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 엔터의 서자천이 제 뒷조사를 하고 있어요. 이 기회에 저를 팔아 더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은데, 제가 직접 나설 수는 없을 것 같아요.”회장은 바로 그가 하는 말의 뜻을 알아차렸다.“제가 직접 해결하길 바라시나요?”그가 고개를 끄덕였다.“연예계에 영향력 있는 TY 엔터 회장이시니까 직접 해결해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손가락으로 창문을 가볍게 두드리며 잠시 고민을 한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서자천이 만약 언론의 힘으로 재개하면 TY 엔터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어요. 호민과 서자천의 사건을 폭로한 제가 TY 엔터와 손을 잡고 있으니,네티즌들의 입을 모두 막지 못할 거예요.”회장은 쉽게 그가 하는 말을 이해했다.촬영 현장에서 서자천은 줄곧 강유이를 적대시했고, 작은 사건이 큰 사건으로 번지며 결과적으로 서자천이 모든 책임을 지게 되었다. 그 사건으로 유성 엔터는 서자천의 모든 촬영을 취소했다.TY 엔터 대주주인 한태군이 두 사람 사이를 직접 밝히지 않는 건 강유이 때문일 것이다.강유이가 반 씨 가문과 아무 사이도 아닌 TY 엔터를 선택한 건 자신의 실력을 대중들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반 씨 가문의 자녀라는 이유로 이미 대중들의 모든 관심을 받고 있는 그녀의 약혼자가 한태군이라는 사실을 서자천이 언론에 알려주겠다고 하면, 각 언론사들은 반드시 서자천의 편을 들 것이다.강유이의 약혼자가 TY 엔터 대주주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대놓고 뭐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일부 말을 꾸미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입맛대로 영화 한 편을 만들 수도 있었다. 강유이는 누가 뭐라고 하여도 TY 엔터의 연예인이다. 그런 그녀가 TY 엔터를 위해 많은 돈을 벌어다 줬으니 TY 엔터는 자사의 연예인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지시를 따르겠다고 대답했다.그 시각, 커피숍.서자천이 2층 구석진 자리로 향하자,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싸맨 여자는 그를 발견하고 마스크를 벗었다.그녀는 바로
호민은 계약이 끝날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릴 수 밖에 없다. 계약이 끝난 뒤 새 기획사를 찾고 다시 방송을 시작하면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남과 동시에 더 이상 그녀를 찾는 방송사도 없을 것이다.강유이처럼 방대한 세력의 가문도 갖지 못했기에 오직 자신만의 힘으로 돈을 벌어야 했다. 억울한 건 왜 항상 그녀여야만 하는 걸까?“그래요. 제가 도와줄게요.”서자천은 그녀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호민 씨, 제가 도움을 줬으니,그에 따른 보답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호민은 필요할 때만 그녀를 찾는 서자천이 미치도록 미웠지만 그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기에 화를 참을 수밖에 없었다.강유이는 임석진이 건넨 예능 대본을 살피며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이건…”임석진이 말했다.“회장님께서 네가 이 예능을 맡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어. 각 언론에서 모두 네 약혼자를 궁금해하고 서자천 그 개자식이 밝히는 것보다 네가 직접 공개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야.”강유이가 직접 예능에 출연해 한태군을 언론에 공개하고 싶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면 추측이 난무하는 인터넷 여론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이후에 서자천이 한태군의 정체를 언론에 밝히는 건 당사자들의 의견을 묵살해 버린 것이고, 그러면 연예계에서 다시 활동을 재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여론의 반격으로 그동안 그의 곁에 남았던 팬들도 모두 떠나버릴 것이다.네티즌들도 더 이상 그의 소식을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고 일부 개인 언론사들에게는 그저 뜨거운 감자로 남을 것이다.그녀를 위해 예능을 준비한 회장의 의도를 알아차린 강유이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네. 준비할게요.”연습실로 돌아온 강유이는 주계진이 진예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목격했다.“예은 씨, 밥 먹었어요? 배 안 고파요?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제가 바로 포장해 줄게요. 그리고 제가 자주 가는 레스토랑이 있는데… 이 부근에…”강유이는 연습실 문에 기대 팔짱을 끼고 말했다.“계진 씨, 한가해요?”주계진은 흠칫 놀라더니 머쓱하게 웃음
진예은이 말을 하려던 순간,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고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반재신의 이름이 화면에 반짝거렸다.강유이는 그녀의 휴대폰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우리 오빠도 양반은 못되겠다.”진예은은 휴대폰을 손에 쥐고 밖으로 달려 나갔고, 강유이는 그녀가 부끄러워 연습실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며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리는 순간 바로 뒤에 있는 테이블에 부딪혔고 테이블 위에 놓인 가방이 바닥에 떨어졌다. 몸을 웅크리고 가방을 손에 쥐자,피임약으로 확인되는 약봉지가 떨어졌다. 강유이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약봉지를 쳐다봤다.통화를 마치고 다시 연습실로 돌아온 진예은은 책상 앞에 앉아 대본을 확인하는 강유이를 보고 방해하지 않았다.컴퓨터 앞에 앉아 열심히 업무를 처리하는 진예은의 뒷모습을 바라본 강유이는 조금 전 그녀의 가방에서 떨어진 피임약을 떠올리고 입술을 깨물었다.물어보고 싶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두 사람 모두 아직 젊은 나이기에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 것일 수 있지만, 진예은과 둘째 오빠가 벌써 함께 잠자리를 한 사이라니…이미 혼인신고를 마친 그녀와 한태군에게는 아직 마지막 단계가 남아 있었다.퇴근 후, 평소대로 강유이를 데리러 온 한태군은 차에 올라탄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한 표정으로 창밖만 바라보는 것을 발견했다.급한 서류를 끝낸 그는 바로 노트북을 닫고 그녀를 돌아봤다.“유이야.”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강유이는 바로 창밖에서 시선을 거두었다.“일 끝났어?”한태군은 두 팔을 뻗어 그녀를 품에 안고 귓불을 깨물었다. “그동안 업무가 너무 많아서 놀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일 끝나면 바로 가까운 곳에 여행이라도 다녀오자.”한태군은 강유이가 헛된 생각을 할까 봐 불안했다. 그의 품에 가만히 안긴 강유이는 두 눈을 깜빡거렸다.“오빠, 나 뭐 하나 물어봐도 돼?”한태군은 그런 강유이를 부드럽게 바라봤다.“응. 물어봐도 돼.”강유이는 한태군의 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왜 나랑…”분위기가
한태군은 멈칫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예은이가 약을 먹는다고?”강유이는 눈을 내리깔았다.“둘째 오빠와 예은이가 아직 임신 계획이 없어 약을 먹는 거겠지.”한태군은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단순한 강유이는 이런 쪽에 정말 아는 것이 없었다. 지금 아직 때가 이른 게 아니었다면 강유이에게 제대로 가르쳐주고 싶었다.한태군은 그녀의 코끝을 톡 건드렸다.“바보, 약은 몸에 좋지 않고 앞으로 임신 계획에도 큰 영향을 줘. 재신이가 정말 예은이를 좋아한다면 약을 먹게 놔두지 않았을 거야.”강유이는 멍하니 서 있었다.“설마... 예은이가 둘째 오빠 몰래 먹고 있는 거야?”한태군은 고개를 끄덕였다.“아마 그럴지도.”늦은 밤, 한태군은 창문 앞에 서서 어둠이 내려앉은 고요한 정원을 바라보았다.그는 눈을 내리깔고 휴대폰 액정에 뜬 문자를 확인했다.-한 대표님, 죄송합니다. 데이비 렌지 씨의 시체를 찾지 못했습니다.그 문자를 확인한 한태군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졌다.데이비 렌지가 체포될 때의 광기 어린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한태군, 넌 약점이 없을 것 같아? 너에게도 언젠가 여자가 생기겠지, 하하.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절대 나에게 들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나한테 잡히지 마! 아니면 오늘 당한 일을 배로 너에게 갚아줄 테니까!”한태군은 휴대폰을 꽉 쥐더니 몸을 돌려 새근새근 자고 있는 강유이를 보았다.침대로 다가가 끝에 앉은 그는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만지면서 지그시 쳐다보았다.데이비 렌지가 살아있다면, 꼭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그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해칠 거다. 한태군은 그것이 걱정되어 서울에서 신분을 숨기며 살고 있었다. 또한 강유이와의 결혼 소식을 공개하지 않는 것도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다음날.회사에 도착한 강유이는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제 한태군에게 요리를 해주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완전히 까먹고 말았다.오늘 밤에는 꼭 만회해야겠어.연습실에 도착한 강유이는 진예은을 보지 못했고, 도리어 한 여자가
강유이는 피식 웃더니 휴대폰으로 찍은 동영상을 그녀에게 보여줬다.“서자천 선배가 이걸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요?”호민은 표정이 확 바뀌더니 휴대폰을 뺏으려고 강유이에게 달려들었다.강유이는 물러서면서 휴대폰을 뒤로 숨겼다.다른 방법이 없는 호민은 씩씩거리면서 낮게 말했다.“강유이 씨, 어떻게 저에게 이럴 수 있죠? 제가 이렇게 사정하잖아요. 도대체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는 거예요?”강유이는 휴대폰을 넣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당신은 진심으로 저에게 사정하는 게 아니잖아요. 저에게 들키게 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사정하는 거잖아요.”호민은 눈시울이 빨개졌다.“전 이미 이 업계에서 매장되었어요. 제가 이 지경까지 되었는데, 또 어떻게 하길 바라는 거예요?”“네, 당신은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얌전히 있지 않네요.”강유이는 웃음을 터뜨렸다.“그러니 제가 어떻게 당신의 뜻대로 되게 놔둘 수 있겠어요?”강유이는 책상 앞에 다가가 안내 데스크로 전화를 걸었다. 호민은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더니 뛰어오면서 저지하려 했다.강유이가 한 손으로 밀치자,호민은 균형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강유이는 데스크 직원에게 몇 마디 한 후 전화를 끊더니 몰골이 처참한 호민을 바라보았다.“당신이든 서자천 선배든 제 남편에게 관심 끄세요. 그리고 매장을 당하든, 금지되든 모두 당신들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벌이 아니겠어요?”호민은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이미 어느 정도 풀이 죽어있었다.곧 고 비서가 보안팀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왔다. 문 앞에 도착한 그는 연습실에 “외부인” 한 명이 있는 걸 발견했다.보안 요원이 호민을 끌고 가자 고 비서는 깜짝 놀랐다.“당신이었어요?”강유이가 문 앞에 서서 말했다.“호민 씨는 몰래 TY엔터에 들어와 제 연습실에서 절도 행각을 벌였지만, 아무 손실이 없어 다행이에요. 호민 씨의 명성을 생각해 신고는 됐고, 유성에서 처리하라고 하세요.”보안 요원이 호민을 데리고 나갔다.고 비서는 이 상황이 그저 의아하기만 했다.“
진예은은 그를 밀치더니 씩씩거리면서 나갔다.“네가 아침을 해줄 거라 기대도 하지 않았어.”반재신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서랍으로 시선을 돌렸다.아래층으로 내려온 진예은은 식탁에 준비된 아침을 보고 멍해졌다.그녀는 정말 반재신이 그녀를 위해 아침을 준비할 줄은 몰랐다. 반재신이 직접 아침을 했다니!저 자식, 말은 귀에 거슬리게 해도 다른 방면은 좀 귀엽다니까.반재신은 천천히 아래층으로 내려오더니 좀 이상한 표정으로 거실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픈 게 아니라 피임하기 위해 약을 먹는 거였다.그도 아직 아이를 원하지는 않지만, 부주의로 생긴다면 받아들일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진예은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는 게 그토록 싫었던 걸까?진예은은 반재신이 이상한 표정으로 서 있자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그렇게 봐?”반재신은 아무 말도 없이 소파에 있던 외투를 챙기더니 밖으로 나갔다.곧바로 쾅 하는 문소리가 들려왔다.진예은은 미간을 찌푸렸다. 왜 또 화를 내는 거야?점심, 진예은은 프로그램 녹화 현장에 도착했다. 강유이는 백스테이지에서 대본을 보고 있었고 메이크업 선생님이 메이크업을 해주고 있었다.진예은이 오는 길에 산 커피를 테이블 위에 놓자,강유이는 고개를 들었다. 강유이는 거울에 비친 진예은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내 커피도 산 거야?”“한참 동안 녹화해야 되잖아, 네가 졸릴까 봐 샀어.”진예은은 의자를 당기며 자리에 앉았다.강유이가 말했다.“4시간일 뿐이야. 너무 긴 건 아니야.”메이크업을 한 후 메이크업 선생님이 나가자,강유이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녀는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에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넌 아기를 갖고 싶어?”진예은은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졌고 무의식적으로 강유이의 시선을 피했다.“그건 왜 물어보는 거야?”강유이는 약에 대한 말은 언급하지 않았다.“그저 물어본 거야.”진예은은 눈을 내리깔았다.“난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그건 잠시 고려하지 않으려고.”
프로그램 녹화가 시작되자 자리에 앉은 강유이는 진행자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했다.공개한 남편에 대해 질문하자 강유이는 웃으며 말했다.“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어요.”진행자는 의아했다.“소꿉친구였나요?”강유이다 대답했다.“네, 하지만 한동안 연락 없이 지냈어요.”진행자가 물었다.“그럼,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건가요? 아니면 가문을 위한 건가요?”강유이는 웃으며 답했다.“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거죠.”진행자가 다시 물었다.“이미 혼인신고까지 한 사이라면 왜 공개하지 않는 건가요? 남편의 개인 생활이 걱정되어 그런 건가요?”강유이는 미소를 지으면서 장난스럽게 이야기했다.“제 남편이 너무 좋은 사람이라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게 싫어요. 연적이 많이 생기면 제가 피곤해지잖아요? 우스갯소리지만, 앞으로 제 남편에 대해 신경 써주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불편하거든요. 제 남편은 계속 신비주의 신분으로 지냈으면 좋겠네요.”프로그램 녹화가 끝난 후 강유이는 진행자와 인사를 나누고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진예은은 다가가 강유이가 계단에서 내려오는 걸 부축했다.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강유이는 휴대폰으로 뉴스를 확인했다. 임석진의 행동을 보아하니 유성 엔터의 문제 처리 속도는 정말 빠른 듯했다.유성에서 매장된 호민은 순식간에 검색어에 올랐고, 그녀의 연예계 생활도 완전히 끝장났다. 배후자인 서자천이 파파라치를 고용해 여자 연예인을 스토커한 일이 폭로된 지 몇 시간 만에 서자천과 계약했던 광고주들이 줄줄이 계약을 해지했다.그의 아파트 아래에는 기자들로 가득했다.창문 앞에 서서 기자들을 바라보고 있는 서자천의 표정은 음침하고도 어두웠다.그는 매니저의 수십 통 전화, 그리고 문자에 답장하지도 않고, 확인하지도 않았다.매니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회사도 할 만큼 했어요. 그때 자천 씨를 보존하는 것도 최선을 다한 거였죠. 자천 씨가 그 마음을 몰라주니 저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네요.’서자천이 테이블을 엎자,위에 있던 물건들이 와르르
양우빈은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런데 막상 말을 꺼내고 보니 반재신의 표정이 어딘가 이상한 것을 알아차렸다. 그제야 그는 번뜩 정신이 들었다.“대표님, 설마 지금 대표님 이야기를…”“다른 사람 이야기입니다.”반재신이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양우빈이 짧게 알겠다고 대답했다.“그럼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반재신은 답을 하지 않았다. 양우빈이 눈치 빠르게 사무실을 나갔다.반재신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생각에 잠겼다.혹시 진예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설마 자신이 그녀와 아이를 부정할 거라고 생각하고 피임약을 먹고 있는 거라면?확실히 그는 그녀가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어도, 그녀를 탓할 자격이 없었다.이건 명백한 자신의 잘못이었다.그가 아무런 피임도 없이 그녀를 안았고, 전혀 그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 아마 그녀한테 그는 천하에 다시없을 쓰레기일지도 몰랐다.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온 양우빈은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가 멈칫했다.“하서함 씨?”하서함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양 비서님.”양우빈이 책상 뒤로 돌아가 의자를 당겨 자리에 앉았다.“저한테 볼일 있으신가요?”“네.”그녀가 미소 지었다.“지금껏 저한테 많은 가르침을 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왔어요.”양우빈이 쑥스러운 듯이 대답했다.“별말씀을요.”그녀가 갖고 온 값비싼 선물을 그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양우빈이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하서함 씨, 이게 다 뭡니까?”하서함이 선물을 그의 앞으로 밀었다.“제 작은 성의입니다. 보잘것없지만 받아주세요.”양우빈이 다시 그 물건을 그녀 앞으로 밀었다.“안 될 말씀입니다. 저는 이런 귀한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하서함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녀의 태도는 견고했다.“양 비서님, 받아주세요. 받지 않으시면 제가 무척 속상할 것 같아요.”“참…”양우빈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걱정 마세요. 재신 씨한테는 말하지 않을게요. 저도 양 비서님한테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