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끗 전화를 확인한 그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전유준이 고개를 들고, 마침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며 웃음을 터뜨린 한태군을 보게 되었다. 그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강유이 씨인가요?”“유이 아니면 누구겠어요.”유이가 아니면 감히 그에게 이런 문자 테러를 할 사람은 없었다.그때 똑똑하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한태군이 휴대폰을 놓고 말했다.“들어오세요.”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파란색 봉투로 된 초대장을 공손하게 그에게 건넸다.“도련님, 이건 황실 측 사람이 도련님한테 전해주라고 두고 간 것입니다.”한태군이 비서의 손에 들린 황가 표식이 찍힌 초청장을 바라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받아들었다. 그건 궁중 연회의 초대장이었다.…오후, 강유이와 헤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진예은은 기숙사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녀를 찾아온 사람이 있다고 했다. 밖으로 나간 그녀가 몸을 굳혔다.잠시 후,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아버지를 돌아보았다.“어쩐 일이세요.”그녀의 아버지가 가방 안에서 파란색 초대장을 꺼냈다.“황실에서 온 초대장이야. 그쪽은 네 외할아버지기도 하니까. 네 어머니도 지금 갈 수 없는 상태라…”진예은은 메고 있던 백팩 끈을 힘주어 잡더니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안 가요.”“예은아!”“어머니는 한 번도 저를 데리고 궁에 간 적이 없어요. 이제 진찬이 없으니까 저더러 가라는 거예요? 그분과 저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이인데 제가 가는 게 과연 적합할까요?”궁중 연회 같은 성대한 장소에는 세계 각지의 귀족, 정계 인물, 부호가 수두룩하게 모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황실의 덕을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녀의 어머니가 황제 폐하의 딸이라고 해도.그녀는 자기 어머니보다 훨씬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어머니는 정실부인의 딸이 아니었기에 손에 쥔 권력이 없었다. 때문에 그녀는 권력을 빼앗고 말겠다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매번 진찬을 데리고 연회에 참석했었다.고고하고 위대하신
그녀는 반재신이 현재 속으로 엄청 뜨끔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리가 없었다. 이건 그가 태어나서 처음 한 거짓말이었다.그가 막 입을 열려는데 강유이가 얼른 화면을 자기한테로 돌렸다.“엄마, 저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도 사귀었어요. 둘째 오빠랑 태군 오빠도 저한테 엄청 잘해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그래?”강성연이 소리 내어 웃었다.“새로운 친구를 사귄 건 좋은 일이지. 사람 보는 눈을 잘 길러야 돼.”강유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다.“예은이는 좋은 사람이에요. 리사 같은 그런 애가 절대 아니에요.”강성연이 펜을 들고 서류에 사인했다.“그건 유이 너 스스로 판단하면 돼. 이제 다 컸잖아. 곧 졸업이지?”그녀가 고개를 들었다.“너희들이 졸업하면 엄마가 졸업 선물을 보내줄게.”강유이가 활짝 웃었다.“좋아요. 그럼 엄마, 저 엄마 일하는 거 그만 방해하고 이제 끊을게요. 바이 바이.”그녀가 영상 통화를 마쳤다.반재신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왜 엄마한테 아안에 대한 일을 말하지 않았어?”“내가 말했으면 엄마랑 아빠, 당장 내일이라도 Y 국으로 쳐들어올걸.”강유이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지금도 충분히 망가졌는데, 목숨까지 잃게 둘 수는 없잖아.”확실히 현재 아안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그녀는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신경 스고 싶지 않았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일뿐이었다.반재신은 말을 하지 않았다.강유이가 문득 뭔가를 떠올리고 서둘러 자기 밥그릇과 수저를 정리했다.“참, 나 내일 예은이랑 같이 연극 공연 보러 가기로 했는데. 빨리 자야 돼.”그 시각 황실.로즈 궁중 연회장 내는 화려하고 웅장하게 꾸며져있었다. 테이블 위에 있는 향기로운 음식을 담은 식기는 모두 도금으로 만든 것이었다. 마시는 술은 모두 값비싼 샤토 라투르에서 제공했다.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귀족을 제외하고도 동맹 국가의 정치가들, 황실 대표들도 있었다. 모두가 신분이 귀하고 유명한 인물들이었다.한태군은 그녀의 어머니 정연과 함께 참석했다. 정연은 녹색
여자가 한태군을 슥 훑어보더니 불쑥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예쁘게 미소 지었다.“안녕하세요. 류하리라고 해요.”한태군이 예의상 그녀가 내민 손을 잡고 악수하며 미지근한 태도로 인사했다.“안녕하세요.”그가 빠르게 손을 놓았다. 단순하게 예의상으로 한 인사일 뿐이었다.류하리는 자신의 손에 남은 그의 온기를 느꼈다.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잘생긴 소년을 보고 전에 없던 설렘을 느꼈다.연회장에 그가 나타나고 그녀의 앞에 서기까지, 류하리는 한태군이야말로 지금껏 자기가 찾고 있던 운명의 남자라는 것을 느꼈다!연회가 절반쯤 진행되었을 때, 한태군은 중도에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류하리는 갑자기 모습을 감춘 그를 찾아 나섰다. 결국 그녀는 복도 끝에 있는 발코니에서 그의 모습을 발견했다.그는 팔걸이에 몸을 기댄 채 아래층에 있는 커다란 분수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어떤 생각에 잠겨있는 듯했다.류하리가 그에게로 다가갔다.“태군 씨.”한태군이 시선을 거두고 그녀를 돌아본 뒤 담담하게 답했다.“무슨 일이시죠?”류하리가 그의 앞에 멈춰 서서 싱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당신이 홀로 여기 서있는 모습이 보여서 찾아왔어요. 혹시 무슨 고민 있나요?”한태군은 답을 하지 않았다.류하리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조소하며 말을 이었다.“지금 이 반응은 저한테 너무 상처인데요. 이렇게 예쁜 여자가 먼저 다가와 말을 거는데 무시하다뇨?”한태군이 실눈을 떴다. 그의 표정이 무심했다.“자신감 넘치네요.”류하리가 몇 초간 당황하더니 곧바로 웃으며 긴 머리를 귀 뒤로 쓸어넘겼다.“저는요 항상 저한테 자신 있어요. 그리고 자신감이야말로 여자의 무기가 아니겠어요?”H 국에는 그녀를 쫓아다니는 남자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그 남자들은 전부 그녀의 외모, 몸매, 가문만 노렸었다.그녀는 지금껏 수많은 남자들을 봐왔다. 이번 생에는 이대로 가족들의 요구하는 삶을 강요당하며, 그녀의 신분과 어울릴만한 남자를 만나 정략결혼이나 해야 하나 걱정이
류하리가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로 그에게 약혼녀가 있는 건가? 아니면 그녀를 속이고 있는 건가?다음날은 주말이었다.원래는 강유이와 진예은 둘만 보려 했던 연극에 갑자기 한 사람이 더 추가되었다차 안, 강유이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곁에 앉아있는 반재신을 바라보았다.“오빠, 오빠가 언제부터 연극에 관심이 생겼어?”반재신이 팔짱을 끼고 앉아 말했다.“관심 없어. 그냥 네가 걱정되어서 따라가는 거야.”그녀가 어이없어하며 웃었다.“걱정될 일이 뭐가 있어? 보디가드분들과 같이 가도 되잖아.”그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보디가드라도 다 믿음직스럽진 않아.”차를 몰던 보디가드가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나 그는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 도대체 자신의 어디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거지?차가 공연장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먼저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곧바로 대문 기둥에 서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진예은을 발견했다.그녀는 평범한 반팔 후드에 통바지를 입고, 캡 모자를 쓴 캐주얼한 차림이었다.“예은아!”강유이가 그녀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고개를 돌린 진예은은 강유이의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반재신을 보고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강유이가 그녀의 앞에 멈춰 섰다. 그녀가 아차 싶은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오빠가 내가 혼자 나가는 게 걱정된다며 막무가내로 따라나왔어. 혹시 불편해?”“나 티켓 두 장 밖에 없어.”“그건 괜찮아. 오빠 보고 자기 절로 사라고 하면 돼. 우리 먼저 들어가자.”강유이가 그녀의 팔짱을 꼈다. 두 사람이 함께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극장 안, 무대 아래에 관객들이 제법 많았다. 오늘의 연극은 캐리비안의 해적이었다. 공연에 참여한 배우들은 모두 국내에 내로라하는 유명한 배우들이었다.그녀들의 자리는 여섯 번째 줄에 있었다 두 사람이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재신이 들어왔다.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 그는 두 사람의 옆자리 표를 구해냈다.연극이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거의 두 시간 정도 걸렸는데, 다행히 흥미진진하고 재밌
당황한 진예은이 서둘러 강유이에게 말했다.“잠깐만 그건—”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강유이가 이미 그것을 포크로 집어 입안에 넣었다. 다음 순간, 그녀의 표정이 엉망진창으로 이그러지더니 한두 번 씹더니 곧바로 후회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당황한 진예은이 몇 초 간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반재신을 돌아보았다.“푸아그라 한 입 먹었다고 저렇게 예민하게 반응해?”반재신이 느긋하게 스테이크를 썰었다.“쟤 내장류 못 먹어. 전에 부모님과 함께 레스토랑에서 외식할 때 먹었던 체리는 다 진짜 체리였으니까 착각했나 봐.”강유이가 앵두처럼 생긴 푸아그라를 구분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진예은이 시선을 내려뜨렸다.“난 쟤가 푸아그라를 못 먹는 줄 몰랐어…”유이 정도의 신분이라면 프렌치 정통 음식에 익숙하여 그 정도는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이것도 그녀의 편견이었다.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고 푸아그라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푸아그라 특유의 부드러운 식감과 맛을 음미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 내장 음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었다.마치 그녀가 낫토를 못 먹는 것처럼.반재신이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다.“오늘 알았으니 다음에는 분간할 수 있을 거야.”화장실, 강유이는 방금 먹은 푸아그라 때문에 아직까지 속이 메슥거렸다. 그녀는 사람들이 왜 그런 내장류 음식을 좋아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화장실에서 나온 그녀가 계단을 내려가던 그때, 갑자기 등 뒤로 웬 그림자가 달려들더니 순식간에 그녀의 등을 밀어버렸다.예기치 못한 힘에 강유이가 그대로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리사가 엘리베이터 입구에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걸려있었다.“거기 지금 뭐 하는 겁니까!”하필 그곳을 지나가던 웨이터가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리사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지더니 빠르게 자기 얼굴을 가리고 비상계단을 이용하여 도망쳤다.웨이터가 강유이 곁으로 다가가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괜찮으세요, 아가씨?
한편, 웨이터가 카메라를 돌려보았다. 강유이가 화장실에서 나온 후 확실히 웬 여자가 갑자기 카메라 사각지대에서 나타나 달려가더니 강유이를 계단에서 밀었다.화면에 담긴 여자는 카메라와 등진 상태라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화면을 확인한 반재신이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다.상대방이 아무리 카메라를 피해 몸을 숨겼어도 그는 단번에 그녀가 누군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강유이가 다쳤다는 소식을 들은 한태군이 곧바로 수중에 있던 일을 비서에게 맡기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복도를 지나던 그가 마침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류하리와 마주쳤다. 그런데 그녀의 옆에 있는 남자가 어딘가 익숙했다. 윌리엄 국왕의 비서 폴이었다.한태군이 걸음을 멈췄다. 그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이그러졌다.폴이 미소 지으며 그의 앞으로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도련님, 폐하께서 저한테 류하리 씨를 모시고 도련님을 찾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도련님과 아가씨가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한태군의 표정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그가 차가운 눈빛으로 류하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류하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의 뜻을 못 알아듣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녀의 뒤에는 윌리엄 국왕이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었다. 또한 그녀의 자존심이 절대 그녀가 겁먹고 물러서는 걸 용납하지 못했다.폴이 류하리를 돌아보았다.“류하리 씨, 부디 도련님과 유쾌한 시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류하리가 웃으며 답했다.“고마워요.”폴이 떠난 후 류하리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그의 앞에 멈춰 섰다.“당신이 날 찾으러 오지 않을 걸 알고 이렇게 제가 직접 찾으러 왔어요.”한태군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의미심장한 어투로 말했다.“그날 제가 했던 말을 전혀 새겨듣지 않으셨나 봅니다.”그날 밤, 그는 그녀에게 분명하게 말했었다.류하리는 그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녀가 방금 한 네일을 만지작거리며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당연히 잘 새겨들었죠. 약혼녀가 있다면서요. 하지만 아직 공개하지는 않았잖아요.”한태군이
마지막 말은 경고의 메시지였다.그리고 곧바로 그가 그녀를 무시하고 자리를 떠나버렸다.류하리가 입술을 악물더니 고개를 돌려 한태군을 돌아보았다. 그녀가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 질렀다.“당신 후회할 거예요!”한태군이 서둘러 신턴 빌라에 도착했다. 가사도우미가 문을 열어주자마자 그가 물었다.“유이는요?”도우미 아주머니가 미처 대답을 하기 전에 반재신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한태군, 이게 네가 말한 해결이냐?”한태군이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뜻이야.”반재신이 그의 앞에 멈춰 섰다.“너 리사 일은 이미 다 해결했다며. 그런데 왜 그 애가 또 나타난 거야.”한태군의 말만 믿고 리사 그 악독한 여자한테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되는 거였다.한태군이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그가 이를 악물며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반재신에게 물었다.“리사가 그런 거야?”“걔 말고 또 누가 있겠어.”반재신이 한태군의 멱살을 잡았다.“오늘 내 동생이 잘못되었다면 리사뿐만 아니라 너까지 절대 가만두지 않았을 거야.”도우미 아주머니는 잔뜩 흥분한 두 사람을 보며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것 같았다. 일촉즉발의 상태였다.한태군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해결할게.”“꼭 그래야 할 거야.”반재신이 그를 놓아준 후 그대로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한태군이 위층으로 올라가 그녀의 방문을 열었다. 강유이가 고개를 들더니 무의식적으로 치마를 내리며 상처 부위를 가렸다.“갑자기 웬일이야?”그가 침대맡에 앉더니 그녀가 치마로 가린 부분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의 시선이 새하얀 그녀의 무릎 위에 생긴 상처에 닿았다.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그녀가 그를 바라보았다.“그냥 살짝 까진 것뿐이야. 며칠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한태군이 시선을 옮겨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아파?”그녀가 샐쭉하게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낮게 콧방귀를 뀌었다.“아픈지 안 아픈지 너도 한 번 시도해 보지 그래.”그가 그녀의 볼을 조심스럽
강유이가 씩씩거리며 말했다.“네가 자꾸 맞을 말을 하잖아.”그가 눈가에 주름을 더하며 더 세게 웃었다.“그럼 나중에 유이 네 상처가 다 나으면, 그때 다시 날 길들여줘.”그의 입에서 나온 길들이다는 말은 두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유이는 하필 다른 뜻까지 전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순식간에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이, 이 변태. 내가 말로 널 어떻게 이겨. 나 쉴 거야.”그녀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당기며 침대에 누웠다.한태군이 그녀가 뒤집어쓴 이불을 들추었다. 그녀의 머리가 절반쯤 나오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그러다 네가 이불 안에서 질식해 죽으면 어떡해. 그럼 난 와이프를 잃게 되는데.”“흥, 세상에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너라면 다른 여자를 찾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 아니야?”한태군이 그녀를 노골적으로 쳐다보며 말했다.“하지만 나한텐 너밖에 없어.”그녀가 급히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녀의 얼굴은 이미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와 말씨름이라니, 그녀는 절대 그를 이길 수 없었다.…교외 부근, 그곳에는 한옥 풍으로 지은 카이즈 빌라 호텔이 있었다.스위트룸 문밖에서 류하리가 벨을 눌렀다. 잠시 후, 중년 남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단정한 외모에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는 점잖은 느낌을 주었다.문밖에 서있는 류하리를 확인한 남자가 놀란 표정을 짓더니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다음에 와. 오기 전에 전화하는 거 잊지 말고.”류하리가 멋대로 방 안으로 들어가더니 소파 위에 가방을 올려놓았다.“아빠, 저 결정했어요. 저 Y 국에 남아있을래요.”류강준이 순간 멈칫거리더니 문을 닫았다. 그는 소파에 앉아 차를 따라 마시는 딸을 돌아보며 미간을 찌푸렸다.“너 지난번에는 돌아가고 싶다고 했었잖아.”그는 딸이 자신과 함께 Y 국에 온 게 달갑지 않았다. 하리가 있으면 그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는 딸이 질릴 때까지 논 후에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마음이 바뀌었어요.”류하리가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