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서는 술만 마시면 필름이 끊기는 타입이었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니 한현진이 우는 모습에 당연히 그녀의 말을 믿었다.그는 우는 사람을 달랠 줄을 잘 몰랐던 터라 군자란을 사진으로 찍어 바로 민경하에게 똑같은 것으로 사 오라고 시켰다.민경하는 그때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새 화분 통을 사서 옮기면 안 되나요?”그때 강한서가 대답했다.“내가 실수로 깰 때 밟았나 봐요. 옮겨도 안 될 것 같네요.”“...”민경하는 어이가 없었다.그는 분명 한현진이 실수로 부딪쳐 깨는 것을 목격했지만 다음 날이 되니 강한서가 깬 것으로 된 것이다.그렇게 그는 자신의 회사 대표님이 조금... 바보, 아내 바보처럼 느껴졌다.강한서는 군자란을 새것으로 사 온 후 한현진의 반응을 몰래 살피기도 했다. 별로 마음에 들어 하는 모습이 아니자 그는 바로 바보처럼 핸드백을 하나 선물하였다. 그때의 일이 떠오른 강한서는 이를 빠득 갈며 말했다.“그럼 그 화분 정말로 현주 어머님께서 선물하신 건 맞아?”한현진은 눈치를 보며 중얼댔다.“그건 중고 마켓에서 몇만 원 주고 산 거야.”강한서는 더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다.“말해 봐, 또 뭘 나한테 속이고 있는 건데?”한현진은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사실 우리 아빠가 널 그렇게까지 평가하진 않으셨어. 네가 잘생기고 능력도 좋고 머리도 좋은 사람이라고 하셨어. 젊은 나이에 회사 대표까지 되어 대단한 로봇까지 만들었다고, 사람도 챙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내가 너랑 살면 분명 고생하지 않을 거라고 하셨어.”“...”강한서는 애써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나 아직 화 안 풀렸어. 지금 그 말하는 이유가 뭔데?”한현진은 손을 들어 그의 가슴팍에 올렸다.“네가 물어봤잖아. 또 뭐 속이는 거 없냐고.”강한서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말은 잘하네.”“내가 잘못했어. 화 좀 풀어주라. 응?”한현진이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엔 성의가 그다지 들어가 있지는 않았다. 아양을 떨듯 반성하는 태도였지만 강한서에겐 아주
차미주는 허둥지둥 속옷 후크를 잠그면서 말했다.“어, 왜?”“얼른 나와. 생선구이가 다 식겠네. 얼른 나와서 밥 먹어야지.”“어, 알았어. 갈게.”차미주는 얼른 옷을 입고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한성우는 이미 식탁 앞에 앉아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뭐야, 왜 화장실에 그렇게 오래 있어? 변비야?”“...넌 입이 왜 그러냐?”차미주는 그를 째려보았다.“남들은 남자친구 사귀면 매일 커피 아니면 와인을 마시고 데이트한다는데, 난 왜 너랑 사귀어서 매일 술 마시고 먹고 싸고 자는 거냐?”한성우는 그녀에게 젓가락을 건네주며 웃었다.“먹고 싸고 자는 건 인간의 기본이라고. 누가 매일 캠핑카에서 와인을 마시냐? 그리고 나중에 아기라도 생기면, 와인으로 수유할 거냐?”차미주는 그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그래도 로맨스는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지금 무슨 느낌인지 알아? 네가 날 좋아한다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너랑 사귄 느낌이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가 손해인 것 같아.”“내가 언제 너한테 좋아한다고 표현 안 했는데?”한성우는 고개를 들었다.“내가 매일 너만 불러서 게임하고 너만 불러서 밥을 먹는데, 그게 표현이 아니면 뭐야?”차미주는 바로 반박했다.“그게 어떻게 표현이야? 게임을 같이하는 것도 표현이면, 그럼 나랑 같이 게임을 하는 게임 친구들도 다 날 좋아하는 거겠네?!”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지나간 일을 들먹였다.“그렇게 전여친이 많았으면서, 그 여자들한테는 어떻게 대한 건데? 왜 나랑 사귀면서 이렇게 성의 없어진 건데? 내가 네 전여친들보다 예쁘지가 않아서 좋아하는 것에도 뭐 버프라도 사라진 거냐?”한성우는 전여친을 언급하는 차미주에 그제야 차미주가 감정을 담아 말하고 있음을 알아챘다.그는 식탁에서 일어나 그녀의 옆자리에 앉으면서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뭘 하러 그 여자들이랑 널 비교해. 넌 그 여자들이랑 달라. 넌 내 마음을 휘어잡은 사람이야.”차미주는 더 기분이 좋지 않았다.“그래서 너도 내가 네 전여친들보다
차미주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반박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백하고 거절당했다는 건, 아무런 사이도 아니란 소리였다. 그러니 당연히 다른 상대를 찾아도 되지 않겠는가?하지만 그녀는 어딘가 찝찝했다.한성우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바로 마음이 떠나버리는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차미주는 입술을 틀어 문 채 다소 걱정이 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너 정말 그 사람들을... 좋아했었어?”한성우는 한숨을 내쉬었다.“우리가 함께 있는 시간이 더 중요한데, 자꾸 나랑 그런 얘기만 할 거야?”차미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분이 안 좋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한성우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이마에 뽀뽀했다.“솔직하게 말하면, 예전에 그 여자들이랑 사귀었을 때는 좋아했을 거야. 그렇지 않았으면 사귀지도 않았지. 너도 알잖아. 난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랑 시골에서 컸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도 딱히 원하는 이상형은 없었어. 난 상대에게 잘해준다는 기준이 그냥 내가 재밌고, 내가 맛있다고 느낀 걸 그 사람과도 같이 느낄 수 있게 공유하는 거였어.” “그런데 그 여자들은 나랑 같은 생각은 아니더라고. 내가 힘들게 찾아낸 맛집에 싸구려 음식이라고, 더럽다고 불평불만이 가득하더라고. 그 여자들에겐 음식의 맛이 중요하지 않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건 바로 식당이 고급스러운 곳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하지. 난 다른 사람들의 취미와 입맛까지 평가할 자격은 없어. 그때는 그냥 서로 원하는 생활 방식이 어긋난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리고 너무 이익을 따졌지. 그래서 난 감정에 그렇게까지 몰입하진 않았어. 헤어질 때도 미련 같은 것도 남지 않았지.”그는 뜸을 들이다가 차미주의 볼을 만지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널 만난 후로 모든 게 달라졌어. 너랑 있으면 난 그런 고민을 하지 않게 돼. 내가 널 어디로 데리고 가서 밥을 먹든, 네 입맛에 맞든 아니든 그런 거 고민하지 않게 돼. 내가 매일 생각하는 게 뭔지 알아? 내가 널 이렇게 좋아하는데 우리가 나중에 결혼해서 매일 너
“나 나가봐야 할 것 같아.”한성우는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무슨 일인데?”차미주는 안방으로 달려 들어가 옷을 갈아입으면서 말했다.“상사가 만난 사람이 유부남이었대. 지금 그 유부남 가족이 찾아와서 못 나가게 막고 집안의 물건을 부수고 있대. 내가 그래서 상사를 데리고 경찰에 신고하러 가려고.”한성우는 바로 따라갔다.“왜 직접 신고 안 하고 이 늦은 시간에 널 불러?”“그 사람들이 상사 옷을 전부 찢었대. 지금 입을 옷이 없대. 아마 그래서 신고 못 한 거겠지. 경찰들이 오면 알몸인데 어떻게 해.”한성우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 나직하게 말했다.“그럼 나도 같이 가. 만약 아직 그 사람들이 안 갔으면 어떡해. 너 혼자 위험하잖아.”“괜찮아. 너 배고프잖아. 그러니까 넌 밥 먹고 있어. 내가 얼른 갔다가 올게.”말을 마친 그녀가 현관으로 다 신발을 신으려고 할 때 한성우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다시 집안으로 끌어당겼다.“네 손아귀 힘이 대단한 거 알아. 그 사람들 상대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하지만 남친인 나에게도 표현할 기회를 주면 안 돼? 안 그러면 나 너무 존재감 없는 사람인 것 같잖아.”차미주는 그의 몸을 훑어보곤 말했다.“방해된다면 난 널 신경 쓰지 않을 거야.”한성우는 혀를 찼다.“쯧, 정말?”차미주는 코웃음을 치곤 재촉했다.“그럼 얼른 옷 갈아입고 나와.”두 사람은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차미주 직장 상사의 집으로 향했다.난동을 피우던 사람들은 이미 가고 없었지만, 집안은 아수라장이었다.차미주는 옷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상사를 찾았다. 한성우는 휴대폰을 꺼내 현장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고 나중에 경찰이 오면 잃어버린 물건이 없나 확인해달라고 할 생각이었다.안방에선 여자의 울음소리와 위로하고 있는 차미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한성우는 현관에서 경찰에 신고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다. 조사가 거의 끝나자 두 사람은 직장 상사에게 인사를 한 후 나왔다.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차미주는 직장 상사가 만
한성우는 담담하게 말했다.“돈이 되지 않는 대본에 아무리 인맥을 동원했다고 해도 누구도 자선 사업을 하려 하진 않을 거야.”차미주는 그의 뜻을 다소 알아챈 듯했지만, 여전히 애매모호하여 직설적으로 물었다.“그냥 알아듣게 말해.”한성우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까 그 아파트도 말이야. 우리가 사는 클라우드보다 가격이 조금 낮을 뿐이야. 그런데 그 상사가 썼던 대본 중에 큰 인기를 끌었던 작품도 없었다며? 집안 형편도 그냥 일반인이던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그 아파트를 살 수 있었겠어?”순간 차미주는 뭔가 알아버린 듯했다.그 아파트는 절대 작지 않았다. 대충 봐도 100평은 훌쩍 넘은 것 같았고 한 평당 가격이 2000만 원은 넘을 것이었다. 그렇게 계산해 보면 몇십억은 족히 되는 아파트란 소리였다. 확실히 상사가 살 수 있는 아파트는 아니었다.“조강지처가 그렇게 많은 사람을 데리고 보안도 좋은 고급 아파트로 들어왔는데 보안 요원들이 왜 그냥 들여보내 줬을까? 혹시 다른 가능성은 생각 안 해봤어? 예시를 들면 그 아파트가 원래부터 그 부부의 명의로 되었다는 거 말이야. 심지어 그 작품 예약도 전부 유부남 남친이 인맥을 써서 가져다준 거라면?”차미주의 표정이 엄숙해졌다.“그러니까 네 말은, 유부남인 걸 알면서도 만났다는 거야?”한성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처음부터 알고 만났는지는 난 확신할 수 없어. 하지만 저렇게 비싼 아파트가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어? 그리고 또...”한성우는 뜸을 들이며 말했다.“네가 그 상사랑 안방에서 나올 때 내가 신고했다는 소리를 듣고 그 상사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어. 경찰에 신고할 마음이 없었던 것 같았어. 하지만 내가 있으니까 아마 아무 말도 못 한 거지.”게다가 경찰이 온 후 조사차 물어보던 질문에도 그 여자는 애매모호한 대답만 했다. 마치 재산과 신변 위협을 받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급하게 스스로 정당한 이유를 찾는 모습이 더욱 이상했다.차미주는 다시 곰곰이 그녀의 상사에 대
“뭐라고?”차미주는 그의 말을 똑똑히 듣지 못했다.“아무것도 아니야.”한성우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이런 때에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걸 밝힌다면 아마 큰일 날 것 같으니 그는 일단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하지만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다는 사실에 한성우는 마음이 불편했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입맛이 없어졌다.차미주도 상사의 일로 입맛이 없었다. 평소라면 둘이서 가뿐하게 해치웠을 생선구이는 가득 남았다.밥을 먹고 난 뒤 산책을 하고 돌아온 한성우는 간단한 샤워를 마친 뒤 바로 안방으로 들어왔다.차미주는 대본을 고쳐야 했기에 밤을 새울 생각이었다.한성우가 노곤노곤 잠에 빠지려고 할 때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과 은은한 바디로션 향기에 눈을 감은 채 몸을 틀어 습관적으로 그 사람을 품에 안았다.차미주의 몸이 순간 굳어버리더니 이내 다시 긴장을 풀었다.한성우는 그의 머리칼에 얼굴을 비비더니 낮게 깔린 목소리로 중얼중얼했다.“잠옷 바꿨어?”“응.”한성우는 미소를 짓더니 그녀의 귓가에 뽀뽀했다.“잠옷이 뭔가 전보다 부드-”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의 손에 닿는 부드럽고 물컹한 감촉에 한성우는 그대로 눈을 확 뜨게 되었다.침대 머리맡 등은 아직 끄지 않은 상태였다. 은은한 노란 불빛 아래 한성우는 차미주가 아주 얇은 잠옷을 입고 있다는 걸 똑똑히 보았다. 하지만 이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차미주가 잠옷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얇은 잠옷 덕에 그녀의 몸매 굴곡은 더 선명했고 보자마자 한성우는 어딘가 들끓는 기분이었다.항상 느긋한 모습이던 사람이 보기 드물게 당황하게 얼어붙은 모습을 보였다.그는 한참 지나서야 이성을 되찾고 이를 빠득 물면서 말했다.“오늘은 왜 이렇게 입은 거야?”그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끼던 차미주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내가 이렇게 입고 싶어서 입은 줄 알아? 네가 나한테 널 자극하라며. 근데 왜 그런 표정인 건데?”“...”한성우는 사실 그냥 해본 소리였다. 애초에 행동으로 옮길 생각은
“...지금 치료받고 있잖아. 나을 수도 있고. 안 그래?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마.”차미주는 여전히 울적한 얼굴이었다.“부정적인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잖아. 그날 밤엔 난 정말로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고.”그러면서 다소 의심하는 듯한 눈빛으로 한성우를 보았다.“너 혹시 전부터 그런 거 아니야? 그러다가 내가 부항을 떠준다고 하니까 나한테 뒤집어씌운 거지?”한성우는 어처구니가 없어 이를 빠득 갈았다.“난 정상이거든?”그리고 멈칫하더니 다시 말을 보탰다.“그전엔.”차미주는 미간을 찌푸렸다.“그럼 왜 난 아무런 느낌도 없었던 건데? 아무리 그대로 어딘가는 아픈 느낌이 있어야 할 거 아니야. 그날 내가 피도 흘렸다면서. 그런데 난 왜 아무것도 못 느꼈던 건데.”한성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이 문제에 대해선 그도 답답했다.왜냐하면, 그도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생일이었던 그날, 정말로 술을 많이 마셨던 터라 CCTV로 그저 자신과 차미주가 어깨동무를 한 채 비틀대며 방으로 들어간 것을 본 게 전부였다. 그리고 방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차미주에게 몰래몰래 뭔가를 보여주겠다고 한 것만 어렴풋이 기억났다. 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몰랐다. 이렇게까지 필름이 끊긴 적은 처음이었다.게다가 그날 차미주가 피를 흘리긴 했지만, 차미주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고 했다...한성우는 나직하게 말했다.“도둑아, 우리 혹시 그날 밤에 아무 일도 없었던 거 아닐까?”차미주의 눈썹이 꿈틀댔다.“그럼 그 피는 누구 피인데? 네 피야?”한성우는 침묵했다.그의 몸에는 당연히 상처가 없었고 차미주 몸에도 상처가 없었다. 하지만 그 피는 차미주 허벅지 가까운 근처에 있었다.한성우는 원래 병원에 가서 한번 확인해 보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그렇게 그는 고민하던 와중에 차미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네 잠자리 기술이 좋다고 하기엔 내가 피를 많이 흘렸고, 아니라고 하기엔 난 처음이었는
머리 위에서 질투 섞인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칫하던 한현진이 곧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라이브 본지 오래됐거든.”강한서가 콧방귀 뀌며 한현진 옆에 앉았다. “바빠서 볼 시간이 없었던 거겠지.”한현진이 피식 웃었다. “그런 거 아니거든? 네가 질투할까 봐 그런 거잖아. 내가 춤추는 것만 봐도 네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데, 내가 어떻게 보겠어?”한현진의 변명에 강한서가 코웃음 쳤다. “허리랑 골반만 놀리는 게 정상적인 춤이야?”한현진이 쯧 혀를 찼다. “너 그건 너무 편견이야. 몸매가 좋다고 해서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되지.”강한서는 여전히 한현진의 헛소리를 믿지 않으며 반문했다. “그럼 내가 다른 여자 춤추는 거 보면 어때?”한현진이 순간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인터넷이 얼마나 어지러운 곳인데, 넌 감당 못 할 거야.”내로남불의 정석을 보여주는 한현진을 보며 강한서는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뜨렸다. “내가 다른 여자 보는 건 싫고, 넌 다른 남자건 괜찮아?”“나 정말 안 봤어.”쪼잔하게 구는 남자친구를 보며 한현진이 휴대폰을 보여주며 말했다. “진작 언팔로우 했거든?”강한서는 빠르게 한현진이 보여주는 리스트를 훑었다. 그녀의 말대로 그 인플루언서의 아이디는 보이지 않았다. 강한서의 표정이 그제야 풀렸다. “그럼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었던 거야?”한현진이 다른 어플로 들어가 강한서에게 보여주었다. “여기 매출이 엄청나거든. 내가 전에 얘기했었잖아. 매달 남는 자투리만 몇백만 원어치야. 자투리를 잘 이용해 액세서리를 만들면 가격이 최소한 10배는 뛸 텐데, 너무 낭비잖아. 그래서 생각한 건데, 라이브 커머스로 판매하면 어떨까?”강한서가 멈칫했다. “스트레인지 이름으로 판매하려고?”“그럴 리가. 스트레인지는 명품 주얼리 브랜드잖아. 내가 스트레인지 이름으로 그런 상품을 판매할 리가 없잖아.”“그럼 라이브 커머스 하는 인플루언서와 협력할 생각이야?”“방금 몇 인플루언서와 연락해 봤어. 몸값이 너무 비싸서 그
신하리는 말하며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 “저 정신병 있는 거 다들 아시죠?”그 말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얼마 전, 신하리가 한 드라마 촬영 중 현장에서 갑자기 귀신에 쓰인 사람처럼 아무런 안정장비도 하지 않은 채 6미터가 넘는 곳에서 뛰어내려 뼈가 부러진 사건이 있었다. 다들 신하리에게 왜 뛰어내렸냐고 묻자 그녀는 아래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그러나 당시 상황을 증명해 줄 동영상은 없었고 그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듣고 지나보냈었지만 지금 신하리의 입으로 직접 그녀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말하니 그때의 사건을 떠올린 사람들은 순산 오싹함을 느껴야 했다. 이건 분명한 경고였다. 마치 난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라 너에게 정말 염산을 뿌려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으니 내 말을 장난으로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신하리의 등장으로 [아기 고양이]의 라이브 방송의 인기는 더 뜨거워졌다. 댓글에도 다양한 의견이 더 많아졌다. [사랑에 눈이 먼 연예인 1위! 보상은 산에서 산나물 캐기 18년!][신하리 미친 거 아녜요? 이렇게 대놓고 협박이라니.][면전에 협박하는데 아직도 신고하지 않는다고? 증거가 없는 거야, 아님 애초부터 한열을 모함하고 있었던 거야?][성추행을 한 사람도 경찰서에 신고했는데 당한 사람은 대체 뭐가 무서워서 신고하지 않는 거야.][지난번에 스스로 신고한 인간은 아직도 감옥에서 사회봉사 중이예요.][만약 지금 당장 신고한다면 전 아기 고구마 말을 믿을 거예요. 계속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리는 건 오히려 한열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작당 모의에 더 가까워 보여요.][지금 루머를 퍼뜨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 됐어요. 스크린샷 몇 장이면 바로 스토리를 짤 수 있으니까요.]여론이 점차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멀어지자 [아기 고구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예요? 아
신하리의 라이브 방송 연결 요청에 [아기 고구마]가 잠시 멍해졌다. 무의식적으로 옆을 바라보던 그녀가 곧 시선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은 그 미세한 행동을 포착하지 못했지만 한현진에겐 들키고 말았다. [아기 고구마]는 혼자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그녀의 옆에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모인 사람들과 진실 규명을 바라는 팬들이 미친 듯이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겁쟁이! 네가 그러고도 무슨 남자야! 사건이 터지면 뒤로 물러나 여자친구가 나서서 모든 걸 감당하게 하다니. 네 팬이었다는 게 너무 후회돼!][끼리끼리는 과학이라잖아요. 한열이 이런 쓰레기라면 신하리도 그리 좋은 인간은 아니지 않겠어요? 연결해요.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죠.][언니! 얼른 입도 벙긋 못하게 증거를 뿌려버려요. 저런 인간은 아이돌을 할 자격이 없어요.][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난 영원히 한열을 믿을 거야!][덕질에 도덕 같은 건 중요하지도 않나보네.]...[아기 고구마]는 사람들의 부추김에 신하리와 라이브 방송을 연결했다.신하리의 모습이 라이브 방송 화면에 나타나자 카메라는 신하리의 얼굴을 향해 바짝 다가갔다. 후드 차림에 화장도 하지 않은 신하리가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그쪽 대신 경찰에 신고했어요. 얼른 오세요.”카메라가 홱 회전하며 한주 용하구의 경찰서 대문을 비췄다. 그에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순간 멍해졌다. ‘신하리, 미친 거야? 어제 저녁에도 한열 대신 해명해주더니.’[아기 고구마]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 전 신고한다고 안 했어요.”신하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한열이 그쪽을 성추행했다면서 신고를 안 해요? 성모 마리아세요? 방송으로 울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보다 신고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경찰은 그쪽을 도와줄 수 있는데도 싫다고요?”네티즌들도 신하리의 말을 따라 댓글을 남겼다. [맞아요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
한현진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예능부 기자 채용 문턱이 이 정도로 낮아진 거야? 두 눈이 멀어도 기자로 활동할 수 있나봐?”진윤: ...‘우리 여신님 사석에서는 이렇게 독설을 날리는 사람이었어?’휴대폰 너머에서 한참을 듣고 있던 차미주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사진 너와 한열 아니야?”한현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건 나랑 오빠야.”“하지만 이 사진들은 정말 한열과 비슷해 보여. 게다가 네 오빠가 운전한 거 한열 차 아니야?”한현진은 그날 송민준이 운전한 차를 눈 여겨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정말 한열의 차를 운전하고 온 거라면 파파라치가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다시 페이스북을 다운로드 받고 인기 검색어를 확인한 한현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연예 부문의 인기 검색어의 TOP 5는 전부 한열의 바람에 관한 이슈가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꽃뱀, 이열 커플 사이에 끼어들다], [이열 커플, 결별 위기 스크린 밖에서도 삼각관계], [한열 살아있네], [찐사랑을 못 숨겨] 등이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검색어들이 가득 했다. 한현진이 페이스북에 로그인하자 수백 개의 DM과 십만 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졌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신하리와 한열 두 사람의 팬들의 남긴 수많은 욕이거나 일반 네티즌의 호기심에 가득한 댓글일 것이 분명했다. 인터넷이 얼마나 필터 없이 악랄한 글로 난무한 곳인지 잘 알고 있는 한현진은 아예 댓글을 확인하지도 않고 뉴스피드로 들어갔다. 한열과 한현진의 기사는 두 시간에 터졌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각 마케팅 계정에서는 이미 타임 라인까지 정리한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현진은 관련 피드를 대충 훑었다. 마케팅 계정의 분석에 의하면 한열과 신하리는 [살의] 촬영 이전에 이미 사귀기 시작했고 송민영이 하차된 후 한열이 자신의 여자친구인 신하리를 여주인공으로 추천했으며 영화 홍보 현장에서의 친밀한 스킨십 사진이 폭로되어 어쩔 수 없이 공개 연애를 택한 것이었다. 그 계정
한현진은 반나절이 걸려서야 일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지난번 홍혜림 씨 사건이 있었을 때 왜 진윤 씨가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키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거잖아.’순간 한현진은 뻘쭘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금 전화를 받고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도 벙긋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윤의 말처럼 이건 정말 비열한 짓이었다. 유치한 강한서가 벌일 만한 일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강한서 본인 역시 이번 일은 너무 얍삽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쩌다 아이를 달래주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탓이라고 해. [정상에서]에서 지금 자체 테스트 중인 스킨 한 세트 줄게. 어때?”진윤이 작게 울먹이며 말했다. “스킨 세 세트?“강한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딜을 하는 걸 보니 그리 큰 상처를 받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세 세트 전부 줄게.”진윤이 곧바로 울음을 멈췄다. 절판되어 더는 살 수 없는 게임 스킨과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신 중 아무리 바보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요. 제가 오해한 거라고 하죠.”말하며 한현진을 쳐다보던 진윤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현진 누나,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셨어요. 남자 때문에 손에 넣었던 트로피도 놓칠 수가 있어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결혼이 커리어 영향주지 않아. 이간질 하려고 하지 마.”“형님은 남자니까 당연히 영향을 안 받으시겠죠.”강한서에게 농락을 당한데다 하루아침에 구닥다리에게 여신을 뺐긴 진윤은 누구보다 빨리 흑화 했다.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하잖아요. 어떤 유명한 감독이 임산부를 캐스팅하려고 하겠어요. 제일 예쁠 나이를 남편과 아이에게 바치면 나중에 아이가 클 때쯤엔 본인의 레전드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요. 제가 다 아쉬워서 그래요. 너무 불공평해요.”비록 진윤은 그저 이간질을 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은 현실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커리어엔 고난과 역경이
한현진: ?강한서가 들고 있던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것은 차미주의 목소리였다. “현진아! 너 내연녀가 되어버렸어. 게다가 그 상대가 네 사촌 동생이래.”강한서: ?강한서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그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전여친, 현여친이 뭐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게다가 이 목소리, 왜 이렇게 귀에 익은 거지?’“저... 저기 혹시 전화 잘못 하신 거 아녜요?”한현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곳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 현진 누나?”한현진이 멍해졌다. ‘날 알아?’“네. 제가 한현진이예요. 누구세요?”상대방은 말이 없었다. 그에게서는 그저 조금 흥분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강한서가 한현진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무슨 일이야?”진윤이 이를 악물었다. “방금 전화 받은 사람 누구예요!”강한서가 말했다. “내 와이프.”“그럴 리가 없어!”진윤이 바득 이를 갈았다. “이 사생팬 같은 아저씨가! 혹시 일부러 날 속이려고 옆에 성대모사하는 분이라고 모셔놓은 거 아녜요?”강한서가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너처럼 유치한 인간인 줄 알아? 그리고 현진이는 아무도 대체할 수 없어.”진윤은 강한서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거짓말 좀 그만 해요. 현진 누나는 지금 그 티베탄 마스티프와 데이트하는 중이라고요. 만약 누나가 정말 형님 와이프라면 형님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누나가 딴 남자와 데이트하는 걸 지켜볼 수 있어요?”더 이상 진윤을 대꾸하기 귀찮았던 강한서가 그에게 영상통화를 보냈다. 몇뿐 후, 휴대폰 화면으로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여신과 딱 붙어 앉아있는 전남편 형님을 확인한 진윤은 순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한현진은 휴대폰에 비춰진 진윤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진윤 씨가 강한서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 거야?’진윤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어댔다. “거짓말쟁이! 뻔뻔한 인간! 전
유난히 예쁘게 잘 나온 사진을 보며 한 현지는 신난 얼굴로 고개를 돌려 강한서에게 보여 주었다. 하지만 멍청하게 나온 것 같다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강한서는 굳이 자신이 찍겠다면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한현진이 눈을 실룩거렸다. “네가 사진을 찍겠다고? 168cm인 나를 138cm로 만들어 버리는 네가? 강 대표님 본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강한서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 실력이 그렇게 별로야?”한현진이 말했다. “쌀을 뿌린 휴대폰을 닭이 부리로 쪼아도 내가 찍은 것 보단 낫다고 할 수 있어.”왠지 수치를 당한 것 같은 기분에 강한서가 이를 악 물면 말했다. “그럼 난 왜 우리가 데이트했을 때 내가 찍어준 사진을 밤새도록 보고 있었던 거야?”강한서가 괜히 그 얘기를 꺼낸 탓에 잊혀 가던 한현진의 기억이 문득 돌아왔다.“사진을 보면서 넌 그저 사진을 찍을 줄 모르는 것뿐이라고 날 설득 하지 않는다면 호텔 앞에서 바로 너와 싸우 버릴 것 같았거든. 내 외모에, 감독님께서도 나에게 각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 하셨는데 넌 대체 어떻게 날 사실 눈으로 찍을 수 있었던 거야?”강한서: ...“사시눈... 처럼 나왔어?”한현진이 일을 악물었다. “내가 뛰어다니는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하니까 유체 이탈한 것처럼 찍어줬잖아! 내가 피드를 업로드할 때 실수로 그 사진까지 넣었더니 애들이 나한테 대체 어디서 이런 심령사진을 찍었냐고 물었었어.”“...”활활 타오르던 강한서의 분노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어쩌다 가끔... 몇 십 장뿐이었잖아.”한현진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하.”뭔가를 말하려던 강한서가 고개를 숙이자 무릎 정도까지 오는 어린 아이가 옆에 쭈그려 앉아 불쌍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아저씨, 아직 더 놀 거예요? 저희 잠깐 놀게 해주시면 안 돼요?”강한서가 고개를 돌리자 뒤에는 어린 라이 대여섯 명이 줄을 서 있었다. 한현진: ...창피함에 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