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말 신경 쓰여?"밥을 먹던 강유이가 수저를 내려놓으며 물었다.갑작스러운 강유이의 물음에 한태군이 한참 침묵을 지키다 그녀의 볼을 만지며 말했다."아니, 어차피 유이 옆에 있는 사람은 나잖아."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말들은 그저 사람들의 상상일 뿐이었다.하지만 한태군의 말을 들은 강유이는 조금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사실 그녀는 한태군이 그냥 공개하기를 바랐다. 데이비 렌지가 안다고 해도 두 사람이 함께 상대한다면 충분했다. 모든 일이 나쁜 쪽으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었고 두 사람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시무룩해진 강유이를 본 한태군이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앞으로 공개할 기회가 많이 생길 거야. 그때 내가 전 세계 사람들한테 무비 퀸 남자가 나라고 말할 거야."그 말을 들은 강유이가 자신만을 담은 한태군의 눈을 바라봤다."오빠 데이비 렌지를 상대하려는 거지?"강유이의 물음에 한태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럴 줄 알았어, 이런 거 준비할 때부터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왜 그렇게 생각한 건데?""여자의 필이라는 게 있어."강유이의 말을 들은 한태군이 소리 내어 웃었다."나름 잘 맞네."한태군이 강유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여기 며칠 떠나 있을 거니까 내가 없는 동안 얌전하게 나 기다리고 있어야 해."한태군의 말에 강유이가 멈칫하더니 갑자기 그를 밀어냈다.한태군은 그런 강유이를 얼른 다시 품에 안았다."유이 착하지, 이러지 말고 오빠 말 들어. 나 정말 이 모습 그대로 돌아올 거라고 약속할게.""오빠 그날 전화하는 거 나 다 들었어. 내가 그냥 안 물어본 거지,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야. 오빠 혼자 모험할 필요가 전혀 없잖아. 우리가 먼저 공개한다면, 데이비 렌지가 알아서 찾아올 거야.""유이야, 그건 달라. 나 네가 나랑 같이 이런 모험하게 하고 싶지 않아. 만약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여태껏 견지해 온 신념도 아
한태군이 서울을 떠난 뒤, 강유이는 반 씨 본가로 가 지냈다.그가 없으니 진원이 텅 비어버린 것만 같아 강유이는 외롭고 쓸쓸했다. 그러다 보니 자꾸 그를 걱정하게 되었다."한태군은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똑똑한 사람이니까 알아서 잘할 게 분명해."진예은이 시무룩해 있는 강유이를 보며 그녀를 위로했다."정말 자기가 무슨 일이나 해낼 수 있는 슈퍼맨인 줄 아나 봐."강유이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중얼거렸다."태군 오빠는 원하는 일을 못 해낸 적이 없잖아. 그동안 너도 다 봐왔고."진예은이 하는 말을 들은 강유이는 맞는 말 같아 할 말이 없어졌다.그때, 진예은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진예은의 안색이 조금 변하더니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뭐요? 연서가 없어졌다고요?"머지않아 강유이와 진예은은 빈해 별장에 도착했다. 아주머니들은 집을 샅샅이 뒤져봤지만 진연서를 찾지 못했다."연서 언제부터 안 보인 거예요?"진예은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주머니 앞으로 가 그녀의 어깨를 잡고 물었다."오늘 아침 내내 방에 계셨어요. 아침 먹고 저희가 다른 일을 끝내고 찾아보니 안 보여서 방으로 들어간 줄 알았어요. 그리고 심리상담 선생님께서 연서 치료해 주러 온 거 보고 올라가 보니 방에도 아가씨가 없었어요."아주머님께서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진예은의 안색은 점차 창백해졌다."마당에 CCTV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연서가 마당을 나갔다면, 아마 찍혔을 거야. 내가 오빠한테 영상 달라고 할게."강유이가 휴대폰을 꺼내며 말했다.강유이의 전화를 받고 진연서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반재신은 회의를 중지하고 별장으로 향했다."오빠."강유이가 집으로 들어서는 반재신을 보곤 얼른 그에게 다가갔다."CCTV 확인해 봤는데 연서 마당을 나간 적은 없어, 아마 어딘가에 숨은 것 같아."반재신이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말했다."하지만 저희가 다 찾아봤는데 아가씨를 발견하지 못했어요."아주머니들이 서로를 보며 말했다.그 말을 들은 반재신이 침묵했
다행히 반재신이 진예은을 부축한 덕에 그녀는 넘어지지 않았다."연서야, 고모를 밀면 어떡해."반재신이 미간을 찌푸린 채 진연서를 보며 말했다.그의 눈빛이 너무 날카로웠던 건지 진연서는 목을 움츠리더니 입술을 깨물고 울지 않으려 노력했다.그 모습을 본 진예은이 한숨을 쉬더니 다시 진연서에게 다가가 한껏 풀린 목소리로 말했다."연서야, 미안해. 고모가 아까 화냈으면 안 되는 거였는데, 하지만 고모는 우리 연서가 너무 걱정돼서 그랬던 거야…"하지만 진연서는 그녀의 손을 밀어내더니 울음을 터뜨렸다."엄마 아빠도 연서 버렸는데 이제 고모도 나 버리려고 하잖아."아이의 말을 들은 진예은은 멈칫했다."연서야, 고모는 우리 연서 버리려고 한 적 없어.""거짓말, 내가 다 들었어. 고모가 나 보내겠다고 한 거."진연서는 바닥에 주저앉아 서럽게 울었다. 아이는 마치 자신의 억울함을 모두 토로하려는 것 같았다.진연서는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그날 밤, 진연서를 보내겠다고 했던 자신의 말을 아이가 다 듣고 자신이 또 버려질 것이라고 생각한 걸까?하지만 그녀는 진연서를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진연서를 자신의 옆에 남겨두지 않겠다고 했던 건 아이의 미래를 위해 그랬던 것이다. 진연서는 진예은 오빠인 진찬의 아이이기도 했고 진 씨 집안의 유일한 손주였기에 앞으로 집안의 모든 것은 연서의 것이기 때문이다. 진연서가 진 씨 집안으로 돌아가면, 진예은 아버지의 알뜰한 보살핌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진연서가 진예은 옆에 남는다면, 그녀가 아이를 돌봐줄 수는 있지만, 바깥 사람이 보기에는 그저 반 씨 집안에 얹혀사는 아이가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반 씨 집안에게 진연서를 받아달라고 하는 무리한 요구를 할 수도 없었다. 연서는 반 씨 집안과는 그 어떤 연관도 없었기 때문이었다.반재신이 진연서가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워줄 수 있다고 해도 자신의 아이가 태어나고 나면 분명 진연서를 소홀하게 대할 수도 있었기에 진연서
"연서 잠들었어."진예은이 강유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오빠는 왜 갑자기 나간 거야? 둘이 싸웠어?"강유이의 말에 진예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싸운 건 아니었지만, 반재신의 변화가 진예은은 조금 신경 쓰였다."그런데 방금 전 연서가 네가 자기를 버리겠다고 한 건 뭐야?"강유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진예은은 진연서를 진 씨 집안으로 보내겠다고 한거였지만, 진연서는 진예은이 자신을 버리려고 하는 건 줄 알고 있었다는 것과 어쩌면 진연서는 그저 그녀의 옆에 남아있으려고 한 걸지도 모르지만, 진예은 스스로 진 씨 집안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하고 진연서의 생각은 고려하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는 것을 모두 털어놓았다."나 좀 이기적이지?""너 이미 연서한테 충분히 잘해줬어, 이기적이라는 건 말도 안 돼."강유이의 말을 들은 진예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유이가 빈해 별장을 떠나 집으로 향하던 중, 낯선 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 "서율 오빠?""내 목소리 알아듣겠어?""당연하죠, 이거 오빠 전화번호에요?""앞으로 이 번호로 연락하자."민서율은 그녀에게 함께 밥을 먹자고 했고 강유이는 그가 미리 예약해둔 식당 룸으로 향했다. 민서율은 슈트를 즐겨 입지 않는 듯 캐주얼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연예인이면 당당하게 밖에 다니는 것도 힘들구나."민서율이 얼굴을 꼼꼼하게 가린 강유이를 보며 웃었다."어쩔 수 없어요. 기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날 저희 두 사람이 찍혔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요."강유이가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으며 말했다.그러자 민서율이 강유이의 앞에 있던 찻잔에 차를 부어줬다."그날 일은 나 때문이야. 내가 네 신분을 차마 고려하지 못했어.""오빠는 잘못 없으니까 절대 그렇게 말하지 마요.""그래도 괜히 너 구설수에 오르게 했잖아."강유이가 차를 한 모금 마시자 민서율이 그녀에게 메뉴판을 건네줬다."네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너 오면 주문하려고 했어.""저는 다 잘 먹어서 괜찮
하지만 강유이는 얼어버리고 말았다.민서율이 너무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민서율의 눈초리를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차가운 손가락이 그녀의 얼굴 위를 조심스럽게 닦아주고 있었다. 그 다정한 손길은 강유이가 흘린 음식을 닦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볼을 어루만지고 있는 듯했다.예전이었다면, 민서율이 그녀를 생각해서 아니면 여동생을 아끼는 마음에서 이런 행동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자꾸 어딘가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강유이는 부자연스럽게 민서율의 손에서 냅킨을 가져와 티가 나지 않게 그에게서 떨어졌다."저도 이제 어른이니까 혼자 할게요."그 말을 들은 민서율도 아무 말 없이 그저 웃었다.밥을 먹은 뒤, 두 사람은 식당을 나섰다.민서율의 차에 올라탄 강유이는 한참을 기다렸지만, 그는 차에 시동을 걸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강유이에게 다가갔다. 강유이는 갑작스러운 민서율의 행동에 저도 모르게 그의 어깨를 밀어내려고 했다."서율 오빠…"그러자 민서율이 웃었다."무슨 생각하는 거야, 안전벨트 해야지."강유이가 고개를 숙이고 보니 그는 정말 자신에게 안전벨트를 매주고 있었다. 순간 어색해진 그녀가 웃었다."미안, 깜빡했어요.""괜찮아."민서율은 강유이를 반 씨 본가로 데려다줬다. 강유이가 자신의 시선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그는 시선을 거두었다.방금 전, 그는 차 안에서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자신을 그렇게 경계하는 강유이를 보니 정말 그런 짓을 했다가는 강유이가 평생 자신을 만나주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민서율은 그런 충동을 느낀 자신을 비웃듯 웃었다.…저녁, 빈해 별장.진예은이 진연서의 방으로 들어가 보니 진연서는 다리를 안고 침대 위에 웅크린 채 빨개진 눈을 하고 있었다."연서야, 연서가 고모한테 화 난 건 알겠는데.. 밥은 먹어야지."진예은이 침대에 앉으며 말했다."고모가 신경 쓸 일 아니야."진연서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연서야, 고모가 연서 생각도 안 물
반재신의 말을 들은 진예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안은 이유는 사실 오늘의 일과 아무 연관도 없었기 때문이었다."한 달 된 아이도 움직이나?"그때 반재신이 그녀의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더니 얼굴을 그녀의 배에 붙이고 뱃속 상황을 듣는 듯했다.진예은은 이렇게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반재신을 보곤 멈칫했다."이제 한 달 되었는데 그렇게 빠를 리는 없잖아.""요즘도 입덧해?"반재신이 진예은을 보며 물었다."약 먹어서 괜찮아.""우리도 혼인신고 하러 가자."반재신이 진예은의 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뭐?"진예은은 자신이 환청을 들은 줄 알았다."혼인신고 하러 가자고."반재신이 고개를 들어 그녀의 볼을 잡더니 또박또박 말했다.하지만 진예은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다, 그녀는 그 어떤 마음의 준비도 마치지 못했다.멍청한 얼굴을 한 진예은을 본 반재신이 그녀를 자신의 다리 위에 앉혔다."아이도 다 컸는데 우리가 혼인신고도 안 하고 살 수 없잖아. 어쨌든 나한테 책임이 있으니까.""그저 책임 때문이야?"반재신의 말을 들은 진예은이 한참이 지나 물었다.진예은의 말을 들은 반재신은 의아해졌다."아이 때문에 나를 대하는 태도를 바꾼 거야? 내가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면 너…""진예은."반재신이 언짢은 얼굴로 진예은의 이름을 불렀다."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아이가 없었다고 해도 나 너랑 결혼했을 거야. 자꾸 나를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지 마, 내가 예전에 다정하지 못했던 건 인정해. 그래서 네가 자꾸 오해하게 만들었던 것도 알아. 그러니까 네가 나한테 불만인 게 있다면 말해줘. 다 바꿀게."진예은은 그 말을 하는 반재신을 보니 콧방울이 시큰해졌다."이럴 필요 없어."진예은이 빨개진 눈을 감추려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오늘 도대체 왜 그래?"반재신이 화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진예은은 이상하게 자꾸 그를 밀어내고 있었다.진예은은 결국 입술을 물고 심장을 난도질할 그 말을 내뱉었다."우리 혼인신고 하는 거 잠시 미루자.
반재신이 서류를 내려놓더니 의사를 보며 물었다."현재 아이 상태는 어떻습니까?""그동안의 관찰과 테스트에 근거해 보면 아이가 확실히 예민해 합니다. 자란 환경 때문일 수도 있지만, 소심하고 자비심을 보이는 경향도 있고 외로워서 자기랑 친한 사람이랑 붙어있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심리 의사의 말을 들은 반재신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고민에 잠겼다."뭐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네.""4살짜리 아이가 자기를 예뻐해 주는 사람을 유산하게 만들려고 할 수도 있을까요?"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진연서가 그날 밤의 말을 듣고 오해가 생겨 화가 났다고 해도 왜 하필 진예은의 배를 민 것일까.그는 진연서의 이 행동이 마음에 걸렸다.그때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것은 진예은을 난감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진예은은 진연서를 키워 준 가족이었다.진연서가 진예은만 따르는 이유도 진예은이 아이를 키워준 사람이기에 아이의 잠재의식 속에서 진예은은 아이에게 모성애를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걸 수도 있었다. 하지만 4살짜리 아이가 사람을 해치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반재신은 마음 놓고 아이를 남겨둘 수 없었다."사실 제가 봤던 사례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의사가 턱을 만지며 말했다."5살짜리 아이가 엄마가 동생을 낳아 자신과 부모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 싫어 일부러 엄마를 계단 위에서 민 적이 있습니다.""연서가 그 아이랑 비슷하다는 말인가요?"반재신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네, 하지만 다른 점도 있습니다. 5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면서 지냈기에 그 사랑을 잃기 싫었던 거죠. 어떤 아이들은 원래 마음이 여려서 동생이 생기면, 부모님께서 더 이상 자기를 사랑해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도 제때에 아이를 교육하지 않아서 이런 비극이 발생한 겁니다. 도련님, 연서 아가씨 상황도 비슷하다고는 생각합니다. 어릴때 부터 고모의 보살핌 아래서 자랐으니 더욱 고모만 따르는 겁
예전이었다면 반재신은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진예은은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한쪽은 자신만 따르는 진연서였고 다른 한쪽은 자기 아이의 아버지이자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였다."거기 서서 뭐 해?"반재신의 목소리에 그에게 눈길을 돌린 진예은이 망설이다 서재로 들어갔다."의사 선생님이 뭐래?""아무 말도 안 했어. 내일 내가 사람 찾아서 연서랑 같이 있어 주라고 할 생각이야. 나이는 연서보다 많지만, 잘 어울릴 수 있을 거야."진연서는 영국에서 진예은 말고도 아주머니들과 자주 붙어있었다. 친구라고 해봤자 가끔 만나는 아주머니들의 손주뿐 이었지만, 그렇게 자주 연락하는 것도 아니었다. 진예은은 진연서가 또래 아이들과 노는 것을 싫어하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진연서는 내향적이고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를 몰랐던 것이었다. 함께 놀 수 있는 친구가 없었기에 아이는 매일 자신과 친한 사람들에게 집착을 보일 정도로 붙어있으려고 한 걸 수도 있었다.만약 친구가 진연서와 함께 놀아준다면, 진연서도 밝고 자신심을 가진 아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튿날, 강유이가 또 다시 인기 검색어에 이름을 올렸다. 제목은 차 안에서의 키스. 기자들은 남자의 신분까지 다 밝혀냈다. 민 씨 집안의 큰 도련님 민서율, 그리고 그가 방 감독 새 작품에 투자까지 했다는 사실까지.방 감독의 새 작품 속 한월생 역할은 강유이가 하기로 한 것이었고 민서율은 방 감독의 새 작품에 400억을 투자했기에 누가 봐도 그가 강유이를 위해 투자한 것처럼 보였다. 민서율이 강유이의 약혼 상대인 줄 알고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강유이가 약혼을 공개했을 때, 민서율이 아직 해외에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다시 흥분했다.강유이가 바람을 피웠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었고 강유이가 사실은 약혼 상대가 없지만, 인기를 얻으려 거짓말을 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강유이가 상대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그가 돌아온 뒤, 다시 공개할 생각이라고 했다.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