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우가 턱을 괴고 말했다.“수야 쪽 사람들?”시월이 고개를 끄덕였다.“수야는 치영강의 심복이니깐요. 치영강은 그를 무척 신임했었습니다. 처음에 치영강이 살해된 줄 알고 치지연이 권력을 잡았을 때에는 순순히 따랐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하시호가 치지연이 쥐고 있던 권력을 가져가자 수야도 어느 정도 의심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남우가 피식 웃었다.“이젠 치영강이 살아있고, 하시호가 그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졌으니 수야는 절대 그에게 굴복하지 않겠네.”시월이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굴복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하시호가 사람들 앞에서 소문을 퍼뜨린 당사자를 죽이면서 자신의 위엄을 드러냈습니다. 현재 블랙샷 대부분의 사람이 그의 눈치를 보며 감히 반기를 들 생각조차 못 하고 있죠. 수야가 내부 사람들을 동조해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해도 따를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남우가 침묵했다.사람의 본성이 그랬다.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기 전까지는 거리낄 것 없이 다른 사람을 의심하고 반박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시호가 소문을 퍼뜨린 자를 눈앞에서 죽이는 걸로 본보기를 보인 후, 그들은 자신의 처지를 명확히 알게 되었다. 때문에 그들은 당장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을 거역할 엄두를 내지 않을 것이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아무도 선봉에 나서길 원치 않을 게 분명했다. 만약 누군가가 앞장서서 반기를 들고, 성공한 모습까지 보여야만 나머지 사람들도 성공한 사람의 뒤를 따를 것이다.그들은 치영강이라는 보스를 따르는 게 아니었다. 자신들의 보스가 누구든, 자신들을 위협할 만한 능력이 되면 그들은 반항하지 않았다.남우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그것도 괜찮아.”시월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왜요?”“하시호가 권력을 쥔 게 꼭 그에게 좋은 일은 아니야.”남우가 시월을 돌아보았다.“푸조는 블랙샷 보스가 누군지 관심 없어. 그는 그저 말 잘 듣는 개가 필요할 뿐이야. 아무리 블랙샷
반재언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왜 그런 생각을 하죠?”그녀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두 사람이 오고 난 후부터 아버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잖아요. 한태군도 저런 대접은 못 받아 봤을걸요.”그가 웃으며 말했다.“그게 저희 잘못이 되었네요.”남우가 진지하게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갑자기 그에게 바짝 다가가 물었다.“설마 당신들 스카이 섬에 와서 남씨 가문을 매수한 건 아니죠?”그게 아니라면 왜 자신의 아버지가 그들을 한가족이라고 칭했겠는가?반재언은 그녀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그쪽이 봤을 때에는 어떤 것 같은데요?”“난…”갑자기 둘둘 말린 신문이 그녀의 발치에 떨어졌다. 그녀가 남강훈을 돌아보았다.“어쩌면 그렇게 머릿속에 온통 쓸데없는 생각만 가득 차 있어. 뭐, 매수? 돈이 뭐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지는 건 줄 알아? 하고 싶다고 막 매수하게?”남우가 신문을 주었다.“차별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니에요?”남강훈이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그러게 누굴 닮아 저렇게 눈치가 없는지.“알았어요. 제가 가면 되잖아요.”남우가 신문을 반재언한테 억지로 안겨주고 몸을 돌렸다.강유이가 막 따라나가려는데 남강훈이 그녀를 붙잡았다.“재언아, 네가 나 대신 저 애한테 교육 좀 해주거라. 왜 저렇게 어리석은지, 어떻게 너희를 의심할 수가 있어.”강유이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그녀는 남강훈이 꼼수를 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반재언이 남강훈을 돌아보더니 머리를 끄덕이며 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갔다.강유이는 어쩐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회장님, 남우 씨한테 너무 각박하게 대하신 거 아니에요?”남우는 남강훈이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 몰랐다. 그러다 정말로 오해라도 한다면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남강훈이 느긋하게 물컵을 들었다.“정말로 저 계집애가 화가 났다고 생각해요? 저 애는 그렇게 속이 좁은 애가 아니에요.”강유이가 곁에 앉으며 물었다.“어떻게 확신하세요?”
남우가 눈을 깜빡거렸다. 순간 두뇌 사고가 정지된 것 같았다. 번뜩 정신을 차린 그녀가 그를 밀쳐냈다.“깜짝 놀랐잖아요!”밀치던 중 그녀의 부주의로 그의 팔을 건드리게 되었다. 그가 작게 신음했다.남우가 얼른 그를 부축했다.“상처를 건드린 거예요? 어디 봐요.”그러더니 그녀가 그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반재언이 그녀의 손을 막으며 말했다.“괜찮아요.”“제가 확인해 볼게요. 상처에서 다시 출혈이라도 나면 당장 병원에 돌아가서 치료해야죠.”그녀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벗기려 하자 반재언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정말로 지금 여기서 내 옷을 벗길 생각이에요?”남우가 흠칫 놀라더니 그제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병원을 오고 가는 사람들을 확인했다.행인들이 그들을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힐끔거리고 있었다.현재 저 사람들 눈에는 벌건 대낮에 남자 둘이 공공장소에서 옷을 벗기겠다고 실랑이질하는 꼴이었다. 확실히 정상적인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문제는 반재언의 셔츠가 이미 그녀로 때문에 거의 벗겨지기 직전이었다. 그는 계속하여 그녀를 말리고 있었다. 어쩐지 그녀가 그를 추행하는 듯한 기시감이 느껴졌다.그녀가 그를 놓아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자기 생각을 고집하며 그를 끌고 다시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진료실에 가서 확인해 봐요.”진료실 안, 반재언이 셔츠를 벗자 의사가 그의 팔에 감긴 붕대를 풀어주었다. 의사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어쩌다 이런 상처가 생기신 겁니까?”문에 기대 있던 남우가 답했다.“총상이에요. 총알은 이미 꺼냈고 상처 소독도 했었어요.”의사가 그녀를 돌아보았다.“그래도 진작 병원에 데려왔어야죠.”남우가 시선을 피하며 낮게 중얼거렸다.“그때는 데려갈 수가 없어서…”의사가 고개를 저었다.“현재 섬 안이 혼란스러운 걸 모르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젊다고 방심하고 함부로 다니지 마요. 상처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염증이 생겼어요. 소독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그 뒤로 바로 병원에
남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면 됐다. 수야는?”시월이 답했다.“이미 알려주었습니다. 수야는 치영강한테 충성하고 있으니 그에 관한 일이라면 절대 보고만 있지 않을 겁니다.”남강훈이 시월을 쳐다보며 물었다.“남우는?”시월이 머뭇거렸다. 하지만 결국 숨기지 못하고 솔직히 털어놓았다.“도련님께서는… 푸조 님을 만나러 가셨습니다.”한편, 푸조는 남우가 자신을 만나러 왔다는 소식을 듣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미처 뭐라 하기도 전에 곁에 있던 사람이 경계하며 말했다.“남우 그놈도 자기 아버지처럼 교활한 놈입니다. 푸조 님을 만나려는 것도 분명 블랙샷 때문일 겁니다.”푸조는 진작 치영강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었다. 사실 하시호가 치영강을 죽이든 말든 그들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이미 블랙샷은 자신들의 손아귀에 들어와 있었다. 남 씨 가문이 만약 그 일을 신경 쓰고 있다면 어쨌든 한번은 만나야 했다.푸조가 담배를 한 모금 피웠다. 잠시 후 그가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말했다.“지금 어디에 있지?”“이미 BJ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남우는 BJ 중앙 홀에 앉아있었다. BJ 측 사람들이 남 씨 가문 일행들을 잔뜩 경계하며 대기하고 있었다. 양측 모두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어 분위기가 살벌했다.푸조가 사람들을 이끌고 홀에 도착하자 부르크가 서둘러 다가갔다.“대부님, 저쪽에서 너무 갑작스럽게 쳐들어와서 저희가…”푸조가 손을 들고 그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라고 지시했다.남우가 컵을 만지작거리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푸조를 바라보았다. 푸조가 그녀의 맞은편 소파에 다가가 앉았다.“남 회장님께서는 몸 건강히 잘 계신지요?”남우가 싱긋 미소 지었다.“푸조 님께서 이렇게 제 아버지 건강까지 신경 써 주시다니. 제가 아버지 대신 감사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그분께서는 건강히 잘 계십니다.”푸조가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얼마 전에 남 회장님께서 다치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건강하시다니 다행입니다.”그녀의 눈동자
남우가 손목시계를 만지작거리며 미소 지었다.“하시호가 푸조 님한테 충성을 바칠 거라고 믿으시나요?”푸조가 솔직하게 답했다.“충성을 바칠지 말지는 모르지요. 하지만 내 구역에서 허튼짓은 못할 겁니다.”“당연히 허튼짓은 못할 겁니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푸조 님께서 절대 그를 중용하지 않으실 테니까요.”푸조가 미간을 찌푸리며 방금 그녀가 한 말을 되새겼다.남우의 미소가 짙어졌다.“부하였던 자가 하루아침에 주인이 되었습니다. 원래는 당연히 푸조 님을 위해 움직여야 할 자인데, 현재로서 그가 모시는 주인이 누군지 우리도 잘 알지 못합니다. 어쨌든 지금 그자가 하는 모든 것이 푸조 님의 뜻은 아닐 테니까 말입니다.”그녀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칼을 품고 있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지더니 홀 안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감히 큰 소리로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긴장한 기운이 흘렀다.푸조가 찻잔을 들었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남우는 확실히 수완이 뛰어난 편이었다. 말주변이 좋았고 한 마디로 따끔한 경고를 날릴 줄도 알았다. 하시호의 행동은 확실히 그의 뜻이 아니었다. 하시호가 블랙샷을 이어받는 걸 동의했던 건 그 여자가 푸조한테 방해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의 계획에 방해만 될 게 분명했으니까.하시호는 블랙샷을 넘겨받은 후 끊임없이 남씨 가문을 공격해왔다. 푸조가 그런 그의 소행을 묵인했던 건 마침 남씨 가문에 트러블을 일으킬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하시호가 남씨 가문을 곤란하게 하는 건 그에게 있어 나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아무것도 할 필요 없이 그저 뒤에서 몰래 지켜보며 최후의 일격을 날릴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그가 더 신경 쓸 것도 없었다.하지만 방금 남우의 말은 또 다른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음을 암시했다. 푸조는 더욱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남우 도련님께서 이렇게 이간질에 소질 있는 줄 몰랐네요.”남우는 푸조가 자신의 말을 쉽게 믿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
남우가 당황하며 물었다.“강유이 씨요?”그녀가 여기서 디저트를 포장해 갔다고?서진은 그녀의 반응이 시큰둥한 걸 알아차렸다. 그가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우야, 아저씨한테 솔직하게 털어놔 보아라. 너 혹시 여자를 안 좋아하는 거니?”서진은 남우가 어렸을 때부터 남강훈과 인연을 이어왔었다. 그래서 그는 남우가 어렸을 때부터 자라나는 모습을 다 봐온 사람이었다. 그는 남우를 자기 조카처럼 생각하고 있었다.남우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하세요?”서진이 찻잔을 들며 답했다.“최근 너에 대한 소문이 내 귀에까지 들려오더구나. 네가 남자를 좋아한다고.”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누가 그런 소문을 퍼뜨려요?”서진이 난감한 표정으로 답했다.“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소문이야. 네가 반씨 가문 도련님과 병원 대문 앞에서 애정행각을 벌였다고. 거기다 넌 이 나이가 되도록 여자친구를 사귄 적도 없으니까 의심하지 않을 리가 있겠니. 만약 네가 정말로… 정말로 그쪽이라면 남 회장님은 대가 끊기는 거야.”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게이라니.이대로라면 남씨 가문의 대가 끊기게 된다.남우는 차마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그냥 입을 다물었다.그녀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사실 그 소문은 남씨 가문에서부터 퍼져 나왔다는 것을…그 시각 삼활구.남석이 강유이를 데리고 사무실에 도착했다. 강유이는 문을 두드리고 안에서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안으로 들어갔다. 한태군은 자료를 확인하는데 정신이 팔려 들어오는 사람을 확인하지 않았다. 그는 당연히 남석이라고 생각했다.“무슨 일 있나요?”그녀가 가볍게 테이블을 노크하며 포장해 온 디저트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고개를 들던 한태군이 그녀를 확인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유이야?”남석은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도록 눈치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그녀가 미소 지었다.“바쁜 거 아니까 방해하지 않을게. 난 그냥 음식 배달하러 왔어.”한태군이 서류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테이블
그녀가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다.“누가 그 말을 믿을까 봐.”그가 소리 죽여 웃더니 그녀를 자신의 품에 가두었다.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촉촉한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머금었다. 강유이가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밀치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그는 그녀가 숨을 바로 쉬지 못할 때까지 몰아붙이고 나서야 놓아주었다.강유이가 씩씩거리며 그를 밀쳤다.“한태군!”그의 몸이 소파 뒤로 넘어가는가 싶더니 강유이의 몸도 함께 앞으로 쏠렸다. 소파 위로 그의 몸과 그녀의 몸이 겹쳐졌다. 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그녀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마지막이야.”강유이가 진지한 표정인 그를 바라보았다.“한 번만 더 거짓말해봐. 그때는 오빠 말고 다른 남자를 만날 거야.”그녀의 협박이 마냥 귀엽게만 느껴지는 한태군이 결국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그녀를 더욱 꽉 끌어안으며 장난스럽게 물었다.“내가 소개해 줄까?”그녀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좋아. 여러 명 소개해 주면 더 좋고. 그중에서 잘 고민해 보고 고를 테니까.”한태군이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자꾸 기어오를래?”강유이가 그의 손을 밀어내며 콧방귀를 뀌었다.그가 몸을 일으켜 앉으며 그녀를 품에 가두었다.“오늘 나랑 계속 같이 있어 줄 거야?”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장난스럽게 미소 지었다.“내가 남아있기를 바라?”강유이가 그의 무릎 위에 걸터앉더니 그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녀의 손이 그의 셔츠 안으로 들어갔다. 한태군의 몸이 흠칫 굳어지더니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의 눈동자가 일렁였다.“장난하지 마.”그녀는 못 들은 것처럼 그의 목젖에 입을 맞추었다.그가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인내심이 툭 하고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한태군이 서둘러 그녀를 끌어안더니 그녀의 뒤통수를 붙잡고 깊게 키스했다.강유이가 그를 다시 소파 위에 눕히더니 그의 벨트를 풀었다. 한태군이 헛웃음을 터뜨렸다.“이러는 법이 어딨어…”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강유이가 그의 벨트를 쏙
푸조가 목욕 가운을 걸친 채 금발 미녀를 껴안고 있었다. 금발 미녀가 그의 품에 기댄 채 생글생글 웃으며 얌전히 그의 말에 따랐다.하시호가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푸조 님.”푸조가 테이블 위의 잔을 들자 곁에 있던 금발 미녀가 그에게 술을 따라주었다.“듣기로 네가 삼활구의 자금을 빼돌려서 몰래 먹으려 했다던데.”하시호가 멈칫거렸다. 그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졌다.삼활구에서 몰래 빼돌린 자금에 관해서는 치영강도 모르고 있는데, 푸조가 어떻게 그 일을 알고 있는 거지?푸조가 느긋하게 술을 한 모금 마시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겉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보아하니 남우 도련님의 말이 아주 허황한 소리가 아닌가 보네. 확실히 그 돈에 손을 댔군.”하시호는 순간 머리털이 곤두섰다. 남우가 삼활 장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챘을 줄이야.‘젠장, 역시 그놈은 살아있으면 방해만 될 뿐이야.”“푸조 님, 제가 삼활구 자금에 손을 댄 건 사실입니다.”이렇게 된 이상 계속 감추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뻔뻔하게 밀고 나가기로 마음먹었다.“하지만 제가 그 돈을 몰래 빼돌린 건, 다 푸조 님을 위해서입니다.”푸조가 실눈을 떴다.“나를 위해서라고?”“치영강은 남강훈을 두려워하며 거듭하여 푸조 님의 청을 거절했습니다. 아마 푸조 님의 뒤를 따를 생각이 없었을 겁니다. 만약 제가 치영강을 죽이려 하지 않았다면 블랙샷은 푸조 님 밑으로 들어갈 수 없었을 겁니다. 저는 진작부터 블랙샷이 남씨 가문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때문에 삼활 장부에 손을 대 남강훈이 치영강을 의심하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를 깨트릴 려고 노력했는데 남강훈이 끝까지 움직이지 않더라고요.”그의 말투에서 약간의 분노마저 느껴졌다. 마치 자신이 한 모든 행위가 블랙샷을 푸조의 밑으로 들여보내기 위함이라고 어필하려는 듯이, 남씨 가문을 무너뜨리기 위해 치영강과 남강훈의 관계를 깨트리려고 최선을 다한 것처럼 강조했다.푸조가 술이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