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서를 걱정하시는 건 알지만, 의사인 저도 확신이 없이 환자를 치료하지 않아요.”그녀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제가 약을 준 건 맞지만, 그것들은 불면증과 두통에 효과가 좋은 것들이고 절대 그것 때문에 유발된 증상이 아니에요. 약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장담할 수 있어요. 믿지 못하시겠다면 감정해 봐도 돼요.”말을 마친 그녀는 가방에서 수면치료 효과가 있는 약통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진예은은 받지 않았다. 잠시 침묵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믿어요.”심윤의는 약들을 도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그림을 보며 말했다.“사실 연서가 치료를 거부하는 원인은 고모에게 있어요.”진예은은 의아해하며 물었다.“나 때문이라고요?”“만약 치유된다면 고모가 자신을 버릴까 봐 치료를 거부하는 거예요.”심윤의는 그녀를 바라보며 덧붙였다.“특히 임신한 고모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연서에게는 위협이나 다름없죠.”진예은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그러자 심윤의는 미소를 지으며 태도를 고쳤다.“물론 저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에요. 심리 치료에는 적절한 약이 필요해서 뭘 제일 두려워하고 뭘 직면하기 어려워하는지 저보다는 고모가 더 잘 알 것 같아요.”좀 더 얘기를 나누고 심윤의는 약통을 건네고 돌아가기 전 진예은에게 물었다.“연서 보러 자주 와도 될까요?”그녀를 바라보던 진예은이 대답했다.“육시준에게 물어보세요.”심윤의는 웃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대표님은 큰일을 하는 분이셔서 일로도 바쁘신데 귀찮게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남자들은 이런 문제들을 시끄러워하잖아요.”진예은은 차에 타는 그녀를 배웅했다.백미러를 보던 심윤의는 입꼬리를 올렸다. 얼마나 대단한 여자인지 보려고 했는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그 소녀를 소중히 여기는 걸 봐선 그녀를 위해 ‘희생’할 수 있을 것 같았다.거실로 돌아온 진예은은 손에 쥐어진 약통을 도우미에게 건넸다.“감정 맡겨보세요.”도우미는 의아해하며 물었다.“이 약에 문제가 있나요?”“
남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당황스러워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그건 내가 빚을 져서 봐주는 거야.”그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는 그녀의 입술을 만지며 말했다.“명색의 스카이섬 도련님이 빚을 졌다고 봐 준다고?”남우는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다. 하지만 반재언이 그녀를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움직이면 나도 어떻게 할지 몰라?”그녀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얼굴은 점점 더 빨개졌다.“그러면 고자로 만들 거야.”반재언은 가볍게 코웃음 쳤다.“그럼 넌 어떡하려고?”뜨거운 열기가 그녀의 온몸을 덮쳤다. 잘 돌아가던 머리마저 회전되지 않았다. 이미 고장 나버린 것 같다.그녀는 감정에 서툴렀지만 남자들 속에 섞여 있었던 터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남자로 위장했을 때에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큰일 날 수도 있다.반재언의 기다란 손가락이 그녀의 코를 살짝 건드리며 말했다.“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 좀 해봐야겠어.”그녀가 깊게 심호흡했다.“컨셉 유지가 그렇게 어려운 거야?”반재언은 이마에 손을 올렸다.“내가 어떤 컨셉인데?”“성숙하고 듬직하며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도도함.”처음 만났을 때 그는 이런 망나니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반재언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누가 여자에 관심 없다고 했어?”그녀는 아니꼽게 그를 흘겨 보았다.“치지연과 정민희를 여자로 봤다?”“아니.”반재언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입술을 살짝 건드렸다.“너의 미모에만 관심 있지.”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남우는 두 손 두 발 모두 들고 그대로 그의 품에 안겼다.“투항할게.”얌전한 고양이처럼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남우를 보던 반재신은 입꼬리를 올렸다. “무슨 일로 날 찾은 거야?”그러자 남우는 그의 품에서 빠져나갔다.“현재 빈털터리고 아빠가 카드까지 동결시켰어. 그래서 월급 받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반재언이 웃음을 터뜨렸다.“개인 비서 어때?”그녀가 의아해하며 물었다.“뭘
반재신은 손에 들린 외투를 그녀에게 입혔다. 멈칫하던 그녀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그는 따뜻하게 그녀를 감싸주며 말했다.“요즘 기온 차가 심한데 옷을 왜 이렇게 얇게 입은 거야? 감기 들면 어떡해?”진예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오늘 의사 선생님께서 오셨어.”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알고 있어.”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침실로 향했다. 방으로 들어가자 진예은이 그의 팔을 잡으며 물었다.“나한테 물어볼 거 없어?”그녀의 손을 잡은 그는 진예은을 지그시 바라보았다.“네가 하는 일에는 이유가 있을 텐데 내가 그것 때문에 의심할 거로 생각했던 거야?”진예은은 시선을 내리깔았다.“미안.”반재신은 그녀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다시는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지 마. 억울한 것이 있으면 내게 풀어.”그는 의사의 감정을 자극하지 말라는 지시를 항시 명심하고 있었다. 약을 의심해서 검증하려는 사소한 문제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할 수 있게 밀어주기로 했다.진예은은 그의 품속을 파고들었다.“반재신.”진예은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너무 졸려. 나 좀 재워줘.”멈칫하던 반재신은 그녀를 번쩍 안아 들다 하마터면 놓칠뻔했다.그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너무 무거워.”진예은은 그의 가슴에 기대며 대답했다.“내가 아니라 너의 아들이 무거운 거야.”조심스럽게 그녀를 침대에 내려놓고 슬리퍼를 벗겼다.“그래, 결국 두 사람이니까.”그녀를 침대에 눕힌 그도 옆자리에 나란히 누웠다.그는 그녀의 손을 어루만졌다.“자.”눈을 감은 진예은은 그의 고르로운 숨소리와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점점 꿈나라로 빠져들어 갔다.그렇게 시간은 지나 저녁 8시가 되었다.잠에서 깬 진예은은 반재신이 보이지 않자, 방을 나섰다. 아래층으로 내려온 그녀는 주방에서 분주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진예은은 식탁으로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인기척 소리에 고개를 돌린 반재신이 말했다.“깼어?”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심윤의가 몰래 반재신의 표정을 살펴보다 그가 미간을 찌푸린 것을 보곤 다시 말했다."예은 씨가 왜 저를 그렇게 경계하는 건지 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제가 연서를 해치려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예은 씨 연서 많이 아끼고 있는 것 같아요.""연서가 예은이 친조카니까 아끼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반재신의 말을 들은 심윤의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그렇네요, 하지만 지금 아이도 가지고 있는데 아무리 연서가 걱정된다고 해도 자기랑 배 속의 아이도 생각해야죠."그 말을 들은 반재신은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재신 씨, 예은 씨가 연서를 이렇게 걱정하고 있는데 연서가 정말 치료를 안 받으려고 하면 어떡하죠? 저 정말 연서가 너무 걱정돼요."생각에 잠겼던 반재신은 그 말을 듣곤 멈칫하더니 심윤의에게 눈길을 돌렸다."그건 심 선생님께서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연서 잘 치료해 주기만 하면 되니까. 저는 회의가 있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반재신은 말을 마치자마자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심윤의는 멀어지는 반재신의 뒷모습을 보며 걱정에 휩싸였다. 조금 전 그의 태도는 누가 봐도 언짢았다, 그녀는 자신이 말을 잘못한 건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한편, 진예은은 진연서와 함께 마당에서 밭을 가꾸고 있었다. 진연서는 화단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작은 삽을 들고 아주머니를 따라 제법 능숙하게 움직이고 있었다.아이는 예전처럼 밝지 않았지만 적어도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 흥취를 잃지 않았다. "연서 잘하네, 이렇게 빨리 배우고."진예은이 옆에서 진연서를 칭찬했다."우리 연서 아가씨 확실히 똑똑한 것 같아요."아주머니께서도 웃으며 말했다.그때, 고급 외제 차 한 대가 대문 밖에 멈춰 섰고 진예은은 차 안에서 내리는 이를 보곤 조금 놀랐다."큰 도련님."아주머니께서 반재언을 보곤 일어서서 반갑게 인사했다."나는 안 들어가면 안 돼? 나 좀 그런데."그때 남우가 고개를 내밀고 마당을 한 번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반재언은
집안으로 들어선 남우는 아주머니께서 내온 차와 과일을 먹으며 진예은 옆에 앉아있는 진연서를 바라봤다.그녀도 AM그룹에서 들은 말이 있었기에 이 아이가 바로 그들이 말하는 조카일 것으로 생각했다.그때 마침 진연서도 남우를 바라봤고 눈이 마주친 순간, 남우가 예쁘게 웃었지만 진연서는 멈칫하더니 얼른 고개를 숙였다.남우는 양갈래 머리를 한 채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아이를 보며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남우는 마치 예전의 시월이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하지만 시월이는 진연서와 같은 나이에도 이렇게 담이 작지 않았다.아주머니께서 과자를 내오자 진연서는 과자를 바라보며 침을 넘겼지만 혼자 가져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남우가 과자를 집어 들고 아이에게 건넸지만 진연서는 여전히 움직이지 못했다."먹어."남우가 진연서의 손을 잡고 과자를 쥐여주며 웃었다.진연서는 남우와 손에 있는 과자를 번갈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과자를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해바라기를 먹고 있는 햄스터 같기도 했다.진예은과 반재언은 그런 두 사람을 바라봤다.진연서는 심리에 문제가 생긴 뒤로 진예은 말고 그 누구와도 가까이하지 않으려 했다. 심지어 다른 이가 준 물건을 가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그런데 그런 진연서가 남우가 주는 과자를 받았다니, 물론 남우가 주동적으로 아이의 손에 쥐어준 것이었지만 진예은은 조금 놀랐다."감사합니다. 라고 해야지."진예은이 진연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아이가 잠시 망설이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감사합니다.""괜찮아, 우리 연서 너무 귀여운데.""아이 좋아해?"그때 반재언이 남우를 보며 물었다."아이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 귀엽잖아.""그럼 하나 낳으면 되겠네."반재언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하자 남우가 그를 흘겨봤다."낳을 거면 혼자 낳아, 나는 다른 사람이 낳은 아이만 좋아하는 거니까.""나 임신하게 할 능력 있으면 내가 낳을게."반재언이 귤을 까 남우에게 건네주며 말했다.그 말을 들은 진예은이 웃었다."남우
"재신이가 나한테 잘해주고 있는 거 나 다 알아, 내가 자신이 없을 뿐이야…""자신을 믿어봐도 되잖아."반재언이 진예은을 바라보며 말했다.하지만 진예은은 여전히 자신이 없었다, 자신을 믿는다고?"너만 괜찮다면 연서 남우랑 같이 지내게 해도 돼.""나는 괜찮은데 연서가…""걱정하지 마, 연서 아프다는 거 알아, 저 나이대 아이를 치료하는 건 어렵지 않아, 재미있는 게 부족해서 그런 거야."반재언의 말을 들은 진예은이 생각에 잠겼다. 진연서가 심윤의에게 치료를 받게 하는 건 그녀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하지만 남우는 왠지 진연서의 마음을 열 수 있을 것도 같았다.두 사람이 집안으로 들어서자 남우가 진연서 옆에 앉아 게임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휴대폰 게임을 해본 적 없었던 진연서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남우가 가르쳐 주는 대로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진예은이 부르는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진예은은 그런 진연서를 보며 반재언의 말을 믿어도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진연서를 치료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 방법이 잘못된 걸 수도 있었다. 진연서는 친구와 재미있게 놀아야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었다.진예은은 진연서가 아프다는 것만 생각하고 놀이를 즐기는 아이라는 사실을 소홀히 했다.아이가 실수해도 남우는 옆에서 손뼉을 치며 칭찬했다."우와, 우리 연서 대단하네, 게임 완전 잘해."진연서는 남우의 칭찬에 힘입어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그리고 진예은이 돌아온 것을 보고 나서야 휴대폰을 남우에게 돌려줬다."연서 이 언니랑 노는 거 좋아?"진예은이 아이에게 다가가 머리를 만지며 물었다.남우도 궁금한 얼굴로 기대를 담아 진연서를 바라봤다.그녀는 조용하고 말 잘 듣는 진연서가 좋았다.그리고 곧 진연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망설이고 있는 듯 조심스럽게 행동했다."그럼 앞으로 이 언니랑 노는 거 어때? 뭐 놀고 싶을 때 언니랑 말하면 돼. 고모는 우리 연서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진예은이 아이 옆에 앉
"그럼 연서 잘 데리고 있어, 잊어버리지 말고."반재언이 남우의 등받이에 팔을 걸치고 말했다."지금 나 무시해?"남우가 발끈하자 반재언이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또 변태같이!""나는 좋아."반재언이 웃으며 말했다.이튿날, 진연서는 마당에 앉아 문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곧 대문 밖에 차 한 대가 멈춰 섰고 아이가 기대 가득한 얼굴로 일어섰지만 차 안에선 내리는 여자를 확인한 아이의 얼굴에 걸려있던 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심윤의가 가방을 들고 마당 안으로 들어서다 마당에 있는 진연서를 보곤 아이에게 다가갔다."왜 혼자 여기 있어? 연서야, 고모는 안 계셔?"하지만 진연서는 두려운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심윤의는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곤 다시 말했다."연서야, 이모는 말 잘 듣는 아이 좋아한다고 했지, 연서가 말 안 들으면 연서 고모도 연서 안 좋아할 거라고 말했잖아."심윤의의 말을 들은 진연서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하긴, 네 고모도 이제 곧 자기 아이가 생길 거고 새로운 가정이 생길 거니까. 그런데 너는 그냥 얹혀사는 아이잖아, 네 고모가 아이를 낳고 나면 너를 좋아할 것 같아?"심윤의의 말을 들은 아이가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물고 눈시울을 붉혔다."고모랑 영원히 같이 있고 싶으면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어. 네 고모 아이가 없어지면 너 영원히 너희 고모 아이가 될 수 있는 거야."심윤의가 아이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연서야~"그때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은 진연서가 고개를 들었다.남우가 나타난 그 순간, 아이는 마치 희망을 본 것 같았다. 진연서는 얼른 심윤의를 밀어냈고 남우는 두 팔 벌려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나 그렇게 보고 싶었어?"남우가 진연서를 안고 아이의 얼굴을 만지며 물었다.하지만 진연서의 안색을 확인한 남우는 그제야 마당에 진예은 말고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저분은 누구야?"남우가 물었지만 진연서는 고개를 숙인 채
남우는 진예은의 친구라고 할 수 없었지만, 자신을 욕하면서 진예은까지 끌어들이는 심윤의를 본 남우는 눈앞의 여자가 보통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내가 교양이 있든 없든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겁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 집에 와서 나한테 눈치를 주는 것도 그렇고 이 집 사모님까지 비웃는 건 무슨 경우입니까? 누가 보면 당신이 이 집 사모님인 줄 알겠네요.""지금 무,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뭘 그렇게 당황하는 거예요? 이 집 사모님이 당신일 리가 없잖아. 반재신 도련님 안목이 얼마나 뒤떨어져서 당신 같은 걸 마음에 들어 할 거라고 생각 안 해요."남우는 그 말을 마치자마자 이 여자가 누군지 갑자기 생각났다.반재언이 그날 보고 있던 자료에 바로 이 여자가 있었다.치지연만도 못한 여자가 이렇게 날뛰고 있다니, 적어도 치지연은 사람을 욕할 때 다른 사람까지 끼우지는 않았다. 남우는 센 척하는 심윤의가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다."당신…"남우의 말을 들은 심윤의가 화를 나 말을 잇지 못했다.하지만 이곳에서 화를 냈다가 다른 사람이 본다면 문제가 될 수 있었기에 심윤의는 화를 가라앉히고 남우를 쏘아봤다."다음에 또 봐요, 우리."결국 심윤의는 그곳을 떠나갈 수밖에 없었다.남우는 그런 심윤의를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저딴 게 감히 자신과 싸우려고 든 게 어이 없었다."연서야, 언니한테 말해 봐, 연서 저 이모 싫지?"남우가 무릎을 굽히고 앉아 진연서에게 물었다.그러자 진연서가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괜찮아, 앞으로 저 이모가 또 연서 괴롭히면 언니한테 말해, 언니가 혼내줄게."남우가 연서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안 괴롭혔어요."그때, 쭉 말을 하지 않던 연서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런데 자꾸 억지로 약 먹으라고 하고 제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게 해요.""억지로 약을 먹게 했다고?"진연서의 말을 들은 남우가 미간을 찌푸렸다.진연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우가 다시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