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씩 웃으며 말했다.“오빠 그럼 허락한 거다?”반재언이 침대 위에 넣어둔 비키니를 힐끗 확인하더니 그쪽을 가리키며 말했다.“수영복 다른 거로 골라. 저건 안 어울려.”강유이가 흠칫거렸다. 순식간에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오빠한테 그걸 들키다니!다음날, 아침 일찍 도착한 진예은이 정원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유이가 트렁크를 끌고 문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연청색 끈 민소매 꽃무늬 원피스에, 비즈 플라워 비치 슈즈를 신고 있었고, 머리에는 챙이 커다란 모자까지 써서 유독 상큼 발랄해 보였다.진예은이 물었다.“수영복은 골랐어?”집안을 힐끗 돌아보던 유이가 진예은한테 바짝 다가가더니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큰 오빠가 그 비키니를 입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몰래 챙겼어.”진예은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못 말려 정말. 오늘 한태군을 유혹할 작정이야?”“그런 거 아니야!”강유이가 당당하게 말했다.“해변가니까 분명 비키니를 입은 미녀들이 엄청 많을 거 아니야. 그런 여자들한테 질 수 없지!”“됐거든.”진예은은 그녀의 속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우리 오빠 코피 터뜨릴 작정이면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해.”강유이가 서둘러 그녀의 입을 막았다.“헛소리 좀 하지 마.”차량 한 대가 천천히 정원 밖에 멈춰 섰다.뒷좌석 창문이 절반 정도 내려가더니 한태군의 모습이 보였다. 캐주얼한 흰색 셔츠를 입은 그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청량하게 느껴졌다. 한태군은 이목구비가 뚜렷했기에 밝은색 옷이 훨씬 더 잘 어울렸다.운전기사가 그녀들을 대신해 두 사람의 짐을 트렁크에 실었다. 두 사람이 차에 올라탔다.그들이 가려는 리조트는 시내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져 있었다. 차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금방 리조트에 도착했다.독특한 현지 풍격을 유지하고 있는 리조트는, 특유의 지형 때문에 하얀색 작은 양옥이 높은 곳에서부터 낮은 곳으로 줄줄이 이어져 섬의 중심을 둘러싸고 있었다.리조트 주위로는 온통 경계선이 모호한 푸른 바다와 하늘이
강유이는 한태군의 몸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도대체 저 남자는 어떻게 된 게, 머리 물기를 털어내는 모습마저도 저렇게 섹시할 수 있을까.그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하자 강유이가 번뜩 정신을 차리고 얼른 몸을 숙이며 숨었다.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렸다. 그에게 들키면 관음증 변태로 내몰릴 게 분명했다.그녀가 몰래 기어서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옆방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가 베란다 밖으로 나왔다.“유이야.”강유이는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너무나 부끄러워 당장 방으로 뛰어 들어가고 싶었지만 결국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가운을 툭툭 털면서 일부러 먼 곳을 바라보았다.“여기 마을 야경이 참 예쁘네.”“확실히 그렇긴 해.”한태군이 웃음을 터뜨렸다.“유이 너 야경을 보고 있었어?”그녀가 흠칫 놀라더니 애써 그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당연히 야경을 보고 있었지.”그가 담담하게 말했다.“그래. 여기 풍경 예쁘지?”그녀가 답했다.“응. 예뻐.”“그럼 난 예뻐?”“당연히 예쁘지—”말을 내뱉는 순간 강유이는 웃음기를 가득 머금은 그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녀는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렸다.그녀는 자신의 입을 당장 꿰매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녀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억울한 듯이 말했다.“내가 일부러 보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우연히…”그녀는 순간 자기 체면을 살리려는 듯이 적반하장으로 그를 바라보며 소리쳤다.“네 잘못도 있거든. 머리를 말리려면 안에서 말리면 되지. 뭐 하러 창문 옆에까지 와서 말려. 일부러 나한테 보여주려고 그런 거잖아.”그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이리 와.”그녀가 그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조금 더 가까이.”두 베란다 사이의 간격이 멀지 않았기에 곧바로 두 사람 사이가 엄청 가까워졌다.그녀가 조금 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왜 그러는—”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큼직한 그의 손이 그녀의 뒤통수를
유이는 한태군이 자신을 애라고 하는 걸 듣기 싫어했다.그녀는 그를 남자친구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는 자신을 딸처럼 보고 있다니.강유이가 우울해하는 모습을 확인한 진예은이 웃으며 말했다.“수영하러 가기로 했잖아. 아침 먹고 점심쯤에 가면 비슷하겠네.”수영 말이 나오자 강유이는 다시 활력을 되찾았다.무더운 여름, 하얀색 모래사장 위에는 사람들로 들끓었다. 곳곳에 금발의 파란색 눈동자를 지닌 비키니 미녀들이 가득했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섹시하고 풍만한 몸매를 소유하고 있었다.커다란 목욕 타월을 몸에 두른 강유이가 탈의실에서 나왔다. 그녀는 원래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가슴 크고 엉덩이 빵빵한 서양 미인들을 보고 나니 순식간에 자신감이 반으로 줄어들었다.“유이야, 왜 아직도 여기 서있어?”진예은이 수영복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녀는 기다란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상태였다.강유이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진예은은 원피스 형으로 된 수영복을 입고 있었는데 등이 파인 디자인이었다. 그녀의 수영복은 자신과 비하면 보수적인 편이었다.수영복으로 갈아입자 진예은의 풍만한 가슴라인이 그대로 드러났다.진예은이 강유이의 머리를 콩 하고 내리쳤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 다 같은 여자끼리.”강유이가 시선을 거두며 입을 삐쭉거렸다.“역시 수영복은 갈아입는 게 좋을 것 같아.”그녀는 망신을 당할 바에는 갈아입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그때, 진예은이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던 타월을 휙 빼앗아갔다. 깜짝 놀란 강유이가 서둘러 몸을 가렸다.“뭐 하는 거야?”진예은이 턱을 괴고 미간을 찌푸렸다.“이런 몸매를 갖고 있으면서 불만이라고?”강유이가 낮게 중얼거렸다.“저 사람들이랑 비하면 아직 멀었는걸.”진예은이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등을 밀며 밖으로 나갔다.“됐어. 그런 열등감은 내려놔. 내 말을 믿어. 네 몸매 절대 나쁘지 않아.”“앗, 잠깐만—”강유이는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로 진예은에게 떠밀려 밖으로 나왔다. 진예은이 그녀의
해변가에 도착한 강유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곧바로 그녀는 진예은을 발견할 수 있었다.진예은은 서핑을 하고 있었다. 서핑 보드 위에 올라탄 채 파도치는 바다 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멋졌다. 곁에서 같이 서핑하던 남자들 마저 그녀의 모습에 반해 다가가 말을 걸었다. 누가 봐도 초보의 모습이 아니었다.강유이가 넋을 잃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진예은이 서핑을 할 줄 알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서핑을 하는 진예은의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또다시 파도가 일었다. 넋 놓고 진예은만 바라보던 남자들이 파도에 휩쓸려 우르르 바다에 빠져버렸다.그때, 파도 속에서 웬 사람이 나타났다. 서핑 복을 입고 잠수 안경까지 낀 그는 완벽한 자세로 파도를 타고 있었다.진예은은 어쩐지 그 사람의 모습이 눈에 익었다. 그녀가 딴 곳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 갑자기 커다란 파도가 그녀를 덮쳤다.“예은아!”깜짝 놀란 강유이가 급히 소리쳤다.진예은은 미처 파도를 피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바다에 빠져버렸다.수면 위로 떠오른 그녀가 바닷물을 얼마나 먹었는지 몇 번이나 콜록거렸다.잠시 후 진예은이 서핑 보드를 안고 해변가로 헤엄쳐 나왔다.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가 그녀를 일으켰다.“아까 엄청 위험했어.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잠깐 한눈팔지만 않았더라면 절대 빠질 일 없었어.”진예은이 그녀와 함게 모래사장 위로 올라왔다.“한태군은? 같이 안 있었어?”“걔는…”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강유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이상하네. 방금 전까지 여기 있었는데.”그녀더러 자기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말라더니 본인이 자취를 감춰 버렸다.두 사람은 파라솔 밑에 비치되어 있는 썬 베드로 걸어갔다. 두 사람이 앉고 얼마 되지 않아 한태군이 다가왔다.그의 곁에는 어딘가 눈에 익은 모습의 남자가 서 있었다.방금 전 여유롭게 서핑을 즐기던 바로 그 남자였다.그가 태연하게 잠수 안경을 벗자 강유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재신 오빠?”반
한태군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두 사람의 일은 두 사람의 일이고. 우린 옆에서 구경이나 하면 돼.”강유이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이거 진짜 이래도 되나?”그가 소리 내어 웃었다.진예은과 반재신이 정말로 내기를 이행하러 바다로 나섰다. 두 사람은 지구력을 겨루기로 합의했다. 파도 위에서 마지막까지 넘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사람이 이기는 걸로 했다.처음에는 두 사람 모두 여유로웠다. 그 둘은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정확하게 몸을 틀어 파도를 타고 넘었다.구경꾼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어느새 바다 위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둘만 남아 서핑을 하고 있었다. 드넓은 바다가 마치 두 사람만을 위해 준비된 무대처럼 느껴졌다.강유이가 마음을 졸이며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 명은 자기 친 오빠였고, 다른 한 명은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유이는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파도가 높게 일면 일수록 위험했다. 점점 승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진예은이 막 자세를 바꾸려는데 갑자기 종아리에 쥐가 났다. 하필 그 순간 커다란 파도가 일더니 순식간에 그녀가 바다로 빠져버렸다.강유이는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일반적인 상황이면 파도가 지난 후 곧바로 진예은이 수면 위로 떠올랐어야 했다. 그런데 수면 위에는 그녀의 보드만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 그 어디에도 진예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그녀가 발을 동동 구르며 한태군을 잡아당겼다.“태군 오빠, 예은이한테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아.”한태군이 막 바다로 뛰어들려고 하던 순간, 그는 반재신의 모습도 함께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반재신은 진예은이 파도에 휩쓸린 그 순간 바로 바다로 뛰어들었었다. 그가 손을 뻗어 진예은의 팔을 잡아 자기 품으로 끌어당긴 후 수면 위로 올라왔다.진예은이 바다에 빠진 건 너무나 갑작스럽게 발생한 일이었다. 때문에 미처 숨을 참지 못한 그녀는 그 짧은 사이에 꽤 많은 양의 바닷물을 마셔 한참 동안이나 콜록거렸다.코가 화끈거리고 목이 따가워났다.반재
두 사람이 동시에 그녀를 쳐다보았다.“누가 유치하다는 거야?”이럴 때는 또 둘이 참 죽이 잘 맞았다.“……”강유이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다른 한편, 진예은은 집 옆 편의점에서 맥주 몇 병과 간식을 샀다. 지갑을 꺼내 막 계산을 하려는데 갑자기 웬 남자의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걱정하지 마. 한씨 가문 도련님과 반씨 가문의 아가씨가 이 리조트에 있는 게 확실하니까. 이미 두 사람이 머물고 있는 펜션까지 다 알아봤어.”“며칠 내로 움직일 생각이야. 절대 두 사람이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할 거야.”진예은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녀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남자는 편의점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며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또 다른 남자 두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의 팔에 문신이 가득했는데 절대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았다.저들의 목표는 유이와 한태군인가?그녀가 잠깐 정신이 팔린 사이, 갑작스러운 점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가씨, 뭐 더 필요해요?”하지만 그 말은 안 하기보다 못하게 되었다. 문 앞에 서 있는 남자들이 순식간에 편의점 안에 신경을 곤두세웠다.그들이 막 고개를 돌리려 할 때, 진예은이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그녀는 그들의 주의를 끌지 않으려고 애써 못 본 척하며 진열대에 놓인 아무 물건이나 하나 집어 들었다.“이것도 같이 계산해 주세요. 얼마죠?”그녀는 손에 쥔 자그마한 박스에 대해 전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저 바깥의 상황에 온 정신이 쏠려있으면서 겉으로는 애써 침착한 척 행동했다.점원은 그녀가 한참 동안이나 망설이던 게 손에 든 그 물건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계산을 하면서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히쭉거렸다.“남자친구가 어린가 봐요.”그 말을 알아들었을 리가 없는 진예은이 되물었다.“네?”그녀의 시선이 그제야 문제의 그 박스로 향했다.진예은은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러나 이미 점원이 그 물건을 주머니에 담아 그녀에게 건네고 있었다.“필요하면 다시 방문해 주
그녀가 갑자기 그를 향해 달려가더니 무작정 돌아선 그의 등을 껴안았다.“자기야, 내 말 좀 들어봐!”그녀의 목소리가 제법 컸다.반재신이 그대로 얼어붙어버렸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그들을 힐끔거렸다. 곧바로 그가 진예은을 뿌리쳤다.“너 미쳤어?”그의 힘을 이겨내지 못한 진예은이 바닥에 주저앉았다.손바닥이 바닥을 스치자 그녀가 쓰라린 고통에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녀의 목적은 일을 더 크게 부풀리는 것이었다. 지금 체면 같은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나 절대 바람피우지 않았어. 믿어줘. 저 사람이—”그녀가 남자를 가리켰다.남자가 뭐라 말을 하려는데 뒤에 있던 두 명의 남자가 다가가 속삭였다. 그들은 일에 방해될 수 있으니 우선 일을 크게 만들지 말고 돌아가자고 설득했다.남자가 바닥에 침을 퉤하고 뱉더니 두 사람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그제야 구경하던 행인들도 하나 둘 흩어졌다. 진예은은 바닥에 떨어트린 주머니를 확인했다. 강한 충격 때문에 맥주가 다 터져버렸고 하필 문제의 그 자그마한 박스가 바닥에 굴러떨어져 있었다.그 물건을 확인한 반재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반재신의 주위로 기온이 몇 십 도는 내려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그가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그녀를 노려보았다.“네가 이런 사람이었다니. 지금껏 참 잘도 연기했네.”진예은이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 담은 후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그에게 해명하려다가 결국 턱밑까지 차오른 말을 삼켰다.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전혀 다른 말을 꺼냈다.“마음대로 생각해.”그녀는 곧바로 펜션으로 돌아갔다.문 앞에 멈춰 선 그녀가 서둘러 한태군한테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그런데 빠르게 뒤쫓아 온 반재신이 갑자기 그녀를 잡아챘다.“확실하게 해명하는 게 좋을 거야.”그녀의 손에 위태롭게 들려있던 전화기가 뜻밖의 충격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화면이 박살 나 버렸다.잔뜩 화가 난 진예은이 눈에 불을 켜고 그를 때리려 했다.“너 미쳤어?”반재신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벽으로 밀쳤다.“미친
담배를 피우며 불이 켜지지 않은 방을 주시하던 남자는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담배를 눌러 끄고 말했다.“감시하다가 그들이 돌아오면 여자부터 잡아.”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진예은의 옷은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그의 손에 입이 가려져 있는 것을 깨달은 그녀가 반재신을 가볍게 밀었다.반재신도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진예은이 문 뒤에 비스듬히 기대며 냉소를 지었다.“이제는 믿을 수 있겠어?”반재신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의 시선은 그녀의 살갗이 벗겨진 손바닥에 고정되었다. 갑자기 팔목을 낚아채는 바람에 놀란 진예은이 그의 손을 뿌리쳤다.“왜 이래?”그는 뚫어져라 그녀를 쳐다보았다.“연기가 어설퍼.”진예은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아까는 너의 형도 속였다며 연기를 잘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고는 또 못한다고 하네?”“저건 왜 산 거야?”“뭘?”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봉지가 보였다. 진예은이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다른 것으로 착각했어.”그렇게 급박한 시각에 무엇을 들고 있는지를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을까?“착각?”반재신이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추궁했다.“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게 아니고?”진예은이 그를 밀쳐내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날 괴롭힐 시간에 어떻게 방을 빠져나갈지 고민하는 게 어때?”방안은 불을 켜지 않아 해가 저물면서 점점 어둠이 드리웠다.날씨는 덥고 에어컨도 켜지 않은 상태여서 방안은 그야말로 찜통이었다.반재신이 창문을 열자, 바다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그제야 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진예은은 소파에 앉아 군것질하며 허기를 채웠다.그 소리가 너무 거슬렸던 반재신은 인상을 찌푸렸다. 고개를 돌려 한마디 하려는데 그녀의 저녁을 자신이 던진 것이 떠올랐다.만약 그가 쫓아와서 따져 묻지 않았다면 그놈들이 그녀를 발견했을 것이다.“한태군의 상황은 지금 어때?”그가 물었다.진예은이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아직 몰라. 아마 방법을 찾고 있을 거야. 그런데 우리가 나가든 그들이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