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가 집에 있으니 차미주가 간다고 하더라도 숙희를 걱정하고 있을 테였다. 역시 901호로 이사 갔지만 매일 시간 내 고양이를 챙기러 902호로 갔다. 투덜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숙희 넌 귀엽게 생긴 애가 응가는 왜 이렇게 냄새가 지독한 거야?”“개자식 이 무책임한 주인은 널 집에 내버려두고 신경도 안 쓰잖아. 역시 좋은 사람은 아니야, 그렇지?”“숙희, 내가 개자식과 헤어지면 넌 누굴 따라갈 거야?”CCTV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한성우는 웃픈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그의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집안의 CCTV는 강한서가 사고 나기 며칠 전 설치한 것이었다. 출근한 차미주가 한성우에게 숙희가 보고 싶다고 하자 한성우는 바로 CCTV를 설치했다. 원래는 서프라이즈로 알려줄 생각이었지만 그럴 새도 없이 강한서에게 사고가 생겼고 한 달 내내 그 일 때문에 뛰어다니느라 차미주에게 말하지 못했었다. 그 CCTV가 이렇게 오히려 몰래 훔쳐보는 도구가 될 줄이야. 한성우는 쓸쓸하기도 하고 다행이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꿈에도 그리던 사람이 자기를 위해 음식을 차리는 모습을 보니 순간 감동이 물밀듯 밀려왔다. 그는 아무도 자기 여자친구에게 눈독 들이지 못하도록 당장이라도 차미주를 데리고 혼인신고 하러 가고 싶었다. 한성우가 여전히 그만의 상상에 빠져 있을 때, 차미주가 숟가락 손잡이로 한성우의 배를 찔렀다. 찌릿한 통증에 한성우가 손을 내렸다. 차미주가 고개를 돌려 숟가락으로 한성우를 가리켰다. “변태야, 누구 몸에 손을 대는 거야?”한성우가 배를 문지르며 억울한 듯한 말투로 나지막이 말했다.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차미주의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옆에 있던 주방 세제를 한성우에게 던지며 욕을 내뱉었다. “그 느끼함 좀 씻어버려.”한성우는 전혀 타격감 없이 세제를 원위치시키며 나긋하게 말했다. “음식 아직 몇 가지 남았어? 내가 도와줄까?”차미주가 한성우를 힐끔 쳐다보았다. “할 줄 알아?”“말 또 섭섭하
한현진이 실소를 터뜨렸다. ‘개자식! 날 기억하지는 못하면서 내 카톡은 기억하고 있네.’한현진은 얼른 강한서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당연하게도 전화번호 역시 차단당한 상태였다. 굳은 얼굴로 한참을 생각하던 한현진은 갑자기 강한서가 하던 방법을 떠올렸다. 그리고 잠시 후, 강한서의 휴대폰에 20억이 계좌 이체되었다는 문자가 울렸다. 계좌 이체와 함께 덧붙인 말은 없었다. 곧 그 20억은 다시 돌아왔고 부언으로 물음표 하나가 왔다. 한현진은 또 20억을 송금했다. [네가 전에 나한테 뒀었던 돈이야. 돌려줄 게.]그 돈을 송금하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 강한서에게서 온 전화였다. 통화 버튼을 누른 한현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야?”강한서는 말문이 막혔다. 그는 한현진이 아마 분노에 휩싸여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말투는 평온하기만 했다.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기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렇게 많은 돈을 보내는 건 무슨 의미예요?”“파혼하겠다며. 네가 나에게 보관하라고 줬던 돈이니 돌려줘야지. 혹시 모를 경제 분쟁을 막으려면 말이야.”강한서가 말했다. “민 실장이 우리 사이에 금전적 거래가 있었다는 얘기는 없었는데요.”한현진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거래는 없었지. 네가 주기만 했으니까. 네가 날 꼬실 때 사적으로 나에게 계좌 이체해 준 거야. 민 실장님은 몰라.”강한서가 잠시 침묵했다. “연애할 때 송금한 거라면 증여네요. 헤어졌다고 다시 돌려받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남들이 들으면 절 어떻게 생각하겠어요?”“그러면 난? 헤어졌는데 아직도 네가 준 돈을 가지고 있다는 걸 다른 사람이 알게 되면 날 꽃뱀이라고 생각하겠네.”“...”몇 분 후, 강한서가 다시 한현진에게 전화했다. 한현진은 전화를 받는 대신 거절을 눌렀다. 그러자 또다시 몇 분이 흐르고 카톡 알람이 울렸다. 누군가 친구 추가를 한 것이다. 힐끔 휴대폰을 쳐다본 한현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녀는 거절을 누르며 답장했다. [모르는 사람은 추가 안 해요
하지만 강한서는 아무런 이상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영상통화를 해야 했다. 목소리만으로는 잘 판단이 되지 않았다. “직접 가지러 오시죠.”한현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저도 여배우인데, 남자와 동거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제 앞날은 어떡하라고요.”강한서가 말했다. “주강운과 이미 몇 번이나 실검에 올랐으면서 그건 신경 쓰이시나 봐요?”“그건 언론에서 멋대로 추측한 거고요. 해명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사는 곳에서 남자의 옷과 콘돔이 나왔다는 사실이 언론사에 알려지면 청순한 제 이미지가 깨지잖아요. 그러면 손해가 얼마인지 아세요? 전 제 미래를 걸고 도박하고 싶지는 않네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더니 참지 못하고 말했다. “결혼도 했었으면서 청순한 여자 이미지를 이어가는 건 관중과 팬들에 대한 기만 아닌가요?”“그게 뭐 어때서요?”한현진이 편안하게 소파에 기댔다. “지금 연예인 중 이미지 관리 안 하는 사람도 있어요? 팬분들이 좋아하시고 관중이 기뻐해 주시면 그런 것쯤은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해요.”그 말은 당연히 강한서를 속이기 위한 것이었다. 한현진의 페이스북은 영화나 드라마 홍보 때에만 업로드하고 평소엔 인터넷이 되지 않는 것처럼 조용했다. “봄의 연인”이 인기를 얻고 같이 출연했던 다른 배우들은 새로운 드라마에 들어가거나 예능에 출연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한현진은 홍보를 위해 한 번 출연한 것 외에 그 어떤 활동에도 참여한 적이 없었다. 전에 한열과 촬영할 때도 진열커플의 팬들로 인해 꽤 떠들썩해 매니저도 그 기회를 이용해 한현진의 인기를 끌어올리려 했지만 결국 한현진과 송민준에게 동시에 거절당했었다. 한현진은 인기로 먹고사는 배우가 되고 싶지 않았다. 송민영처럼 팬들에게 잘 보이고 꾸준히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영원히 회사에서 포장해 준 이미지대로 살고 싶지 않았다. 이미지로 먹고사는 사람은 언젠가 그 이미지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강한서를 놀리기 위해 그녀는 눈
깜짝 놀란 차미주가 얼른 수저를 내려놓고 한현진을 따라갔다. 한현진은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었다. 오후에 주강운과 함께 술을 사러 가서 시음한 것이 전부였다. 그 탓에 구토물에도 알코올 냄새가 조금 섞여 있었다. 차미주가 한현진의 등을 쓸어주었다. “봐, 내가 많이 마시지 말라고 했잖아. 빈속에 그렇게 많이 마셨으니. 아직도 네가 어린 줄 알아?한현진은 한참을 토하고 나서야 차미주가 건넨 물을 받았다. 입을 헹군 한현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 얼마 안 마셨어. 네가 내 주량을 몰라서 그래? 뭐 얼마나 마셨다고.”“이렇게 토하면서 입은 아직 살아있네.”한현진이 컵을 내려놓고 손을 씻으며 물었다. “백숙의 비릿한 국물 냄새를 맡으니까 갑자기 속이 메슥거렸어. 너 혹시 비린내 제거하는 거 잊은 거 아냐?”“그럴 리가.”요리부심이 있는 차미주는 절대 다른 사람이 자기 음식 솜씨를 의심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생강도 아직 냄비에 그대로 있다고. 오늘은 특별히 맛술도 넣어서 재우기까지 하고 삶았는걸.”그러더니 차미주가 소리 높여 한성우에게 물었다. “개자식아, 백숙에서 비린내 나?”한성우가 눈 깜짝할 사이 화장실에 나타났다. “안 비려. 담백하던데. 나에게 만들어준 백숙보다 훨씬 더 맛있어. 날 해준 건 혹시 맛술 넣기도 아까웠던 거야?”차미주는 자연스레 한성우가 뒤이어 한 말을 무시하고는 고개를 돌려 한현진에게 말했다. “현진아, 너 위장이 안 좋은 거 아냐? 며칠 사이 너 토하는 것만 벌서 세 번째야. 같이 병원 가서 검사받아. 조 선생님 친구가 소화기내과 교수님이셔. 그분께 가서 뭐가 문젠지 제대로 검사받아봐.”그 말에 한성우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뭘 조준을 찾아? 우리 형이 한주 병원의 소화기내과 의사인데. 내일 내가 같이 가줄게.”차미주가 멈칫하더니 한성우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네 형이 의사라고?”“아, 내가 얘기 안 했나?”“얘기하긴 뭘 해.”차미주가 바득 이를 갈았다. “우리가 사귈 때
그들을 아는 사람이야 강한서가 유현진을 아끼는 마음에 수술을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모르는 사람은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소문을 퍼뜨릴지 모를 일이었다. 특히나 지금처럼 강단해와 권력다툼을 하는 상황에 다른 사람들이 그 사실을 이용하여 이슈를 만들 수도 있었다. 한현진은 이 일로 강한서가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안줏거리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오바하는 거야.”한현진이 아무렇게나 변명을 둘러댔다. “전에 내가 몸이 안 좋아서 김 교수님께 갔을 때 일단 건강부터 회복하고 임신 준비를 하라고 하셔서 우리도 줄곧 조심하고 있었어. 임신했을 리가 없어.”한성우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콘돔으로도 100% 피임은 장담할 수 없어요. 그러니 안전한 날 같은 건 더 말할 것도 없고요.”차미주는 번뜩 무언가 떠올랐는지 한현진에게 물었다. “현진아, 너 이번 달 생리 했어?”한현진이 멈칫하더니 한참 만에야 대답했다. “5일이 밀렸어.”한현진이 곧 말을 이었다. “동상도 입었었으니까 며칠 늦어지는 것도 당연한 거야. 그리고 5일 정도는 밀렸다고 할 수도 없는 거잖아.”차미주의 표정이 점차 진지해졌다. “이렇게 많은 우연이 겹쳤을 땐 더 이상 우연이 아닌 거야. 자자자, 얼른 병원 가.”한현진은 해탈해졌다. “넌 왜 그렇게 앞서가는 거야. 병원에 갈 땐 가더라도 저녁에 가는 건 아니잖아? 의사도 쉬어야지.”“하긴.”차미주가 머리를 탁 쳤다. “임신테스트기 써보면 되잖아.”말하더니 한성우에게 심부름시켰다. “내려가서 사와. 이왕이면 여러 개.” “...”“남자인 내가 사러 가는 건 좀 그렇잖아?”드디어 한성우를 비꼴 기회가 생긴 차미주가 말했다. 说完又补充道,“之前受了凉,推迟也正常,而且五天也不算推迟吧。”唐笑笑表情严肃起来,“这么多巧合凑到一起,那就不是巧合了,走走走,去医院去。”韩若星无奈,“你怎么说风就是雨,就算是去医院检查,也不是大晚上去的吧?人医生不休息吗?”“也是,”唐笑笑一拍脑袋,“可以用验孕棒啊。”说着使唤沈青川,“你下楼
“넌 내가 애 낳는 기계인 줄 알아, 열이나 낳게? 쳇, 누가 너랑 애를 낳아?”한성우가 종아리를 주무르며 한참을 숨죽여 웃더니 그제야 다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가 나더러 많이 사라며. 난 지금 죄를 지은 사람이잖아. 네 명령을 어떻게 감히 복종하지 않을 수 있겠어.”차미주는 하마터면 한성우의 능글맞은 언사에 휘말릴 뻔했다. 그녀는 한성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에게서 썩 꺼지라니까 그 말은 왜 안 듣는 건데?”한성우가 멈칫하더니 자연스럽게 그 말은 무시하고 고개를 돌려 한현진에게 말했다. “형수님, 얼른 한 번 해보세요. 임신인지 아닌지, 테스트 해 봐야 마음이 놓이잖아요.”차미주가 얼른 한성우와 한 편에 섰다. “얼른 테스트해 봐. 당연히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만약 정말 임신이면 네가 조심하지 않아서 애가 잘못되면 어떡해. 조심하는 게 좋아.”한현진은 결국 두 사람에게 등 떠밀려 임신 테스트기 하나를 가지고 화장실로 향했다. 차미주는 소파에 단정하게 앉아 두 눈을 부릅뜨고 화장실 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성우는 그런 차미주의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했고 그녀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말했다. “도둑아, 너 아이 좋아해?”“좋아하지. 착한 애 좋아해. 말썽 피우는 애 말고.”어릴 적 차미주는 집에 형제가 많은 친구들을 많이 부러워했었다. 비록 평소엔 투덕거렸지만 밖에서 괴롭힘을 당하면 한 팀이 되어 복수해 줄 수 있었고 나쁜 짓을 해도 벌을 나눠 받을 수 있었다. 더욱이 부모님이 없을 때면 형제자매끼리 서로 의지할 수 있었고 큰일이 있을 때면 머리를 맞대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물론 혼자 외로울 일도 없었다. 그러니 한성우의 그곳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을 때 차미주는 많은 고민을 거듭했다. 그녀가 한성우에게 말했던 것처럼 아이가 있든 없든 상관없는 것이 아니었다. 차미주는 정말 아이를 좋아했다. 그녀가 한성우를 받아들인 순간, 차미주 마음속에서 한성우는 이미 그녀가 그리던 미래보다 더 중요한 사람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한성우의 지금 이런 모습들이 모두 다른 여자와 사귀었던 경험을 통해 이룬 것이라고 생각하니 차미주는 또 표현하기 힘든 짜증이 치밀었다. 예전의 차미주는 연애라는 것은 비슷한 사람끼리 끼리끼리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백지장 같은 자신이 한성우처럼 물이 든 남자를 만나게 될 줄이야. 느끼하고 의심이 많은 한성우를 차미주처럼 단순한 여자가 감당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한성우와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그렇게 이성적으로 그를 대하고 싶지 않았다. 한성우의 한두 마디 말이면 차미주의 원칙은 쉽게 흔들렸다. 차미주는 한성우의 손을 밀어내며 불편한 듯 얘기했다. “너와 상관없어. 나 다이어트 중이야.”“뚱뚱하지도 않은데 웬 다이어트? 너무 날씬하면 안 좋아.”한성우와 만나면서 4kg이나 쪘지만 그럼에도 한성우가 이렇게 무조건적으로 칭찬해 주니 차미주는 어쩐지 어안이 벙벙해졌다. 언제나 긍정적인 에너지만 주는 연인은, 그 말이 진심이든 아니든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차미주의 부모님은 바로 서로 부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전형적인 부부의 모습이었다. 어머니가 사업상으로 얼마나 큰 성과를 내든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칭찬의 말을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가 집에서 아이는 돌보지 않고 왜 늘 그렇게 야망에 차 있냐며 나무랐다. 그러다 사업에 문제라도 생기면 또 얘기했다. “거 봐. 내가 넌 안 된다고 했잖아. 그러게 왜 애초에 내 말을 안 들어. 손해를 봐야 정신을 차리지.”차미주는 부모님이 왜 다른 집 부모님과는 달리 계속 싸우고, 사이가 멀어지다 결국 이혼까지 하게 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야 두 사람의 관계에서 싸움이 문제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그 사람이 단 한 번도 나의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고 긍정적인 에너지도 주지 않으며 점차 나의 감정을 메마르게 만드는 것이 더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성우는 차미주의
한현진의 물음에 차미주가 멍해졌다. 그녀 역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차미주는 임신 테스트기 설명서를 보며 인터넷으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한성우가 오히려 차미주보다 빨리 설명서를 확인하고는 설명했다. “여기엔 지금 같은 경우를 약양성이라고 하고 임신 초기일 수 있고 화학적 유산일 수도 있대요. 간단히 얘기하면 연하든 진하든 두 줄이 나타나기만 하면 임신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정확하지 않을까 봐 걱정되면 두 날 정도 기다렸다가 다시 해보거나 바로 병원에게 가서 검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차미주가 순간 흥분하며 한현진을 안았다. “현진아, 내 새끼! 너 아기 생겼어. 세상에, 나 양딸이 생기는 거야. 하하하하하.”한현진은 조금 어안이 벙벙했고 심지어 이 상황이 조금 믿어지지도 않았다. 그녀는 손을 뻗어 방방 뛰어대는 차미주를 말렸다. “순둥아, 임신 테스트기가 유통기한이 지난 건 아닌지 확인해 봐. 내가 임신일 리가 없을 텐데.”‘그러니까, 가능할 리가 없잖아. 강한서는 정관 수술을 했는데. 어떻게 임신을 해.’“왜 임신일 리가 없어. 너 너무 기뻐서 어떻게 된 거 아냐?”차미주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봉투에 손을 넣어 새로운 임신 테스트기 하나를 꺼내 유통기한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차미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 자식아. 너 또 돈 아끼려고 싸구려 샀지. 유통기한이 6개월이나 지났잖아.”“설마.”한성우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내 유통기한 확인했어.”차미주가 한성우를 노려보며 임신 테스트기를 그에게 던져버렸다. “네가 직접 확인해 봐.”한성우가 차미주가 던진 임신 테스트기를 주워 날짜를 확인하니 정말 유통기한이 지나있었다. 주머니 가득 담긴 임신 테스트기를 하나하나 꺼내 확인하니 단 두 통의 임신 테스트기를 제외한 모든 제품이 유통기한이 지나있었다. ‘어쩐지 대폭 할인이라 했더니. 유통기한이 지난 것과 아닌 걸 섞어 파는 거였어.’잔뜩 화가 나 경멸하는 눈빛으로 자기를 보고 있는 차미주에 한성우는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면 걔들은 거짓말을 들킨 네가 양심에 찔려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진윤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걔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출국하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그럼 너 평생 해외에만 있을 거야? 안 돌아올래?”입술을 달싹인 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집도, 가족도 전부 한주에 있으니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홍혜림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해외로 도망쳐 이번 일을 지나보낸다고 해도 졸업하면 결국 여기 동기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 텐데, 걔들이 널 보고도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아?”“다들 널 안 좋게 보고 있는 지금, 네가 끝까지 네 결백을 증명해야 나중에 걔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결백을 뭐로 증명해요? CCTV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전 당당하다는 걸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요. 절 믿는 사람도 없다고요.”진윤이 잠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 어떡해요?”홍혜림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아무도 널 안 믿어도 엄마는 널 믿어. 네 아빠, 형 그리고 네 형수님도 널 믿어. 그러니까 아들, 괜찮아. 엄마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아들 못 건드려. 엄마가 꼭 네가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할게.”홍혜림이 말에 진윤이 대답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진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홍혜림 역시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의외의 인물에 홍혜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해금이었다.서해금은 성월과 함께 진윤의 병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해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