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너를 빼고 누가 나를 데려가?”반재언이 삶은 달걀 하나를 그녀의 접시 위에 올려주었다.“그럼 어제 데려다 준 사람이 만약 내가 아니라면?”남우가 입술을 꼭 깨물다가 대답했다.“다음부터 많이 마시지 않을게.”그녀가 바로 잘못을 인정하자 반재언이 피식 소리 내어 웃었다.“반성하는 태도가 불량한데?”그녀가 달걀 껍데기를 까며 물었다.“어젯밤에… 내가 술 취해서 무슨 헛소리를 한 건 아니지?”그가 덤덤하게 대답했다.“했어.”깜짝 놀란 그녀가 머리를 번쩍 들었다.“내가 무슨 말을 했는데?”반재언은 그녀의 물음에 대답은 하지 않고 오히려 질문으로 응대했다.“너 스스로 잘 생각해 봐.”남우는 한참 동안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그러다 문뜩 자신이 어젯밤에 확실히 무슨 말을 한 것 같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 말이 뭐였더라?-재언아, 나 네가 너무 좋아.남우는 순간 패닉에 빠져버렸다. 그녀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이럴 수가. 나 술에 취해서 반재언한테 고백한 거야?’반재언이 눈썹을 씰룩거리며 물었다.“기억났어?”“윽… 내, 내가 어제 좀 많이 취했어.”그녀는 지금 이 상황에서 도저히 그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반재언이 그녀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그녀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너 나한테 빚진 거 하나 남았지?”“내가 언제…”바로 반박하려던 남우는 문뜩 스카이 섬에서 그에게 빚을 졌던 일이 떠올랐다.그녀가 그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네, 네가 원하는 게 뭔데?”반재언이 눈을 가늘게 뜨며 싱긋 미소 지었다. 그녀는 그 순간 눈앞의 반재언이 꼬리 아홉 달린 여우로 보였다.“어젯밤에 했던 말 다시 한번 말하기.”남우는 몇 초간 움직임을 멈췄다. 그녀가 눈을 깜빡거리며 되물었다.“그게 다야?”반재언이 조금 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와 그녀의 얼굴이 거의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네가 굳이 다른 걸로 바꾸겠다면, 안 되는 것도 아니지만.”그녀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더니 고
”…”남우는 순간할 말을 잃어버렸다.‘어린아이가 무슨 말을 이렇게 잘해. 이렇게 성격이 곧아서 나중에 여자친구는 사귈 수 있을까?’그녀가 구명신의 시선을 맞추며 웅크려 앉았다.“다른 사람의 호의를 억지로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그 호의를 무시하며 거절해야 할 권리도 없어. 네가 그 마음을 받아주든 안 받아주든, 일단은 고맙다고 먼저 인사는 해야 해.”“네가 갖고 싶지 않아도 일단은 ‘생각해 줘서 고마워. 하지만 난 이게 필요하지는 않아.’라고 인사하는 게 예의 있는 행동이야.”구명신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다 말했다.“아줌마 말 되게 많아.”남우가 뭐라 말하려던 순간 여자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마음이 조급해진 남우가 얼른 아이를 달래기 시작했다.소란을 들은 종언이 그들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남우가 인내심 있게 서러운 표정으로 울고 있는 여자아이를 달래는 모습을 확인했다.하지만 남우가 아무리 아이를 달래도 아이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종언이 다가와 여자아이를 번쩍 안아 올렸다.“왜 울어? 혹시 선물이 마음에 안 들었어?”여자아이가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이의 눈에 구슬 같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아이가 울먹이며 말했다.“오빠가 나를 싫어해요…”종언이 구명신을 힐끗 바라보더니 여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오빠는 네가 싫은 게 아니라 너랑 친구가 되는 법을 잘 몰라서 그래. 울지 말고, 삼촌이랑 다른 선물 받으러 가자. 응?”여자아이가 겨우 진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종언이 아이를 안고 카운터로 가서 선물 두 개를 더 건네주었다.남우는 구명신을 돌아보았다. 구명신의 표정이 어쩐지 복잡해 보였다.그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종언과 여자아이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때 구명신이 낮게 혀를 차더니 언짢은 표정으로 고개를 홱 돌리며 자리를 벗어났다. 남우는 경악했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지?’그때 동훈이 다가왔다.“경고하는데 구명신 도련님을 제자로 삼는데 집착하지 않는 게 좋
AM 그룹.부서 직원들은 휴식 시간에 오늘 밤 스케줄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그때 양우빈이 선물 박스를 들고 지나치는 걸 발견한 누군가가 웃으며 물었다.“양 비서님, 여자친구분이 주신 선물이에요?”양우빈이 당황하더니 멋쩍게 미소 지었다.“제가 여자친구가 어딨겠습니까. 이건 제께 아니라 반 대표님 겁니다.”직원들이 우르르 그에게 몰려들었다.“이거 주얼리죠?”“대표님께서 와이프 분한테 드리는 선물이에요?”사실 양우빈도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브랜드를 보면 확실히 주얼리인 것 같았다.언제 온 건지 반재언이 그들 뒤에 서서 미소를 지었다.“다들 이렇게 여유로운 걸 보니 일찍 퇴근들 하고 싶지 않나 봅니다? 그럼 다 같이 야근이라도 할까요?”“아니, 아닙니다. 저희는 정시에 퇴근하고 싶습니다. 저녁에 약속도 있다고요.”직원들이 서둘러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양우빈이 그에게 다가가 손에 든 선물 박스를 건네며 궁금한 듯이 물었다.“이건 큰 도련님 부인분께 드리는 선물인가요?”반재언이 박스를 건네받으며 그렇다고 답했다.“전에 못 해준 것에 대한 보상이죠.”“뭐가 들었나요?”“궁금해요?”양우빈이 입술을 삐쭉거리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당연히 궁금하죠…”“다들 빨리 현재 손에 쥐고 있는 업무를 마치시고, 오늘은 일찍들 퇴근하도록 하세요.”반재언이 그의 어깨를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돌아서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그 말을 들은 직원들은 감동을 금치 못했다.‘역시 재신 도련님보다 재언 도련님이 더욱 인간적이셔!’그날 밤, 반재언은 남우를 데리러 도장에 도착했다. 남우가 선물 여러 개를 들고 한껏 들떠서 그에게 다가왔다.그녀가 차에 오르자 반재언은 그녀가 안고 있는 선물에 시선을 멈췄다.그의 눈길을 느낀 남우가 웃으며 그중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자, 이건 너 줄게.”그가 선물을 받지 않은 채 물었다.“하나만 줘?”그녀의 품에는 아직 한가득 남아있었다.남우가 다시 선물을 가져가며 입을 열었다
반재언이 다가와 물었다.“온천욕 처음이야?”“겨울도 없는 스카이 섬에서 언제 이런 걸 해봤겠어?”고개를 돌려 그를 확인하던 남우는 그가 달랑 수건 하나 걸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서둘러 시선을 피했다.반재언이 그녀의 뒤로 다가와 손을 뻗으며 껴안았다.“온천욕 하겠다며?”그녀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말했다.“나는 온천욕을 하고 싶은데, 넌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은데.”그가 피식 웃더니 응하고 대답했다.“밤은 기니까 말이야.”그러더니 그가 남우를 번쩍 들어 올렸다.남우가 서둘러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눈을 꼭 감았다.“너 나 이대로 던지기만 해!”반재언이 그녀를 안은 상태로 온천 안으로 들어갔다.“풍덩!”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방에 물이 튀었다. 남우가 겨우 얼굴을 수면 밖으로 내밀었다. 물을 잔뜩 먹은 머리카락이 그녀의 등에 착 달라붙었다.그녀는 얼굴에 물기를 쓸어내며 소리쳤다.“야 이 망할 놈아!”반재언이 웃으며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남우야.”남우는 순간 그가 잡고 있던 손가락에서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 깜짝 놀란 그녀가 고개를 숙여 확인했다. 그녀의 네 번째 손가락에 블루 다이아 반지가 끼워져있었다.쿠션 컷으로 만들어진 다이아였다.다이아 색깔은 진하지 않고 오히려 옅었다. 다이아 본연의 색을 너무 잘 표현한 에메랄드 블루였다.반재언이 그녀의 손을 잡고 입을 맞추었다.“비록 스카이 섬에서 식을 올리긴 했지만 아직 너한테 제대로 프러포즈를 한 적 없었잖아.”그녀는 그저 멍한 표정으로 한참이나 반지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잠시 후 그녀가 물었다.“이런 건 언제 산 거야?”그가 웃으며 대답했다.“만들어 달라고 한지는 꽤 됐어.”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반재언이 축축이 젖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었다. 그제야 그녀의 얼굴이 환히 드러났다.“이 다이아 누가 디자인한 줄 알아?”남우가 그를 바라보았다.“누군데?”“구명신 그놈의 어머니. 안예지 이모가 디자인한 거야.”남우의 눈이 또다시 휘둥그레졌다
한태군은 웃으며 말했다."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다 잘 지내요, 그런 이모부님은, 몸 괜찮으세요?"진예은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을 들어 올렸다."난 괜찮아."반재신은 위층에서 내려오며 한태군이 있는 걸 보고 말했다."정말 밥 얻어먹기 좋은 시간 골라서 왔네."강유이가 주방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말했다."내 남편 괴롭히지 마!"반재신은 할 말을 잃었다."..."진예은 아버지는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오늘은 부대찌개를 먹으려는 거냐?"강유이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부대찌개 좋죠!"한태군이 답했다."전 제 부인 말을 따를 겁니다."예은의 아버지가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반재신은 오히려 원치 않는듯했다."부대찌개는 별로..."진예은이 헛기침을 했다.그러자 그는 생각을 하는 척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부대찌개 먹죠."강유이의 웃음기가 깊어졌다.오후 여섯 시가 되자, 밥상 위엔 부대찌개에 넣을 재료들로 꽉 찼다. 소고기, 닭고기, 채소들과 생선류, 거기에 디저트까지.한태군은 곁들일 소스를 만들었고, 반재신은 재료를 준비했다. 그리고 진예은의 아버지는 수저 세팅을 도왔다.다들 자리에 앉자, 진예은의 아버지는 이 시끌벅적한 장면을 보며, 감명이 깊었다. 오랫동안 이렇게 북적인 적 없는듯했다."잘 먹겠습니다!"모두들 식사를 시작했다.강유이는 임신을 해서인지, 요새 시고 매운 음식들이 유달리 당겼다. 한태군은 그녀의 소스에 레몬을 넣어주었다.진예은은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시고 매운 걸 좋아하는 거면, 설마 유이 쌍둥이 임신한 거 아냐?"반재신은 진예은을 위해 생선가시를 골라내며 눈꺼풀을 움직였다."쌍둥이일 가능성이 쟤한테 떨어질진 모르지."강유이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지금 누구 무시해 오빠?"그의 시선은 한태군을 스쳐 지났다. 한태군을 ‘무시’하는 뜻이 분명했다.한태군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답했다."네가 안 된다고 나까지 끌어들이는 거야?"반재신은 표정을 거두었다."지금 누
그는 강유이의 어깨를 둘러 안고, 그녀가 물었던 곳을 한입 베어 물었다."음, 달아, 유이 같은 맛이네."강유이는 볼이 뜨거워졌다."뭐... 고구마 맛 좀 보라 했더니,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그는 웃음기가 더욱 진해졌다."방금 재신이네에서 밥 먹고, 지금은 고구마 먹고.""오빠 아들이 배고픈 거지, 내가 아니야.""그럼 우리 아들 진짜 잘 먹네, 아마 포동포동한 녀석일 거야."강유이는 손바닥으로 배를 감싸 쥐며 웃었다."포동포동한 여자애일 수도 있어."한태군은 손끝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그리고 복스럽게 먹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괜찮아, 난 다 좋아."그때, 강유이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가 꺼내보자, 정연이었다."아주머니?"정연이 웃으며 말했다."유이야, 나랑 네 아저씨 오늘 밤엔 궁에 있을 거니까, 집에 안 갈 거야, 태군이 녀석한테 전해주렴. 아 그리고, 태군이 그 녀석이 혹시 괴롭히면, 아주머니한테 알려주고."한태군이 핸드폰 곁으로 다가갔을 때 마침 이 말을 들었다. 그는 핸드폰을 전해 들고 말했다."됐어요, 어머니, 아버지랑 데이트하시려면 어서 하세요, 저희 방해하지 말고."한태군의 목소리를 듣자, 정연은 콧방귀를 뀌었다."혹시 우리 없을 때 유이 괴롭히기만 해봐, 가만 안 둬."강유이는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핸드폰 옆에서 답했다."걱정 마세요, 아주머니, 태군 오빠 저 안 괴롭힐 거예요."한태군은 전화를 끊고 강유이를 품에 끌어당겼다."어머니 아버지께서 안 계시면, 오늘 밤 우릴 방해할 사람은 없어..."그녀가 작은 소리로 답했다."자꾸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만 해."한태군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볼에 키스했다."네가 내 마누라인 걸 어떡해."...한 달 뒤.강유이의 배는 미세하게 볼록해졌다. 눈에 띄진 않지만, 그래도 그녀는 확실히 배 안의 꼬마 녀석을 느끼고 있다.거기다 정연이 좋은 것, 맛있는 것을 먹여주며 세심하게 돌본 덕분에, 강유이는 조금 살이
한태군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몸은 어떠세요?"그는 웃으며 답했다."괜찮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아플 때도 있는 법이지, 오랫동안 정치를 해오면서, 나랏일에만 매달려, 국민들에게 미안한 점 없었다, 다만 너희에게는 미안하구나."한태군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을 하지 않았다.윌리엄 국왕은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고, 눈빛은 어두웠다."네 외할머니한테 미안하고, 네 어머니와 너에게도 미안하다, 그리고, 예은이 그 아이한테도 미안하구나."예은의 어머니가 한 일은, 그도 마음이 많이 아팠다. 어찌 됐든 그의 딸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예은도, 잘못이 없었다.강유이는 눈동자가 떨려왔다."외할아버님, 건강 잘 챙기셔야 해요, 앞으로 되돌릴 기회가 있을 겁니다, 예은이도 할아버님을 탓하지 않을 거예요."강유이의 말을 듣자 윌리엄 국왕은 웃어 보였다."그러길 바란다."그가 기침을 하기 시작하자, 한태군은 순간 긴장했다."외할아버지."그는 손을 내저었다. 조금 가라앉은 뒤 그가 말했다."내 몸은 내가 잘 안다, 그러니, 너희가 꼭 좀 들어줬으면 하는 부탁이 있어."한태군이 눈을 내리깔았다."말씀하세요."윌리엄 국왕은 침대맡의 서랍에서 문서 두 개를 꺼내 들었다. 정확히 말해서, 그건 두 개의 유언장이었다.하나는 한태군 것이었고.다른 하나는, 진예은 것이다.한태군은 눈에 힘을 주었다."외할아버지, 지금 뭐 하시는...""사람은 다 죽는 그날이 오기 마련이지, 나도 내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전에, 난 꼭 준비를 해야 한다."윌리엄 국왕은 두 개의 유언장을 그의 손에 넘겼다."나도 네가 왕위 계승에 관심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 강요하지 않으마. 내가 죽으면, 유언장은 바로 성립이 된다, 그리고 황실은 앞으로 네 어머니의 것이 될 것이다, 난 정연이 뛰어난 여왕이 될 거라 믿는다, 네 아버지가 돕고 있으니, 마음도 놓이는구나."그는 한태군의 손위에 손을 포갰다."그러니, 외할아버지의 부탁을 들어주렴."한태군의 표정은
이아영이 그녀의 곁으로 걸어가 물었다."예은아, 너, 너 괜찮아?"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의 그녀는 그저 소리 없이 흐느꼈다.이아영은 반재신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 그녀의 곁에서 위로했다. 반재신은 진예은이 이 소식을 접할 것을 알고, 학원에 그녀를 찾으러 왔다.반재신은 진예은을 품에 안았다."폐를 끼쳤네요, 이젠 저에게 맡겨주세요."이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반재신은 진예은을 안은채 차에 올랐고, 이내 차는 학원을 떠났다.그는 진예은을 궁으로 데려갔다. 진예은이 의혹에 휩싸여 있을 때, 한태군과 강유이가 걸어왔다."예은아, 너도 외할아버지의 마지막을 보내드려야지."진예은은 축 늘어진 손을 꽉 움켜쥐고, 빠르게 실내로 걸어갔다.대전 안엔, 애도하러 온 정계 인원들과 고위층들이었다.그리고 윌리엄 국왕의 유체는 유리관 내에 누워있었다. 그의 표정은 평온했고, 마치 잠든듯해 보였다.진예은이 대전으로 들어서자, 한태군도 이어 들어왔다.그녀는 한 걸음씩 유리관 앞을 향해 걸어갔다. 비록 이 외할아버지와 가까이 지내진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외할아버지가 누워있다 생각하니, 마음이 계속 조금씩 아파졌다.추도식이 끝나고, 한태군은 손에 쥐어진 유언장 하나를 그녀에게 건넸다."이거 외할아버지께서 너에게 남겨주신 거야."진예은은 멈칫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서류를 건네받았다."왜 나한테 남겨주는...""너도 할아버지의 외손녀니까."진예은은 입술을 꽉 깨물고 손에 쥔 서류의 한편이 구겨지도록 꽉 움켜쥐었다. 한태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나갔다.그녀는 홀로 텅 빈 복도에 서 있었다. 햇빛이 얼룩덜룩 쏟아져 내려, 그녀의 외로운 그림자를 유리창으로 비췄다.사실, 윌리엄 국왕이 외손녀가 있다는 것을 기억 못 하신다 해도, 그녀는 그다지 슬프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한태군이 유언장을 건네주며 한 ‘너도 외할아버지의 외손녀니까’라는 말.그녀는 그제야 알게 됐다. 그녀의 외할아버지가, 계속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을.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