내가 죽은 지 아직 사흘도 지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뼈만 남은 거지?’

‘그리고 도대체 누가 내 머리를 잘라 이 사람들에게 보낸 걸까? 혹시 이들 중 한 명이 나를 죽인 범인인 걸까?’

나는 가까이 다가가 두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려 했지만, 몸이 무언가에 꽉 묶인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쯧쯧쯧, 이 뼈의 주인은 참 예쁜 여자였을 텐데, 이제 향 가루로 만들어지다니, 안타깝군.”

키 작은 남자가 입맛을 다시며 비웃듯 말했다.

옆에 있던 키 큰 남자는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예쁘든 말든 상관없어. 우린 돈 받고 일만 하면 되는 거야.”

그는 말을 끝내자마자 커다란 망치를 꺼내 들더니, 그 하얀 해골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쾅!

커다란 소리와 함께 하얀 뼈는 산산조각이 났다.

그 순간, 내 머리에 또다시 날카로운 고통이 밀려왔다.

...

눈앞이 흐릿해졌다가 다시 또렷해졌을 때, 나는 다시 친정집에 서 있었다.

유리병 안에 담긴 향 가루를 바라보며, 방금 보았던 광경들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내 머릿속이 ‘꽝’ 하고 울리며,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내 머리뼈가 향 가루로 만들어져 여기로 보내진 거야?!’

‘그것도 내 부모에게?’

‘비록 부모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도, 분명 두 분은 나를 낳은 친부모잖아!!’

“안 돼! 아빠!! 하지 마세요!!!”

우리 아버지가 향을 피우려고 하자, 나는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몸을 그대로 통과해 버릴 뿐이었다.

‘도대체 누구야? 누가 나를 토막 내고, 내 뼈를 향 가루로 만들어 내 부모에게 보낸 거지?’

분노가 내 안에서 끓어올랐다.

고향에서 이곳으로 돌아온 이후로 나는 달리 친구도 없었고, 누구와 원한을 맺을 만한 일도 없었다.

만약 누군가와 다툰 적이 있다면, 그건 오로지 강주희뿐이었다.

‘강주희?!’

나는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다.

나는 급히 강주희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그 순간 그녀의 눈에 스쳐 지나가는 비웃음 같은 빛을 포착했다.

강주희의 눈빛을 본 나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혹시 강주희가 무언가 알고 있는 걸까?’

하지만 나와 강주희 사이는 단지 부모님의 편애 문제가 전부였다.

‘오히려 내가 강주희를 미워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강주희가 날 미워할 이유는 없었을 텐데...’

“오빠!”

그 순간, 강주희가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았다.

고영훈이 피곤한 얼굴로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영훈아, 왔니?”

우리 어머니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사위를 맞았다.

“어때? 민아가 자네에게 연락했어?”

아버지가 물었다.

고영훈은 미간을 손으로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 말 없이 잠시 침묵하던 그는 강주희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말했다.

“앞으로는 나를 ‘형부’라고 부르는 게 좋겠어.”

그는 이미 나와 결혼했고, 비록 어릴 적부터 강주희와 함께 자랐지만, 마땅히 지켜야 할 선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때, 아버지의 표정이 굳어지며 강주희를 노려보았다.

“그래, 앞으로는 ‘형부’라고 불러야지. 네 언니가 이미 영훈이와 결혼했으니, 계속 ‘오빠’라고 부르는 건 맞지 않아.”

“싫어요, 난 그냥 ‘오빠’라고 부를 거예요.”

강주희가 코를 찡긋하며 투정을 부렸다.

“이 녀석!”

아버지가 눈을 부릅뜨며 꾸짖으려 했지만,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됐어. 주희와 영훈이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랐으니, 당장 호칭을 바꾸는 게 쉽지 않을 거야.”

이 말을 듣고 아버지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러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주희처럼 반만이라도 철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민아 그 애는 말이야.”

강주희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고개를 숙이며 눈을 피했지만, 그녀의 눈동자에 스친 깊은 원망의 빛이 분명히 보였다.

비록 그것이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놓치지 않았다.

내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강주희는 도대체 무엇을 원망하고 있는 거지?’

내 머릿속에서 오래된 기억들이 떠올랐다.

처음 내가 강씨 집안으로 돌아왔을 때, 부모님은 나를 반가워하며 따뜻하게 맞아 주셨다.

나도 부모님에게 잘하고 싶어 노력했지만, 내가 하는 일은 번번이 역효과만 냈다.

그 이유를 따져보면, 전부 강주희가 뒤에서 은근히 방해한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내가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그때부터 부모님의 눈에는 항상 착하고 어른스러운 강주희만 보였고, 나는 단지 연기를 좋아하고 제멋대로인 문제아로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손에 쥔 강주희가 왜 나를 원망하는 거지?’

그 순간, 나에게 강렬한 예감이 밀려왔다.

‘내 죽음과 강주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는 것 같아!!’

“아버님, 오늘 제가 여기 온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고영훈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뭐라고?”

아버지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고영훈이 뭔가 부탁하는 일은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고영훈은 주머니에서 결혼반지 사진을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이 반지가 어떤 가게에서 제작된 건지 봐주실 수 있으실까요?”

강씨 집안은 보석 사업을 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이 분야의 전문가였다.

고영훈이 제대로 된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한 셈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은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웃기는 것은, 이 반지는 분명 고영훈 본인이 산 것인데도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려 한다는 점이었다.

이쯤 되니 나도 짐작이 갔다.

이 반지, 아마도 당시 고영훈이 나에게 대충 얼버무리려고 아무 생각 없이 어디선가 산 거겠지. 그래서 기억조차 못 하는 거 아닐까.

아버지는 사진을 들고 한참을 들여다보시더니, 이내 미간을 찌푸리셨고, 오랜 침묵 끝에 말씀하셨다.

“이 반지는 정말 정교하게 만들어졌구나. 그런데 위에 새겨진 문양은 상당히 복잡해서 기계로 새길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일반 소규모 공방에서는 이런 작업을 하지 못할 거야. 아마도 개인 작업실에서 만들어진 것일 텐데, 게다가...”

아버지는 잠시 말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며 이어갔다.

“이 정도의 기술이라면 아마도 몇 안 되는 장인급의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할 거야.”

고영훈은 자신이 원하던 답을 얻고 나서 더 이상 머물지 않고 재빨리 떠났다.

나도 그의 뒤를 따라 다시 신혼집으로 돌아왔다.

고영훈은 소파에 몸을 던지듯 눕더니, 내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고영훈의 이마에는 더 짙은 먹구름이 드리웠고, 이와 함께 약간의 짜증도 엿보였다.

집에서 얼마 머무르지 않은 채, 고영훈은 다시 차를 몰고 나섰다.

나도 마치 실에 매달린 풍선처럼 그의 뒤를 쫓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고영훈이 경찰서로 가지 않고 사진을 들고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누군가를 찾는 듯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는 곧장 한옥 대문 앞에 다다라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문을 열고 나왔다.

고영훈을 본 노인은 살짝 놀란 듯 말했다.

“고 선생님, 참 오랜만입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시죠.”

두 사람이 마당으로 들어가 잠시 안부를 나눈 뒤, 고영훈은 사진을 꺼내 탁자 위에 놓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 선생님, 이 반지가 어느 장인의 작품인지 감정 좀 부탁드립니다.”

고영훈이 ‘우 선생님’이라 부르는 우대산은 돋보기를 꺼내 쓰고,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감탄하듯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흠... 이건 참...”

우대산은 놀란 표정으로 고영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설마 고 선생님께서 이 반지를 모르신다는 겁니까?”

고영훈은 순간 멈칫하며 의아한 표정으로 우대산을 쳐다보았고,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선생님,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바로 말씀하시죠.”

우대산은 수염을 만지며 웃음을 지었다.

“이 반지, 고 선생님이 며칠 전에 제게 맡기신 거 아닙니까? 강민아 양에게 준다고 하셨잖아요.”

“뭐라고요?!”

평소 냉정하고 침착했던 고영훈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얼굴빛이 크게 달라졌다.

고영훈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우대산을 바라보았다. 목소리엔 떨림이 묻어 있었다.

“이 반지가... 제가 주문한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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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고영훈이 마치 영혼을 잃어버린 것처럼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을 보며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교차했다. 이 길은 결혼식 호텔에서 우리 신혼집으로 가는 길목으로, 이 길을 거치지 않으면 집으로 갈 수 없었다.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자 생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당시 나는 바로 이 근처에서 고영훈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다. 살인범의 눈을 피하려 애썼지만, 고영훈의 차가운 말 한마디가 살인범에게 내 위치를 들키게 했고, 결국 나는 목숨을 잃게 되었다. 고영훈은 억지로 자신을 진정시키려는 듯 주먹을 꽉 쥐었다. “결혼식 날, 강민아가 나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하지만 나는...” 그날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리자 그는 더 이상 회상할 수 없었다. ‘만약 강민아가 그 순간 정말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면, 내가 했던 그 말은 강민아를 지옥으로 내몬 것이나 다름없었을 거야!’ 고영훈은 머릿속의 상상을 떨쳐내며 신고자인 중년 여성을 향해 물었다. “혹시 더 기억나는 게 있어요? 그 당시 살인범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아니면 피해자가 무언가 말하지 않았나요?” 김재국은 고영훈의 긴장감을 눈치채고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위로했다. 그리고 중년 여성을 향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그냥 절차적인 질문일 뿐이니, 천천히 기억을 떠올려 보세요. 놓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중년 여성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팀장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자 김재국이 고개를 돌렸다. 한 경찰이 증거물을 들고 뛰어오고 있었다. “팀장님, 피가 묻은 숄을 발견했습니다. 웨딩드레스의 일부로 보입니다.” 그 숄을 보자 나는 순간 멈춰 섰다. 그것은 바로 내가 결혼식 날 입었던 웨딩드레스의 숄이었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고영훈을 바라보았다. 고영훈은 온몸이 굳어 버린 채, 완전히 멍해 있었고,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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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   제100화

    강주희는 속이 부글부글 끓는 듯 이를 악물었지만, 나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고마워요, 작은어머니. 저 꼭 오래오래 살게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와 잔을 부딪쳤다. “그야 그렇겠죠. 욕 많이 먹을수록 오래 산다잖아요.” 강주희는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그녀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눈가가 붉어지더니, 곧 고영훈을 바라봤다. “오빠, 작은어머니가 나한테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 거예요?” “우리 강씨 집안이야 임씨 가문만큼은 못하겠지만, 제가 오빠랑 함께하는 게 이런 식으로 압박을 받아야 한다면, 이 약혼은 하지 않는 게 낫겠어요.” 강주희는 일부러 술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약간 숙이며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했다. ‘아휴, 저 눈물 연기 몇 번이나 본 거야? 이제는 좀 지겹다.’ 나는 하품을 참지 못하며 고개를 돌렸다. “굳이 내 앞에서 이런 연극을 할 필요는 없을 텐데요. 앞으로 우리가 서로 엮일 일도 없을 거잖아요.” 나는 여전히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고시환을 힐끔 바라보고, 의자를 당겨 일어섰다. “오늘 약혼식에 온 건 우리 남편 때문이야. 우리가 서로 얼굴 보기 싫어하는 건 분명하니까, 미안하지만 이만 갈게.” 뒤돌아 나가려는 순간, 고영훈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그는 내 얼굴을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곧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작은어머니, 주희한테 사과하세요.”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져 나오며 손가락으로 귀를 파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봐?” “제가 주희한테 사과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작은어머니, 아까 말씀이 너무 지나치셨잖아요.” 고영훈의 말에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웃으며 주변 사람들을 둘러봤다. “지금 여기 계신 분들, 다 들으셨죠? 제가 누구한테 무례했다는 건데, 당사자 말고 또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 계시면 말씀 좀 해보세요.”나는 손가락으로 강

  • 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   제99화

    ‘어차피 곧 이혼할 사인데, 앞으로는 서로 얽힐 일도 없겠지. 아마 두 번 다시 마주칠 일도 없을 거야.’ 주요석에 앉아 있던 고정한이 그 순간 고시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주변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다 들리도록 크게 말했다. “시환아, 너 하나 양과 벌써 혼인신고까지 했다며? 결혼식은 언제 올릴 거니? 이왕 여자 쪽에서 허락한 건데, 절대 서운하게 하면 안 된다.” 고정한의 말이 떨어지자, 이미 조용했던 예식장은 더더욱 적막에 휩싸였다.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고시환을 바라보며, 속으로는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뭐? 고시환이랑 임씨 가문의 임하나 양이 혼인신고를 했다고?” “전부터 그런 소문이 살짝 돌긴 했는데, 진짜였네.” “근데 아까 보니까 둘이 말도 안 하고, 웃는 얼굴도 안 보였는데. 둘이 대체 왜 갑자기 혼인신고를 한 거야?” “에휴, 너 그거 모르지? 고시환은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H 시에서는 힘이 없잖아. 그래서 H 시에 발붙이려고 그런 거지.” “임씨 가문이 고씨 가문만큼은 아니어도, H 시에서는 알아주는 집안이잖아. 고시환 저 사람, 야망이 대단하네.” 예식장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이런 계산에 밝은 사람들이었다. 단 몇 초 만에 고시환과 나의 관계를 파악한 듯, 각자의 추측을 마친 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나는 주변의 시선에 전혀 개의치 않고, 그저 미소를 띤 고정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대단하네. 그때 고시환이랑 고씨 가문의 본가에서 그렇게 싸우고,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으면서도, 지금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들 행세를 하고 있잖아.’ 나는 옆에 있는 고시환을 힐끗 보았다. 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결국 내가 먼저 나서기로 했다. “아버님, 저희 젊은 사람들 문제에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보다 우리 영훈 조카 약혼식부터 잘 챙기시는 게 우선 아니겠어요?” 고정한은 한때 고씨 가문에서 그야말로 전설로 불

  • 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   제98화

    고시환은 손에 들고 있던 혼인관계증명서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래.” 순간에 우리 사이에 묘하게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저기, 약혼식 곧 시작할 것 같은데, 당신 빨리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고씨 가문의 일원인 고시환이 아무리 고영훈과 사이가 안 좋더라도, 주요 가족 행사에서 가족석에 앉지 않고 나와 이 구석에 있는 건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내 말을 들은 듯 주위를 한번 훑어보더니,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 어? 뭐 하는 거야?” 고시환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직 이혼 안 했잖아. 내 아내로서 나랑 같이 가야지. 괜히 뒷말 나오게 만들 순 없으니까.” “곧 이혼할 건데...” 나는 작게 중얼거리며 남자의 손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사실 우리 결혼 소식은 이 상류층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고시환이 내 손을 잡고 주인석에 앉자, 모두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사람들은 눈을 크게 뜨고 수군거리며 고시환과 나의 관계를 추측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그때 손을 뿌리쳤어야 했는데... 이제 이혼하면 뒷말이 더 많겠네.’ ‘고시환이랑 엮였다는 걸 이제 알았을 텐데, 오늘 밤에 이혼 소식까지 돌면 얼마나 말이 많아질까?’ 나는 마음속으로 임씨 가문의 내 부모님에게 미리 사과와 기도를 했다. ‘제발 이 험담들을 잘 견뎌내게 해주세요...’ 고시환은 주인석에 앉아도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했지만, 눈썹 사이엔 살짝 드러나는 불쾌감이 있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눈길을 주자, 그 순간 사람들이 수군거리던 소리가 뚝 끊기며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입을 다물었다. 나는 고시환의 대응에 속으로 엄지를 치켜세우며 웃음을 참았다. ‘정말 대단하긴 하네.’ 그에게 한마디 장난스럽게 말하고 싶었다.‘이제 곧 남이

  • 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   제97화

    장연희의 한마디가 내 혼란스러운 마음을 단숨에 정리했다.‘맞아, 난 이미 죽음을 한 번 경험한 사람이잖아. 뭘 그렇게 겁먹고 있는 거지?’ ‘어릴 적 친구 하나쯤이야, 별로 대수로운 일도 아니잖아.’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나는 서둘러 준비를 마친 뒤, 고영훈과 강주희의 약혼식에 가기로 했다. 청첩장을 들고 예식장에 들어서자,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모르게 긴장감이 스쳤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고시환을 찾았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다.’ 안도감을 느끼는 동시에, 묘하게 내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졌다. ‘애초에 고시환은 고씨 가문을 싫어하고, 자신의 성을 혐오하는데, 여기 올 리가 없잖아.’ ‘그런데도 왜 이렇게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걸까?’ 며칠 동안 나는 일에 몰두하며 고시환에 대한 생각을 잊으려 애썼지만, 잠깐이라도 쉬는 시간이 생기면 그의 얼굴과 목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문제는 내 마음이겠지.’ ...나는 예식장 한쪽 구석에 앉아 조용히 쉬고 있었다. 그때, 샴페인 잔을 든 남자 몇 명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아가씨, 전에 본 적 없는 얼굴인데요?” “H 시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 계시다니, 어디 가면 또 뵐 수 있을까요?” 나는 두 사람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둘 다 잘생긴 편이긴 했지만, 고시환에 비하면 한참 모자랐다.나는 차갑게 말했다. “만나볼 마음 없으니까 돌아가세요.” 이런 상류층 모임에서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섞여 있는 법이다. 특히 조금이라도 돈이 있는 이른바 ‘재벌 2세’들은 자신들이 평범한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두 사람을 단칼에 거절하자, 그들의 표정에 약간의 불쾌함이 스쳤지만, 공공장소라 억지로 화를 참는 듯했다. “아가씨, 참 성격 있네요. 그런데 어느 집안의 아가씨예요? 혹시 내가 누군지는 알아요?” 나는 그를 힐끗 쳐다보고 기억을

  • 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   제96화

    청첩장에 적힌 내용을 읽으며 나는 살짝 놀랐다. ‘고영훈이랑 강주희 사이에 뭔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빠르게 약혼까지 하다니.’ 며칠 사이에 둘이 약혼식 날짜까지 잡았다니, 정말 예상 밖이었다. 강주희는 웃으며 청첩장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작은어머니, 꼭 시간 맞춰 오셔야 해요.” 약혼식은 열흘 뒤로 정해져 있었다. ‘그때쯤이면 나도 고시환과 이미 이혼했을 거야.’ ‘그땐 고씨 가문이랑 완전히 남이겠지.’ 그 생각이 들자, 나는 청첩장을 다시 강주희에게 밀어 돌려주었다. “나 지금 네 작은어머니 아니야. 곧 고시환 씨와 이혼할 거고, 그 이후로는 너희 고씨 가문 사람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을 거야.” 나는 강주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약혼 축하해. 네 약혼식이 순조롭길 바랄게.” 강주희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다시 한번 청첩장을 내 손에 놓으며 말했다. “그래도 언니잖아요. 반쪽짜리 언니라도, 꼭 와줬으면 좋겠어요.” 그녀가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초대하려는 모습에, 나는 웃으며 청첩장을 받아들었다. “알았어. 그렇게 간절히 부탁하니까 가줄게.” ...강주희의 약혼 소식은 삽시간에 퍼졌고, 인터넷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사람들은 모두 이 잘 어울리는 커플에게 축하를 보내느라 바빴다. 하지만 한때 고영훈과 결혼을 약속했던 ‘강민아’에 대한 기억은 모두 완전히 잊은 듯했다. 약혼식 당일, 나는 가게에 앉아 청첩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장연희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사장님,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되잖아요. 누가 칼 들고 협박하는 것도 아니고요.”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넌 나를 몰라.” 강주희의 약혼식에 가든 안 가든 사실 내겐 상관없었다. 이미 고영훈에 대한 미련은 다 버린 지 오래였으니까. 문제는, 거기서 혹시 고시환을 마주치게 될까 봐였다. 그날 이후 고시환은 이혼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

  • 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   제95화

    “우리, 이제 끝낼 때가 된 것 같아...” 고시환의 말을 들은 나는 순간 멍해졌다. ‘끝내자고? 이혼을 하겠다는 뜻인가?’ 나는 한참을 머릿속에서 되새기다가, 그가 정말 떠나려 한다는 걸 깨달았다. ‘고시환이랑 이혼할까?’ 실은 나도 처음 고시환과 결혼한 것도 단지 이 사람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지금의 강주희, 그녀가 끝까지 물고 늘어지지 않는 한, 나는 임씨 가문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그녀를 상대할 수 있었다. 이제의 나는 고시환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입술을 꾹 다물다가 일부러 웃는 얼굴로 말했다. “맞아, 끝내야지. 그럼 좋은 날 골라서 이혼하러 가자.” 고시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재산 분할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필요 없어.” 나는 남자의 말을 끊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원래부터 비즈니스 관계였잖아. 임씨 가문 정도면 날 먹여 살리기 충분해.” 나는 일부러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내가 널 찾은 이유는 따로 있어. 나 H 시로 돌아가려고 해.” “이혼 절차는... 오늘 바로 끝내는 게 어때?” 고시환은 눈을 깜빡이며 헛기침을 했다. “오늘? 오늘은 안 될 것 같은데...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밤까지 걸릴 거야.” “괜찮아.”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시간 날 때 말만 해. 언제든 내가 맞출게.” 고시환이 답하기도 전에 나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럼 이만 갈게. 우리 엄마가 집에서 밥 차려놓고 기다리고 계셔.” 나는 문을 나섰고, 고시환은 내 뒷모습을 보며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비서가 허둥지둥 들어왔다. “보스, 방금 그분... 그 사진 속 사람이잖아요?” “그분... 이미 이 세상을 떠났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고시환은 액자 속 소녀의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며 말했다. “맞아요, 이미 떠났어요.” 비서는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이미 사무실을 떠난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 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   제94화

    고시환의 사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왜 비서가 나를 보고 그렇게 놀랐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내 눈길을 끈 건 고시환이 아니라, 그의 책상 위에 놓인 커다란 액자였다. 나는 그 액자 속 사진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저 사진...’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내 머릿속은 열 살 때로 돌아갔다. 열 살...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중요한 나이였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생일축하는커녕 내 생일이 언제인지조차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단 한 사람, 고시환만 빼고. 나도 그날이 기억난다. ‘뚱보’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나 이제 떠나야 해. 아마 다시는 못 돌아올 거야.”나는 ‘뚱보’를 진심 어린 친구로 여기고 있었기에, 그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하고 엉엉 울며 ‘뚱보’의 가슴을 두드렸다. “다들 나를 떠나는데, 너마저 떠난다고? 너만은 친구라 생각했는데, 너도 나 버리고 갈 거야?” “오늘이 내 생일인데, 다들 케이크를 먹을 때 나는 못 먹어. 이제 내 유일한 친구인 너까지 떠나는 거야?” 그때, 내가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우는 모습을 본 ‘뚱보’는 나를 꼭 안아주며 위로했다. ‘뚱보’는 내 눈물을 닦아주고, 동네 구멍가게에서 슈퍼 막대사탕을 사와 내게 내밀며 말했다. “생일 축하해. 하지만 난 정말 떠나야 해. 해야 할 일이 있거든.” “내가 성공하면 꼭 널 찾으러 올게. 여기서 나 기다려 줄래?” 그때의 나는 ‘뚱보’의 눈빛 속 진심을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친구가 날 속인다고 생각했다. ‘뚱보’가 날 달래려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사진 한 장 찍어줄게. 내가 너 보고 싶을 때마다 이 사진을 볼 거야.” “이 사진 앞에서 맹세할게. 내가 꼭 돌아와서 너 데리러 갈 거라고!” 그 말에 속아 넘어간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예쁜, 하지만 지금 보면 우스꽝스러운 미소를 카메라 앞에

  • 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   제93화

    나는 고시환의 눈을 마주치다가 어색해서 고개를 돌렸다. ‘분위기가 왜 이리 묘하지?’ 결국 나는 가볍게 두어 번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저기, 나 여기까지 오느라 너무 힘들었거든. 우선 올라가서 쉬어야겠어.” 말을 마치자마자 헐레벌떡 위층으로 올라갔지만, 막상 내 방이 어딘지 몰라서 다시 내려와야 했다. “그... 어디서 자면 돼?” 고시환은 나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이 자고 싶은 방에서 자. 당신이 이 집의 주인인데.” 그 말에 나도 순간 눈썹이 꿈틀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돌아 적당한 방 하나를 골라 들어갔다. 나는 넓고 푹신한 침대 위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지금 고시환한테 갖고 있는 감정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어. 예전처럼 그저 복수를 위해 이용하려는 건 아닌 것 같아.’ ‘하지만 지금 내 육체는 임하나고, 영혼은 강민아잖아.’ ‘내가 정말 어린 시절의 정 때문에 고시환을 좋아하게 된 건지, 아니면 지금의 또 다른 고시환에게 끌리는 건지 헷갈려.’ 고시환도 똑같이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이 날 보는 이유가 이 얼굴 때문인지, 아니면 지금의 나 때문인지 모르겠어.’ 다시 한번 몸과 영혼 사이의 갈등에 빠진 나는 하늘을 향해 소리를 내지르다가 결국 고개를 저었다. ‘복잡한 거 그만 생각하자.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아야지.’ 며칠 동안 꽉 조였던 긴장감이 풀린 탓인지, 나는 모처럼 완전히 편히 쉬었고 눈을 떠보니 이미 정오가 넘어 있었다. 내가 낯선 침실을 잠시 바라보다가 지금 어디 있는지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집 안을 돌아다녀 봤지만 고시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전화를 걸었는데, 또다시 통화 중이라는 신호음이 들려왔다. ‘대체 뭘 하길래 통화 중이야?’ 나는 찡그린 얼굴로 SL 그룹의 주소를 검색했고,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SL그룹 건물 앞에 도착해 KM 그룹보다도 훨씬 크고 높은 건물을

  • 신혼 밤의 참극: 내 시신을 해부한 남편   제92화

    고시환은 두 팔로 나를 끌어안으며 아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얼마나 억울한지, 너는 알기나 할까...” 나는 코끝을 훌쩍이며 남자의 품에서 몸을 빼내면서 고시환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남자의 얼굴이 창백한 것 말고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이자 안도의 숨이 나왔다. “그동안 어디 있었어? 왜 내가 그렇게 전화했는데 단 한 통도 안 받았냐고!” “대체 나를 당신의...” 내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췄다. “나의 뭐?” 고시환이 장난스레 물었다. 나는 얼굴이 조금 달아오르며 말했다. “당신의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는 거야?” “민아의 시신을 찾아주자마자 나 같은 파트너는 버리고 팽개치려는 건 아니겠지?” “아직 민아를 죽인 범인을 못 찾았잖아. 우리의 비즈니스 관계는 끝난 게 아니야!” 고시환은 나를 바라보며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 같은 파트너를 잊을 리가. 다만 내가 재벌이니까 쉬고만 있을 순 없잖아.” “안 그러면 재벌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기 힘들겠지. 그러면 너, 임씨 가문의 귀한 딸의 얼굴에 먹칠하게 될 텐데.” 나는 고개를 홱 돌려버리고, 고영훈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근데 고영훈이 했던 말은 뭐야? 얼른 솔직히 말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고시환은 나를 Y 시의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본인의 입을 통해서야 나는 고시환이 자리를 비웠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 장례식이 열리고 있던 동안, 고시환의 회사인 SL 그룹에서 개발한 약품이 누군가를 죽게 만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유족들이 SL 그룹에 찾아와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이 사건이 커지면서, 주가도 끝없이 추락했다. 결국 고시환은 회사를 수습하고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급히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고영훈이 했던 말도 이와 관련 있었다. 유족들은 고시환의 제안에 불만을 품고 사람을 시켜 그를 납치하려 했지만, 고시환은 이를 미리 알아채고 역으로 유족 측을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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