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진예은이 먼저 자리를 떠난 후, 반재신은 밥도 먹지 않고 하서함을 버려둔 채 나가버렸다. 말로는 급한 일 때문이라고 했지만 거짓말이 분명했다.이제 보니 둘째 오빠와 진예은은 진작 그녀 몰래 사귀는 사이로 발전했던 것이다.진예은은 강유이한테 이렇게 들켜버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순간 그녀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진예은은 난처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이야, 미안해. 사실 우리…”“잠깐만.”강유이가 손을 들고 진예은의 말을 끊었다. 강유이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나 잠깐만 숨 좀 고를게. 갑자기 너무 어마어마한 사실을 알아버렸어. 두 사람 진작부터 사귀고 있었던 거야?”진예은이 시선을 내려뜨리며 답했다.“사귄다고는 할 수 없어.”반재신이 진예은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잠깐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그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진예은, 유이 앞에서 인정하지 않겠다 이거야?”그녀가 입을 꾹 다물며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다.그가 냉소를 지었다.“그럼 나도 설명할 필요 없겠네.”그가 그대로 몸을 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섰다.강유이가 그 자리에 굳어져 반재신이 나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소파 앞에 서 있는 진예은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그녀가 모르는 오해가 있는 걸까?그날 저녁, 진예은은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강유이는 촬영장에서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한태군의 차가 멀지 않은 곳에 멈춰 섰다.그녀는 얼른 차에 올라탔다. 강유이는 진예은과 반재신의 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한태군이 파일을 정리해 서류 봉투에 넣은 후 그녀를 돌아보았다.“무슨 일 있었어?”강유이는 그제야 정신이 번뜩 들었다.“예은이와 둘째 오빠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한태군이 피식 웃었다.“알게 된 거야?”그녀가 멈칫거리더니 그를 홱 돌아보았다.“설마 오빤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거야?”한태군이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알고 있었지.”“언제부터?”“삼 년
반지 케이스였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목에 걸고 있던 반지를 만지작거렸다.“반지는 이미 예전에 줬었잖아.”한태군이 그녀의 뒤에 멈춰 섰다.“달라.”그가 미소 지었다.“삼 년 전에 줬던 반지는 기껏해야 약속의 증표라고밖에 할 수 없어. 정식은 아니야.”강유이가 그를 돌아보았다.“꼭 그렇게 분명하게 가려야 해?”한태군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리본에 묶여있는 반지 케이스를 풀고 그녀한테로 다가왔다.강유이의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를 바라보았다.그가 그녀의 앞에 멈춰 서더니 한쪽 무릎을 꿇고 손에 들고 있던 반지 케이스를 열었다. 케이스 안에는 수레국화 모양의 사파이어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어있었다. 반지 안쪽에는 한태군의 영문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강유이 씨, 나와 평생을 함께하지 않을래? 이 반지 받으면 앞으로 절대 나랑 헤어질 수 없어.”그의 장난스러운 뒷말에 그녀가 까르륵 웃었다. 그러나 곧바로 그녀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눈시울을 붉혔다.“세상에 이런 프러포즈가 어디 있어.”“함께해 줄 거지?”그녀가 손을 내밀었다.“그럼 한태군 씨, 제 손에 반지를 끼워주실래요?”그가 미소 지었다. 한태군이 반지를 들고 천천히 강유이의 약지에 끼워주었다. 사이즈가 딱 맞았다.그가 그녀의 손을 잡고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난 지금껏 이날만을 기다리며 살아왔어.”강유이가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그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기에 차가운 반지마저 따뜻하게 느껴졌다.그때, 갑작스러운 강유이의 배꼽시계 소리에 로맨틱하던 분위기가 깨져버렸다. 그녀가 난감한 표정으로 그에게 잡힌 손을 빼냈다.“아직 밥을 안 먹어서.”한태군이 웃음을 터뜨렸다.“내 생각이 짧았어. 내려가자.”강유이가 두 손으로 볼을 감쌌다. 강유이는 식탁에 앉아 한태군이 주방에서 요리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웬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 생활이 떠올랐다.문득 뭔가를 떠올린 그녀가 휴대폰을 꺼내 식탁 위에 놓인 꽃병을
화들짝 놀란 그녀가 서둘러 물 안에서 몸을 움츠렸다. 그녀의 얼굴은 이미 잔뜩 붉어져 있었다.“나… 나 금방 나갈게.”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욕조에 너무 오랫동안 몸을 담그지 말란 말을 하려던 것뿐이야. 그러다 기절할 수 있어.”그가 준비해 온 옷을 문 옆에 놓아주었다.“유이네 잠옷은 문 옆에 두고 갈게.”강유이가 알겠다고 짧게 대답했다.그의 그림자가 멀어진 후에야 그녀가 욕조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목욕 타월로 자기 몸을 감쌌다.욕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보니 그가 준비해 둔 잠옷이 가지런하게 놓여있었다.그녀는 얼른 잠옷으로 갈아입고 욕실 밖으로 나갔다. 머리가 채 마르지 않은 터라 조금 축축했다. 뽀얗고 붉은빛이 도는 피부 위에 실크 잠옷이 걸쳐졌다.강유이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침실 안을 살폈다. 한태군이 다리를 꼰 채 기다란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는 이마를 짚고 있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잡지를 넘기고 있었다.검은색 실크 잠옷 가운을 걸친 그가 시선을 내려뜨리고 있었다. 허리끈을 느슨하게 맨 터라 앞섶이 느슨하게 벌어져 있었는데 어쩐지 그 모습에서 나른한 섹시함이 느껴졌다.은은한 스탠드 조명이 카펫 위에 우뚝 세워져 있었다. 따뜻한 불빛이 그의 모습을 은근하게 비추고 있었는데, 어둠과 교묘하게 조합되어 그의 오관이 더욱 뚜렷하게 느껴졌다.정말이지 세상을 뒤흔들 만한 미모를 가진 남자였다.미술관에 전시된 볼 수만 있고 만져서는 안 되는 작품이 바로 저 모습일 것이다.강유이는 속으로 조용히 감탄했다. 한태군이 기억을 잃었을 때 리사의 거짓말을 간파했던 게 참 다행이었다. 아니면 이렇게 완벽한 남자를 리사한테 빼앗길 뻔했을 것이다.한태군이 천천히 시선을 옮기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가 잡지를 협탁 위에 올려놓았다.“유이야.”“응?”번뜩 정신을 차린 그녀의 시선이 그의 시선과 부딪혔다.강유이는 그제야 어색한 표정으로 침실 안으로 들어왔다.“나 다 씻었어.”말을 마친 그녀가 문뜩 흠칫거렸다.
잠시 후, 두 사람의 입술이 멀어졌다.한태군이 그녀의 입술을 반복적으로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이제 자야지.”강유이가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설마 그때가 온 건가?그녀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 전에 한태군이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 침대로 다가갔다. 침대에 몸이 눕혀진 순간, 그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한태군이 그녀의 이불을 잘 여며준 후 별다른 움직임 없이 그녀의 곁에 누워 그녀를 품에 안았다.“이제 자. 잘 자.”강유이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자자는 말이 정말로 단순하게 잠만 자자는 말이었나?그녀가 고개를 돌려 한태군을 바라보았다.한태군은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피곤함이 느껴졌다. 그는 정말로 졸렸던 것 같았다.강유이가 낮게 숨을 돌렸다. 그래, 오늘 이 모든 걸 준비했으니 피곤한 게 당연했다.그녀가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여 그와 마주 보도록 돌아누웠다. 그리고 그의 품에 파고든 채 눈을 감았다.창밖으로 은은한 달빛이 비치어 들었다.방안에서는 고요하고 따뜻한 밤이 흐르고 있었다.…TY 엔터.“강유이, 갑작스러운 공개 발표 잘 봤어. 너 때문에 어제 공식 계정 완전 난리 난 거 알아?”아침 일찍 출근한 임석진은 강유이의 갑작스러운 공개 발표 뉴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어젯밤 강유이가 올린 다이아몬드 반지 사진 때문에 인터넷에서는 강유이의 남자친구 신분을 추측해 내느라 시끌벅적했다.일부 엮기 좋아하는 팬들은 강유이와 주계진을 엮으며 강유이의 남자친구가 주계진이라고 추측했다.강유이도 그녀가 올린 사진 한 장으로 이렇게 일이 커질 줄은 몰랐다.그녀가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죄송해요, 매니저님, 저도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임석진이 한숨을 내쉬었다.“네가 지금 연애를 하고 있든 말든 상관하지 않아. 어차피 넌 이미 연예계에서 훌륭한 성과를 따냈어. 삼 년 안에 무비 퀸이 된 것만 해도 엄청난 성공이야. 이대로 연예계에서 은퇴한다면 무척 아쉬울 정도야.”“저 은퇴할 생각 없는데
그녀는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 말 하나까지 언론에 공개되는 직업을 가졌다. 때문에 공인의 불편함을 깊이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한태군은 연예인도 아니었기에 그녀는 그런 시선들을 그가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진예은이 피식 웃었다.“혼인신고 하더니 이제 남편 걱정도 할 줄 아네.”그녀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그럼 어떡해. 한태군은 이제 내 남편인데. 당연히 내가 걱정해 줘야지.”그러다 문득 뭔가를 떠올린 그녀가 고개를 휙 돌려 진예은을 바라보았다.“그럼 너랑 우리 둘째 오빠는 도대체 어떤 상황인데.”진예은이 순간 당황했다. 그녀가 급하게 시선을 돌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어떤 사인지 명확하지 않은 사이.”“그게 뭐야. 둘째 오빠가 너를 좋아하고, 너도 오빠 좋아하잖아. 그러면 된 거 아니야?”“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진예은이 시선을 아래로 내려뜨렸다. “유이야, 나랑 네 오빠 일, 집에는 말하지 말아 줄래?”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한참 동안 진예은을 바라보았다.곧바로 그녀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우리 집에서 너를 반대할까 봐 걱정돼?”진예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그것 때문은 아니야…”반 씨 가문에서 그녀를 받아준다고 한들, 그녀와 반재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아직 서로에 대한 감정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결혼 한다는 말이 오간다고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일까?여전히 고고한 반재신은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터놓으려 하지 않고, 계속하여 그녀한테 맞추어 보라고만 한다. 끊임없는 추측에 그녀는 지칠 만큼 지친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절대 그녀한테 먼저 고개를 숙이려 하지 않았다.물론 그녀 역시 고집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절대 그에게 지려 하지 않았고 그런 마찰로 그 역시 지쳐가고 있었다.함께 있으면 언제나 싸우고 입씨름만 할 뿐이었다.그는 분명 좋게 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녀한테만 가시 박힌 말을 내뱉었다. 그런 느낌이 계속 들다 보니 뭔가 그녀가 자꾸만 그의
“그건 우리 둘째 오빠가 쓰던 피아노야.”진예은이 멈칫거리더니 잠시 후 피아노 뚜껑을 들어 올렸다. 검은색과 흰색의 건반이 가지런하게 배열되어 있었다.“피아노도 칠 줄 알았구나.”피아노를 치는 그의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녀의 인상 속에 있는 반재신은 경영학 외의 다른 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숨겨져 있었다니.강유이는 반재신이 어렸을 때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었다고 말했다. 또한 월반한 후 로열 음악 학원까지 갔었다고 했다. 그는 원래 음악가가 될 수도 있었지만 회사를 이어받아야 기에 그 길을 포기했었다.진예은이 흠칫 놀라며 되물었다.“그건 너무 아쉽잖아.”“확실히 아쉽긴 했어. 하지만 둘째 오빠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야.”강유이가 시선을 내려뜨렸다.큰 오빠가 더욱 강해지기 위해 증조할아버지를 따라 해외로 유학을 떠나고, 둘째 오빠는 음악을 포기했다. 꿈도 중요했지만 둘째 오빠와 큰 오빠는 반 씨 가문의 자식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했다.그러나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여자였기에, 어렸을 때부터 집안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아꼈다. 절대 그녀한테 집안의 부담을 짊어지게 하지 않았다.때문에 그녀는 속으로 자신의 두 오빠를 매우 존경하고 있었다.진예은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강유이가 지금껏 스스로 노력하여 무언가를 이루려던 원인이 어렴풋이 짐작되는 것 같았다. 그 이유에 그녀의 두 오빠가 있었다.집안에서 아무리 그녀를 보배처럼 다루었어도 그녀는 쓸모없는 공주님으로만 성장하지 않았다. 두 오빠가 몸소 모범을 보이니 그녀 역시 오빠들처럼 우수하게 자라고 싶었다.…AM 그룹.하서함이 서류를 들고 행정팀으로 향했다. 행정팀 소속 사원들도 그녀가 운경 그룹의 딸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한테 공손하게 대했다.그녀 역시 성격이 온화하고 잘난척하지 않았기에 행정팀 직원들은 그녀에 대한 인상이 좋았다.“하서함 씨는 성격도 좋고, 본인 스스로가 엉첨나게 노력하잖아요. 혹시 저분이 우리 그룹 미래 사모님이 되는 거 아
그 거리가 어찌나 먼지 친구로 지내자는 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친구로 지내자면 적어도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감정이 오가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의 의견도 묻지 않고, 곧바로 반지훈 회장을 찾아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반재신 씨는 어떤 스타일의 여자한테 호감을 느끼시나요?”반재신이 시선을 옮겨 그녀를 바라보았다.“그게 하서함씨와 무슨 상관이죠?”그녀가 솔직하게 답했다.“저는 반재신 씨의 마음을 열지 못했으니까 당연히 궁금할 수 밖에요. 반재신 씨의 닫힌 마음의 문을 열 정도 되는 여자라면 분명 엄청 멋진여자겠죠.”어쩌면 정말로 그녀의 말대로 그의 눈이 너무 높아,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만약 그 상대가 엄청 훌륭한 여자였다면, 그녀도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할 수 있었다.반재신이 침묵했다. 그의 주위에는 훌륭한 여자가 많았다. 하서함도 그 중 하나이다. 가문도 그와 썩 잘 어울렸고, 적당히 절제할 줄도 알았으며, 능력 있는 재벌가 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었다.이런 여자와 결혼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내조도 원만하게 잘 할 거고, 남편의 사업에도 큰 힘을 보태줄 수 있을 것이다.만약 그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여자의 조건이 우수함이었다면, 확실히 진예은은 수준 미달이었다.고집이 세고, 절대 그에게 지려고 하지 않았으며, 말도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정 환경도 복잡했다. 여자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온화함조차 없었다. 하지만 하필 그런 여자가 반재신의 마음에 들어온 것이다.그 생각이 떠오르자 반재신은 순간 저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하서함이 당황하며 물었다.“재신씨?”반재신이 곧바로 표정을 굳히고 정색했다. 그는 자신이 언제 웃었냐는 듯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세상에 우수하지 않은 여자는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다들 자신만의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
강유이가 언제 반재신과 한통속이 된 거지?반재신이 정장 외투를 벗어 현관 옷걸이에 걸었다.“이사를 했으면 나한테 알렸어야지.”그녀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굳이 내가 알리지 않아도 알려주는 사람 있잖아.”반재신이 거실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그가 피아노 앞에 멈춰 서더니 시선을 아래로 행했다.“유이가 너보고 여기서 지내래?”그녀가 피식 웃었다.“아니면?”곧바로 그녀가 말을 보충했다.“공짜로 지내는 거 아니야. 월세 낼 거야.”그가 멈칫거리더니 그녀를 돌아보았다.분명 그녀 자신만 놓고 보면 그녀가 이렇게까지 도도하게 굴 그 어떤 이유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세상에 두려울 게 없는 사람처럼 당당했다.그 당당함의 원천은 그녀 자신이었다.그녀는 꿍꿍이가 없었고, 다른 사람한테 빌붙을 줄도 몰랐다. 오직 본인 스스로가 노력하여 모든 걸 이루어 냈기에 그토록 당당할 수 있었다.마치 자기 절로 번 돈이니 무엇을 사도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반재신이 그녀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한 달에 얼마씩 내는데?”그녀가 흠칫거리더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얼마 벌면 얼마 줄 거야.”문뜩 정신을 차린 그녀가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네가 집을 내준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시시콜콜 따져?”그가 소리 내어 웃었다.“순진한 내 동생이 손해 볼까 봐 그러지.”“내가 정말로 유이한테 손해 줄 짓을 했어도, 네가 나설 필요는 없어.”“내가 걔 오빤데 왜 내가 나설 필요 없지?”진예은은 아예 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가려고 했다.반재신이 얼른 그녀를 붙잡았다.“나 여기 싸우러 온 거 아니야.”그녀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싸우러 온 게 아니라, 내가 하는 일에 시비를 걸고 싶어 온 거겠지.”반재신은 말문이 막혔다.진예은이 그의 손을 뿌리치려 하자 그가 더욱 힘을 주어 그녀를 붙잡았다.“제발…”그의 표정이 어쩐지 부자연스러웠다.“나한테 한 번이라도 져 줄 수는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