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진이 송병천, 그리고 송민준과 함께 무대에서 내려와 자리에 앉자, 무대의 불빛이 어두워졌다. 곧이어 관현악기 소리가 천천히 울려 퍼졌다. 갑자기 무대의 조명이 밝게 빛나며 배경도 고전풍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노랫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줄줄이 무대로 올랐다. 노래가 점점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며 판소리의 시작을 알렸다. 익숙한 창법에 정인월이 고개를 들었다. 무대에 오른 사람을 확인하더니 정인월이 잔뜩 흥분해 손자를 잡아끌었다. “은영! 은영이 어떻게 이곳에! 너 이 할미한테 은영 씨가 온다는 말 없었잖니.”강한서는 팔을 잡고 있는 정인월의 손을 내려놓으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나이 드실 만큼 드신 분이 덕질하는 애들처럼 흥분하세요.”정인월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놈 자식이, 누구더러 나이 먹을 만큼 먹었다는 거냐?”만약 집이었으면 정인월은 강한서의 뺨을 한 대 쳤을 것이다. 정인월은 진짜 가족을 찾은 유현진을 보려고 피로연에 참석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예상치 못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국악가의 무대를 보게 될 줄이야. 정인월은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보다도 행복했다. 정인월이 강한서를 나무랐다. “네가 일찍 알려줬더라면 오늘 더 꾸미고 나왔을 텐데.”강한서가 말했다. “은영 선생님께서는 아버지보다도 어리세요. 그러니 할머니 같은 늙은 팬이 뭘 입었는지는 관심도 없으실 거예요.”늙은 팬이라는 말에 정인월은 더 이상 참지 않고 자리에 앉아 강한서를 차버렸다. 그러자 강한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도 얘기 못 해?’은영이 무대에 오르는 건 강한서도 모르는 일이었다. 잠시 생각해 보니 아마도 양시은이 모신 것이라 생각되었다. 무대를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도 역시나 기쁨과 충격에 사로잡혀 있었다. 은영은 이 바닥에서 인기가 꽤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은영이 더 이상 공연을 하지 않을 거라고 공식 발표했으니 그의 판소리를 듣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 되었다. 은영을 모시는 건 돈의 문
그 어르신은 자신을 훑어보는 시선을 빤히 쳐다보며 한 걸음 한 걸음 유현진이 있는 테이블로 걸어갔다. 유현진 앞에 선 어르신이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유현진 씨. 저는 오늘 피로연의 메인 셰프인 장우라고 합니다. 오늘 현진 씨와 가족분들을 위해 피로연을 준비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음식이 현진 씨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어요.”유현진이 얼른 일어나 장우와 악수했다. “안녕하세요. 음식은 정말 최고였어요. 수고 많으셨어요.”정우가 미소 지었다. “현진 씨 피로연을 준비할 수 있어서 제가 영광이죠.”그러더니 정우가 손을 들자 제자들이 곧 밀차에서 음식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장우가 소개했다. “이건 제가 현진 씨를 위해 준비한 음식이에요. 음식 이름은 고진감래에요. 앞으로 현진 씨 삶이 이 음식의 이름처럼 쓴 고생 뒤엔 달콤한 행복만 가득하길 바라요.”“말도 안 돼. 장우? 장씨 가문의 후계자이자 연속 5년 전국 요리 대회 대상 수상자인 그 장우? 장우를 메인 셰프로 모셨다고?”“누구? 누구라고?”“전에 기사에 났던 사람 말이야. 대통령님께서 X국 수상을 모시고 갔던 그 맛집 대표. 당시 장우 님이 직접 요리를 했는데 그 수상이 귀국하고도 계속 음식이 생각나 한 번은 일부러 장우 님을 모셔갔었잖아.”“어쩐지 오늘 음식이 너무 맛있더라니. 역시 셰프 솜씨였어.”“그냥 셰프가 아니라 전국 요리 대회 대상 수상자. 대통령마저도 그리워하는 손맛.”“은영 선생님에 요리 대회 대상이라니. 대체 누가 송씨 가문에서 유현진의 지위가 낮아서 이런 작은 호텔에서 피로연을 한다고 한 거야? 장우 셰프를 모시는 돈만 해도 신라호텔에서 3날이나 묵을 수 있는 가격이라고.”양시은은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역시 어젯밤 새벽까지 동분서주하고 아침 일찍 연락을 돌린 보람이 있었다. 피로연을 그랜드호텔로 정한 터라 장소는 바꿀 수 없었다. 그러니 작은 장소에서 호화로운 피로연을 준비하려면 당연히 다른 곳에 더 투자
이도휘는 한성우에게 밉보일 위험을 감수하고 한성우와의 약속을 펑크내고 송가람과 계약을 맺었다. 그는 이 기회로 송가람을 업고 송씨 가문과 한배에 올라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자신이 거절한 그 사람이 사실은 송씨 가문 친딸이라니.이도휘와 한성우가 알고 지낸 지 이젠 6, 7년이 되어갔다. 그가 처음 한성우를 알게 되었을 때,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 그의 인기는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바이브 엔터도 이제 막 업계에서 두각을 드러낼 때였다. 바이브 엔터의 연예인 스타일링을 몇 번 맡으며 한성우는 이도휘가 실력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스케줄이 잡히기만 하면 이도휘에게 연락했다. 당시 인기가 없었던 그는 일이 잡히기만 하면 얼마를 주든 무조건 달려갔다. 나중에 몇몇 연예인의 스타일링이 대박 나면서 이도휘도 점차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연예인의 스타일리스트는 이름을 알리기 전과 후의 수입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유명해진 이도휘는 탑 클라스의 연예인이 먼저 그에게 스타일링을 부탁했고 몸값은 원래보다 몇 배 뛰었다. 몸값은 점점 올라가고 사람들은 이도휘를 실장님, 실장님 부르며 극진하게 대했다. 몸값도 이젠 부르는 게 값이 되었다. 바이브 엔터의 연예인을 제외하고 이도휘는 누구에게 메이크업해 주든 돈을 원하는 만큼 쓸어모았다. 이도휘의 몸값이 껑충 뛴 후에도 한성우가 그에게 지급한 계약금은 다른 회사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특히 매번 계약금은커녕 구두계약 하기 일쑤였다. 그는 연예계에서의 한성우의 입지를 생각해 감히 밉보일 수는 없었다. 그러자 한성우는 이도휘를 자신의 직원처럼 부려 먹었다. 진작 바이브 엔터의 스타일링은 맡고 싶지 않았던 이도휘는 송가람이 그에게 스타일링을 부탁했을 때 그는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한주 송씨 가문의 딸이자 브랜드 뉴 엔터 대표의 동생인 송가람의 눈에만 든다면, 송씨 가문이라는 동아줄을 꽉 움켜줄 수 있었고, 그렇게 되면 그는 한성우에게 밉보이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앞으로 그는 더 높은 사람들과
자신이 천금 같은 기회를 놓쳤다는 것을 안 이도휘는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는 햐얗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달싹여 쉰 목소리를 내뱉었다. “한 대표님... 대표님께서 현진 씨 스타일링을 맡기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셔서요.”유현진이 여전히 미소를 유지했다. “누구든, 최소한 이미 약속한 일은 지켜야 하는 거 아니에요? 혹시 한 대표가 말한 계약금이 언니가 부른 것보다 적어서 변덕을 부리신 건가요? 실장님은 한 대표와 친분이 있으시니, 실장님이 얘기하시면, 돈은 절대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텐데요.”몸이 얼어붙은 이도휘는 창백해진 얼굴로 한참이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송가람이 입술을 짓이겼다. “이번 일은 무슨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요. 한 대표님이 계약금을 지불하지 않았으니 실장님도 그저 하는 말인 줄 알았을 거예요.”유현진의 시선이 송가람에게 향했고 여유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대표가 계약금을 지불하지 않은 사실도 알고 있네요...”그 말은 마치 번개처럼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그러네, 송가람이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아는 거야?”“대박, 설마 일부러 유현진 씨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가로챈 거야?”“제가 오늘 아침에 들은 소식이 있는데, 다들 들었어요?”“뭔데요?”“채팅방에서 떠도는 소문인데, 어제 새벽에 한성우 씨가 여기저기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알아보고 다녔대요. 이도휘 실장 정도면 미리 예약해야 할 텐데, 갑자기 변덕을 부렸으니 당연히 난리도 아니었겠죠.”“예약해야 하는 거라면, 이도휘가 못 갈 거라는 걸 진작 알고 있었으면서 미리 한 대표님께 언질도 없이 갑자기 통보했다는 거예요? 그건 일부러 엿먹이려는 거잖아요.”“게다가 이도휘가 하필이면 송가람 씨 스타일링을 맡았으니 우연치곤 의심스럽긴 하네요.”“송씨 가문에서 친딸을 공개하는 자리인데, 양딸인 주제에 저렇게 화려하게 입고 메이크업 아티스트까지 가로채다니, 고의가 아니라고 하면 누가 믿기나 하겠어요?”...주변의 수군거리는 말을 듣는 송가람의 얼굴이 창백해졌
송가람의 얼굴을 벌겋게 물들었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 탓에 이마에는 핏줄이 불뚝 튀어 올랐다. 많은 사람은 이런 상황이 처음인지라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송가람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유현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앞으로 다가가 상태를 확인하려는데, 언제 다가온 것인지 강한서가 유현진 곁으로 다가오며 그녀의 손목을 당겼다. “너무 가까이 가지 마.”강한서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러자 유현진은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큰 소란에 곧 현장은 떠들썩해졌고 송민준은 빠르게 현장의 사람들을 분산시켰다. 송가람의 모습을 본 서해금도 눈시울을 붉히며 얼른 딸은 품에 안고 당장 약을 가져오라고 했다. 약을 사용했지만 증상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서해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송병천은 굳은 얼굴로 서해금을 위로하며 송민준에게 얼른 차를 대기시켜 병원으로 데려가라고 했다. 주변의 수군거림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송가람 씨 방금까지 유현진 씨랑 얘기하고 있었잖아? 왜 갑자기 발병한 거야?”“뭔가 송가람 씨를 자극하는 말을 한 거 아냐?”“송가람 씨가 예약한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유현진과의 약속을 펑크내고 송가람 씨를 선택한 것 같던데. 유현진 씨는 송가람 씨가 일부러 그런 거라고 의심하면서 말다툼이 있었던 것 같아.”“말다툼이라니, 내가 옆에서 똑똑히 봤어. 몇 마디 할 새도 없이 송가람이 천식 증상을 보였어.”“그것도 유현진과 연관이 있겠네.”...유현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만약 강한서가 그녀를 잡지 않아 송가람의 상태를 확인했더라면, 그녀는 아마 새로운 죄까지 뒤집어썼을 것이다. 하지만 유현진은 아마 모를 것이다. 사실 강한서도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단지 송가람이 발병한 모습이 조금 무서워 혹시나 유현진이 다칠까 봐 걱정되었던 것뿐이었다. 차미주는 분노로 이를 악물고 한성우의 귓가에 속삭이며 욕설을 내뱉었다. “자기가 흥분해서 발병한 거잖아. 본인 감정을 본인이 주체하지 못한 건데
한승은 한열이 가지 않자 엄마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 “아빠, 저도 누나랑 더 있고 싶어요.”한승은 평소에는 말을 잘 듣고 자기 의견을 잘 말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니 한승이 유현진과 있고 싶다고 얘기하자 한준웅은 바로 동의했다. 그러더니 곧 한열에게 말했다. “잊지 말고 승이 데리고 와.”한열은 썩 내키지 않아 옆에 있는 동생을 힐끔 쳐다보더니 어쩔 수 없이 알겠다며 대답했다. 강단해 가족은 조용히 피로연에 참석했다가 또 조용히 자리를 비웠다. 유현진이 송씨 가문이 친딸이라는 것은 너무 충격적인 사실이라 그들은 지금쯤 아마 강한서와 유현진이 재혼할까 봐 걱정할 것이 분명했다. 송씨 가문의 도움은 강한서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같았다. 그러니 그들이 한성을 차지하는 건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정인월과 강민서는 강단해네 가족과 함께 나왔다. 손님들이 하나둘 자리를 비우고 연회장엔 사람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계속 구석에 있던 주강운이 드디어 몸을 일으켰다. 주강운의 어머니는 유현진에게 다가가는 아들을 따라나섰다. 하이힐을 신고 하루 종일 서 있은 유현진은 발이 너무 아파 강한서에게 투덜거리고 있었다. “하이힐은 정말 벌칙이라니까. 예쁜 것 외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기며 말했다. “하이힐과 나에 대한 평가가 똑같네.”멈칫하던 유현진이 작게 웃으며 속삭였다. “그건 예전이잖아. 그땐 네가 너무 미워서 나에게 넌 잘생긴 거 빼고는 아무 쓸모도 없었어.”강한서는 유현진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래서 지금 네 마음속에 나에 대한 평가는 좀 나아졌어?”“당연하지. 만약 네가 계속 예전 그대로라면 내가 왜 너랑 화해했겠어?”강한서는 순간 궁금해졌다. “그럼 지금 너한테 난 어떤 사람이야?”유현진이 그의 귓가로 다가가 속삭였다. “잘생기고 그쪽으론 쓸모가 많지.”“...”유현진이 눈을 깜박였다. “평가가 정확한 것 같아?”강한서의 눈빛이 그윽해지
유현진이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주강운의 어머니가 옅은 카키색의 치마를 입고 선물 박스를 든 채 서 있었다. 그녀는 화려한 액세서리를 하는 신미정이나 주시윤과는 달리 수수하지만 우아한 코디를 즐겨 했다. 조금 통통한 몸매였지만 기품만은 그대로였다. 주강운의 어머니에게 대한 유현진의 기억은 여전히 6개월 전 주얼리 전시회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 주강운의 어머니는 하얀 피부에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었다. 하지만 오늘 주강운의 어머니를 다시 마주하니 어쩐지 핼쑥해진 것 같아 6개월 전의 혈기 왕성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유현진을 부른 주강운의 어머니는 비록 미소 짓고 있었지만 근심 걱정이 가득 담긴 미간은 여전히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유현진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사모님.”주강운은 티가 나지 않게 미간을 찌푸리고 입술을 짓이겼다. “왜 따라오셨어요. 전 인사만 하고 가려고요.”주강운의 어머니가 말했다. “나도 현진 씨랑 인사나 좀 나누려고.”미간을 찌푸린 주강운은 입술을 앙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강운의 어머니는 유현진을 쳐다보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현진 씨. 전에 강운이가 칼에 찍혔을 때 도움을 주셔서 제가 안 그래도 찾아뵙고 직접 인사를 전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강운이가 현진 씨가 불편해할 거라고 자기가 직접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직접 인사를 전하지 않으면 계속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서 이렇게 찾아왔어요.”유현진이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했다. “사모님, 마음 쓰시지 마세요. 강운 씨는 제 친구이기도 해요. 친구 사이에 그 정도 도움은 당연한 거죠. 게다가 그날 먼저 강운 씨를 위해 나선 건 제가 아니라 제 친구였어요. 그리고 강운 씨도 이미 선물도 줬었고요. 전에 소송 때도 제가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이런 일로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돼요.”주강운의 어머니가 말했다. “저에겐 강운이 하나뿐이라서요. 현진 씨가 강운이를 구한 건 절 구한 거나 마찬가지예
주강운의 어머니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다시 삼키면서 아들과 간다는 말을 남기곤 자리를 떠나버렸다.그녀가 가자 유현진은 그제야 강한서에게 말했다.“강운 씨 어머님은 이상한 분이신 것 같아. 고마우면 고마운 거지 막내아들 물건을 나한테 주는 건 무슨 의미야? 설마 아주 오래전 뭐 은혜를 보답하는 증표 같은 거야? 이거 들고 가면 뭐든 들어준다, 그런 건가?”“...”강한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처음부터 주강운의 어머니가 하는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나니 무언가 알 것 같기도 했다.주강운의 어머니는 아마도 주강운이 유현진을 향한 마음이 다른 것을 눈치채고 주강운과 떨어지라는 의미로 물건을 준 것이다.유현진은 딸처럼 여기든, 아니면 좋은 뜻으로 물건을 준 것이든 그녀의 목적은 아주 분명했다. 바로 주강운과 유현진을 남매처럼 여겨 두 사람 사이의 가능성을 없애버린 것이다.유현진은 강한서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묻잖아. 무슨 생각하는 거야?”정신이 든 강한서가 담담하게 답했다.“내가 강운이 어머님 뜻을 어떻게 알겠어. 뭐 어쩌면 네가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주신 거겠지.”그는 주강운 대신 주강운의 마음을 유현진에게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유현진은 그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입도 참 번지르르하네!'주강운의 안색은 돌아오는 길 내내 어두웠다. 차에서 내린 후에야 그는 입을 열었다.“제 감정은 제가 알아서 잘 억제하고 있어요. 어머니께선 나서실 필요 없어요.”주강운의 어머니는 입술을 틀어 물다가 한참 후에야 대꾸했다.“난 보인단다. 현진이는 한서한테 마음이 있어.”주강운은 입꼬리를 올리며 빈정댔다.“저라고 모를 줄 알았어요?”“그럼 왜 포기하지 않은 건데!”주강운의 어머니는 다소 흥분하게 되었다.그녀가 며칠 전 아들의 서재를 청소해 주다가 하얀 백지에 전부 유현진의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주강운은 눈을 지그시 감더니 입술을 뗐다.“그냥 나 혼자 좋아하고 있으면 안 돼요
신하리는 말하며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 “저 정신병 있는 거 다들 아시죠?”그 말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얼마 전, 신하리가 한 드라마 촬영 중 현장에서 갑자기 귀신에 쓰인 사람처럼 아무런 안정장비도 하지 않은 채 6미터가 넘는 곳에서 뛰어내려 뼈가 부러진 사건이 있었다. 다들 신하리에게 왜 뛰어내렸냐고 묻자 그녀는 아래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그러나 당시 상황을 증명해 줄 동영상은 없었고 그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듣고 지나보냈었지만 지금 신하리의 입으로 직접 그녀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말하니 그때의 사건을 떠올린 사람들은 순산 오싹함을 느껴야 했다. 이건 분명한 경고였다. 마치 난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라 너에게 정말 염산을 뿌려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으니 내 말을 장난으로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신하리의 등장으로 [아기 고양이]의 라이브 방송의 인기는 더 뜨거워졌다. 댓글에도 다양한 의견이 더 많아졌다. [사랑에 눈이 먼 연예인 1위! 보상은 산에서 산나물 캐기 18년!][신하리 미친 거 아녜요? 이렇게 대놓고 협박이라니.][면전에 협박하는데 아직도 신고하지 않는다고? 증거가 없는 거야, 아님 애초부터 한열을 모함하고 있었던 거야?][성추행을 한 사람도 경찰서에 신고했는데 당한 사람은 대체 뭐가 무서워서 신고하지 않는 거야.][지난번에 스스로 신고한 인간은 아직도 감옥에서 사회봉사 중이예요.][만약 지금 당장 신고한다면 전 아기 고구마 말을 믿을 거예요. 계속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리는 건 오히려 한열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작당 모의에 더 가까워 보여요.][지금 루머를 퍼뜨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 됐어요. 스크린샷 몇 장이면 바로 스토리를 짤 수 있으니까요.]여론이 점차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멀어지자 [아기 고구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예요? 아
신하리의 라이브 방송 연결 요청에 [아기 고구마]가 잠시 멍해졌다. 무의식적으로 옆을 바라보던 그녀가 곧 시선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은 그 미세한 행동을 포착하지 못했지만 한현진에겐 들키고 말았다. [아기 고구마]는 혼자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그녀의 옆에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모인 사람들과 진실 규명을 바라는 팬들이 미친 듯이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겁쟁이! 네가 그러고도 무슨 남자야! 사건이 터지면 뒤로 물러나 여자친구가 나서서 모든 걸 감당하게 하다니. 네 팬이었다는 게 너무 후회돼!][끼리끼리는 과학이라잖아요. 한열이 이런 쓰레기라면 신하리도 그리 좋은 인간은 아니지 않겠어요? 연결해요.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죠.][언니! 얼른 입도 벙긋 못하게 증거를 뿌려버려요. 저런 인간은 아이돌을 할 자격이 없어요.][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난 영원히 한열을 믿을 거야!][덕질에 도덕 같은 건 중요하지도 않나보네.]...[아기 고구마]는 사람들의 부추김에 신하리와 라이브 방송을 연결했다.신하리의 모습이 라이브 방송 화면에 나타나자 카메라는 신하리의 얼굴을 향해 바짝 다가갔다. 후드 차림에 화장도 하지 않은 신하리가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그쪽 대신 경찰에 신고했어요. 얼른 오세요.”카메라가 홱 회전하며 한주 용하구의 경찰서 대문을 비췄다. 그에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순간 멍해졌다. ‘신하리, 미친 거야? 어제 저녁에도 한열 대신 해명해주더니.’[아기 고구마]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 전 신고한다고 안 했어요.”신하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한열이 그쪽을 성추행했다면서 신고를 안 해요? 성모 마리아세요? 방송으로 울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보다 신고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경찰은 그쪽을 도와줄 수 있는데도 싫다고요?”네티즌들도 신하리의 말을 따라 댓글을 남겼다. [맞아요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
한현진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예능부 기자 채용 문턱이 이 정도로 낮아진 거야? 두 눈이 멀어도 기자로 활동할 수 있나봐?”진윤: ...‘우리 여신님 사석에서는 이렇게 독설을 날리는 사람이었어?’휴대폰 너머에서 한참을 듣고 있던 차미주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사진 너와 한열 아니야?”한현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건 나랑 오빠야.”“하지만 이 사진들은 정말 한열과 비슷해 보여. 게다가 네 오빠가 운전한 거 한열 차 아니야?”한현진은 그날 송민준이 운전한 차를 눈 여겨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정말 한열의 차를 운전하고 온 거라면 파파라치가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다시 페이스북을 다운로드 받고 인기 검색어를 확인한 한현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연예 부문의 인기 검색어의 TOP 5는 전부 한열의 바람에 관한 이슈가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꽃뱀, 이열 커플 사이에 끼어들다], [이열 커플, 결별 위기 스크린 밖에서도 삼각관계], [한열 살아있네], [찐사랑을 못 숨겨] 등이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검색어들이 가득 했다. 한현진이 페이스북에 로그인하자 수백 개의 DM과 십만 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졌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신하리와 한열 두 사람의 팬들의 남긴 수많은 욕이거나 일반 네티즌의 호기심에 가득한 댓글일 것이 분명했다. 인터넷이 얼마나 필터 없이 악랄한 글로 난무한 곳인지 잘 알고 있는 한현진은 아예 댓글을 확인하지도 않고 뉴스피드로 들어갔다. 한열과 한현진의 기사는 두 시간에 터졌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각 마케팅 계정에서는 이미 타임 라인까지 정리한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현진은 관련 피드를 대충 훑었다. 마케팅 계정의 분석에 의하면 한열과 신하리는 [살의] 촬영 이전에 이미 사귀기 시작했고 송민영이 하차된 후 한열이 자신의 여자친구인 신하리를 여주인공으로 추천했으며 영화 홍보 현장에서의 친밀한 스킨십 사진이 폭로되어 어쩔 수 없이 공개 연애를 택한 것이었다. 그 계정
한현진은 반나절이 걸려서야 일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지난번 홍혜림 씨 사건이 있었을 때 왜 진윤 씨가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키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거잖아.’순간 한현진은 뻘쭘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금 전화를 받고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도 벙긋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윤의 말처럼 이건 정말 비열한 짓이었다. 유치한 강한서가 벌일 만한 일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강한서 본인 역시 이번 일은 너무 얍삽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쩌다 아이를 달래주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탓이라고 해. [정상에서]에서 지금 자체 테스트 중인 스킨 한 세트 줄게. 어때?”진윤이 작게 울먹이며 말했다. “스킨 세 세트?“강한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딜을 하는 걸 보니 그리 큰 상처를 받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세 세트 전부 줄게.”진윤이 곧바로 울음을 멈췄다. 절판되어 더는 살 수 없는 게임 스킨과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신 중 아무리 바보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요. 제가 오해한 거라고 하죠.”말하며 한현진을 쳐다보던 진윤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현진 누나,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셨어요. 남자 때문에 손에 넣었던 트로피도 놓칠 수가 있어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결혼이 커리어 영향주지 않아. 이간질 하려고 하지 마.”“형님은 남자니까 당연히 영향을 안 받으시겠죠.”강한서에게 농락을 당한데다 하루아침에 구닥다리에게 여신을 뺐긴 진윤은 누구보다 빨리 흑화 했다.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하잖아요. 어떤 유명한 감독이 임산부를 캐스팅하려고 하겠어요. 제일 예쁠 나이를 남편과 아이에게 바치면 나중에 아이가 클 때쯤엔 본인의 레전드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요. 제가 다 아쉬워서 그래요. 너무 불공평해요.”비록 진윤은 그저 이간질을 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은 현실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커리어엔 고난과 역경이
한현진: ?강한서가 들고 있던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것은 차미주의 목소리였다. “현진아! 너 내연녀가 되어버렸어. 게다가 그 상대가 네 사촌 동생이래.”강한서: ?강한서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그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전여친, 현여친이 뭐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게다가 이 목소리, 왜 이렇게 귀에 익은 거지?’“저... 저기 혹시 전화 잘못 하신 거 아녜요?”한현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곳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 현진 누나?”한현진이 멍해졌다. ‘날 알아?’“네. 제가 한현진이예요. 누구세요?”상대방은 말이 없었다. 그에게서는 그저 조금 흥분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강한서가 한현진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무슨 일이야?”진윤이 이를 악물었다. “방금 전화 받은 사람 누구예요!”강한서가 말했다. “내 와이프.”“그럴 리가 없어!”진윤이 바득 이를 갈았다. “이 사생팬 같은 아저씨가! 혹시 일부러 날 속이려고 옆에 성대모사하는 분이라고 모셔놓은 거 아녜요?”강한서가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너처럼 유치한 인간인 줄 알아? 그리고 현진이는 아무도 대체할 수 없어.”진윤은 강한서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거짓말 좀 그만 해요. 현진 누나는 지금 그 티베탄 마스티프와 데이트하는 중이라고요. 만약 누나가 정말 형님 와이프라면 형님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누나가 딴 남자와 데이트하는 걸 지켜볼 수 있어요?”더 이상 진윤을 대꾸하기 귀찮았던 강한서가 그에게 영상통화를 보냈다. 몇뿐 후, 휴대폰 화면으로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여신과 딱 붙어 앉아있는 전남편 형님을 확인한 진윤은 순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한현진은 휴대폰에 비춰진 진윤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진윤 씨가 강한서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 거야?’진윤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어댔다. “거짓말쟁이! 뻔뻔한 인간! 전
유난히 예쁘게 잘 나온 사진을 보며 한 현지는 신난 얼굴로 고개를 돌려 강한서에게 보여 주었다. 하지만 멍청하게 나온 것 같다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강한서는 굳이 자신이 찍겠다면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한현진이 눈을 실룩거렸다. “네가 사진을 찍겠다고? 168cm인 나를 138cm로 만들어 버리는 네가? 강 대표님 본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강한서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 실력이 그렇게 별로야?”한현진이 말했다. “쌀을 뿌린 휴대폰을 닭이 부리로 쪼아도 내가 찍은 것 보단 낫다고 할 수 있어.”왠지 수치를 당한 것 같은 기분에 강한서가 이를 악 물면 말했다. “그럼 난 왜 우리가 데이트했을 때 내가 찍어준 사진을 밤새도록 보고 있었던 거야?”강한서가 괜히 그 얘기를 꺼낸 탓에 잊혀 가던 한현진의 기억이 문득 돌아왔다.“사진을 보면서 넌 그저 사진을 찍을 줄 모르는 것뿐이라고 날 설득 하지 않는다면 호텔 앞에서 바로 너와 싸우 버릴 것 같았거든. 내 외모에, 감독님께서도 나에게 각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 하셨는데 넌 대체 어떻게 날 사실 눈으로 찍을 수 있었던 거야?”강한서: ...“사시눈... 처럼 나왔어?”한현진이 일을 악물었다. “내가 뛰어다니는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하니까 유체 이탈한 것처럼 찍어줬잖아! 내가 피드를 업로드할 때 실수로 그 사진까지 넣었더니 애들이 나한테 대체 어디서 이런 심령사진을 찍었냐고 물었었어.”“...”활활 타오르던 강한서의 분노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어쩌다 가끔... 몇 십 장뿐이었잖아.”한현진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하.”뭔가를 말하려던 강한서가 고개를 숙이자 무릎 정도까지 오는 어린 아이가 옆에 쭈그려 앉아 불쌍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아저씨, 아직 더 놀 거예요? 저희 잠깐 놀게 해주시면 안 돼요?”강한서가 고개를 돌리자 뒤에는 어린 라이 대여섯 명이 줄을 서 있었다. 한현진: ...창피함에 고개