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이가 그녀의 곁에 다가가 앉았다.“그것도 그러네요.”남우가 시선을 내려뜨리고 생각에 잠겼다.“유이 씨는 예전에 둘째 오빠와 함께 영국 유학을 다녀왔었다고 했죠? 큰오빠는 같이 안 갔었나요?”그녀가 웃으며 답했다.“큰오빠는 저희랑 같이 안 가고 쭉 S 국에 있었어요. 졸업하고 난 뒤에 영국으로 와서 저희랑 한동안 지냈어요.”“그래요…”강유이가 그녀의 곁으로 바싹 다가갔다.“우리 오빠 일에 관심이 생긴 거예요?”그녀가 흠칫 놀라더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누가 그렇대요? 하나도 관심 없거든요.”강유이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문득 뭔가를 떠올린 강유이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제가 사진 보여줄게요.”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사진이요?”강유이가 사진첩을 뒤적거리다가 그녀에게 건넸다. 휴대폰을 건네받은 그녀가 사진을 확인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건…”“저랑 큰오빠가 어렸을 때 아역 배우를 했었는데, 그때 찍은 거예요. 어때요?”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유이 씨 큰오빠가 아역 배우 출신이었어요?”“예전에 저를 걱정한답시고 같이 연예계에 발을 들여놨던 적이 있었거든요.”강유이가 턱받침을 하고 물었다.“귀엽지 않아요?”남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반재언, 어렸을 때 꽤 귀여웠잖아.’꼬마의 작고 흰 얼굴을 마구 꼬집어 주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사진을 넘기던 그녀가 멈칫했다.“이건 유이 씨 큰오빠와 둘째 오빠예요?”“맞아요.”“많이 닮았어요.”단순히 얼굴만 보면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세 남매는 쌍둥이였다. 때문에 강유이를 제외하고 남은 두 형제의 생김새는 꽤 닮아있었다.유일하게 다른 점이라면 반재언의 눈가에는 점이 없다는 것이었다.계속하여 사진을 넘기던 그녀는 곧 반 씨 가문의 가족사진을 보게 되었다. 순간 남우는 유전자의 힘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철저히 깨닫게 되었다.“이건 가족사진이에요?”강유이가 씩 웃으며 말했다.“완전히 가족사진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한태군은 그런 쪽으로 생각한 적 없는 것 같지만, 그는 한씨 가문의 외동아들이었다. ‘만약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남자아이를 원한다면?’한태군은 그녀의 작은 머릿속에 지금, 아침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부잣집 가문에서 남자아이를 낳으라고 핍박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가 그녀의 볼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며 소리 내어 웃었다.“걱정 마.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딸을 무척 좋아하시니까. 우리 어머니를 봐. 지금 나보다 유이 너를 더 좋아하잖아.”강유이의 시선이 그의 몸에 남은 칼자국으로 향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오돌토돌하게 튀어나온 상처를 매만졌다. 아마 그가 실종되었던 그 시기에 남은 상처인 것 같았다.“아프지?”한태군이 그녀의 손을 잡더니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나중에 네가 아이를 낳을 때 비하면 이 정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야.”그녀가 흠칫 놀라다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오빠도 안 아파하는데. 나도 겁 안 나.”그가 소리 내어 웃었다.“난 네가 울까 봐 겁나는데.”강유이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한편, 밤이 되도록 방 안에만 있던 남우는 배가 고파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되어서야 방에서 나왔다.그녀는 강유이가 알려준 방으로 찾아갔다. 다행히 그녀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3208호였다.그녀가 초인종을 눌렀다.잠시 후 문이 열렸다.방문을 열어준 사람을 확인한 그녀가 흠칫 놀라며 옴몸이 굳어졌다.“여기… 당신 방이었어요?”반재언이 문에 기대서 있었다. 셔츠 단추가 두 개 정도 풀려 살짝 벌어져 있는 그 모습이 매우 퇴폐해 보이기까지 했다.“아니면 누구 방인 줄 알았어요? 유이 방?”남우는 그제야 강유이가 자신을 속였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배가 고파서 같이 밥 먹으러 갈 사람을 찾고 있었어요. 마침 그쪽도 한가해 보이는데 끼워줄게요.”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이거 어쩌죠. 제가 방금 음식을 주문해서요.”“됐어요, 그럼. 저 혼자 갈 거니까.”그녀가 막 돌아서려는데 갑자
그녀가 얼굴을 옆으로 홱 돌리더니 입을 삐쭉거렸다.“붉힌 적 없어.”그가 피식 웃었다.“예전에 사내놈들이랑 한 지붕 밑에서 잘만 지내던 남우 도련님께서, 이제 수줍음도 다 타네.”남우가 고개를 돌리고 그를 노려보았다.“웃기지 마. 내가 언제 수줍어했다고 그래? 자신 있으면 다 벗던가!”반재언이 말없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남우가 야비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난 반 씨 가문의 큰 도련님이야말로 수줍음 같은 건 안 타는 줄 알았지. 그런데 쑥스러워할 줄도 아네. 괜찮아 난 한 번 더 봐줄 수도 있어.”뻔뻔하게 나가더라도 그에게 질 수는 없었다.그녀가 그의 셔츠 단추로 손을 뻗었다. 그때,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며 실눈을 뜬 채 물었다.“그 말 진심이야?”정말로 볼 생각은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그가 먼저 항복하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그런데 만약 눈앞의 남자가 자신보다 더 뻔뻔하게 나온다면?그녀가 손을 빼내려 했지만 반재언이 더욱 힘을 주어 잡아당겼다.“당신, 몇 년 동안을 남자로 살긴 했지만, 진짜 남자에 대해서 알기나 해?”그녀가 흠칫 놀라더니 순간 답을 바로 하지 못했다.반재언이 손가락으로 그녀의 손등을 문지르더니 그녀와의 거리를 조금 더 좁히며 다가갔다. 두 사람 거리가 무척 가까워졌다.“당신이 알고 있는 남자들은 싸워야 할 상대, 동료 그리고 부하들 뿐이겠지. 하지만 그건 결국 겉으로 드러난 모습들일 뿐이야. 그것도 그들이 당신의 진짜 정체를 모르니까 여자로 대하지 않았어. 하지만 이제 당신은 여자로 살아가야 해. 그때와는 상황이 달라.”그녀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뭐가 다른데?”반재언이 갑자기 그녀를 잡아당겨 자신의 품에 껴안았다. 남우의 몸이 순간 얼어붙었다.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그런데 문뜩 딱딱한 것이 몸에 닿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곧이어 경악했다.“너…”그가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더욱 끌어당긴 후, 그녀의 귓가에 입
그가 천천히 눈을 뜨면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남우가 애써 미소를 짜내며 말을 꺼냈다.“상의하고 싶은 게 있는데.”그는 왠지 진작에 이런 일이 생길 줄 예상이라도 한 사람 같았다.“호텔에 들게 돈 빌려달라고?”그녀는 웃음을 거두었다. 그에게 돈을 빌릴 생각이었지만 바로 포기했다.“됐어. 당신한테 진 빚도 아직 못 갚았는데. 이번에는 당신 도움 안 받을 거야.”반재언이 불쑥 그녀에게 카드 키를 내밀었다.그녀가 흠칫거리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서울에 있으면서 머물 곳이 없어 걱정할 일은 없을 거야.”반재언이 깜짝 놀란 그녀의 표정을 확인하고 싱긋 웃었다.“길에 나앉게는 하지 않을 테니까.”그녀가 받을 기미가 안 보이자, 반재언이 다시 카드 키를 넣으려 했다.“싫으면 말고.”“잠깐만...”남우가 서둘러 카드 키를 받았다.“싫다는 말 안 했어.”호텔에 들려면 돈이 필요했기에 지낼 곳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지는 건 불편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처럼 손님을 열성적으로 대하는 건 아니니까.그리고 반재언과 한 지붕 아래서 지내는 건 더더욱 사양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반재언은 지금 미끼를 던진 것이고, 물고기가 미끼를 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반 씨 저택.강성연과 반지훈은 거실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때마침 정원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강유이가 거실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엄마, 아빠!”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유이가 앞으로 다가오자 그녀는 오랜만에 보는 딸아이를 찬찬히 살펴보았다.“섬에 있은지 반년 정도 되었지? 보아하니 밥은 잘 먹고 다닌 것 같구나.”강유이가 말했다.“잘 먹고 잘 지냈어요. 남 회장님께서 엄청나게 잘해 주셨거든요.”남강훈의 이름이 나오자, 반지훈과 강성연이 이제 막 안으로 들어오는 세 사람을 돌아보았다. 한태군과 반재언외에 남우도 함께였다.거실에 있던 고용인들과
남우가 차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전해드리겠습니다.”강성연이 고용인에게 방 한 칸을 정리해 두라고 지시했다. 남우가 막 뭐라 말을 꺼내려던 그때, 반재언이 먼저 입을 열었다.“어머니, 그 사람은 이곳에 머물지 않아요.”강성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왜?”강유이가 반재언을 바라보았다.“오빠 설마 남우 씨를 호텔에서 지내게 하려고?”“아니.”반재언이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전경에서 지내게 할 거야.”뭔가를 눈치챈 강성연이 웃으며 말했다.“그것도 괜찮겠구나. 전경과 진원은 가깝기도 하니, 유이와 태군이 진원에 있으니까 남우 양도 전원에서 지내는 게 편할 거야.”점심을 먹은 후 한태군과 반재언은 반지훈을 따라 서재로 향했다. 강유이는 남우를 데리고 정원을 산책했다. 문뜩 뭔가를 떠올린 강유이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남우 씨, 정말로 여기 안 있고 나가서 지내려고요?”“제가 어떻게 여기서 지내겠어요…”“설마 우리 오빠를 피하는 건 아니죠?”배에서 내린 후부터 강유이는 어쩐지 두 사람 사이가 뭔가 미묘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남우는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큰오빠를 피하고 있었다.그녀가 흠칫 놀라더니 고개를 돌리며 먼 산을 바라보았다.“아니에요. 제가 그 사람을 왜 피하겠어요.”강유이가 손을 뒤로 쭉 뻗더니 헤실헤실 웃으며 물었다.“남우 씨 지금 우리 오빠한테 잡혀 살까 봐 일부러 오빠를 피하는 거 맞죠.”그녀가 우뚝 멈춰 서더니 강유이를 돌아보았다.“유이 씨와 오빠는 한통속이잖아요. 오빠를 도와 방 번호를 틀리게 알려주기까지 하고. 저는 그 방이 틀림없이 유이 씨 방인 줄 알았잖아요.”강유이가 머리를 긁적였다.“화났어요?”“저 그렇게 속 좁은 사람 아니거든요.”“그건 제가 잘못했으니까, 미안한 의미로 좋은 정보 하나 알려줄게요.”그녀가 남우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미리 말해두는데 여기 저택에서 지내면 우리 엄마도 있으니까, 쉽게 우리 오빠가 괴롭히지 못할 거예요.”남우가 손을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
그 모습을 본 남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가 허둥지둥 그의 손에서 자기 머리카락을 빼내고 머리를 정리했다.“지금 내 머리에 입을 맞춘 거야? 머리가 어떻게 되기라도 한 거야? 또다시 그러면 그땐 때릴 줄 알아!”반재언이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잘 익은 새우처럼 새빨개진 얼굴을 하고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식으로 자신을 위협하는 꼴이라니. 정말이지 자기도 모르게 더욱 괴롭혀 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순수한 여자였다.그의 시선이 그녀의 입술로 향했다. 그가 부드럽게 그녀의 입가를 매만졌다.“남우 도련님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날 때릴 생각인데?”그녀가 험악한 표정으로 그의 멱살을 잡았다.“또다시 나한테 손이나 발을 대면, 당신 가죽을 다 벗겨버릴 줄 알아.”그가 싱긋 미소 지었다.“그럼, 손과 발은 절대 대지 않도록 할게.”남우가 미처 그의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입술 위로 말캉한 촉감이 전해졌다.그녀의 눈이 커다래졌다. 순간 자기 몸이 돌덩어리라도 된 것처럼 꿈쩍하지 않았다.더 이상 사고할 수도 없었다. 모든 사고 회로가 막혀 머릿속이 백지장같이 하얘졌다.반재언이 잠깐 입술을 떼는가 싶더니, 곧이어 한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부여잡고 더욱 진하게 키스했다.남우는 그에게 모든 호흡을 빼앗기는 것 같았다. 그를 밀어낼 힘은커녕 몸 안에 있던 뼈가 다 흐물흐물해지기라도 한 것처럼 바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두 사람이 떨어지고 나서야 그녀는 허겁지겁 숨을 들이마셨다.반재언이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매만졌다. 그가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입을 쓰는 건 반칙 아니지?”그녀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적인 힘으로 그를 밀어낸 그녀는 부랴부랴 위층으로 도망갔다.눈앞에 보이는 아무 방으로 뛰어간 후 문을 굳게 걸어 잠그기까지 했다. 문에 기댄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았다. 아직까지도 얼떨떨한 기분이었다.키스를 당했다.그 자식이 감히 그녀에게 키스했다.남우는 손으
디저트가 완성된 후, 강유이는 일부 디저트를 따로 포장했다. 한태군도 마침 외출할 일이 있었기에 나가는 김에 그녀를 병원까지 데려다주었다.차에서 내리기 전 강유이가 몸을 돌려 그의 얼굴에 쪽 소리 나게 뽀뽀했다.“태군 오빠, 그럼, 나 먼저 가볼게.”그가 낮은 소리로 쿡쿡 웃으면서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그래.”차에서 내린 강유이는 마스크와 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곧바로 병원으로 들어갔다.한태군은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지켜보다, 휴대폰을 꺼내 전유준에게 전화를 걸었다.강유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을 감싼 채 산부인과 병실을 찾아다녔다. 그녀가 막 진예은의 병실을 찾아 들어가려는데, 마침 병실에서 반재신이 나왔다.두 사람의 몸이 서로 부딪혔다.미간을 찌푸리면서 따지려던 반재신은 이내 눈앞의 여자가 자기 동생임을 알아보았다.“유이?”강유이가 마스크를 내리고 말했다.“오빠, 여기 있었네?”반재신은 그들이 스카이섬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진작 전해 들었기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가 짧게 응하고 답했다.“네가 예은이 옆에 있어 줘. 난 회사에 가봐야 해서.”그는 그 말만 남긴 후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강유이가 그런 그를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병실 안은 햇빛이 짱짱하게 들어와 매우 쨍쨍하게 비추었다.진예은은 창문 바로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무릎에는 담요가 놓여 있었다. 펑퍼짐한 잠옷을 입었음에도 눈에 띄게 불러온 배는 가려주지 못했다.강유이가 그녀에게 다가갔다.“예은아.”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진예은이 화들짝 놀라더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유이야, 너 돌아왔어?”강유이가 웃으며 걸어가 디저트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어제 도착했어. 엄마한테서 너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보러 왔어.”그녀는 잘 쪄진 디저트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뭐 좀 먹었어? 이거 우리 엄마랑 태군 오빠가 직접 만든 거야. 한번 먹어봐.”진예은이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응.”진예은이 빵을 한
강유이가 말했다.“만약 우리 가문에서 연서를 받아들인다면…”“유이야.”진예은이 슬며시 그녀의 말을 끊었다.“너희 가문에서 연서의 존재를 받아들이면 다른 사람들이 너희 가문을 뭐라고 생각하겠어? 반 씨 가문 며느리가 될 사람이 자기 조카를 데리고 반 씨 가문에 시집을 온다?”“애 딸린 여자가 반재신과 결혼하겠다고 아등바등한다고 틀림없이 수군거릴 거야.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든 그 무게는 결국 온전히 반재신이 감당하게 될 거라고.”“나는 그 사람한테 그런 짐이 되고 싶지 않아. 너희 반 씨 가문 사람들한테까지 피해가 가는 건 더더욱 싫고. 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가 오르지도 못할 나무를 쳐다본다고 비판할까 봐 너무 두려워.”진예은이 고개를 숙였다. 뜨거운 눈물이 그녀의 손바닥 위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아도 이 굴레를 완벽하게 벗어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의 어머니가 했던 말이 결국 저주가 되어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다.‘내가 무슨 자격으로 행복해 진단 말인가?’사실 이 모든 게 다 그녀의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진예은은 자신한테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자신의 진심을 꼭꼭 숨겼다. 반재신은 자꾸만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지만, 연서는 끊임없이 그녀에게 현실을 깨닫게 만들어 주었다.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막 뭐라고 말하려는데 병실 문이 벌컥 열렸다.언제 와있었는지 반재신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어쩌면 방금 그녀의 말을 다 들었을지도 모른다.진예은의 몸이 굳어졌다.그의 얼굴에는 분노도, 기쁨도 없었다.“유이 넌 일단 나가 있어.”강유이가 진예은을 힐끗 바라보고 병실을 나갔다.병실에 지독한 침묵이 감돌았다.진예은의 눈초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가 잔뜩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뭐 두고 간 거라도 있어?”반재신이 그녀의 앞에까지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가 두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꽉 움켜잡았다.“진예은, 정말로 나한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그래?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