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영훈이 때문에 모든 재산을 포기해야 하는 걸까?’아니, 그는 절대 자기 재산을 포기할 수 없었다.아들이 없어지면 심윤의가 또 한 명을 그에게 낳아주면 그만이었다.학교를 벗어난 서준수는 곧바로 심윤의의 집으로 향했다. 심윤의는 화장대 앞에 앉아 로션을 바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서준수의 방문에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왜 또 이리로 왔어? 와이프한테 들키면 어쩌려고.”“윤의야.”서준수가 그녀의 뒤에 멈춰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누가 우리 영훈이를 데려갔어.”심윤의가 멈칫하더니 잠시 후 로션 뚜껑을 닫았다.“오빠 아들을 누군가가 데려갔다고?”서준수가 눈썹을 찌푸렸다.“네가 그런 거 아니야?”상대는 영훈이의 이름, 자신의 연락처, 심지어 와이프의 이름까지도 알고 있었다. 분명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그는 이곳으로 오는 길 내내 누가 영훈이를 데려갔을지 생각했다. 절대 그 멍청한 와이프는 아닐 것이다. 멍청한 여자라면 자신이 직접 아이를 데리러 갔을 거니까.그 여자를 제외하고 그가 유일하게 떠올릴만한 사람이라면 심윤의밖에 없었다.심윤의가 정색하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오빠,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설마 내가 영훈이를 데려갔다고 의심하는 거야?”서준수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윤의야, 내 말은 그 뜻이 아니라…”심윤의가 그를 밀어냈다.“그 뜻이 아니면 뭔데? 왜 나한테 그런 걸 물은 건데?”‘젠장, 이 남자가 이제는 자기 아들을 위해 나를 떠봐?’서준수가 자신의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만 아니었다면 진작 차버렸을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껏 이 남자 앞에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연기했을 리가 없었다.“오빠, 지금까지 나한테 했던 말들은 다 거짓이었던 거야? 어떻게 오빠 아들 때문에 나를 이렇게 대할 수 있어. 오빠가 이런 사람인 줄 진작 알았다면 그런 선택을 하는 게 아니었어.”그녀가 눈물 한 방울을 톡 떨구었다. 훌륭한 연기였다.서준수가 얼른 그녀를 품에 안고 속상한 듯이 위로했
서준수가 다시 그녀에게 키스했다.“상관하지 마.”하지만 상대방은 끈질기게 문을 두드렸다. 결국, 흥이 식어버린 서준수가 몸을 일으키며 화를 냈다.“젠장 누구야?”그가 아무렇게나 벗어 둔 바지를 다시 입고 나가 문을 열었다. 그런데 문 앞에 서 있는 여자의 모습에 서준수의 낯빛이 파래졌다.서 사모가 무작정 집 안으로 들어와 남자의 뺨을 때렸다.“이 개보다 못한 자식. 당장 우리 영훈이 돌려줘!”문득 그녀의 시선이 소파 위에 앉아 옷으로 자기 몸을 가리고 있는 심윤의에게 향했다. 심윤의 역시 그녀가 쳐들어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완전히 당황한 상태였다.서 사모는 진작 두 사람의 일을 전해 들었었지만 자기 눈으로 직접 보게 되자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그녀는 당장 뛰어들어가 테이블 위에 놓인 아무 물건이나 들어 심윤의에게 던졌다.“이 창녀가 감히 지금껏 날 속여?”“꺄악, 살려줘 오빠!”서 사모가 있는 힘껏 심윤의의 머리채를 잡았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휘둘렀다. 심윤의는 속절없이 맞으며 비명만 내질렀다.서준수가 달려가 심윤의에게서 서 사모를 떨어뜨린 후 그녀를 바닥에 밀쳤다.“너 정말 미쳤어?”그가 너무 힘껏 밀친 탓에 서 사모의 손이 테이블 모서리에 부딪히며 피가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분노로 이성이 마비되어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그녀가 이를 악물고 바닥에서 일어나 그의 앞에 마주 섰다. 그리고 울고 소리 지르며 연신 그를 때렸다.“서준수 이 개 같은 자식. 영훈이는 네 아들이야. 네가 어떻게 이런 창녀 때문에 영훈이를 납치할 수 있어. 내 아들 돌려내!”서준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영훈이를 납치해?”“네가 그랬잖아. 아직까지 발뺌할 생각이야?”서 사모가 히스테릭하게 소리쳤다.“서준수, 내가 이렇게 빌게. 난 영훈이만 있으면 돼. 이혼을 원한다고 했지? 나 돈도 필요 없어. 영훈이만 있으면 되니까 우리 영훈이를 나한테 돌려줘!”서준수가 서 사모의 손을 잡아당기며 그녀를
그가 막 문을 닫으려는데 남자가 손으로 문을 막았다.“단순히 싸운 거 맞습니까? 제법 큰 소란 소리가 들렸는데요?”서준수가 막 화를 내려는데 심윤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제 언니가 쓰러졌어요. 아직 숨을 쉬고 있으니 죄송하지만, 구급차 좀 불러주실 수 있을까요?”‘젠장, 절대 서준수 때문에 살인 방조죄를 뒤집어쓸 수는 없어.’서 사모가 죽는다고 해도 절대 그 장소가 자신의 집이어서는 안 됐다.서준수는 심윤의가 그녀를 살리려고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화를 낼 수도 없었다.남자가 집 안으로 들어와 서 사모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직 작게 숨을 쉬고 있었다. 그가 휴대폰을 꺼내 119에 신고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했다.구급 대원이 서 사모를 구급차에 실었다. 심윤의는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녀는 서준수를 돌아보았다. 서준수의 얼굴이 형편없이 구겨져있었다.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오빠, 너무 화내지 마. 우린 저 여자를 죽여 살인을 저지를 필요가 없어. 만약 오빠가 잡혀들어가면 나는 어떡해.”조금 전까지 화를 내며 씩씩거리던 서준수가 그녀의 말에 순간 번뜩 정신이 들었다. 그가 심윤의를 품에 끌어안았다.“미안해. 내가 너무 성급했어. 네가 이렇게 날 생각해 주다니. 네가 있어서 너무 다행이야.”자신이 심윤의를 오해했었다.이제 보니 심윤의는 자신을 감옥에 보내지 않으려고 그런 행동을 했던 거였다.심윤의는 그의 품에 기댄 채 분노에 이를 악물었다. 이 일을 해결한 후 어떻게든 서준수 이 위험한 남자한테서 벗어나야 했다.그들과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차 한 대가 정차되어 있었다. 웬 남자가 차 안에 앉아 포옹하고 있는 남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휴대폰을 들고 어딘가에 전화했다.“대표님 예상대로 서준수가 자기 본처한테 살인 충동을 느꼈습니다.”서류를 확인하던 반재신의 눈동자가 남자의 말에 흔들렸다.“계속 주시하고 있어요. 서 사모의 목숨은 꼭 살려야 합니다.”
그가 서류를 덮으며 무의식적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난… 난 당연히 양 비서일 거로 생각해서.”진예은이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반재신이 멍한 표정으로 도시락을 바라보며 물었다.“너 나한테 도시락 배달 온 거야?”“싫으면 말던가.”진예은이 도시락 뚜껑을 닫으려 하자 그가 서둘러 그녀를 말렸다.“싫단 말 안 했어.”반재신이 젓가락을 들더니 잠깐 멈칫했다. 곧바로 그가 고개를 들고 웃기 시작했다.“일주일 동안 나랑 말 안 하겠다며. 그래서 상관 안 하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도시락을 싸올 생각을 다 했어?”그는 그녀가 정말로 화가 나서 자신에게 냉대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녀의 화가 제법 빠르게 풀린 것 같았다.어젯밤 괜히 서재에서 하루를 보낸 게 아니었다.진예은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싱긋 미소 지었다.“죄수들이 사형을 당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거하게 한 끼 먹인다는 말 들어봤어?”반재신이 대답하지 못했다.그녀가 테이블을 손으로 짚으며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이게 바로 그 한 끼야.”그가 숟가락을 들고 국물을 한 술 떠먹었다.“약이라도 탔어?”그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피식 웃었다.“어쩐지 맛이 이상하더라.”분명 반재신을 골탕먹이려고 꺼낸 말인데 오히려 자신이 당한 꼴이 되었다. 진예은이 그의 숟가락을 빼앗았다.“맛이 이상하면 먹지 마.”‘두 시간 내내 푹 우려진 국을 갖고 왔더니 감히 반찬 투정을 부려?’반재신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밥을 먹지 뭐.”그가 뻔뻔한 표정으로 볶음밥을 떠먹었다. 곧이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볶음밥은 그나마 괜찮네.”“그나마? 됐어. 네 입맛에 안 맞는 것 같은데 먹지 않는 게 좋겠네.”진예은이 도시락을 거두어가려고 하자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반재언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진짜 가져가게?”그녀가 씩씩거리며 말했다.“넌 좀 굶어도 돼.”“어떻게 내가 마침 배고플 걸 알았어?”진예은은 대답하지 않았다.아침에 간단한 죽만 먹고 점심이 넘도록 아무것도
산부인과. 반재신은 복도를 서성거리며 안절부절못했다. 곁에 있던 양우빈이 그를 바라보았다.“대표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께서 아마 곧 아이를 낳으시려고 그러시나 봅니다.”반재신이 흠칫 놀랐다.‘애가 곧 나온다고?’그가 양우빈을 돌아보았다.“애를 낳을 때가 되면 배가 아프답니까?”양우빈이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제가 여자도 아닌데 어떻게 알겠어요.”그러더니 곧바로 보충하며 말했다.“하지만 여자들이 애를 낳을 때가 되면 이런 증상을 보인다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하물며 사모님의 배가 저렇게 커졌는데 예정일이 다가오고 있을 수도 있죠.”“재신아.”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반재신이 고개를 돌렸다.“어머니, 아버지?”강성연과 반지훈이 그들 쪽으로 다가왔다.“예은이 상태는 좀 어때?”그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아직 안에 있어요…”의사가 나와 물었다.“어느 분이 진예은 씨 가족이시죠?”반재신이 대답했다.“접니다.”의사가 엄숙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진예은 씨가 며칠 사이로 아이를 출산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미리 말씀드리는데,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40주가 되어야 아이가 나옵니다. 하지만 진예은 씨는 이제 34주라 조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기를 채워서 나오는 다른 애들과 비교하면 체질적으로 약할 수도 있고 쉽게 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미리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반재신이 입술을 살짝 깨물고 의사를 바라보았다.“예은이는 현재 위험한 상황인가요?”의사가 멈칫하더니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산모가 위험해질 상황은 아이를 낳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 마세요. 저희가 최선을 다해 아이와 산모를 지킬 겁니다.”그가 한참을 망설이다가 물었다.“애를 낳을 때 많이 아플까요?”강성연이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아이를 낳는 건 예은인데, 왜 네가 낳는 것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의사도 웃었다.“아픈 정도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
진예은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그의 손을 찰싹 때리며 말했다.“자꾸 웃기지 마.”그가 그녀의 볼을 조심스럽게 감쌌다.“너 지금 힘들잖아. 그러니까 이번엔 내가 마지못해 널 챙겨줘야지.”그녀가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마지못해? 내가 언제 챙겨달라고 했나 뭐?”반재신이 한숨을 내쉬었다.“네가 날 안 챙겨주는 것도 모자라, 내가 널 챙기는 것도 막으려고?”“꼭 임산부랑 이렇게 끝까지 입씨름을 해야겠어? 어떻게 한 번을 안 져줘. 네가 하도 기를 채워서 아이가 다 나오려고 하잖아.”그녀는 너무나 기가 막혔다.반재신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더니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 옆에 앉았다. 그가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알았어. 네가 아이를 낳은 후에는 내가 다 너한테 져 줄게.”그녀가 그를 밀어냈다.“넌 아이밖에 생각할 줄 몰라.”반재신이 또다시 그녀를 자신의 품에 끌어안으며 끙하는 앓는 소리를 냈다.“너도 예전에 연서밖에 몰랐잖아.”진예은은 어이없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했다.반재신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난 한 번도 너를 신경 쓰지 않은 적이 없어.”병실 문 앞에 서 있던 강성연과 반지훈이 서로 마주 보았다. 강성연이 눈썹을 찡긋했다.“바로 화해했네요. 우리가 괜한 걱정을 했나 봐요.”반지훈도 미소 지었다.“처음부터 우리가 걱정할 건 없었어. 그렇지?”두 사람이 웃으며 자리를 벗어났다.진예은이 잠이 든 후 반재신이 병실을 나왔다. 양우빈이 그를 향해 다가오더니 병실 안을 힐끗 바라보았다.“대표님, 서 사모도 이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반재신이 미간을 찌푸렸다.“상태는 어떻습니까?”“위험할 정도는 아닙니다. 현재 뇌진탕 때문에 잠들어 있는 것뿐입니다. 의사한테는 저희가 시킨 대로 말하라 당부했습니다. 서준수는 현재 서 사모가 의식을 되찾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반재신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올라갔다.“그들에게 선물을 보내
서준수가 기자들이 들고 있던 카메라를 빼앗아 바닥에 던졌다. 그가 기자들을 가리키며 고함을 질렀다.“경고하는데 쓸데없는 일에 관심 꺼. 빨리 꺼지지 못해? 내가 당신들을 처리 못 할 것 같아?”“서준수 씨, 지금 화가 나서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겁니까? 듣기로 여기 이 상간녀는 서 사모님의 정신과 담당 의사였다던데. 두 사람은 어제부터 이런 관계를 맺으셨던 겁니까?”기자들은 서준수의 말을 무시했다. 그들은 카메라가 부서진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번에는 휴대폰을 꺼내 들고 촬영했다.병원 복도가 기자들로 가득 차 마비된 상황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들이 달려와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옆방 병실에 있던 환자들과 가족들까지 나와 구경하고 있었다.“저게 무슨 일이래?”“내가 들었는데 남편이란 놈이 아내가 의식불명 상태인데, 그 병실에서 상간녀와 농탕 질을 하고 있었대.”“천하의 개만도 못한 놈이네. 아니지 개가 아까워. 그게 남자야? 정말 저런 놈이 같은 남자 체면을 다 깎는다니까.”그들의 사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게 되었다.[인간말종 남편, 상간녀와 함께 아내 병실에서 농탕질을 벌여]라는 자극적인 타이틀이 붙었다. 그 열기가 어찌나 뜨거웠는지 서 사모의 폭행 동영상보다 더 화제가 되었다. 전에 남우를 욕하던 네티즌들이 비난의 화살을 심윤의에게 돌렸다. 반나절도 채 되지 않는 사이에 심윤의의 신분이 낱낱이 까밝혀 졌다.수많은 네티즌이 분노했다.#도대체 의사 면허는 어떻게 어떻게 땄대?##정신과 의사가 아니라 성적 욕구를 풀어주는 의사 아니야?##서 사모는 그전부터 이혼을 요구했었는데 남자가 서 사모한테 위자료를 한 푼도 주지 않겠다고 떼를 썼대. 서 사모는 당연히 동의하지 않았고. 아마 서 사모가 입원하게 된 것도 분명 그 미친놈과 미친년이 한 짓일 거야.#기사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윤의의 수많은 흑역사가 공개되었다.낙태를 네 번이나 했고, 병원에 있었을 때 솔로도 아니면서 여러 의사와 환자들과 관
그녀는 급히 그의 손을 막으며 고개를 돌렸다.“의도가 불순해.”그는 사랑스러운 그녀를 품속에 껴안으며 말했다.“이러면 의도가 불순한 거야?”“응.”뾰로통해하며 대답하는 남우는 귀가 빨개졌다.그녀는 급히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휴대폰을 꺼내 들며 말했다.“아빠한테 전화할 거니까 따라오지 마.”그러고는 뒤도 돌아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반재언은 의자에 비스듬히 기댔다.그녀는 참으로 사람을 애간장 태우는 것 같다.심윤의는 이틀 동안 집에서 나오지 못했다. 휴대폰은 종일 울렸고 문자들은 모두 모욕과 저주로 가득했다.소파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심윤의는 이틀 동안 거의 눈도 붙이지 못했다. 그녀는 지금 외출해도 이웃의 따가운 시선과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수 없었다.이것은 모두 서준수 때문이고 그가 망친 것이다.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매장당할 날을 기다릴 수 없었던 그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서준수에게 모두 떠넘기려고 머리를 굴렸다.그러다 뭔가 떠오른 것 같은 심윤의는 눈에 서늘한 기운이 맴돌았다.같은 시각 병원.새벽부터 진통이 시작되어 아침 8시까지 이어졌고 진예은은 너무 고통스러워했다.그녀의 옆에서 손을 잡고 있는 반재신은 진통이 심해질 때마다 얼굴이 창백해지는 진예은에 불안해했다.그는 의사를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어젯밤에는 아파하지 않았는데 왜 지금 이렇게 아픈 거죠? 어떻게라도 좀 해줘요.”간호사는 난감해하며 상황을 설명했다.“아이를 낳는 것이니 아픈 것은 당연해요. 자궁이 아직 3분의 1밖에 열리지 않았어요. 조금 더 열려야 출산할 수 있어요.”그러자 반재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지금도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데 그렇게 열릴 때까지 어떻게 기다려요? 아프지 않게 해줄 방법은 없어요?”“남편분, 진정하세요. 무통 주사로 통증을 완화할 수는 있어요.”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럼 얼른 놔주세요.”말을 마친 그는 진예은의 땀을 닦아주며 다독였다.“조금만 참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