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일 뒤.해안시에서 유명한 ‘별밤’ 클럽은 격조 있는 우아한 분위기에 상하 2층으로 나뉘어 있다.사도현과 강진우는 탁 트인 시야에 프라이버시까지 보장할 수 있는 2층 VIP석에 앉아있었다.두 사람은 술을 마시며 성도윤을 기다렸지만 좀처럼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도윤 형 왜 아직도 안 와? 골드 3인방 4년 만의 모임인데 설마 이렇게 바람맞는 건가?”사도현은 술잔을 들고 초조해하며 클럽 입구를 살폈다.“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어서 만나기로 한 건데, 오늘 못 만나면 정말 아버지한테 맞아 죽을지도 몰라!”골드 3인방 중 맏형인 강진우는 줄곧 온화함을 유지하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침착해. 도윤이 성격 너도 잘 알잖아. 기분이 수시로 변하는 녀석인데 우리가 바람맞는 것도 이상한 것 없잖아?”그러나 오직 성도윤만이 그 일을 해결할 수 있었기에 사도현은 좀처럼 진정하지 못했다.“안 되겠어, 바로 전화해 볼 거야!”그는 핸드폰을 꺼내 성도윤의 번호를 눌렀다.그 시각 한창 일하느라 바쁜 성도윤은 싸늘한 말투로 기다리지 말라고 전했다.‘정말 안 올 생각이야?’그는 일 중독자인 성도윤을 불러내기 위해 온갖 방법을 생각했다. 그러던 순간 클럽으로 들어오는 대여섯 명의 남녀가 시선을 사로잡았고 저마다 화려한 모습이었다.그중 하얀 원피스에 검은 긴 생머리의 여성이 가장 돋보였는데 바로 차설아였다!그녀는 웃음꽃을 활짝 피운 채 함께 온 비슷한 또래의 남자한테 귓속말하고 있었고 둘은 한없이 친근해 보였다.그는 성도윤이 전화를 끊으려던 순간 흥분하며 입을 열었다.“형, 무조건 와! 차설아 지금 웃으면서 다른 남자랑 껴안고 있어.”핸드폰 너머로 정적이 흘렀고 곧이어 노트북 닫는 소리가 들려왔다.“별밤 클럽? 지금 바로 갈게.”강진우도 차설아를 발견하고선 부드럽고 점잖은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도윤이 와이프 저번이랑은 또 다른 느낌이네, 참 재밌는 여자야.”그 시각 차설아는 성우 일행과 함께 1층의 테이블에 앉았다.불과 사흘 전만 해도 눈
성도윤은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듯 미간을 찌푸린 채 싸늘하게 바라보고 있었다.‘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성우가 술을 따르고 있지?’삼 년 전, 성대 그룹이 성운 법률사무소를 인수했을 때 성우의 오만방자한 태도는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그러나 업무 능력이 뛰어났던 성우는 성대 그룹의 모든 법무 문제들을 손쉽게 해결했고 그의 실력을 생각하며 딱히 간섭하지 않았다.관건적인 순간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었기에 돈을 벌든 말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근 몇 년 동안 사무소에 일절 손대지 않았다.배려해 준 걸 감사하게 생각해도 모자랄 상황에 되려 연마다 손해를 보고 있었다.그는 700여 억을 포기하고 손해만 보고 있는 법률사무소를 택한 차설아의 선택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또한 차설아의 능력으로는 그들을 절대 설득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직접 모든걸 겪어본 후에 재산 재분할 요청할 거라고 확신했다.그러나 예상과 달리, 불과 3일밖에 안 지났는데...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 같다.차설아와 변호사들은 성도윤이 온 걸 알아채지 못했고, 성도윤도 인사를 건네지 않은 채 곧장 2층 VIP석으로 올라갔다.사도현은 참고 있던 불만을 내뱉았다.“형, 드디어 왔네. 차설아 얘기에 그 바쁜 사람이 바로 달려온 것 좀 봐. 역시 친구보다는 애인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네!”“걔랑은 상관없어.”성도윤은 싸늘하게 답하고선 자리에 앉았다. 그가 앉은 곳은 마침 차설아의 맞은편이었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자리에 앉은 그는 뚫어져라 차설아만 바라봤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하얀 원피스에 레드립, 청순함과 섹시함이 모두 공존한 차설아는 너무 매혹적이었다!‘설마 미모로 저 사람들을 설득한 건가?’성도윤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불쾌한 표정으로 술을 마셨고 마음속에 이상한 감정이 스쳤다.“형, 내 말 듣고 있어?”사도현은 손을 흔들며 성도윤을 불렀고 투덜거림은 멈출 줄 몰랐다.“그만 좀 봐.
아래층으로 내려온 두 사람은 남다른 분위기를 뽐내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차설아와 변호사들은 외부와 단절된 듯 즐겁게 술 마시며 놀고 있었고, 그렇게 두 도련님은 찬밥신세가 되었다!어딜 가나 환영만 받던 사도현은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홀대에 기분이 상했고 옆에 있는 성도윤을 대신하여 분풀이하듯 거만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술 게임 하는데 뭘 이렇게까지 흥분해, 유치하지도 않나?”사람들은 그제야 그들을 발견했고 떠들썩하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서로 눈이 마주친 성도윤과 차설아는 그렇게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봤고 아무 대화를 하지 않았지만, 그들 사이에 불꽃이 튀고 있다는 걸 모두 알아차릴 수 있었다.옛사장과 현 사장 사이에서 그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난감한 상황에 놓였고 행여나 말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하나같이 침묵을 유지했다.결국 차설아가 정적을 깨며 입을 열었다.“같이 놀래?”“이런 유치한 게임을 누가 좋아한다고...”“그래.”사도현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성도윤은 이미 자리에 앉았다.어쩔 수 없는 상황에 사도현도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고 옆자리에는 그의 ‘유일한 구원자’ 성우가 있었다.그간 줄곧 미지근한 태도로 성도윤을 대해온 성우는 오늘 기분도 좋고,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대표님이 저희랑 놀아주신다니 다 같이 간단하게 진실게임 해요. 일단 각자 번호 하나씩 뽑아요. 주사위 굴려서 나온 사람이 아무나 한 명 골라 질문하고 만약 상대방이 답을 못하면 벌칙 받는 거 어때요?”“이럴 줄 알았어, 엄청 유치하네!”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싶은 사도현이었지만, 우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성도윤의 모습을 보고 마지못해 말을 이었다.“우물쭈물하지 말고 얼른 시작해!’시종일관 싸늘한 태도를 유지하며 일 중독인 성도윤이 한가하게 어린애들이랑 이런 유치한 게임을 하고 있으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설마 진짜 차설아한테 넘어간 건가?’갑자기 끼어든 두 사람에 분위기는 어색해졌고 게임이
성도윤과 사도현 두 도련님에게 장난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던 성우는 방금 전 번호표를 나눌 때 일부러 6번을 사도현에게 건네줬다.8대 가문의 도련님들이 서로 30초 동안 키스를 나눈다는 상상을 하니 기분이 짜릿해졌고 정말로 한다면 아마 전설로 남을 것이다.“6번 누구예요, 얼른 일어나세요!”성우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사람들을 보며 물었고 화가 난 사도현은 성우를 가리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너 이 자식 무슨 속셈이야? 감히 우리 형을 갖고 놀아? 죽고 싶어 환장했어?”성우는 대수롭지 않은 듯 무덤덤했다. 변호사 생활하면서 그간 수많은 사람을 만나왔고 사도현보다 더 대단한 사람들도 성우 앞에서는 꼼짝 못 하며 그를 공손히 대했다.“벌칙을 쿨하게 받으세요. 대표님과 도련님이 저희랑 함께 게임을 하겠다고 한 이상 적어도 기본적인 룰은 지켜야죠.”말을 마친 성우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스톱워치를 켰다.“두 분 얼른 하세요. 별거 없어요. 미남 두 명이 키스하는 장면은 아름답게 느껴질 거예요.”사람들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고 사도현은 헛기침하며 입을 열었다.“왜 다들 날 봐, 나 6번 아니야.”그는 고개를 돌려 성도윤을 바라보며 안쓰럽다는 듯이 말했다.“형, 그냥 한번 걸어봐. 여자애들이 다 예쁘장하게 생겼는데 키스 30초 한다고 손해 볼 건 없잖아. 정말 운 안 좋게 남자가 걸린다면 내가 이 테이블 뒤집어엎을게.”“6번이 아니라고요?”성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그럼, 몇 번이세요?”“나 9번이야. 못 믿겠으면 직접 확인하던지!”말을 마친 사도현은 번호표를 테이블 위에 내동댕이쳤다. 정말 9번이었다!성우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9번을 6번으로 착각한 것 같다.후끈 달아오른 분위기에 말을 바꾸기도 애매한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이 계속 사람들을 부추겼다.“도대체 6번 누구야,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일어나!”상대가 누가 됐든 성도윤이 키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너무 흥미로운 일이었다.“나 아니
몹시 난처해하는 차설아의 모습에 성우는 재빨리 말을 덧붙여 그녀를 도와줬다.“솔직히 저도 이 벌칙은 지루한 것 같네요. 대표님 같은 분한테 실례가 될 수도 있는 일인데 제가 경솔했어요. 벌칙은 제가 포기할게요.”그의 이중적인 모습에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잡아먹을 기세로 밀어붙일 땐 언제고 새 사장을 위해 편드는 모습이 너무 눈에 훤히 보였다.성도윤은 줄곧 표정 변화 없이 가만히 앉아있었고 어두컴컴한 조명에 비친 그의 싸늘한 표정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차설아를 바라봤다.“사람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돌릴 수 있다니, 당신의 매력을 내가 과소평가했네.”“...”도저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던 차설아는 그저 반듯하게 자리에 앉아있었다.‘왜 갑자기 또 발끈하는 거야? 벌칙 안 받게 했으면 고마워해야지. 표정은 또 왜 저래?’게임은 계속 진행됐고 주사위를 돌리자, 사도현이 나왔다.“하하하!”복수할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그는 박장대소했고 골탕 먹이고 싶은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그는 유부녀와 친하게 지내는 성우가 눈에 거슬렸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 앞에서 성도윤에게 망신 준 차설아가 못마땅하게 느껴졌다.정말로 사랑한다면 어떻게 키스를 지루하다고 느낄 수가 있겠는가?순간 그녀가 성도윤에게 어떤 마음인지 궁금했던 그는 차설아를 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남편 사랑해? 첫날밤도 남편이랑 보낸 거야?”난감한 질문이긴 했지만 대답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성도윤은 착잡한 눈빛으로 차설아를 바라보며 오매불망 그녀의 답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거절할게요.”사람들의 얼굴에는 실망이 가득 찼다.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감에 부부가 아닌 듯한 느낌이 들면서도 고작 게임 하나에 서로 똑같이 행동하는 걸 보니 부부가 맞는듯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때로는 침묵이 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사도현은 성도윤을 힐끗 쳐다보고선 가치 없는 사람에게 감정 낭비하고 있는 그가 안
클럽에서 나온 차설아는 일행한테 인사를 건넨 뒤 혼자 길가에 서서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살랑살랑 시원한 바람이 스치니 정신도 덩달아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었다.날씬한 몸매에 흰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바람에 머리카락을 날리고 있었고 예쁘장한 얼굴에서는 슬픔이 느껴져 사연 있는 여자처럼 보였다.많은 남자들이 차를 세워 경적을 울리거나 휘파람을 불며 수작을 부렸고 험악한 눈빛으로 쏘아보자 전부 놀란 채 도망쳤다.그러던 중 또 한 대의 차가 다가왔고 마음 준비를 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안에는 성도윤이었다.험악하던 눈빛은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했고 마치 모르는 사람인 듯 차가웠다.“같이 갈래?”성도윤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물었다.“같은 길 아니야!”차설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바로 앞인데 같은 길이 아니라고?’불편함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그녀의 모습을 성도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아무런 감정이 없다면 어떻게 팬 픽션의 원작자가 될 수 있었을까?정신병자가 아니라면 지금 연기를 하는 게 분명했다!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 그는 클럽에서 망신당한 일조차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차설아라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핸들을 돌려 고개를 내밀며 다시 한번 얘기했다.“얼른 타, 가면서 법률사무소에 관해서 얘기해줄게.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 아니야.”“필요 없어.”차설아는 입술을 깨물며 턱을 높이 들더니 싸늘하고 도도하게 답했다.“적어도 너보다는 잘할 거야.”성도윤의 눈빛은 싸늘하게 변했다.“성우만 해결하면 모든 일이 다 잘 풀릴 거로 생각하는 건 아니지? 네가 상대해야 할 사람은 성우가 아니라고!”그녀는 지금까지 만난 적이 없는 이현을 가리키는 것임을 단번에 알아챘다.능력이 뛰어나고 강한 여장부 스타일인 그녀야말로 성운 법률사무소의 진정한 핵심 인물이었다.만약 이현을 정복하지 못한다면 법률사무소는 가지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골칫덩이로 남게 된다!성도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은색 스포츠카에는 배경수가 있었고 그는 전방을 주시하면서 조심스럽게 페달을 밟았다. 행여나 차설아가 다치지는 않을까, 뱃속의 두 아이가 놀라지는 않을까 주의를 기울였다.“설아, 넌 정말 말썽꾸러기야. 임신한 채로 술 마시러 나오다니, 시대를 앞서나간 태교 방법인데?”“난 술 안 마셨어.”조수석에 앉은 차설아는 머리를 짚은 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고 걱정거리가 많은 모습이었다.털털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배경수는 섬세한 사람이었다. 그는 단번에 차설아가 성도윤과의 일로 골치 아파하는 걸 알아챘고 떠보듯 물었다.“설아, 아직 완전히 이혼한 건 아니니까 선택은 그 쪽한테 맡기고 임신했다는 사실을 얘기해 보는 건 어때? 내가 관찰했는데 그 사람 너한테 아무런 감정이 없는 건 아니었어. 적어도... 소유욕은 있어.”그렇지 않으면 배경수 차에 올라타는 걸 보고 표정이 굳어지지 않았을 것이다.남자의 입장으로 볼 때 여자에 대한 소유욕이 남아있는 한 그들 관계는 끝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더군다나 설아가 목숨 걸고 그 사람을 구했으니 널 선택하겠지.”“그만해!”차설아는 그의 말을 자르고선 싸늘하게 노려봤다.“내가 왜 그 사람한테 선택받아야 하는데? 나한테 좋은 게 뭐가 있어? 천대받는 며느리 생활? 아니면 남편이 바람피우는 걸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사람들의 놀림거리가 되는 거? 미치지 않고서야 그걸 어떻게 버텨!”소유욕은 사랑이 아니다. 임채원을 대하는 성도윤의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맞는 말이야!”정신 차린 차설아의 모습에 배경수는 마음이 한결 놓였다.“4년 동안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하다가 정신 차린 모습을 보니 너무 기쁘네! 그래도 아이한테는 아빠가 필요하니까 내가 계속 연기할게.”배경수의 두 눈은 반짝이고 있었고 애틋함을 보이는 그의 모습은 매력적이었다.차설아는 그를 째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맞고 싶어?”순간 움찔한 배경수는 꼬리 내린 강아지처럼 얌전해졌다.“알겠어, 삼촌이야, 삼촌. 이제 됐지?”배
다음 날.차설아는 베이지 캐주얼 점프슈트 차림에 깔끔한 포니테일을 묶은 채로 클라우드 리조트로 향했다. 청순한 차림 덕분에 그녀는 마치 방금 학교를 졸업한 여대생 같았다.클라우드 리조트는 해안시에서 50여 킬로미터 떨어진 숲에 위치한 리조트이다.울창한 나무와 산뜻한 공기는 물론이고, 천연 온천, 골프장에 천연 낚시터 등 시설이 갖춰져 있어 많은 부자들이 이곳으로 찾아와 휴가를 즐기곤 했다.길이 좀 막혔기 때문에 차설아가 클라우드 리조트에 도착했을 때에는 마침 10시 1분이었다. 1분 지각하게 되었다.같은 시각,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오직 한 사람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들은 시끌벅적한 채 클라우드 리조트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중간에 둘러싸인 사람은 바로 차설아와 만나기로 약속한 남우 그룹 사장인 남해진이었다.남우 그룹은 실력이 탄탄하고 든든한 뒷배가 있는 해안시 탑급 투자 회사였다. 성대 그룹의 오래된 사업 파트너이기도 하다.이번 성대 그룹에서 일어난 클라이언트 데이터 누설 이슈는 남우 그룹에게도 막심한 손해를 안겨줬다.그래서 남우 그룹은 성대 그룹과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사업 파트너를 찾고 있었다.차설아는 빠르게 걸어가더니 한 무리 우람한 남자들의 앞을 가로지르고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예의를 갖춰 말했다.“남해진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는 차설아라고 합니다. 말씀으로만 듣던 분을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혹시 잠깐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그녀는 여리여리하고 순해 보였지만 의외로 기가 센 여자였다. 카리스마 있는 말투에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녀를 거절하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남해진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남우 그룹이 성대 그룹과 계약을 해지한 이후로 그는 포식자들이 탐내는 먹이로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차설아처럼 그와 얘기를 나눠보고 싶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찾아왔기에 그는 차설아가 안중에도 없었다.“차설아 씨, 나 당신을 알아요. 나락으로 떨어진 차씨 집안 출신에, 지금 성씨 집안의 당정한 며느리로서 살고
검은 그림자는 다름 아닌 서씨 가문 서은아였다. 서은아는 그동안 차설아를 감시하고 있었다. 차설아가 식당에 밥 먹으러 간 사이에 차성철이 있는 병실을 책임지는 간호사에게 돈을 쥐여주었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수술을 마친 뒤, 침대에 누워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차성철은 살짝 다쳐도 부서질 것처럼 나약해 보였다. 서은아는 병실 침대 앞에 서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작은 물건을 차성철 베개 옆에 올려놓고는 산소마스크를 벗겼다.“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미안해. 당신이 식물인간이 되면 당신 여동생도 기가 죽어서 나대지 못할 거라고 믿었어. 그런데 박성훈이 와서 당신을 살렸지 뭐야? 성도윤이 박성훈한테 부탁한 거라면서? 정말 어이가 없더라. 보나 마나 차설아가 성도윤한테 부탁한 거겠지. 뻔뻔스러운 년이...”서은아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날 탓하지 마. 탓하려면 그 못난 여동생을 탓해. 차설아는 내가 성도윤과 약혼한 사이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 성도윤한테 달라붙으면서 날 괴롭혔어. 동생이 저지른 잘못은 오빠인 당신이 책임져야지. 안 그래?”서은아는 말을 마친 뒤, 감시 카메라를 피해 조용히 병원을 나섰다. 식당에 앉아 있던 차설아는 바람이 포장한 음식을 보면서도 어쩐지 불안해서 먹고 싶지 않았다.“설아야, 네가 제일 좋아하는 탕수육이야. 다른 식당에서 하는 건 눅눅해서 맛없지만 이 식당에서 하는 건 바삭하잖아. 바람 씨가 널 위해서 사 온 건데, 한 입이라도 먹어 봐.”배경윤은 불안해하는 차설아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바람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이 식당에 줄을 서려고 아침 일찍 깨어났어. 하지만 스파크가 좋아하는 거라면 눈이 오든 비가 내리든 사러 가야지.”바람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피식 웃었다. 그동안 차설아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쯧쯧. 바람 씨한테 설아를 맡겼다가는 뚱보가 되겠어. 한 달 안에 10킬로 찐다는 것에 내 머리카락을 걸겠어.”“스파크는 살이 쪄도 예뻐서 괜찮아. 지금처럼 귀여울 거
배경윤은 박성훈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박성훈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성도윤이 데려온 의사라는 말에 성도윤처럼 나쁜 사람인 줄 알고 경계했다.“경윤아, 그러지 마. 박 선생님은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빠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준 분이야.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차씨 가문의 은인이 될 분이거든.”차설아는 다시 일어나더니 박성훈한테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박 선생님, 죄송해요. 경윤이는 늘 저를 아껴주고 보호해 주는 사람이라 이런 일에서는 예민하게 굴거든요.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아요. 병원에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죠. 만나본 보호자 중에서 제일 정상적인 반응이거든요. 저는 이해해요.”박성훈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저 말고 성 대표님께 고맙다고 해야죠. 저는 수술할 생각이 없었는데 성 대표님이 간절하게 부탁했고 제가 좋아하는 바다낚시까지 같이 해주셔서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바다낚시 내기에서도 졌으니 성 대표님 말대로 수술해야 했어요.”“성도윤이 어렵게 모신 분인 건 알고 있었어요. 나중에 오빠가 깨어나면 인사하려고요.”“잘 생각했어요.”박성훈이 차설아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말을 이었다.“생각이 많으면 마음이 힘들 거예요. 사실 생각처럼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일은 없으니 마음 편안하게 먹고 환자분이 깨어나길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박성훈은 사무실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 오후 4시라서 박성훈이 말한 시간까지는 아직도 4시간이나 남아있었다. 배경윤은 차설아가 또 쓰러질까 봐 걱정되었다.“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밥부터 먹자.”“괜찮아. 난 배고프지 않아. 오빠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 오빠가 일어나야 내 마음도 편해질 것 같아.”차설아는 병실 밖에 서서 침대에 누워있는 차성철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이러다가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오빠도 네가 이러는 걸 원하지 않을 거야.”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배경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네가 말한 사람이 그 나쁜 놈은 아니겠지? 아니라고 말해.”차설아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그 사람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그래도 도움받았잖아.”“아...”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머뭇거렸다. 차설아한테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이 사고는 목적, 증언, 사건 발생 시간으로 보았을 때 성도윤이 배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 없이 성도윤을 범인으로 몰아갈 수 없었다. 만약 이 말을 꺼냈다가 차설아와 성도윤이 싸우게 된다면 손해 보는 건 차설아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성도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설아야, 그저 네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 성도윤을 너무 믿지 마. 성도윤이 어떤 사람인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진심을 드러내지 말고 계속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알겠지?”배경윤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했다.“나도 알아. 지금까지 성도윤을 용서한 적 단 한 번도 없어. 오빠 얼굴에 남은 흉터를 볼 때마다 성도윤이 떠올라서 화가 솟구쳐 오르거든... 성도윤이랑 잘 해볼 생각이 아니라 그저 좋은 의사를 데려와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차설아는 수술실을 바라보면서 말했고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눈에 핏줄이 가득 서렸지만 차성철이 나올 때까지 쉴 수 없었다. 성도윤에 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차설아의 마음이 아팠기에 더는 신경 쓰지 않았고 애매모호한 선을 넘지 않았다. 지금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더 마주치지 않는 것이 두 사람을 위한 일이었다.“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더 이상 그 사람과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알지만 항상 경계해야 해. 그 사람이 얼마나...”“알겠어. 곧 수술이 끝날 테니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오빠가 무사히 나오기를 바라면서 기다리자.”차설아는 배경윤의 말을 끊었다.“그래. 같이 기다려보자.”배경윤은 슬픔이 가득 서려 있는 차
사도현은 턱을 쳐들더니 거만하게 말했다.“내가 바로 배경윤 남자 친구예요.”사도현의 말에 같이 식사하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두 사람이 보통 사이가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회사 대표가 당당하게 공개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뭐?”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 사도현이 미친 짓을 저지를 줄 예상 못했는지 사도현을 향해 부르짖었다.“사도현, 너 정말 미친 거야?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헤어진 지 얼마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남자 친구라고?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찬영 오빠 앞에서 공개하다니... 정말 제대로 미친놈이구나. 내 미래의 남자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사람한테 알려주려고 작정한 거야!’“내 말이 틀렸어? 우리 사귀는 사이 맞잖아.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온 첫 번째 날에 어떻게 같은 방, 같은 침대에서 잤겠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사도현이 피식 웃더니 부르짖는 배경윤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꼈다. 배경윤의 시선을 느끼면서 이제야 자신의 것을 되찾은 것 같았다.“그, 그건...”배경윤은 말문이 막혔다. 설명하면 할수록 말려드는 것 같아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때 진찬영이 입술을 깨물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만약 두 사람이 한방에 들어가는 것이 사귄다는 증거라면, 사도현 씨는 배경윤 씨가 아니라 윤설 씨의 남자 친구인 것 같은데요? 윤설 씨 곁을 떠난 적이 없잖아요. 도대체 두 분 중에서 누구의 남자 친구인지 헷갈리네요. 아니면 두 분을 속여서 양다리를 걸친 게 아닐까 싶어요.”진찬영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반격할 수 있는 틈을 찾았다. 그러고는 도덕적인 면에서 사도현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맞아요! 같은 방을 쓰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날에 남은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랬어요. 우리 두 사람 모두 외양간에서 자기 싫었거든요. 그날 밤에 아무 일도 없었지만 윤설 씨랑 사도현 씨 사이는 각별했어요. 정성을 다해서 보살핀 여자랑 사귀는 것 같은데 왜 나를 언급하고 난리야! 난 너처럼 미친놈이랑 사귈 바
그 말을 들은 장윤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윤태가 다급히 뜯어말렸다.“집에 갈 정도로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거죠! 그런 설정을 할 생각도 없었어요. 찬영이도 커플 설정을 원하지 않을 테니 강요할 수 없었거든요. 다들 장난치는 거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장윤태는 게스트들이 말하는 커플 중 한 쌍이 진찬영과 배경윤임을 확신했다. 옆에 앉아 있던 사도현은 굳은 표정으로 진찬영을 노려보고 있었다.“장 감독님,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에요.”배경윤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개인적인 일로 해안시에 다시 돌아가야 해요. 프로그램 촬영하는 동안 정말 재밌었어요. 게다가 찬영 오빠랑 커플로 촬영할 수 있다고 하면 더 행복했을 거예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해요.”“잘생긴 남자라면 다 좋아하나 보지?”말을 마친 사도현은 혼자서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장윤태는 배경윤을 설득하지 못하자 재빨리 다른 제안을 했다.“급한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죠. 곧 연애 예능 촬영이 있는데 그때 시간이 되면 우리 찬영이랑 같이 게스트로 출연하지 않을래요?”“좋아요!”배경윤은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진찬영과 함께 촬영할 수 있다면 무슨 프로그램이든지 무조건 출연할 것이다. 진찬영과 떨어지려니 아쉬웠지만 돌아가서 차설아의 곁을 지켜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작별 인사를 했다.“배경윤 씨랑 같이 출연한다면 저도 좋아요.”진찬영은 배경윤을 향해 말했다. 애초에 진찬영은 배경윤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이 마을까지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기에 배경윤이 있는 곳에 꼭 따라갈 것이다.“그럼 두 사람이 사인한 계약서 말고 다른 계약서를 준비할 테니 이제 만나서 얘기해요. 조건을 구체적으로 적으면 이 프로그램 계약서대로 하지 않아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요.”장윤태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너무 기쁜 나머지 술을 마시면서 껄껄 웃었다.“안 돼요.”사도현이 차갑게 말했다.“배경윤은 너무 바빠서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할 시간이 없을 거예요.”배경윤
사도현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누가 진찬영을 밀어주든지 상관없이 배경윤에게 나쁜 의도를 갖고 접근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재벌가 아가씨의 마음을 얻으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윤설 씨가 사도현 씨한테 빌붙어서 드라마 여주인공 역만 맡는 것처럼요?”진찬영이 말을 이었다.“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도 사도현 씨랑 같은 줄 알고 섣불리 판단할 수밖에 없겠죠. 더 이상 의미 없는 대화는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진찬영이 가마뚜껑을 열어보자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추어탕 안에 청양고추를 넣으니 배경윤이 좋아하는 매콤한 추어탕이 완성되었다. 사도현이 뭐라고 더 말하려고 할 때, 진찬영이 추어탕을 옮겨 담고는 주방을 나섰다. 사도현은 불을 피우면서 흘러나오는 연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두 남자의 대결은 사도현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여러분, 오늘 메뉴는 추어탕이에요! 어서 드셔보세요!”진찬영은 환하게 웃으면서 쉬고 있던 게스트들을 불렀다. 배경윤은 터벅터벅 걸어 나와서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진찬영이 해준 밥을 먹어서 기쁘긴 했지만 웃을 힘조차 없었다.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진찬영은 직접 국을 떠주면서 말했다.“먼저 밥부터 먹고 다시 생각해요. 배경윤 씨를 위해 만든 건데, 한 입도 먹지 않으면 좀 속상할 것 같거든요.”“아, 죄송해요. 생각할 게 많아서 신경 쓰지 못했어요.”배경윤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추어탕을 먹기 시작했다.“먹어봤던 추어탕 중에서 제일 맛있어요!”“당연히 그렇겠죠. 추어탕에 진찬영 씨의 사랑이 가득 들어갔으니 맛없을 리가 없잖아요. 우리 같은 구경꾼들은 배경윤 씨가 부러워 죽겠다니까요!”“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은 분이 누군가를 위해서 직접 미꾸라지를 손질했다니깐요. 보통 정성이 아니에요! 그 여자 덕분에 저희도 이렇게 맛있는 추어탕을 먹어보네요.”추어탕을 맛보던 게스트들이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진찬영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들으면서 배
윤설이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나는 그렇다고 한 적 없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 더 알려줄 것도 없고요. 정말 궁금하다면 의심 가는 사람을 찾아가서 물어보세요.”배경윤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쥔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이미 배후가 밝혀진 마당에 더 캐묻는 건 멍청한 사람이나 할 짓이었다. “그리고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 새겨들어요. 도현 씨랑 성도윤은 생사를 함께 겪은 형제이니 도현 씨를 멀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도현 씨는 성도윤 편을 들 테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차성철이 수술했다는 것을 성도윤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요? 게다가 성형외과 의사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윤설은 배경윤의 반응을 지켜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성도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성도윤이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 연관된 일이긴 하지만 그게 결국 성도윤의 일이 되는 거지. 난 사실만 말했으니 아무 잘못도 없어. 배경윤, 이제는 도현 씨 곁에서 떨어져!’“난 성도윤이 그런 일을 벌일 줄 알았어요! 천하의 나쁜 놈 같으니라고...”윤설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모든 것이 성도윤과 연관된 일이라고 확신했고 사도현이 성도윤을 도와주었다고 여겼다. ‘계속 여기에 남아있어서는 안 돼. 얼른 해안시로 돌아가서 설아한테 알려줘야지. 그놈 때문에 또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어! 설아야, 조금만 기다려줘!’주방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은 두 남자의 대결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진찬영은 앞치마를 두르고 소매를 올린 채 두부를 썰었다. 집중하는 모습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멋있어서 여자든 남자든 진찬영에게 반하고 말 것이다.하지만 부뚜막 앞에 앉아 불을 피우고 있는 사도현은 진찬영을 노려보기에 바빴다. 사도현은 장작을 진찬영의 팔이라고 생각하면서 두 토막으로 끊이고 불 속에 집어넣더니 차갑게 말했다.“우리 둘밖에 없으니 솔직하게 말해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예요? 돈 때문이라면 원하는 만큼 줄 테니 말해봐요. 얼마면 되
배경윤은 윤설이 단둘이 얘기하자는 말에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단번에 눈치챘다. 하지만 이 일은 차설아 친오빠의 목숨과 연관된 일이었기에 윤설의 의도를 알면서도 함정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내 방으로 가서 단둘이 얘기해요.”배경윤은 앞장서서 사도현과 지냈던 방으로 들어갔다. 박지영은 윤설을 방까지 부축한 뒤, 재빨리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윤설은 울퉁불퉁한 방바닥, 구멍이 난 천장과 낡아서 당장이라도 망가질 것 같은 침대를 보면서 말문이 막혔다.윤설은 미묘한 감정이 들었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도현 씨랑 이런 방에서 같이 지낸 거예요?”“네. 침대도 푹신하고 공기가 좋아서 잘 잤어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배경윤은 윤설이 방에 들어오자마자 이런 말을 먼저 꺼낼 줄 몰랐다. 사도현은 배경윤과 같은 침대에서 잤지만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윤설 곁을 지켰다.‘이런 것까지 질투하는 건가?’“쓰레기 소각장 같은 곳에서 도현 씨가 지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요. 도현 씨는 결벽증 때문에 이런 곳에서 자지 못했을 거라고요.”“쓰레기 소각장이라고요?”배경윤이 미간을 찌푸렸다.“이 방이 아니면 외양간에서 소랑 같이 자야 하거든요. 이 정도면 꽤 좋은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윤설 씨가 결벽증인 것 같아요.”“도현 씨가 배경윤 씨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맞네요. 배경윤 씨를 위해서 이런 누추한 방에서 자고 더러운 진흙으로 들어가 배경윤 씨를 안아 들다니... 내가 배경윤 씨를 얕잡아 봤네요.”윤설은 눈시울을 붉히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 배경윤은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입을 열었다.“본론만 얘기하세요. 배후가 누구기에 성형외과 의사한테 전화하게 된 거죠?”“말해도 배경윤 씨가 할 수 있는 건 없을걸요?”윤설은 차갑게 웃더니 거만한 눈빛을 하고서 배경윤을 훑어보았다. 배경윤이 목을 치려고 하는 배후는 손을 뻗을 수도 없을 만큼 높은 곳에 있었다.“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 하더라도 알 건 알아야겠어요. 더 휘말리고 싶지 않다면 배후가 누구인
게스트들은 사도현의 표정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불을 피우러 가는 게 아니라 사람을 죽이러 가는 것 같은데요?”옆에서 듣고 있던 배경윤이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네가 불을 피운다고?”그러고는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너처럼 귀하게 자란 도련님들은 장작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잖아. 그런데 불을 피우다니, 네가 듣기에도 웃기지 않아?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주방에서 나오는 게 도움이 되겠어.”배경윤은 불을 피우고 진찬영이 요리할 때 옆에서 도와주려고 했다. 그런데 사도현이 갑자기 끼어들어서 몹시 당황했다.‘사도현은 왜 자꾸 끼어들려고 하는 거야! 찬영 오빠랑 같이 경운기를 타려고 할 때, 찬영 오빠랑 미꾸라지를 잡을 때, 찬영 오빠랑 같이 요리하려고 할 때 계속 방해만 하잖아. 명색이 엔터테인먼트 대표라는 놈이 이렇게 한가해도 되는 거야?’“할 줄 아는지 모르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불 피우는 건 다 거기서 거기 아니야? 아니면 여자가 옆에 있어야 요리할 수 있다는 건가? 세상에 그런 바보가 있을 리가 없잖아.”사도현은 팔짱을 낀 채 진찬영을 쳐다보면서 배경윤한테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사도현의 의도가 무엇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사도현은 일부러 진찬영을 저격했다.“너 자꾸 함부로 말할 거야?”배경윤은 화가 나서 사도현을 노려보았다. 팬으로서 누군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여우 같은 놈, 여자가 없으면 요리를 못하는 놈이라고 욕한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괜찮아요.”진찬영이 피식 웃더니 배경윤의 팔목을 잡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저는 배경윤 씨가 옆에서 보고 있어야 안심이 되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그럴 능력도 없으면서 혼자 하겠다고 설치다가 일을 망치던데요?”진찬영은 사도현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그래도 사도현 씨께서 불을 잘 피울 수 있다고 하셨으니 믿어야죠. 다들 쉬고 계세요. 다 되면 알려드릴게요.”진찬영과 사도현은 주방으로 들어가서 아무 말 없이 각자 할 일을 했다. 마당에 앉아 있던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