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훈이 그 영화에 투자한다면, 감히 그 어떤 투자자가 거들먹거릴 수 있을까?서울에서 누가 반지훈 회장보다 돈이 많단 말인가?“집안의 힘을 빌릴 생각은 없어요.”강유이가 콧방귀를 뀌며 말을 이었다.“그리고, 감히 그 누구도 나보다 한월생을 더 잘 연기해 내지 못할 거예요.”주계진이 놀라 물었다.“그렇게나 자신 있어요?”그녀가 고개를 돌렸다.“왜냐면, 저보다 한월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연기자는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야 할 뿐만 아니라, 배역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만, 완벽하게 그 배역에 스며들었다고 할 수 있다.그리고 이번 영화의 원작은 진예은이 구성한 것이다. 그녀는 진작 진예인이 쓴 원작을 다 읽었었다. 한월생, 즉 원작에서 리타라는 인물은 진예은이 자신의 삶을 투영하여 쓴 인물이다.‘리타’는 떠돌이 생활을 하는 몰락한 가문의 아가씨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사생아 출신이었고, 리타에게는 그녀를 이용하기만 하는 오빠가 한 명 있었다. 리타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에게 학대를 받아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자라났고, 그런 유년 시절 때문인지 아주 세심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원래는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던 그녀가, 연쇄 살인 사건의 피해자들과 전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리타는 평생을 내면의 어둠에 갇힌 채 살아갔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친 그녀는 비뚤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사실 그녀는 누군가가 자신을 구제해 주길 바랐고, 더 많은 관심과 주목을 갈망하는 사람이었다.리타가 범인이 맞는지, 아닌지는 작품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진예은도 설명하지 않았다.마지막까지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는 초반 스토리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이고, 가장 여운이 깊은 부분이다.같은 시각, 제작사 측.감독은 투자자 쪽의 일방적인 통보를 듣고 화가 나 대본을 테이블 위에 내팽개쳤다.“한월생 역, 강유이가 안 하면, 저도 안 찍습니다.”“방 감독님, 이건 투자자 쪽에서 내린 결정입니다.
“너 서울에 오고 난 후부터 허약 체질이 된 거 같아. 혹시 물갈이 해?”확실히 진예은은 서울에 오고부터 몸이 자주 아팠다.진예은이 당황하더니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아직 이곳 생활에 적응되지 못했나 봐.”“네가 재신 오빠랑 결혼하고 나면 적응되겠네.”“강유이!”진예은의 볼이 발그스름해졌다.그때, 갑자기 진예은이 입을 틀어먹고 헛구역질을 했다. 그러더니 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강유이도 깜짝 놀라 그녀의 뒤를 따랐다.“예은아!”아침도 먹지 않은 상태라 토할 것도 없었다. 연속하여 담즙만 토해낸 진예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강유이가 문을 두드렸다.“예은아, 너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병원 가야 하는 거 아니야?”진예은이 세수를 하고 문을 열었다. 그녀의 얼굴이 더욱 초췌해졌다.“진짜 괜찮아. 병원에 갈 필요 없어…”“이게 어떻게 괜찮아. 너 지금 이렇게 토하는 게 꼭…”강유이는 순간 말을 멈췄다. 그녀가 진예은을 아래 위로 훑어보았다. 진예은이 헛구역질하는 모습이 예전에 송아영이 임신했을 때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예은아, 너 설마 임신했어?”진예은의 표정이 굳어졌다. 머리로는 당장 부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뇌의 공제를 벗어난 입이 제멋대로 움직였다.“네가 어떻게…. 내가 생각하는게 맞아?“강유이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가슴 한구석에서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벅찬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나 고모 되는 거야?”진예은이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내려뜨렸다.“유이야, 일단 비밀로 해줄 수 있어?”강유이가 몇 초간 멈칫했다.“다른 사람들한테 알리기 싫어?”진예은이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나 네 오빠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러니까, 당분간은 비밀 지켜줘.”강유이가 미소 지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걱정 마, 그런 서프라이즈를 준비하고 있는 거라면, 당연히 비밀 지켜야줘야지! 우리 오빠 아마 깜짝 놀라겠다. 그뿐만 이겠어? 엄청 기뻐할게 분명해!”큰 오빠는 아직 만나는 여자도 없는데, 둘째 오빠가
투자자 측의 표정이 급격하게 일그러졌다.그 모습을 보자 회장이 손을 저으며 중재에 나섰다.“됐어요. 그만들 해요.”모두의 시선이 회장에게 쏟아지자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여러분들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겠다면, 이번 일은 네티즌 투표로 결정하는 게 어떻습니까? 양쪽 모두에게 공평한 경쟁을 하는 겁니다. 조인과 강유이 두 사람 중 표가 높은 사람이 이번 배역을 맡는 거로 하죠.”임석진이 고개를 끄덕였다.“동의합니다.”투자자 측 사람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된 이상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사무실로 돌아온 임석진이 투표로 결정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강유이에게 알렸다.그 말을 들은 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네티즌들한테 투표권을 주는 거네요. 확실히 그게 제일 공평하겠어요.”임석진이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다.“조인이 너보다 표를 더 많이 받으면 어쩌려고?”강유이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저 매니저님 밑에서 컸어요. 이만한 자신감도 없으면, 매니저님의 명성에 먹칠하는 거죠!“임석진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가르친 보람이 있네!”사무실을 나온 강유이가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 섰다. 엘리베이터는 마침 연습실 층에 머물러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녀가 앞쪽을 확인하고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거기엔 한태군이 커다란 포스터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아마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강유이가 싱긋 미소를 짓더니 살금살금 그에게 다가갔다.그녀가 그의 등 뒤에 서서 까치발을 들고 손으로 그의 눈을 가리며 낮은 목소리고 말했다.“누군지 맞춰 봐.”한태군은 그녀가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다가오고 있을 때부터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 이런 허술한 장난이라니. 그가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더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내 와이프.”강유이가 손을 빼내며 입술을 삐쭉거렸다.“재미없어. 이렇게 빨리 맞추다니.”한태군이 돌아서서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며 입술을 매만졌다
한 사람은 유럽 전반 지하 세력을 틀어쥐고 있는 마피아 대부인 “푸조”이고, 다른 한 사람은 동아시아 대륙의 상업계를 석권하고 있는 거대 조직폭력배 두목인 “남강훈”이다.한태군이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창문에 기댔다.“스카이섬에 숨어든 걸 보니, 분명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겠군요.”전유준이 뭔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참, 진예은 씨 모친께서 서울에 오셨습니다.”한태군이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그 이모님 성격에 절대 이대로 물러서지 않을 줄 알았어요. 반재신한테 알려주세요. 자기 여자는 자기가 알아서 잘 지켜야죠.”…병원.진예은은 입덧이 갈수록 심해져 결국 병원에서 약 처방을 받았다. 의사가 준 처방전을 들고 약을 사고 있는데 문뜩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발신자를 확인한 진예은이 눈살을 찌푸렸다.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살았던 아버지한테서 걸려온 전화였기 때문이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전화를 받자 그녀의 아버지가 다급하게 물었다.“예은아, 혹시 네 엄마와 만났니?”진예은이 그 자리에 굳어졌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그녀의 아버지가 말했다.“네가 반 씨 가문의 둘째 아들과 만난다는 소식을 들은 후, 네 어머니가 나 몰래 집을 나갔어. 널 찾으러 Z 국에 간 게 분명해.”진예은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 휴대폰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실렸다.“어머니가… 어머니가 Z 국에 왔다고요?”삼 년이나 지났다. 그녀는 자신만 영국을 떠나면, 어머니의 그늘과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Z 국까지 왔다니.“조심하거라 예은아.”그녀의 아버지가 진예은에게 경고했다.“현재 네 어머니의 정신 상태가 온전치 않아. 네 오빠가 죽은 후 거의 미친 사람처럼 지내고 있었어. 난 그 사람이 그러다 극단적인 일이라도 저지를까 걱정돼.”“아빠가 너무 무능해서 미안하다, 예은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너를 보호해 주지 못했어. 아빠는 정말로 네 스스로가 원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이번에 네 엄마가 또
그가 콧방귀를 뀌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어쩐 일이야. 배역을 빼앗겼다던 말이 있는데, 설마 나더러 도와달라고 온 건 아니지?”그녀가 멈칫거리더니 고개를 들고 말했다.“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오빠 도움을 바랄 것 같아?”그가 실눈을 뜨며 물었다. “그럼 네가 갑자기 이렇게 찾아온 게, 정말로 단지 이 오빠의 문안이나 묻기 위해서라고?”강유이는 연예계에 입문 한 이후, AM 그룹에 찾아온 회수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평소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그녀가 하필 이런 상황에 나타나니, 의심스러울 수밖에.강유이가 입꼬리를 올리며 배시시 웃었다.“난 오빠한테 축하해 주러 왔지. 오빠 안 기뻐?”반재신이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왜 기뻐야 하는데?”강유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가 간식 케이스 뚜껑을 굳게 닫으며 언성을 높였다.“반재신, 너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예은이가 임신을 했는데도 기쁘지가 않다고?성까지 붙여가며 그의 이름을 부르는 걸로 보아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다. 반재신이 조금 당황하더니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그는 최근 그녀를 화나게 할만한 일을 한 기억이 없었다.반재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표정을 짓자, 이번엔 강유이가 당황했다.“예은이가… 서프라이즈 안 해줬어?”반재신의 의아한 듯이 물었다.“무슨 서프라이즈?”강유이가 두 손으로 테이블을 짚었다.“예은이가 임…”그때 반재신이 갑자기 전화를 받았다. 상대편에서 무슨 말을 한 건지 그의 표정이 진지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네. 알겠습니다.”통화를 마친 그가 문득 방금 전 강유이가 무슨 말을 하려 했던 걸 떠올리고 물었다.“그래서 예은이가 뭐?”강유이가 간식 뚜껑을 닫으며 말했다.“됐어. 버릴지언정 오빠한테 주기 싫어졌어. 가서 일이나 봐.”그녀가 돌아서서 사무실을 나갔다.알 수 없는 이유로 잔뜩 성만 내다 돌아간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반재신은 어쩐지 우스운 기분이 들었다.이 계집애
진예은은 품속에 안긴 연서가 흠칫 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이를 악물고 허리를 곧게 폈다.“어머니, 연서를 내팽개치신 건 어머니겠죠. 연서가 태어난 후부터 삼 년 전까지는 제가 다 돌봤어요. 어머니는 웃어른으로서, 이 아이의 할머니로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으면서, 무슨 자격으로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그녀의 어머니가 순식간에 진예은의 앞에까지 다가오더니,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힘껏 진예은의 뺨을 내리쳤다.“찰싹!”엄청난 소리와 함께 진예은의 얼굴에 붉은 손바닥 자국이 새겨졌다.연서가 울음을 터뜨렸다.“할머니, 고모 때리지 마세요!”친모가 아이를 밀치자, 아이가 바닥에 넘어졌다. 하지만 아이는 함부로 소리 높게 울지도 못했다.진예은은 얼굴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서둘러 아이를 일으켰다. 그녀의 눈빛이 매섭게 번뜩였다.“어머니, 연서는 오빠의 딸이에요. 어떻게 연서한테 이렇게 대할 수 있나요!“친모가 하찮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딸이 다 무슨 소용이야. 너처럼 되라고?”그 말에 진예은은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연서를 좋아하지 않은 이유가 고작 이거라고? 연서가 딸이라서?친모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연서를 힐끗 바라보다가, 다시 진예은을 돌아보았다.“반 씨 가문에서는 이 아이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니?”진예은은 답을 하지 않았다.친모가 진예은과의 거리를 좁히며 다가와 멈춰 섰다.“모르는가 보구나. 예전에는 대외적으로 이 아이가 네 아이라고 인정했었잖니. 그런 너도 반 씨 가문 앞에서는 함부로 인정하지 못하겠나 보지? 연서 앞에서 직접 말해 보거라. 이 아이를 인정할 수 있겠니?”친모는 말끝마다 연서를 붙이며 독설을 뱉고 있었다. 그녀의 뜻은 분명했다. 연서가 어리고 부모의 사랑이 부족한 걸 이용하여 진예은을 자극하는 것이었다.진예은이 연서를 이만큼 키운 것도 자신의 도리를 충분히 한 것이었다. 하지만 외간 사람들은 연서가 이미 세상을 떠난 진예은 오빠의
반재신이 진예은을 번쩍 안아 들고 밖으로 나가려 하는데, 친모가 급히 그를 붙잡았다.“저 아이가 내 피를 이어받은 내 딸인 이상, 내가 쟤 엄마라는 사실은 변치 않아요. 반재신 도련님이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해야하는 사실입니다.”반재신이 피식 냉소를 지으며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여사님, 너무 자신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인정할지 말지는 여사님이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그가 진예은을 품에 안고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바로 자리를 떠났다.친모가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문을 나서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곧바로 그녀가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연서를 바라보았다. 연서는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가 연서 앞에 다가가 아이의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쟤랑 같이 살고 싶으면, 얌전하게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알았어?”연서는 아프다는 반박도 하지 못하고 그저 떨며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한편, 진예은을 품에 안은 반재신이 그녀를 차에 앉혔다. 진예은의 상태가 어딘가 이상했다. 하얗게 질려있는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그가 양우빈한테 병원으로 갈 것을 지시했다.진예은이 서둘러 그를 말렸다.“병원은 싫어.”반재신이 그녀의 턱을 붙잡고 하얗게 질린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이 꼴이 되어서 병원에 안 가겠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차 안의 방향제 냄새가 너무 역했던 걸까. 진예은이 갑자기 입을 틀어막더니, 급하게 몸을 돌려 차 문을 열고 토했다.반재신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들어주었다. 반재시은 걱정이 되면서도 바보같은 그녀가 답답해 이를 악물고 말했다.“도대체 뭘 잘못 먹었기에 아직까지 이러는 거야.”연신 구역질을 하는 진예은을 바라본 양우빈이 무의식적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대표님, 사모님께서 이렇게 심하게 구토를 하시는 게, 혹시 임신 때문이 아닐까요?”반재신이 순간 행동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뭐라고요?”그리고 바로 계
그런데 지금의 그는 보통의 남자친구처럼 그녀의 곁에서 혹시 그녀가 감기에 걸리지는 않을까 걱정해 주고 있었다. 이불도 더욱 꼼꼼하게 여며주고, 혹시 임신한 그녀가 몸이 불편하지는 않을까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다른 사람의 시중을 드는 게 익숙하지 않는 게 분명했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그녀를 간호했다.잠시 후, 진예은이 천천히 눈을 떴다. 강한 조명에 그녀가 살짝 눈을 찌푸리며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나 이제 괜찮아. 가서 일 봐.”반재신이 자신의 커다란 손바닥으로 그녀의 눈을 가리며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눈 감고 좀 더 자.”“반재신.”그녀는 피곤이 몰려왔지만, 억지로 두 눈을 뜨며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나 아이를 지울 생각은 단 한 번도 한적 없어…”그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쏟아지는 잠기운을 억지로 참아내며 그에게 해명을 하고 나서야 진예은은 잠에 빠졌다. 그는 어이가 없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가 천천히 몸을 숙이며 진예은의 이마 주위에 뻗힌 잔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그는 잠에 빠진 여인의 얼굴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진예은이 잠에서 깼을 때는 이미 저녁 시간이 다 된 때였다.그녀가 이불을 젖히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마를 문질렀다. 임신 때문에 이렇게 자꾸 졸린 걸까?‘참, 연서!’그녀가 서둘러 고무줄로 아무렇게나 머리를 묶은 뒤 욕실로 향했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세수를 할 생각이었다. 세면대 앞에 선 그녀는 문뜩 거울을 확인했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에 돼지 그림이 떡하니 그려져 있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곧바로 화를 내며 소리쳤다.“반재신!”그 시각 회사에 있던 반재신이 재채기를 했다.업무 보고를 하고 있던 양우빈이 재채기 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그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에어컨 온도 좀 높일까요?”반재신이 손을 저었다.“괜찮습니다.”그가 서류를 내려놓고 코를 만지작거렸다.“진예은의 임신 사실에 대해서는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