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6화

작가: 복덩이
기연훈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상대를 공격하려다 당신이 오히려 되치기당하는 거야. 손해가 수백억인데... 설마 연애하더니 이성을 잃은 거냐? 그 머리로 생각은 안 해?”

나는 미소를 띠며 한쪽 눈썹을 올렸다.

“기 대표, 정보력 좀 키워야겠네. 내 지분 이미 팔았어. 손해 보는 건 당신이지, 나는 아닌데.”

사실 3일 전, 기연훈이 류만정과 여기저기서 애정 과시를 할 때 나는 이미 언니 한은희를 통해 내가 가진 지분 전부를 회사의 2대 주주인 유동성에게 넘겼다.

‘우리 자매가 서로 성이 달라서, 아무도 우리가 가족이라는 걸 알지 못해.’

나는 나빠진 내 이미지와 회사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그동안 지분을 언니 명의로 소유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오직 기연훈과 류만정뿐이야.’

그리고 유동성? 그는 평소 류만정과 친하게 지내면서 나를 괴롭히고 모욕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에게 내 주식을 던져주는 건 전혀 미안하지 않아. 오히려 통쾌하지.’

기연훈은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가득 담고 물었다.

“당신, 일부러 나를 모함하는 거야?”

나는 어이없다는 듯 대꾸했다.

“뭐가 어때서? 당신은 나를 모함하고 짜증 나게 하고 상처를 줄 수 있는데, 나는 당신한테 되돌려주면 안 돼? 피해자인 척하지 마. 꼴도 보기 싫어.”

‘나는 이미 너에게 수없이 많은 기회를 줬어. 하지만 너희들은 오히려 날 더 몰아붙이기만 했지.’

나는 더 이상 이 문제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받은 은혜는 이미 다 갚았으니, 나는 더 이상 기연훈의 감정이나 처지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나는 기연훈을 집에서 내쫓았다.

이혼 서류를 쓸 때 이 집은 내 명의로 가져왔지만, 그가 자꾸 들이닥쳐 귀찮게 하자, 나는 결국 새집으로 이사했다.

며칠 뒤, 몇몇 절친한 친구들이 새로 이사한 집으로 놀러 왔다.

“은서야, 기연훈이랑 결혼했으면서 우리한텐 그동안 비밀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산부인과에서 마주한 남편과 첫사랑   제7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미처 면도도 못 한 채 까칠하게 자란 수염, 퀭해진 눈, 홀쭉해진 얼굴까지. 지금 모습만 보면, 기연훈은 류만정한테 처음 차였을 때보다 훨씬 더 초라해 보였다. “몸 좀 괜찮아졌어? 한 달 넘게 쉬었잖아.” 기연훈이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차 한 모금을 천천히 삼켰다. ‘내가 임신중절수술을 했던 날도, 그 후 며칠이나 나한테는 아무 말 없더니. 이제 와서? 너무 가식적인 거 아냐?’ “나는 아이를 정말로 간절히 기다렸어. 그런데 당신이 나에게 말 한마디 없이 지워버렸잖아. 내가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어?” 나는 이 말을 듣고 정말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이가 그렇게 소중하면, 너도 이미 충분히 기회가 많잖아. 이번 건 그렇게 신경 쓸 일도 아니지 않아?” 언제나 그래왔듯, 기연훈은 늘 내 위에 군림하는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그는 나의 말을 듣고 본능적으로 얼굴을 찡그렸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고, 그저 입술을 깨물며 무언가 변명하려 애썼다. “류만정 배 속에 든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야. 나랑 걔는 그런 사이도 아니었고.” 기연훈은 어색하게 변명했다. 나는 새로 손질한 손톱을 살펴보며, 흥미 없다는 듯 무심하게 대꾸했다. “알고 있어. 그 사람이 당신한테 그동안 얼마나 치욕적인 짓을 했는데, 당신처럼 자존심 강한 사람이 그런 걸 못 본 척 넘어갈 리 없잖아.” 나는 말을 이어갔다. “당신도 그냥 류만정이 당신의 마음에 들려고 머리 굴리고 아등바등 애쓰는 모습이 재밌었겠지. 아마 류만정과 계약한 이유도 마찬가지일 거야.” “물론 류만정한테는 희망 고문하면서, 적당히 큰 그림을 그려주고, 회사에 필요한 자원을 끌어오게끔 남자들한테 류만정을 이용할 기회를 준 것도 당신의 전략이겠지.” “다 쓰고 나면 류만정이 한 짓을 세상에 까발려서 추락시키는 것. 그게 당신이 그 여자에게 복수하는 방식이잖아.” 내 말에 기연훈의 얼굴이

  • 산부인과에서 마주한 남편과 첫사랑   제8화

    나는 류만정과 및 그녀와 연관된 악플러들, 그리고 여론몰이에 가담한 몇몇 네티즌들을 고소해, 총 6억의 배상금을 받아냈다. 그리고 그 돈 전액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이 정도면 이미지 회복은 완벽하지.’ 사람들의 반응도 좋았고, 여론도 나를 응원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그 후 충분히 고민한 끝에, 나는 강민혁의 개인 소속사에 합류하기로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서현우는 분통을 터뜨리며 강민혁에게 직접 따졌다. “강민혁, 네가 은서를 꾀어서 데려가려고, 운영 비용을 고작 20%만 받았다고? 거기다 네 작은아버지까지 소개해서 은서 재산 관리까지 맡긴다고? 너 진짜 심하네! 사람들은 네가 멍청하다는데, 다 속았어! 완전 계산 빠른 놈이잖아!” 서현우는 그렇게 강민혁에게 퍼붓고도 화가 풀리지 않은 듯, 만나는 사람마다 강민혁의 ‘새로운 계산적인 면모’를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다. 심지어 예능 프로그램에 나갔을 때도, 카메라 앞에서 강민혁을 씹어댔다. 예능 PD는 이런 걸 놓칠 리 없었다. 그는 나와 강민혁을 게스트로 초대해, 서현우의 화를 부채질하기까지 했다. 녹화 중, PD가 당돌하게 물었다. “강민혁 배우님, 서현우 배우님이 여기저기서 ‘계산적이고 심술궂다’고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강민혁은 카메라를 보며 냉담하게 대답했다. “사람 빼앗기고 열 받아서 저러는 거죠. 그냥 불쌍하게 여기고 내버려두세요. 질투 좀 하게 놔두는 게 도와주는 겁니다.” 그 말에 서현우는 스튜디오에서 당장이라도 강민혁과 의절할 기세로 벌게진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서현우가 더는 폭발하지 않도록, 몰래 초 달달 버블티를 두 잔 사주고, 살짝 귀띔했다. “현우야, 민혁이 여동생 연락처 받아다 줄게. 진짜 약속해.” 그제야 서현우는 겨우 마음을 진정시켰다. 실은 서현우는 바깥에선 바람둥이 이미지로 유명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철저히 ‘순정파’였다. 그는 강민혁의 여동생을 좋아한 지 벌써 3년째지만, 아직 그녀의 연락처

  • 산부인과에서 마주한 남편과 첫사랑   제1화

    “임신 4주 차입니다. 축하드려요!” 생리가 일주일이나 늦어지자 혹시나 하고 병원에 왔더니, 임신한 지 무려 한 달이나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이가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왔어.’ 나는 진료실을 나와 복도에서 멍하니 서서, 무의식적으로 아랫배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이 아이를 낳아야 할까? 내 체질로는 한번 수술하면 다시는 임신하지 못할 수도 있댔는데...’ 그때, 나는 복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 저거 배우 류만정이랑 남자 친구 아니야? 진짜 잘 어울린다!” “만정 씨가 산부인과에 올 때마다 남친이 항상 같이 오더라. 진짜 사랑 많이 받고 있나 봐.” “엄마 아빠 얼굴이 저 정도면 아이는 얼마나 예쁠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사람들 쪽을 돌아보았다. 말대로 한눈에 기연훈과 류만정이 보였다. 류만정은 연훈과 7년째 연인인 척하며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모두가 두 사람을 진짜 커플로 알고 있었다. 얼마 전 밸런타인데이에도 나까지 셋이 같이 밥을 먹으러 갔다가 기자들에게 걸린 적이 있었다. 네티즌들이 나를 두고 진짜 뻔뻔한 여자라느니, 의도적으로 끼어든 ‘커플 브레이커' 라느니 온갖 욕을 퍼부었다.정말 웃기는 일이었다. 아무도 내가 바로 기연훈의 아내라는 사실을 몰랐다.여기 더 있다간 눈에 띄기 십상이겠다 싶어서 조용히 나가려던 순간, 류만정이 날 불러 세웠다. “지은서? 여기서 뭘 하고 있어? 설마 연훈이랑 나를 스토킹하는 건 아니겠지?”‘참 대단하다. 내가 이렇게 철저히 가리고 다녔는데, 기자들도 못 알아본 걸 어떻게 알아봤을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 있는데, 기연훈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날 향해 단정 지어 말했다. “이번 한 번만 넘어간다. 다음엔 그러지 마.” ‘스토킹’이라는 단어가 들리는 순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날 찌르는 듯 느껴졌다. 사람들의 눈엔 내가 마치 악의적인 불청객이나 되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 처음도 아니야

  • 산부인과에서 마주한 남편과 첫사랑   제2화

    알고 보니 기연훈은 나와는 완전히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 ‘왜 화를 내는 건지 도통 모르겠네.’ 나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응, 맞아.” 기연훈은 뭔가 화를 내고 싶었지만 속으로 참는 것 같았다. “이번 시상식에서 당신이 속상했을 거 알아. 하지만 배 속의 아이를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 건 아니잖아.” 그 말에 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나는 이 업계에서 8년을 버텼다. 여우주연상 후보에만 5번이나 올랐고, 겨우 이번에 확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기연훈은 류만정을 위해 내가 받을 상을 빼앗아줬다. 덕분에 류만정의 팬들에게 ‘광대’라며 조롱당했고,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영원한 들러리’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화풀이한 거 아니야. 어차피 우리는 이혼할 거고, 그럼 애는 굳이 낳을 필요 없잖아. 이혼 서류는 이미 준비해뒀어. 내일 변호사가 가져올 테니까 사인만 해줘.” 기연훈은 원래 내 앞에서 인내심이 길지 않은 성격이었다. 이번에도 남자의 목소리엔 짜증이 섞여 있었다. “겨우 여우주연상 하나 때문에 이러는 거야? 그게 그렇게 갖고 싶으면 내년에 받으면 되잖아. 나머지 얘기는 당신이 진정되면 다시 하자.” 내가 아이를 지운다고 했고, 이혼 얘기까지 꺼냈는데도 기연훈은 사과 한마디 없이 차 키를 챙겨 집을 나섰다. 늘 그랬던 것처럼, 내가 어떤 상처를 받든 그는 나를 내버려 두고 내가 스스로 감정을 추스르길 바랐다. ‘어차피 얼마 안 가면 내가 또 먼저 가서 화해를 청할 거라고 생각하겠지.’ 그는 그렇게 믿었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부모님을 어린 나이에 여의고, 언니와 단둘이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 언니가 신장병에 걸렸을 때, 기연훈의 어머니가 수술비를 대주셨고 내 학비까지 지원해주셨다. ‘어머님께 감사했어. 그래서 어머님의 부탁으로 연훈이를 돕겠다고 했던 거야.’ 기연훈의 어머니는 말했다. “10년 뒤에도 네가 연훈이와의 결혼 생활에 마음이 없다면, 그땐 내가 더 이상 강요

  • 산부인과에서 마주한 남편과 첫사랑   제3화

    기연훈은 이혼 서류를 받아 들더니, 단숨에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문쪽으로 걸어 나갔다.남자는 키도 크고 다리도 긴 데다, 걸음까지 빨랐다. ‘쫓아가긴 뭘 쫓아가.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어.’ 나는 그냥 휴대폰을 꺼내 문자 하나를 보냈다. [집에서 기다릴게. 두 시간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변호사에게 바로 이혼 소송을 진행하라고 할 거야. 그로 인해 생기는 모든 결과는 당신이 책임져.] ‘연훈이랑 류만정의 불륜이 공개되면, 나는 오히려 떳떳해질 수 있겠지.’ 하지만 그 둘은 스타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와 소속 연예인 때문에 두 사람의 스캔들은 나에게도 큰 경제적 손실을 가져올 게 분명했다. ‘이래서 내가 그동안 참고 또 참아온 거야.’ 나는 시계를 확인하고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 시간쯤 지나서야 기연훈이 들어왔다. 그는 아무 표정도 없이 소파에 앉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새로 출력한 이혼 서류를 건네며 말했다. “이건 다시 출력한 이혼 서류야.” 그는 서류를 받아 들었지만,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고, 서류는 손아귀에서 구겨져 갔다. ‘또 찢으려고 하는 거야?’ 내 목소리도 덩달아 차가워졌다. “기연훈, 내 인내심도 한계가 있어. 두 번 찢으면 바로 법원에서 보자.”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혼 서류를 탁자 위에 던져 놓았다. 그리고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난 이혼할 생각이 없어.” 그 말을 듣고, 나는 비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근데 난 매일 이혼할 생각뿐인데.” ‘농담 아니야. 나는 꿈에서도 기연훈이랑 이혼하는 상상만 한다고.’ ‘이건 거의 내 한풀이가 되어버렸어.’ 그는 목젖을 한 번 꿀꺽 삼키더니, 눈빛이 어둡고 복잡하게 흔들렸다. 내가 평소엔 다 받아주는 편이라, 이렇게 단호한 태도는 기연훈은 더 견디지 못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했다. “스타 엔터테인먼트가 곧 상장을 준비 중이야. 이때

  • 산부인과에서 마주한 남편과 첫사랑   제4화

    학창 시절 내내 친구들은 나에게 ‘기연훈을 따라다니는 그림자’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비웃음에도 신경 쓰지 않고 늘 기연훈의 뒤를 쫓았다. 대학교 3학년 때, 류만정은 여자 BJ 출신에서 연기자로 전향한 배우였다. 그녀가 출연한 첫 번째 웹드라마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그녀는 단숨에 스타가 되었다. 그러다 류만정과 기연훈의 과거 연애사가 누군가에 의해 폭로되었고, 팬들은 기연훈을 향해 조롱을 퍼부었다. “기연훈 같은 가난뱅이가 만정 언니 같은 사람을 감히 넘본다고?” 그 시기, 기연훈은 심한 우울증에 빠져 지냈고, 나는 그의 우울증이 재발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며 옆에서 살뜰하게 그를 보살폈다.결국 그는 연예계에 발을 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때 나는 기연훈의 회사인 스타 엔터테인먼트 소속 첫 번째이자 유일한 연예인이 되었다. “뜨기만 하면 돼.” 나는 기연훈을 위해 어떻게든 주목받으려 온 힘을 다했다. 화제가 되는 일이면 뭐든지 마다하지 않고 다 했고, 온라인에서 나를 ‘관종’이라며 욕을 해댔지만 나는 기꺼이 그 욕을 먹어가며 버텼다. 드라마에서 작은 배역 하나 따내기 위해 나는 술자리에 참석했고,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위출혈로 병원 신세를 진 적도 있었다. 결국 각고의 노력 끝에 행운의 여신이 나에게 미소 짓기 시작했다. 그렇게 발버둥 치다 보니 결국 나에게 길이 열렸으니까.스타 엔터테인먼트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던 때, 기연훈은 나에게 고백하며 결혼을 청했다. 기연훈의 어머니는 내가 자기 아들을 거절할까 봐, 그리고 혹시라도 그 거절로 인해 우울증이 재발할까 봐 직접 내게 부탁했다. 나는 그때 딱히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기에, 결국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드리기로 했다. 하지만 회사가 안정 궤도에 오르자, 류만정이 다시 기연훈을 찾아왔다. 그리고 두 사람은 또다시 엮이기 시작했다. 기연훈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아내로 존중한 적이 없었다. 그런 사람에게, 아무리 외모가 준수하고 돈이 많다 해

  • 산부인과에서 마주한 남편과 첫사랑   제5화

    류만정의 팬들이 내 SNS에 몰려와 쉴 새 없이 댓글로 욕을 퍼부었다. [기 대표님 술에 취한 거 이용해서 뭔가 해보려는 수작 아니야? 역겹다, 양심 좀 가져봐라.] [기 대표님과 만정 언니 사이에 이미 아이도 생겼고 결혼할 거잖아. 여기서 또 민폐 짓? 제발 꺼져라.] [진짜 징그럽다. 뭐든 만정 언니랑 비교하지 말고, 거울 좀 봐라. 너 같은 게 뭘 할 수 있겠어?] 이 정도는 차라리 듣기 좋은 편이었고, 더 심한 건 인간으로서 내 존엄성마저 짓밟는 말들이었다. 예를 들면, 내 가족 욕, 조상 욕은 물론, 온갖 생리적 욕설까지.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주네.’ 결국 나는 기연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달 뒤면 우리 이혼 판결 확정되니까, 그때부터 네가 류만정이랑 공개적으로 뭘 하든 상관없어.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좀 조심해줄래?”두 사람이 공개적으로 애정 행각을 하면 할수록, 류만정의 팬들은 나를 더 심하게 물어뜯었다. 누구도 이렇게까지 욕먹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기연훈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우리 곧 이혼할 건데, 당신도 내가 누구랑 있든 참견할 자격이 있어? 당신이 정말 후회된다면, 지금이라도 가정법원에 가서 이혼 신청 취소할 수 있어. 그 대신 당신도 강민혁이나 서현우 같은 애들이랑 얽히는 건 그만둬야겠지.]남자의 말에 나는 어이없어 웃음이 나왔다. “기연훈, 내가 진짜 착해서 참는 줄 아는 거야? 참는 것도 한계가 있어?” ‘내가 여기까지 참아준 걸 고마워해야지, 날 만만하게 보는 거야?’ 나는 전화를 끊고 바로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시간 후에 기자회견 잡아. 준비해요.” 매니저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지금 바로 팀 불러서 준비 들어갑니다!]매니저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나는 그동안 내가 고생할 때 함께 해준 매니저의 모습이 떠올랐다. ‘매번 고생 많았지. 이젠 보상받아야 해.’ 나는 매니저에게 2

최신 챕터

  • 산부인과에서 마주한 남편과 첫사랑   제8화

    나는 류만정과 및 그녀와 연관된 악플러들, 그리고 여론몰이에 가담한 몇몇 네티즌들을 고소해, 총 6억의 배상금을 받아냈다. 그리고 그 돈 전액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이 정도면 이미지 회복은 완벽하지.’ 사람들의 반응도 좋았고, 여론도 나를 응원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그 후 충분히 고민한 끝에, 나는 강민혁의 개인 소속사에 합류하기로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서현우는 분통을 터뜨리며 강민혁에게 직접 따졌다. “강민혁, 네가 은서를 꾀어서 데려가려고, 운영 비용을 고작 20%만 받았다고? 거기다 네 작은아버지까지 소개해서 은서 재산 관리까지 맡긴다고? 너 진짜 심하네! 사람들은 네가 멍청하다는데, 다 속았어! 완전 계산 빠른 놈이잖아!” 서현우는 그렇게 강민혁에게 퍼붓고도 화가 풀리지 않은 듯, 만나는 사람마다 강민혁의 ‘새로운 계산적인 면모’를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다. 심지어 예능 프로그램에 나갔을 때도, 카메라 앞에서 강민혁을 씹어댔다. 예능 PD는 이런 걸 놓칠 리 없었다. 그는 나와 강민혁을 게스트로 초대해, 서현우의 화를 부채질하기까지 했다. 녹화 중, PD가 당돌하게 물었다. “강민혁 배우님, 서현우 배우님이 여기저기서 ‘계산적이고 심술궂다’고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강민혁은 카메라를 보며 냉담하게 대답했다. “사람 빼앗기고 열 받아서 저러는 거죠. 그냥 불쌍하게 여기고 내버려두세요. 질투 좀 하게 놔두는 게 도와주는 겁니다.” 그 말에 서현우는 스튜디오에서 당장이라도 강민혁과 의절할 기세로 벌게진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서현우가 더는 폭발하지 않도록, 몰래 초 달달 버블티를 두 잔 사주고, 살짝 귀띔했다. “현우야, 민혁이 여동생 연락처 받아다 줄게. 진짜 약속해.” 그제야 서현우는 겨우 마음을 진정시켰다. 실은 서현우는 바깥에선 바람둥이 이미지로 유명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철저히 ‘순정파’였다. 그는 강민혁의 여동생을 좋아한 지 벌써 3년째지만, 아직 그녀의 연락처

  • 산부인과에서 마주한 남편과 첫사랑   제7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미처 면도도 못 한 채 까칠하게 자란 수염, 퀭해진 눈, 홀쭉해진 얼굴까지. 지금 모습만 보면, 기연훈은 류만정한테 처음 차였을 때보다 훨씬 더 초라해 보였다. “몸 좀 괜찮아졌어? 한 달 넘게 쉬었잖아.” 기연훈이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차 한 모금을 천천히 삼켰다. ‘내가 임신중절수술을 했던 날도, 그 후 며칠이나 나한테는 아무 말 없더니. 이제 와서? 너무 가식적인 거 아냐?’ “나는 아이를 정말로 간절히 기다렸어. 그런데 당신이 나에게 말 한마디 없이 지워버렸잖아. 내가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어?” 나는 이 말을 듣고 정말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이가 그렇게 소중하면, 너도 이미 충분히 기회가 많잖아. 이번 건 그렇게 신경 쓸 일도 아니지 않아?” 언제나 그래왔듯, 기연훈은 늘 내 위에 군림하는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그는 나의 말을 듣고 본능적으로 얼굴을 찡그렸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고, 그저 입술을 깨물며 무언가 변명하려 애썼다. “류만정 배 속에 든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야. 나랑 걔는 그런 사이도 아니었고.” 기연훈은 어색하게 변명했다. 나는 새로 손질한 손톱을 살펴보며, 흥미 없다는 듯 무심하게 대꾸했다. “알고 있어. 그 사람이 당신한테 그동안 얼마나 치욕적인 짓을 했는데, 당신처럼 자존심 강한 사람이 그런 걸 못 본 척 넘어갈 리 없잖아.” 나는 말을 이어갔다. “당신도 그냥 류만정이 당신의 마음에 들려고 머리 굴리고 아등바등 애쓰는 모습이 재밌었겠지. 아마 류만정과 계약한 이유도 마찬가지일 거야.” “물론 류만정한테는 희망 고문하면서, 적당히 큰 그림을 그려주고, 회사에 필요한 자원을 끌어오게끔 남자들한테 류만정을 이용할 기회를 준 것도 당신의 전략이겠지.” “다 쓰고 나면 류만정이 한 짓을 세상에 까발려서 추락시키는 것. 그게 당신이 그 여자에게 복수하는 방식이잖아.” 내 말에 기연훈의 얼굴이

  • 산부인과에서 마주한 남편과 첫사랑   제6화

    기연훈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상대를 공격하려다 당신이 오히려 되치기당하는 거야. 손해가 수백억인데... 설마 연애하더니 이성을 잃은 거냐? 그 머리로 생각은 안 해?” 나는 미소를 띠며 한쪽 눈썹을 올렸다. “기 대표, 정보력 좀 키워야겠네. 내 지분 이미 팔았어. 손해 보는 건 당신이지, 나는 아닌데.” 사실 3일 전, 기연훈이 류만정과 여기저기서 애정 과시를 할 때 나는 이미 언니 한은희를 통해 내가 가진 지분 전부를 회사의 2대 주주인 유동성에게 넘겼다. ‘우리 자매가 서로 성이 달라서, 아무도 우리가 가족이라는 걸 알지 못해.’ 나는 나빠진 내 이미지와 회사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그동안 지분을 언니 명의로 소유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오직 기연훈과 류만정뿐이야.’ 그리고 유동성? 그는 평소 류만정과 친하게 지내면서 나를 괴롭히고 모욕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에게 내 주식을 던져주는 건 전혀 미안하지 않아. 오히려 통쾌하지.’ 기연훈은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가득 담고 물었다. “당신, 일부러 나를 모함하는 거야?” 나는 어이없다는 듯 대꾸했다. “뭐가 어때서? 당신은 나를 모함하고 짜증 나게 하고 상처를 줄 수 있는데, 나는 당신한테 되돌려주면 안 돼? 피해자인 척하지 마. 꼴도 보기 싫어.” ‘나는 이미 너에게 수없이 많은 기회를 줬어. 하지만 너희들은 오히려 날 더 몰아붙이기만 했지.’ 나는 더 이상 이 문제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받은 은혜는 이미 다 갚았으니, 나는 더 이상 기연훈의 감정이나 처지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나는 기연훈을 집에서 내쫓았다. 이혼 서류를 쓸 때 이 집은 내 명의로 가져왔지만, 그가 자꾸 들이닥쳐 귀찮게 하자, 나는 결국 새집으로 이사했다. 며칠 뒤, 몇몇 절친한 친구들이 새로 이사한 집으로 놀러 왔다. “은서야, 기연훈이랑 결혼했으면서 우리한텐 그동안 비밀

  • 산부인과에서 마주한 남편과 첫사랑   제5화

    류만정의 팬들이 내 SNS에 몰려와 쉴 새 없이 댓글로 욕을 퍼부었다. [기 대표님 술에 취한 거 이용해서 뭔가 해보려는 수작 아니야? 역겹다, 양심 좀 가져봐라.] [기 대표님과 만정 언니 사이에 이미 아이도 생겼고 결혼할 거잖아. 여기서 또 민폐 짓? 제발 꺼져라.] [진짜 징그럽다. 뭐든 만정 언니랑 비교하지 말고, 거울 좀 봐라. 너 같은 게 뭘 할 수 있겠어?] 이 정도는 차라리 듣기 좋은 편이었고, 더 심한 건 인간으로서 내 존엄성마저 짓밟는 말들이었다. 예를 들면, 내 가족 욕, 조상 욕은 물론, 온갖 생리적 욕설까지.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주네.’ 결국 나는 기연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달 뒤면 우리 이혼 판결 확정되니까, 그때부터 네가 류만정이랑 공개적으로 뭘 하든 상관없어.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좀 조심해줄래?”두 사람이 공개적으로 애정 행각을 하면 할수록, 류만정의 팬들은 나를 더 심하게 물어뜯었다. 누구도 이렇게까지 욕먹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기연훈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우리 곧 이혼할 건데, 당신도 내가 누구랑 있든 참견할 자격이 있어? 당신이 정말 후회된다면, 지금이라도 가정법원에 가서 이혼 신청 취소할 수 있어. 그 대신 당신도 강민혁이나 서현우 같은 애들이랑 얽히는 건 그만둬야겠지.]남자의 말에 나는 어이없어 웃음이 나왔다. “기연훈, 내가 진짜 착해서 참는 줄 아는 거야? 참는 것도 한계가 있어?” ‘내가 여기까지 참아준 걸 고마워해야지, 날 만만하게 보는 거야?’ 나는 전화를 끊고 바로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시간 후에 기자회견 잡아. 준비해요.” 매니저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지금 바로 팀 불러서 준비 들어갑니다!]매니저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나는 그동안 내가 고생할 때 함께 해준 매니저의 모습이 떠올랐다. ‘매번 고생 많았지. 이젠 보상받아야 해.’ 나는 매니저에게 2

  • 산부인과에서 마주한 남편과 첫사랑   제4화

    학창 시절 내내 친구들은 나에게 ‘기연훈을 따라다니는 그림자’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비웃음에도 신경 쓰지 않고 늘 기연훈의 뒤를 쫓았다. 대학교 3학년 때, 류만정은 여자 BJ 출신에서 연기자로 전향한 배우였다. 그녀가 출연한 첫 번째 웹드라마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그녀는 단숨에 스타가 되었다. 그러다 류만정과 기연훈의 과거 연애사가 누군가에 의해 폭로되었고, 팬들은 기연훈을 향해 조롱을 퍼부었다. “기연훈 같은 가난뱅이가 만정 언니 같은 사람을 감히 넘본다고?” 그 시기, 기연훈은 심한 우울증에 빠져 지냈고, 나는 그의 우울증이 재발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며 옆에서 살뜰하게 그를 보살폈다.결국 그는 연예계에 발을 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때 나는 기연훈의 회사인 스타 엔터테인먼트 소속 첫 번째이자 유일한 연예인이 되었다. “뜨기만 하면 돼.” 나는 기연훈을 위해 어떻게든 주목받으려 온 힘을 다했다. 화제가 되는 일이면 뭐든지 마다하지 않고 다 했고, 온라인에서 나를 ‘관종’이라며 욕을 해댔지만 나는 기꺼이 그 욕을 먹어가며 버텼다. 드라마에서 작은 배역 하나 따내기 위해 나는 술자리에 참석했고,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위출혈로 병원 신세를 진 적도 있었다. 결국 각고의 노력 끝에 행운의 여신이 나에게 미소 짓기 시작했다. 그렇게 발버둥 치다 보니 결국 나에게 길이 열렸으니까.스타 엔터테인먼트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던 때, 기연훈은 나에게 고백하며 결혼을 청했다. 기연훈의 어머니는 내가 자기 아들을 거절할까 봐, 그리고 혹시라도 그 거절로 인해 우울증이 재발할까 봐 직접 내게 부탁했다. 나는 그때 딱히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기에, 결국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드리기로 했다. 하지만 회사가 안정 궤도에 오르자, 류만정이 다시 기연훈을 찾아왔다. 그리고 두 사람은 또다시 엮이기 시작했다. 기연훈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아내로 존중한 적이 없었다. 그런 사람에게, 아무리 외모가 준수하고 돈이 많다 해

  • 산부인과에서 마주한 남편과 첫사랑   제3화

    기연훈은 이혼 서류를 받아 들더니, 단숨에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문쪽으로 걸어 나갔다.남자는 키도 크고 다리도 긴 데다, 걸음까지 빨랐다. ‘쫓아가긴 뭘 쫓아가.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어.’ 나는 그냥 휴대폰을 꺼내 문자 하나를 보냈다. [집에서 기다릴게. 두 시간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변호사에게 바로 이혼 소송을 진행하라고 할 거야. 그로 인해 생기는 모든 결과는 당신이 책임져.] ‘연훈이랑 류만정의 불륜이 공개되면, 나는 오히려 떳떳해질 수 있겠지.’ 하지만 그 둘은 스타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와 소속 연예인 때문에 두 사람의 스캔들은 나에게도 큰 경제적 손실을 가져올 게 분명했다. ‘이래서 내가 그동안 참고 또 참아온 거야.’ 나는 시계를 확인하고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 시간쯤 지나서야 기연훈이 들어왔다. 그는 아무 표정도 없이 소파에 앉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새로 출력한 이혼 서류를 건네며 말했다. “이건 다시 출력한 이혼 서류야.” 그는 서류를 받아 들었지만,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고, 서류는 손아귀에서 구겨져 갔다. ‘또 찢으려고 하는 거야?’ 내 목소리도 덩달아 차가워졌다. “기연훈, 내 인내심도 한계가 있어. 두 번 찢으면 바로 법원에서 보자.”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혼 서류를 탁자 위에 던져 놓았다. 그리고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난 이혼할 생각이 없어.” 그 말을 듣고, 나는 비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근데 난 매일 이혼할 생각뿐인데.” ‘농담 아니야. 나는 꿈에서도 기연훈이랑 이혼하는 상상만 한다고.’ ‘이건 거의 내 한풀이가 되어버렸어.’ 그는 목젖을 한 번 꿀꺽 삼키더니, 눈빛이 어둡고 복잡하게 흔들렸다. 내가 평소엔 다 받아주는 편이라, 이렇게 단호한 태도는 기연훈은 더 견디지 못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했다. “스타 엔터테인먼트가 곧 상장을 준비 중이야. 이때

  • 산부인과에서 마주한 남편과 첫사랑   제2화

    알고 보니 기연훈은 나와는 완전히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 ‘왜 화를 내는 건지 도통 모르겠네.’ 나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응, 맞아.” 기연훈은 뭔가 화를 내고 싶었지만 속으로 참는 것 같았다. “이번 시상식에서 당신이 속상했을 거 알아. 하지만 배 속의 아이를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 건 아니잖아.” 그 말에 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나는 이 업계에서 8년을 버텼다. 여우주연상 후보에만 5번이나 올랐고, 겨우 이번에 확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기연훈은 류만정을 위해 내가 받을 상을 빼앗아줬다. 덕분에 류만정의 팬들에게 ‘광대’라며 조롱당했고,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영원한 들러리’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화풀이한 거 아니야. 어차피 우리는 이혼할 거고, 그럼 애는 굳이 낳을 필요 없잖아. 이혼 서류는 이미 준비해뒀어. 내일 변호사가 가져올 테니까 사인만 해줘.” 기연훈은 원래 내 앞에서 인내심이 길지 않은 성격이었다. 이번에도 남자의 목소리엔 짜증이 섞여 있었다. “겨우 여우주연상 하나 때문에 이러는 거야? 그게 그렇게 갖고 싶으면 내년에 받으면 되잖아. 나머지 얘기는 당신이 진정되면 다시 하자.” 내가 아이를 지운다고 했고, 이혼 얘기까지 꺼냈는데도 기연훈은 사과 한마디 없이 차 키를 챙겨 집을 나섰다. 늘 그랬던 것처럼, 내가 어떤 상처를 받든 그는 나를 내버려 두고 내가 스스로 감정을 추스르길 바랐다. ‘어차피 얼마 안 가면 내가 또 먼저 가서 화해를 청할 거라고 생각하겠지.’ 그는 그렇게 믿었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부모님을 어린 나이에 여의고, 언니와 단둘이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 언니가 신장병에 걸렸을 때, 기연훈의 어머니가 수술비를 대주셨고 내 학비까지 지원해주셨다. ‘어머님께 감사했어. 그래서 어머님의 부탁으로 연훈이를 돕겠다고 했던 거야.’ 기연훈의 어머니는 말했다. “10년 뒤에도 네가 연훈이와의 결혼 생활에 마음이 없다면, 그땐 내가 더 이상 강요

  • 산부인과에서 마주한 남편과 첫사랑   제1화

    “임신 4주 차입니다. 축하드려요!” 생리가 일주일이나 늦어지자 혹시나 하고 병원에 왔더니, 임신한 지 무려 한 달이나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이가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왔어.’ 나는 진료실을 나와 복도에서 멍하니 서서, 무의식적으로 아랫배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이 아이를 낳아야 할까? 내 체질로는 한번 수술하면 다시는 임신하지 못할 수도 있댔는데...’ 그때, 나는 복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 저거 배우 류만정이랑 남자 친구 아니야? 진짜 잘 어울린다!” “만정 씨가 산부인과에 올 때마다 남친이 항상 같이 오더라. 진짜 사랑 많이 받고 있나 봐.” “엄마 아빠 얼굴이 저 정도면 아이는 얼마나 예쁠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사람들 쪽을 돌아보았다. 말대로 한눈에 기연훈과 류만정이 보였다. 류만정은 연훈과 7년째 연인인 척하며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모두가 두 사람을 진짜 커플로 알고 있었다. 얼마 전 밸런타인데이에도 나까지 셋이 같이 밥을 먹으러 갔다가 기자들에게 걸린 적이 있었다. 네티즌들이 나를 두고 진짜 뻔뻔한 여자라느니, 의도적으로 끼어든 ‘커플 브레이커' 라느니 온갖 욕을 퍼부었다.정말 웃기는 일이었다. 아무도 내가 바로 기연훈의 아내라는 사실을 몰랐다.여기 더 있다간 눈에 띄기 십상이겠다 싶어서 조용히 나가려던 순간, 류만정이 날 불러 세웠다. “지은서? 여기서 뭘 하고 있어? 설마 연훈이랑 나를 스토킹하는 건 아니겠지?”‘참 대단하다. 내가 이렇게 철저히 가리고 다녔는데, 기자들도 못 알아본 걸 어떻게 알아봤을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 있는데, 기연훈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날 향해 단정 지어 말했다. “이번 한 번만 넘어간다. 다음엔 그러지 마.” ‘스토킹’이라는 단어가 들리는 순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날 찌르는 듯 느껴졌다. 사람들의 눈엔 내가 마치 악의적인 불청객이나 되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 처음도 아니야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