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여기서 뭐 해? 술을 좀 가져왔어.”남자가 술 두 병을 들고 다가왔다. 그의 곁에는 남자 두 명이 더 서 있었다.두 명은 김수지도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김수지가 멈칫거리다가 그에게 다가갔다.“친구들도 있었어?”남자가 물었다.“응. 괜찮지?”김수지가 대답을 망설이고 있을 때, 주위에 있던 여자 동기들이 웃으며 놀려댔다.“남성분들과 함께 하는데 당연히 괜찮죠~”파티 내내 진예은은 바비큐 그릴 앞에서 고기만 구웠다. 풀장 안에서는 방금 본 두 남자가 여자들과 함께 꽤나 친밀하게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놀이 방식이 꽤나 농밀했다.진예은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김수지의 남자친구가 좋은 의도로 이런 모임을 주최한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김수지의 동기들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모임을 주최하고 낯선 남자를 초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아영이 풀장에서 나왔다.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이아영이 진예은 쪽으로 다가왔다.“나랑 잠깐 화장실 좀 같이 가주지 않을래?”진예은이 멈칫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진예은은 이아영과 함께 화장실로 향했다. 그녀는 문 앞에서 이아영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볼일을 보고 나온 이아영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진예은이 그녀를 돌아보았다.“무슨 일 있어?”이아영이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말했다.“수지 남자친구라는 사람 도대체 어떤 친구를 사귄 거야. 아까 풀장에서 그 거지 같은 놈들이…”이아영이 잠깐 말을 멈추고 헛구역질을 하더니 이어서 말했다.“구역질 나.”진예은이 잠깐 침묵하다가 대답했다.“더 이상 여기 있기 싫으면 지금 나랑 돌아갈래?”이아영이 잠깐 머뭇거리다가 피식 웃었다.“지금 돌아가면 수지 체면이 깎이잖아. 나도 수지와 불편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고.”진예은은 이아영이 진심으로 김수지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담배 한 대를 다 피운 후 이아영은 진예은과 함께 원래 자리로
김수지가 당황한 표정으로 진예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입술을 악물었다.진예은 역시 뜻밖의 상황에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반재신한테 이 모임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반재신이 어떻게 그녀가 이곳에 있는 줄 안 거지?수지의 남자친구가 반재신을 훑어보며 물었다.“누구야, 넌?”그러더니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수지에게 물었다.“얘도 네 친구야?”진예은이 반재신한테 다가갔다.“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반재신이 싸늘한 표정으로 그녀의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을 힐끗 바라본 후, 손을 쭉 뻗으며 진예은을 끌어안았다.“이런 데 오면서 왜 나한테 연락 안 했어?”“설마 저 남자가 예은이 남편이야?”“수지가 예은이 남편은 자영업을 한다고 했었잖아. 그거 작은 사업 아니었어? 저 승용차 몇 대를 합친 가격이면 별장 한채는 충분히 나오겠는데?”주위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에 수지가 양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는 애써 미소를 짜내며 입을 열었다.“예은아, 네 남편 왔네. 진짜 잘 됐다. 어서 오세요.”반재신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전 제 와이프를 데리러 왔을 뿐입니다. 이런 의미 없는 모임은 썩 취향이 아니라서요.”반재신의 비아냥거림에 수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녀의 옆에 서 있던 남자친구 얼굴도 마찬가지로 굳었다.“야, 너 그거 무슨 뜻이야?”반재신은 전혀 동요하지 않으며 말했다.“무슨 뜻이긴요. 전 이렇게 허접한 곳에서 놀고 싶지 않으니까, 더 이상 여기 남을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수지 남자친구는 기가 막혀 웃음이 나왔다. 그가 턱을 치켜들며 소리쳤다.“고급 승용차 몇 대 렌트해서 왔다고 네 신분도 올라가는 줄 알아? 너 내가 누군 줄 알아?”“당신이 누군지는 관심 없습니다.”반재신은 진예은의 허리를 감싸 안고 그곳을 벗어나려 했다. 그때 수지 남자친구가 그에게 달려들었다.“야 이 새끼야, 너 거기 안 서!”경호원이 남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가 경호원한테 손을 대려 하자, 경호원이 허리춤에서
반재신이 의자에 기대며 말했다.“나중에 네 아버지를 모셔오자. 앞으로 여기가 너랑 네 아버지가 살 집이야.”그녀가 경악하며 반재신을 돌아보았다.“너…”“벌써 감격할 필요는 없고.”반재신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자신의 품에 끌어안았다. 그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난 다른 사람들이 내 와이프를 무시하는 모습은 절대 못 보겠거든.”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가슴 한구석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번지고 있었다.목적지에 도착한 후 모든 사람들이 차에서 내렸다. 그들은 다시 한번 웅장한 저택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이곳이 진예은 남편이 사는 곳이라는 게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아까 그가 수지 남자친구의 별장을 허접하다고 했던 게 단번에 이해되었다. 눈앞의 별장은 조금 전 그곳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잔디로 깔린 바닥에는 헬기 전용 주차장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별장 전체가 휴양림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뒤뜰을 산책하다 길이라도 잃을까 겁날 정도였다.반재신이 그들을 데리고 장미 정원으로 향했다. 정원 내부에서는 열 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고용인들이 파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새하얀 보가 씐 기다란 테이블 위에는 포크와 나이프 그리고 와인까지 세팅되어 있었다. 심지어 와인은 한 병에 이천만 이 넘는 로마네 꽁띠였다. 파티에 준비된 음식은 전문 오성급 호텔 주방장이 현장에 직접 와서 만들어 주는 음식이었다.이번 파티는 김수지의 파티를 단번에 초라하게 만들었다. 아니 두 모임을 한 선에 놓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이곳에는 고용인들도 있었고 요리사도 있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벌어졌던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질 걱정을 할 것도 없었다. 그녀들은 마음속으로 하나같이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곳에서 나온 건 탁월한 선택이었어!’반재신이 진예은을 돌아보며 말했다.“이제부터 이 집의 안주인은 너야. 그러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여기 친구분은 다 네 동기들이니까 네가 잘 대접하면 돼.”그러더니 다시 동기들을 바라보
언제 온 건지 반재신이 불쑥 그녀의 뒤에 나타났다. 그가 그녀의 어깨에 양손을 올리며 물었다.“혹시 제가 듣지 말아야 할 일에 관해 이야기 중인가요?”그들 중 한 동기가 웃으며 대답했다.“저희 지금 예은이가 남편분과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에 대해 막 묻고 있었어요.”“그래요?”반재신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가 의미심장하게 한마디 내뱉었다.“저희 둘 예전에 같은 학교를 다녔었거든요. 함께 한 시간이 있으니 자연히 감정이 싹텄죠.”진예은은 순간 멈칫거렸다. 어쩐지 그의 말투가 묘하게 거슬렸다. 그녀가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왜, 아니야?”반재신이 허리를 숙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줄곧 나를 잊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Z 국으로 날 찾으러 온 여자가 누구더라.”진예은이 그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그 뻔뻔스러움은 집안 유전이야?”그녀는 이미 귀까지 빨개진 상태였다.반재신이 그녀의 귓불을 톡 건드리며 웃음을 터뜨렸다.“지금 네 말은 우리 아버지가 뻔뻔하다는 말이지?”“…”진예은은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두 사람의 애정행각에 주위 사람들은 순식간에 들러리가 되어버렸다.이렇게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데, 아까 대체 누가 남편이 진예은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망언을 지껄였던가!…넥스 그룹.어젯밤부터 새벽까지 야근한 주혁은 너무 피곤한 그대로 테이블 위에 쓰러져 버렸다.“태군 형, 도대체 언제 와. 나 이제 안 될 것 같아.”“뭐가 안 된다는 거야.”문가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주혁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문에 기대 서 있는 한태군을 발견한 그는 마치 구세주를 발견한 사람처럼 흥분하기 시작했다.“아이고~ 태군 형! 조금만 더 늦게 왔으면 나 정말 과로로 죽었을지도 몰라.”한태군이 피식 웃으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그동안 고생했어.”주혁이 얼른 소파로 다가와 그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다들 형이 결혼하러 Z 국으로
”그런데 정말 그 사람들 전부가 진심으로 퇴사를 원할까? 그들은 단지 일이 힘들어서 불만을 표출할 곳이 필요했던 것뿐이야. 그렇다면 아예 그 사람들에게 퇴사할 기회를 던져주고 입을 막으면 돼. 진짜로 퇴사할 생각이 없었던 사람들은 자기 처지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보고 결정하겠지. 이럴 때 충분한 복지와 월급을 제공하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주혁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나 알 것 같아. 그 사람들은 이번 일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험이었다고 생각하게 되겠지.”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한태군이 안으로 들어갔다.“그들은 퇴사를 결정하지 않은 게 요행이라고 느낄 거야. 떠난 사람들은 이번 복지를 누리지 못했으니 자연스럽게 불만의 목소리도 멈추게 될 거고.”주혁은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의 말에 도리가 있었다. 한태군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채 그를 바라보았다.“안 타?”그제야 번뜩 정신을 차린 그가 허둥지둥 안으로 들어갔다.엘리베이터가 1 층에 도착하자 두꺼운 금속 문이 양쪽으로 스르륵 열렸다. 내리려고 막 고개를 든 한태군의 눈에 강유이의 모습이 안겨 들어왔다.한태군은 잠깐 놀라더니 곧바로 환하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어떻게 왔어? 어머니가 집에서 쉬라고 하셨잖아.”강유이가 등 뒤에 감추었던 도시락을 꺼내 들고 환하게 웃었다.“엄마가 오빠한테 도시락 가져다주라고 하셨어.”주혁이 두 사람을 한참 동안 번갈아 보다가 슬쩍 껴들며 물었다.“태군 형, 그러니까 이분이 형수님 맞지?”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주혁이 손바닥을 자기 옷에 슥슥 닦더니 헤실헤실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안녕하세요 형수님.”강유이가 예의 바르게 그의 손을 잡으려던 그때, 한태군이 불쑥 주혁의 손을 잡았다.“?”주혁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한태군이 고개를 돌려 그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누가 너한테 손잡아도 된다고 허락했어?”“…”주혁이 잔뜩 풀이 죽은 채 다시 손을 거두어들였다.“손을 못 잡으면
같은 시각, 진예은은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가는 동기들을 배웅하고 있었다. 차 앞에까지 도착한 이아영이 갑자기 뒤로 돌아 진예은을 바라보았다.“오늘 초대해 줘서 고마워. 그리고 너한테 사과할게.”진예은이 당황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이아영이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을 이었다.“난 수지를 친구라고 생각해서 그 애가 너한테 상처 주는 말을 할 때 한 번도 말리지 않았었어. 비록 네가 겉으로는 개의치 않아 보였지만 그래도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진예은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원래부터 혼자 다니는 걸 좋아했고, 다른 사람과 깊게 교류하는 걸 즐기지 않았다. 때문에 누가 그녀의 나쁜 말을 한다고 해도 확실히 개의치 않았었다.하지만 아무리 겉으로는 개의치 않았지만 속마음은 어쩔 수 없이 의식할 때도 있었다.그녀는 이아영이 자신한테 사과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당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마음이 고마웠다.“괜찮아.”“예은이 너는 네 남편 앞에 있을 때가 가장 솔직한 너의 모습인 것 같아. 비록 네가 평소에 우리와 좋게 지내고 있긴 했지만, 네 웃음에서 묘한 거리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었거든.”이아영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너도 익숙하지 않은 모습을 계속 연기하면서 지낼 필요 없어. 네가 우리를 어색하게 대하니까, 다른 애들도 쉽게 너한테 다가가지 못했던 거야. 그러니까 내 말은 애들이 너를 싫어하던 건 절대 아니라고.”이아영은 말을 마치고 곧바로 차에 올라탔다.차가 떠났지만 진예은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조금 전 이아영이 했던 말이 계속 되풀이되었다.겨우 정신을 차리고 돌아선 진예은은 바로 뒤에 있던 반재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야?”설마 방금 이아영이 그녀한테 했던 말을 전부 들은 걸까?반재신이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 웃었다.“왜, 내가 듣지 말아야 할 말이라도 들었을까 봐 겁나?”진예은은 대답하지 않았다.반재신이 그녀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멈춰 섰
진씨 저택은 호화로운 단독 주택은 아니었다. 오히려 비교적 오래전에 구매했었기에 낡은 구조식 건물이었다.또한 상대적으로 번화한 도시 내에 있어서, 낮은 가격으로 내놓으면 확실히 큰 손해를 보았다.최근 들어 이 주변 시세가 상승하는 추세라 당장 집을 내놓거나, 산다면 적당한 가격을 받기 어려웠다. 그래서 더더욱 팔 이유가 없었다.그는 방안을 쭉 둘러보았다. 이곳은 그가 생활한 지 수십 년이 되는 공간이었다. 이 집안 곳곳에 수많은 추억이 남아있었다. 그런 집을 파는 건 정말로 원치 않았다.몇 박스나 되는 짐들이 차에 실어졌다. 진예은의 아버지는 정원에 서서 다시 한번 집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차에 올라탔다.…다음날 진예은은 학원에 도착해 촬영 허가 대본을 제출했다. 볼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던 그녀는 마침 이아영과 동기들과 마주쳤다.문뜩 어제 말이 떠오른 진예은은 입술을 한번 깨물고 그들에게 다가갔다.“좋은 아침이야.”예상치 못한 그녀의 인사에 동기들이 조금 당황했다. 그들의 인상 속 진예은의 이미지로는 절대 먼저 와서 인사를 건네는 캐릭터라 아니었다.이아영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좋은 아침이야, 예은아.”다른 동기들도 곧바로 웃으며 말했다.“우리 이제 막 시대극 수업 참석하러 가는 중이었는데. 예은이 너도 같이 갈래?”예전의 진예은이었다면 핑계를 대고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다.“응 같이 가.”그들은 함께 강의실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웃고 떠들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진예은도 적극적으로 그녀들의 대화에 끼어들었고, 가끔은 먼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동기들과 어울리는 게 전혀 어렵지 않았다. 이아영의 말대로 단지 그녀 스스로 그들을 서먹하게 대했기에, 동기들도 그녀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것뿐이었다.진예은이 선뜻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고, 그녀들의 요청을 거부하지 않자 자연스럽게 그 무리 속에 스며들 수 있었다.교실에 도착한 일행들은 김수지의 얼굴을 확인하
”너 지금 아주 고소해 죽겠지?”진예은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김수지가 다짜고짜 그녀의 멱살을 잡았다.“너 때문에 내가 걔들한테 외면당하게 되었어. 이게 네가 원하던 모습이잖아, 안 그래?”진예은이 그녀의 손을 떼어내며 밀쳤다.“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처음부터 네가 날 속였잖아. 너희 남편과 짰지? 넌 분명 네 남편이 못 온다고 했는데 결국 왔잖아. 너희 둘만 없었다면 걔들도 그렇게 돌아가진 않았을 거야. 이게 다 너희 둘 탓이야!”김수지는 모든 원망을 진예은한테 쏟아냈다. 그녀는 진예은 때문에 자신이 망신을 당했고, 동기들 사이에서 왕따가 되었다고 악다구니를 썼다.진예은은 더 이상 그녀를 상대하고 싶지 않아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하지만 김수지가 그녀를 잡아끌며 가지 못하게 붙잡았다.“똑바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내가 너 절대 가만 안 둬!”바로 그때, 이아영이 나타났다.“김수지 너 지금 뭐 하는 거야?”그녀가 달려와 김수지를 떼어냈다.“너 미쳤어? 이게 무슨 짓이야?”김수지가 그녀를 뿌리치며 말했다.“내가 무슨 미친 짓을 했는데? 너 지난 팔 년 동안의 우리 우정은 다 잊어버린 거야? 사과도 다 했잖아. 도대체 뭘 더 어쩌라는 건데. 혹시 진예은이 너희한테 내 나쁜 말이라도 했어? 그래서 너희들이 나를 무시하는 거야. 그렇지?”그녀는 또다시 모든 “화근”을 진예은한테 덮어씌우려고 했다.“그럴 줄 알았어. 쟤는 그냥 내가 미웠던 거야. 내가 뭘 어쨌는데. 그냥 쟤네 엄마가 감옥에 있다는 말밖에 안 했잖아. 그런 일로 나한테 이렇게까지 복수를 해? 너희들은 전부 진예은 쟤한테 세뇌라도 당한 거야?”“그만해!”이아영이 윽박지르며 말했다.“예은이가 굳이 너한테 복수할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복수한다고 해도 그건 다 네가 자초한 거야.”“김수지, 지난 팔 년 동안의 우정이 있었기에 나도 너를 똑똑히 알게 되었어. 이제 나도 지긋지긋해. 넌 항상 모든 일에서 네가 중심이 되어야 직성이 풀렸지.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